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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문학은 살리고, 인문대학은 죽여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기에 꽃이 좋고 열매가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도 아니 그치기에 시내를 이뤄 바다에 이르나니.)필자가 학창시절 즐겨 암송(暗誦)했던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제2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조선왕조 건국에 서린 역사적 연원(淵源)과 인과성(因果性)을 나무와 물에 빗댄 명편(名篇)이다. 이런 비유가 그저 당대에만 유의미했다면 우리의 기억 너머로 사라졌을 터.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것을 보면 비유에 담긴 함축과 의미가 시공(時空)을 초월하고 있음을 알겠다.근자(近者)에 교육부장관이 대구 가톨릭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 대학 총장을 한껏 치켜세우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인즉 그 대학 총장이 앞장서서 대학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단행(斷行)했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조조정 가운데 하나가 인문대학 폐교(閉校)였다는 점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4년제 대학에서 인문대학을 자발적으로 없애는 총장. 그것을 기특(奇特)하고 가상하게 여겨 머리 쓰다듬어주는 장관. 뭔가 거시기 하지 않은가?!하기야 교육부장관이 취임하고 맨 처음 찾아간 대학이 중앙 대학교였으니 알아볼 징조다. 두산이란 재벌이 인수해 기업 입맛에 맞춰 대학에 칼부림을 한 첫 번째 쾌거(快擧)를 이룬 곳이 중앙 대학교 아니었는가! 돈벌이 될 만한 단과대학과 학과는 증설하고, 기초학문과 순수학문은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다. 여기 적용된 논리가 시장 친화형 기업 구조조정이다.중앙 대학교는 교양필수 교과목으로 철학이나 역사, 문학 대신에 `회계학`을 강요하여 세간의 빈축(嚬蹙)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뚝심의 두산 아닌가?! 프로야구에서도 가장 끈적거리는 뒷심으로 호가 나있는 곳이 두산이니 유구무언(有口無言)이지만…인문대학 문을 닫고, 인문대학 학과들을 마구잡이로 잘라내는 대학과 그것을 격려(激勵)하고 손뼉 치는 주무장관(主務長官)의 행태라니.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국정 4대 기조로 삼은 현 정권과 화합하는가. 인문대학을 없애고, 학과 문을 닫아걸고,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문화융성을 위한 적절한 행동지침(行動指針)인가?!더불어 기이(奇異)한 점은 현 정권이 인문학 대중화(大衆化)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모두에게 인문학으로 세례(洗禮)를 주려는 것처럼 나라 전체에 인문학 바람이 드세다. 크고 작은 인문학 관련기획 사업이 하루가 멀다않고 공지되고, 인문학 강연은 전국 방방곡곡 열리지 않는 곳이 없다. 조그만 시골 중등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좋은 일이다!하되, 문제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인문학의 뿌리는 인문대학이다. 문학과 철학과 역사가 대학 안에서 교습되고 연구되어 대를 잇지 않는다면 인문학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인문대학이 고사(枯死)하고, 관련학과가 문을 닫으면 인문학이 말라죽는 것은 당연지사다.현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인문학의 대대적인 보급과 교양수준 제고(提高)를 위해서라도 인문대학과 관련 학과들의 존속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철학과, 역사학과, 어문학과가 결석(缺席)하는 대학에서 어떻게 인간적이고 창의적(創意的)인 인재가 양성되겠는가!인문학은 태곳적부터 경세제민(經世濟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목표로 한 유서 깊은 학문이다. 지난 세기 제2차 대전 이후 학문의 급속한 분화로 인한 인문학의 유체이탈과 `넘사벽`의 어려움으로 인해 궤멸(潰滅)을 길을 자초(自招)한 것이 인문학이다. 그런 인문학이 이제 대대적인 자기반성과 대안모색의 일환으로 저잣거리로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이런 판국에 국민에게는 인문학을 장려하는 정책을, 현장에서는 인문대학을 죽이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자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모순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에서 화사(華奢)한 꽃이 피어나 달콤새콤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본말이 전도된 그릇된 대학정책은 이제 거둘 때도 됐다.한밤중인데도 창밖에 벚꽃이 대낮처럼 환하다. 버찌도 물론 풍성할 것이다!

2015-04-10

바이칼과 작별하다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2월 9일 오전 10시 15분 우리는 사람 좋아 보이는 운전기사 세르게이의 낡아빠진 승합차로 알혼 섬 최북단으로 방향을 잡는다. 영하 20도 내외의 냉기가 상큼하게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 정도 추위는 별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다. 승합차는 생각보다 강건하고 힘차게 작동한다. 바이칼의 두터운 얼음장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회청색 승합차. 얼음의 나라 바이칼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려고 세르게이는 곳곳에서 승합차를 세운다. 암벽 위쪽에서 종유석(鐘乳石)처럼 자라난 얼음 줄기들이 예리(銳利)한 창날처럼 즐비하고, 아래쪽에서는 깨지고 갈라진 얼음장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바이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이곳이 범상(凡常)한 장소가 아님을 천명(闡明)하듯 강렬하고 매섭다.아, 그때! 시퍼런 하늘 저편을 홀로 나는 맹금류(猛禽類)의 거대한 날개가 시야에 들어온다. 어떤 생명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멸(死滅)의 시공에 저토록 아름답고 강력한 비행체가 생명으로 자라고 있음은 축복이다. 거칠 것 없는 한겨울 창공을 차고 오르는 괴조(怪鳥)의 날갯짓은 바이칼 얼음장 위에서 얼어붙은 온대(溫帶)의 나그네를 위축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이윽히 멈춰서는 세르게이의 승합차. 그가 준비한 것은 바이칼 특산인 오물을 쌀과 함께 조리한 따끈한 점심이었다. 비릿한 맛 하나 없는 깔끔한 식사가 홍차와 곁들여지고, 약간의 보드카가 흥취를 돋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세상의 그림자가 절연된 바이칼 얼음장 위에서 소풍 나온 듯 담소(談笑)하며 부랴트족의 점심을 누리는 호사(豪奢)는 기막힌 것이었다.앞서 걷던 일행 가운데 하나의 입에서 경탄(驚歎)이 흘러나온다. “물이다!”왼쪽과 오른쪽의 얼음장이 서로 충돌(衝突)하여 둘 사이에 두 자 남짓 수로(水路)가 생겨 있었다. 그 사이로 과연 물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을 들이밀고 물을 마신다. 상큼하고 서늘한 바이칼의 얼음물이 식도(食道)를 타고 내장 (內臟) 깊숙하게 흘러내린다. 내장의 세포(細胞) 하나하나를 일깨우는 바이칼의 칼칼한 얼음물!바이칼은 지구 최대의 민물호수다. 지구의 71%가 물이고, 29%가 육지라고 한다. 지구 물의 97%는 바닷물이고, 담수(淡水)는 고작 3%에 지나지 않는다. 그 3%의 물 가운데 20%의 물이 바이칼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우리 민족의 시원(始源)을 바이칼에서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 방면에 문외한(門外漢)이어서 나는 바이칼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하되 태곳적 우리 조상들이 바이칼에서 존재와 이동을 시작했다면 나쁜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소감(所感)이다. 그것은 바이칼에 내재한 크고 너르고 넉넉하며, 거칠되 우아하고, 강력하되 부드러운 바이칼의 이중성에서 기원하리라 믿는다. 음양(陰陽)의 조화처럼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만물의 생성원리로 작용하는 대립(對立)과 항쟁(抗爭)의 기운이 한껏 느껴지는 한겨울의 바이칼!오늘이 지나가면 바이칼과 작별해야 한다. 그러면 언제 다시 바이칼을 찾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청춘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노년의 시계추는 주저(躊躇)하지 않고 서둘러 나를 향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한 9박 10일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에 시작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 아닌가. “적절한 순간에 끝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명민(明敏)한 안톤 체호프는 `사랑에 관하여`에서 말하지 않았던가!그날 밤 우리 일행은 은성(殷盛)하고 화사(華奢)한 작별잔치를 벌였다. 보드카와 맥주와 압생트를 앞에 두고 크고 작은 웃음과 한탄과 노래와 춤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다시 오지 못할 동행의 시공(時空)과 관계를 떠올리며 서로의 미래를 축원(祝願)했다. 아주 많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공유했던 그날들과 허다한 눈과 바람과 얼음장과 자작나무와 허허벌판과 을씨년스러운 정거장 풍경은 한사코 나의 손목을 잡아끌 것이다. `저 아늑하고 아련한 추억의 모퉁이로! 안녕, 바이칼이여! 한겨울 이르쿠츠크여! 그리고 올가와 아나스타샤의 러시아여!`

