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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흰 황소의 걸음으로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김사인 시인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옛 동네어른들, 옛 누님들의 부재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런닝셔츠’라는 말은 알아도 ‘런닝구’라는 말도 알까? 혹 런닝구를 안다 해도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 좁은 골목길에 모여 앉아 장기와 바둑을 두거나 동네 어귀를 스스럼없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나이 지긋한 이들의 과거 기억 속에서만 아스라이 물안개처럼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202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여느 해와 다름없이 시작되었지만 ‘쥐죽은 듯’ 왔다가 전 세계를 팬데믹의 혼란 속으로 휘몰아 넣었던 ‘태산명동’(泰山鳴動)의 쥐띠 해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우리는 2020년에 많은 것을 잃고 없이 보냈다. 종무식도 망년회도 없었다. 제야의 종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망년회니 제야종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힘든 한 해가 갔다. 사라졌다기보다 스러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해의 바뀜이다.2021년이다. 시무식도 새해맞이 모임도 없이 벌써 열흘이 넘게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소걸음으로 걸어가자고 하지만 아직 그 걸음이 무겁고 힘겹다. 도통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검은 왕관 코로나가 머리를 짓누르며 새해 새 느낌의 부재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를 주고받기가 무안하다. 건강하자는 서로 간의 덕담이 무색하다. 희망을 노래하고 밝은 날을 꿈꾸며 웃음을 나누던 연초가 그리운 올해는 지난해와 더불어 매우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하릴없이 2021년의 1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희망 노래를 입안에 감추기는 이르다. 우리에게는 아직 또다른 1월 1일이 있다. 설날이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십간(十干)의 경(庚)과 신(辛)은 오행(五行)으로 보면 금(金), 오방색(五方色)으로 보면 흰색이 되어 신축년(辛丑年) 올해를 흰 황소의 해라고 한다. 문화권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동양에서 흰색은 상서로운 색으로 여겨지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스스로를 ‘흰 옷 입은 겨레’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불렀다. 누를 황(黃) 글자의 황소를 ‘희다’라는 형용사로 수식하는 것은 모순형용이라고 이견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황소는 누렁소가 아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에서도 황소는 다 자란 큰 수소를 일컫는다. 어원적으로도 황소는 ‘한쇼’에서 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므로 ‘흰 황소’라는 표현을 가지고 딴지 걸 일은 아니다.이상국 시인은 시 ‘내일로 가는 소’에서 어둠을 물리칠 강인한 소의 걸음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산 넘어 가시덤불 / 어둠 밟고 가는 힘을 보아라.”황소걸음으로 저기 흰 황소가 오고 있지 않은가. 서두를 필요 없다. 지혜와 힘을 모으고 조금만 더 버티자. 이제 곧 다시 둘러앉아 새 희망과 꿈을 노래하고 가시덤불 걷어낼 새 쟁기를 벼릴 날이 우리 앞에 온다.

2021-01-12

저무는 날 삽을 씻고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 우리가 저와 같아서 /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정희성 시인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1970년대 고통받고 암울하게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 당시 공사판의 일용직 막노동자에게 삽은 없어서는 안될 생활의 마지막 밑천이자 꾸역꾸역 살아내야 하는 물리적 고통의 표상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저물 무렵 강변에서 삽을 씻으며 하루를 마감하면서 힘듦과 아픔 그리고 슬픔도 함께 씻어 버리려, 삽으로 퍼다 버리려 무진 애를 썼겠지. 그래도 삽을 씻고 돌아가서 보듬고 사랑을 나눌 식구가 있었고 좁다란 동네 골목 어귀 허름한 선술집이나 포장마차에서 탁한 술 한 잔 기울이며 노동의 고단함을 함께 삭일 이웃이 있어 숨쉴 구멍 하나쯤은 뚫려 있었으리라.시인의 노래가 40여 년이 흐른 2020년 올해도 어느덧 해가 바뀌고 달이 기울고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저물어 가는 시간에 삽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퇴치와 감염자의 치료를 위해 삽보다 몇 배 무거운 장비들을 온몸에 칭칭 두르고 땀범벅의 한여름을 지나 한겨울 맹추위에도 땀을 흘리고 있다. 삽을 씻기는커녕 기진맥진하여 몸을 씻기조차 버겁다.삽질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 한구석에 처박힌 채 녹슬어버린 삽을 절박한 심정으로 고통스럽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들도 너무 많다. 씻을 삽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저물어가는 올해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구정물 흐르는 샛강에라도 담그고 씻을 삽을 찾으려 우리는 얼마나 애타게 헤매고 다녔던가.‘삽질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다’라는 본뜻으로보다 ‘헛된 일을 하다’라는 속된 표현으로 더 자주 쓰인다. 그렇지만 올해는 헛삽질도 한 번 못해본 이들의 날들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쥐의 해가 저문다. 왕성한 생산력과 부지런하고 활발한 달음질이라는 쥐의 표상을 좇고자 했던 우리 인간은 지금 하릴없이 ‘쥐 죽은 듯이’ 지내고 있다. 올해는 이렇게 가게 놔 두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불러야겠다. 그 사내에게 피리를 불게 하자. 부정의 쥐, 불의의 쥐, 탐욕의 쥐, 반목의 쥐, 질시의 쥐, 고통스러운 불황의 쥐를 저문 날 강물 속으로 퐁당퐁당 들어가게 하자. 거기에다 하나 더. 그 사내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죄다 휘몰아 가면 좋겠다.‘피리부는 사나이’는 독일의 하멜른 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 그림 형제의 동화로 우리에게 왔다. 이 동화를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제목의 동시 버전으로 만들었다. 브라우닝은 이 버전에서 “너와 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독여 주는 사람이 되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리를 불어 쥐를 쫓아주겠다고 하든 안하든 우리가 약속한 것이 있다면, 그 약속을 꼭 지키자.”라고 말한다.그래, 이제 삽을 씻고 희망을 품고 약속을 꼭 지킬 새해를 맞으러 가야겠다.

