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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간에 대한 예의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언젠가 `동방의 등불`이나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린 나라가 있었다. 국권(國權)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겼지만 아시아의 미래를 밝힐 나라로 지목된 나라. 국민소득 세계 최하위였지만,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살아갔던 민초들의 나라.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이나 돈벌이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설 줄 알았던 예의와 염치의 나라. 나와 내 마누라 내 자식뿐 아니라, 이웃과 그의 가족 역시 소중하게 여겼던 인간들의 나라.언제부턴가 그 나라가 실종됐다. 지도상으로는 있다는데, 실체가 모호하고 형상이 배배틀려 예전 용모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세계유수의 경제 대국이자 `한류`를 수출한다는 문화강국, 큰 나라 대통령이 툭하면 거론하는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 얘기다. 먹고 살만해진 나라에는 돈과 권력과 성공이라면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종횡무진 하는 인간들로 가득하다. 가족주의를 뛰어넘는 가축주의와 불고염치가 판치는 나라.지구 반대쪽 에스파냐에서 상당히 기이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동영상. 70세 넘어 보이는 배불뚝이 노인이 운동장 한가운데 서있다. 발렌시아 축구 경기장.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기립하여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외관으로 보아도 노인은 발렌시아 단장도 고위 관계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그는 발렌시아 축구팀 장비관리사 베르나르도 에스파나. 지난 1961년부터 55년 동안 선수들의 유니폼과 축구화를 세탁해왔던 인물. 그를 위한 은퇴식이 축구경기를 앞두고 펼쳐진 것이다.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허공을 응시한다. 한낱 저런 노인을 위해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과 코치, 감독이 모두 나와 박수를 치고 있다. 거기에 5만 관중이 합류해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독자 여러분은 이런 은퇴식을 한국에서 보신 적이 있는가?! 55년 동안 빨래하고 운동화 닦은 노인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은퇴식을 함께하는 장면을 보셨는가?! 평생 무명으로 살면서 생계를 꾸려온 중늙은이를 위한 소략하되 의미 충만한 자리를 대면하셨는가?!에스파나의 은퇴식에서 떠올린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누구나 어떤 자리에서건 주어진 소명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때 사회가 베푸는 최소한의 예의.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심심찮게 경제위기를 겪는 에스파냐. 그럼에도 세계최고 수준의 축구리그를 가진 나라. 나는 그날 깨달았다. 어째서 에스파냐가 세계최강의 축구실력을 갖추게 됐는지. 아주 작은 인간을 향한 그들의 배려는 아름답고 눈부신 것이었다.돌아보시라, 대한민국을! 아침저녁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허다한 갑들의 행악질을 우리는 목도한다. 너무 자주 너무도 익숙하게 전달되는 가진 자들의 부도덕과 불의와 비정상이 횡행하는 나라.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그 부모를 죽이는 황음무도(荒淫無道)한 나라.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모든 것이 가능한 물신(物神)의 나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도 예의도 던져버린 천둥벌거숭이들의 나라 대한민국.이런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엽기적인 사건사고가 빈발해도 무감각해진 사람들. 가진 자들의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가 횡행해도 그것을 제지할 아무 수단도 방법도 없는 나라.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말하면 그것을 나무라는 몰염치한 노인들의 나라.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임계점을 가리키는 시계소리 들린다. 폭발하기 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창밖에 태풍 지나간다.

2016-09-02

금복주 유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누구에게나 고유한 습관이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 동네에 가면 그 동네 소주를 먹는다. 이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다. 경북대에 둥지를 튼 게 25년 전 일이니, 그 동안 나는 줄기차게 금복주를 마셔온 셈이다. 더러 타지(他地)에서 온 친지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소주를 찾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주로 금복주를 벗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봄부터 금복주와 작별했다. 다른 선택이 없으면 모를까, 일단 금복주를 떠나기로 했다.이유는 간단하다. 금복주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우심(尤甚)한 기업이기 때문이다.금복주는 여성이 입사해 결혼을 통지하면 그 순간 해고를 감내해야 한다. 지난 8월 24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금복주의 이런 황당한 관행은 1957년 창사이후 6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무노조경영을 신조(信條)로 수십 년 재벌의 선두를 달린 기업도 있다지만, 이런 어리석은 신조는 케케묵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닐 수 없다.)금복주는 결혼하면 안정적인 회사업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여직원은 경리나 비서 같은 제한된 관리직만 맡겼다고 한다.경조휴가도 친가만 인정하고 외가관련 휴가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관행이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의 결혼을 퇴직사유로 예정하는 노동계약 체결 시 5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금복주의 행악질로 지난 6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여직원들이 부당해고 당했거나 불이익을 당했을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그런 것도 모르고 대구경북의 술이니까 무작정 금복주를 마셔왔던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깊이 사유하고 판단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살아온 자신을 질책하면서 금복주와 작별한 것이다. 하기야 이런 관행이 비단 금복주에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참에 낱낱이 밝혀져 그릇된 관행이 뜯어 고쳐지기 바란다.베를린에서 유학할 때 게오르크 렘케라는 중소기업에서 노동한 적이 있었다. 하루 8시간 남짓 6~8t의 물량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육체노동이었다.당시 52킬로그램 몸무게의 나로서 하루 6천내지 8천kg의 물량을 소화하는 것은 고단한 노릇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속한 부서(部署)의 십장(什長)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외스터라이히 부인(Frau Oesterreich)이 그 주인공이다. 성을 국가 이름에서 따온 재미난 경우다.그녀는 정년퇴직 2개월 앞두고 명예 퇴직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남녀불문하고 누구나 십장이 될 수 있는 나라, 정년이 코앞이라 해도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명예 퇴직시키는 나라 도이칠란트. 그런 일관성과 평등한 작업장이 부강한 공업국가 도이칠란트의 지금과 여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아주 특별한 육체노동이 아니라면,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자리는 거의 없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남성들의 편견장벽만 존재할 뿐이다.21세기는 막연한 신화나 전설 혹은 전통이라 여겨지는 우스꽝스러운 인습의 잔재(殘滓)와 작별해야 하는 시기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전역의 사람들과 실시간 연결되는 광명의 시간대에 60년 전 고용관행을 관철하는 시대착오적인 기업이나, 무노조를 신화화하는 후진적 그룹경영 방침으로 삼고 있는 기업이 세계유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참으로 희화적(戱畵的)인 일이다. 이런 일로 더 이상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결혼하면 여자는 물론 남자도 불편해진다. 가사노동의 분담과 양육 역시 여성 일변도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이 변하면 변한 만큼은 따라가야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 선두에 서지는 못할망정 뒤처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금복주가 하루속히 제정신을 차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금복주 마실 날을 기다려본다.