2015-04-03

바이칼, 그 첫날의 기억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2월 8일 오전 6시 40분 몰려드는 한기(寒氣)와 뒤숭숭한 꿈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실내온도는 21도! 허공에 나가 있는 팔이 차갑게 느껴진다. 성에가 끼어 뿌연 창밖으로 이르쿠츠크 시내 모퉁이가 조금 보인다. 얼마만의 성에인가! 생각은 불현듯 파스테르나크 원작의 `지바고 의사`로 달려 나간다. 내전(內戰)의 모스크바를 버리고 우랄의 유리아친으로 옮아간 지바고가 새벽에 유리창에 맺힌 성에를 긁던 장면이 선하다. 라라의 이름을 그리듯 정성껏 써내려가는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 새벽녘 잠에서 깨어난 그가 맞이하는 늑대 울음소리와 한겨울의 냉기! 혁명(革命)과 아무 관계도 없을 듯 보이는 유리아친. 하지만 지식인은 어디를 가도 시대와 역사(歷史)와 관계(關係)에서 한 발짝도 자유롭지 못하다.사회주의 10월 혁명에 열광(熱狂)하지만 혁명이 가져온 범용(凡庸)함으로 등을 돌리는 지바고. 하지만 그는 반혁명분자가 아니었다. 그는 역사의식과 시인의 영혼을 가진 사회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동란(動亂)의 시대를 살아간 시인이자 지식인이었다. 그의 복잡다단한 흉중(胸中)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랑영화로 변용한 데이비드 린!우리는 오전 10시 15분 승합차로 델타호텔을 출발한다. 쉬지 않고 달린다면 4시간 반 정도면 알혼 섬에 도착할 수 있다고 운전기사는 말한다.2시 50분부터 승합차는 얼어붙은 바이칼 위를 질주(疾走)한다. 평균 50센티미터 이상 단단하게 얼어붙은 바이칼은 맑고 푸르렀다. 3시 반쯤 바이칼을 건너 다시 육지를 달리는 승합차. 우리가 부랴트인 아줌마 올가의 민박숙소(民泊宿所)에 도착한 최종시각은 오후 4시 반 무렵이다.올가가 준비한 간편식으로 배를 채우고 우리는 알혼 섬의 대표적인 명소(名所)인 부르한 바위를 찾아 나선다.시베리아의 샤먼들이 제사(祭祀)를 모신다고 전하는 부르한 바위. 바위는 밑동부터 꽁꽁 얼어붙어 있다. 하기야 어디 부르한 바위뿐이랴! 어디를 둘러보아도 꽝꽝 얼어붙은 바이칼의 내장(內臟)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이윽고 찾아온 일몰(日沒)은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자연을 실감(實感)하게 한다. 일찍이 노자는 `천지불인`과 `성인불인`을 말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모범인 자연의 섭리(攝理)를 `불인(不仁)`하다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편벽 고루함이 없는 보편적 존재로서 자연의 속성을 일컫는다. 그러하되 손가락 마디마디에 전해지는 통점(痛點)과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는 한기는 필설(筆舌)로 형언(形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인간이 경험하는 시공간과 인과율(因果律)마저 망각(忘却)케 하는 바이칼의 원시적인 자연력은 놀라웠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온몸을 웅크리게 하는 바이칼의 압도적(壓倒的)인 추위는 체감(體感)한 자들만의 몫으로 남는 듯하다. 바이칼의 위용(威容)과 거룩함은 나의 내면까지 얼어붙도록 한다. 동행한 이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연(無緣)하게 바람과 얼음과 하늘을 마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언젠가 백두산에 올랐다가 천지(天池)의 위용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적이 있었다. 2004년 8월 초의 일로 기억한다. 천지에서 나는 작은 인간이자 미미(微微)한 존재로 스스로를 각인(刻印)했다.한여름 비바람 속에서 30분도 안 되는 짧은 동안 자연의 거대한 운무(雲霧)의 장막을 열어주었던 천지. 천지의 시퍼런 물 앞에 그저 압도되었던 미숙한 인간임을 자인(自認)해야 했다. 그런 느낌이 다시 나를 찾아온다.천지는 너무나 먼 곳에서 나를 압도했다. 바이칼은 내 발 아래 있으면서도 나를 억압한다. 원근(遠近)의 차이가 있으되, 그 압도적인 면모(面貌)에서 차이는 없다. 한여름의 천지와 한겨울의 바이칼은 많이 다른 듯 보이지만 어쩌면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우주의 먼지 같은 지구의 미소(微小)한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의 허명(虛名)과 희언(戱言)과 어설픔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그들은 동료(同僚)다.잠자리에 들기 전 하늘을 우러른다. 뭇별이 투명한 대기를 뚫고 저무는 달과 이야기하고 있다. 영하 30도로 치달리는 냉기를 느끼며 마지막 일정을 생각한다.

