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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노래, 유월의 기도

등록일 2021-06-01 19:48 게재일 2021-06-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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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많지만 /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6월이다. ‘유월이 오면’이라는 스무 행짜리 도종환 시인의 시의 첫 여섯 행을 옮겨 본다. 이즈음의 나무들은 더이상 앳된 빛을 띠는 신록이 아니다. 바야흐로 봄은 가고 여름이 왔다. 녹음(綠陰)의 사전 풀이처럼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와 수풀’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고 이 녹음은 점점 짙어질 것이다. 얼마 더 지나면 장마가 시작되겠고, 장맛비를 피해 들어간 나무 그늘은 적잖은 비가림이 될 터이다. 시간은 이렇게 잘도 가고 온다. 그런데, 계절을 느끼는 마음들은 사뭇 복잡하다.

시집 ‘접시꽃 당신’(실천문학사, 1986)에 실린 위 시는 6월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 헤어져 사는 이들이 느끼는 절절한 그리움이 그 아픔의 원천인 것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과 이별,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인이 이렇게 노래하고 그리지 않아도 우리 겨레 많은 이들에게 아프고 쓰린 흔적을 남기고 드러내 주는 달이 6월이란 사실이다.

며칠 뒤 6일은 망종(芒種)이자 현충일이고, 25일은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상처로 남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은 남북으로 갈라진 채 70여 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에게 가장 절절하겠지만, 전쟁은 휴전이라는 말로 지금도 진행형의 상황이며. 전쟁의 후유증은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고, 상처 또한 아물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지만 사랑과 따뜻함으로 이어진 가정의 달 5월이 가자마자 아프고 슬픈 6월을 맞는다고 속상해 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아픔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승화시킬 힘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남과 북이 적대적 대치와 긴장을 풀고 사랑과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도록 하자고 하면 안이하고 감상적이라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이 우리 겨레가 나아갈 길이 분명한데, 암, 그리로 가야지. 하기야 이래저래 갈라져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이 휴전선 남쪽의 모습인데 남과 북이 하나되는 길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영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브리지스(Robert S. Bridges)는 ‘When June is come’이라는 시에서 “아, 삶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이라고 6월을 노래했다. 6월을 즐기는 그가 부럽다. “유월이 오면, 온종일 / 나의 사랑과 향긋한 건초 속에 앉아 /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이 지어 놓은 / 햇빛 찬란히 비치는 높은 궁전들을 바라보리라”라는 흥얼거림은 우리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다.

그래도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라는 성경 이사야서 2장 4절의 말씀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나는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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