2016-08-25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하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987년 10월 초 제법 쌀쌀한 도이칠란트의 어느 가을날 나는 킬에서 쾰른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안에 있었다. 도이칠란트 북부에 자리한 슐레스비히 홀스타인의 주도(州都)인 킬(Kiel)의 친구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처음으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내린 이국(異國)의 풍광과 기후와 언어가 몹시도 낯설었던 기억이 지금도 삼삼하다. 쿠페형태의 서도이칠란트의 열차 한 칸에는 6인이 탑승 정원이었다. 나의 맞은편에는 젊은 도이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군대에 입소하는 대신 대체복무를 하러 떠나는 길이라고 했다. 당시 분단 상태였던 도이칠란트의 서쪽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군복무가 아주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한창 일하고 공부해야 할 나이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응당 입대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이국청년의 애수(哀愁)와 분노.당시 서도이칠란트의 군복무기간은 24개월 안팎이었고, 대체복무 기간은 다소 길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게 되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노인 전문병원 같은 사회복지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총을 잡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런 선택이 훨씬 낫다는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군대는 근본 인명살상을 조직적-체계적으로 연습하는 곳이다. 조국수호나 자주국방을 말하지만 근간에 깔린 것은 어쩔 도리 없는 살생 아닌가!얼마 전 청주지법에서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장 아무개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이 나왔다. 장 아무개는 “전쟁준비를 위해 총을 들 수 없다는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국방의 의무위반`이란 죄목으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판결을 담당한 이형걸 판사는 “사회봉사나 대체복무 등으로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국가에 기여할 방법이 있으며, 형법적 처벌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여기 멈추지 아니하고 이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에 갈등이 심각한데도 정부는 대안모색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징병제도가 실시된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중대한 헌법적 갈등상황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 판사의 이런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2004년 남부지법을 필두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를 선고한 이후 하급심에서 무죄선고가 잇따랐고, 유엔 인권이사회도 한국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음에도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2007년 국방부는 현역사병 복무기간의 2배에 달하는 기간 사회복지 시설에서 치매노인이나 중증 장애인 수발 같은 대체복무제 도입방안을 발표한다. 그러나 보수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국민정서를 핑계로 대체복무제를 철회해버린다. 이런 상황은 국회에서도 반복되었다. 17대부터 19대 국회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없이 폐기됐다.1948년 정부수립 이후 시작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69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대 청년들에게 전과자 낙인을 찍어가며 오로지 국방의 의무만을 되새김질하는 국방부와 국회는 세계의 변화와 국제사회의 요구에 눈감고 있다. 2013년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 사람은 지구 전체에 5천600여 명인데, 그 가운데 90%가 한국인이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해마다 5~600명을 전과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우울한 자화상이다.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국회의 적극적인 보완입법과 정부의 대안마련이 시급한 당면현안이다. 누구나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천부인권을 2016년에도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우리만큼이나 치열하게 냉전과 반공과 분단을 경험한 서도이칠란트의 관용과 지혜가 부럽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하라!

2016-08-19

대마도 기행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여행을 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단순한 관광이나 유희가 아니라, 무엇인가 흉중(胸中)에 남아 더러 상기(想起)되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8월 7일부터 8일까지 1박2일의 짤막한 대마도 여행을 다녀왔다. 오전 9시 반에 부산항을 떠나 10시 40분에 대마도 히타카쓰 항구에 도착한다. 폭염의 기세는 한반도나 대마도나 거기가 거기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 한여름 대마도 기행은 만만한 여정이 아니다.부산에서 대마도까지 직선거리가 49.5킬로미터. 대마도가 속한 큐슈 본토까지 직선거리가 80킬로미터. 거리로 따진다면 대마도는 한반도에 훨씬 가깝다.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 조공하고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도모했다고 전한다. 고려 말 왜구가 창궐하자 1389년 창왕이 박위를 시켜 대마도를 토벌했다. 1419년 조선의 세종 역시 왜구토벌을 목적으로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케 하기도 한다.대마도는 전통적으로 조선과 일본 양국의 지배를 받는 양속관계(兩屬關係)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592년 임진왜란의 거점이 됨으로써 대마도는 조선의 영향권 밖으로 사라진다. 1598년 임란종결 이후 실권을 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선조에게 조선통신사 파견을 강력히 요청한다. 1607년`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의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발(向發)했을 때 첫 번째 기착지(寄着地)가 대마도였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대마도 곳곳에는 조선과 관련된 사적이 적잖다. 조선통신사비도, 의병장 최익현 선생을 기념하는 절도 여름의 정밀(靜謐) 속에 고요했다.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1931년 36대 대마 도주(島主)이자 백작이었던 소 다케유키와 결혼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유적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소회는 지나가버린 역사의 자락에서 끼쳐 오는 아픔이거나 슬픔이다.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노산군의 거처에서 마주친 쓸쓸함이랄까?!종이에 남은 기록이나, 돌과 건축에 새겨진 글자가 추억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 담긴 행간을 사유하고 감응하는 것은 오롯이 지금과 여기를 살아가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6년 시점에서 우리는 최익현 선생의 내면이나,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은 덕혜옹주의 아픈 심연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럼에도 잠시 침묵하고 하늘을 우러르면 그분들의 상처와 이야기가 조곤조곤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90% 이상이 산으로 이뤄져 있는 대마도는 일본본토의 일용품 공급과 한국 관광객이 없으면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기야 폭염을 뚫고 거리와 사찰과 기념비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오직 한국인들뿐이었다. 여행 안내인은 여러 차례 우리 일행에게 예의범절을 각별히 당부하고 다시 당부하곤 했다. `대화(大和)`를 기본적인 틀로 사유하고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일상풍경은 정갈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인구 3만2천명의 작은 섬이기는 했지만, 일본풍이 면면히 이어진 듯 보이는 대마도. 깔끔한 도심지와 양보운전에 익숙한 운전자들, 시끄러운 법 없는 식당. 아마도 이런 것이 일본을 관광대국으로 인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기념품 하나를 팔아도 포장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주는 성실하고 세심한 점원들의 자세 역시 정갈하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일을 처리해가는 품이 무엇보다도 속도(速度)의 대한민국과 다른 점이었다.숱한 우여곡절과 사변(事變)으로 우리가 수난을 많이 당했던 과거사를 기억한다. 그럼에도 일본과 중국, 러시아는 우리가 운명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이웃이다. 그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땡볕을 뚫고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느낀 대마도 기행의 소회 끄트머리다.

2016-08-12

중국 굴기의 기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사드배치`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동아시아와 세계정세 변화를 도외시한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잖다. 이런 바탕에는 중국의 융성과 발전을 뜻하는 중국굴기가 자리한다. 2006년 중국 중앙방송은 12회에 걸쳐 `대국굴기`를 방영한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필두로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나라들에 대한 역사 기록물이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도이칠란트, 일본, 러시아, 미국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국굴기`의 최종편인 `대도행사(大道行思)`에서 그들은 21세기 강대국의 조건을 사유한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중국의 굴기다. 10년 전에 이미 중국은 21세기를 주도할 대국으로서 자국을 상정하고 준비해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세계의 커다란 흐름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형국(形局)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출범초기의 당당했던 위세가 `브렉시트`로 약화되어 당분간 답보할 가능성이 크다.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잠자는 거인`정도로 치부돼왔던 중국이 약진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기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사에서 유서(遺緖) 깊은 문명을 말할 때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그리고 황하문명을 거명한다. 인류의 문명사를 가늠하는 가장 오래되고 뿌리 깊은 문명이 이들 4대 문명이다. 그 가운데 황하문명 하나만이 발생 이후 오늘날까지 연면부절 이어지고 있다.생각해보시라. `길가메시 서사시`와 함무라비 법전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21세기 이라크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왕들의 계곡과 현대 이집트는 어떤 상관성을 제시하는가!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 몇몇 유적을 남긴 채 역사에서 황망히 사라진 인더스 문명을 현대의 인도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는가?! 하지만 황하문명에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동양고전에서 확인한다.2천500년 전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갔던 고대중국의 철학사상은 아직도 유효하다. 공자의 `논어`, 묵자의 `묵자`, 노자의 `도덕경`같은 서책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후대를 장식한 `한비자`나 `장자`, `맹자`역시 동일한 궤적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기록문화의 절정으로 시대의 획을 그었다고 할 것이다.법가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뒤를 이은 한나라가 유가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확정하지만, 세계제국 당나라는 도가와 불가를 장려한다. 그 결과 동양사상의 근본인 유불선 3교가 정립한다. 남북한과 대만, 중국, 일본 독자들을 매혹하는 나관중의 `삼국지`는 중국 기록문화의 대미(大尾)를 이룬다. 세계 문화사에서 이렇게 풍성한 역사기록을 오래 유지하면서 21세기를 맞이한 경우는 없다. 이것이 중국굴기를 설명하는 하나의 동인(動因)이라 생각한다.오늘의 중국이 있기 전 150여 년 세월 중국인들은 무수한 고초(苦楚)와 치욕을 경험했다. 1937년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남경대학살`로 30만의 중국인들이 잔인하게 학살되었다. 중국 현대사에서 이토록 끔찍한 사건과 기억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런 고통스러운 세월 중국과 중국인을 지탱해준 것은 빛나는 역사기록이 아니었을까. `회자정리(會者定離)`로 요약할 수 있는 역사의 본질이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우리에게도 적잖은 한문기록이 있다.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만 31만 여점의 기록물이 해석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거를 사장(死藏)하지 않고 현재화할 때 그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담보될 것이다. 중국굴기가 주는 교훈은 여기에도 있다.

