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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빨리빨리, 역동적인 빨리빨리

등록일 2021-06-15 19:41 게재일 2021-06-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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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슴슴한 겨울무 깎아 먹다가 / 느닷없이 장다리꽃 그리며 / 또다시 마음 바꾸는 마음이여 // 지친 꽃묶음 한 구비마다 내던지고 / 비척비척 일어서는 마음의, / 비천한 관성이여 /비천한 빠름이여.”

한영옥 시인의 시 ‘비천한 빠름이여’(문학동네, 2001)의 3연과 4연이다. 시인은 양귀비꽃의 피고 짐(1연)보다 계절의 바뀜(2연)보다 빠른, 사랑 또는 마음의 바뀜을 ‘비천한 관성, 비천한 빠름’이라고 자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사랑이, 마음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르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흔히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성급함을 꼽는다. 강준만 교수는 2006년에 인물과사상사에서 펴낸 ‘한국인코드’라는 책에서 10가지 한국인의 속성 또는 코드 중 하나로 ‘빨리빨리’를 들면서 이 속성은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 빨리빨리 정신은 현란하게 드러난다.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 설치된 건물에서는 일단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죄다 누르고 기다렸다가 가장 빨리 온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닫힘버튼을 먼저 누르는 것이 보통의 우리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둘러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주는 여유나 배려는 보기 쉽지 않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빨리 접하고 익히는 단어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하니 외국인들에게도 빨리빨리는 전염력이 큰, 우리의 속성인가 보다.

‘장밋빛 인생’으로 유명한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빠담빠담’을 패러디해서 버스커버스커가 노래한 2012년의 KT 기업광고노래 ‘빠름빠름빠름’ 역시 인터넷 속도의 빠름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 싶은 로켓 배송이니 새벽 배송이니 하는 택배 서비스가 당연시되는 가운데 택배기사들의 과로로 인한 죽음에 우리들의 조급함은 책임이 없을까? 18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광역시 철거 건물의 붕괴 사고 또한 싼 값에 빨리 철거를 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니 이 또한 ’비천한 빠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년 한 해 코로나 방역 성공으로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음으로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은 한껏 올랐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는 백신 접종률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조하다고 방역당국이 정치권과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빨리빨리는 백신 접종의 속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늦게 시작된 접종이었지만 6월 15일 낮 2시30분 현재 1차 접종자의 수가 누적 1천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체 인구(작년 12월 기준 5천134만9천116명) 대비 25.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월 26일 시작된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은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정부의 상반기 접종 목표를 15일 앞당겨 달성했다.

짧은 기간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은 백신접종에서도 역동적인 빨리빨리의 나라임에 분명하다.

그래도, 조금 여유 있게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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