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가족과 정치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설이 지나고 한국인들의 소란스런 대이동도 끝났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유쾌한 소동이 언제 그칠까 궁금하다. 아마 한 세대 안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3대가 모여 살았던 대가족이 1970~80년대 이른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부모자식 4인 가족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1인 가족이 전체가구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런 추세(趨勢)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면서 한국사회 주류(主流)의 가족형태가 될 것이라 한다. 그것도 10여 년 안으로!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크고 작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런저런 사유(事由)로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모이면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필연이다. 사위와 장모, 며느리와 시어머니, 시누이와 올케의 긴장관계가 곳곳에서 폭발하는 것이다.어쨌든 우리는 익숙하고 편한 관계라는 이유로 가족 안에서 언어폭력은 물론 물리적인 폭력까지도 행사한다. 단순한 손찌검에서 잔인한 살해와 시신유기에 이르기까지 가정폭력은 다채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의 폭력장면은 가정폭력을 방조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지난 10여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고 한다.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은 일종의 연쇄반응(連鎖反應) 결과다. 실직이나 파산 등으로 실의에 빠진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구타한다. 매 맞는 엄마는 아이들을 때리고, 그 아이가 폭력 아동으로 성장한다. 매를 맞던 사내아이 가운데 8할 이상이 폭력 가장으로 자라고, 6할 이상의 여자 아이들은 매 맞는 아내가 되고 마는 기막힌 현실. 여기서 우리가 눈감거나 모르는 대목은 가정폭력의 원천인 가장의 실직과 파산이라는 사회안전망 부재(不在)다.왜 아버지는 실직과 파산을 경험해야 하는지, 그런 상황을 방지하거나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타의로 인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 빠진 한국인 남성가장의 첫 번째 선택은 아마 음주(飮酒)일 것이다. 술을 먹고 또 먹고 취해서 손에 닥치는 대로 주먹이든 야구방망이든 휘두르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출구(出口)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가정폭력과 비극적인 살인사건을 줄이는 분명한 방도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대표하는 권력의 재분배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에 충실하면 된다는 얘기다. 국민이 정치권력을 4년이든 5년이든 위임했다면, 그것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뭐니 뭐니 해도 분배(分配)에 있다. 제한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도를 마련해서 타의적인 실업자를 줄여야 한다.실업자로 전락한 가장이 구직에 거듭 실패하고 알코올 남용에 의지해 폭력을 휘두르는 기막힌 상황은 이제 멈춰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암운(暗雲)을 드리우고 있는 실업문제는 기막힐 정도로 심각하다. 대학입시를 포기하면서 9급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고등학생을 일컫는 `공딩족`마저 생겨난 21세기 대한민국. 그런데도 정부와 청와대는 노동자와 노조의 반대 없이도 손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법률을 강행하고 있다.노조 조직률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임에도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폄훼(貶毁)하면서 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노조가 없었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는 오래 전에 달성했을 것”이라고 떠드는 자가 정부여당의 대표로 있으니 두말 하면 잔소리다.정치가 부(富)와 일자리를 적절하게 분배하도록 한다면 가정폭력과 그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설 명절에 사람들이 선거(選擧)나 정치가를 두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 까닭은 거기 있을 것이다. 마침 미국에서 불어오는 버니 샌더스 열풍이 한파를 녹이는 정치의 계절이다. 고희(古稀)를 넘어선 노정객의 한결같은 의지와 신념이 아메리칸 드림은 물론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부활을 위한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02-12

구들방에 불을 때면서!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아궁이에 불을 때는 일은 양면적(兩面的)이다. 재미나기도 하지만 귀찮기 때문이다. 꼬깃꼬깃한 신문지 위에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쌓은 다음 불을 붙인다. 어느 정도 불쏘시개가 자리 잡으면 작은 장작을 하나둘씩 올리며 불길을 살핀다. 그와 아울러 아궁이 입구에서 만든 불을 조금씩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굵은 장작도 몇 개 올려가며 보기 좋게 불 자리를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20~30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아궁이에 열기가 들어찬다. 간간이 고개 들어 하늘을 볼라치면 굴뚝에서 잿빛이나 회색 연기가 굼틀댄다. 바람 드센 날이면 연기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지만, 바람 잔잔한 날 연기는 모양새가 적잖게 다채롭다. 수령(樹齡)이 백 년도 넘은, 속 빈 감나무를 근경(近景)으로 흩날리는 연기는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1980년대 아파트가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구들방과 아궁이가 신속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구들 놓는 장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온갖 고초(苦楚)를 겪는데 이골이 난 한국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집단성이 강하다. 유교문화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유난히 의식하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하다. 결과적으로 고만고만하고 튀지 않게 살려는 무의식이 지배적이다.농촌에서도 구들방과 구들문화는 기름보일러와 전기장판에게 밀려났다. 노인들조차 저렴한 전기판넬에 의지하며 `아이 따뜻해!`를 연발(連發)하는 세상이다. 하기야 고희팔순 넘은 노인네들이 한겨울 설한풍(雪寒風) 속에서 불을 때는 모습은 안쓰럽다. 홀로 늘그막을 견뎌야 하는 독거노인임에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보일러연기 대신 굴뚝연기가 기운차게 오르는 집을 보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진다. 농촌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된다.작년 같으면 몇 번이나 뒷산에 올라 썩고 부러진 삭정이를 주워오느라 분주했을 터. 하지만 올해는 옆집에서 얻은 경운기 두 대 분량의 나무와 앞집에서 가져온 감나무 자른 것으로 구들과 벽난로를 지피고 있다. 그렇게 나의 겨울 3분의 2가 지나가는 시점이다.산업화시대를 경과하면서 숱한 한국인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주범은 연탄이었다. 정부는 `산림녹화`를 위해 입산(入山)과 벌채(伐採)를 강력하게 금지했다. 나무 대신 보급한 연탄을 얻으려고 세숫대야나 고무 통을 들고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오밤중에 어머니 대신 연탄불 갈러 일어난 기억도 있다. 어떤 때는 연탄이 위아래로 들러붙어서 부엌칼로 떼어내기도 했던 기억이 삼삼하다. 따뜻한 물을 얻기 어려워 찬물로 머리 감고 수건 찾을 동안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맺혔던 스물 몇 살의 겨울날을 추억하는 것은 사뭇 유쾌한 일이다. 한겨울에도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21세기 대한민국 아파트 거실! 그렇게 30년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간다.문제는 지금부터다. 최근에 나온 미래서적들은 우리 어린것들이 감당할 삶의 본질적인 변화를 지적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직장을 찾을 때가 오면 현존하는 직업의 65%가 사라질 것이라 한다. 늦어도 2030년에는 무인자동차가 상용화(常用化)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물 인터넷으로 연결된 정말로 `스마트한` 세상이 불과 10~20년 안에 펼쳐질 모양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20세기 교육방식과 대학입시를 고집한다. `프라임`과 `코어`로 대표되는 대학구조조정 역시 20세기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과 여기`에 함몰된, 전문가연하는 교육 관료들의 단견(短見)은 조만간 또 다른 구조조정을 야기할 것이다. 하기야 미래는커녕 현재와 과거도 제어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형국이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치열하게 현재를 살되, 과거를 의식하면서 미래를 기획하는 슬기로운 지식인과 양심적인 관료, 정치가들의 등장이 새삼 절실한 시점이다.

2016-02-05

`아랍의 봄`이 신기루였다고?!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2010년 12월 튀니지 남부도시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청과물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경찰 단속으로 과일과 좌판(坐板)을 빼앗긴다. 대졸 노점상이자 26세 청년 부아지지는 시청에 찾아가 항의하지만 당국은 귀를 막는다. 그는 2010년 12월 17일 시청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이 소식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급속히 퍼져나가 시위를 촉발한다. 이듬해 1월 4일 부아지지가 사망하자 시위는 확산일로를 걷는다. 튀니지 시위는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퍼져나간다. 거명된 나라는 하나같이 독재정권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재기간은 튀니지의 벤 알리 24년, 이집트의 무바라크 30년, 예멘의 압둘라 살레 33년, 리비아의 카다피 42년에 달한다. 여기에 청년실업, 빈부격차, 물가폭등이 시위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들은 부아지지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분노를 공유(共有)하고 시위를 확산시킨 것이다.우리는 시위결과를 알고 있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살레는 미국으로 망명도생(亡命圖生)한다. 무바라크는 투옥되고, 카다피는 시민군 총에 목숨을 잃는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변화가 불과 1년 안에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고 지나간다. 작년 9월 2일 터키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세 살 박이 아일란 쿠르디 역시 시리아에 불어 닥친 아랍의 봄 희생자다.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소요사태는 언제 막을 내릴 것인지 종무소식이다.아랍의 봄은 튀니지를 제외하면 현상적(現象的)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5년 전 시민들이 독재자들과 맞붙었던 리비아, 시리아, 예멘, 바레인은 내전으로 상황이 심각해졌거나 여전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봄`은 그냥 오지 않는 법인가 보다. 아랍의 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1980년 `서울의 봄`이 떠오른다. 박정희 군부독재 18년을 끝장내고 드디어 민주주의를 꽃피우리라 굳게 믿었던 서울의 봄!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우리는 아랍세계와 이슬람을 모른다.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면 전혀 모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미국의 눈을 통해서 한국은 세상을 본다. 중국을 섬기던 때는 중국의 눈으로, 일본의 종살이를 할 때는 일본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과 매한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물 안 개구리`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홀로 서려는 일체의 노력을 포기한 채 큰 나라에 기대어 사는 사대근성이 체질화된 탓이다.이른바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유럽은 식민지 획득에 그럴 듯한 논리를 들이밀었다. 예일대 석좌교수인 월러스틴에 따르면, 첫 번째가 기독교 전파요, 두 번째는 문명화이며, 세 번째는 인권과 민주주의다. 이 모든 것에 기초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아주 미소(微小)하다 하더라도 동양문명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 지도편달을 받아야 한다는 `오리엔탈리즘`.어쩌면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을 가장 깊은 곳까지 내면화시킨 민족이자 국가의 구성원인지 모른다.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기초해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고위관료들의 행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과 습속은 자취를 감추고, 그저 미국과 유럽의 기준이 최고권위를 가진다. 그러다보니 남북한 문제에서도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얘기마저 나온 것이다. 참으로 희화적(戱畵的)이고 우울한 장면이다.아베와 위안부 협상을 할 때도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제외하더니, 남북한 문제의 당사자인 북한을 빼고 회담하려고 한다. 미-중-일-러 네 나라 외교 담당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하는 과정에서 서도이칠란트가 동도이칠란트를 제외하고 네 나라와 협상했던가?!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피는 물보다 진한 법” 아닌가! `아랍의 봄`에 `서울의 봄`이 겹쳐지는 눈물겨운 시절이다.