2016-08-05

어찌 하오리까?!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도가의 창시자인 태상노군의 `도덕경`은 세상을 뒤집어보는 관점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예컨대 `도덕경` 제1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도폐 유인의(大道廢 有仁義), 육친불화 유자효(六親不和 有慈孝), 국가혼란 유충신(國家昏亂 有忠臣).”현대어로 번역하면 “대도가 없어지니 인과 의가 나오고, 육친이 불화하니 자애와 효도가 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생겨난다.”놀라운 역설 혹은 아이러니 아닌가.인과 의는 고대 동양, 특히 유가(儒家)에서 숭상해마지 않은 덕목인데, 그것의 출현을 커다란 도의 사멸에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부자와 부부, 형제의 혈연관계에 기초한 육친의 덕목이 자애와 효도인데, 그것의 발원을 불화에서 독서함은 낯설게 하기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나아가 충신이 나타나는 현상을 국가의 혼란에서 독서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현실과 지극한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태상노군의 사유를 유추하면 인간세상을 관류(貫流)하는 근본으로 대도(大道)가 올바르게 작동한다면 인의 (仁義) 같은 덕목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부자와 부부, 형과 아우가 본분을 다한다면 자애와 효도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그런 생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자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충신이 나올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간결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찜통더위와 열대야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엄습하는 요즘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다. 권부의 핵심에 있는 자들의 국정농단이 국민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양파껍질마냥 들춰지는 그자들의 비리를 볼라치면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한숨이 앞선다.노자의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국가가 너무나도 안정돼 있기 때문에 이런 오리(汚吏)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막힌 역발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근자에 다시 읽은 사마천의 `사기열전`가운데 `순리(循吏)`로 이름 높았던 석사(石奢) 이야기가 생각난다.전국시대 초나라 소왕의 재상이었던 석사. 그는 지방순행 중에 살인사건과 대면한다. 살인자를 추적한 끝에 잡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였다. 아비를 놓아주고 난 다음 석사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소왕에게 사람을 보내 고한다.“아비를 처형하고 정사(政事)를 바로잡음은 불효이며, 아비의 죄를 용서하고 방면함은 불충입니다. 부디 저를 벌하여 주소서!”소왕은 석사의 사정을 듣고 그 죄를 묻지 않으려 한다. 죄인을 잡지 못한 것은 재상의 허물이 아니니 예전처럼 국사를 보필하라 명한다. 그러나 석사는 소왕의 명을 거역하고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부자의 정을 앞세우자니 국가가 흔들리고, 국가를 내세우자니 천륜(天倫)을 거역해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서 석사의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는 양자(兩者)를 살리되 스스로를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독자 여러분이 석사의 상황이라면 어찌 하시겠는가. `부지지정`을 따르시겠는가, 아니면 `우국충정`에 헌신하시겠는가. 혹은 석사와 같은 고난의 선택을 취하시겠는가.대도가 사라진 지 오래건만 인과 의가 죽어 없어지고, 육친은 불화하지만 자애도 효성도 말라버린 시대. 나라가 지극히 어지러운 시절임에도 충신을 찾기 어려운 시대상황을 보면서 `도덕경`과 `사기열전`을 떠올림은 열대야를 식혀줄 청량한 한 줄기 바람을 대망(待望)하는 서민의 심경 아니겠는가.그러하되, 머지않아 가을은 또 찾아오리라.

2016-07-29

취업과 전공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다. 고용이 불안정한 시간제나 저임금 일자리가 있다지만 취업을 권장할 수는 없다. 10% 내외의 청년 실업률은 이제 붙박이로 고정된 형국이고, 체감 실업률은 30%를 상회(上廻)한다. 청년실업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실행된 이후 세계적인 풍속도가 됐다. 이른바 1%와 99%의 양극화가 일상화된 세계 곳곳에서 청년들의 신음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교육을 통한 경제적 안정이나 신분상승을 갈망하는 상황에서 대졸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지난 세기 1960~1970년대 우골탑 신화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대학은 출세의 사다리였으니 말이다. 1981년에 단행된 대학졸업정원제와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의 여파(餘波)가 대학과 대졸자 과잉의 진원지다. 미래를 주도면밀하게 기획하고 과거를 성찰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쓰라린 결과를 우리는 오늘도 확인하고 있다.상당수 대학생들이 취업과 전공의 단절에서 기인(起因)하는 고통을 호소한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착잡해진다.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인문사회계열 소속 학생들의 심리적 하중이 무겁게 다가온다. 한때 잘나갔던 경영대학 학생들마저 불확실한 미래로 괴로워하는 현실을 볼라치면 풍요의 21세기가 신기루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전공과 취업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대립각은 강의실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문학과 예술, 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눈을 맞출 학생들이 점점 줄어든다. 장편소설은커녕 단편이나 단막극 하나 읽기도 버거워하는 대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예술과 역사에 각인된 지난 시대의 흥미진진한 사연들과 인간군상은 더 이상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에 새겨진 마드리드 시민들의 비참한 운명은 알파고의 21세기에는 지나치게 낡아 버린 골동품에 다름 아니다.사정이 이렇다보니 동양고전 `논어`, `도덕경`, `장자`, `사기`는 물론이려니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오셀로`,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찬밥이다. 자격증을 얻기 위한 한자공부 혹은 토익점수를 위한 영문학 공부가 고작이다.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야 움직이는 청춘들의 느릿한 동공(瞳孔)이 안타까운 요즘이다. 인문대 학생들은 경영학부로 몰리고, 경영학부 학생들은 행정학부나 공대까지 넘실거린다.교수가 죽고 대학이 죽고 학문이 죽은 21세기 대한민국 교육현장은 우울하다. 오로지 취업이라는 외길을 향해 질주하는 청춘남녀를 기다리는 취업의 질곡(桎梏)! 그런데 문제는 거기가 끝이 아니란 사실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청춘들은 이내 기업과 기업문화와 업무에 질려버리기 일쑤다. 자신이 바라마지 않았던 직장 초년생의 풍경과 너무나 다른 기업현장. 그들은 다시 일탈과 출구를 찾기 시작한다.해마다 끈질기게 되풀이되는 시행착오의 대물림이 아무런 반성적 울림 없이 지속되는 대학의 살풍경은 적잖게 참담하다. 죽어라 하고 전공을 공부해보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입학하자마자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풍속도는 바꿔야 한다. 비싼 등록금과 시간적-정신적 피로를 동반한 대학졸업장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 하나 온전하게 풀지 못하는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암담하다.대학은 직장인 양성소가 `더`이상 아니다. 21세기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은 대학에 없다. 차라리 기업이 바라는 인재를 기업이 육성하는 편이 빠를지 모른다. 학문의 보급과 전파의 최후 전진기지로 작용하지 못하는 대학은 문 닫아야 한다. 취업과 전공이 상호 모순적인 대립관계가 아니라, 선순환하는 상보작용으로 결합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창밖의 매미가 나의 견해에 동조하듯 크게 울어댄다.