2015-03-27

시베리아의 진주 이르쿠츠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2월 7일 아침 7시 무렵 도착한 이르쿠츠크는 콧날이 시리도록 매서웠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기온이 선사하는 상큼하지만 날카로운 기운은 체내(體內) 세포(細胞)들의 긴장을 야기(惹起)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세 대의 택시에 분승(分乘)한 우리 일행은 `비즈니스 델타호텔`에 여장(旅裝)을 풀었다. 작고 아담한 호텔이지만, 외관(外觀)부터 말끔하고 미끈한 것이 세련미(洗煉味)를 자아내고 있었다.따뜻한 물을 마음껏 써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새삼스레 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떠올리며 나흘 만의 샤워에 몸을 맡긴다. 가벼운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닐까!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린다. 그것은 도시가 자아내는 묘한 매력 때문이다. 1825년 12월 14일 제정 러시아의 전제군주 니콜라이 1세의 즉위에 반대하는 청년 장교들이 페테르부르크에서 봉기(蜂起)를 일으킨다. 그들을 가리켜 데카브리스트, `12월 당원`이라 부른다. 1812년 나폴레옹을 격퇴하고 개선문을 지나 파리와 프랑스의 선진문물에 눈을 뜬 귀족 장교들이 염원한 것은 공화정이었다.전제군주 니콜라이가 그것을 용인(容認)할 리 없었고, 그들 가운데 주모자급은 처형당하기도 하고, 상당수는 이르쿠츠크로 유배(流配)당한다. 모스크바에서 무려 5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토(凍土)의 땅 이르쿠츠크! 족쇄(足鎖)에 채워진 채 걸어서 유배지로 와야 했던 열혈청년 귀족들의 유배행렬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아내들이 마차를 타고 뒤를 이었다는 사실이다.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의 선진문화를 이르쿠츠크로 이식(利殖)했던 고상하고 우아한 여인의 자태는 동상(銅像)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삶이 남긴 자취가 볼콘스키 박물관이나 트루베츠코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기약도 없는 유배지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었던 귀족 아낙들의 기품(氣稟) 있는 삶은 매혹적이었다. 그것이 남긴 결과가 시베리아의 진주 이르쿠츠크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도시의 간선도로는 이제는 폐기(廢棄)된 카를 마르크스 거리와 레닌 거리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앙가라 강변에는 레닌의 최후최대 정적 (政敵) 콜차크 제독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영화 `제독의 연인`(2008)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처음 알려진 콜차크. 도심에는 사회주의 10월 혁명의 주역 레닌의 동상이 서 있다. 이르쿠츠크의 모습에서 나는 러시아의 저력(底力)과 포용(包容)을 독서한다.이르쿠츠크 기행(紀行)을 풍요롭게 해준 것은 모스크바에서 6시간 비행(飛行)을 거쳐 우리를 찾아온 박정곤 교수다. 교육방송이나 서울방송에서 전파(電波)를 탄 그이는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러시아 지역학 전문가다. 바쁜 짬을 내서 장거리 비행을 마다않고 날아온 그이에게서 한국인의 따뜻한 정겨움이 듬뿍 묻어난다.이르쿠츠크 시내탐방을 마친 일행은 처음 보는 압생트에 매료(魅了)된다. 70도의 짜릿함을 간직한 연초록 색깔 고운 압생트의 독특한 향기는 고혹적(蠱惑的)이었다. 인상파 화가(畵家) 고흐에게 `황반변성(黃斑變性)`을 일으키게 하여 그 유명한 노란색 해바라기 그림을 낳게 했다는 술 압생트. 19세기 후반기 가난한 노동자들과 문사(文士) 그리고 화가들의 유일한 벗이었던 압생트.압생트로 인해 이르쿠츠크의 밤은 한층 아름답고 풍부해지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먹을거리 샤슐릭과 함께한 압생트의 향미(香味)는 귀국할 때 보드카 대신 압생트를 선택하도록 나를 인도(引導)하였다. 거리의 시리도록 찬 기운(氣運)도, 낯선 도시의 정경(情景)도 나그네의 심사(心思)를 뒤흔들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아름다운 사람과 멋진 술과 맛난 음식 덕분이었을 것이다.내일은 한국인들이 반드시 가보고 싶어 한다는 바이칼로 떠날 것이다. 약간의 취기(醉氣)와 더불어 기대치(期待値)는 최고도(最高度)로 상승(上昇)하고 있었다.

2015-03-20

흔들리는 횡단열차 안에서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2월 5일 아침 8시 무렵 눈이 떠진다. 창밖엔 여전히 끝도 없이 펼쳐지는 설원이 이어진다. 봄이 오면 저 많은 눈이 녹아내려 강을 범람(氾濫)시킬 것이다. 지금은 물론 그런 기미가 일체 보이지 않는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의 강과 평원이 범람하는 시기는 5월이다. 한겨울 내내 내린 눈이 대대적으로 녹으면서 `눈석임`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해빙(解氷)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눈석임이라는 말이 생소한 독자도 계실 터. 학부시절 은사(恩師)는 `해빙기`라는 말보다 `눈석임`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강조하시곤 했다. 해빙은 얼음이 녹는 것이며, 언제든 결빙(結氷)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눈석임은 지난해에 내린 눈이 총체적으로 녹아내리는 현상이기 때문에 훨씬 적절하다는 것이다.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이 시작됐던 1956년을 두고 이른바 `해빙기`라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눈석임 시기`로 배웠더랬다.각설하고, 오전 9시에 열차는 벨로고로스크 역에서 30분 정차한다. 할머니들이 여기저기 나와 삶은 달걀과 빵, 과일을 팔고 계신다. 달걀 세 알을 100루블 (한화 1천700원 정도) 주고 산다. 오후부터 창밖으로 설편(雪片)이 살살 나부끼기 시작한다. 15분 정도 정차한 마그다가치 정거장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 철로를 보며 상념에 젖는다. “길이란 무엇인가?!”길은 두 지점을 잇는 통로다. 인간이 창출한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것이 길이다. 문화나 예술, 과학기술을 포함한 문명의 소산(所産)이 길에서 길로 이어진다. 로마와 장안을 이어주었던 `비단길`을 생각해보시라! 길은 따라서 소통과 공존의 도구이며, 차이와 대립을 완화(緩和)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길은 고립되어 있는 점들의 단절(斷絶)을 극복하는 최상의 방책이다.길을 닦는다는 것은 자체의 불완전성을 용인(容認)하고 수용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능동적인 자기혁신이다. 그것은 다양성(多樣性)의 가치를 인정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를 의미하며, 절대불변의 진리를 부정하고 만유(萬有)의 필연적인 변화를 인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도저히 극복 불가능한 숙명론(宿命論)을 거부하고 현재에 안주(安住)하지 않음으로써 불굴(不屈)의 미래가치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가 길을 내는 것이다.길을 나서서 길에서 길을 생각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복잡다단해지는 사유의 분기(分岐)를 막을 도리는 없었다.이렇듯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하염없이 상념(想念)에 젖으며 21세기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생각한다. 끊어져버린 경의선과 경원선을 떠올린다. 경원선으로 러시아와 연결하고, 경의선으로 중국과 이어지는 철도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아하, 그 길은 얼마나 장려(壯麗)하고 장쾌(壯快)할 것인가?!2월 6일 오후 2시 3분에 열차는 치타에 도착한다. 열차로 이동한 지 이틀이 넘게 지난 시각이다. 그 사이 배탈이 나서 적잖은 홍역을 치러야했던 터라 생기가 사그라지는 기분이다. 아무런 상비약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대학원생들의 주도면밀한 차비가 나를 구원한다. 김수영 시인이 `절망`에서 노래한 것처럼 “구원(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만 것이다.한밤중인 10시 50분 무렵 우리는 울란우데 정거장에 이른다. 이르쿠츠크에 다다르기 전에 만나는 가장 큰 도시다. 몽고의 울란바토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울란우데. 경의선 열차를 타고 중국과 연결되면 우리는 훨씬 단축된 시간에 이르쿠츠크에 도달할 것이다. 울란우데는 바로 그 노선과 만나는 합류지점(合流地點)이다.이제 이르쿠츠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5시 무렵이 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깨어나는 소리 들린다. 새벽 7시 무렵 우리는 마침내 바이칼 최대 도시이자 시베리아의 진주(珍珠)라 불리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는 2시간 시차가 나는 곳이다. 사흘에서 2시간 모자라는 70시간 정도 달려서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자, 이제부터는 전혀 새로운 세계 바이칼과 이르쿠츠크를 맞이하는 차비를 해야 할 시각이다.가슴 속의 기대치가 술렁거림으로 바뀌는 시공간(時空間)에 나는 서 있다.