2016-01-29

우랄산맥과 부친 기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십여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셨다. 모질게 추운 날 아버지를 영원히 보내드렸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기일(忌日)이 오면 어김없이 추위가 동반한다. 슈퍼 엘니뇨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이번 겨울은 이상 난동(暖冬)이라는 얘기가 떠돌곤 했다. 그런데 아버지 기일이 되자 한반도에 북극한파가 찾아왔다. 우랄산맥 이동(以東)에 자리한 강력한 고기압 때문에 제트기류가 맴돌면서 북극에 갇혀 있던 찬바람을 몰고 한반도 상공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어허, 참?!`고개가 끄덕여진다. 올해도 아버지는 예외 없이 매서운 동장군(冬將軍)을 선사하신 게다.맵짠 겨울 냉기 속에서 신영복 선생이 눈을 감으셨다.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그곳의 경험을 대학생활로 비유하신 선생이 영면(永眠)하신 게다. 43년 10개월로 세계 최장기수 기록을 가진 김선명씨의 기록에 견줄 바 아니로되, 20년 세월 옥살이는 결코 짧지 않다. 거기서 보고 느낀 기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하 `감옥`)으로 남겨졌다.1988년 겨울 쾰른에서 유학생활 하던 나는 서울의 벗에게서 두 권의 책을 받는다. 그 하나가 이태의 `남부군`이고, 그 둘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이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 전국적인 반향(反響)을 얻고, 한국사회 전반에 과거사 성찰의 기운이 차고 넘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1988년은 나에게 그런 서책들로 기억된다.`남부군`을 읽으면서 가슴 시렸던 것은 이념 하나로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은` 청춘 남녀들의 사연이었다. `산 자가 먹은 죽은 자의 밥`이란 대목은 그냥 읽어 넘길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것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쫓기던 빨치산이 죽은 동료의 입가에 남아있던 밥알을 핥아먹는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영혼을 쥐고 흔들던 `남부군`과 달리 `감옥`은 잔잔하다 못해 밋밋한 느낌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편지글 형식으로 엮어진 간명하고 응축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분이 어째서 스무 해나 감옥에 계셨던 것일까`하는 의문도 적잖게 들었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지만, 선생은 사형까지 언도받았다가 무기수로 감형(減刑)된 분이었다. 참형을 받을 정도도 아니었는데, 독재의 행악질은 무소불위(無所不爲), 그 자체였으니 두말할 나위 없다.어떤 편지에서 목수가 집을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집을 그릴 때 대개 지붕부터 그리고 그 다음 벽체(壁體)와 창문을 그린다. 하지만 선생과 함께 옥살이하던 목수는 주춧돌과 기둥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거기서 선생은 삶에 대한 성찰에 커다란 전기(轉機)를 얻었다고 한다. 그저 지나갈 법한 작은 사건에서 인생의 비의(秘義) 하나를 깨우친 것이다.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이야기들을 깊이 생각하곤 했다. 여순사건과 제주 4·3항쟁을 거쳐 6·25 한국동란과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 10·26과 12·12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평화대행진과 노동자 대투쟁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굽이굽이에 흐르고 넘쳤던 함성과 선연(鮮然)한 핏자국을 기억하곤 했다. 그분들이 흘렸던 희생의 제단(祭壇) 위에 건설된 2016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안녕한지, 생각한다.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최소한도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대의제도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8·15 해방처럼 도둑처럼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온 것도 아니다. 이런 정도의 민주주의나마 우리가 향수(享受)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은 분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산다. 공기나 물처럼 애초부터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우랄산맥의 고기압이 자리를 비우면 북극한파도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입춘이 코앞일 터. 이제 추위도 절반은 지나가고 있다. 떠나는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겨울이 가면 따사로운 봄이 올 것이다. 겨울 한복판에 아버지 기일을 맞으면서 다가올 봄날의 향연(饗宴)과 만물의 생동을 감촉한다. 조만간 슈퍼 엘니뇨도 시나브로 우리를 뒤로 하고 멀리 떠날 것이다. 오늘따라 저녁햇살이 부시다.

2016-01-22

`혼밥`하시나요?!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예전에 없던 신조어가 양산(量産)되는 시대다. `혼밥`도 그 가운데 하나다. `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이 `혼밥`이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혼밥족`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가구는 400만을 넘어 전체가구의 27%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 2020년에는 1인가구가 전체가구의 30%를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혼밥족`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 자명(自明)하다. 21세기 들어서기 전만 해도 우리 한국인들에게 `혼밥`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낯설었다. 곰곰 돌이켜 생각해봐도 `왕따`라거나 어떤 특별한 사유(事由)가 아니라면 `혼밥`은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 좌충우돌(左衝右突) 하면서 지탱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2003년 `카드대란`과 2008년 `세계금융위기` 같은 대형사건 등으로 `혼밥족`이 꾸준히 늘어났다고 한다.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열됐고, 핵가족마저 기러기 아빠로 표현되는 1인 가족으로 해체됐다. 이런 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인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나 홀로 저녁을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인들이 소외와 고독에 내던져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50대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라면이나 햇반 같은 간편식을 더 많이 구입하는 실정이라 한다. 밥을 챙겨주지 않는 50대 이상 여성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풍속도라 하니 적잖게 씁쓸하다.가정에서 가장(家長)이 차지했던 사회-경제적 지위가 위축되면서 기러기 아빠와 `혼밥족` 증가가 일어난 것이다. `혼밥`을 먹고 또 먹다가 어느 날 문득 죽어버리는 기러기 아빠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세상 아닌가?! 20년 넘도록 불철주야(不撤晝夜) 헌신했던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끼니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50대라니?! 그들이 사회 변두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어느 허름한 국밥집에서 소주 한잔 털어 넣는 장면은 얼마나 우울한가?!며칠 전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려 했다. 기대했던 `돈까스`를 제공하는 학생식당은 문을 닫았다. 교직원식당은 살 빼는 사람에겐 최적의 장소지만, 여유롭게 저녁을 맛보려는 사람에겐 정말 아닌 곳이다. 거기서부터 나의 뜻하지 않은 저녁산책이 시작됐다. 일단 목표한 돈까스를 찾아 나서자, 하고 길을 떠난 것이 화근(禍根)이었다. 여기저기 떼로 몰려 왕성하게 저작운동(詛嚼運動) 하는 젊은 축들 사이에서 `혼밥` 하려니 오금이 저리는 것이다.이 거리 저 거리 찾아 헤매다 신호를 건너고 갔던 길을 되짚고 하면서 결국 낡은 돼지국밥집을 들어서는 자화상(自畵像)을 본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따로국밥`을 시켜놓고 허공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게 허전했다. 우연처럼 맞닥뜨린 `혼밥`이었지만,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음이다. 아직도 나는 `혼밥`에 익숙해지지도 않았고, 어쩌면 `홀로`란 사실을 심정적으로 인정하지도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백년 넘도록 그런 반성도 없이 살아왔다니!일본이나 유럽에서는 1인분으로 포장된 식재료가 흔하다. 오래 전부터 1인가구가 등장했고, 그것이 주도적인 가구형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인가구나 `혼밥족`이 비주류인 데다가 다품종 소량판매가 여전히 홀대(忽待)받는 현실이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혼자서 밥 먹는 사람들은 도처에 수두룩하다. 3포를 거쳐 5포를 지나 7포를 넘어 엔포에 이른 청년세대도 우리 주변에는 차고 넘친다. `혼밥`과 `혼밥족`은 엄연(奄然)한 현실이다.`혼밥`과 `혼밥족`이 늘어가는 것이 당연한 시대적 추이(推移)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족과 중년남성을 버리는 짓거리다. 그런 50대가 더 나이 먹고 건강을 잃어버려 이른바 `환부(鰥夫)`가 되면 그 결과가 어떨지 명약관화(明若觀火) 하기 때문이다. 상실되는 가족관계와 먹을거리의 건강한 복원이 시급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가족을 만들고, 건강한 가족이야말로 강건한 국민의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6-01-15