2020-12-29

굽혔다 펴기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내 연구실 책상 앞의 의자는 굽혔다 펴지는 의자이다. 굽혔다 펴진다기보다는 뒤로 펼쳐졌다가 바로 세워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그 의자가 얼마 전부터 소리가 나고 뭔가 불편했는데 나사 하나가 빠져 굴러다니고 있는 것을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의자 몸통과 다리를 연결해주는 나사였다. 제 자리를 찾아 단단히 돌려 넣으니 훨씬 편해진 느낌이다. 제대로 굽혀지고 펴진다는 사실이 몸과 맘을 얼마나 편하게 만드는지. 의자 나사 하나로 하여 새삼 삶의 이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이치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시인 한우진은 ‘굴신(屈伸) 이후’라는 시에서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본 사람은 알지 /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보면 그것들의 몸땡이가 / 여실히 뜨거운 쪽으로 오그라지듯이…. 가진 자를 향해, 후끈한 쪽으로 / 아, 사람들 등때기 휘는구나! 구부러지는구나”라며 힘 있는 사람들 앞에 몸을 굽히는 인간 군상을 오징어와 쥐포에 비유하였다.굴신(屈伸)은 ‘다리 따위를 굽혔다 폈다 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몸을 앞으로 굽힘. 겸손하게 처신함’을 뜻하는 굴신(屈身)이 있다. 우리말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굴신(屈伸)은 굽었다 펴지는 것이지만 굴신(屈身)은 계속 구부린 채 있는 것이다.‘굽신거리다’라는 우리말도 있다. 이 말이 굴신에서 왔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굽신거리다’는 원래 ‘굽실거리다’의 잘못된 표현이었다. 그런데, ‘굽신거리다’를 하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국립국어원에서는 2014년 표준어 사정 때 ‘굽실거리다’의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둘다 맞는 말이라는 것이다.김명인 시인은 그의 시‘안정사(安靜寺)’에서 “이 윤회 벗어나지 못할 때 웬 아낙이 / 아까부터 탑신 아래 꼬리 끌리는 촛불 피워놓고 /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 엎드린다 / 정향나무 그늘이 따라서 굴신하며 / 법당 안으로 쓰러졌다가 절 마당에 주저앉았다가 한다”라고 하였다. 절하는 여인과 함께 나무 그늘이 불상 앞에 드리워진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 세계는 모두 코로나 앞에 굴신 중이다. 되우 몸을 굽히고 몹시도 움츠러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굴신(屈身)이 아닌 굴신(屈伸) 중이라 여기고 싶다.1340년대에 유럽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페스트는 당시 유럽 인구의 1/3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인구 감소는 노동력의 부족을 초래했고, 농노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는 몰락하게 되었고 이는 르네상스 운동의 경제적 근거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있다. 페스트가 르네상스의 동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럽은 페스트를 극복하고 되살아났다. 그리고 몇 세기 후에는 세계를 휘어잡는 대륙이 되었다.계속 굽은 채로 있으면 그대로 굳어버린다. 계속 편 채로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굴신(屈伸)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만들고 탄력성을 부여해서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 코로나로 잠시 굽히고 있을 뿐, 우리는 지금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굴신 운동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20-12-15

으악새와 만반잘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가수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 1절과 2절 첫 소절을 되뇌어 본다. 어느새 으악새와 뜸북새가 슬피 우는 가을이 가버렸다. 이렇게 슬프고 힘들게 2020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2절의 ‘뜸북새’가 새 이름이니 1절의 ‘으악새’도 조류의 한 종류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손목인의 가요인생’이라는 책에는 ‘짝사랑’의 가사에 나오는 으악새가 무슨 새냐고 작사가인 박영호에게 직접 물었을 때 “고향 뒷산에서 ‘으악, 으악’하고 우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으악새’로 했다.”라고 심드렁하니 대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새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새 우는 소리를 듣고 그냥 갖다 붙인 것이라는 말이다. 한때는 ‘으악새’에 대해 다른 설이 있었다. 으악새는 새가 아니라 풀 이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으악새는 갈대와 비슷한 억새풀의 경기도 방언이다. 가을 바람이 불 때쯤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라는 설이었다. 그런데 노랫말을 쓴 장본인이 새라고 했으니 더 이상 논란의 여지는 사라진 셈인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여전히 떠돌아 다닌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곧,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작사가가 자기 마음대로 갖다붙였으니 나름 개연성 있는 다른 설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제법 그럴싸하다. 작사가가 침묵하고 있었다면 ‘으악새 슬피 우니’라는 구절은 ‘으악으악’하고 우는 괴기스럽기까지 한 새의 소리로 이해하기보다 ‘억새’풀의 흔들리는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 짝사랑의 심경을 노래하는 데에는 더 잘 어울렸으리라.듣는 이와 말하는 이, 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의 언어적 약속이 잘 맺어지고 그 약속이 지켜져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으악새를 새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기 껄끄러운 까닭은 언어대중 사이의 사회적 약속으로써가 아니라 개인이 임의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로 불리고 있기에 으악새는 공공의 언어 마당에서 새의 이름이라는 지위를 그나마 확보할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다.그런데, ‘슬세권’을 아는가? ‘보배’는 들어 봤는지? ‘슬세권’은 ‘슬리퍼를 신고 편한 차림으로 다닐 수 있는 역세권’이라는 말이고, ‘보배’는 ‘보조 배터리’를 줄인 말이다.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쳐 줄여 만든 ‘스몸비’(Smombie)라는 영어식 신조어도 있다. 이런 새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가히 줄임말 신조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터넷 공간을 박차고 나와 젊은이들에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줄임말 신조어들은 세대 간의 소통 부재 현상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 이러한 말들로 세대 간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 안에서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생기기까지 한다.‘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라고 하며 줄임말 앞에 억지로 머리 조아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가뜩이나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소통의 어려움까지 겹쳐 무지근해지는 12월이다.

2020-12-01

을사늑약과 한국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할 임무가 있으며, 한국 정부는 오늘 이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위 문장은 을사늑약 중 두 번째 조항을 현대식 표현으로 풀어 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인 1905년 11월 17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조약을 맺는다.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은 이 조약의 이름을 한일협상조약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을사년(乙巳年)에 체결됐다고 해서 을사조약 또는 을사협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보호’하는 조약이라고 하여 한때는 을사보호조약으로도 불렸다. 다섯 가지의 불평등한 조약임을 강조해 을사년의 굴레가 되는 약속이라는 뜻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우리의 자주적인 외교권 박탈, 일본인 통감 정치 실시, 일본의 대한제국 보호국화가 조약의 주내용이다. 외국과의 모든 조약을 맺을 때에 일본 정부의 손을 거치라 하고 통감을 두어 외교사항을 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조약은 강제로 체결됐다. 조약의 서명자인 우리 외부대신과 일본 공사의 전권 위임장도 없었고, 고종황제의 비준도 받지 못했다. 따라서 불평등, 부당함을 떠나서 조약 자체가 불법한 것이었다고 한다.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불법적 조약의 체결에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명을 우리는 을사오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을 단죄하고 조약의 불법성을 쟁론할 시간도 없이 5년 뒤인 1910년에는 경술국치를 맞고 국권을 완전히 잃고 만다. 조선의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하고 첫 황제에 즉위한 것이 1897년 10월 12일이었다. 세워진 지 8년도 지나지 않아 외교권을 빼앗긴 나라가 대한제국이다. 애써 ‘황제의 나라’라고 이름 붙이고 황제의 자리를 만들어 앉는다고 나라가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칭제를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정도면 유명무실을 넘어서 허상의 제국이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을사늑약의 조문을 보면 대한제국이라는 공식 이름을 쓰지 않고 한국(韓國)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본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한국이라는 이름이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한자 ‘韓’으로 쓰였지만, ‘한글’의 ‘한’과 같이 ‘큰, 바른, 하나의’ 나라가 한국 아니런가.이제 다시 우리는 대한민국, 한국의 이름으로 서 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방역 선진국으로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오늘, 부끄러운 을사늑약 체결일에 허상의 제국 한국이 아닌,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갈 당당한 한국을 그려 본다.

