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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애틋함에 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감각에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육신과 영혼이 건조해져서 밋밋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70~80대 노인들의 몸에는 65% 내외의 수분(水分)만 남는다. 신생아 몸의 수분이 90% 이상이란 걸 생각하면 대차(大差)가 난다. 아이들 볼을 살짝 꼬집었다 놓으면 이내 원상(原狀)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나이든 피부는 축 늘어질 뿐. 문제는 우리의 영혼마저 물기를 잃어버려 촉촉한 기운을 상실하기 십상이란 사실이다.지난 5월 어머니 생신잔치에 함께하지 못했다. 무상한 일상의 번다(繁多)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그 사이 모친은 두 번이나 불의의 낙상(傷)을 경험한다. 엉치뼈에 금이 가고, 오른팔이 부러지는 중상이었다. 멀리서 안부전화나 붙들고 있어야 했던 나. 방학이 되어서야 비로소 상경이 가능했다. 민교협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와 묶어서 가까스로 한강을 건넜다. 우심한 가뭄에도 한강은 여전히 의연했고 융융(隆隆)한 흐름이었다.왼손으로 수저와 포크를 쓰는, 늙으신 어머니는 쓸쓸해 보인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둘째 아들로 행복한 얼굴이다. 연락이 닿지 않던 큰손자가 어느 사품엔가 바람처럼 나타난 덕에 아연(俄然) 활기가 돌았다. 아우와 나누는 소주 한 잔에도 정감이 넘치고. 4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지근거리(至近距離)의 어머니와 형제들. 그 무슨 대단하고 거룩한 일을 한답시고 관계의 이완에 눈을 감는단 말인가. 때마침 서울에도 비가 내린다.하기야 태양처럼 뜨거웠던 시절, 나는 추석과 설 명절 때에도 학교에 나가곤 했다. 턱없이 부족한 공부와 자책(自責)의 강박(强迫)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 그런 나날들이 속절없이 스러지고 아버지는 불귀(不歸)의 객이 되셨다. 세상 버리시기 전에 4~5차례 가족여행을 함께 하였기에 아쉬움을 조금 덜긴 했지만.지금도 기억하는 장면 하나. 온가족이 정동진 해수욕장에 갔는데, 아버지가 매우 무료(無聊)해 보였다. “회를 좀 드시겠어요?” 아버지가 반색(斑色)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애를 태우고 `등명락가사`에 들렀다가 작은 포구에 들렀다. 소주를 앞에 놓고 아버지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이가 성치 못했으나 아버지 얼굴은 푸근했고 볼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회를 드신 기억이 오늘도 삼삼하다.어쩌면 그런 장면 하나로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효와 불효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말이다. 그 후로도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야 나는 알았다. 그분들에게 소용 닿는 것은 자식들의 크고 빛나는 명성이나 물적 풍요가 아니라는 것을. 함께 나누는 시간과 공간의 따사로움과 거기서 오가는 대화와 질박한 음식 같은 소소한 것임을. 그럼에도 그마저 순순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은 비감(悲感)한 노릇이다.소파에서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채 잠든 모친은 아주 작고 여렸다. 노년에 동행하는 기력의 쇠진(衰盡)과 자신감의 상실이 모친에게도 찾아오는 듯하다.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불멸하는 인간 혹은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버린 자연과학과 기술발전의 영역이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상을 어떻게 재단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공간에 우리는 있다.영원히 사는 인간은 두렵다. 그들은 올림포스 12신처럼 전지전능할 것이고, 지루해진 삶의 출구모색을 위한 자극(刺戟)을 찾아 헤맬 것이다. 최소한도의 애틋함과 아련함, 지나버린 날들의 회한(悔恨)과 쓸쓸함도 없이 지금과 여기에 탐닉(耽溺)하리라. 그리하여 인간의 육신은 탄력이 넘칠 테지만, 영혼과 정신은 아주 건조해져서 종당에는 `터미네이터`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짧은 서울 체류기간에 불쑥 찾아든 우울한 감상(感傷)이다.

2017-06-30

죽음에 대한 예의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시골에 살다보면 크고 작은 죽음과 대면하는 일이 잦다. 도회지에서는 새나 고양이, 쥐나 뱀의 사체를 마주할 일이 흔치 않다. 자연사나 농약으로 죽어가는 생명들이 더러 눈에 밟힌다. 안타까운 일은 달리던 자동차에 치여 죽는 `노상객사`다. 자연에서 낭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까마귀와 까치 같은 청소 동물들의 한바탕 난리굿 판이 백주대로에서 벌어지기도 하니까. 며칠 전 아침나절 초목에 물을 주다가 대문 밖을 보아하니 참새가 버둥거리고 있다. 땅바닥에 모로 누운 채 날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물 주던 손 멈추고 사발에 물 받쳐 들고 참새에게 다가간다.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참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부리를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혹시 물을 먹을까, 하여 부리에 대주었으나, 그럴 기력조차 쇠한 듯하다. 날카롭고 가느다란 발톱 달린 두 발은 이미 경직이 시작되고 있는 모양새.한참을 쭈그리고 앉았다가 녀석을 감나무 그늘 아래로 옮겨준다. 가는 길이나마 길고양이나 쥐의 양식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큼지막한 감이파리 위에 눕힌 녀석의 몸뚱어리가 더욱 작아만 보인다. `그래, 먼 길 편히 가렴!` 속으로 되뇌면서 작별을 고한다. 오후 두어 시 무렵 녀석의 형편이 궁금하여 확인해보니 영면한 뒤였다. 어찌어찌 이 땅에서 만난 미물의 최후를 동행한 나는 잠시나마 죽음을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병사에서 `외인사(外因死)`로 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이튿날인 6월 16일 `경찰개혁발족식`에서 경찰청장은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한다. 전임정권 아래서는 그토록 `병사(病死)`를 강조하고,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사과도 미루더니 권력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백남기 농민의 맏딸 백도라지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청장과 경찰청을 비판하였다.살인진압 인정하라, 그것을 주동하고 가담한 경찰관 7인을 기소하라, 살인적인 시위진압과 직사살수(直射撒水)로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라, 향후 시위집회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문화하라는 등의 내용이 회견문에 포함되었다. 사건발생 1년 7개월 만에 느닷없이 원격사과를 강행한 경찰청장의 저의(底意)는 무엇이고, 그런 자세가 합당하기나 한 것인지도 동시에 묻고 있었다.자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야하는 정부기관이 경찰청 아닌가. 그런 곳에서 시위대를 보호하기는커녕 직사살수로 고령(高齡)의 백남기 농민을 살해한 것은 이 나라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권력의 대표기관 경찰청과 검찰청이 국민을 적으로 삼아 행동하고 권력의 노예로 전락한 부끄러운 사건이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서울대병원의 사인(死因) 판단 역시 21세기 광명천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작태다.참새를 살려볼 요량으로 대문 밖에 나섰을 때 주변에서 요란스레 참새들이 울고 있었다. 어린 것이 뻐드러져 땅위에 구르고 있는 참변에 속수무책인 그들이었다. 그러하되 녀석들은 동료애를 발휘하여 자리를 뜨지 않고, 최후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참, 너희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녀석을 감나무 그늘 아래로 옮겨갈 때도 참새들은 동행하였다. 마지막 시점까지 죽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미물들이라니?!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려면, 민초들이 주인대접을 받아야 한다. 선거철에만 주인대접 할 것이 아니라, 민주정권이 들어서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척하는 공권력이 아니라, 평시에도 시위 현장에서도 국민을 예로써 대하는 법도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이른바 `우파`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 `국격`을 상향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닐까?!