단역과 조연 그리고 주역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해마다 연말이면 상이 차고 넘친다. 가요대상과 방송대상은 물론, 영화제(映畵祭)도 각종 상을 마련한다. 청중의 시선은 언제나 맨 마지막에 호명되는 사람에게 집중된다. 시상식에 참가한 사람들도 주목을 끌지만 대상 수상자가 누구냐가 최고 관심거리다. 그러다보니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존재감조차 없는 경우도 적잖다. 한국인의 금메달 사랑이야 자타가 공인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나라!”같은 말이 생겨났을까!1등만 인정하는 풍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군가 1등을 하면 누군가는 2등이나 3등 혹은 꼴찌를 해야 한다. 금메달은 은메달과 동메달 그리고 등외(等外)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오로지 1등만 보며 달려왔다. 우리 머릿속에 장착(裝着)된 동양최대의 국회의사당과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어디 그뿐이랴! 최연소, 전국1위, 수석입학과 수석졸업 같은 어휘들이 여전히 난무(舞)한다.언제나 1등을 지향하는 우리는 크지도 않은 나라를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눠서 사유한다. 서울과 그 인근(隣近) 경기도를 이른바 `수도권`이라 하고, 여타 지역을 `지방`이라 부른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일기예보 할 때마다 들려오는 시작 장타령(場打令)이다. 내 남 할 것 없이 모든 방송사 일기예보는 빼다 박은 것처럼 똑같다. 서울에서 시작하여 서울에서 끝난다. “현재 서울은 몇 도입니다”로 끝나기 때문이다.이토록 획일적(劃一的)으로 국토를 분할하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지구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 일기예보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여 페테르부르크로 끝나거나, 그 반대다. 중국이나 미국, 일본도 북경이나 워싱턴, 동경에서 일기예보를 시작해서 끝내는 법이 없다. 동쪽이나 서쪽, 남부나 북부에서 시작하고 끝맺는다. 그런데 대구경북 일기예보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 시작해 대구로 끝난다. 미워하면서 닮아가는 것이다. 크고 강한 것, 빠르고 힘센 것, 권력과 부(富)를 가진 것에 대한 가없는 동경(憧憬)이 만들어낸 기형적(畸形的)인 풍경이다. 1등과 일류와 특권의식이 중앙지향의 인식과 사유와 맞물리면서 대대손손(代代孫孫) 연면부절 (連綿不絶)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시선을 우리 몸으로 돌려보시라. 인간의 육신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머리인가 심장인가, 내장(內臟)인가, 팔다리인가?! 인체에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잠시 생각해보시라.대한민국 영토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크고 힘 있다고 해서 소중하고, 작고 약하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적용(適用)하면 꼴찌는 꼴찌대로 의미 있으며, 그가 있음으로 1등이나 2등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상(大賞)을 받은 자에게만 눈길을 돌릴 것이 아니라, 그를 가능하게 한 숱한 무명(無名)의 별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돌려야 마땅하리라 믿는다.나의 명제는 여기서 발원한다. “단역 없이 조연 없고, 조연 없이 주역 없다!” 주역은 근본적으로 허다한 단역, 즉 엑스트라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주역만 하려하고, 모두가 1등이나 일류만 고집하고, 모두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만 행세하려 하면 세상은 망한다. 지역과 민초들이 강건해야 국가와 국민 모두가 강녕할 수 있는 법이다. 한 그루 낙락장송(落長松)을 키워내는 근본에는 헤아릴 수 없는 군영(群英)과 초목이 자리한다.병신년(丙申年) 새해에 심호흡하면서 높푸른 하늘과 시퍼런 바다를 바라보며 기억하자. 5천만 대한민국의 주인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나, 대구를 비롯한 경북만이 아니라는 것을! 너와 내가 동등(同等)하고 가치 있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풍토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라는 사실을!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주역도, 단역도 때로는 조연도 유쾌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보다 조화롭고 화사(華奢)하며 평안한 신년을 기대해본다.

2016-01-08

동지사와 학문 사절단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여행은 유쾌한 일이다. 미지(未知)의 곳을 다녀오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얼마 전 경북대와 하북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중국을 다녀왔다. 백두산이 있는 동북(東北)과 상해 소주 항주로 이어지는 강남(江南)은 다녀온 일이 있지만, 북경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불과 1박2일 체류였지만, 적잖은 상념이 동반했다. 스모그로 자욱한 보정(保定)과 청명한 북경의 하늘의 대비는 오늘날 중국이 처한 극한(極限)의 대비(對比)로 다가왔다.김해공항에 내리면서 동지사(冬至使) 혹은 연행사(燕行使) 생각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을까?! 1636년 삼전도의 굴욕을 경험한 인조는 심양으로 해마다 네 차례 조공사절을 보냈다. 청이 도읍을 연경(북경)으로 옮긴 1645년 이후에는 연1회 동지사를 파견한다.기록에 따르면, 1637년부터 1894년 청일전쟁까지 조선이 청에 보낸 연행사는 모두 507회였고, 청이 조선에 보낸 칙사(勅使)는 169회다. 조선이 세 번 사신을 보내면, 청나라는 1회 사신을 보냈다는 얘기다. 조공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이것은 정기적인 사행(使行)이며, 부정기적인 사행이 무시로 이뤄졌다. 조공(朝貢)이란 적게 주고 많이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선으로서는 이문(利文)이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조선사절은 청의 문물을 배우고 서적을 구하는 등 학술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동지사 사절은 아니었지만, 연암 박지원이 그런 경우다. 1780년 정조 4년 삼종형 박명원이 청의 고종 70세 진하사절 정사(正使)로 북경에 가게 되자, 수행하여 압록강을 거쳐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때의 견문을 정리한 책이 `열하일기`이며, 여기서 평소의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구88고속도로 함양 휴게소에 가면 물레방아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있다. 1792년 안의 현감으로 부임한 연암이 조선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수력(水力)을 이용한 동력기구가 조선에 처음 설치된 해가 1792년이란 얘기다. 마음이 아득해지는 기록이다.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이 만유인력과 천체운항의 법칙을 밝힌 것이 1687년 일이었다. 그로부터 105년이 지나서야 조선에 설치된 물레방아라니!그렇게 속절없이 세월이 흐르고 청일전쟁의 마당이 된 조선은 열강(列强)의 사냥감으로 전락한다. 물론 동지사 파견도 중단된다. 겉으로는 청을 섬기면서 안으로는 소중화(小中華)를 자처(自處)한 조선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 아니었을까?! 국가 정체성에 대한 최종심급에 대한 성찰 없이 큰 나라만 바라보았던 조선. 대국이 망하고, 아라사(러시아)가 무너지고, 일본이 들이닥쳤을 때 속수무책이었던 조선. 그것이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였다.다시 105년이 흐른 2015년 설한풍(雪寒風)을 뚫고 경북대 학문 사절단이 하북대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한중문화의 인지(認知)와 대화`를 주제로 양국의 교수와 대학원 석·박사들이 1박 2일 동안 참가한 대규모 학술대회였다. 한국어와 중국어 통역을 대동하면서 진행된 학술대회 기간 동안 하북대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보여준 열기는 인상적이었다. 숙명여대에서 어학연수 목적으로 나온 학생들의 열의도 아름다웠다.2천년 넘도록 중국을 바라보고 살았던 한국이라는 의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학문적 동반자 의식이라고 할까?! 하지만 나는 서둘러 덧붙인다. 아직도 한국에는 고유한 독창적 이론이나 학문체계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학문은 여전히 외부에서 도입되고 보급된 것이 주종이다. 이제는 우리도 세상과 역사와 학문을 바라보는 나름의 관점을 가질 때도 되었다. 그것이 학문 사절단 일원으로 중국을 다녀온 나의 소회(所懷)다.