2020-11-17

광화문, 빛들문, 門化光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외솔 최현배가 작사한 한글날 노래 2절 가사이다. 세종대왕의 과학·철학·애민의 탁월한 정신이 오롯이 담긴 세계 최고의 글자, 쓰기 쉬우면서도 모양 또한 아름다운 글자가 한글이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에 공이 큰 단체나 개인에게 주는 상으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1989년에 제정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글자가 없었던 부족인 찌아찌아족은 2009년부터 그들의 말을 적는 글자로 한글을 가져다 쓰고 있다. 한글의 과학성, 우수성을 보여주는 두 장면이라 하겠다.서울 한복판 세종로에 광화문이 서 있다.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95년 왕궁이 처음 지어지던 때의 이름은 ‘오문(午門)’이었는데,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왕명을 내려 새로 만든 이름이 ‘광화문(光化門)’이다.광화문은 우리 역사와 길을 같이 걷는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고종 때에 궁을 중건하면서 문도 재건되었다.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은 일제에 의해 광화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자리로 옮겨졌다가 1968년, 2010년 두 차례의 재건축 과정을 거쳐 원래 자리인 지금 위치로 돌아왔다.광화문의 현판은 광복 이후 3번 교체되었다. 고종 때 경복궁의 중건 책임을 맡은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門化光’으로 현판이 걸렸다가, 196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광화문’으로 현판이 바뀌었고, 2010년 복원된 광화문에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한자 현판 ‘門化光’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2010년 복원 당시 고증의 오류와 현재 현판의 균열로 인해 문화재청은 현판을 다시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2011년 문화재청이 5천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판 글씨로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의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한자 현판이 우세했고, 임태영의 한자 현판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광복 이후 4번째 광화문 현판은 올해 걸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지난 5월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만들어졌다. 나는 광화문 현판을 글자체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이 모임을 지지한다.우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얼굴이라 할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적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문화재는 옛것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타당할지 모르겠으나, 문화는 옛것의 답습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의 대표성을 생각할 때 한자 현판 ‘門化光’보다 ‘광화문’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지은 이름 ‘광화문’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체로 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마음 같아서는 한자 뜻을 확 풀어 아예 ‘빛들문’으로 바꾸자고 하고 싶지만 말이다.

2020-11-03

청개구리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불효자는 옵니다.”지난 추석 무렵 지방 국도변 곳곳에 붙어 있던 플래카드의 글귀이다. 강원도 정선군의 한 공무원이 코로나 극복을 위해 추석 연휴 기간에 귀성 방문을 자제하자는 뜻으로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의 제목을 패러디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불효자는 웁니다’는 작곡가 이재호가 곡을 만들고 1940년에 가수 진방남이 부른 노래이다. 진방남은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반야월이 가수로 활동하던 때에 부르던 예명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진방남, 아니 반야월이 작사한 것은 아니고 ‘땐사(댄서)의 순정’, ‘찔레꽃’의 작사가 김영일의 작품이다. 작곡, 작사, 가수 모두 당대의 대단한 분들이 참여해 만든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가 모음 단 하나가 뒤집힌 채 80년만에 소환되었다. 이를 코로나 덕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한 플래카드 패러디 문구임엔 분명하다.우리의 농어촌은 어르신들 세상이다. 80-90대 노인분들이 논 매고 밭 갈며, 60-70대 어르신들은 경로당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력이 좋다 해도 연세 드신 노인들에게 코로나19는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2020년 8월 통계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75-84세의 입원률은 18-29세와 비교할 때 8배 이상이고 치명률(사망률)은 220배 이상이며, 85세 이상 노인의 입원률은 13배 이상이고 치명률은 630배 이상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평소에는 전화 한 통 드리지 않고 발길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다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2020년의 추석에 찾아온다고 하는 자식은 불효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2020년 추석에 고향을 찾은 자녀들을 생각하면 이솝 우화 중 한 이야기로 들었던 청개구리 우화가 떠오른다.(실제로 이솝 우화에 청개구리 이야기는 없다. 어미 개구리의 말에 언제나 반대로만 하는 아들 청개구리에게 언덕이 아닌 강가에 묻어달라고 마지막 유언을 한 어미 개구리의 이야기는 동양의 우화이다.) 그렇다고 추석에 찾아온 자식들을 싸잡아 청개구리 불효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코로나가 아무리 엄중하다 할지라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분들은 누가 뭐라 해도 고향을 방문하고 부모님을 찾아 뵈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더욱 조심스레 철저히 방역 원칙을 지키며 고향 나들이를 하였으리라.불효자인 나도 지난 주간에 경북 의성과 안동을 다녀왔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간 것이 아니라 22년 전에 돌아가셔서 선산에 잠들어계시는 아버님을 국립괴산호국원에 옮겨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니 코로나의 위험은 드리지 않았다.패러디야 어느 나라 말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우리말은 이렇게 재미있고 곰살맞기까지 하다.이 가을 청개구리 불효자는 왔고, 불효자는 울었다.

2020-10-20

훈아 형의 콘서트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실은 나는 남진도 나훈아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때론 간드러지고 때론 끈적한, 늘어지고 휘감기고 꺾이는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트로트 붐이 다시 일고 있지만 내 음악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나훈아의 노래를 들었을 때 심드렁할 수밖에.그런데, 다시보기 서비스조차 없다고 너스레를 떨던 방송국이 불과 사흘만에 급편성한 그의 공연 재방송에서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세월의 곰팡이 앉은 된장 냄새가 꼬리꼬리해도 찌개를 끓였을 때 그 감칠 맛에 숟가락을 담그지 않을 수 없고, 시큼한 김치 냄새가 유쾌하지 못한 자극을 준다 해도 그 시원한 맛에 젓가락을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 내가 어느새 늙어 버렸나?딸아이 말로는 BTS에 꽂혀 있는 20대 젊은 대학생들이 ‘테스형’을 부르고 있단다. 그것도 방송이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훈아 형’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테스형’의 노랫말에서 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관한 그 어떤 울림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철학의 부재 또는 부족 탓일까? 그러니 해석은 유시민과 진중권 또는 언론에 말글을 펼쳐낼 그 많은 인플루 ‘언사(彦士·재능과 덕망이 뛰어난 선비)’들에게 맡기련다. 아무튼, 2500년 전 소크라테스를 2020년 코로나 시국에 형으로 소환했다는 사실만으로 생뚱맞은 나훈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번 콘서트는 2020 트롯어워즈의 6관왕 임영웅도, 트롯 백년 가수상을 받은 장윤정도 하기 힘든, 연륜에서 우러나는 맛나고 다양한 포맷의 공연이었다. 이런 무대에서 노래한다는 걸 1년 전엔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그는 언택트 공연의 힘을 보여주었다. 제주도민과 강원도민, LA 교민과 이름도 생소한 짐바브웨의 교포까지 한 자리에 모아 흥을 나눌 수 있게 한 것은 그가 펼친 랜선 콘서트의 힘이었다. 랜선을 빌려 나훈아는 움츠러든 남성의 기를 살려주려 했고 한반도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에 흩어진 남녀노소 한국인들을 들었다놓았다 했다. 코로나는 처음에 기획했던 대규모 오프라인 공연을 접도록 했지만 오히려 성공적인 반전(反轉) 콘서트를 이루어냈다.콘서트 중간중간에 그가 했던 말에 대해 시끌시끌 말이 많다. 여도 야도 아전인수격으로 받아들이는데 제발 유치하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뛰어난 예인이지만 보통 생각을 가진 그냥 보통 시민의 덕담 정도로 여기면 어떨까?세월의 무게도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운데 훈장을 달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냐며 훈장을 사양했다고 말하였지만 세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노래를 펼쳐낸 모습을 보니 훈장을 주렁주렁 달아도 끄떡없을 것같다.힘들고 지친 사람들 마음속 색깔, 코로나 블루를 잠시 동안이었을지언정 이 가을 스카이블루로 바꿔주려 했던 ‘훈아 형’에게 훈장까지는 몰라도 박수를 한껏 쳐줄 만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흘러가는 유행가 가수라고 하면서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눌러 터뜨리고 희망의 빛, ‘대한민국어게인’을 끌어올리려 했다니 뭐 예술 훈장 하나쯤도 괜찮겠고.