2016-07-22

관리의 길, 공복(公僕)의 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교육부 관료의 폭언으로 나라가 소란스럽다. 고고도 미사일, 사드를 배치하는 문제로 호떡집에 불난 형국인데 정말 혼란스럽다. 거기에 대구공항을 이전한다는 소식이 보태진다. 사드와 대구공항이 아니더라도 각종 비리 사건들과 크고 작은 스캔들로 시끌벅적한 나라였다. 오죽하면 `역동적인 대한민국` 아닌가? 교육부 관료의 발언 가운데서 나는 구의역에서 죽은 청년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열아홉 살 청춘이 황망하게 맞이했을 죽음의 나락이 어떠했을까. 컵라면 하나 변변히 챙기지 못한 채 악착같은 이승을 서둘러 떠나야 했을 그의 심중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데 관료는 말한다. “그런 죽음을 동정하는 것은 사실, 위선 아닌가요?”불행한 사건의 피해자를 동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와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지구촌 저편에서 일어나는 참사에도 연대와 도움을 전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나 2015년 네팔 지진에 우리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과 연대는 인간적인 정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달포 전에 일어난 구의역 사고로 목숨을 잃은 19세 청년을 동정하는 행위에서 위선을 보는 교육부 관료의 언행은 자못 섬뜩하다.그의 사유를 유추하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로 죽어간 300여 희생자를 동정하는 행위 역시 위선이다. 240명 단원고 학생들 뿐 아니라, 허다한 사연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된 사람들을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리고 공분하는 것도 위선적인 행위란 얘기다. 창졸간(倉卒間)에 아들딸 잃어버리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피눈물에 가슴 아파하고 공감하며 동정하는 것이 위선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정말 그런지, 묻고 싶다.그가 소속된 정부부서가 하필이면 교육부다. 이 나라 교육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管掌)하는 최고 행정기관의 고위직이 그의 본분이었다. 일국의 교육행정을 기획하는 책임자가 허망하게 죽어간 청춘들에 대한 동정과 예의를 위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는 물론이려니와 지구촌이란 공동체의 삶에서 기본은 관계에 있다.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제도나 법령뿐 아니라, 공감과 교류 그리고 연대에 있다. 나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전달할 사회적 관계가 있는 사람은 살아나갈 수 있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그것을 공유할 사회적 관계망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견딜 수 있다. 그것이 공감과 연대의 힘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나고 힘 있는 자라 하더라도 사회적 고립 속에서 버틸 수 없다. `왕따`를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까닭은 거기 있다.오늘날 한국의 교육과 입시제도는 무한경쟁을 기본질료로 삼는다. 1등만 기억하는 승자독식의 경기규칙이 지배하는 교육과 입시제도. 거기서 발원하는 탈학교 행렬과 자살학생들의 끝없는 대열! 그런데 그와 같은 교육과 입시를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내 아들과 딸의 1% 소속을 확신하는 교육부 관료들의 작품 아닌가. 입시와 교육을 통한 신분제 사회를 기획하는 자들의 섬뜩한 음모는 아닌가? 그런 의구심마저 든다.관료는 국가의 기둥이자 공복이다. 국민의 종복인 관료는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을 위해 진력함으로써 존립근거가 확보된다. 교육 관료가 99% 국민을 개돼지로 인식하는 나라는 미래는커녕 현재도 없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 이번 사건은 충격을 넘어 공포 자체다. 이참에 1%를 자임하는 관료들의 근본적인 자질과 품성을 근본적으로 다잡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2016-07-15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장마철이지만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과 열대야가 간간이 끼어든다. 장마 지나가면 우리는 여름의 기세에 눌려 지낼 수밖에 없다. 장마는 그런 날들이 오기 전의 짧은 축복이리라. 대구에 내리는 비가 영덕과 포항을 비켜나가기 일쑤다. 비구름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대구와 영덕 포항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분주하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그들의 얼굴에는 화색(和色)이 없다. 짜증스럽고 화난 표정으로 걸음을 서두르는 인총들을 보노라면 적잖게 우울하다. 용케 아는 얼굴이라도 볼라치면 바쁘다는 말을 이내 내뱉는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자동화된 일상의 부품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21세기 대중사회의 그늘이 날로 깊어간다. 이런 장마철에 동화 (童話)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까닭은 거기 있다.`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이야기를 기억하시는가?! 열두어 살 무렵 국어책에서 본 듯하다. 놀기만 좋아하고 빈들거리며 살아가던 게으름뱅이가 어느 날 소가 된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지만, 그의 말소리는 소 울음소리로 바뀐 지 오래다. 고된 노동과 인간소외로 자살을 결심한 게으름뱅이는 먹지 말라는 무를 먹고 인간으로 환생(還生)한다. 이야기의 교훈은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이었다.근면 자조 협동, 새마을운동, 조국근대화 같은 구호로 길들여진 지난 세기에 부지런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인들이 가난한 까닭을 게으름에서 본 것은 일제 총독부 관리들이나 해방이후 위정자들이나 동일하다. 부모나 조상 탓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면 먹고살 길이 열린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흙수저 금수저 따지지 말고 죽어라 노동하면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버트란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제목부터 낯설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은 공평한 노동이다. 1935년에 집필된 서책에서 러셀은 `누구나` 하루에 3시간만 노동하면 된다고 못을 박는다. 당연히 누구나란 말에 방점이 찍힌다. 왕후장상(王侯將相)도 정신노동자도 육체노동자도 예외 없이 하루 3시간만 노동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3시간 노동하고 남는 시간을 문화와 예술분야로 돌리자는 발상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잉여노동(剩餘動)과 생산을 통한 부의 축적과 극대화한 소비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움과 인간성의 발현을 위한 적절한 방책이라는 주장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누군가는 땀에 흠씬 젖어 노동할 때 누군가는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즐기며, 산해진미(山海珍味)로 미각을 충족시키고 있다.지구전체 차원에서 하루 3시간 노동을 설파한 러셀의 사유는 실현되지 않았다. 저임금 받으며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금수저 물고 나와 노동과 무관하게 일평생을 살아가는 족속(族屬)도 있다. 러셀은 이런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에 경종을 울린 것이거니와,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21세기에도 이런 부당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이 거리와 광장과 지하철에서 만난 분망(奔忙)한 표정의 인총들 사연 아닐까?!19살 청년이 지하철 작업장에서 죽고, 시간에 쫓긴 냉방기 기사가 추락해 죽고, 30대 젊은 검사가 상관의 모욕으로 죽어나가는 한국사회! 보도되지도 않는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망과 죽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기실현과 경제적인 독립을 보장하는 노동의 가치는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옥죄는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는 장마철 젖은 대기처럼 끈적이며 달라붙는다. 청량한 한줄기 바람은 언제 어디서 불어올 것인가?!