2017-06-23

정당정치의 부활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지난 5월 9일 대선이후 적폐청산과 조각(組閣)으로 분주한 문재인 정부 얘기만이 아니다. 영국 보수당은 총선결과 하원의석 12석을 상실하여 메이 총리 책임론과 `하드 브렉시트` 차질이 불가피하다. 프랑스에서는 신임 대통령 마크롱이 이끄는 신생정당 `앙마르슈`가 사회당과 자유당, 국민전선 등을 압도하고 약진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트럼프의 향후행보 역시 세계의 관심사다. 21세기 들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1980년대 중반 소련을 필두로 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지어 무너져갔다. 사회주의 장정 70년이 허무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미국의 단일패권이 확립됐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유럽연합 출범과 중국의 굴기가 세계정세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한다. 푸틴의 러시아도 10년의 인고(忍苦) 끝에 재기를 향한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이런 인식을 전제하고 보면 우리는 1987년 수백만 시민이 떨치고 일어나 이른바 `87체제`를 만들어냈다. `6월 항쟁`으로 명명된 봉기에서 시민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쟁취”를 요구했다. 6월 10일, 6월 18일, 6월 26일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변혁의 선봉에 서서 시대의 조류를 선도했다.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간 6월 항쟁이었으나, 그 결과는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이 참담했다.그리고 30년, 한 세대가 흐른 지난 3월 10일 우리는 다시 승리한다. 20차례에 걸친 촛불시위로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대통령과 하수인들을 권좌에서 쫓아낸 것이다. 2016~17년의 투쟁과 승리의 주역은 이번에도 시민이었다. 연인원 1천685만에 달하는 이 나라의 민초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과 신질서를 외쳤다. `87체제` 당시처럼 이번에도 정당은 시야에 없었다.한바탕 일장활극이 끝나서야 들이닥치는 영화의 경찰 패거리처럼 광장의 승리가 확정된 후에 정당은 슬며시 나타난다. 전리품을 챙길 시각임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87체제` 성립을 위해 산화해간 민주영령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었던 정당과 정치가들의 면면이 어제처럼 또렷하다. 그때 거리를 누볐던 청춘의 아들딸들이 이번에 쟁취한 승리를 헛되이 날려 보내서는 아니 될 일이다.그것의 출발을 나는 정당정치의 부활에서 찾는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행각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소선구제와 지역정서에 기대어 혈연, 지연, 학연으로 권력을 지탱해온 자들. 토호세력의 후예로 가문과 연줄과 돈으로 권력을 장악해 개인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에 헌신해왔던 자들. 그자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무관심과 염증이 청년들을 `헬조선`으로 몰고 가지 않았는가!정당은 행정부와 의회권력을 장악해 그들이 추구하는 정강과 정책을 실현하려는 집단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일반성에 기초한 정당이 존재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부패하고 타락한 언론과 결탁하여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극대화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해온 자들의 집단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다. 정당정치의 복원을 새삼 주장하는 것은. 정치와 정책과 정당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증폭시키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시민들이 차려준 잔칫상에서 흥청댈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정책과 인사(人事)로 시민들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할 책무가 정당에게 있다. 정당을 위한 시민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정당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젊고 유능하며 야심만만한 신진기예가 정당에 참여하여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최소 한 세대는 유지할 정도로 세력을 키워 나라와 민족을 위한 대도(大道)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2017-06-16

익숙한 것과 작별하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길들인다는 말은 `어린 왕자`에서 자주 회자된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고, 관계를 맺는 것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이며, 그것은 책임으로 귀착된다. 길들임은 책임지는 행위가 된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대상을 향한 모든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인 행위의 종착점은 책임이다. 한국 사회에서 책임의 최종 탄착지점은 언제나 가문이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는 조국과 민족 역시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다.1907년 13도 연합의병 총대장 이인영의 경우가 그러하다. 국권회복을 위해 한양으로 진군하여 일군과 교전하다 패퇴하여 전열을 수습하던 그는 1908년 1월 28일 부친상을 당한다. 이인영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허위 군사장에게 군무를 위탁하고 문경으로 향한다. 삼년상을 치르고 나서 의병에 합세하겠다고 다짐하면서.우리는 그 결과를 안다. 이인영은 1909년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그해 9월 20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다.누란지위(卵之危)의 화급한 상황을 보고도 삼년상의 효를 다하고자 했던 이인영. 일본군은 조선의 연합의병 총대장의 그런 행위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국가 혹은 국가주의를 위해 몸을 버린 일본의 근대 지식인들은 부지기수다. 그것은 참혹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대동아전쟁과 가미가제 특공대 같은 본보기가 가능하다. 여기서 내가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가문의 논리와 국가의 논리가 야기하는 지향점의 확연한 차이다.우리에게도 예외는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백의종군(白衣從軍)했던 이순신은 모친의 부음을 당했으나, 끝내 예를 다하지 못한다. 암군(暗君) 선조로 인해 갖은 고초를 겪었으나 이순신은 자식의 도리보다 국가의 위기극복을 첫머리에 두었다. 1598년 11월 19일 후퇴하는 왜군을 좇아 노량해전에 임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전선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무엇인가? 이순신과 이인영의 근본적인 차이는.가문의 이해와 국가의 이해가 충돌할 경우 `최종 선택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효와 충이 정면충돌할 경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 왕과 양반이 권력을 반분하여 성립한 조선왕조. 쇼군을 권력의 정점으로 하여 이루어진 일본. 일본은 페리 제독에게 1854년 강제로 개항당한 이후 1868년 명치유신을 단행한다. 존왕양이를 앞세워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면서 근대화에 일로매진한다. 쇼군의 자리를 국왕이 대신한 형국이었다.국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집행하지 못했던 조선은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도 양반세력을 척결하지 못한다. 왕과 양반의 세력분점의 결과 가문을 중시하는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효는 강화일로(强化一路)를 걸었다. 그와 같은 사정이 여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이인영의 삼년상과 결부된 일이었으리라. 광복 이후 극도로 강화된 국가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면 가문의 영광은 상당히 낯설다. 하지만 그것의 연면 부절한 뿌리는 오늘에도 빛을 발한다.4대강 수질악화를 개선하려고 정부는 얼마 전부터 수문을 개방했다. 이른바 4대강사업이 야기한 `녹조라테` 현상을 둘러싼 책임논쟁이 한창이다. 몇 푼의 돈과 자리를 위해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를 펼친 학자들과 교수들의 책임을 묻는 견해가 있다. 우리의 강역과 역사는 함부로 훼손해서는 아니 된다. 유구하게 흘러온 물줄기를 바꾸고, 거기 시멘트 콘크리트를 들이부을 궁리를 하고, 그런 야만에 논리적인 근거를 댄 자들은 책임져야 한다.지식인이 길들이고 관계를 맺고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은 아내나 자식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자연과 역사를 파괴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언제까지 가문의 영광을 떠들고 다닐 것인가! 이젠 익숙한 것과 작별할 때다.

2017-06-09

바둑과 알파고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중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을까 한다. 바둑을 처음 접한 기억은. 흑백의 돌을 갈라 한 번씩 주고받기로 이뤄지는 반상(盤床)의 변화무쌍함을 경험한 아득함은 그 무렵이었다. 외숙의 손놀림은 경쾌했으며, 자신감 넘치는 콧소리는 흥겨웠다. 외숙에게 여섯 점으로 시작한 바둑은 치수를 좁혀 호선(互先)으로 전환하였다. 장구한 세월의 인내와 집념의 결과였다. 그 이후에도 이모부에게 무너졌던 기억이 여적 새롭다. 먹여치기와 축, 장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하늘을 찌르고 남았을 터. 하지만 하늘은 내게 무던히도 끈질긴 호기심을 부여했다. 지고 또 져도 바둑을 향한 손끝의 맵시만은 흐트러짐이 없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강산이 몇 차례 바뀌고 난 후에 비로소 3급 정도의 기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기고 지는 승부에 연연했다면 바둑은 오래전에 나와 작별했을 것이다.인공지능 딥 블루가 체스의 1인자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한 것이 20년 전인 1997년 일이었다. 그 후 인공지능은 인류최고의 체스기사와 대결하여 불패의 기록을 남겨왔다. 남은 것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이었다. 가로 세로 19줄의 바둑판이 가지는 무궁무진한 변화 가능성과 패의 활용이라는 변수를 들어 인공지능의 `넘사벽`으로 인식돼 온 바둑. 신화는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1년 후 인류 최고수 커제가 알파고에게 일방적으로 무너지는 참사가 연출됐다. 이길 만큼만 남기고 적당하게 물러서고, 상대방의 무리수를 가차없이 응징하며, 두텁고 단단하게 판을 짜나가는 비상한 솜씨를 선보인 알파고. 딥 블루가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한 1997년에 태어난 커제 9단이 비통한 눈물로 마지막 판을 정리한 2017년 5월 27일 알파고는 산뜻하게 은퇴를 선언하고 퇴장했다.중국에서 시작하여 반도(半島)에서 잡기(雜技)로 인식된 바둑. 일본에서 `기도(棋道)`로 승화되어, 지난 세기 말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화사하게 피어난 바둑. 21세기 바둑은 중국이 스포츠로 규정함에 따라 `전문기사`라는 말 대신 `선수`라는 호칭이 일반화되고, 흑백의 덤도 중국이 선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때 세계최강을 자부하던 한국바둑은 대륙의 바람에 밀려 호시탐탐 중원의 재건을 꿈꾸는 지경이다.알파고와 이세돌, 알파고와 커제의 반상대결을 보면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파고(波高)를 새삼 반추한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는 20~30년 후의 세계가 어찌 전개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년 3월 이후에도 한국은 외부의 손길과 지시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세기의 대국이 다섯 번이나 전개됐음에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해답의 모색을 외부에 의지하려는 자세를 비판한 국내 학자도 있었다.돌이켜보건대 우리는 지난 200년 이상 지속된 과학기술혁명에서 언제나 구경꾼이었다. 그들이 선방을 치고 나가면 근근이 거리를 좁히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순조(1800~1834 재위) 때 유씨 부인이 남긴 `조침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200년 전 조선은 바늘 하나도 온전히 만들지 못했다는 얘기 아닌가?! 하기야 연암이 안의마을에 물레방아를 조선 최초로 설치한 시기가 1792년인데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그럼에도 한 가지만 짚는다. 21세기 세계는 나와 남할 것 없이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각자의 능력을 선뵈는 시공간이다. 과거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기획하고 담대하게 설계하는 작업은 한층 값지다. 젊고 유능하며 패기만만한 인재들의 강고한 도전과 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2017-06-02