2020-10-06

예,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쫓아오든 햇빛인데 / 지금 敎會堂 꼭대기 / 十字架에 걸리였습니다.”윤동주가 원고지에 쓴 그대로 ‘십자가’ 한 소절을 옮겨봅니다. 오늘은 맞춤법을 따르기보다 시인의 마음을 좇아, 참회의 그 심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예,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경멸하며 비하해 부르는 그 ‘개독교인’ 맞습니다. 열정에 가득찬 누군가에 이끌려 교인이 된 게 아닙니다. 제 의지로 교회를 찾아가 교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개독교인,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못해신앙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태신앙인입니다.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나름 논리와 합리성을 따지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신앙 유전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은 개독교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태신앙을 감사하며 이때껏 살아왔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장로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을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기독교 친화적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이라고 하면 왠지 믿음이 가고 어머님같고 친할머니같은 포근한 느낌을 보통 사람들이 가졌던 적도 있었습니다.구한말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 미몽에 갇혀있던 우리 민족을 깨우쳐 근대화를 이루게 하고, 일제하 독립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기독교였습니다. 독수리 날갯짓과 같은 믿음으로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고 외치며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라는 찬송을 부르며 독재의 군화와 최루탄에 당당히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선배 기독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사랑과 정의의 빛이 점점 흐려지고 부정적 인식은 점점 커져 개독교라고 불리는 데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극우 집단이 태극기부대라는 이름으로 소동을 부린다 해도 태극기를 부끄러워할 수는 없듯이,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의 과격 언사와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기독교를 싸잡아 욕한다고 해도 저는 개독교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 저 또한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게 만든 원인 제공자임을 자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는 욕망을 좇고 욕정에 뒤엉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데에 가톨릭교인들은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사회적 이미지가 좋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90년 9월 말 ‘내탓이오’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타락을 ‘나’부터 반성하며 일으킨 사회 개혁 운동입니다. ‘내탓이오’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회개와 성찰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도 끌어안는 사랑과 포용의 자세입니다. 이 자세를 배우려 합니다.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 기)독교인’입니다. 하여 이제 ‘다시 새로워’지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는 날 새벽, 교회당으로 가겠습니다. 예배실 한 귀퉁이에 조용히 앉자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할 것입니다. 교회당 꼭대기가 아니라 제 마음 한가운데 십자가를 가만히 걸어두겠습니다.

2020-09-15

새 모자는 가시 면류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우울한 마음 / 어두운 마음 / 모두 지워버리고 /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이해인 수녀는 시 ‘9월의 기도’에서 9월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그렇다, 숨죽이며 9월이 왔다.3월이 되면 어김없이 비발디의 ‘4계’ 봄 악장 선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 8월이 가고 무더위가 잦아드는 9월이 오면 또 어김없이 ‘4계’ 가을 악장의 밝고 경쾌한 음악이 귓가를 돌아 가슴에까지 닿았었다.그런데, 올해는 아니다, 봄 노래를 들은 기억이 없고, 아직 이르긴 하지만 가을 음악을 듣지 못하였다. 아마도 봄 가을의 전령같은 음악이 전파를 타고 흘렀을 것이다. 방송 진행자들마저 계절이 오고가는 것에 무감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음악이 흐른들 그 선율에 몸을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를 가진 이가 지금 몇이나 될까. 이 겨를 없음을, 아니 처절한 무딤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뉘라서 뭐라 할 것인가.코로나19가 시작된 중국에서는 이 바이러스 전염병을 신관폐렴(新冠肺炎)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이 마치 왕관 모양의 돌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라는 이름 또한 라틴어로 왕관을 뜻한다고 하니 무지막지한 힘을 휘두르는 바이러스에게 붙여진 새로운 모자라는 뜻의 신관(新冠)이 꽤 그럴 듯해 보인다.왕관 쓰기를 싫어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미관말직의 감투일지언정 오매불망 기다리다 넙죽 받아쓰려는 이들이 하고많지 않던가.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 그런가 보다. 그러나 누구든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관이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쓰셨던 가시면류관이 바로 그것이다.나는 올 초에 ‘고래와 쥐구멍’이라는 제목의 첫 칼럼으로 연재를 시작하였다. 그 글 말미에서 “올해는 열심히 칭찬거리를 찾아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세워보면 어떨까.”라는 어쭙잖은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두 달도 채 못 되어 코로나는 세계를 뒤덮고 사람들 몸과 마음을 들쑤셔 놓았다.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고 칭찬하기로 마음 먹자고 했지만, 아무도 높이고 세우고 싶지 않았던 왕관 모양 코로나는 사람 속에서 사람을 휘어잡고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사람 사이를 가르고 찢어놓고 있다.일부 그릇된 집단의 일탈 행위에서 비롯된 교회발 질병의 확산을 빌미로 코로나는 비기독교인의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가문 날의 들불처럼 번져가게 만들었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마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가시면류관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르러 오신 예수 한 분으로 족하며 또 그리스도 그 분밖에 쓰실 수 없다. 그러니 아귀다툼하듯 서로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우려는 일은 이제 그만 했으면 싶다.안도현 시인은 “9월이 오면 / 9월의 강가에 나가 /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이라고 노래했다. 나태주 시인은 “기다리라 오래 오래 /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 지루하지만 더욱 /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하였다.따뜻한 온기를 우리 사이에 돌게해 코로나를 빨리 물리치면 좋겠다.