2015-12-18

편향성에 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페이스북을 접은 지 오래다. 한때는 꽤나 열중했는데, 문득 허망(虛妄)해진 탓이다. 자신의 내면세계와 소회(所懷)를 시시콜콜 털어놓는다는 것은 적잖게 번다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몰두하는 현상은 현대사회에 만연(漫然)한 인간소외의 물증(物證)이다. 내면토로는 관뒀지만 가끔 페북에 접속하여 훑어본다. 더러 유익한 정보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간에게 고유한 `편향성`이다.`편향(偏向)`이라는 것은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뜻한다. 고로 `편향성`은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성질을 의미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편향성을 가지는 인간은 없다.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에 개입하는 시간과 환경적 요인이 편향성을 가지게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양육되며, 양육기간에 작동하는 시대정신의 요체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시공간을 배제(排除)한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페북에서 제시(提示)한 편향성 실험은 간단하다. 자전거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자전거가 왼쪽으로 가고,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면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설정한다. 당신은 과연 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겠는가?! 이것이 실험(實驗)의 전부다. 우리에게 익숙한 자전거 타기와 작별하고 새로운 방식의 자전거에 친숙(親熟)해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실험의 고갱이다. 뭐,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 듯하다.하지만 실험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넘는다. 상당히 긴 시간을 투자하고 넘어지고 자빠져야 비로소 새로운 방식에 적응(適應)할 수 있다. 실험자는 그렇게 자전거를 타다가 어느 날 예전방식의 자전거 타기에 도전(挑戰)한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다. 상당히 긴장된 노력과 시간투자를 하고 난 연후에 예전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방식에 적응한다는 사실이다.여기서 두 가지 결론이 도출(導出) 가능하다. 모든 인간에게는 나름의 편향성이 있다는 것과 어른보다 어린이의 편향성 극복(克服)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편향성이 비단 자전거 타는 것에 국한되겠는가?! 보고 생각하고 결정하며 실행하는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편향성의 인도(引導)를 받는다.어린이의 편향성이 어른보다 우심하지 않음은 그들의 뇌와 육신이 그만큼 유연(柔軟)하다는 의미다. 자아 주관성의 영역이 어른보다 좁고, 판단과 실천방식의 수정보완이 어른보다 신속(迅速)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린이도 시간과 더불어 편향성의 압력에 굴복하게 되고, 그것은 나이 들수록 강화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설파했다. 일컬어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라 한다.사정이 이럴진대,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이른다. 내게도 예외 없이 편향성은 있다. 나름의 근거에 따라 아름다움과 추함,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이 확연하다. 미추(美醜)와 선악 그리고 호오(好惡)의 분별이 확연하다 함은 그만큼 포용과 관용(寬容)의 폭이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나고 현저한 피아 구별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반대에 직면하기 쉽다는 얘기다. 최악을 피하는 것만으로 이미 세상은 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누구에게나 내재하는 편향성을 지적하면서 옳으니 그르니 하는 식의 편 가르기는 정당하지 않다. 편향성에서 파생(派生)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적정 지점에서 화해(和解)하고 악수하는 편이 현명하리라 믿는다. 페북과 작별했지만 그것이 제공하는 이로움을 새삼 깨닫는다. 나이를 먹어간다 해도 여전히 세상에는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지적 호기심(好奇心)을 내려놓지 않음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것이 어쩌면 또 다른 편향성일지 모르지만, 편향성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개성과 인격도 형성되는 법이다. 그러니 남들을 비난하는 당신의 손가락을 거두고 그대의 편향적인 내면부터 고요히 응시(凝視)할 일이다!

2015-12-11

고래 고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꽤 오래 전 죽도시장에 들른 적 있었다. 연배(年輩) 지긋한 분들과 동행(同行)이었는데, 고래 고기 파는 가게로 들어가셨다. “김 선생, 조금 낯설겠지만 나쁘지 않으니 들어보셔” 그날 처음으로 고래를 먹어보았다. 쇠고기 같기도 하고, 비계 많은 부위는 삼겹살 같기도 하고, 팍팍한 부위는 동물의 간(肝) 같기도 하고. 하여튼 복잡다단(複雜多端)한 맛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죽도시장 고래 고기를 한 번 더 먹은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고래에 대한 기록물을 보게 되었다. 고래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과정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인간과 동일한 포유류(哺乳類)로 바다에서 살아온 고래의 내력(歷)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육상 포유류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무리지어 살면서 대물림하는 교육도 인상적이었다. 그들 나름의 언어와 통신수단으로 교통(交通)하고 대화하는 품새는 우리 인간과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방송을 보고 난 다음 고래 고기를 입에 댈 수 없었다. “어쩐지 사람 같아서 먹기가 저어됩니다!” 그것이 나의 변명(辨明)이었다. 고래를 주식(主食)으로 하는 특수한 지역의 사람들, 예컨대 이누이트 족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고래 고기를 먹는 것은 취향이거나 선택의 문제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부터 상업적인 목적의 고래사냥을 금지해오고 있지 아니한가?! 이런 면에서 이번에 일본정부의 연구용 포경(捕鯨) 선언은 뜬금없는 얘기다.에이에프피 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고래조사를 명목으로 남극해에 연구선을 파견할 방침이라고 한다. 일본 수산당국은 11월 30일자 홈페이지에서 “12월 1일 남극해에 고래조사를 목적으로 연구선을 파견한다”고 전했다. 연구선 3대와 160명의 승무원이 참여하는 고래연구 활동은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진행되리라 한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고래 고기를 주식으로 삼아왔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전근대(前近代)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거대한 고래가 대양(大洋)에서 공중으로 솟구치는 모습은 장관(壯觀)이다. 많은 생명이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한 것과 반대로 육지에서 바다로 옮아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고래. 고래가 없는 대양을 상상하면, 사자나 기린이 없는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와 대면하는 형국이다. `모비딕`에서 허만 멜빌이 묘사한 백경(白鯨)은 거친 야생을 상징한다. 신성(神性)까지 내포한 백경의 신비로움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고래가 사라진 바다는 죽은 바다다.해마다 혼획(混獲)을 빙자하여 우리나라에서 포획되는 고래가 적잖다는 얘기는 비밀이 아니다. 고래 혼획 건수(件數)는 2012년 968건에서 지난해 1천470건으로 2년 사이에 52% 급증했다. 올해는 9월까지만 벌써 1천238건에 달했다. 고래 혼획은 특정 바다에 국한(局限)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의 바다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고래 혼획을 기획하고 유통하는 검은 조직이 암약하고 있음이 분명하다.예전과 비교할 때 현대인의 단백질 공급원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우리 식탁(食卓)은 고기를 즐겨 드셨다는 세종임금 수라상보다 화려하고 은성(殷盛)하다. 사정이 이럴진대 몇몇 호사가(好事家)들의 입맛을 돋우자고 바다의 소중한 포유류를 도륙(屠戮)하는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 1970년대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호기로움의 발현으로 족하다. 사방이 철벽(鐵壁)으로 둘러싸인 캄캄절벽을 탈출하는 출구로 불렸던 노래가 `고래사냥`이었다.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돌고래들이 기선과 나란히 유영(遊泳)하는 장면은 얼마나 상쾌하고 아름다운가. 자연 생태계를 교란(攪亂)하지 않고, 자연의 허다한 생명들과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21세기 문화인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지금도 인간으로 인해 멸종되는 생명들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이런 악순환이 이제는 종식됐으면 한다. 조만간 시간 내서 울주군 암각화를 보러 길 떠나야겠다. 고래 없는 바다는 쓸쓸하다. 관우 없는 중원(中原)처럼!