2015-03-13

흔들리는 횡단열차 안에서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2015년 2월4일 블라디보스토크 하늘은 청명(淸明)했다. 현지시각 오전 11시 2분 우리 일행을 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육중한 몸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열차 안에서 보낼 3박4일의 시공간이 고개를 살짝 내밀기 시작한다. 열차는 현지시각 2월 7일 오전 7시 무렵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것이다. 대략 68시간 동안 열차로 이동하는 셈이다. 11호차 21번 좌석이 배정됐다. 4인1실로 운영되는 쿠페열차다. 우리나라에는 쿠페열차가 없다. 가장 긴 서울-부산 구간(區間)이 고속열차로 3시간도 안걸리는 판국이니 재론할 여지(餘地)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같은 나라의 시차(時差)가 9시간이다. 하물며 9천288킬로미터에 이르는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구간에 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 구간을 합하면 거의 1만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 아닌가. 따라서 침대가 딸린 쿠페열차는 장거리 탑승객에게는 필수품목이다.오후 1시에 열차는 우수리스크 역에 정차(停車)했다. 횡단열차 안에서는 장소 불문(不問)하고 원칙적으로 금연이다. 흡연자들은 바깥 상황과 무관하게 밖으로 나갔다 오는 수고를 마다할 수 없다. 횡단열차 안에는 정거장 도착시각과 정차시간이 모스크바 표준시로 기록된 문건(文件)이 비치되어 있다. 문제는 시차계산을 온전하게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러시아 승무원들에게는 그다지 번거로운 일도 아닌 듯 보였다.저녁 7시 무렵이 되자 일몰이 시작돼 창밖 정경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칠흑(漆黑) 같은 밤에도 시베리아의 명물 자작나무는 하얗게 빛나고 있다. `자유부인`의 정비석이 `산정무한`에서 찬탄(讚嘆)했던`숲속의 공주` 자작나무가 끝없이 줄지어 있는 철로 주변풍광은 장관이다. 최고시속 160킬로미터지만 열차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질주한다. 더러 지나치는 열차의 경적과 굉음(轟音)이 밤하늘의 정적(靜寂)과 평온을 깨뜨리곤 한다.열차 안에서 나는 노자가 말한 `곡즉전(曲則全)`을 생각하며 성찰한다. “굽으면 온전하다!”는 의미를 가진 `곡즉전`은 매양 올곧게만 살고자 했던 어리석은 나를 매섭게 추궁한다. 누군가 곧다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은 잘나고 유식한 자들만이 아니라, 못나고 모르는 사람들도 어울려 살아가는 거대한 용광로 같은 것이다. 잘난척 해봐야 얼마나 잘났을 것이며, 안다고 해봐야 얼마나 알 것인가?!12시간을 달리고 난 밤 11시 무렵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한다. 1858년부터 러시아인들이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도시의 정제(精製)되지 않은 매캐한 석탄연기가 코를 찔러온다. 30분 정차시간을 이용해 역 주변에 나가본다. `하바로프스크`라는 이름을 가지게 한 카자크 탐험대장 예로페이 하바로프의 동상이 역 광장에 우뚝하다. 말갈, 숙신, 읍루, 물길 같은 퉁구스 계통의 종족(種族)을 억누르고 러시아의 영토 확장에 진력했던 카자크 대장 하바로프.밤 11시 38분 열차는 다시 포효(咆哮)한다. 창밖에는 만월에 가까운 보름달이 환하고, 그 위에 작지만 또렷한 얼굴의 별이 동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각 아닌가.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흘러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소회(所懷)일까, 생각한다. 반도의 수려한 풍광과 오밀조밀함 그리고 지근거리에 익숙해진 조바심 같은 대목이 나에게만 고유한 원형질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자라지만, 동시에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중국인들의 `만만디`나 러시아인들의 느긋함과 기다림은 천성이라기보다 후천적인 자질(資質)일 가능성이 높다.이런저런 상념(想念)과 미열(微熱) 같은 설렘으로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얕은 선잠이 찾아들 뿐 숙면(熟眠)은 찾아오지 않는다. 하기야 이런 장쾌한 여정에서 코를 골고 잠이 든다면 그는 신선이거나 태무심한 인간일 터! 앞으로 이틀 밤을 더 열차에서 보내야 한다. 그 여정을 생각하며 창밖 보름달과 잠시 작별한다.

2015-03-06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블라디보스토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누구나 한 번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르는 장쾌(壯快)한 여정(旅程).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복안으로 1891년 착공되어 1901년 1차 완성을 본 시베리아 횡단열차. 1905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제정(帝政) 러시아는 만주를 통과하지 않고 러시아 영내(領內)만 지나가는 제2의 횡단열차 공사에 착수한다. 1916년 마침내 9천288km에 달하는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전 구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완공되기에 이른다.블라디보스토크는 두 개의 러시아어가 합성돼서 만들어진 말이다. `블라디치`는 `지배하다`라는 동사고, `보스토크`는 동쪽을 의미하는 명사다. 따라서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東方)을 지배하다`는 뜻을 가진 다소 섬뜩한 도시다. 유럽 열강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병탄(倂呑)하려는 제국주의 정책을 앞 다투어 실행하던 각축(角逐)의 19세기. 일본과 도이칠란트, 이탈리아 등과 후발주자로 제국주의를 도입한 러시아의 의지가 한껏 담겨진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제정 러시아의 동방정책 전진기지이자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역(始發驛) 블라디보스토크. 지난 2일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람은 매서웠다. 산뜻하게 단장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벗어난 택시가 안내하는 시내의 전경은 상상 이상으로 정갈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세에 반 토막 난 루블화와 전년 대비 3분의 1로 하락한 석유 가격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활기가 넘쳐났다.마중 나온 듯 불어대는 칼바람을 뚫고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독수리 전망대`에는 러시아어의 창제자 동상이 있었다. 키릴과 메포지 신부(神父) 두 사람의 동상! 서기 988년 무렵 그리스어 소문자를 가지고 키릴문자를 만든 두 사람의 신부가 시퍼런 태평양과 부서지는 파도와 눈부신 햇살을 마주하며 서 있는 정경이라니! 모스크바에서 거의 1만km나 떨어진 이 도시의 고대(高臺)에서 자랑스레 하계(下界)를 굽어보는 장면은 엇박자이되 성스러웠다.하기야 러시아는 자원의 나라이자 문화대국 아닌가. 해마다 6월 6일이 되면 9시간 시차를 가진 나라 전역에서 개최되는 푸쉬킨 축제가 있는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 연극을 상연하는 극장마다 10대부터 80대까지 객석을 메우는 공연문화의 나라 러시아!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노인들까지 시집을 읽는 나라가 러시아였다. 그 나라의 동방을 대표하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어의 창시자 동상이 서 있는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일지도 모른다.1860년 러시아의 군사 전초기지로 삶을 시작한 블라디보스토크에 생명을 한껏 불어넣은 것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하바로프스크와 치타, 그리고 울란우데를 거쳐 이르쿠츠크까지 3박4일 여정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로 한다. 러시아 동방의 거점도시를 살피고, 횡단열차를 경험하고 시베리아의 진주(珍珠)라 불리는 이르쿠츠크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일정의 끝에는 물의 왕국(王國) 바이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개척하기 전에 이미 조선인들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가렴주구(苛斂誅求)의 학정(虐政)을 피해 신세계로 이주한 선각자들의 신산했을 삶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조국을 등지고 정착한 동토(凍土)의 땅에서 그들이 마주했을 엄동설한의 냉기와 이역(異域)의 풍광은 어떤 것이었을까?! 고대사에 따르면 고구려와 멀지 않고, 발해의 강역(疆域)이었을 블라디보스토크.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고토(故土)라 여기는 지역이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토크다.이틀을 보낸 블라디보스토크의 인상은 강렬하게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여유 있고 기품 있는 시민들의 자세와 걸음걸이는 21세기 강국으로 비상하는 러시아의 기상과 상통해 보였다. 국립 블라디보스토크 경제 경영대학 학생들의 잰걸음과 활달함은 유쾌한 것이었다. 장춘과 길림 등지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러 온 중국 학생들의 열기 또한 즐거웠다. 한류와 한국어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거인 러시아와 러시아어 그리고 러시아 문화와 경제, 예술을 익히는 청춘들의 자태는 흐뭇한 것이었다. 국적과 무관하게!짧은 블라디보스토크 여정을 마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면서 나의 흉중(胸中)은 자못 복잡해진다. 어떤 여정과 풍광이 나를 맞이할 것인가?!