2016-07-08

`브렉시트`와 한국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지난 일주일 지구촌을 뒤흔든 사건은 `브렉시트`다. 1993년 유럽 12개국으로 창설된 유럽연합은 2007년에 28개국으로 확대된다. 2002년부터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 국가들은 공용화폐 `유로`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작년에는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가 인구에 회자(膾炙)되기도 했다. 그리스는 국민투표를 거쳐 유럽연합 잔류를 결정했지만, 영국은 탈퇴를 선택함으로써 지구촌이 들썩거리고 있다.월러스틴과 함께 대표적인 세계주의자로 꼽히는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2009)에서 21세기 세계의 향방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는 유럽연합과 더불어 북미의 `나프타`, 중남미의 `메르코르수르`, 아프리카의 `아프리카 통일기구`, 동남아시아의 `아세안` 등을 거명한다. 2030년 이후 세계는 지역연합에 기초해 재편성될 것이라고 리프킨은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의미심장하다.국내 언론에서 다루는 브렉시트 문제는 거개가 경제문제에 한정돼 있다. 엔화와 달러화의 급등, 안전자산인 금값의 폭등 혹은 국내 주식시장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의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과 러시아의 서방정책 그리고 미국의 유럽과 아시아 정책향방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찾기 어렵다. 브렉시트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당면한 몇 가지 사안을 다각도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브렉시트로 불거진 세대갈등과 계층갈등을 숙고해야 한다. 20~40대 젊은 세대와 60대 이상의 나이든 세대의 충돌, 가진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의견대립이 현저했다. 젊고 고학력이면서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은 유럽연합 잔류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퇴를 선택한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에 동조하면서 미래기획을 하는 집단과 거기서 소외되어 과거의 영화(榮華)를 그리워하는 자들의 한판 승부가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였다. 영국의 계층갈등과 세대갈등을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있을까?신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밀양이냐 가덕도냐, 하는 소란스런 논란이 떠오른다. 지난 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났다. 10조원에 이르는 예산이 소요되는 대형 국책사업에 `티케이`와 `피케이`가 사활을 걸고 맞장 뜬 사건. 표면적으로는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필요에 따라 부상 (浮上) 가능성이 큰 국책사업. 국민 세금으로 지어질 공항을 두고 전개된 정치권의 패거리 싸움은 매우 고약하다.국가예산을 제 주머니의 푼돈정도로 여기는 정치인들과 정파(政派)의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는 끝장내야 한다. 세계적인 불황의 늪에서 국민들이 낸 세금을 특정지역과 집단을 위해 써도 좋다는 타락한 의식은 종식(終熄)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문학관` 건립사업 역시 같은 전철(前轍)을 답습하고 있다. 문학과 문학가가 아니라, 문학관과 거기 따른 부대이득에 혈안이 된 자들과 지자체의 물고물리는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끔찍하다.브렉시트로 확인된 지구촌의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가까운 것이었다. 하기야 `코파아메리카 2016`과 `유로 2016`이 실시간 중계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지금과 여기서 발생하고 전개되는 모든 사건이 똑똑한 전화기로 매순간 생중계되는 21세기 아닌가! 그런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지역과 관계와 이해관계와 정파에 묶여 살아간다. 최소한도의 미래전망이나 반성적 사유도 없이.브렉시트로 세계주의에는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자본의 앞잡이로 기능하고 있는 영미중심의 강요된 세계화와 천민자본주의가 끝장나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은 우리 내부를 돌아보게 하는 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날선 모순의 해결책을 찾는 비상(非常)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2016-07-01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얼마 전 서울에서 열리는 월례(月例) 발표회에 다녀왔다. 학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가 발제를 권하기도 했고, 평소에 고민하던 문제이기도 해서 모처럼 발품을 팔았다.`한국 인문학의 미래와 대학 구조조정`, 이것이 당일 콜로키움 주제였다. 여기에는 상당히 거창한 문제제기와 가능성 타진이 함축돼 있다. 내가 제기한 몇 가지 문제를 놓고 토론만 한다 해도, 몇날며칠은 걸릴 것이고, 책자로 나와도 몇 권은 소요될 것이다.거두절미하고, 두 가지만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한국 인문학의 자생성이다. 장구한 세월 구축해왔다고 우리가 믿는 (혹은 믿고 싶은) 한국 인문학의 뿌리에 자생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아니어도 좋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예술이든 종교든 모든 영역에 이른바 `자생성` 내지 독자성이란 게 있느냐 하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동학(東學)은 예외로 하자!) 한국의 학문이 독자적인 생존능력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지만, 어느 학문 영역에도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독자적인 담론이자 이론체계다!” 할 것이 있나 싶다. 장구한 세월 외부에서 수입한 이론이나 담론체계를 손봐서 살아오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이전에는 중국을, 1945년 해방 이전까지는 일본을, 그리고 2016년 지금까지는 미국을 베껴오지 않았느냐고 나는 묻는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언제까지 베낄 것이냐`하는 것이다.두 번째는, 교육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 문제다. 단순화하자면, 대학정원이 신입생에 비해 과다하기 때문에 부실대학은 정리하고, 취업 안 되는 인문사회계열 정원 줄이겠다는 얘기다. 전자는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부실사학 교주(校主)들의 재산권을 보전해주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익을 남길 때 그들은 우리와 이익을 함께 했는가. 국민세금으로 배부른 교주들의 배를 불리고 등을 덥혀줄 이유가 있는가?!인문사회계열 정원 줄여서 공대에 몰아주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은 교육부다.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내세워 부실사학을 양산(量産)하고, 2년제 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교육부 아닌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현실에서 이공계 증원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단견(短見)이 아닐 수 없다.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면 축대가 튼튼해지겠는가?!2016년 시점에서 한국대학은 모순과 부조리의 총체적인 복합체다. 소설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대학생들이 허다하다. 장편은커녕 단편소설마저 읽기 버거운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75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강단의 절망감은 형언(形言)하기 어렵다. 대학이 어떤 곳인지,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대학생이 된 청춘이 너무 많다.지난세기 60-70년대 `우골탑신화`를 기억하는 낡은 세대의 추억을 잊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대학은 직장인 양성소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 2016년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사건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對局)이었다. 불과 20년을 내다보지 못한 교육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앞으로 한국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망칠 것인가, 두려움이 앞선다. 그들이 취업률 운운하며 대학에 칼날을 들이대는 현실이 안타깝고 두렵다.인공지능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상황을 돌이키지 않고 교육부가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대학 구조조정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칼춤을 출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들만 희생양이 될 것은 자명하다. 아아! 교육의 신이여, 강림(降臨)하소서!