2020-09-01

제국과 코로나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남긴 이 충무공의 말이다. 이 유언은 승정원일기와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적에게’라는 말은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유언을 남긴 사람이 또 있다.몽골제국의 기틀을 다졌던 칭기즈 칸이다. 그는 서하 정복을 앞두고 낙마사고 끝에 병사하면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적이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절대로 곡을 하거나 애도하지 말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날짜가 1227년 8월 18일, 바로 어제였다.몽골제국.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나라이다. 몽골제국의 영토는 최대 3,300만㎢에 이르러 유럽과 중근동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6.6배나 되었다고 한다.고려는 칭기즈 칸 사후인 1231년에 첫 침공을 받은 후 1257년까지 몽골과 아홉 차례의 전쟁을 치른 끝에 결국은 패배하여 몽골의 간섭을 받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삼별초의 대몽 항쟁과 같은 끈질긴 저항과 협상을 통해서 명목상으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경기도 강화 고려궁터, 용인 처인성, 제주도 항파두리 토성, 그리고 경상북도 상주 백화산성 등 우리나라 곳곳의 항몽 유적지는 몽골의 침략과 간섭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고 또 고려의 민중들이 얼마나 거세게 저항하였는지를 엿보게 해 준다.전 세계를 말발굽 아래 초토화시켰던 몽골제국은 1271년 국호를 원으로 개칭한 후 100년도 되지 않은 1368년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몽골이라는 이름만 겨우 이어받은, 러시아와 중국의 사이에 위치한 영토도 경제력도 미약한 나라로 쪼그라들었다.우리나라에는 여성 한복의 족두리, 신부의 뺨에 찍는 연지 등의 풍습과 ‘송골매, 보라매, 가라말, 조랑말, ~아치’ 등 몽골어의 흔적만을 남겨 놓았다.몽골제국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던 로마제국도 사라지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었던 대영제국도 찬란했던 빛을 잃어버린 오늘날, 코로나가 지구 전체를 휘감은 채 세계인을 위협하고 있다.2020년 8월 18일 낮 3시 현재, 코로나는 2천2백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78만2천여 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며 세계 214국에 퍼져 있다. 가히 코로나제국이라고 할 만하다. 창칼과 총도 없고 기마대도 탱크도 비행기도 없는 코로나 군단은 조용히 그러나 세차게 전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 그 강하고 무서운 힘을 우리는 지금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잦아드는가 했던 우리나라의 코로나도 최근 다시 확산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칭기즈 칸은 죽었지만, 코로나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과 몽골제국과 대영제국이 사그라든 것처럼, 14세기 유럽에서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이 종식된 것처럼 결국에는 코로나제국도 사그라들 것이다. 그렇다고 피해를 빤히 바라보면서 사그라들 때까지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방역 당국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은 더 철저한 방역과 재난 극복의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지금은 함께 할 때이다.

2020-08-18

장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더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에 숨은 뿔갱이마자 다 씰어가그라! 나무틈새기에 엎딘 뿔갱이 숯뎅이같이 싹싹 끄실러라! 한 번 더, 한 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윤흥길의 소설 ‘장마’에서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의 전사 통지를 받은 후 장마철 벼락이 치며 장대비가 퍼붓는 날씨에 외할머니의 저주에 찬 외침이다. 빨갱이가 되어 산으로 들어간 아들을 기다리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은 퍼붓는 빗줄기보다 더 세차고, 몸을 휘감는 장마철 눅눅한 습기보다도 더 서로를 불쾌하게 만든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와 감나무 위에 올라앉은 구렁이 한 마리를 아들로 생각하는 친할머니를 대신하여 외할머니가 음식 소반을 차려내고 친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워 주자 감나무 가지를 친친 감았던 구렁이는 천천히 대밭으로 사라진다. 결국 두 할머니는 화해하고 친할머니의 임종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판교의 아파트 단지에 사람 키보다 길고 큰 뱀이 나타났다고 아내의 지인이 난데없는 뱀 사진을 보내왔다. 아니나 다를까 산골이 아닌 도시 곳곳에서 뱀 출몰이 부쩍 늘어났다는 뉴스 기사가 이어졌다. 장마가 길어지고 비도 많이 내리면서 뱀들이 사람의 생활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다. 오랜 비에 땅 밑에서 기어 나오는 작고 가느다란 지렁이조차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뱀이야말로 혐오를 넘어선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겠는가.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3년에도 6월(음력) 내내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한다. “임금이 장차 친히 광효전에 제사를 올리려 하였다가, 비가 몹시 내리므로 중지하였다.”라는 6월 1일자 기사를 시작으로 “큰비가 물을 퍼붓듯이 내려…. 풍양궁을 시위(侍衛)하는 군영(軍營)이 거의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7일), “큰 비가 와서 서울에 냇물이 넘쳐, 하류가 막혀서 인가 75호가 떠내려가고, 통곡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12일), “수재(水災)로 인하여 각 전(殿)의 차비(差備)와 선반(宣飯)을 감하여 줄이도록 하였다.”(25일)라는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 비 그치기를 기원하는 제사 기록도 여러 차례(16일, 24일, 28일) 보인다. 세종임금이 수재 대책을 명하고 급기야는 큰 비로 정사를 임시로 중단하고 수재를 걱정하였다는 내용(23일)까지 실록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올 장마는 8월 중순까지 이어져 역대 가장 길었던 2013년의 49일을 넘어서 최소 51일을 기록하고, 역대 가장 늦은 1987년의 8월 10일보다 더 늦게 끝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나왔다. 장마가 지속됨에 따라 뱀 출몰에 따르는 사람들의 놀람은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와 농경지 침수 등으로 인한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가 염려되는 상황이다. 뻔한 말이지만, 정부도 민간도 이번 장마를 잘 대처하고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정말 지루한 장마였다.”‘장마’의 마지막 문장처럼, 장마가 그친 후 두 할머니 사이에는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떴으리라. 이번 장마 역시 아무리 길어도 결국에는 과거형이 될 것이다. 무지개 뜬 화창한 하늘, 쾌청한 마음을 기대한다.

2020-08-04

줌(ZOOM)과 신독(愼獨)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코로나 전과 후의 세계가 달라졌다고 한다.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를 ‘Before Corona’와 ‘After Disease’로 바꿔놓기도 한다.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untact·비대면)가 일상이 되면서 올해 초만 해도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줌(ZOOM)이라는 플랫폼이 학교와 기업, 더 나아가 사적인 작은 모임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나 역시 지난 학기에 학생들과의 소통과 원활한 피드백을 위하여 온라인 비대면 줌 수업을 진행했다.사실 줌 수업은 비대면 수업이라기보다는 간접적 면대면 수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교수와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연결된 가운데 수업을 하기 때문에 영어로 표현하자면 언택트(untact)보다는 온택트(ontact) 수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오프라인 대면 수업보다야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나름 장점도 있다. 나는 주로 연구실에서 컴퓨터, 웹카메라, 마이크, 스피커 등으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학생들은 집이나 편한 곳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았다. 등하교에 소요되는 수고와 시간이 확 줄어들었고 어디서든 접속만 하면 참여할 수 있었기에 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간접적 면대면 줌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조금씩 높아졌다.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존재하는 미묘한 공간,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공간의 세계가 바야흐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그런데 온라인과 카메라로 연결된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직접 대면하지 않으니 정제된 몸가짐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온라인 실시간 수업이나 회의에서 카메라에 비춰지는 모습은 주로 얼굴을 중심으로 한 상반신이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 렌즈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곳은 몸이나 공간이나 모두 대충대충 꾸미고 흐트러지기 쉽다. ‘하의실종’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바지에 맨발로 수업이나 회의에 참가해도 자신 외에는 알 수가 없다. 아무렴, 보이는 곳만 적당히 갖추고 꾸미면 만사형통이다. 학생도 교수도 그렇고, 부하직원도 상급자도 다르지 않다. 몸가짐이 이러할진대, 마음가짐이라고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은 유가(儒家) 수행의 핵심 개념이다. 퇴계 이황은 신독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았고, 백범 김구의 좌우명도 신독이었다고 한다. 2천5백 년 전 대학과 중용에서 유래한 신독이 새롭게 적용되고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홀로 배를 타고 나가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아 쪽배에 묶어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에 잡은 고기를 다 뜯긴다. 그런 데도 “마지막 놈이 얼마나 뜯어먹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배는 훨씬 가벼워졌어.”라고 자위하며 물어뜯긴 물고기의 아래쪽 부분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한다.그러나 우리는 반바지에 맨발도 괜찮지만 보이지 않는 아래쪽과 내면을 더 가다듬는 새로운 신독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2020-07-21