2015-02-27

보수와 포퓰리즘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2014년 연말정산 대란(大亂)과 2015년 신년벽두에 터져 나온 건강보험료 개선안 백지 (白紙) 사태는 현 정권과 집권여당의 포퓰리즘을 가감 없이 노정(呈)한다. 포퓰리즘은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같은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를 말한다. 대중이 환호하고 박수치는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특정정파에 기초한 정권연장을 꾀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근저에는 분할지배 전략이 잠복(潛伏)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연말정산에서 불거진 문제의 핵심은 `증세논쟁`이다. 현 정권은 `증세 없는 복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런데 연말정산의 방향은 증세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고,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을 취한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이 시행된 게다. 문제는 정작 다른 데서 불거졌다.정부는 연봉 5500만 원 이하 소득자는 세 부담이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제조건에 따라 부담이 늘어나는 납세자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했다. 게다가 모순적인 정부정책이 동시에 실행되고 있기도 하다. 2013년 세법 개정안에서 다자녀소득공제와 출산소득공제 혜택을 폐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청와대는 저출산 (低出産) 위기를 호소하며 출산장려책을 펴고 있는데, 기획재정부는 다자녀가구에 부담을 가중(加重)하는 세법을 만든 것이다.사정이 이럴진대 관련부서 책임자가 나서서 국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서민들은 연초부터 한 번에 2천원이나 오른 담뱃값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형국 (形局) 아닌가! 억장이 무너지고 속이 부글부글할 때 맨 처음 손이 가는 것이 담배고, 그 다음은 술이다. 하기야 담뱃값을 한꺼번에 80% 올려놓고 한다는 소리가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는 오리발 정부이고 보면 유구무언(有口無言)이지만.연말정산 대란이 숙질 무렵 후속타(後續打)로 제기된 것이 건강보험료 개선안 철회(撤回)다. 현행 건강보험료는 적잖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보건복지부는 지난 3년 동안 11차례의 전체 기획단 회의를 거쳐 개선안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기획단은 부자들의 보험료를 인상(引上)하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안(方案)을 만들었다. 그것을 장관이 나서서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돌려버린 게다.작년 2월에 동반 자살하여 세간을 울린 송파구 세 모녀(母女)는 월 평균 5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냈다. 하지만 5억 재산가인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한 푼도 안 내도 되는 것이 건강보험료 실태다. 퇴직 (退職) 다음날 직장인 아내의 피부양자(彼扶養者)가 됨으로써 그는 단돈 1원의 보험료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모순(矛盾)을 해결하려던 방안을 단숨에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정치의 요체(要諦)는 분배(分配)다.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금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서 빈자들의 비용으로 쓰는 것이 정치행위의 근본 가운데 하나다. 정당한 과세와 올바른 정책집행이 정치의 본령(本領)이다. 눈여겨 볼 것은 정책의 결정과 실행에 얼마나 일관성이 게재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볼멘소리가 들린다 해서 장시간 숙고해온 정책을 포기하거나, 특정계층과 계급을 위해 정책을 포기함은 온당(穩當)치 않다.작금(昨今)에 진행되고 있는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그리고 건강보험료 문제를 들여다보시라! 청와대와 여당은 정책의 일관성은 고사하고 국민들의 반응이 어떤지 눈치 보느라 여념(餘念)이 없다. 전임정권이 흥청망청 내려놓은 법인세 (法人稅) 인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는다. 법인세는 내려가고 소득세만 늘어가니 증세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포퓰리즘`이란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어떤 상황에서도 소신(所信)과 원칙(原則)을 가지고 정책을 실행하는 길만이 국가경영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첫 걸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보수의 제1과 제1장이기도 하다! 현 정권 담당자들이 진짜 보수(保守)라면 말이다!