2016-06-24

혼자만을 위한 식탁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그것은 어렴풋한 기억이다. 간유리로 보이는 사물처럼 뿌옇고 막연하다. 하지만 이미지만큼은 생생하다. 식탁 가득 음식을 차려놓은 여인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뭐, 어때! 나 혼자만을 위한 식탁을 차리는 게!” 아마 화면(畵面) 속의 여인은 그렇게 말했던 듯하다. 항상 함께 했던 `그`의 존재는 지워지고 오롯하게 남은 여인의 화사(華奢)한 얼굴이 선하다. 오래 전 보았던 텔레비전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500만을 넘었다는 방송보도가 얼마 전에 나왔다. 30년 전에 비해 8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와 함께 10가구 가운데 3가구가 1인 가구라는 통계도 나왔다. 한국사회의 변화속도는 가히 `넘사벽`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수준이다. 2005년 동성동본 금혼폐지 이전에 적잖은 청춘남녀가 전근대적인 풍속 때문에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에 넘쳐나는 동거습속은 얼마나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인가?불과 30여 년 전에는 낯설었던 1인 가구가 한국가정의 주류(主流)를 형성하게 됐음은 경이로운 현상이다. 가공할 속도의 시대에도 한국인들은 구시대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의 단적(端的)인 예가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다. 언제 시집가고 장가갈 것인지를 묻는 집안 어른들 때문에 괴로운 청춘들의 이야기는 너무 흔하다. 세태풍속의 변화와 내 자식과 손자들은 무관하다는 무의식(無意識)의 범람이 지배하는 한국사회.1인 가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1인용 식탁을 양산(量産)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도 1인용 식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사정은 영 딴판이다. 적어도 3~4인 가구 기준으로 식재료가 판매된다. 사자니 남아서 버려야 하고, 안 사자니 그럴 수 없는 지경이다. 1987년 쾰른 거리시장에서 수박을 8등분해서 파는 것을 보고 경악(驚愕)한 일이 있다. 1인용 판매를 본 적이 없는 토종 한국인의 망양지탄(望洋之嘆)이라니!수박 1통의 가격은 8등분한 수박 1통과 동일했다. 많이 산다고 해서 깎아주지도 않고, 적게 산다고 해서 손해 보지 않는 그들의 염량세태(炎凉世態). 이제야 그런 풍속도가 온전히 이해되는 것이다. 당시 도이칠란트에는 1인 가구가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훗날에야 깨달은 셈이다. 유럽이나 미국을 보면 일본이 보이고,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이는 것이 역사발전 단계인가? 여하튼 1인 가구가 시대의 대세(大勢)로 자리 잡은 것은 명백하다.문제는 1인 가구의 세대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다. 작게는 식재료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적 편견의 해소(解消)가 필요하다. 왜 혼자 사는지를 묻기 전에 혼자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의 1인 가구는 20~30대에 국한(局限)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고독사(孤獨死)로 세상과 작별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정확한 통계수치조차 없는 해괴한 나라 아닌가?여기 더해서 미혼모(未婚母)라든가, 이혼한 남녀, 가출 청소년, 사회 부적응자(不適應者)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배려가 필요한 영역은 헤아리기 어렵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얕은 인식에서 기인하는 편 가르기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사안(事案)을 들여다봄이 온당할 것이다. 그날 1인용 식탁에 차려진 풍성한 음식을 보면서 나는 쓸쓸했다. 역시 누군가 옆에 있어야 제격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시공간과 인과율마저 무너져 내리는 `인터스텔라`의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19세기 암흑천지에서 배회하는 영혼들의 아우성이 오늘도 하늘을 찌른다.

2016-06-17

밀양과 가덕도 사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선택이 멈추면 인생도 끝이다. 그만큼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連續)이다.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인간의 생은 마지막 날까지 지속된다. 버스에 한 자리만 비어 있으면 우리는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자리만 비어도 선택해야 한다. 그 정도로 선택은 축복이자 고민(苦悶)의 원천이다. 그래서 자의식(自意識)이 미약하거나 사소한 선택에도 괴로운 사람은 남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다수결에 순응하겠다는 얘기다. 요즘 신공항 얘기로 밀양과 가덕도가 시끌벅적하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나온 이야기가 급기야 종점(終點)으로 치닫는 모양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문제는 마침표를 대하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다. 신공항 부지 타당성 조사가 끝나면 어느 한 곳은 환호성을 지를 터이고, 다른 쪽은 고개를 숙일 터. 그런데 최종결론이 나기도 전에 불복(不服)하느니 어쩌니 하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2005년 11월 2일에 있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일명 방폐장)` 부지선정을 보자.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전국 4개 예비지역을 두고 벌인 주민투표가 치열하게 전개됐다. 경주시가 89.5%의 찬성률로 군산과 영덕, 포항을 누르고 최종부지로 선정됐다. 환호하던 경주 시민들과 풀이 죽은 여타 주민들의 표정이 지금도 선하다. 하지만 경주 시민들은 방폐장 건설로 얼마나 행복하고 부유해졌는지, 묻고 싶다.`님비현상` 때문에 중앙정부가 부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현상금을 걸어야 했던 방폐장 사업. 돈을 내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돈이 없다면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을 짓지 못하게 하는 볼썽사나운 풍경이 되풀이되는 현실. 신공항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밀양과 가덕도가 마치 티케이와 피케이를 나누는 것처럼 진영싸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기 때문이다. 양자대결이 과열되어 이대로 가다가는 파열음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원칙을 확인했으면 한다. 첫째, 밀양과 가덕도의 양자택일(兩者擇一) 전에 김해공항 확대방안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밀양이든 가덕도든 김해공항보다 나은 입지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존의 공항 인프라를 확충하고, 새로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필요한 부지를 구입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리라 믿는다. 만일 이런 판단이 옳다면 공항부지 선정은 즉시 중단돼야 할 것이다.둘째, 결과에 승복(承服)하는 것이다. 밀양도 가덕도도 모두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다. 우리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후손들에게 넘겨주자는 일에 토를 달지는 못할 것이다. 결과에 군말 없이 동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셋째,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공정한 판단을 흐려서는 안 된다. 권력을 소유한 특정집단이나 정파의 유-불리를 따져서는 결과의 공정성이 의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최대한 공정한 규칙에 따라야 할 것이다.넷째, 공항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우리의 몸보다는 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두 어깨가 천하보다 무겁다!”는 장자(莊子)의 말을 새길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가 의지해서 살아가는 육신(肉身)이다. 그것을 위한 공항이고 정치며 지역정서라는 얘기다. 눈앞의 크고 작은 이해관계에 함몰(陷沒)돼 진정으로 귀하고 값진 것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결정적으로 부언(附言)하자면, 결론이 나면 의연하고 당당하게 결론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순리(順理)고 아름다운 미덕이므로! 선택은 쉼 없이 우리를 찾고 또 찾아올 것이므로.

2016-06-10

기억에 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잊지 않도록 혹은 잊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기억의 작용이다.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따라서 더 고통 받거나 혹은 더 많은 행운을 누린다. 망각하고 싶지만 잊어버리지 못하면 괴로운 노릇일 테고, 요긴한 것을 오래 담고 있음은 축복일 것이다. 인생은 이런 모순의 양극단(兩極端)을 진자(振子)처럼 요동치며 마지막 날까지 흔들리는 것일 게다. 그런데 아주 예외적인 일과 사람과 관계는 기억함이 좋을 듯하다. 벌써 오래 전 일처럼 들리지만, 안중근 의사와 긴토캉(김두한)을 헷갈린 연예인이 구설수(口舌數)에 올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과 뭐, 그만 일을 가지고 젊은이를 닦달하느냐는 부류(部類)의 인간들로 패가 갈렸다. 결론을 서두르면 나는 전자(前者)에 속하는 사람이다. 최소한의 것은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문제는 사람마다 그 `최소한의 것`이라는 범주(範疇)가 많이 다르다는 데 있다. 사적(私的)인 영역이나 친밀한 범위 내의 것을 최소한의 범주에 넣는 사람이 있다. 거시적(巨視的)인 것과 역사적(歷史的)인 것의 범위(範圍)를 꼽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범주화를 전연 염두(念頭)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리라는 데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속도(速度)와 연관되어 있다.작년과 올해가 그 양상을 달리하는, 과장(誇張)하면 어제와 오늘이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대에 우리는 산다. 몇 년 전 일도 기억나지 않는데, 소중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어찌 기억하겠는가?! 이것이 연예인을 옹호하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분초(分秒)를 다투면서 시간이 나노의 범주까지 쪼개진 시점에서 역사적이고 거시적인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현대인은 달력을 보지 않는다. 그가 들여다보는 `똑똑한 전화기`에는 언제나 지금과 여기만 나와 있다. 달력에 담긴 24절기(節氣)와 국경일과 역사적인 사건은 전화기(電話機)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늘 현재에 주목(注目)한다. 그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처럼 과거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에 함몰(陷沒)된 현대인에게 어찌 미래기획과 과거역사를 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거기가 나의 문제의식(問題意識)이 출발하는 지점이다.끝없는 현재를 잉태(孕胎)하는 무수한 과거와 무수한 현재에 기초하는 무한한 미래는 기실 하나의 연속선(連續線)에 자리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말든 그것은 자명(自明)하다. 시간은 분절적(分節的)이지만 연속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기억과 기억의 창고를 경영하는 인간은 분절적으로 시간을 인식하지만, 어떤 사람은 시간의 연속성에 기초하여 역사와 만나려 한다. 그에게 안중근과 김두한을 동렬(同列)에 세우는 것은 불경(不敬)한 노릇이다.얼마 전 경북대에 대동제가 있었다. 그 첫날이 지난달 18일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건사하는 주막(酒幕)에 가지 않은 지가 오래여서 올해도 그러했으되, 부아가 치밀었다. 불과 36년 전에 있은 광주항쟁의 그날에 학교에 술판을 벌이며 아무런 추모행사도 갖지 않는 청년들의 집단적 무의식(無意識)에 소름이 돋았다. 1980년을 기억하지 않는 청춘들이 거점 국립대 학생들인데, 연예인이 1909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철종 13년인 1862년에 출간된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한탄한다. “우리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이고 간에 180일만 지나면 모두 망각된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38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망각된다는 `다이나믹 코리아`! 무려 6개월 동안 지속되는 자국민(自國民)들의 기억력에 분노했던 위고가 나는 새삼스러웠다. 구양봉의 여인이 병사(病死)하고, 서독은 사막의 객잔을 태우고 표표히 사라진다. 그 역시 잊고 싶은 것이다. 세상일은 취생몽사주 없이도 더러는 망각되는 모양이다.