현대정치의 탕평인사

▲ 강희룡 서예가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은나라의 중신이었던 기자를 찾아가 백성을 안정시키는 통치방략에 대해 자문을 구했을 때, 기자는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아주 상세한 지략을 내놓는다. 이 홍범조는 상서(尙書) 즉 서경에 실려 있으며 제5조인 황극설에 `무편무당왕도탕탕 무당무편왕도평평`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은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통치의 길은 평탄하다`는 뜻으로 `탕평`을 설명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숙종 9년 박세채(1631~1695)가 처음 탕평이라는 용어를 제시했으며 신임옥사의 와중에서 왕위에 올라 당쟁의 폐단을 뼈저리게 겪은 영조가 1724년 즉위하자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의 필요를 역설하는 교서를 내려 탕평책의 의지를 밝혔다. 영조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되어 극한대립으로 인해 탕평책으로 붕당의 갈등을 완화해 안정적인 정국을 이끌어 가고자 했다.임성주(1711~1788)의 녹문집에 `송문흠에게 보낸 편지`에 수록된 내용은 당시 영조의 탕평을 비판하는 상소에 넣을 조목으로 작성된 글이다. `근래 탕평 두 글자는 바로 저잣거리의 노랫가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모는 아이, 말 끄는 군졸이라도 말이 조금이라도 애매하여 이쪽저쪽 다 옳다 하거나, 둘 다 그르다고 하면 곧장 탕평이라고 지목해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옷에도, 띠에도, 부채에도 탕평이 있으니 지극히 우매한 백성의 소견이 참으로 정곡을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저절로 하나의 바른 공론(公論)이 생긴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차마 어떻게 이 삼백 년 종묘사직을 웃음거리로 만드신단 말입니까.`(하략)탕평채라는 음식이 있다. 각색의 묵을 섞어서 버무린 것으로 속설에 의하면 영조의 탕평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에 탕평채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탕평옷, 탕평띠, 탕평갓, 심지어는 탕평부채라는 말도 있었다. 한눈에 알 수 있듯이 탕평을 조롱하는 말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것은 탕평이며 그래서 조금만 애매모호하면 모조리 가져다 탕평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다.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탕평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애들까지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왕이 국시로 내놓은 것을 신료들이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저잣거리 애들까지 조롱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영조의 탕평정국 말기에는 당쟁의 폐단을 확대시키기도 했던 척신정치가 부활했고, 척신들의 이해관계나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왕위계승권자의 위치도 함께 흔들리는 등의 폐해가 다시 나타났으나 이 점을 군주인 정조는 깊게 인식하고 그러한 정국운영은 사대부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이기도 한 `세도` 전체를 타락시켰다고 비판하였다. 영조는 완론탕평으로 붕당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문제를 완만하게 해결해보려고 한 반면, 정조는 준론탕평으로 붕당을 인정하고 시비를 가리는 탕평책을 펼쳤던 것이다.주자는 논어 `위정편` 첫머리에서 정(政)이란 바르다(正)는 말로, 바르지 않는 것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절충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며 오직 판단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정치 자체가 시비를 가르는 행위이다 보니 분파의 형성은 필연적이다. 전통시대 정치행위란 시비(是非), 정사(正邪), 충역(忠逆)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그 자체로 한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가진 우리가 타협과 절충을 중요시 않고 끝없이 시비에 빠져드는 모습이 이해도 된다. 오늘날 민주정치의 관료임명에도 탕평인사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여야가 서로를 존중하고 소통한다면 국가의 발전과 국민 삶의 질은 나아지고 민주주의도 더욱 성숙해지리라 본다.

2017-05-26

기자와 언론의 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정권이 바뀐 지 불과 열흘. 보수 일간지를 비롯한 종편 방송들의 논조(調)가 급변했다. 문재인 후보자 비난과 비판 일색(一色)이었던 언론들이 찬양 일변도로 변모한 것이다. 외려 진보를 표방하는 매체가 일정정도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인물 혹은 정책을 비판하는 모양새다. 이런 기조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재벌편향 부자 언론사들은 무언인가 큰 것 한 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길지 않은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간이 흘러간다.언론의 중핵은 기자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잡지든 거기 종사하는 기자들의 도덕성과 전문성에 따라 언론은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선악과 미추,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기본적인 자질에서 이미 도덕성은 발현된다. 진선미 삼위일체를 추구했던 고전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에 최대한 접근하려는 자세는 필수적이다. 기자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정파적 편향성 내지 미래지향과 결부한 판단과 기사작성은 언론매체 소비자들의 불신과 미혹(迷惑)을 초래한다.삼성 눈치 보느라 삼성 반도체 백혈병 환자들에 대한 기사를 찾기 어렵다. 한국 최대의 광고주 삼성 앞에 언론사들이 꼬리를 내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 이런 비아냥거림이 일과성(一過性)이 아니라 천석고황처럼 착근한 배경에는 한국 언론사들의 물적 욕망이 자리한다.2014년 `세월호 참사` 시 학생들을 살리려다 살신성인한 김초원, 이지혜 두 기간제 교사가 지난 스승의 날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대통령이 고인의 부모에게 전화해 그이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언론사들은 앞장서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지극히 당연한 순직인정이 지난 3년 동안 전혀 이뤄지지 않은 배경이 궁금하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 기자의 도덕성이다. 교육부를 비롯한 행정부서의 비인간적인 처사를 포착해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며 인본적인 관점으로 그것을 비판하는 기사를 올렸다면?! 돌이켜보면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실종된 것이 도덕성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직결된다면 그까짓 도덕이나 윤리 따위는 개한테나 주라는 풍조(風潮)가 만연하다. 지난 보수정권 10년 동안 고위직에 거명된 부도덕하고 부패한 그 숱한 인사들 면면을 떠올려보시라.고위직 천거의 가장 기본적인 위장전입은 물론 아파트와 땅 투기, 탈세와 부도덕한 병역면제가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분노와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갔는가?! 그런데 종편과 보수언론들의 판단과 행각은 어떠했던가?!적절한 선에서 방어막 쳐주고 `좋은 게 좋다는` 논조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이해관계 앞에서 그들이 내동댕이친 도덕성 앞에 우리 어린것들은 치명적으로 감염-중독되고 말았다. 고등학생 56%, 중학생 39%, 초등학생 17%가 10억의 돈이라면 범죄를 저지르고 1년 정도 감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통계가 나왔으니 말이다.전문성은 논외(外)로 하더라도 지식인이자 역사의 증인인 기자들의 도덕성은 그 나라의 소금이자 빛이다. 그들이 한목소리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한다면, 흰 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다 한다면 그 나라는 올바른 길을 갈 것이다. 나는 그것이 기자와 언론의 최소한도라고 생각한다.하나의 사안이나 사건에서 본말을 갈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의롭게 평가하여 잘 읽히는 글로 써내는 일이 기자의 업이다. 글이든 말이든, 기자의 업은 사건의 진실을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그런 과업에 기자 개개인의 사적(私的)인 이해관계와 정파적 판단과 미래의 기대치는 개입할 수 없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대화와 소통을 강조한다니 기대하는 국민들이 적잖다. 이런 판국에 정론(正論)의 길을 걸어야 하는 기자 여러분의 분발을 새삼 촉구한다!

2017-05-19

청산이냐 통합이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최박 스캔들,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으로 성립된 대선이 끝난 것이다. 2016년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가 대한민국의 명운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청계광장에 켜진 2만의 촛불은 그 이후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에서 전국적으로 230만 대중을 불러냈다. 지난 3월 4일 제20차로 막을 내린 촛불집회는 연인원 1천685만을 거리와 광장으로 소환했다.그 많은 국민이 왜 한겨울 추위와 공포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었을까?! 그것은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로 점철된 정권과 부역자들에 대한 분노였다. 광속의 시간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지구촌에서 20세기 독재의 시대로 퇴행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것은 부패 기득권 세력의 악착같은 권력욕과 짬짜미에 대한 심판이었다. 촛불항쟁은 한숨과 탄식, 슬픔과 절망을 넘어서고자 하는 뜨거운 몸부림이었다.한국사회에 만연한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를 청산하고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새 시대를 열어달라는 시민들의 열망이 촛불집회로 드러난 것이다. 촛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취업자와 실업자, 부자와 가난뱅이, 스카이와 지잡대 같은 허다한 이분법이 암세포처럼 작동하는 헬조선을 혁파해달라는 외침이었다.압축된 근대화와 산업화의 모순을 켜켜이 쌓아올린 부패 기득권 정치-관료집단의 행악질을 종결해 달라는 함성이 촛불이었다. 부패와 무능과 타락과 패거리주의는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론, 사학, 종교, 기업, 공무원 사회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간 거대한 암 덩어리다. 그것을 일컬어 `적폐(積弊)`라고 한다. 대통령 후보 문재인이 선거구호로 내걸었던 `적폐청산`은 거기서 발원한 것이다.대통령 선거는 끝났고,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국민통합을 말한다.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며 바람직한 말이다. 하되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적폐청산을 실천하는 방향에서 통합을 말해야 한다. 구시대의 사회악과 암 덩어리와 거악이 산적해 있는데도 그것을 외면한 채 통합을 내세움은 실패를 예정할 따름이다. 적폐 당사자들이 온존하고 그 부역자들이 활개치는 마당에 통합은 조급한 격양가일 수밖에 없다.그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책임을 지고자 할 때만 국민통합은 가능하다. 나와 남편과 아내와 가족만을 위해서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패 기득권 세력이 망쳐놓은 강산을 되살리고, 청년들에게 미래 청사진을 제공하려면 적폐의 근원을 일소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언론개혁, 사학개혁, 재벌개혁, 종교개혁임을 알고 있다. 단 하나라도 온전히 척결하여 미래를 향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용서(容恕)`라는 말이 있다. 지은 죄나 잘못을 벌하지 않고 덮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자말 `서`를 들여다보면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의 결합이 보인다. 나의 마음이 너의 마음과 같기에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죄를 요청하고 무릎 꿇고 반성할 때 비로소 용서가 가능한 법이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까닭은 일본정부가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안부협상은 무효인 것이다.같은 이치로 우리는 1980년 광주항쟁 발포책임자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다. 그자는 한 번도 진심어린 사죄를 한 적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에게 화해와 용서를 선물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관대한 처사였다.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진정한 국민통합과 미래기획은 명확한 적폐청산과 구체적인 실천이 담보될 때에만 가능하다고. 사사로운 인정과 포용은 훗날 견딜 수 없는 적폐의 `쓰나미`가 되어 우리 역사와 후손들에게 크나큰 멍에로 돌아올 것이다.“적폐청산 없는 국민통합은 불가하다!”