2015-12-04

`수저론`과 세대차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언제부턴가 `헬조선`과 `수저론`이 인구에 회자(膾炙)된다. 처음엔 그냥 웃자는 얘기라 생각했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하는 마음에서. 그런데 `지옥불반도`라는 그림이 인터넷을 떠돌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한 우화(寓話)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어째서 이런 신조어(新造語)가 나오게 됐는지, 젊은 세대 반응은 어떤지, 결국에는 이런 신조어 뒤에 내재한 한국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것이 관건(關鍵)이 됐다.주지하듯이 `헬조선`이란 용어는 영어의`헬`과 1910년 망해버린 519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의 복합어(複合語)다. 2015년 대한민국이 `지옥 같은 조선`이라는 얘기다. 조선사를 연구하는 전문가 입장에서야 조선이 사랑스럽겠지만, 민초들의 입장에서 보면 허망(虛妄)하기 짝이 없는 왕조 아니던가. 임진왜란 7년도 모자라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일제(日帝)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헬조선` 담론(談論)을 극명(克明)하게 구체화한 것이 `수저론`이다. 조선시대 한양 북촌에서 태어난 자는 금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왔고, 양반집 행랑채에서 태어난 자는 흙수저 물고 나왔다는 이야기다. 처절한 신분제 사회의 비극이야 허균이 `홍길동전`에서 통렬하게 그려냈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다.하지만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은 부모의 재산과 학벌 등으로 자신들을 `수저론`에 투영된 계급사회의 일원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경북대에는 8년의 역사를 가진 `복현 콜로키움`이 있다. 한국과 세계의 주요문제를 다각도로 천착(穿鑿)하여 문제제기와 해결방안을 동시에 모색하는 모임이다.지난 16일 제37차 `복현 콜로키움`에서 다룬 주제는 `헬조선과 청년실업`이었다. 이날의 연사(演士)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유종일 교수였는데, 그이는 `좋은 나라 지식협동조합` 이사장이기도 하다. 비오는 궂은날에도 100여명의 교수와 학생이 그의 강연을 경청하며 문제를 공유했다.유 교수는 청년실업의 근간에 깔린 분배(分配)의 문제를 지적했다.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너무나 커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사장 자식을 그 자리로 보낼 것인가 물으면 고개를 흔든다는 얘기도 했다. 좋은 일자리에 지원자들이 몰리고, 거기서 낙오(伍)한 사람들이 시간제 일자리 같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실상(實相)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유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분배구조를 혁신(革新)할 수 있는 정치체제와 제도개혁이었다. 현재의 양당제가 아니라, 비례대표제가 활성화된 다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역에 만연(漫然)된 기득권 카르텔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균열시키는 방안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그것이야말로 공정사회와 분배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그는 힘줘 말한다. `헬조선` 타파 가능성은 거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나는 그의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說得力)이 있다고 믿는다. 1천900만 노동자 가운데 630만 비정규직은 과도하며, 청년 실업자가 500만에 가깝다는 것이 실질적인 통계 아닌가?!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反應)은 사뭇 달랐다. 유 교수의 진단(診斷)과 해법이 자기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다.아버지 세대의 분석과 진단이 아들 세대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결론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반성하고 회개(悔改)하는 기성세대가 절망(切望)하고 탄식(歎息)하는 청년세대를 향해 말을 걸어야 한다.문제점을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함으로써 `수저론`에 입각한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결론을 서둘러서도 안 되지만, 너무 늦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그 길을 향해 세대차이(世代差異)를 극복하고 묵묵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5-11-27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오래 전 일이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을 본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로드무비` 형식으로 엇갈린 사랑 혹은 깨달음을 다룬 영화 `길`. 순진무구한 젤소미나의 사랑과 헌신을 알지 못하고 떠도는 마초적인 잠파노. 바보 천치처럼 잠파노 주변을 서성대면서 결코 그를 떠나지 못하는 젤소미나. 젤소미나가 죽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 깨닫는 어리석은 인간 잠파노.사랑을 잃고 나서야 사랑을 깨닫는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길`. 여기서 길이 인생행로를 가리킴은 자명(自明)하다. 길든 짧든 인생길에서 우리는 허다한 사람과 만난다. 만남으로 관계가 성립하고, 관계가 사건을 인도(引導)하며, 결국에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 운명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서 인생항로(人生航路)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길은 `도(道)`다. 도에는 추상적인 도와 구체적인 도가 있다. 공자가 일갈한 “조문도 석사가의!”에서 도는 추상적인 의미의 도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말한 공자의 배포와 간구(懇求)에 나는 전율한다. 그는 평생 자신의 `도`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지만, 갈망한 도를 그가 구했는지 나는 모른다. 도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서 손으로 움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도`의 절정은 도가(道家)와 불가(佛家)에서 만날 수 있을 터.공자가 구하고자 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도가 훗날 `동도서기(東道西器)`로 회자된다. 동양의 도와 서양의 그릇을 일컫는 말이다. 영혼과 정신은 동양에 바탕을 두면서, 서양의 선진적인 과학기술을 가져다 쓰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동도는 일본을 빼놓으면 거의 맥을 놓고 있는 듯하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이런 형편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 않은가?! 일상에서도 우리는 동도를 알지 못하고, 불편함 또한 감지하지 못한다.하지만 구체적인 길에 이르면 우리는 피부로 그것을 감촉한다. 출근길에서 우리는 차량대열의 홍수와 대면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는 의지와 욕망이 다른 운전자의 그것들과 충돌한다. 적정선(適正線)에서 욕망이 충돌하고 해소되면 좋으련만 더러 보복운전으로 이어진다. 보복운전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가 이뤄질 것이라 한다. 사소한 욕망마저 법으로 제약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지경에 이른 우리 염량세태(炎凉世態)가 우울하다.내가 가고 있는 길과 내가 지나온 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길과 만난다. 소중하지 않은 길 하나 사람 하나 없다. 각자에게 부여된 길과 인생의 여정(旅程)에서 잠시 스치며 지나가는 인연들의 총체(總體)가 출근길 풍경의 요체(要諦)다. 가능하면 그들의 길과 인생행로를 위협하거나 방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속도와 나의 향방이 귀한 만큼 그들의 그것들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하니까 말이다.논어 `위령공 편`에 “도부동 불상위모(道不同 不相僞謀)”라는 구절이 나온다. “길이 같지 않은 사람과는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유가는 유가와 도가는 도가와 불가는 불가와 묵가(墨家)는 묵가와 법가(法家)는 법가와 함께 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나와 다른 길에 있는 사람을 그대로 두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의 방식과 사유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출근길에 만나는 타인들처럼!잠파노의 길과 젤소미나의 길은 같은 듯 달랐다. 잠파노는 자신의 생존욕망에 충실한 사내였고, 젤소미나는 잠파노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그들은 함께였지만, 따로 존재했고, 따로 살아가지만 함께한 사람들이다. 젤소미나의 죽음 이후 잠파노가 도달하는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가 아프게 다가온다. 하여, 우리 곁을 떠도는 영혼들 역시 인생항로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길에서 확인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5-11-20

진지함에 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정치는 필연적으로 인생과 결부돼 있다. 정치의 요체는 분배(分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백성이 주인인 공화국이다. 공화국(共和國)을 풀이하면 모든 사람의 입에 쌀(밥)이 들어가는 나라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배불리 먹는 나라라는 뜻이다. 더욱이 이 나라의 주인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아니라, 백성(민)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이다. 기막힌 구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 사태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아수라판이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끝없는 자살행렬, 노인빈곤과 중장년의 조기퇴직과 알바 전전…. 경제적 양극화가 야기하는 정치-사회-문화적 양극화는 악화일로(惡化一路)다. 서울역과 시청광장을 찾아가 보시라! 전국 각처에서 올라온 숱한 시위대와 울분에 찬 얼굴들이 거리와 광장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텔레비전 방송은 막장드라마와 일일연속극, 노래자랑과 운동경기,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도배돼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2015년 시공간을 근간으로 하여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찾기 어렵다. 국민 우민화정책(愚民化政策)을 보란 듯 실행해도 백성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미 중독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밤중의 시사토론은 각자 주장에만 골몰해 우리의 피로를 가중할 뿐!그렇다면 시대와 역사와 민족을 사랑하는 1%라도 출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1%의 국민만이라도 우리의 시대정신이나 명징한 역사의식, 미래기획을 일상의 양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들려오는 소식은 긍정적이지 않다. 얼마 전 평론집을 출간한 원로 비평가의 한숨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진지한 글쓰기와 진지한 독서, 진지한 토론이 실종되어 버린 가볍고 얄팍한 요즘 지적 풍토가 두렵다.사회-정치적인 문제를 두고 토론하며 날밤을 환하게 밝히며 20대를 살았던 사람에게 요즘 염량세태는 숨 막힐 듯하다. 왜 우리에게는 68혁명 같은 출구가 없을까, 하는 문제로 괴로워하던 시대는 사라져버렸다.`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정의와 불의를 사유한 한국인이 적잖을 텐데, 여전히 정의는 우리와 너무 멀리 있다. 나와 가족만 손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소시민적 이해관계로 중무장한 궁민(窮民)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 말도 안 되는 막장드라마에 한숨짓고 욕을 퍼부으며 야구와 축구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 기초적인 교통질서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보복운전을 감행하는 거리의 무법자들! 정말로 갈수록 태산이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언제부터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져 버렸는가?! 언제부터 우리나라는 이기주의와 가족주의가 어떤 이념이나 미덕보다 우선하는 야만적인 사회가 되고 말았는가?! 목전(目前)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제까지 지켜온 지조나 신념 따위는 내팽개쳐도 좋다는 인간들의 두터운 낯짝! 이렇게 가치가 완전히 전도된 사회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은 누군가의 진지한 독서와 사유와 글쓰기와 토론에서 발원한다.진지한 독서로 우리는 진지한 문제의식과 만난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문제를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인식과 사유의 지평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의 글쓰기 행위로 구체화함으로써 실천의 동력을 만들어간다. 마침내 토론을 통해서 그런 인식과 사유를 타인들과 공유하거나 공론(公論)의 마당으로 들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선순환(善循環)이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된 나라를 우리는 선진국이라 부른다.독서와 사유, 글쓰기와 토론은 고독하고도 진지한 행위다. 토론을 제외하면 홀로 깊이 침잠해야 하기 때문이다. 끈기 있게 자아를 응시하면서 시간을 허여(許與)하고 집중적인 성찰을 동반해야 한다. 그런 개개인이 만나서 엮어내는 토론의 자리는 얼마나 의미심장하며 아름다운가?!

2015-11-13

`학생의 날`을 보내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지난 11월 3일이 `학생의 날`, 정확히 말하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학생들 자신이든 기성세대든 마찬가지다. `학생의 날`은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촉발된 항일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53년 국회가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6·25 한국동란의 피어린 상흔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학생의 날`을 제정해 기념했다는 것은 기억할 만한 행적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과 줄기차게 대면한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둘러싼 대립이 본보기다. 1972년 `10월 유신` 직후 학생운동이 격화하자 1973년 대통령령으로 `학생의 날`을 폐지해 버린다. 1984년 전두환 정권이 유화정책으로 `학생의 날`을 부활시킨다. 그 후 1999년 김대중 정권은 성대하게 `학생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2006년 노무현 정권은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가기념일마저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모양새를 보노라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초기에는 항일과 독립운동, 애국정신 같은 의미가 강조됐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학생의 날의 주안점은 1945년 일어난 `신의주학생의거`에서 제기된 반공이었다. 하나의 정권 아래 두 개의 학생의 날이 있었던 셈이다. 폐지되었던 `학생의 날`은 1984년 근근이 부활되었으나 방치된 것과 다름없었다.우여곡절 끝에 `학생의 날`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뀌었지만 그 의미를 반추하는 학생이나 교사가 얼마나 있는가?! 오늘날 중고등학생은 대학입시의 노예가 되어 부모의 기대와 과중한 공부에 억눌려 살아간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출구인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대학생들에게 예전의 패기와 공론장의 참여를 촉구하는 일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들은 취업전선에 발 벗고 나서야 할 지경이기 때문이다.`스카이`를 졸업해도 취업이 만만치 않다. 다른 대학이나 지방대 출신자의 취업은 총성 없는 전쟁과 다르지않다. 청년실업과 고학력실업은 기실 신자유주의가 잉태한 세계적인 현상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안개처럼 소리 소문 없이 세계전역을 휘감아버린 것이다. 이런 판국에 청년들에게 `최대강령주의`를 내세워 거대담론 추구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21세기 10년대 중반 세계는 자본의 무차별적인 지배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디서고 문제는 돈과 경제로 환원된다.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 계산되고 지불되는 우울한 현실 앞에서 피 끓는 청년 학도들도 속수무책이다. 에셀이 강조한 문제의식의 공유와 연대 그리고 평화적인 봉기는 우주 어디에서나 가능할 법한 동화처럼 들리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그래도 에셀은 문제의식과 연대와 봉기를 큰소리로 외친다. 광야의 고독한 선지자처럼.세상과 무관하게 오로지 나와 아내와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거는 40, 50대 가장의 훈육을 받은 한국 청년들의 상황은 훨씬 좋지 않다. `흙수저` 물고 태어난 청년은 백수 되기 안성맞춤이다. 그러다보니 주위사람들과 지역사회, 국가와 세계의 동향 따위는 아랑곳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매어 못 쓰는 법” 아닌가. 차분히 돌아보고 살피면서 황소걸음으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아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학생의 날`에는 학생의 사명과 의의를 생각하는 여유와 배짱을 가졌으면 한다. 어차피 100세 시대 아닌가! 조금 늦거나 빠른 것이 무슨 대수인가! 각자에게 허여된 본분과 소명을 찾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시급하지 않겠는가?! 무슨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그것부터 결정하고 움직여도 늦지 않다.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1천300리 유장하게 흘러 난바다에 이른다.