2016-06-03

굿하는 할머니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겨우내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석 달 열흘이 넘도록 부재(不在)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봄날 홀연히 돌아온 할머니였다. 허리 통증 때문에 수술을 받았다 하신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4남매를 홀로 키워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할머니였다. 언젠가 그녀에게 신이 내렸고, 그날부터 강신무(降神巫)가 되었다는 할머니. 그렇게 수십 년 세월을 느티나무처럼 버티며 견뎌온 세월이었다고 했다. 5월이라 봄이라지만 섭씨 30도의 대기(大氣)는 태양으로 달궈져 있다. 어깨에 띠를 두르고 뒷집 할머니가 신명나게 소리를 뽑는다. 장구와 징, 꽹과리 같은 무구(巫具)가 할머니의 신명을 돕는다. 팔순 넘긴 할머니를 땡볕 아래로 불러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겨울 이후 거동(擧動)이 더뎌진 할머니를 저토록 활기차고 강인하게 인도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할머니의 굿은 아침나절에 시작하여 점심을 거쳐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무당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안향(1243~1306)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슨 대단한 학문이나 되는 듯 성리학을 고려에 이식(移植)한 안향. 중국에서 수입한 학문으로 신흥국가 조선이 성립되어 장장 500년 세월을 이어갔다. 그 첫머리에 안향이 있었다. 그가 어느 고을 원님으로 부임하여 첫 번째 행한 거룩한 사업이 무당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무속(巫俗)은 모두 사악하고 거짓되니 징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조선의 금과옥조(金科玉條)였던 억불숭유의 토대를 놓았던 인물 안향. 그러나 장구한 세월 성리학만을 떠받들고 추종했던 왕조는 쓸쓸하게 몰락한다. 그 왕조의 우울한 끄트머리를 장식했던 갑오농민전쟁과 을미사변의 주인공 민비 민자영. 명성황후라 불리는 민자영이 특히 굿을 좋아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인가?! 무너져 내리는 이씨의 종묘사직을 지키려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가 의지한 최후의 보루 무당과 굿은 무엇인가!지난 세기 60~70년대 한국에는 다시 미신타파(迷信打破)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다. 그와 반비례하여 외래종교인 기독교의 교세(敎勢)는 날로 번창해간다. 무당과 박수의 자식들이라 하여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날들로 기억된다. 군부독재가 종식(終熄)되고, 우리의 전래적(傳來的)이고 토속적(土俗的)인 것들에 대한 성찰이 일상화되기 시작한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무속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박기복 감독의 기록영화 `영매(靈媒)`는 강신무와 세습무(世襲巫)를 다룬 역작(力作)이다. 인간과 신을 매개한다 하여 무당을 `영매`로 승화(昇華)시킨 박기복. 그리하여 영화관은 눈물과 한숨의 바다였던 기억이 오늘도 새롭다. 탐진치(貪瞋痴)에서 발원하는 수비뇌고(愁悲惱苦)와 생로병사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중생을 위해 헌신하는 영매들 아닌가!알파고와 사물 인터넷 그리고 3차원 복사기가 등장한 인공지능 시대에도 영매의 구실은 여전하다. 인간의 육체적인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기계를 만들어내다가 이제는 정신적인 노고(苦)마저 덜겠다는 것이 인공지능 아닌가. 시대의 추이(推移)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大勢)로 자리매김할 것이 자명(自明)하다. 그런 시대에도 영매들의 엄존(儼存)은 나를 숙연하게 한다.할머니가 귀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맏아들과 낮술을 먹게 되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그녀의 질부(姪婦)가 술상을 봐주었다. 질부라 해도 네 살이나 더 많은 파파 할머니였다. 그분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나는 무녀의 기상(氣象)을 볼 수 없었다. 그저 나이 들고 병약한 노구의 내 어머니뻘 되는 노파가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의 조속한 쾌유(快癒)를 빌면서 소략한 주연을 마친 봄날이 어느덧 종언(終焉)을 고하는 시간! 아아, 봄날이 간다!

