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도록 혹은 잊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기억의 작용이다.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따라서 더 고통 받거나 혹은 더 많은 행운을 누린다. 망각하고 싶지만 잊어버리지 못하면 괴로운 노릇일 테고, 요긴한 것을 오래 담고 있음은 축복일 것이다. 인생은 이런 모순의 양극단(兩極端)을 진자(振子)처럼 요동치며 마지막 날까지 흔들리는 것일 게다.
그런데 아주 예외적인 일과 사람과 관계는 기억함이 좋을 듯하다. 벌써 오래 전 일처럼 들리지만, 안중근 의사와 긴토캉(김두한)을 헷갈린 연예인이 구설수(口舌數)에 올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과 뭐, 그만 일을 가지고 젊은이를 닦달하느냐는 부류(部類)의 인간들로 패가 갈렸다. 결론을 서두르면 나는 전자(前者)에 속하는 사람이다. 최소한의 것은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문제는 사람마다 그 `최소한의 것`이라는 범주(範疇)가 많이 다르다는 데 있다. 사적(私的)인 영역이나 친밀한 범위 내의 것을 최소한의 범주에 넣는 사람이 있다. 거시적(巨視的)인 것과 역사적(歷史的)인 것의 범위(範圍)를 꼽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범주화를 전연 염두(念頭)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리라는 데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속도(速度)와 연관되어 있다.
작년과 올해가 그 양상을 달리하는, 과장(誇張)하면 어제와 오늘이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대에 우리는 산다. 몇 년 전 일도 기억나지 않는데, 소중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어찌 기억하겠는가?! 이것이 연예인을 옹호하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분초(分秒)를 다투면서 시간이 나노의 범주까지 쪼개진 시점에서 역사적이고 거시적인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현대인은 달력을 보지 않는다. 그가 들여다보는 `똑똑한 전화기`에는 언제나 지금과 여기만 나와 있다. 달력에 담긴 24절기(節氣)와 국경일과 역사적인 사건은 전화기(電話機)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늘 현재에 주목(注目)한다. 그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처럼 과거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에 함몰(陷沒)된 현대인에게 어찌 미래기획과 과거역사를 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거기가 나의 문제의식(問題意識)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끝없는 현재를 잉태(孕胎)하는 무수한 과거와 무수한 현재에 기초하는 무한한 미래는 기실 하나의 연속선(連續線)에 자리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말든 그것은 자명(自明)하다. 시간은 분절적(分節的)이지만 연속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기억과 기억의 창고를 경영하는 인간은 분절적으로 시간을 인식하지만, 어떤 사람은 시간의 연속성에 기초하여 역사와 만나려 한다. 그에게 안중근과 김두한을 동렬(同列)에 세우는 것은 불경(不敬)한 노릇이다.
얼마 전 경북대에 대동제가 있었다. 그 첫날이 지난달 18일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건사하는 주막(酒幕)에 가지 않은 지가 오래여서 올해도 그러했으되, 부아가 치밀었다. 불과 36년 전에 있은 광주항쟁의 그날에 학교에 술판을 벌이며 아무런 추모행사도 갖지 않는 청년들의 집단적 무의식(無意識)에 소름이 돋았다. 1980년을 기억하지 않는 청춘들이 거점 국립대 학생들인데, 연예인이 1909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철종 13년인 1862년에 출간된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한탄한다. “우리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이고 간에 180일만 지나면 모두 망각된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38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망각된다는 `다이나믹 코리아`! 무려 6개월 동안 지속되는 자국민(自國民)들의 기억력에 분노했던 위고가 나는 새삼스러웠다. 구양봉의 여인이 병사(病死)하고, 서독은 사막의 객잔을 태우고 표표히 사라진다. 그 역시 잊고 싶은 것이다. 세상일은 취생몽사주 없이도 더러는 망각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