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전 일이다. 이층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먼 남산을 바라보던 참에 재미난 풍경이 보인다. 참새 두 마리가 거봉 포도나무 아래서 부리를 비벼대고 있는 것이다.
부리를 비벼대던 참새 한 마리라 허공(虛空)을 가르고 사라진다. 그 자리에 남겨진 참새가 다급한 듯 목소리를 높인다. 잠시 후 다시 날아온 참새가 녀석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준다. 아하! 그것은 먹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참새들은 연인관계가 아니라, 모자(母子) 내지 모녀관계인 것이다. 내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준 장면이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 집을 나서다가 새 우는 소리에 찾아보았더니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참새였다. 동네에 뱀이 심심찮게 출몰하고, 길고양이들도 적잖은 터! 참새를 손에 들고 이웃을 전전했다. “바빠서 참새 돌볼 겨를 없어요!” “집에 참새 볼 사람이 없네요.” 그러다가 초로(初老)의 신사가 흔쾌하게 어린 참새를 받아들었다. “제가 길러보지요!”그 후의 일은 확인하지 못했다. 창공을 비상(飛翔)했을 것이라 추측할 뿐!
그러니까 포도나무 아래서 울어대던 녀석은 작년 그 참새처럼 깃털이 다 자라기 전에 둥지에서 떨어진 게 분명했다. 이소(離巢)하기 전에 성질 급한 녀석들이나, 부주의한 놈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미로서는 이중고(二重苦)를 감내(堪耐)해야 한다. 아직 둥지에 있는 녀석들도 돌봐야 하고, 지상(地上)에서 애타게 어미를 부르는 덜떨어진 놈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거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선다. 녀석이 다급하게 날갯짓을 해보지만 기껏해야 1~2m 낮게 날 수 있을 뿐!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온다. 마음속으로 녀석의 행운(幸運)을 기원(祈願)하면서!
그리고 나흘 전 오후! 촌구석을 찾아온 손님들과 집밖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녀석을 보았다. 이번에는 앞집 담장 부근에서 짹짹거리고 있다. 맑은 눈을 들여다보고 날갯죽지를 살피고 야생초 덤불 속에 내려주었다. 속히 날개가 자라나서 하늘을 날아다니기를 소원(所願)하면서!
다시 하루가 지났다. 귀에 익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녀석이다. 이번에는 거처(居處)가 바뀌었다. 폐가(廢家)가 되어버린 옆집 마당이다. 망초와 며느리밑씻개가 점령해버린 초록(草綠)의 공간에서 녀석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조용히 다가서보지만 어디 있는지 종잡기 어렵다. 하지만 목소리로 보건대 녀석은 아주 건강(健康)하다. 어디선가 어미가 먹이를 물고 대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녀석이 온전하게 자라나 창공(蒼空)을 비상할 때까지 어미는 분명히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먹잇감을 찾고, 시시각각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을 심사숙고 하면서 새끼 주위를 배회(徘徊)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날이 오면 멋진 축하비행을 함께할 것이다. 참으로 극진(極盡)한 모성(母性)이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초동대응(初動對應)만 제대로 했더라면 별 탈 없이 지나갔을 터. 정권의 무능(無能)과 타락(墮落)과 부패(腐敗)의 진면목(眞面目)을 재확인하는 사건이 `메르스 사태`아닌가?! `세월호 참사`를 고스란히 재현(再現)하는 권부(權府)와 행정관료들의 무능과 태만과 타락이 불러일으키는 혼란의 극치가 국민을 분노와 경악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미참새는 부주의하고 혈기 방장(方壯)한 어린것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늙은 참새 같은 어머니는 자식과 손자들의 안위(安危)가 걱정되어 사태촉발을 미연(未然)에 방지한다.
그러하되 국민을 상전(上典)으로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보살피고 받들어야 할 권부와 정권과 행정관료들의 행태는 참새의 지혜만도 못한 것이다. 이들을 믿고 다시 몇 년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새삼 흐려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