2017-05-12

토론의 격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대선이 코앞이라 요즘 화제는 단연 후보자 토론이다. 토론을 잘 하고 못한 사람들이 자주 입길에 오른다. 한국의 대중이 보기에 이번 대선 후보자들은 자질이 다소 부족한 모양이다. 토론에 만족한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떤 이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토론이 대선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대선후보들이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토론은 민주시민의 첫 번째 자질로 꼽힌다. 내가 가진 생각과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 상대방을 수긍(首肯)하도록 인도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주장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주장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능력도 그 못지않게 종요롭다. 거기 필요한 자질은 논리 정연함과 수사학, 그리고 침착함이다. 중세대학의 교양과목에 문법, 수사, 변증이 포함된 데에는 근거가 있는 셈이다.자신의 주장과 사유를 조리(條理)있게 전달하는 것만큼 필요한 행위는 상대방의 주장이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토론은 일방적인 주장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론에는 상대가 전제된다. 일방통행식의 주장이나 생각의 나열은 토론이 아니다. 나와 다른 주장과 생각을 펼치는 상대방의 입장을 경청(傾聽)해야 올바른 대응과 역습의 기회가 찾아온다. 이런 점에서 대선 후보자들이 적잖은 아쉬움을 던져주는 모양이다.토론능력은 정치가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과 수사와 논리를 확보하지 않은 사람은 유능한 정치가가 아니다. 유럽의 정치 지망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토론능력을 훈련받는다. 10대 시절부터 정당에 가입해 청년부 활동을 전개한다. 거기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지방의회나 연방의회 혹은 유럽연합의회에 진출한다. 그것이 정치가가 되는 기본적인 방향이다.한국에서도 국회나 지자체 혹은 국감장에서 토론능력은 돋보이는 자질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사안(事案)을 두고 조목조목 따지고 요모조모 살피는 것이야말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 꼭 소용되는 덕목이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제도와 정당정치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도, 그런 방향으로 젊은이들을 인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토론의 첫걸음은 독서와 사색이다.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 토론에서 우위(優位)에 설 수밖에 없다.정보와 지식이 많다는 것은 사유하는 방식의 다채로움과 다각도를 보장한다.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언어를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육은 초중등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불철주야(不撤晝夜) 외우는 것에 집중한다. 암기한다는 것은 문제의식이나 물음표의 상실에서 출발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다짜고짜 머릿속에 쑤셔 박는 것이다. 그것이 성적을 올리고 교사들에게 예쁨을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남다른 생각이나 행동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금기(禁忌)다. 남들 하는 대로 묻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손가락질과 왕따를 각오하지 않은 담에야 도발적이고 창의적이며 이색적인 생각이나 미래기획은 아예 불가능하다. 이런 판국에 토론은 쓸모 있는 자질과 능력에 속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공무원시험이나 공기업시험을 준비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후보자들에게 토론능력은 언감생심이다.우리는 21세기 첨단의 시대를 살아간다.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언행이 실시간 보도되는 지구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의사전달 능력과 토론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치가들이 원하는 소통의 기본은 언어에 있다. 혹은 명료하게 혹은 화려하게 혹은 단호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의 생명줄이다. 정치 지망생들이여, 토론공부 좀 하시라. 그것은 언제나 당신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므로.하되, 누군가는 말한다. “토론 잘 한다고 정치 잘하는 것도 아닌데, 기대하지 말자고요?!”

2017-04-28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하다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인간은 욕망(慾望) 덩어리다. 욕망은 문자 그대로 어떤 대상을 향한 간절한 소유나 기대를 뜻한다. 갓난아이부터 구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욕망은 도처에 편재한다. 그래서일까?!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 싯다르타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수비뇌고(愁悲惱苦)의 근원을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서 보았다. 윤회라는 업보와 인과율의 출발지점 가운데 첫 번째를 탐욕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되돌려 생각하면 욕망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배고프면 무엇인가 먹어야 하고, 아프면 빨리 낫고 싶고, 고단하면 한숨 자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행위가 전제되지 않는 생존은 불가능하다. 생명 가진 존재로 이생에 태어난 사실 자체가 업보일지도 모른다. 깨달은 자들은 하나 같이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더 이상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 간화선자(看話禪者)들은 오늘도 면벽(面壁)하며 그것을 구하고 있을 게다.어디 인간만이 욕망하는가. 뭍 생명들은 본디 타자를 죽임으로써 목숨을 부지한다. 정교하게 짜인 먹이사슬은 그것을 웅변한다. 남의 생명을 짓밟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존이 담보되는 우주의 이치. 어쩌면 노자가 갈파한 `천지불인(天地不仁)`은 여기서 발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지는 자연으로 환원하여 생각해도 좋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섭리는 `불인`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잔인하고 비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이를테면 요 며칠 대구·경북에 사나운 바람이 모질게 불었다. 크고 작은 초목들에서 허다한 꽃과 풀잎들이 대지로 귀환했다. 생동감 넘치고 강력한 녀석들이야 생명을 부지했지만,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자연은 허약하고 무른 녀석들은 그들의 발생지점으로 되돌린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들어 약자들을 돕고 구제한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이 갈라서는 확연한 지점 가운데 하나다.사회적 약자를 구함은 아름다운 일이며, 자연의 이치를 넘어서는 제민(濟民)이다. 거기에도 욕망이 자리한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돌보고 함께 하고자 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 있을진저! 그러하되 21세기 막장 드라마를 찍는 한국사회는 제폭구민(除暴救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과 너무 멀리 있다.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무장한 무리의 행악질은 끝 간 곳을 모른다.tvN의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피디가 자살했다. 광화문 사거리 40미터 고공 광고탑에서는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으로 거리에 내몰린 6인의 노동자들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목포 신항에서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참사`유가족들의 탄식과 눈물이 흐른다. 이 모든 것의 출발지점은 어디일까?! 돈과 권력을 틀어쥔 재벌과 국가다. 보다 많은 이윤과 돈벌이를 위한 가혹한 착취와 인명경시 풍조를 조장한 기업가 집단과 국가.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는 재상이 되어달라는 초나라 왕의 초청을 간단히 거절한다.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끄는 거북이가 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일컬어 `예미도중(曳尾塗中)`이라 한다. 시대와 권력을 초월해 살았던 지식인 장자는 선택지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무소유를 주장한 법정 스님도 대단한 욕망을 가진 분이다. 무소유를 `소유`하리라는 거대한 욕망. 그것이 한낱 불가능한 바람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한사코 고집했던 법정.고도의 물질문명이 일상화된 21세기에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돼 있다.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처지다. 도저한 선승(禪僧)이나 위대한 천재가 아닌 담에야 우리는 모두 욕망 속에서 살아간다. 차고 넘치는 욕망의 거리와 광장과 지하철에서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해야 하는 불의한 시대를 생각한다. 그러하되 꽃잎 떨어진 자리에 푸르른 매실이 방울방울 매달려 환하게 빛나고 있다.