2015-11-06

`유럽적 보편주의`의 그늘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997년부터 2007년까지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가 영국의 이라크 참전에 대해 지난 26일 사과했다. 잘못된 대량살상무기 정보에 따른 참전, 사담 후세인 제거이후 이라크 미래전망 부재, 이슬람국가의 창궐(猖獗) 등에 대한 부분적인 책임을 시인한 것이다. 반면에 그는 2011년 `아랍의 봄`에 미친 이라크 전쟁의 긍정적인 측면과 이슬람국가가 시리아에서 발호했음을 강조하는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영국의 이라크 참전경위에 대한 `칠콧 보고서` 공개가 임박한 시점에 이뤄진 블레어의 사과는 즉각적(卽刻的)인 반발을 야기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 지시로 6년 전에 조사를 시작한 `칠콧 보고서`는 공개 전에 당사자에게 반론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공개가 미뤄져왔다. 이것을 노린 블레어의 지연과 회피전략이라는 게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같은 사람들의 비판적인 입장이다.2003년 전격적(電擊的)으로 이뤄진 미국의 대(對) 이라크 전쟁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이라크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걸고 전쟁을 시작한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생중계된 이라크 전쟁 결과 사담 후세인은 제거됐다. 하지만 부시가 공언(公言)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거짓말이 들통 나는 순간이었다.애시 당초 조지 부시의 양키 아메리카가 노린 것은 네 가지였다. 이라크 내의 석유자원 확보와 중동장악, 반미 (反美) 성향의 후세인 제거와 신형무기 시위가 그것이다. 그것들을 교묘하게 포장(包裝)한 표어가 이라크 민중해방과 민주주의 건설, 대량살상무기 제거였다.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같은 매파가 주도한 전쟁의 충실한 앞잡이가 영국수상 토니 블레어였음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우리는 유럽과 그 후예(後裔)인 아메리카가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세계 전역과 국가에 개입해왔음을 알고 있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야만행위로 기억되는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본보기다. 그들은 이른바`신대륙 발견`이후에는 기독교를 가지고, 19세기에는 `문명화`의 이름으로, 20세기 이후에는 `인권과 민주주의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세계를 무대로 전횡(專橫)을 일삼아온 것이다.이런 역사적 사실을 적시한 서책이 예일대 석좌교수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2008)다. 그의 주장은 간명(簡明)하다. 21세기에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보편주의가 아닌, 세계적 보편주의 내지 `보편적 보편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500년 넘도록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유럽과 미국 주도의 움직임이 종식(終熄)되어 세계 시민들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구촌 일원(一員)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적 보편주의의 깊고도 너른 그늘을 날마다 확인한다. 이스라엘 건국과 아랍세계의 분열, 이슬람국가와 시리아 난민사태, 아프리카 곳곳에서 자행(恣行)되는 종족분쟁 등의 씨앗은 모두 제국주의 유럽이 잉태한 것이다. 유럽적 보편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적 보편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각각의 국가와 세계 시민들의 자각된 근대의식과 실천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부시의 푸들` 블레어는 어정쩡하게 사과하면서 면피(免避)하려고 한다. 반면에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은 당수선출 과정에서 이라크 침공에 관여해 이라크 국민에게 고통을 준 사실에 대해 노동당을 대표해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라크 국민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바란다. 나아가 이라크 전쟁 같은 불상사가 재발(再發)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흥미로운 사실 하나만 밝히고자 한다. 이라크 전쟁 도발자 조지 부시의 고향 코네티컷에는 이런 팻말이 서 있다고 한다. “코네티컷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조지 부시가 태어난 곳입니다. 여러분께 사과합니다.”

2015-10-30

속도와 지식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논어 `옹야편(雍也篇)`에 `행불유경(行不由徑)`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름길로 다니지 말라”는 말이다. 도덕경 제53장에도 `대도심이 이민호경(大道甚夷 而民好徑)`이란 표현이 있다. “큰길은 매우 평탄한데 백성들은 지름길만 좋아한다.” 그런 뜻이다. 유가와 도가의 비조(鼻祖)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은 바르고 너른 길 버리고 좁고 빠른 길을 취하는 군상(群像)에 대한 경고다. 조급한 마음에 샛길로 다니는 인총을 나무라는 경구인 셈이다.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지식과 정보가 광속(光速)으로 난무하는 21세기 `속도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임에랴! 외국인들이 한국에 상륙해서 맨 처음 배우는 것이 욕지거리와 `빨리빨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이렇게 속도를 강조하는 한국인의 품성이 언제부터 고착화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른바 산업화시대를 경험하면서 느리고 굼뜬 늑장문화를 시대착오적인 퇴행으로 낙인한 지난 세기 1960~70년대 소산(所産)이 아닐까 생각한다.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의 양란을 거치면서 조선사회는 급속도로 피폐해간다. 반상(班常)을 근간으로 한 신분제 사회는 근대로 치달려간 유럽과 비교할 때 시대착오적인 낙후성을 노정한다.1687년 인류는 `만유인력`이라는 전인미답의 과학적 발견에 도달한다. 관성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가속도법칙에 의지해 아이작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간한 것이다. 천체운항의 법칙을 일목요연하게 풀이한 불멸의 저작이 세상의 빛과 만났던 것이다.1687년 조선. 숙종은 희빈 장씨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고, 당쟁의 화근이 깊이 침윤하고 있었다. 100여년 세월이 흐른 1780년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 진하사 사절로 북경에서 열하를 주유한다. 그 기록이 열하일기로 전한다. 연암은 그때 처음 수차(水車)를 본다. 1792년 안의 현감으로 부임한 연암이 함양 땅에 비로소 설치한 것이 `물레방아`였다.같은 시공간에서 유럽은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었지만, 조선은 그즈음 물을 동력원으로 하는 물레방아를 설치하는 수준이었다. 유럽은 석탄과 증기기관으로 미증유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근대적인 각성과 국민국가, 시민의 등장을 본다. 같은 시기 한반도는 대 물려온 당쟁과 사화(士禍)로 전국적인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것의 현저한 결과를 우리는 1862년 전후에 다시 목도하게 된다.주체할 수 없는 낭만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 빅토르 위고의 불멸의 저작 `레 미제라블`이 출간된 해는 1862년이었다. “무상으로 교육하지 않는 사회는 야만이다!”라는 기막힌 명제를 도출해낸 학술원 회원 빅토르 위고.그 시기 조선은 진주민란을 필두(筆頭)로 한 사회불안이 반도 전체를 휩쓸고 있었던 철종 13년. 동학 창시자 최제우를 잡아들여 바야흐로 그 목을 치려고 했던 시기가 1862년이었다. 달라도 어찌 이리 달랐단 말인가?!지식인은 언제나 속도를 생각한다. 후진국 먹물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것이 1917년 10월 혁명의 레닌과 트로츠키로 현현(顯現)한다. 중국의 모택동과 주은래, 68혁명의 여성 지도자 구드룬 엔슬린도 그러했다.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이다. 대체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이며, 근대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고,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지를 두고두고 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빨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것은 무너진 제국 소비에트 러시아가 웅변했고, 실패한 적군파 이념이 적시한다. 노자도 공자도 2천500년 전에 갈파했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전진하라. 역사에 지름길은 없다.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에둘러 갈 수 없다. 견디고 다시 견디면서 전진해야 한다. 하루의 전변(轉變)과 사계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연과 우주를 통관(通觀)하는 장쾌한 시야를 확보하는 대도(大道)의 여유로움이 한반도 지식인을 감싸기 바란다.

