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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기예보 유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왕의 남자`로 천만관객 신화를 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소품(小品)이지만 제기하는 문제는 흥미롭다.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왕년의 스타 최곤은 서울을 떠나 영월로 간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는 작지만 인간적인 사건과 마주치게 된다. 서울을 기준으로 세상사를 재단했던 철없던 인간의 변모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낸 `라디오 스타`.매일 아침 독자 여러분은 일기예보를 보고 들으실 것이다. 주관 방송사가 어디든 여러분은 거의 똑같은 내용을 확인하실 거라 믿는다. 진행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몇 가지 어휘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현재 서울 기온은, 지금까지….”다른 것은 참겠는데, 일기예보가 `서울을 비롯한` 이른바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는 점은 견디기 어렵다. 한국의 인구 5천만 가운데 2천만이 그곳에 몰려 있음은 주지(周知)하는 바다. 그러하되 나머지 3천만은 `호갱이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서울에서 시작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끝나는 일기예보는 중앙(中央)의 폭력성(暴力性)을 집약적(集約的)으로 표현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식으로 일기예보를 하지 않는다.유럽의 경우 북부에서 시작해 남부로 내려가거나 (그 반대이거나), 서부에서 시작해 동부로 옮아간다. 이것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우심(尤甚)한 중앙집권국가 경험을 한 나라조차 `파리를 비롯한 (모스크바를 비롯한) 수도권`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거주 지역을 가지고 국민을 양분하는 행위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이외의 권역에 사는 사람은 2등 국민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위화감 (違和感) 조성을 최대한 피하려는 최소한의 배려(配慮)다. 부모와 조국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출생지를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태어나자마자 1등과 2등 내지 3등 국민으로 거주자를 구분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흥미로운 점은 대경지역의 방송사들도 똑같은 행태를 답습(踏襲)한다는 사실이다. 대경에서는 “현재, 대구를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은”으로 시작해서, “현재 대구기온은….”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시청자나 청취자가 울진이나 영덕, 봉화나 청송, 안동이나 의성, 영천이나 경산, 구미나 김천, 왜관이나 청도 등지에 산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대도시 중심주의가 우리나라 시민들을 옥죄고 있다. 대경 지역민들은 대구로, 대구 사람들은 속속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몰려간다. 지방분권(地方分權)과 지방자치(地方自治)를 목 놓아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음속은 중앙을 넘본다. 이런 연유로 지방 공동화 (空洞化)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내가 일기예보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언어가 가지는 중독성(中毒性)과 주술성 (呪術性) 때문이다. 날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듣노라면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자동화된 무의식으로 그 내용을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화되고 내면화된 국민 편 가르기를 당연지사(當然之事)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지방자치와 국민통합(國民統合)은 그만큼 어려워진다.`라디오 스타`에서 주인공은 소도시 거주민들의 소소하되 애잔하고 정감 어린 사연들을 전달하면서 인간적인 정리(情理)를 깨닫는다. 자기중심주의, 서울과 수도권 중심주의의 편벽하고 고루하며 완고한 아집(我執)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 개명천지에서 5천만 국민 모두가 평온하고 다채롭게 세상과 만나는 첩경(捷徑)일지 모른다.어느 날 라디오에서 “임원항의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북서풍이 초속 5미터 내외로 불고 있습니다.”하는 방송이 나온다면?! 아마 그날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온전하게 시작되는 첫 번째 날이 될 것이다!