2017-04-21

`세월호 참사` 3주기에 즈음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정말 환하고 또 환한 봄날이다. 그런데 아직도 한겨울 냉기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와 사망자 가족들이다. 어느덧 3년 세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이들의 생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도 그분들은 원망스런 지상의 삶과 영원히 작별하는 그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봄날을 상기함은 사치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봄이 왔건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은 그이들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기원전 33년 한나라 원제 시절 흉노의 왕 선우 호한야(呼韓邪)에게 시집가야 했던 비운의 왕소군을 기린 당나라 시인 동방규. 그가 남긴 `소군원(昭君怨)`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구나. 허리띠가 자연히 느슨해 진 것은 허리를 위함이 아니었나니.)흉노의 거친 들판에서 중원의 고향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이 보이는 듯하다. 하물며 사랑하는 아들딸과 부모형제를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사야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 지난 70여 년 동안 숱한 한국인이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말았다. 식민지 조선을 경과한 연후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맞이한 해방공간과 정부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생각해 보시라. 그 이후에 발생한 처참한 6·25사변은 또 어떤가.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4·19혁명 시기에 산화(散華)한 영령도 200여 분에 달한다. 5·16 군사쿠데타와 군사독재자 박정희에게 목숨을 잃은 분들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더욱이 1980년 서울의 봄에 이은 광주 민중항쟁에서 민주주의 제단(祭壇)에 숱한 분들의 피가 뿌려졌다. 그리고 나서도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같은 재난이 뒤를 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대형사고의 결정판인지도 모를 일이다.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실종된 국가와 정부를 여실히 목도했다. 그리하여 국민 모두가 절망하고 절규(絶叫)했다. “이것이 나라냐?!” 하는 통곡이 온 나라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뭉친 일군(一群)의 정치 모리배(謀利輩)들과 권력자, 그에 부역한 자들은 `세월호` 유가족을 능멸하고 국민을 욕보이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분들을 위로한 이는 벽안(碧眼)의 이방인 프란체스코 교황이었다.광화문 광장에서 유민 아빠를 안아주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교황의 모습은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의 자세와 너무도 달랐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교황이 이 나라의 한 많고 설움 많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손을 잡아주고 다독이는 정경은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권력의 아름다운 본질과 쓰임새를 보았다. 권력은 그리하라고 부여된 것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칼춤을 추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해마다 그날이 오면 나는 조기(弔旗)를 내건다. 그날 스러져간 영령들을 위로하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오래 생각한다. 국가와 권력과 정치 지도자의 존립근거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이다. 이 나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허다한 민초들의 고단한 삶과 미래를 조망한다. 여기서 나고 자라나는 우리 어린것들의 앞날이 어떨 것인지 조용히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아아, 저 빛나는 영혼들을 축복하소서!`만물이 소생하고 약동하는 생장(生長)의 계절 봄에 부쩍 절망과 탄식으로 괴로운 분들을 하루라도 위로했으면 한다. 아무런 죄도 없이 창졸간(倉卒間)에 유명을 달리한 그분들의 넋을 기리자는 얘기다. 따사롭고 화사한 봄날에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을 기억하며 추모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짐했으면 한다. 또 다른 `세월호 참사`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의 확인을 우리 모두의 염원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7-04-14

닭을 위한 변명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인간은 대략 9천년 전부터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와 말, 염소와 양, 돼지와 닭이 대상이었다. 말의 기동성(機動性)이 유용한 도구임을 확인한 인간은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일상화한다. 그때 이후 기동성이 떨어지는 닭과 돼지는 유목민들의 삶에서 멀어진다. 오늘날에도 돼지와 닭은 정착생활을 영위하는 농촌지역에서 기르는 가축이다. 툰드라 지역에서는 이들 가축 대신 추위에 강한 순록(馴鹿)을 기르며 고단한 삶을 인도한다.유목민들은 가축에서 나오는 가죽과 고기를 가지고 정착민들이 거주하는 오아시스 같은 농경지역으로 간다. 거기서 보리와 수수 같은 곡물을 받고 고기와 가죽을 넘겼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교환이 시작된 것이다. 농경민과 유목민을 연결하면서 상품교역을 직업으로 삼는 상인이 출현한다. 고대(古代)의 상인들이 이동수단으로 삼은 것은 말과 낙타였다. 이집트와 서남아시아에서는 단봉낙타가, 중앙아시아에서는 쌍봉낙타가 쓰였다고 전한다.이런 삶의 양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목에 기대 일정지역을 순회하면서 살아가는 방랑자들이 있다는 얘기다. 19세기 이후 인간은 민족과 국가, 국경 같은 개념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적잖은 수의 사람들은 수천 년 이상 국경과 국가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 얼마 전에 타계한 예브게니 예프투센코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그가 시베리아에서 만난 노인은 레닌도 혁명도 스탈린도 전쟁도 모른 채 살았다고 한다.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어제오늘이 낯설게 대면하는 광속의 시간대에 나는 가능하면 천천히 살아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속주행을 즐기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되, 울안에 지어놓은 닭장에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네 마리를 넣었다. 모두 일년생 동갑(同甲)이다. 수탉만 흰색이고 나머지는 황갈색이다. 닭을 키우면서 몇 가지 특성을 알게 되었다. 닭장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끝내 알지 못했을 닭의 특성이라니?!암탉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는 듯하다. 수탉 옆에서 활보하면서 주어진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최고권위의 암탉이 있다. 그것은 성질 머리가 사나워 다른 암탉들을 무시로 공격한다. 뾰족하고 강력한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대고 뒷목을 물어뜯는다. 암탉의 지극한 공격성을 본 것은 처음 일이다. 조선시대에 베개머리 송사(訟事)로 유명했다던 궁중 여인들의 권력을 향한 암투가 연상되는 장면이 아침저녁으로 펼쳐지곤 한다.서열 2위의 암탉도 나머지 두 마리 암탉을 지속적으로 공격한다. 모이를 쪼아 먹다가도 물을 먹다가도 느닷없이 공격성을 발휘한다. 서열 3위의 닭도 제가 받은 상처와 슬픔을 마지막 서열의 암탉에게 남김없이 쏟아 붓는다. 수탉을 제외한 네 마리 암탉은 일정한 위계질서에 따라 공격하고 공격을 감내(堪耐)한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당하는 암탉이 최소한도의 저항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묵묵히 참거나 멀찌감치 달아나는 게 고작이다.수탉은 그런 암탉들의 싸움판을 바라볼 뿐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 유정란을 생산하기 위한 교미에 분망할 따름이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공통의 습성은 온종일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든 물이든 땅속의 벌레든 풀이든 끝없이 이곳저곳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배설의 쾌감을 거리낌 없이 발산한다. 집안의 청결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다. 먹이통과 물통에도 배변하는 무모함과 객기를 드러낸다. 닭은 생각보다 청결하지 않다.반면에 녀석들은 근면하게 알을 낳는다. 가장 여린 닭만 2~3일에 흰색에 가까운 알을 낳고, 나마저 닭은 황갈색 알을 날마다 생산한다. 수탉도 아침의 여명이 닥칠 무렵이면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한다. 이래저래 울안에는 닭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하고 정겹다. 정물화(靜物畵)가 부분적인 변화를 얻은 셈이다. 내일이면 배꽃이 피어날 모양이다.

2017-04-07

21세기 중국은 대국인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사드배치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우울하다. 성능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가격이 헐한 것도 아니며, 한국을 위한 것도 아닌 사드. 미일동맹의 종속변수로 작동하는 한미관계를 위한 사드배치. 어떤 정치적 정당성도 없는 대행정부 관계자들의 매판적 판단에 따른 사드. 사드배치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새우처럼 등이 휘어버린 한국. 주권국가의 체면이 만신창이로 구겨지고 있는 2017년 봄날의 꿀꿀한 정치-외교의 풍경.668년 평양성 함락이후 1876년 병자수호조약까지 1천200년 중국만 바라보고 살아온 반도국가. 그 후 1910년 경술국치까지 이 나라 저 나라 눈칫밥 먹으며 연명한 조선과 대한제국. 1945년까지 일제의 서슬에 고통 받은 식민지조선과 백성들. 그리고 해방이후 지금까지 `양키 아메리카`의 은혜에 감읍(感泣)하며 견뎌온 70년 세월의 한국 현대사. 오죽하면 탄핵반대 집회에 태극기보다 훨씬 큰 성조기가 등장했겠는가. 검질긴 사대근성 아닌가?!미 국방부가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것처럼 사드는 무소불위의 무기체계가 아니다. 아직도 완결되지 못한 채 진화를 거듭하는 신무기일 따름이다. 어찌 보면 `대기만성`이란 도덕경 구절처럼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을 국민이나 국회의 동의 없이 마구잡이로 설치하려는 당국자들의 저의(底意)가 괘씸하다. 졸렬하게 처리한 위안부 협상도 모자라 사드문제로 국민의 심기를 사납게 자극하고 찔러대는 저자들의 의도는 무엇일까?!사드와 위안부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태도는 사뭇 불쾌하다. 사드문제는 중국과 위안부문제는 일본과 대화하면서 당사국인 한국에게는 일방통보다. 잠자코 있으라는 투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라는 고압적인 자세다. 무슨 말 못할 빌미라도 잡혔는지, 한국정부는 찍소리도 못한 채 미국입장을 대변하고 있을 뿐. 햐, 이것은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배달민족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대는 처사(處事)다.중국 역시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그것도 아주 쩨쩨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의 지은이 마틴 자크가 통찰하는 대국(大國)의 결정체 중국은 부재한다. 조만간 미국과 함께 세계를 둘로 가를 패권국가로 성장하리라는 중국. 그런 중국이 요즘 보여주는 속 좁은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그 정도가 우심하여 대국의 당당함과 넉넉함이 사라져버렸다.주지하는 것처럼 중국은 단기간에 몇몇 질적 변화를 경험했다. 문화혁명 이후 권좌에 오른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1980년대를 풍미한다. 인민들의 배만 부르게 해준다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괘념치 않겠다는 배포가 내포된 성구(成句)다. 1980년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줄이 무너질 때에도 중국은 버텨낸다. 그들은 은인자중하면서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심정으로 인내한다.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 중국.21세기 초 중국은 `화평굴기(和平屈起)`를 주창한다. 서로 다투지 말고 평화롭게 상호번영을 꾀하자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 조심하라는 어조가 담긴 말이다. 그것의 결정체가 2008년 8월 8일 북경올림픽이다. `영웅`(2002)에서 진시황의 입장에 섰던 장예모 감독이 총연출을 담당한 북경올림픽 개막식은 압권이었다. 이제 중국은 `화평굴기`와 `대국굴기`를 넘어서 `돌돌핍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그러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과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세계를 호령하는 중국은 보이지 않는다. 사드이후 중국은 철부지 어린애처럼 행동한다. `화하(華夏)`가 세상의 중심이라 자부했던 선조들의 기세등등한 조공외교가 무너지고 있다. 중국의 옹졸한 대한(對韓) 외교정책을 보면 실용주의 노선에 내재한 근본적인 결함이 보인다. 역사적인 인과율과 필연성이 결석한 이해관계의 관철에서 `중국몽(中國夢)`의 퇴락(頹落)을 독서함은 나만의 생각인지 궁금하다.