2015-10-23

유행가와 가을전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가을은 쓸쓸하다. 계절을 타기에는 나이테가 굵지만, 그래도 허전하다. 씨 뿌리고 가꿔야 했을 지난 계절 허송(虛送)한 인과응보(因果應報)다. 그래서다. 오래전 망각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까닭은. 어떤 노래는 정말 속되다. 그런데도 손발이 오글거리지 않는다. 외려 유튜브에서 찾아 듣기도 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해지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가 보다. 예전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노래를 찾아 듣다니?!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청중을 대상으로 시대를 풍미(風靡)하는 노래를 유행가라 한다. 유행가는 길어도 한두 해의 내구력(耐久力) 밖에 가지지 못한다. 다른 유행가에 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행가의 비극일지 모르지만, 유행가의 미덕이기도 하다.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는 전술일지도 모른다. 짧지만 강렬한 생애를 살다 명멸(明滅)하기 때문에 유행가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다. 동시대인을 매료하는 독성도 강하다.복고풍이 유행하면 나이 든 세대를 위한 흘러간 노래가 인구에 회자(膾炙)하기도 한다.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 시공간과 관계와 사랑을 추억하는 끈끈한 노래가 대세(大勢)를 이루는 철지난 노래방이랄까?!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인간을 위한 만가(輓歌) 비슷한 회고조의 노래는 어쩔 도리 없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시대의 전위(前衛)와 첨병(尖兵)으로 씩씩하고 당당한 청년세대와 불가피하게 차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 보시라! 요즘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에는 복고풍이 대세를 이룬다. 1천만관객을 불러 모은 `암살`에 이어 고풍스런 `사도`가 유행한다. `응답하라 1994`에 이어 `1988`도 기지개를 켜는 모양이다. 여기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바람이 드세다. 유신독재 시절 창궐(猖獗)했던 국정교과서 바람이다.40년 전으로 회귀(回歸)하는 교육부와 정부여당 행태는 70~80대 노인세대를 겨냥한 향수(鄕愁) 자극에 다름 아니다. 선거철이 임박했고, 정치에 역사를 써먹으려는 고도의 술수도 이해할 만하다.하지만 이것은 악재(惡材)로 작용할 공산(公算)이 크다. 휴대전화 보급률 세계 1위, 인터넷 속도 세계 4위의 대한민국 백성이다. 유신시절이야 깜깜이 정국에 정보독점이 우심(尤甚)했던 원시와 야만의 시대! 우리는 오래 전에 그것과 작별했다.보수언론도 난색(難色)을 표명하는 판국에 국정교과서라니. 이것을 일컬어 시대착오(時代錯誤)라 한다. 최신의 노래가 최대의 갈채를 받는것은 고금동서(古今東西)를 막론하고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시대의 첨단(尖端)을 걷지는 못할망정 시대를 퇴행(退行)시키고 국민의식을 역행하는 시도는 종당(終當)에 성공할 수 없다.어시장에 가을전어가 풍성(豊盛)하다는 소식이다. 집 나간 며느리도 불러들인다는 전어라지만, 전어도 한철이다. 우리는 가을 이외에는 전어를 찾지 않는다. 적절한 시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생선과 유행가다. 물 좋은 때 놓치면 부패하고 낡아져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제값 받고 팔려면 시세를 읽고 평가하는 밝은 눈과 치밀한 계산속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밝히는 등불은 아니어도, 맹인 인도견(引導犬) 쯤은 돼야 정부여당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조만간 가을전어 앞에 두고 흘러간 유행가에 귀 기울이며 소주 마시려고 한다. 유신독재 그리워하는 70~80대 노인들 앞에 두고 최신의 노래 들려줄까 생각한다. 세계는, 시대는, 역사는 저만큼 앞서서 질주(疾走)하는데 어째서 한반도에는 낡아빠진 복고(古)와 넋두리가 지배(支配)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이래서 `헬조선`에 거주하는 20~30대 청춘에게 무슨 희망과 빛을 선물(膳物)할 수 있단 말인가?! 아아, 시대여! 빛이여! 희망이여!

2015-10-16

한국인과 근대성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살다가 문득 궁금해진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을까?!” 평균적인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근간(根幹)이 언제 형성되었고,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는가.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이다. 519년을 견뎌온 조선왕조를 무너뜨린 것은 한국 민초(民草)들의 봉기가 아니었다. 우리보다 빨리 근대국가의 기틀을 다진 일제(日帝)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왕조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 일제를 무너뜨린 것도 한국인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열강(列强)이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선언해서 어느 날 불시(不時)에 해방된 것이다. 1945년부터 48년까지 이른바`해방공간`에서 한국인들은 필설(筆舌)로 다하기 힘들 정도의 혼란과 동요를 경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라는 불과 2년 만에 6·25 한국전쟁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무려 50개국에 이르는 나라들의 참전과 도움으로 3년 만에 휴전상태로 들어간다. 그 이후의 역사과정은 재론(再論)을 요하지 않는다. 나의 관심사는 오늘날 한국인의 사유와 인식과 실천과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이 언제 어떻게 마련되었는지에 있다. 위에 거명한 역사적 전변(轉變)이나 시공간 속에서 기준이 확립되었는가. 아니라면, 언제 형성되었을까?!근대성의 출발은 자의식(自意識)과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바닥 모를 문제제기와 해답의 모색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인은 누구인가?” 혹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내지 “우리나라는 어떤 국가를 지향하는가?” 따위의 근원적인 문제를 사유하고 거기 합당한 결론을 내려야 마땅하리라. 그런데 과문(寡聞)한 탓인지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어느 누군가가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왜 그런가?!우리의 근대는 이식(利殖)된 근대였고, 그 중심에 일본과 미국이 자리한다. 유럽의 근대를 일본의 방식대로 체화한 일본의 근대가 무비판적으로 식민지 조선에 이식되었다. 그것이 결과한 부정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모던껄`과 `모던뽀이` 아닌가. 일제 패망 이후에는 양키문화가 거침없이 한반도 남단을 점령해버렸고, 이제는 영어를 지껄일 줄 아는 자가 지배자로 등극(登極)하는 세상이 되고 만다.일제 강점기를 관통한 친일부역 도당과 반공(反共)을 외치면 모든 것이 허용되었던 친일부역 무뢰배들의 득세(得勢)는 우리의 근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근인(根因)이다. 우리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지, 일제치하 선각자들의 영혼과 정신을 잇고 있는지, 해방공간의 치열한 이념투쟁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지, 새마을운동으로 표상(表象)되는 소위 조국근대화에 물길을 대고 있는지, 나는 온전히 알지 못한다. 왜 그런가?!우리가 말하는 조국 근대화의 핵심은 한 마디로 `잘 살아보자!`였다. 영혼과 정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살아보자는 것이 골간(骨幹)이다. 거기에는 역사와 전통과 문화와 예술은 자리할 곳이 없었다. 5천년 문화민족을 자처해온 이 나라 국민들은 `궁민 (窮民)`으로 전락하여 오로지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되고 말았다. 소득향상이 개인과 국가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립근거가 되었다.“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이제는 돌아볼 때도 지났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욱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은 버려도 지날 만큼 풍요로운 시대에 우리는 자리한다. 지금부터라도 최소한 우리의 뿌리가 어디서 연원했는지, 지구촌 일원으로서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역사적 존재의의는 무엇인지, 숙고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다.졸부(猝富)들의 야만적이고 촌스러운 행각(行脚)은 그만 던져버리고 영혼과 정신을 살찌우는 것에 힘을 모으면 어떻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가 흥행(興行)하는 21세기를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첩경(捷徑)일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정체성과 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우리 세대의 일로 끝막음했으면 좋겠다.

2015-10-09

누가 산을 옮길 것인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산이 내게로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가겠다!” 무하마드의 명언이다. 깨달은 자 무하마드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가 말한다.“저산이 당신에게 온다면 당신을 따르겠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에 무하마드는 그렇게 응수(應手)한다. 산이 움직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공간이동 측면에서 본다면 산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나, 내가 산 쪽으로 가는 것이나 큰 차이 없다. 믿음은 신통력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우공이산(愚公移山)`의 주인공 우공은 문자 그대로 어리석은 인간이다. 미력(微力)한 인간의 힘으로 산의 돌을 깨고 흙을 옮겨 산을 평지로 만들고자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믿은 우공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었다. 대대손손 산 옮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땐가 대사를 도모할 수 있으리라는 심산이었다. 결국 상제(上帝)가 손을 들고 산을 옮겨주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열자(列子)` `탕문`에 실려 있다.무하마드 이야기는 진취적인 적극성을, 우공 이야기는 연면 부절하게 이어지는 끈기와 대물림을 설파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도록 인도하는 동력(動力)은 인식과 사유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에 도전하려는 의지와 자신감이 동행하면 성사 가능성은 한결 높아진다. 역사는 적잖은 성공사례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똬리 틀고 있는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다.추석명절에 큰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요즘 청춘들의 염량세태(炎凉世態)에 귀를 열게 됐다. 가능하면 안전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은 영역에 몰리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원인 하나가 거기서 발원(發源)한다고 아들은 꼬집는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라는 부모의 성화도 성화지만, 젊은이들 스스로도 도전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승(勝)하다는 것이다. 쌍방과실 아닐까, 생각한다.젊은이들의 오만에 가까운 패기와 거듭되는 실패를 기성세대가 용인하고 격려함은 `청춘은 외상`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국가의 명운(命運)을 담당하게 될 청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은 기성세대의 의무사항이다. 젊은 거지를 박대(薄待)하지 않는 풍습은 고금동서 마찬가지다. 청춘의 무모한 도전과 끝 모를 좌절(挫折)을 보듬고 전진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나이든 축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 수 없다.2015년 추분을 지난 한국의 가을은 음산(陰散)하다. `헬조선`으로 명명되는 이 나라의 현재는 20~30대 청춘의 도살장(屠殺場)이자 지옥(地獄)으로 표현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분제로 억압된 대다수 청춘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도 미래의 나라도 아닌 지옥이 돼버렸다. 그런 지옥을 만든 자들은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다. 기성세대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넘어간 청춘들은 지옥 타파에 무관심하다.지옥을 무너뜨리고 천국을 만들려는 의지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든 것 역시 우리 기성세대다. “가만히 있어라!”하는 말이 절대적인 명제가 되어버린 동토(凍土)의 나라.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행동하지 않는 청춘들의 소굴(巢窟). 남들처럼 숨죽이며 대세에 편승(便乘)하는 허다한 청춘들의 행렬. 그들에게 마취제를 투약하는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의 넘쳐나는 허언(虛言).옥황상제가 산을 옮겨주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산은 언제나 의연(毅然)하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며, 결코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우리가 산으로 가거나, 산을 옮기는 방도(方途)만 남은 셈이다. 이제라도 청춘들에게 적나라한 `헬조선`의 지금과 여기를 까발리고,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다!”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기성세대가 청춘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호의(好意)일지도 모른다.

