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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인 라면, 삶은 라면

등록일 2021-09-14 20:06 게재일 2021-09-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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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물을 데운다 / 라면을 끓일 요량으로 / 봉지를 뜯고 /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 이 한때 / 허기진 오후, / 외출 중인 아내의 빈자리가 / 공복처럼 쓰리다. // 멀리 낮기차 지나가는 소리에 맞춰 / 냄비엔 물이 끓고 / 가지런히 누운 대파를 / 숭숭 썰어 넣는다. / 잘 익은 김치를 / 밥상 위에 올리면 / 더 이상 부러울 것 없는 시간”

정구찬 시인의 시집 ‘글씨가 사는 집’(뿌리, 2015)에 실린 시 ‘라면을 끓이면서’의 일부이다. 시인의 말처럼 허기진 오후를 때우는 손쉬운 방법의 하나가 라면 끓여 먹기일 게다. 대파 숭숭 썰어 넣고, 달걀 하나 탁! 깨어 풀면 성찬은 못되어도 일용할 한 끼 양식이 된다. 거기에다 ‘잘 익은 김치’(신 김치도 좋겠다) 한 접시를 더한다면 미각과 후각과 시각까지 만족시킬 만한 꽤 괜찮은 식사가 되지 않을까?

1963년 9월 15일은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처음 판매된 날이다. 어느덧 한국 라면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마도 ‘한국인’으로서 라면을 안 먹어 본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듯하고, 라면에 얽힌 이야기 한두 개쯤은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 라면이 스무살 되던 해인 1983년 2월에 나는 군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의 토요일 점심 메뉴는 라면이었다. 꼬들꼬들한 네모꼴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찐 라면 2개가 군용 식판에 겹쳐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 스프국물이 부어졌다. 참 낯선 라면이었다. 배가 한창 고플 때니 입안에 욱여넣기는 했으나 이 생각지도 못한 꼴의 라면 먹기가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 주 한 주 지나갈수록 적응이 되었고 제법 맛을 느낄 만해지자, 논산에서의 6주 신병 훈련 과정은 끝이 났다.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따금 그 라면맛이 그립다.

용기에 담겨 끓는 물만 부으면 간편히 먹을 수 있게도 되었고 다양한 종류와 조리법으로 라면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부대찌개에도 들어가고 양푼 돼지고기 김치찌개에도 들어가서 부담 없는 값에 푸짐하게 배를 불려주기도 한다. 달걀 하나로도 감지덕지했던 라면이 영화 기생충의 ‘짜빠구리’처럼 한우고기 채끝살을 살포시 얹은 고급진 요리가 되기도 하고, 떡과 만두 몇 점 들어간 라면에서 커다란 홍게에 랍스터가 들어간 값비싼 해물라면까지, 실로 라면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감자와 고구마가 조선 말 춘궁기의 구황식물이었다면 라면은 우리 시대의 구황식물이자 비상식량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선호 음식이 되었다.

삶은 라면과 같다. 구불구불 말리고 켜켜이 쌓인 면발은 우리네 인생의 질곡을 보여주는 듯하다. 설익으면 밀가루 씹히는 맛에 떨떠름하고, 잘 삶아 제대로 풀어지면 쫄깃한 면발에 군침이 절로 돌고, 오래 놔두면 붇고 퍼져 먹기 싫어지는 라면처럼 우리 삶의 여정은 라면을 참 닮아 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 연에서 “산다는 것은 / 허기를 다스리는 일 / 권력도 富도 / 라면 한 개의 포만감보다 / 못한 것을”이라고 삶을 풀이한다. 대선의 계절이다. 정치가 우리네 삶의 허기를 달래주고, 라면 한 그릇의 포만감만큼이라도 느끼게 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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