2015-02-13

집안(集安)에서 장춘 가는 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집안(集安)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강계(江界)와 접해 있는 인구 23만의 도시다. 그곳은 427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遷都)할 때까지 400년 넘는 세월 고구려의 수도였다. 동명성왕 주몽은 수도를 오늘날 요령성 환인(桓仁)으로 비정(比定)되는 졸본(卒本)에서 고구려를 건국한다. 주몽의 아들 유리왕은 서기 3년에 수도를 집안으로 옮긴다. 2012년 7월에 발견된 고구려비 때문에 집안은 뜨거운 감자로 부각됐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진행하던 중국과 그것에 반대하는 한국 사이에 역사논쟁이 촉발됐던 것이다. 집안 고구려비는 아직도 논쟁의 한가운데 있지만, 요즘은 소강상태(小康狀態)다. 그럼에도 중국정부는 집안에 고구려 전문 박물관을 개장해 동북공정의 마지막 단계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인상이다.집안 박물관에서는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서 무거운 분위기다. 나는 박물관 1층에 양각으로 부조된 대형조형물 앞에서 망연해진다.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태호 복희와 여와, 신농씨가 사신(四神)의 호위를 받는 모습 때문이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이 그들을 옹위하는 것 같은 모습에서 놀라움과 기이함이 찾아들었다.중국의 신화시대를 대표하는 복희는 8괘와 문자를 만들고, 어업과 목축을 시작했다는 황제다. 그의 아내로 간주되는 여와는 토지창조의 신이며 생황이란 악기를 만들었다 한다. 신농씨는 쟁기를 만들고 농경을 가르친 신이다.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고구려 사신들을 호위무사로 두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고구려 벽화의 대표격인 수렵도와 무용도, 삼족오(三足烏)까지 부조되어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등장하여 고구려의 표상처럼 휘날렸던 삼족오 깃발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우리가 흠모하는 고대의 제왕 광개토대왕의 전가의 보도였던 삼족오가 집안박물관 부조에 장식처럼 자리하고 있는 정경이라니!혼란스러운 심사를 안고 장춘(長春)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지형(地形)과 산세(山勢)는 전형적인 한반도의 모습이었다. 삐죽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온유한 등성이를 가진 산들과 그 안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분지와 크고 작은 물줄기는 여기가 중국인가, 하는 의구심(疑懼心)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눈 때문에 미끄러운 도로를 여덟 시간 넘도록 달려야 했던 집안에서 장춘 가는 길에서 동북아 역사논쟁을 떠올린다. 한국과 중국은 고대사 (古代史) 논쟁을 진행 중이고,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중심에 둔 현대사 (現代史) 논쟁이 한창이다.많은 나라가 고대사는 팽창의 역사로, 현대사는 수난(受難)의 역사로 기록한다. 한중일 세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광개토대왕의 정복사업을 자랑스레 가르친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면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착취와 억압을 강조한다. 이것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논쟁과 정치적 갈등이 정리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첫 번째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그것은 각자의 주장을 최대강령으로 삼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이 각자의 주장을 상호 정리하고 충분히 숙고하고 토론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2005년 4월 대구에서 열렸던 `한일역사공통교재`라는 부제(副題)가 딸린 조선통신사 출판기념회는 좋은 선례(先例)가 될 것이다. 전교조 대구지부와 히로시마 교원노조가 상호대화와 토론을 거쳐 만들어낸 한일 최초의 역사공통교재 `조선통신사`! 어느 일방의 주장이나 기록을 우선하지 않고, 상호방문과 대화에 기초해 쉽고 다채로운 내용으로 설득력을 얻은 `조선통신사`!그럼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문제는 있다. 인문학도들의 취업난(就業難)을 구실로 대학들이 앞 다퉈 인문학 관련학과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교육부는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대학의 인문학 폐과(廢科)를 선도하고 있다. 역사와 철학, 문학이 부재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생각해보시라. 역사전쟁에서 밀려난다면 우리에게 장쾌한 미래나 장밋빛 전망이 있겠는가?!점차 어둑해지는 집안-장춘 감도(街道)에서 나의 생각은 암담해지고 있었다.

2015-02-06

노자삼보 (子三寶)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노자삼보`라는 말은 낯설지 모르겠다. `도덕경`을 읽은 사람들은 `상선약수(上善若水)`나 `무위자연 (無爲自然)` 혹은 `유약승강강 (柔弱勝剛强)` 같은 말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하되 노자는 인생과 세상을 거론함으로써 퍼내고 다시 퍼내도 마르지 않는 커다란 샘을 제공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노자삼보`라고 생각한다. “아유삼보(我有三寶), 지이보지(持而保之) 일왈 자(一曰 慈) 이왈 검(二曰 儉), 삼왈 불감위천하선(三曰 不敢爲天下先)” (도덕경·제67장)“내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서 그것을 간직하여 소중히 지키고 있다. 그 하나가 자애로움이고, 그 둘이 검약이며, 그 셋이 천하를 위해 감히 나서지 않는 것이다”노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천자의 나라 주나라가 쇠미해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였다. 노자는 대륙전역을 휘감고 돌던 전운과 살육(殺戮)을 피해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거기서 윤희를 만나게 되어 하룻밤에 써주었다는 글이 `도덕경`이다. 저잣거리의 시끌벅적함과 세상의 명리(名利)와 홍진(紅塵)을 버리고 은거하기 직전의 소회(所懷)가 차고 넘치는 `도덕경`.그가 설했던 삼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리라 믿는다. 사람이 어디에 있든 모든 죽을 운명에 처한 것들에 대한 자애로움은 근본 가운데 근본이다. 검약은 모두 가난했던 옛날이나,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한 요즘에도 소중한 덕목이다. 그럼에도 내가 중시하는 덕목은 세 번째 항목인`불감위천하선`이다. 왜 그럴까?!노자 스스로 그 해답을 주고 있다. 감히 나서지 않기 때문에 능히 그릇을 이루고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릇을 이루고 자란다는 것(能成器長)을 세상의 우두머리가 된다거나 그릇들 가운데 으뜸가는 그릇이 된다고 옮기는 사람도 있다. 여하튼 나서지 않음으로써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그런데 여러분 주위를 돌아보시라! 우리 주변에는 감히 나서는 사람들이 적잖다. 자신의 존재의미와 존재가치를 실현하는 방도(方途) 가운데 하나로 현대인은 앞 다퉈 스스로 나서고 있는 게다. 나서는 영역도 다채롭기 그지없다. 식당이나 주점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귀담아 듣는 사람보다 핏대 올리며 떠드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 곳에서조차 감히 나서지 않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나라 안이 언제나 시끄럽고 바람 잘 날 없다. 다들 잘났다고 떠들어대니 고요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하나의 사안(事案)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이나 사유,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충분한 토론이 있고 난 연후에 판단하고 말해도 충분하다. 어쩌면 그것은 반드시 준수해야 할 절차이자 도리일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결과한 것은 목소리 크고, 고집 세며, 연줄 있고, 빽 있는 자들이 득세하는 소인배 천국이다. 끼리끼리 해먹는 연고주의(緣故主義)와 지역패권과 파당(派黨)의 이해관계 관철이 일상화돼 있다. 정작 천하를 위해 나서야 할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사래만 치고 있는 형국 아닌가!나는 이런 불합리(不合理)하고 부조리(不條理)하며 부도덕(不道德)하고 불의(不義)한 상황의 조속한 종결을 고대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땅의 오랜 숙원(宿怨)인 민초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노자가 `불감위천하선`을 주장한 것은 혼탁(混濁)한 시대상이 첫째가는 원인이다. 하지만 21세기 대명천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더 이상 팔짱끼고 수수방관(袖手傍觀)하면 안 될 듯하다. 무관심과 냉담함이 야기하는 사회 정치적인 폐해가 우심하기 때문이다. 노자삼보의 핵심은 개인수양과 은일(隱逸)에 있다. 그것의 생활화가 가능하다면 그리 하되, 녹록치 않은 나라안팎의 정세로 보건대 자애롭고 검약한 사람들의 `감위천하선`은 이제 시대의 소명(召命)이 되고 말았다는 소감이다.창밖에 겨울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다!