2017-03-31

변화하는 고담시티 대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대구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예전에는 능금, 미인, 무더위. 요즘엔 완고함, 박정희 부녀, 수구보수.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구는 `고담시티`로 불린다.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거악(巨惡)의 소굴이자 본산. 청산해야 할 적폐의 본고장 고담시티. 일반화가 야기하는 필연적인 오류에도 일말(一抹)의 진실은 있다. 우직할 정도의 고집스러움과 제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 대구에는 있다. 혹자는 `대구정서`라고도 한다.경북대에 부임한 지 25년 지나는 시점에 대구를 생각한다. 286컴퓨터를 쓰던 1992년 몸담은 대학생활이 한 세대에 이르렀다. 열혈청년이 초로에 접어든 형국이니,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공중전화가 삐삐로, 묵직한 이동통신 단말기를 거쳐 무선전화기로,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변신을 거듭했던 광속의 시간대. 세로쓰기와 한자를 고집하던 신문들이 가로쓰기로 전환했던 시기. 문민정부를 거쳐 평화적 정권교체와 `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있었던 격동의 전환기.25년 동안 내가 피부로 느끼는 대구의 유일한 변화는 최고기온이다. 1994년 여름 3주 내내 지속된 열대야와 39.4℃까지 치솟은 무더위를 기억한다. 아스팔트마저 녹아내렸던 전설의 흑역사! `응답하라 1994`에 그런 모습이 나왔는지는 모르되, 역대급 무더위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한낱 추억이 되고 말았다. 아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도시 대구.25년 세월에서 거대도시 대구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 내 탓이다. 둔감하거나 익숙해졌거나, 그것이 원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대구 시민들의 생래적인 완악함이 까닭일 수도 있겠다. 경북대 인문대학은 `인문학기획위원회`와 `인문학술원`을 발족시킨 이래 칠곡군과 부산 기장군 같은 소규모 지자체와 협업해왔다. 칠곡군은 인구 13만, 기장군은 인구 16만 정도의 아담한 규모다. 대구는 250만 아닌가.칠곡군에 구상문학관이 개관한 것은 2002년 10월 4일. 대구 시민들 가운데 구상 시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 시인이 1953년부터 20여 년 왜관에 정착해 문필활동을 전개했다 하여 군(郡) 당국이 나서서 지은 구상문학관. 그로부터 12년 세월이 지나 `대구문학관`이 개관한다. 대구의 자랑인 현진건, 이상화, 이장희 세 분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아마 광역시 포함해서 지자체 가운데 가장 늦은 행보 아닌가 한다. (수필문학가 한세광 선생을 기리는 `흑구문학관`이 인구 52만의 포항시에 개관한 것은 지난 2012년 일이었다.)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한 이육사 시인을 기리는 `이육사 작은 문학관`도 작년에 개관했지만 대구시는 행·재정적인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구행정은 지나칠 정도로 공무원과 정치가 중심으로 진행돼온 감이 크다.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 앞에 여태 지하철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그런 대구시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21일 나는 `대구시민대학` 강연회에서 `대구와 문학`이란 제목으로 300여 시민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대구와 연관된 시인과 소설가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자리를 빼곡하게 메운 시민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크고 작은 지자체에서 오래 전부터 베풀었던 인문학강연이 고담시티 대구에도 상륙한 것이다. 실로 놀라운 변화다.이런 유쾌한 변화가 몰고올 대구의 미래를 생각한다. 자연과학과 공학이 눈부시게 현현하여 변화속도마저 가늠하기 어려운 4차 산업혁명시기. 그럼에도 우리의 본령을 지탱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기술과 공학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창조와 생을 인도하는 인문학. 생명 가진 것들의 생장과 변화와 소멸을 응시하고 본원적인 내면을 성찰하는 인문학. 이제야 당도한 대구의 작은 변화를 보면서 대구의 도약과 웅비를 기원한다.

2017-03-24

불륜은 있는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혜원(蕙園) 신윤복의 그림 가운데 `월하정인(月下情人)`이 있다. 선인(先人)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이 아니라, 정인이라 일컬었다. 애인은 일본에서 들어온 왜말이다. `월하정인`은 정분(情分)이 난 남녀가 달 아래 어디론가 행보하기 직전의 정경을 담은 그림이다.요즘 그림에서 일상화된 원근법과 풍경묘사와 사뭇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담장과 달라붙은 듯 보이는 후원. 그곳에서 녹음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 부분월식으로 아래쪽이 보이지 않고 위쪽만 동그마니 드러난 달. 그런 배경을 두고 등잔을 든 사내가 은근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괴춤에서 무엇인가 꺼내고 있다. 볼이 살짝 물든 여인네는 별로 주저하지 않고 사내의 제안을 선선히 받아들이는 품이다.`월하정인`의 `화제(畵題)`는 “월심심야삼경 양인심사양인지(月深深夜三更 兩人心思兩人知)”. 현대어로 번역하면 “달밤 깊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정도다. 화가는 그들의 관계가 사뭇 은밀하다는 것만을 그려낼 뿐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림을 완상(玩賞)하는 사람이 나름대로 해석할 여지를 충분히 베푼 셈이다. 여염집 아낙이 처녀인지 과수댁인지, 그녀를 찾아온 사내가 무엇을 하는 사내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되, 그는 유부남이다.대전의 젊은 천문학자의 노력으로 밝혀진 것은 그림 속의 부분월식이 1793년 8월 21일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체(天體)에서 발생한 부분월식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한밤중의 사랑이야기가 화폭에 담겨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조가 다스리던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반가(班家)에서 조차 남녀의 은밀한 만남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단원(檀園)과 혜원이 그려낸 풍속도가 알려주는 내용이다.각설하고,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남녀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그들은 영화감독과 배우로 인연을 맺었고, 지난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비난이 거세다. 왜냐면 아내가 있는 남자가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정분이 났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혼하고자 하지만, 옛날 아내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도 한다. 결국 감독과 여배우는 `불륜남녀`로 각인됐다.호사가(好事家)들은 그들의 나이 차이와 끝나지 않은 이혼소송을 두고 그들을 비난하느라 골몰한다. 우리나라처럼 남의 일에, 특히 뭔가 낯설고 특별한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모두에게 익숙하고 일반화된 행동양식에서 조금만 일탈(逸脫)해도 대중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남들이 하는 양을 따라 하거나 가능하면 튀지 않으려 애쓴다.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처럼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휴가를 쓰고, 자동차를 구입하고, 아파트에 사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 중간 치기가 유독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어딜 가나 중간만 하면 된다는 평준화된 의식이 사회여론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고와 독창적이고 독특한 괴짜의 사유와 인식 혹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다. “될성부른 싹은 어릴 적부터 잘라버리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것도 모자라 낙인(印)을 찍어 마무리한다. “이상한 사람이라던데! 불륜이야!”몸도 마음도 떠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적절한 시기에 우아하게 악수하고 떠나보내고 떠나가는 것이 아름답고 상쾌하다. 그나 그녀가 누구와 무슨 인연을 맺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의 운명이고 그들의 자유다. 그것이 불륜인지 아닌지, 불장난인지 숙명인지, 가늠하는 것은 그들만이 판단하고 평가할 일이다. `불륜타령`에서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2017-03-17