“뻥이요, 뻥”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지난 봄 조용한 죽음이 내 마음에 슬픔의 작은 여울을 만들었다.2014년부터 서울 성북구의 몇 동네를 돌며 독거어르신들을 방문하여 쌀이나 필요물품들을 전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축복의 기도를 함께 드리는 나눔과 섬김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돌아보는 분들 중에 7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은 냉골인 단칸방에서 자그마한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셨고 휴대용 가스렌지에 밥을 해서 신김치 하나로 식사를 하시던 분이었다. 젊었을 때는 뻥튀기 기계를 손수레에 싣고 서울 강북의 동네들을 돌아다니시면서 뻥튀기 장사를 하셨고, 나이가 들어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됐을 때는 튀겨진 뻥튀기과자를 팔러 다니셨다.봉사자가 쌀 등을 드리고 잠시 이야기와 기도를 하고 돌아설 때면 할아버지는 어떤 때는 내 몸채만한 큰 비닐봉지째로 어떤 때는 한 상자 통째로 뻥튀기과자를 주시곤 했다. 아무리 받지 않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봉사하는 우리는 하릴없이 그 뻥튀기과자를 받아서 다른 독거어르신들에게 나눠 드렸다.코로나19로 대면접촉이 제한돼 몇 달을 찾아뵙지 못하는 사이 그 분은 뻥튀기 기계와 과자를 싣고 다니던 녹이 슨 손수레만 골목길에 덩그마니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검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독거노인생활관리사에 의해 발견됐다. 자그마한 몸으로 한때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뻥뻥” 호령하며, 동네 주부들과 아이들에게 맛있는 주전부리를 제공하고 뻥 소리와 흰 연기의 즐거움을 나눠주던 뻥튀기 할아버지는 그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갔다.“뻥이요, 뻥!” 내 어린 시절 좁은 골목길 초입에 뻥튀기 아저씨가 들어서면 동네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곡물이 기계 안에서 다 튀겨질 무렵 아저씨가 외치는 “뻥이요 뻥” 소리에 모두들 귀를 막고 있다가 투입구를 열 때 나오는 수증기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터지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니 아무리 큰 소리에도 기계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놀라지 않았다. 뻥튀기 기계는 곡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튀겨냈다. 물론 쌀, 옥수수알이 가장 흔한 재료였지만, 가끔은 검정콩에 떡국용 떡, 말린 누룽지도 튀겼다. 뻥튀기는 별다른 간식거리 과자가 별로 없었던 시절에 맛도 있고 양도 푸짐한, 그러나 배는 부르지 않은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차가 막힐 때 최고의 주전부리 중 2위가 뻥튀기였다는 2007년의 조사도 있다.7월 8일 오늘은 1994년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날이다. 우리 쪽에서도 많이들 놀라기는 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봄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공식 활동이 전혀 보도되지 않자 김정은 사망설이 돌았다. 5월 1일에는 탈북자 출신의 어느 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김정은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김정은 위원장은 바로 북한 언론에 자신을 드러냈고, 사망설은 모두 헛소리가 됐다. 그런 말을 퍼뜨린 사람들은 ‘뻥쟁이’가 됐다.“뻥이요, 뻥” 외침은 뻥튀기 아저씨가 곡물을 튀겨낼 때만 사람에게 이롭고 즐겁다.

2020-07-07

오른쪽, 왼쪽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은 왼손으로 비비지 말고 오른손으로 돌려 먹어라.”젊은이들에게는 꽤 알려진 남성 가수 그룹 ‘노라조’의 노래 ‘카레’의 가사이다. 인도 전통 음식인 카레는 오른손으로 조물조물 다져서 먹는다. 인도에서는 식사 때 불결하고 부정한 손으로 여겨지는 왼손을 사용하면 안 된다. 어디 인도뿐이랴. 우리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어린 시절 내 수저는 늘 왼손에 들려 있었다. 부모님은 왼손에 가 있는 수저를 오른손에 무던히도 옮겨 주시다가 결국은 포기하셨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사달이 났다. 왼손에 연필을 쥐고 있는 나를 보신 담임 선생님은 내 자리로 오셔서 오른손에 연필을 쥐여 주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뒤돌아섬과 동시에 연필은 다시 왼손에 가 있었다. 교육자적 사명감에 투철하셨던 선생님은 며칠을 교탁과 내 자리를 오가시다가 급기야 내 왼손을 당신의 향기로운 손수건으로 묶어버리시고야 말았다. 그래서인가, 5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선생님의 성함과 얼굴, 그 향기는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내 가슴에 생생하게 간직되어 있다. 아무튼 오롯한 왼손잡이인 나는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쓰게 되었고, 졸필의 탓을 여기에 돌리고 있다.오른쪽의 ‘오른’은 ‘옳다’에서 왔고, 왼쪽의 ‘왼’은 ‘외다’ 곧 ‘그르다’의 관형형에서 비롯됐다. 우리말을 풀어보니 왼쪽이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르고 잘못 됐으니 왼쪽이 부정적일 수밖에.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좌우의 개념이 한 쪽이 긍정적이고 다른 한 쪽이 부정적인 것은 원래 아니었다. 조선시대 의정부 세 정승 중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서열이 높았다. 우리말로는 ‘오른쪽 왼쪽’이지만 한자로는 ‘좌우’로 왼쪽이 우선한다.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제가 들어서면서 우리의 국회격인 국민공회가 만들어졌다. 의장석에서 볼 때 보수적이고 혁명에 소극적이며 자본가 계층을 대변하는 온건파인 지롱드 파가 오른쪽에, 급진적이고 과격한 혁명 추진세력으로 소시민과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코뱅 파가 왼쪽에 자리 잡으면서 우파와 좌파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역사적으로는 좌파가 더 진보적이고 과격하다고 하는데 요즈음은 오른쪽도 만만찮다. ‘가장 옳’아야 할 ‘맨오른쪽’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극우 단체, 극우주의자들의 문제는 바다 건너 일본이나 유럽 등 딴 나라 이야기거니 했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덧 우리 사회의 한 복판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은 구제와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하라는 뜻인데, 지금 오른쪽 왼쪽은 드러내놓고 서로 제 잘났다 대립하고 반목하고 있다. 리영희 교수가 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 이름을 되뇌어 본다. 아무렴, 오른쪽과 왼쪽은 반목이 아닌 협조의 관계로 살아야지. 함께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날아갈 수도 있는데.“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두 손을 다 쓰면 더 잘 비벼지고 더 맛있어지지 않을까. 오른쪽과 왼쪽이 힘을 합하고 어울려 사는 맛깔나고 멋진 세상이 아스라하다.