2015-01-30

조조할인(早朝割引)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세계 문자 올림픽에서 한글이 거푸 우승하자 대회가 사실상 폐지됐다고 한다. 2009년 1차대회 이후 2013년 10월 태국 방콕에서 세계 27개국 문자가 경합(競合)을 벌였다. 문자 올림픽의 심사기준은 문자의 기원, 문자의 구조와 유형, 글자의 수, 글자의 결합능력, 문자의 독립성과 독자성, 문자의 실용성, 문자의 응용 개발가능성 등을 기초로 했다. 한글은 16개국 문자가 경합한 1차대회에 이어 연속 1위에 오르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2위는 인도의 텔루구 문자, 3위는 영어 알파벳이 차지했다. 영어 알파벳 26자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는 300여개인데 반하여 한글 자모 24개로 드러낼 수 있는 소리는 8천7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한글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임이 입증된 것이다.근대에 만들어진 문자 이외에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밝혀진 유일한 문자가 한글이다. 우리는 그것을 `세종어제(世宗御製) 훈민정음`에 나와 있는 두 문장으로 기억한다.“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저 홇베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펴디 못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위하야 어엿비녀겨 새로 스물여듫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쑤메 편안케 할 따라미니라”세종대왕 덕에 오늘날 우리는 기계화된 언어생활에서 세계 첨단(尖端)을 자랑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문제는 있다. 한글의 명사와 추상명사에 게재돼 있는 한자어와 각종 한문자료 문건이다. 여기서 발원(發源)하는 것이 오래되고 유명한 한글 전용론과 한자 병행론이다.남북한과 대만, 중국 및 일본은 한자와 유교, 불교와 도교(道敎)를 공유하는 동일한 문화권에 속한다. 일본에 가든 대만에 가든 혹은 간자체로 전환을 이룩한 중국에 가든 한자로 수담(手談)이 가능하다. 10년 전 연길에서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여관 종업원에게 `開 房機`를 한자로 써보였더니 환하게 웃으며 에어컨을 켜주었던 기억이 새롭다.요즘 우리나라 청년세대는 한자와 한문에 거의 까막눈이다. 칠흑 (漆黑) 같은 어둠 대신 칠흙 같은 어둠이라 하고, 독거노인(獨居人) 대신 독고노인이라 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노문학과가 노르웨이 문학과인 줄 아는 학생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1987)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뒷맛은 찜찜하다.어린 시절 나는 `삼국지` 주인공 유비를 좋아했다. 그런데 영화선전 포스터 문구(文句)에는 언제나 `조조할인`이라 적혀 있는 것이었다. `유비나 관우는 할인해주지 않고 왜 조조만 할인해주는 걸까?` 난 언제나 그것이 궁금했다. 중학생이 되어 한자를 공부하기 시작한 연후에야 비로소 `조조할인`의 온전한 뜻을 알고 혼자 웃을 수 있었다.나이 먹어감에 따라 `논어`와 `도덕경`, `장자`와 `금강경`, `주역`과 `사기열전`을 통독하면서 한자, 나아가 한문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우치고 있다. 한국으로 귀화(歸化)한 러시아 태생 한국학 전공자 박노자 교수는 한국 학생들이 왜 사자성어(혹은 古事成語)조차 공부하지 않는지 의문을 표시하곤 한다.언어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사자성어를 능가(駕)하는 어떤 외국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사구팽, 지록위마, 정본필원, 수기치인, 조삼모사, 예미도중, 학철지부, 망양지탄, 오월동주, 물극필반, 난이상성, 전후상수, 상선약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허다한 사자성어가 환하게 웃고 있다. 한자와 사자성어는 영어나 독어 등에 들어 있는 라틴어나 희랍어처럼 해당언어의 내용과 근거를 충실하고 화사(華奢)하게 만들어주는 뿌리 구실을 한다.21세기 세계를 양분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濃厚)한 중국과 수천 년 역사와 문화를 교류한 우리에게 한자와 한문공부는 필연적인 과제로 보인다. 우리의 자랑 한글을 더욱 풍성하고 넉넉하게 뒷받침해주는 기제로써 한자와 한문의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운용은 우리 문화와 예술 그리고 역사를 한층 더 풍부(豊富)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2015-01-23

일기예보 유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왕의 남자`로 천만관객 신화를 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소품(小品)이지만 제기하는 문제는 흥미롭다.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왕년의 스타 최곤은 서울을 떠나 영월로 간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는 작지만 인간적인 사건과 마주치게 된다. 서울을 기준으로 세상사를 재단했던 철없던 인간의 변모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낸 `라디오 스타`.매일 아침 독자 여러분은 일기예보를 보고 들으실 것이다. 주관 방송사가 어디든 여러분은 거의 똑같은 내용을 확인하실 거라 믿는다. 진행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몇 가지 어휘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현재 서울 기온은, 지금까지….”다른 것은 참겠는데, 일기예보가 `서울을 비롯한` 이른바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는 점은 견디기 어렵다. 한국의 인구 5천만 가운데 2천만이 그곳에 몰려 있음은 주지(周知)하는 바다. 그러하되 나머지 3천만은 `호갱이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서울에서 시작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끝나는 일기예보는 중앙(中央)의 폭력성(暴力性)을 집약적(集約的)으로 표현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식으로 일기예보를 하지 않는다.유럽의 경우 북부에서 시작해 남부로 내려가거나 (그 반대이거나), 서부에서 시작해 동부로 옮아간다. 이것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우심(尤甚)한 중앙집권국가 경험을 한 나라조차 `파리를 비롯한 (모스크바를 비롯한) 수도권`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거주 지역을 가지고 국민을 양분하는 행위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이외의 권역에 사는 사람은 2등 국민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위화감 (違和感) 조성을 최대한 피하려는 최소한의 배려(配慮)다. 부모와 조국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출생지를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태어나자마자 1등과 2등 내지 3등 국민으로 거주자를 구분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흥미로운 점은 대경지역의 방송사들도 똑같은 행태를 답습(踏襲)한다는 사실이다. 대경에서는 “현재, 대구를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은”으로 시작해서, “현재 대구기온은….”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시청자나 청취자가 울진이나 영덕, 봉화나 청송, 안동이나 의성, 영천이나 경산, 구미나 김천, 왜관이나 청도 등지에 산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대도시 중심주의가 우리나라 시민들을 옥죄고 있다. 대경 지역민들은 대구로, 대구 사람들은 속속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몰려간다. 지방분권(地方分權)과 지방자치(地方自治)를 목 놓아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음속은 중앙을 넘본다. 이런 연유로 지방 공동화 (空洞化)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내가 일기예보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언어가 가지는 중독성(中毒性)과 주술성 (呪術性) 때문이다. 날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듣노라면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자동화된 무의식으로 그 내용을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화되고 내면화된 국민 편 가르기를 당연지사(當然之事)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지방자치와 국민통합(國民統合)은 그만큼 어려워진다.`라디오 스타`에서 주인공은 소도시 거주민들의 소소하되 애잔하고 정감 어린 사연들을 전달하면서 인간적인 정리(情理)를 깨닫는다. 자기중심주의, 서울과 수도권 중심주의의 편벽하고 고루하며 완고한 아집(我執)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 개명천지에서 5천만 국민 모두가 평온하고 다채롭게 세상과 만나는 첩경(捷徑)일지 모른다.어느 날 라디오에서 “임원항의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북서풍이 초속 5미터 내외로 불고 있습니다.”하는 방송이 나온다면?! 아마 그날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온전하게 시작되는 첫 번째 날이 될 것이다!