닭장을 만들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어릴 적부터 미술과 공작은 젬병이었다. 특히 입체를 만든다는 것은 은산철벽의 세계였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찰흙 만들기도 버거웠다. 그것은 선친의 유산이었으리라. 아버지가 못을 박거나 뭘 만드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전기나 수도, 그 밖의 모든 집안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두 살 터울인 형이 나이 들면서 그 일은 형에게 이관되었다. 어머니의 유전형질을 상속받은 형. 하지만 나는 그런 방면에 전연 무능했지만 뭐 그것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마당이 소원(疎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보라는 분들도 있었으나, 그것들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우두커니 주인을 기다린다 생각하면 내키지 않았다. 일곱 살, 열 살 무렵 개한테 물린 기억도 상처로 남아 있었으니 달가울 리 없고. 고양이는 또 뭔가 유쾌하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여하튼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적막한 마당을 들여다보면서 작심한 것이 닭을 길러보자는 심산이었다.조류독감이 기승을 떨치는 판국이어서 닭에게 달걀을 얻자는 속셈도 없지는 않았다. 우리가 `치킨`이라 부르는 닭은 대개 30~40일 정도 키워서 잡아먹는 육계(肉鷄)를 가리킨다. 생육조건이 좋다면 닭은 10년 이상 30년까지도 살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보기보다 머리도 좋아서 아파트에서 기르던 닭이 집을 나갔다가 승강기를 타고 제 살던 집 앞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더욱이 질병에도 강한 편이어서 기르기도 수월하다는 것이다.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고평에 사는 방송사 국장을 찾아갔다. 저간의 사정을 말하니 흔쾌하게 딸기농장을 하는 친구에게 나를 인도한다. 거기서 쇠파이프 여섯 개를 얻고 땅을 깊이 팔 수 있는 묵직한 도구를 빌린다. 가로 4m, 세로 2.6m, 높이 1.5m 규모의 닭장신축을 위한 사전준비는 그렇게 이뤄졌다. 다섯 개 파이프는 제자리를 잡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불가능했다. 그곳이 예전 집터여서 단단한 콘크리트가 바닥에 깔려있던 탓이다.직사각형에서 변형된 마름모꼴로 닭장의 외형이 바뀐다. 그것으로 하루일과 마무리. 일주일 뒤에 그와 함께 드릴로 파이프에 구멍을 뚫고 나사로 고정하는 난제(難題)에 도전한다. 졸렬한 내 솜씨로 드릴작업은 불가능했고, 국장의 힘과 기능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폐가에서 주워온 문짝으로 닭장 문을 달고, 자재상에서 철망과 차광막을 구입한다. 족제비나 쥐의 공격을 차단하려면 철망을 땅속으로 20~30㎝ 깊이로 묻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철망을 둘러치며 크고 작은 돌로 요새나 성채처럼 닭장 주위를 막아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이제부터는 독자적인 작업이다. 장마철을 대비해서 닭장 안에 아담한 비닐하우스를 지어주기로 한다. 바닥에 목재 팔레트를 두 개 깔고 그 위에 네 개의 지주(支柱)를 설치해 이층집을 만드는 작업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작업을 지켜보던 옆집 아주머니는 청설모의 공격에도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중철망 설치를 추천한다. 하, 이런 일이!그렇게 다시 하루가 간다. 온몸이 고달프고 통증이 찾아온다. 마침내 네 번째 주 일요일 저녁 사위(四圍)가 어둑해서야 닭장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중철망을 촘촘히 엮는 작업은 미완(未完)이지만, 일단 닭장 형상만은 그럴 듯하다. 국장 댁에서 얻어온 모과나무 두 줄기를 가로세로로 엮고, 거기에 대나무로 횃대를 설치한다. 옆집 영감님도 잘 만들었다고 한 마디 거든다. 이렇게 커다란 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닭장을 만들면서 대목(大木)과 그에 딸린 노동자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사람 살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새삼스레 다가온 게다. 봄날이 따뜻해지면 장터에 나가 예닐곱 마리 닭이나 중평아리를 사올 모양이다. 오랜 세월 육체노동과 거리 두고 살아온 인생을 돌이키는 닭장이 감나무 아래 오롯하다. 아직 보지도 못한 닭을 위한 인간의 고단한 노동이라니! 곤줄박이 울음소리 한가로운 아침이다.

2017-03-10

가로막는 벽, 장벽에 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넘사벽`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캄캄절벽을 뜻한다. 고어(古語)로는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가까운 말이 아닌가 한다. 불가(佛家)의 선승들이 수행하면서 공안(公案) 하나를 붙들고 정진하다가 마주치게 되는 견고한 장벽(障壁)을 가리킨다. 행자가 아니라 해도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벽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길고 크며 오랜 역사를 가진 장벽은 만리장성이다. 혹자는 장성이 달에서도 보인다는 `구라`를 풀어 좌중을 숙연한 분위기로 몰고 갔다 한다. 중화세계는 전국시대부터 초원지대의 유목민인 융적(戎狄)에 대한 두려움으로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기원전 771년 호경의 서주(西周)가 낙읍의 동주(東周)로 천도한 사건은 서융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까닭이다. 만리장성은 시황제 정(政)의 독자적인 사업이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을 가진 것이다.중화의 서쪽에서 출몰했던 튀르크 계통의 융과 달리 장성의 북쪽에서는 흉노라 불리는 초원 유목민 세력이 강성했다. 단명했던 진제국의 뒤를 이은 한고조 유방은 기원전 202년 2월 `해하의 전투`에서 초패왕 항우를 격멸하고 황제를 칭한다. `초한지`의 근간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장성 북쪽의 장치세력 흉노와 `묵돌`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중화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에 익숙한 탓이다.진시황이 죽은 지 1년 만인 기원전 209년 흉노의 선우(왕) 두만이 아들인 묵돌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권력을 찬탈하여 선우가 된 묵돌은 동호와 월지 등을 복속시키면서 세력을 확장한다. 흉노와 한은 기원전 200년 백등산(지금의 산서성 정양현)에서 맞붙는다. 이른바 `백등산 전투`다. 기병을 주력으로 한 묵돌의 유인작전에 걸려든 보병의 유방은 선우의 연지(왕비)에게 두둑한 선물을 주고 사지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그 후로 한나라 황제들은 공주를 역대 선우의 연지로 바치고, 비단과 목화, 술과 쌀 같은 공물을 흉노에게 바쳐야 했다.일본의 몽골역사 전문가 스기야마 마사아키는 백등산 전투를 세계사에 일획을 그은 사건이라 평가한다. 기동성과 집단성이 뛰어난 유목민의 기마 전사들을 보병중심의 군대로 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따라서 백등산 전투는 흉노와 한이라는 두 제국의 전쟁이 아니라 유목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대 사변이다. 이런 양상은 근대서양이 촉발한 총과 탄약과 해양의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2천년 동안 지속되었다.기원전 129년 한 무제가 시작한 흉노전쟁은 소제(昭帝)가 흉노와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단 마무리된다. 따라서 중원을 놓고 패권을 겨룬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묵돌 선우와 흉노를 빼놓으면 안 된다. 오랜 대립과 항쟁에도 불구하고 전한과 후한시대는 대체로 흉노와 한이 남과 북에서 공존하게 된다. 투르크-몽골계통의 유목세계인 흉노와 한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농경세계인 한나라의 두 체제가 성립하게 된 것이다.만리장성은 장성 너머의 오랑캐를 방어하는 목적보다는 장성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장성 안쪽 혹은 아래쪽은 화하(華夏)의 세계이고, 그 너머는 야만의 땅이라는 차별과 의식의 벽이 만리장성이다. 그러나 장성에 자리한 관시(關市) 혹은 호시(互市)를 통해서 초원지대 농경지대의 산물은 교환되었고, 문화교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거대한 장벽으로도 막지 못하는 흐름이 있었다는 얘기다.초원 유목민이 세운 돌궐제국의 창시자 돈욕곡은 기막힌 명언을 남긴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21세기 `노마드` 시대를 살아가면서 생각해볼만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2017-03-03

흐르지 않는 강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992년 출품된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몬타나 주의 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일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버지에게 어릴 적부터 낚시를 배운 노먼과 폴 형제. 플라잉 낚시로 송어를 낚아채는 장면이 기억에 삼삼하다. 강물이 전진운동 하는 것처럼 영화의 시간도 앞으로 나아간다.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그리고 폴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실과 지난날의 반추로 이어지는 숨 깊은 영화다. 햇살에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강물과 초록의 나무그늘과 형제의 멀리 퍼져나가는 웃음소리와 새파란 하늘과 손에 잡힐 듯 그려진 바람! 그런 자연의 향연만으로 넉넉한 선물을 부여하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의 비의(秘意)와 본질에 대한 성찰이 나의 생을 혼란으로 이끌던 무렵 이 영화는 숙제로 다가왔다. `강물이 흐르듯 시간 흐르고, 더 많은 세월 지나면 나는 무엇으로 남을까`하는 물음이 닥쳤던 시절.문득 생각한다. 강이 흐르지 않는다면?! `흐름이 정지한 강은 어찌 될까`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근자(近者)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수질개선을 위해 4대강에 2조2천억을 쓰겠다고 한다. 홍수예방과 수질개선을 목적으로 시작된 이른바 `4대강사업`으로 오히려 악화된 수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명목으로 국민혈세를 투여하겠다는 얘기. 어느 조간신문은 그것을 일컬어 `2조원짜리 인공호흡기`라는 제목을 붙였다.4대강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으로 시작됐다가 빗발치는 여론악화로 수질개선과 홍수예방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는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류(支流)와 지천(支川)에서 발생한다. 지난 정부들이 노력한 결과 4대강 수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4대강사업 결과로 수질은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홍수예방도 성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 더해 4대강 준설토로 인한 피해도 해마다 수십억에 이른다고 한다.4대강 `녹조라테`라는 오명의 근저에는 흐르는 강물을 틀어막고 곳곳에 건설한 댐이 있다. 전직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은 `보(堡)`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보가 아니라 `댐`이라 한다. 소량이기는 하지만 각종 보에서는 전기도 생산한다. 도처에 생겨난 댐으로 인해 유속(流速)이 현저하게 느려졌고, 그로 인해 강물은 생래적 속성을 상실했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라 호수나 연못이다.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흐르지 않는 강물 역시 썩기 마련이다. 그 결과 녹조라테의 악순환이 그치지 않는다. 단순 공사비만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사업에 정부는 그간 지류·지천의 수질개선, 농업용수활용 등에 2조8천억을 들였다. 여기에 다시 2조2천억이 추가 투입되는 셈이다. 따라서 총공사비는 액면가로만 27조에 이른다. 그러고도 수질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그것은 계속 물음표로 남는다.정부와 토건업자들의 배만 채워주고 실패로 돌아간 4대강사업의 해법은 단순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를 허물어 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200만년 넘도록 흐르고 흘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강을 2년 만에 성형했으니 어찌 사달이 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의 큰 강들은 하나둘씩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그 강에 터를 닦고 살아온 허다한 생명들 역시 함께 사멸 중이다. 흐르지 않는 강물을 만든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낸 참사(慘事)다.많은 세월이 흘러 노먼은 그 옛날의 강에서 홀로 낚시를 던진다. 예전의 청춘과 활기는 없지만 그에게는 흘러간 강물과 시간의 추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듯 유장(悠長)하게 흐르는 강에는 여전히 송어들이 노닌다. 그것들이 파닥거리며 맑고 푸른 대기로 뛰어오를 때 노먼은 이제는 없어진 폴과 부모를 떠올린다. 거기에는 예전처럼 투명하고 생생하게 살아 흐르는 강물이 있다. 흐르지 못해 죽은 우리의 강을 보면서 느끼는 소회(所懷) 한 자락이다.