2015-10-02

하나의 사건, 세 가지 시선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1951년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준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에 의지한다. 1915년 작 `라쇼몽`과 1922년 작품`덤불 속`이 그것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과 제목을 헤이안 시대 경도(京都)의 `라쇼몽`으로 설정하고, 사건과 등장인물은 `덤불 속`에서 끌어온다. 영화는 `라쇼몽`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세 사람의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원작에 없던 설정이다.이 글의 목적은 영화와 원작의 세밀(細密)한 분석이 아니다. 백주대낮에 일어난 사무라이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이 핵심이다. 아내를 말에 태우고 길을 가던 사무라이가 다조마루라는 산적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살인사건과 직접 연루(連累)된 세 사람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 사무라이는 죽은 무당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을 명징하게 확인한다.다조마루는 말한다. “사무라이를 죽이지 않고 그의 아내를 겁탈하고자 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쓰러져 우는 여자를 남겨두고 덤불 밖으로 도망치려하자 사무라이의 아내가 `당신이든 남편이든 어느 한쪽은 죽어야 한다. 두 남자에게 치욕(恥辱)을 당하느니 죽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의 밧줄을 풀어주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뤄서 그자를 죽였다. 결투(決鬪)가 끝나고 보니 여자가 사라져버렸다.”사무라이의 아내는 말한다. “산적에게 강간당하고 난 다음 남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나를 경멸하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정신을 잃어버렸다가 깨어보니 나무에 묶인 남편만 있고 산적은 사라졌다. 남편의 싸늘한 경멸과 증오의 눈빛은 여전했다. 나는 치욕과 분노, 노여움 때문에 남편 가슴에 단도를 꽂아 넣었다. 나 역시 죽으려고 여러 번 시도(試圖)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청수사`에 몸을 의탁(依託)하고 있었다.”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싼 세 사람의 증언은 확연히 갈린다. 다조마루는 결투를 해서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한다. 아내는 사무라이 남편을 죽인 장본인(張本人)이 자신임을 확인한다. 사무라이 자신은 자결로 목숨을 버렸다고 증언한다. 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영화도 소설도 누가 사무라이를 죽였는지, 명확하게 확인해주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할 따름이다. 왜 이토록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는가?!우리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듣는다는 교훈이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 (屬性) 가운데 하나다. 중요한 어떤 사안(事案)에 대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경우에도 우리는 어느 정도 심중(心中)에 결정을 내린 연후에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나 그것에 가까운 조언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고 때로는 결론을 유도(誘導)하기도 한다.내가 원하는 답변이나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우리는 동지나 친구 내지 멘토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결론을 제시하는 사람을 우리는 어리석은 자 혹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여기에 사태의 핵심과 맹점(盲點)이 자리한다. 동일한 눈길로 동일한 곳을 동일한 목적으로 바라볼 때 붕당(朋黨)과 파벌(派閥)과 만장일치가 생겨난다.`우리가 남이가` 하는 의식은 그런 분위기와 조건 속에서 스멀스멀 형성된다.왜 다른가,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나와 다른 결론은 어떤 결과를 잉태(孕胎)하는가, 그런 것을 살피는 작업이야말로 21세기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무지개에 담겨 있는 일곱 가지 색깔은 모두 다르지만 지극한 조화로움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물한다. 일컬어 `화이부동`이라 한다. `동이불화`를 넘어서는 `화이부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보셨는가?!

2015-09-25

소세키와 근대일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소설 `풀베개`(1906)를 읽다가 상념에 잠긴다. 명치시대(1868~1912)를 살아간 지식인이자 문사(文士)로 시대의 고민을 소설로 풀어낸 소세키. 소세키라는 이름은 `수석침류(漱石枕流)`에서 따온 것이다. “돌로 양치질하고, 물로 베개를 삼다”는 의미다. `수석침류`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고집쟁이나, 지기 싫어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라 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도련님` 같은 초기작품을 읽어보면 완미(頑迷)한 고집불통이나 벽창호 소세키를 떠올리기 어렵다. 조선시대의 고루한 딸깍발이 정도는 연상 가능하지만. 그러나 그의 개인사를 차근차근 되짚어보면 역시 뭔가 있다. 그는 국비 유학생으로 1900년 4월부터 1902년 12월 초까지 영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유학생활 중에 정신질환 수준의 모진 신경증에 시달린다.문제의 핵심은 일본인으로서 영국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증이었다고 한다. 일본이 유럽의 신문물을 열광적으로 수용해 근대국가로 전환해나갔던 명치 격동기를 살아야 했던 문사의 여린 내면세계가 문제였던 것이다. 소세키는 일찍이 한시(漢詩)와 일본의 하이쿠, `만엽집(萬葉集)` 그리고 일본 선승(禪僧)들의 세계와 회화 (繪畵), 노 같은 전통연희의 세례(洗禮)를 받은 지식인이자 교양인이었다.느닷없이 불어 닥친 근대 혹은 영국으로 표상되는 유럽의 서슬은 그의 내면풍경을 모질게 흩어버린다.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뇌와 방황이 시작된다. `풀베개`는 그런 정황(情況)을 드러내는 역작이다. 소설에는 동양적인 것과 일본의 정수(精髓)를 대변에 두고, 유럽적인 것과 영국의 미학을 차변에 두고 벌이는 대결이 펼쳐진다. 하지만 소설의 본령에는 근대를 자각해가며 고뇌하는 지식인의 형상이 자리한다.정신질환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했던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소설 창작이 훗날 소세키를 전업 작가로 변모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초기창작 대부분이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라는 점이다. 소세키 소설은 구미(歐美)의 관점에서 보면 무엇인가 어설프고 낯설게 다가온다. 그럼에도`풀베개`를 읽으면서 나는 동시대 조선 혹은 구한말을 떠올리면서 적이 당혹스럽고 안타까웠다.그가 사유하고 인식하면서 맞닥뜨렸던 근대일본의 초상(肖像)과 작가의 내면세계가 도달한 지적-정신적 수준이 도저했던 것이다. 명치유신이 경과한 지 40년 만에 소세키가 포착한 근대유럽 내지 영국은 새삼 놀라운 것이었다. 불과 2년 반 정도의 영국 체류에서 그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반감(反感)과 깨달음을 양립시켰다. 그의 사유 근저에는 언제나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누가 있기는 했을까`하는 의혹이 머릿속을 맴돈다. 소세키와 동시대를 살았던 조선의 누가 서양미학과 동양 내지 조선의 미학을 이항(二項) 대립시키면서 출구를 모색했을까. 한편으로는 모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하려는 의식적이고 자각적인 노력을 경주한 조선인은 누구였을까! 주어진 것을 답습(踏襲)하지 않고, 나름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독자적인 길을 열고자 분투한 선각자가 있기는 한 것인가?!장구(長久)한 세월 중국의 지적-정신적 자산의 세례에 감사하고, 100년 세월 일본과 미국을 모방해온 한반도 아니었는가?! 한반도에 터를 둔 어떤 정신사적-사상사적 물줄기가 지구 공동체를 흐뭇하게 적시고 있는가?! (물론 나는 `동학(東學)`에 문외한(門外漢)이어서 그것만은 예외로 둬야 한다.) 모든 고전유산과 근대적인 것을 인접국에 신세지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2천년 넘도록 변하지 않았다.소세키는 모방하는 자신의 내면세계가 수용되지 않아서 그토록 괴로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각성(覺醒)한 일본의 지식인이자 근대인으로 자아 정체성에 대해 끝없이 문제를 던짐으로써 일본의 미래가 되었다. 오늘날 일본이 가지고 있는 모방의 솜씨와 창조의 재능은 명치시대를 살아간 소세키 같은 지식인들의 고투(苦鬪)와 분발에 그 물줄기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