2015-01-16

경북대에 총장을 許하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시국 불안정을 이유로 조선에 댄스홀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1937년 1월 `경성(京城)에 딴스홀을 허(許)하라`는 제목으로 계간지 `삼천리(三千里)`에 흥미로운 글이 게재된다. 영화배우 오도실, 기생 박금도 같은 여성과 레코드회사 부장 등 8명이 조선총독부에 `딴스홀`을 허가해 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아시아 문명도시(文明都市)에는 모두 댄스홀이 있으니, 경성에도 댄스홀을 허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당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일부 부유층을 포함한 인텔리 룸펜 프롤레타리아 계층 남녀는 `모던뽀이`와 `모던껄`을 자처(自處)하며 향락(享)과 유희(遊戱)에 젖어들었다. 당대의 대표적인 만문만화가(漫文漫畵家) 석영 안석주의 그림에서 그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안석주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2003년에 출간된 `모던 뽀이, 京城을 거닐다`를 일독(一讀)하시기 바란다.각설하고, 2015년 현재 국립 경북대학교에는 총장이 없다. 벌써 5개월째 총장이 공석(公席)이다. 지난해 9월부터 경북대 총장자리가 비어있다는 얘기다. 어째서 이런 사단(事端)이 생겨난 것일까?! 전임 대통령 이명박은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그의 충실한 하수인(下水人) 이주호는 교육부장관 재직 중에 직선제폐지와 국립대 법인화를 거세게 밀어붙였다.교육부의 정책을 볼라치면 현 정권은 본질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2년 동안 부산대를 제외한 전국 39개 국공립대학의 총장 직선제가 폐지되고 간선제로 전환됐다. 사태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교육부가 쥐고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있다. 행·재정적인 불이익이 그것이다. 교육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국공립대학은 행정적인 면에서나 재정적인 면에서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관계당국이 강제한 사립대학 반값등록금 정책에 따라 국공립대학도 수년 째 등록금을 동결했거나 최소한 인상에 머물렀다. 그로 인해 국공립대학 재정 또한 피폐일로(疲弊一路)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총장 직선제 폐지라는 교육부 지침을 따라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대학의 생존 내지 미래기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대학교 본부와 교수들의 자세는 추사 `세한도(歲寒圖)`의 `송백 (松柏)` 같은 것이다!)경북대 역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두 차례에 걸친 `총장선정위원회`의 간선제로 김사열 후보자를 당선자로 배출했다. 그러나 구랍(舊臘) 15일 교육부는 두 문장짜리 공문으로 김사열 총장 후보자 임명제청을 간단히 거부했다. 거부원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一言半句)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조속한 시일 안에 총장 후보자를 재선정하라는 지시만 하달(下達)했을 따름이다. 이에 경북대 구성원들은 다각도로 문제해결에 진력하고 있다.주지하듯이 경북대는 우리 대경지역의 거점중심 대학이자 간판 국립대학이다. 서울대가 법인화로 국립대 자격을 상실한 이후 우리 경북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대학이다. 이런 대학의 총장이 5개월째 공석이라는 것은 550만 대구경북주민을 우롱(愚弄)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교육부는 임명제청 거부원인을 석명(釋明)해달라는 정보공개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고압적(高壓的)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20세기 산업화시대(産業化時代)의 주역이었던 숱한 엘리트가 경북대에서 수학(修學)했다. 우수하지만 가난했기에 서울유학을 포기했던 수많은 인재들이 경북대를 거쳐 이 나라의 동량(棟梁)이 됐다. `우골탑 (牛骨塔)` 신화의 주인공들이 이 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牽引車)였던 때 경북대는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동생들의 학비를 경감(輕減)해주었던 은혜로운 배움터였다. 그런 경북대가 이제 정부와 교육부로부터 내침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80년 전 `경성에 댄스홀을 허하라!` 했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외침을 받아서 우리 대구경북 지방민들은 이렇게 외친다. “지방을 홀대하지 말라!”, “경북대에 총장을 허하라!”

2015-01-09

신년벽두에 영화를 생각하다!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천체물리학에 기초한 영화 `인터스텔라`와 저예산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가 화제다. 전자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후자는 다양성영화 부문에서 `비긴 어게인`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인터스텔라`가 흥행몰이에 성공했을까. 다른 한편으로 어째서 연세 지긋한 노인들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상대성이론, 블랙홀, 웜홀, 5차원 공간 같은 물리학 용어가 난무하는 영화에 관객들이 몰린 까닭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한국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충성도와 과학적 소견이 높아 흥행한 것 같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지구를 떠나고 싶은 한국인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시공간을 살고 있는 21세기 초 한국인들의 현실 불만족과 탈출심리를 자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지난해 2월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 4월16일 `세월호 대참사`와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연말정국을 강타한 `십상시`사건 등을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은 자명해진다. 출구가 꽉 막힌 세상에 시원한 활로를 열어주는 청량제 같은 영화가 `인터스텔라`아닌가. 지구파멸과 인류멸망을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인간의 이야기. 그것에 깔린 부성애와 남녀의 사랑! 무엇이 빠져 있는가?! 저 멀리서 희망의 등불이 빛나고 있지 아니한가!아버지보다 훨씬 늙어버린 딸 머피가 임종의 자리에서 환하게 아버지를 보내주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에드먼드 항성에서 후퍼를 기다리고 있는 아멜리아에게 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날이 쇠약해지는 아버지의 자리와 권위가 영화에서는 막강하다. 아버지 역시 부성애로 똘똘 뭉쳐 있다. 이런 기특한 장면이 `인터스텔라`로 관객을 인입하는 효과적인 기제다.`님아!`는 7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횡성의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록영화다. `워낭소리`(2008)의 흥행기록을 가뿐하게 넘어서 500만 관객을 향해 순항중이다. 요즘 남녀의 세태라면 100일 만남을 넘기기도 힘든데, 3만일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이야기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영화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양상은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삶의 냄새가 은은히 풍겨 나올 따름이다.하지만 `님아!`에는 치명적인 매력이 담겨 있다. 그것은 부부의 상호존중과 이해와 배려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그분들은 서로 말을 높인다. 자신이 성치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천진난만한 동심을 오롯하게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 생일날 말다툼을 벌이는 맏딸과 장남을 보면서 그렁그렁한 눈물바람을 보이는 노인 내외의 모습은 이 나라 이 시대 어르신들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처절한 가난의 굴레도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주어진 길을 묵묵하고 꿋꿋하게 살아온 노인들의 의지와 지혜가 대단하다. 먼저 가버린 육남매의 내복을 하나하나 손보는 할머니와 그것을 응시하는 할아버지의 눈길은 가슴 저미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무명으로 이 땅을 살아갔던 우리들의 허다한 부모님들의 자화상일 것이다.우리는 `인터스텔라`의 기막힌 출구모색과 `님아!`의 백년해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 2014년을 보냈다. 이제 갑오년은 가고 을미년이 밝았다. 갑오경장과 갑오농민전쟁의 전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 구한말의 사무친 원한이 을미사변으로, 그 이후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로 이어졌다. 작년의 허다한 정치-경제-외교-문화-군사적 실패를 올해는 되풀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님아!`와 `인터스텔라`가 유익한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