2017-02-24

점, 선, 면 그리고 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도형이나 입체를 그릴 때 최초 출발은 점(點)이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線)이 되고, 선이 셋 이상 모이면 면(面)이 된다. 면을 여럿 모으면 다면체가 된다. 다면체 가운데 모서리의 길이가 같은 것을 정다면체라 한다. 인류가 3차원 가시광선 세계에서 찾아낸 정다면체는 불과 다섯 개. 정삼각형을 기반으로 한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와 정사각형을 기초로 한 정육면체, 그리고 정오각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정십이면체가 그것이다. 점을 도시 혹은 농촌 같은 정착지라 생각하면 점의 거주자는 시민이거나 농민이다. 점과 점을 이어주는 선의 구실을 하는 자는 상인이며, 선으로 연결된 공간인 면의 거주자는 유목민이 된다. 이런 사유를 발전시켜 유목세계에 주목한 일본인 연구자가 스기야마 마사아키다. 현대 일본에서 몽골연구 분야에서 최고권위를 인정받는 그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 점, 선, 면의 사유를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장한다.우리에게 익숙한 `4대문명`이라는 개념도 점의 사고에 익숙한 정주의식(定住意識)에서 발원한다. 그 점이 매우 크다 해도 유라시아 전역을 포괄할 수 없다. 이집트 북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를 상정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정착민이 발전시킨 문명을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고 교류하도록 인도한 유목민을 배제한 유라시아를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유목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삼은 대표적인 동물은 말과 낙타다.낙타는 주로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의 대상(隊商)들이 사용했다는 면에서 논외로 하자. 요즘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말`에 초점을 두고 생각한다. 젊은 역사학자 강인욱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적어도 2~3만 년 전부터 말을 식용(食用)으로 삼았다고 한다. 구석기시대의 말 그림은 프랑스와 러시아 알타이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라스코 동굴벽화는 채색화이며, 알타이 칼구타 유적의 말 그림은 암각화 형식이라고 한다.고기로 활용된 말이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운송수단으로 등장한다. 말이 운송수단의 총아가 되는데 필요한 세 가지 마구가 차례로 발명된다. 재갈과 안장, 그리고 등자다. 기원전 3000년 무렵 사용되기 시작한 재갈은 말을 순치(馴致)시키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이동과 정지를 적시에 명령하고 실행하는 도구가 재갈이었다. 재갈은 고삐와 전차발명으로 이어져 기동력이 뛰어난 전차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초원을 질주하는 전차군단을 연상하시라.재갈에 이어서 장거리 이동에 필수적인 안장이 발명된다.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군사들이 카펫을 안장으로 사용했고, 흉노는 나무안장을 발명했다고 한다. 안장 없는 승마의 불편과 불안정성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서기 3~4세기 무렵 고구려와 선비족이 금속제 등자를 발명해 말을 타고 내림에 불편함을 제거한다. 등자는 말 위에서 자유자재한 동작 가능성을 기수에게 선사함으로써 수렵과 전투의 일대전환을 가져온다.스키타이가 등자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정수일 교수는 고삐나 재갈, 등자가 역사의 대변혁을 발생시켰다고 말한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런 발명이 유목사회와 군대조직에 일대파란을 가져오면서 세계사의 변혁을 추동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역사적 사변`이라 부른다. 말이 없는 고대사와 유목사회 그리고 전투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이동과 목축과 전쟁의 가장 일차적인 요소인 속도와 운송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늠하기 어렵다.그래서다. 열차를 철마(鐵馬)에 비유하는 까닭은! 근대의 상징으로 표상되는 열차와 그로 인해 밀려난 말의 대비는 100여 년 전 일이다. 국정농단의 비선실세와 그 여자의 딸과 굴지의 재벌 삼성이 `말`로 인연을 맺었다니 말의 가치가 새삼스럽다. `오관참수`와 `천리주단기`로 의리의 대명사가 된 관우의 `천리마`와 30억 짜리 `명마` 블라디미르를 생각하는 아침이다.

2017-02-17

단절은 어디서 오는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언제부턴가 대학사회에 균열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단절의 심연마저 깊어지는 형국이다. 25년째 대학에 몸담아오면서 이렇게 넓어진 틈새와 태무심(殆無心)을 본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 90년대에 우리는 여전히 희망 같은 걸 간직했던 듯싶다. 각자 다른 향기와 빛깔과 무게를 가진 희망이었지만, 그래도 바람 같은 것이 있었다. `87체제`가 그 첫머리를 아직 끝내지 못했을 무렵 대학에 부임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분단된 동서 도이칠란트가 하나 되는 장면을 베를린 한복판에서 목도(目睹)한 나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고르바초프에게 100억 마르크(50억 달러)를 넘겨주고 분단에서 통일로 넘어가는 장면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좌든 우든, 극우든 극좌든 “피는 이념보다 강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도이칠란트 정객들의 인식과 실천은 놀라웠다. 그런 결실의 이면(裏面)에 빌리 브란트로 대표되는 `동방정책`이 자리하고 있음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그 나라와 8시간 시차를 가진 조국으로 귀환한 내가 희망의 미래를 전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90년대의 허다한 아수라판과 격변과 사건사고를 기억한다. “우리가 남이가”에서 시작하여 성수대교와 삼풍아파트 붕괴를 거쳐 상인동 지하철 폭발사고를 지나 IMF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고 살아온 지난 세기 90년대였다. 그것은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상을 상실하지 않은 성장하는 대한민국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1997년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2002년 노무현의 승리를 기억한다. 거기 어디서부터 희망의 끈이 조금씩 풀려버린 듯하다. 대북송금 수사, 이라크 파병, 미군기지 평택이전, 한미자유무역협정, 그리고 대연정 제안에 이르기까지. 전사(戰士)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의 거리가 괴리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그 지점까지도 나는 장밋빛 미래기획을 놓지 않았다. 절망하고 좌절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탄탄한 육신과 영혼을 가진 조국과 자아가 있었으므로.“부자 되세요!”라는 슬로건과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가 불티나게 팔리는 나라로 곤두박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였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물신의 나라로 급속히 탈바꿈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각료들 모아 선전해대는 나라꼴이라니. 천안함사태와 개성공단 가동 중단, 4대강사업, 자원외교 비리, 방위산업 비리가 하루가 멀다않고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막장 드라마가 준비되고 있었다.지난 25년을 돌이켜 보면서 새삼 대학사회의 단절과 절망을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거대담론이 시대정신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행복했다. 누군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쳤을 때 우리는 분노했다. IMF가 닥쳤을 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라크 파병과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불거졌을 때,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절규했다. 그리고 싸웠다. 지금 대학사회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고 있다.각종 프로젝트와 대형 국책사업에 교수들이 대거 동원된다. `문송합니다`의 주인공 인문대학마저 교육부의 `코어사업` 사정권에 포획됐다. `해야 한다`는 당위의 논리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의 간극(間隙)은 이내 망각된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사업일정에 무신경해지고 무덤덤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국책사업으로 인한 긴장된 피로와 성과주의는 거대담론의 파장과 달리 교수들의 내면세계에 적잖은 우울과 상처와 앙금을 남긴다.한국 대학에는 거대담론주의자들이 설 땅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시대 전환기 21세기 한국 대학에 거대담론이 없다. 크고 작은 이해관계의 충돌과 사사로운 정의가 똬리를 틀고 간간이 깊은 한숨을 토해낼 뿐이다. 오래 전에 생긴 균열이 단절로 굳어진 대학의 미래향방은 어디일까, 자문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단절의 끝이 지나면 새로운 지평이 시나브로 열리는 것일까. 그러하되 마당의 매화나무 꽃눈은 팽팽하게 부풀었다.

201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