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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등록일 2016-06-24 02:01 게재일 2016-06-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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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리는 월례(月例) 발표회에 다녀왔다. 학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가 발제를 권하기도 했고, 평소에 고민하던 문제이기도 해서 모처럼 발품을 팔았다.

`한국 인문학의 미래와 대학 구조조정`, 이것이 당일 콜로키움 주제였다. 여기에는 상당히 거창한 문제제기와 가능성 타진이 함축돼 있다. 내가 제기한 몇 가지 문제를 놓고 토론만 한다 해도, 몇날며칠은 걸릴 것이고, 책자로 나와도 몇 권은 소요될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두 가지만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한국 인문학의 자생성이다. 장구한 세월 구축해왔다고 우리가 믿는 (혹은 믿고 싶은) 한국 인문학의 뿌리에 자생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아니어도 좋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예술이든 종교든 모든 영역에 이른바 `자생성` 내지 독자성이란 게 있느냐 하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동학(東學)은 예외로 하자!) 한국의 학문이 독자적인 생존능력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지만, 어느 학문 영역에도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독자적인 담론이자 이론체계다!” 할 것이 있나 싶다. 장구한 세월 외부에서 수입한 이론이나 담론체계를 손봐서 살아오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이전에는 중국을, 1945년 해방 이전까지는 일본을, 그리고 2016년 지금까지는 미국을 베껴오지 않았느냐고 나는 묻는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언제까지 베낄 것이냐`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교육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 문제다. 단순화하자면, 대학정원이 신입생에 비해 과다하기 때문에 부실대학은 정리하고, 취업 안 되는 인문사회계열 정원 줄이겠다는 얘기다. 전자는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부실사학 교주(校主)들의 재산권을 보전해주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익을 남길 때 그들은 우리와 이익을 함께 했는가. 국민세금으로 배부른 교주들의 배를 불리고 등을 덥혀줄 이유가 있는가?!

인문사회계열 정원 줄여서 공대에 몰아주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은 교육부다.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내세워 부실사학을 양산(量産)하고, 2년제 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교육부 아닌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현실에서 이공계 증원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단견(短見)이 아닐 수 없다.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면 축대가 튼튼해지겠는가?!

2016년 시점에서 한국대학은 모순과 부조리의 총체적인 복합체다. 소설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대학생들이 허다하다. 장편은커녕 단편소설마저 읽기 버거운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75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강단의 절망감은 형언(形言)하기 어렵다. 대학이 어떤 곳인지,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대학생이 된 청춘이 너무 많다.

지난세기 60-70년대 `우골탑신화`를 기억하는 낡은 세대의 추억을 잊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대학은 직장인 양성소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 2016년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사건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對局)이었다. 불과 20년을 내다보지 못한 교육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앞으로 한국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망칠 것인가, 두려움이 앞선다. 그들이 취업률 운운하며 대학에 칼날을 들이대는 현실이 안타깝고 두렵다.

인공지능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상황을 돌이키지 않고 교육부가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대학 구조조정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칼춤을 출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들만 희생양이 될 것은 자명하다. 아아! 교육의 신이여, 강림(降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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