2015-01-16

경북대에 총장을 許하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시국 불안정을 이유로 조선에 댄스홀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1937년 1월 `경성(京城)에 딴스홀을 허(許)하라`는 제목으로 계간지 `삼천리(三千里)`에 흥미로운 글이 게재된다. 영화배우 오도실, 기생 박금도 같은 여성과 레코드회사 부장 등 8명이 조선총독부에 `딴스홀`을 허가해 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아시아 문명도시(文明都市)에는 모두 댄스홀이 있으니, 경성에도 댄스홀을 허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당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일부 부유층을 포함한 인텔리 룸펜 프롤레타리아 계층 남녀는 `모던뽀이`와 `모던껄`을 자처(自處)하며 향락(享)과 유희(遊戱)에 젖어들었다. 당대의 대표적인 만문만화가(漫文漫畵家) 석영 안석주의 그림에서 그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안석주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2003년에 출간된 `모던 뽀이, 京城을 거닐다`를 일독(一讀)하시기 바란다.각설하고, 2015년 현재 국립 경북대학교에는 총장이 없다. 벌써 5개월째 총장이 공석(公席)이다. 지난해 9월부터 경북대 총장자리가 비어있다는 얘기다. 어째서 이런 사단(事端)이 생겨난 것일까?! 전임 대통령 이명박은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그의 충실한 하수인(下水人) 이주호는 교육부장관 재직 중에 직선제폐지와 국립대 법인화를 거세게 밀어붙였다.교육부의 정책을 볼라치면 현 정권은 본질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2년 동안 부산대를 제외한 전국 39개 국공립대학의 총장 직선제가 폐지되고 간선제로 전환됐다. 사태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교육부가 쥐고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있다. 행·재정적인 불이익이 그것이다. 교육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국공립대학은 행정적인 면에서나 재정적인 면에서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관계당국이 강제한 사립대학 반값등록금 정책에 따라 국공립대학도 수년 째 등록금을 동결했거나 최소한 인상에 머물렀다. 그로 인해 국공립대학 재정 또한 피폐일로(疲弊一路)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총장 직선제 폐지라는 교육부 지침을 따라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대학의 생존 내지 미래기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대학교 본부와 교수들의 자세는 추사 `세한도(歲寒圖)`의 `송백 (松柏)` 같은 것이다!)경북대 역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두 차례에 걸친 `총장선정위원회`의 간선제로 김사열 후보자를 당선자로 배출했다. 그러나 구랍(舊臘) 15일 교육부는 두 문장짜리 공문으로 김사열 총장 후보자 임명제청을 간단히 거부했다. 거부원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一言半句)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조속한 시일 안에 총장 후보자를 재선정하라는 지시만 하달(下達)했을 따름이다. 이에 경북대 구성원들은 다각도로 문제해결에 진력하고 있다.주지하듯이 경북대는 우리 대경지역의 거점중심 대학이자 간판 국립대학이다. 서울대가 법인화로 국립대 자격을 상실한 이후 우리 경북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대학이다. 이런 대학의 총장이 5개월째 공석이라는 것은 550만 대구경북주민을 우롱(愚弄)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교육부는 임명제청 거부원인을 석명(釋明)해달라는 정보공개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고압적(高壓的)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20세기 산업화시대(産業化時代)의 주역이었던 숱한 엘리트가 경북대에서 수학(修學)했다. 우수하지만 가난했기에 서울유학을 포기했던 수많은 인재들이 경북대를 거쳐 이 나라의 동량(棟梁)이 됐다. `우골탑 (牛骨塔)` 신화의 주인공들이 이 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牽引車)였던 때 경북대는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동생들의 학비를 경감(輕減)해주었던 은혜로운 배움터였다. 그런 경북대가 이제 정부와 교육부로부터 내침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80년 전 `경성에 댄스홀을 허하라!` 했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외침을 받아서 우리 대구경북 지방민들은 이렇게 외친다. “지방을 홀대하지 말라!”, “경북대에 총장을 허하라!”

2015-01-09

신년벽두에 영화를 생각하다!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천체물리학에 기초한 영화 `인터스텔라`와 저예산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가 화제다. 전자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후자는 다양성영화 부문에서 `비긴 어게인`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인터스텔라`가 흥행몰이에 성공했을까. 다른 한편으로 어째서 연세 지긋한 노인들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상대성이론, 블랙홀, 웜홀, 5차원 공간 같은 물리학 용어가 난무하는 영화에 관객들이 몰린 까닭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한국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충성도와 과학적 소견이 높아 흥행한 것 같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지구를 떠나고 싶은 한국인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시공간을 살고 있는 21세기 초 한국인들의 현실 불만족과 탈출심리를 자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지난해 2월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 4월16일 `세월호 대참사`와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연말정국을 강타한 `십상시`사건 등을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은 자명해진다. 출구가 꽉 막힌 세상에 시원한 활로를 열어주는 청량제 같은 영화가 `인터스텔라`아닌가. 지구파멸과 인류멸망을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인간의 이야기. 그것에 깔린 부성애와 남녀의 사랑! 무엇이 빠져 있는가?! 저 멀리서 희망의 등불이 빛나고 있지 아니한가!아버지보다 훨씬 늙어버린 딸 머피가 임종의 자리에서 환하게 아버지를 보내주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에드먼드 항성에서 후퍼를 기다리고 있는 아멜리아에게 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날이 쇠약해지는 아버지의 자리와 권위가 영화에서는 막강하다. 아버지 역시 부성애로 똘똘 뭉쳐 있다. 이런 기특한 장면이 `인터스텔라`로 관객을 인입하는 효과적인 기제다.`님아!`는 7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횡성의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록영화다. `워낭소리`(2008)의 흥행기록을 가뿐하게 넘어서 500만 관객을 향해 순항중이다. 요즘 남녀의 세태라면 100일 만남을 넘기기도 힘든데, 3만일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이야기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영화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양상은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삶의 냄새가 은은히 풍겨 나올 따름이다.하지만 `님아!`에는 치명적인 매력이 담겨 있다. 그것은 부부의 상호존중과 이해와 배려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그분들은 서로 말을 높인다. 자신이 성치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천진난만한 동심을 오롯하게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 생일날 말다툼을 벌이는 맏딸과 장남을 보면서 그렁그렁한 눈물바람을 보이는 노인 내외의 모습은 이 나라 이 시대 어르신들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처절한 가난의 굴레도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주어진 길을 묵묵하고 꿋꿋하게 살아온 노인들의 의지와 지혜가 대단하다. 먼저 가버린 육남매의 내복을 하나하나 손보는 할머니와 그것을 응시하는 할아버지의 눈길은 가슴 저미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무명으로 이 땅을 살아갔던 우리들의 허다한 부모님들의 자화상일 것이다.우리는 `인터스텔라`의 기막힌 출구모색과 `님아!`의 백년해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 2014년을 보냈다. 이제 갑오년은 가고 을미년이 밝았다. 갑오경장과 갑오농민전쟁의 전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 구한말의 사무친 원한이 을미사변으로, 그 이후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로 이어졌다. 작년의 허다한 정치-경제-외교-문화-군사적 실패를 올해는 되풀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님아!`와 `인터스텔라`가 유익한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