2020-06-23

마음껏 숨쉴 수 있다는 것

이재현동덕여대 교수6월로 접어들면서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발령되기 시작했다. 폭염주의보의 기준은 섭씨 33도, 폭염경보의 기준은 섭씨 35도이라는데 6월 9일에는 올해 들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북 경산에 첫 폭염경보가 발령되었다.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훨씬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까지 있다.외출 시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는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새로운 시대풍속도이다. 그렇지만 이 더위에 마스크라니. 그냥도 더운데 얼굴의 절반 가까이를 가리고 활동하려니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가볍고 통기성이 높은 치과용 마스크 수요가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 1일 비말차단용 마스크(KF-AD)를 새로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판매하도록 했다. 기존 KF 공적마스크보다는 얇아 숨 쉬기가 편하고, 치과용 마스크보다 비말 입자 차단 성능이 높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기존 공적마스크의 3분의 1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가정경제에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기까지 한다. 국민의 안전과 숨쉬기의 편의성, 가정경제까지 신경을 써 주는 정부의 빠른 대처에 박수를 보낸다.“I can’t breathe!” 국민들의 숨쉬기 불편함을 배려하는 나라가 있는 한편, 공권력이 국민의 숨을 틀어막은 나라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20달러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비무장 비저항 상태의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8분 46초 동안 목이 눌린 상태로 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포유동물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 쉬기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바다에서 사는 포유동물인 고래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끔씩은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한다. 포유동물 가운데 사람은 유독 숨을 오래 참기 힘들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현재 사람의 숨 참기 최고 기록은 23분 1초이지만 이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말 그대로 세계 기록일 뿐, 보통 사람은 1분 안팎 숨을 참고 버티기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해녀들의 잠수 시간도 기껏해야 2~3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온몸을 꼼짝 못하고 숨길이 막힌 채로 고통을 받은 시간 8분 46초!용광로 국가 또는 샐러드그릇 국가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인종 간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은 갈등을 해소하고 줄이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의 경찰은 갈등을 증폭시켰고, 한 시민의 숨길을 틀어막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시민들을 보호하고 사회에서 마음껏 숨쉬며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할 경찰이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 활동인 숨쉬기를 강제로 멎게 한 것이다.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을 쉬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했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민주화의 기폭제가 됐던 사실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죽음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이 땅에서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래저래 감사한 요즘이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편히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있음 또한 기억하자.

2020-06-09

비슷하나 같지 않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어,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구절인데….? 이 시구는 박인환이 1956년 봄에 지은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는 박인환과 이름도 비슷한 가수 박인희가 부른 노래 ‘세월이 가면’의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의 박인환은 당대 문인 가운데서 최고의 멋쟁이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서울에서 줄곧 자라고 살았던 ‘명동 댄디보이’ 박인환의 문학관이 강원도 인제 산골에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그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기에 인제군이 연고권을 주장하고 문학관을 지은 근거는 충분하겠다.)1926년에 태어난 그는 1956년 3월에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출중한 외모에다 20대 초반인 1949년에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모더니즘의 기수로 주목받았던 박인환의 요절은 문단을 포함한 당대 예술계에 큰 울림이 있었나 보다. 그가 세상을 뜨기 일주일 전 쯤 썼다는 시 ‘세월이 가면’은 곧바로 노래가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박인희의 노래로 알려진 ‘세월이 가면’은 박인희가 처음 부른 노래가 아니다. 1956년 여름 신신레코드사에서 발매된 나애심의 음반을 시작으로 현인, 현미, 조용필에서 박인희까지 이 노래는 당대 최고 가수들의 목소리로 이어졌다.노래로 불리면서 처음 시의 ‘사랑은 가고’가 ‘사랑은 가도’로 바뀌었고, ‘과거’가 ‘옛날’로 달라졌다. 시와 노랫말이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노래의 운율에 맞추어 몇 구절이 빠질 수도 있고, 조사나 어미 한 두 개쯤은 바뀔 수도 있다. 문제는 바뀐 노랫말이 마치 원래의 시인양 전도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데에 있다.‘사랑은 가고’를 ‘사랑은 가도’라고 바꾸어 노래를 불러도 되지만, 원래의 시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가고’와 ‘가도’는 확연한 의미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그의 시 ‘왕십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여드레 스무 날엔 / 온다고 하고 /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이 시에서 ‘가도 가도’를 ‘가고 가고’로 바꾼다면 소월이 노래하고자 했던 왕십리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과거’와 ‘옛날’도 그렇다. 지나간 시간이라는 큰 테두리는 같을지언정 풍기는 뉘앙스, 그 느낌은 같을 수 없다. 2002년 공쿠르 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옛날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사랑에 빠질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소설을 쓰거나 읽을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과거는 바꿀 수 있지만 옛날은 바꾸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과거와 옛날은 다르다는 말이다.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진다. 기록으로 남겨놓아도 그 기록을 옮기고 전하는 과정에서 변형과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이다. 역사의 정확한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사이비(似而非)에 주의하자. 종교에만 사이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하다고 같은 것은 아니다.

2020-05-26

대충, 목례, 사전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붉은 색 ‘상(賞)’자가 찍힌 띠종이를 두른 국어사전과 꽃묶음을 가슴에 안고 사진 찍던 모습은 1970년대 초등학교 졸업식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사전을 졸업선물이나 상품으로 주는 경우를 요즘도 드물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국어사전 선물은 ‘라떼는 말이야’의 이야깃거리이다.사전은 지식과 상식의 총합체이자 축약체이다. 백과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낱말 뜻을 풀이해놓은 국어사전만 떠들쳐 봐도 웬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비상식적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난 4월 연구실 이사를 하면서 천여 권의 책을 버릴 때, 각종 사전은 한 권도 버리지 못했다. 한 때는 베개보다 두껍고 웬만한 보도블록보다 크고 무겁고 딱딱한 사전들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연구를 하고 강의 준비를 하였다.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굳이 책장에서 힘들여 사전을 꺼내고 펼쳐서 단어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몇 번만 두드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단어 뜻이 주르르 펼쳐진다. 아니, 컴퓨터 앞에 앉는 수고조차 귀찮다면 있는 자리에서 손가락만 까딱해도 된다. 그런 데도 우리들은 잘 모르는 말이 있어도 대충 넘어간다. 듣고 읽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말하고 쓰는 경우에도 대충대충이다. 말하고 쓰는 전문가인 기자들까지 그렇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공식석상에서의 인사를 대신하는 모습이 포착됐다.”(ㅎ일보 2020년 2월 4일자), “현충탑 앞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할 때…. 황 대표가 손을 내리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것이다. 황 대표는 자신의 왼편에서 참배를 진행하던 양섭 국립서울현충원장이 묵념하듯 목례를 하는 것을 보고 자세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으로 향하던 중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하고 있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사진 설명)‘목례’(目禮)와 ‘목인사’는 다르다. 목례는 눈으로 하는 인사이고 목인사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하는 인사이다. 물론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눈을 보며 다시 시선을 교환하는 눈인사를 할 수도 있지만, 목례가 고개를 숙이는 인사는 아니다. 위의 기사에서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묵념하듯 목례를’,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쓴 것을 볼 때 목례를 목인사로 혼동한 것이 분명하다. 대충 아는 대로 대충 인식하고 기사를 쓰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목례와 목인사를 혼동하고 쓴 글들은 널려 있다. ‘뇌졸증, 산수갑산, 아둥바둥, 양수겹장, 풍지박살’ 등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은 우리 주위에 또 얼마나 많은지.대충 알고 대충 말하고 대충 기사 쓰지 말고, 바로 알고 바로 말하고 바로 쓰며 살자. ‘대충언론인’과 ‘대충선생님’이 ‘대충국민’을 만든다. ‘대충국민’이 대충 물건을 만들고 대충 건물을 지으니, 사고는 필연적이다.사전 좀 보며 살자. 몇 초만 시간 내면 ‘대충’이 ‘정확’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2020-05-12

