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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어디로 가는가

등록일 2015-08-07 02:01 게재일 2015-08-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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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여름이 정점이다. 만나면 하는 말이 “덥다, 더워!”다. 그래도 은행과 산수유, 모과와 석류는 소리 없이 익어간다. 어디선가 말매미 우는소리 귀가 소란하다. 여름은 그렇게 깊어간다.

얼마 전 흥미로운 자료가 나왔다.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행시 합격자들의 의식조사 결과다. 5급 예비 사무관인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크게 진보 40%, 중도 35%, 보수 25%로 나뉜다고 한다. 관심을 끄는 항목은 그들의 83%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힘을 재력(財力)을 꼽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92%가 부(富)의 공정한 분배가 우리나라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계층이동(階層移動)이 가능하다`는 항목에는 70%, `우리사회가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한다`는 항목에는 67%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정치적 성향의 분포(分布)는 크게 유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대정신(時代精神)과 권력구조 및 언론과 사회 환경의 영향이 지대(至大)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본디 민심이야 조변석개(朝變夕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돈으로 표상(表象)되는 재력과 부의 분배문제다. 언젠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명언(名言)을 남긴 바 있다. 여기서 시장은 대기업과 재벌, 특히 삼성을 가리킨다고 전해진다. 3공부터 5공까지 정치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에는 재벌 회장들이 앞 다투어 정치헌금을 내곤 했다. 재계(財界)가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21세기 새로운 천년 벽두(劈頭)부터 우리는 휘청거렸고, 정치권력은 서서히 경제권력 앞에 주눅 들기 시작했다. “부자 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조악(粗惡)하기 그지없는 서책들이 불티나게 팔렸던 암흑기(暗黑期)를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그 결과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보여주는 통계치가 예비 사무관들의 의식조사다.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지 않는 사회, 계층이동 가능성이 현저하게 약화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달달 볶아도, 그래서 이른바 `스카이` 들어가도 졸업하면 백수(白手)가 될 확률이 절반이다. 공부로 성공하고 출세하는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

한국사회의 불의와 불평등은 가진 자들의 부패(腐敗)와 무능, 타락과 패거리주의에서 발원한다. 요즘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롯데재벌` 형제의 혈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려 67년 동안 롯데를 다스려온 신격호가 소유한 지분은 불과 0.05%다. 친족 지분 다 끌어 모아도 2.41%밖에 안 된다. 기막히게 조작된 거미줄 식 순환출자구조로 유지해온 악덕재벌 아닌가? 416개의 순환출자구조가 그물처럼 짜여있는 것이 롯데의 자산이자 자랑이다.

한국재벌 기업들의 이런 비윤리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순환출자구조는 줄어들되 근절되지는 않았다. 재벌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돈은 귀신과도 통한다!”는 의미의 `전가통신(錢可通神)`이란 고사성어가 있는 것을 보면 돈의 위력이 막강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들을 장악하고 지도 편달해야 하는 최고 권력 담당자들과 정당 및 행정 관료들의 무능과 부패와 타락(墮落)이다. `관피아` 논쟁을 낳으면서 우리를 절망케 했던 관료들 아닌가?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변(轉變)을 꿈꾼다. 개인과 가족, 친인척과 패거리가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깨끗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들의 출현을 간절히 희구한다. 보름 지나면 스러지는 매미가 아니라, 천년을 사는 주목(朱木)처럼 의연하고 당당한 인간들이 다스리는 그런 나라의 백성이고 싶다! 여름이 깊어야 가을이 오는 법이다. 입추 말복 지나면 처서 오리니, 바람도 선선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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