비우며 살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18년 만에 이사를 했다. 대학 임용 후 한 방에서 지금껏 지내다가 같은 층의 북쪽방에서 남쪽방으로 향만 바꾼, 방 한 칸짜리 연구실 이사였다. 면적이 반 평 정도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짐을 줄여야 했다. 책과 서류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내놓았다. 한 권 한 권 떠들쳐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볼 수도 있는데, 들인 책값이 얼마인데….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욕심에 불과했다. 18년 전 처음 연구실에 가져 오고 한 번도 안 본 책이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결국은 학회지 등 정기 간행물을 포함하여 버린 책들이 1천권이 넘었다. 책장도 4개나 버렸다.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다는 저장강박증이 나에게도 있었나 보다.‘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고양시의 90세 독거노인 이야기가 방송이 된 적이 있다.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이 할머니를 여러 날 동안 설득한 끝에 2013년 10월에 열 평도 안 되는 집에서 100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치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3년도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에 그 집에서 다시 치운 쓰레기가 5톤 트럭 4대 분량이었단다.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정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일본인 곤도 마리에의 집정리 노하우가 전 세계에 정리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 바로 1년여 전인 2019년 1월이었다. 그러나 이 열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람들은 모으고 채우고 쌓기를 거듭하다가 코로나를 만났다.코로나19로 인류는 세 달여 기간 동안 의도치 않게 멈추고 비우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국민 격리 조치로 자동차의 운행은 줄어들었고 소비의 급감으로 곳곳에서 공장의 가동은 멈췄다. 그러자 지구별에 뜻하지 않는 변화가 일어났다. 오염원의 배출이 급격히 줄어들자 이 짧은 기간에 대기질이 확연히 좋아졌다. 인간의 발길이 멈춘 곳에 원래 살던 동물이 돌아왔다. 인도의 루시쿨야라는 해변에는 관광객과 그들이 버린 쓰레기 대신 거북이 80만 마리가 돌아왔고, 영국 북웨일즈의 휴양지 란두드노에서는 야생 염소떼가 사람으로 번잡하던 거리에 나타났다고 한다.지구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욕망을 채우면서 지금까지 거침없이 달려왔던 사람들은 코로나19로 그 욕망의 질주를 강제로 멈추게 됐고, 어쩔 수 없이 욕심을 비워야만 했다. 그러나 이 비움의 작업이 얼마나 오래 갈까. 고양시의 저장강박증 할머니 경우처럼 코로나가 잦아들면 또다시 질주를 시작하고 비웠던 욕망의 집 욕심의 방을 이전보다 더 꽉꽉 채우려는 보상심리가 작동할지 모르겠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비움은 다시 채움으로 환원된다.성경 마태복음에도 더러운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나갔다가 그 살던 집(몸)이 비고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게 됐다는 말씀이 나온다. 비우면 채우고 싶어진다. 비우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인가, 코로나는 인간이 스스로 비우지 못한 욕망을 강제로 비우게 만들고 있다.어떻게든 비우며 살 일이다.

2020-04-28

이름값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배민’. 어떤 후보자의 이름이기에 선거철인 요즘 이렇게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국회의원 후보자의 이름이 아니라 ‘배달의 민족’을 줄인 말이다.배달의 민족은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가 운영하는 배달 주문 서비스 브랜드 이름이다. 이름 참 잘 지었다. 경영진의 실력과 기술이 한 회사의 흥망을 좌우하는 주된 요소인 것은 맞겠지만 회사나 브랜드의 이름도 회사를 키우고 매출을 올리는 데에 큰 몫을 한다.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회사 이름도 잘 지었고, 배달의 민족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잘 지었다. 소비자들의 머리에 빠르게, 쉽게 떠올라야 주문을 잘 할 수 있는 게 배달앱 아니던가. 배달의 민족은 이름에서부터 벌써 성공의 토대를 마련하였다.우리 겨레- 나는 ‘민족’이라는 말보다는 ‘겨레’라는 말이 더 좋다-가 어떤 겨레인가? 배달겨레 아니던가. 한자로 ‘倍達’이라고 쓰기도 하지만 배달은 원래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로 어원이 ‘밝다’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배달겨레의 시조 단군(檀君)의 ‘단’은 박달나무를 뜻하는데 박달나무의 박달 또한 ‘밝다’에서 왔다고 한다.2010년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시작한 배달의 민족은 ‘물건을 가져다가 몫몫으로 나누어 돌림’이라는 뜻을 가진 ‘배달(配達)’과 한소리다른뜻말(동음이의어)인 배달겨레의 ‘배달’을 교묘히 엮어 애국심 마케팅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이 배달의 민족이 2019년 12월에 세계 배달 애플리케이션 1위인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억 달러(약 4조7천5백억 원)에 인수합병이 되었다. 10년 만에 15만 배가 넘는 금액으로 회사를 넘김으로써 단군신화 이래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성공신화를 쓴 것이다. 경영권을 보장받았다고는 하지만 배달겨레의 배달앱은 독일 기업의 소유가 되었다.독일 기업이 된 지 넉 달도 지나지 않은 4월 1일에 배달 수수료 체계를 개편함으로써 수수료 인상이라는 외식 업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더 나아가 공공배달앱 논란까지도 불러일으킨 배달의 민족은 지난 6일 공식 사과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이름 잘 지어 성공한 회사가 결국에는 그 이름값을 하기는커녕 ‘우아한’ 이름에 먹칠을 하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겠다.오늘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 수는 모두 41개라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하여 미래통합당, 민생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우리공화당, 민중당, 한국경제당, 국민의당, 친박신당, 열린민주당(정당기호순) 등 그 이름들의 면면은 멋지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정당들이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이들 정당이 국민과 시민과 더불어 갈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산시킬지,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고 미래를 밝고 정의롭게 만들어 갈지,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작금의 모습들을 보면 기대보다는 의구심이 더 크다.배민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정당들도 제발 이름값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2020-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