2016-05-27

글은 어떻게 쓰는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젊은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유수(有數)의 문학상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과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것이다. 영연방 작가에게는 `맨부커상`을, 비영연방 작가와 역자에게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여하는데, 한국 작가로는 한강이 첫 번째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채식주의자`는 읽지 못했으나, `몽고반점`을 읽고 그녀의 글쓰기에 적잖게 매료(魅了)된 적이 있었다.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는 것은 자못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다. 연말만 되면 혹여 고은 시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心焦思)하는 한국인들이 적잖고 보면 더욱 기쁜 일이다. 그런데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극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 것일까. 핵심(核心)을 말하자면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한강의 수상소감과 남편 홍용희 문학평론가의 말에서 해답의 단서(端緖)를 찾을 수 있다.첫째 가는 덕목(德目)은 글을 쓰는 작가의 문제의식일 것이다. 어떤 글을 써서 자신과 독자에게 내놓을 것인지, 그것을 고민하는 작가의 심도(深度) 있는 사유와 인식 그리고 차원 높은 문제제기가 1차적인 관건(關鍵)이라 믿는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이 과연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작품”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두 가지 문제의식을 추출(抽出)한다.그 하나는 인간의 폭력성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하는 것이며, 그 둘은 인간존재의 결백성(潔白性)이 얼마나 완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양자 공히 상당히 추상적이고 난삽(難澁)하여 쉽지 않은 사유와 인식론적 노력을 전제로 하는 듯하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소설의 재미는 있지만 깊이가 턱없이 부족한 소설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런 진지한 문제제기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이다.좋은 글을 쓰는 두 번째 미덕은 퇴고(推敲)에 퇴고를 거듭하는 작가의 장인정신이라 생각한다. 한강의 글쓰기에 대해 홍용희는 말한다. “한강은 한 줄 한 줄 혼신(渾身)을 다해서 몸이 아플 만큼 쓰는 체질이다. 그렇게 열심히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고치는 과정은 옆에서 보기에 굉장히 존경스럽고 경이로운 느낌이 든다” 글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장인정신, 끝없는 반성과 수정의 되풀이를 보여주는 헌신성은 시시포스를 연상케 한다.시시포스가 `도로(徒勞)`의 헛된 수고로움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면, 한강은 다듬고 또 다듬어 벽옥(碧玉)을 갈무리하는 장인을 닮았다. 서둘러 쓰지 않되, 그런 글마저 이리 보고 다시 살피는 인내와 자기결벽의 도저(到底)한 결과가 비평가와 독자를 사로잡은 비결이라 생각한다. 어느 글이고 고치고 다시 손을 보면 최초의 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우리는 백거이나 밀턴의 좋은 선례를 가지고 있다.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혼불` 10권을 썼다는 작가 최명희나, 근면하고 정직하게 글을 쓰는 김훈 소설가나 좋은 글을 남기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있기에 한국어도 세계적인 문학어로 재탄생하는 계기(繼起)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돈과 명예와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의 글쓰기가 아니라 자아와 세계와 인간을 천착(穿鑿)하는 느리고도 진지한 성찰이 한국문학의 깊이와 폭을 심화 확대하기를 기대한다.한강은 `맨부커상`을 받음으로써 나처럼 글로 살아가는 인간을 경계하는 종요로운 구실을 하지 않았는가 한다. 문제의식도 치열하지 않고, 글쓰기 형식도 신통치 않으며, 퇴고의 수고로움을 마다하는 어쭙잖은 글쟁이를 깨우치는 죽비(竹扉)가 된 듯하다. 이로써 나는 재삼재사 숙고하고 살피며 바지런한 글쓰기로 `후생가외`의 기여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역시 글이란 작가의 열렬함과 고단함을 먹고 사는 것이다. 한강의 수상을 새삼 축하한다!

2016-05-20

바깥에서 찾는 사람들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수피우화`를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낀 적이 있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친밀함이 살갑게 다가온 때문이다. 논리 정연하고 사변적이되 수다스러운 철학자들을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날려버리는 수피의 지혜. 이슬람의 수피는 유대의 랍비나 불가(佛家)의 조사(祖師)처럼 도저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수피(Sufi)`는 양털을 뜻하는 어휘 `수프(Suf)`에서 나왔다. 수피가 양털로 짠 외투를 입고 청빈한 생활을 한 데서 어원이 만들어진 듯하다.성스러운 여성이자 수피였던 라비아가 바늘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오두막 바깥에서 바늘을 찾는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라비아를 도와 바늘을 찾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어두워졌는데도 바늘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녀가 바늘을 잃어버린 장소를 묻는다. 라비아는 집 안에서 잃어버렸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황당해한다. 그녀는 안보다 바깥이 더 밝기 때문에 밖에서 바늘을 찾고 있다고 덧붙인다.라비아의 답변에 허망(虛妄)해진 사람들이 비아냥거린다. 그녀의 응수를 보자.“그대들 자신을 돌아보라. 그대들 또한 밖에서 찾고 있지 않았던가. 그대들이 찾고 있던 것은 사실 안에서 잃어버린 게 아니더냐. 그대들은 진리와 구원(救援)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안에서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지만 그대들은 바깥에서만 그것을 찾지 않았더냐. 바깥이 밝으니까, 밖은 쉽게 볼 수 있으니까, 바깥에서 찾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비아의 말은 명쾌하다. 우리가 구하는 진리와 구원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아니하고,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노자의 사유(思惟) 한 자락이 기시감처럼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인가?!“사립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하늘의 도리를 본다. 멀리 가면 갈수록 그 앎은 작아지나니. 그러므로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알며, 보지 않아도 밝고, 하지 않아도 이룬다.”(도덕경·제47장)`무위자연`을 설파한 노자는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천하 주유(周遊)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고자 한다. 사물과 관계가 `스스로 그러하도록 놓아두라`는 달관한 사상가 노자의 그윽함이 감촉(感觸)되는 장면이다.수피나 노자가 아니더라도 다산(茶山) 또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流配)된 다산은 한양과 흑산도의 가족과 서신으로 교통한다. 한양의 아들들과 섬으로 유배된 둘째 형님 약전과 편지하며 내면을 토로(吐露)했던 다산. 그것을 한 권으로 묶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크고 작은 깨달음과 통렬한 비판으로 충만하다. 정조의 신료(臣僚)였던 정약용이 조선 지식인들의 사대주의를 비판한 것에 눈길이 간다.청나라에서 내려주는 서책으로만 정신적 자양(滋養)을 삼았던 무비판적인 조선의 지식인들이라니! 중국인들의 사유와 인식을 앞 다퉈 베껴댔던 조선의 매판적(買辦的)인 관료와 지식인 계층에 대한 다산의 신랄(辛辣)한 비판은 정곡(正鵠)을 찌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본유학의 전통과 비교할 때 자생적이고 민족적이며 전통적인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조선유학의 근거 없음에 대한 다산의 비판은 실로 비난에 가까운 것이었다.문제는 그런 방법론 내지 세계관이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 지식인들의 작업이라고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외국의 이론을 직수입해서 지식 소매상 노릇을 선점(先占)하는 것이다. 이런 뿌리 깊은 지식 사대주의는 천석고황 수준이어서 난치병이 아닌지 생각한다.최소한도의 자존심과 역사의식이 있다면 남의 나라 지식인과 지식을 베끼고 전수(傳受)하고 팔아먹는 일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모자라고 아쉽더라도 독자적이고 고유한 것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법을 찾을 일이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이집 저집 두드리며 찾아다니는 것은 보기에도 민망할뿐더러, 성과도 미미(微微)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소용되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참을성 있게 찾고 또 찾을 일이다.

2016-05-13

세상에서 숫자가 사라진다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한 가지 가정(假定)을 해보자. 이 세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숫자가 모조리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실 숫자는 물이나 공기처럼 생활 깊숙이 밀착되어 있어서 그 종요로움을 잊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생물학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생명유지 활동에 필수적인 것이 물과 공기다. 사회-경제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정신적-지적 활동에서 그런 구실을 하는 것이 숫자다. 숫자를 빼놓고는 우리는 하루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하자. 의사의 모든 소견(所見)은 숫자로 기록된다. 키와 몸무게, 시력과 청력,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 혈압과 심전도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목들이 숫자로 빼곡하게 정리되어 의사의 판단을 기다린다. 알프레드 크로스비는 `수량화혁명`에서 유럽이 근대를 열어젖힌 원동력을 `수`와 `양`에서 보았다. 고대와 중세의 질적(質的)인 세계관에서 근대의 양적(量的)인 세계로 빠르게 전환한 유럽의 승리를 포착한다.대학을 필두로 그는 근대로 이행하는 전제조건으로 시간을 가시적(可視的)인 현상으로 확립한 기계시계, 기억력에 의지했던 음악을 오선악보로 혁신한 아르스 노바, 채무와 이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복식부기, 인쇄술을 통한 인체해부도와 해도(海圖)의 광범한 보급 등을 거명한다. 그 모든 것의 세계 저류(低流)를 관통한 것이 수량화혁명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의 논지에서 `오리엔탈리즘`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착목 자체는 설득력 있다.한국인들은 어릴 적에는 수학도사라 불리지만, 대학에만 들어가면 쩔쩔 맨다. 초중고교에서 한국인이 배우는 수학이란 거의 계산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공식(公式)을 암기(暗記)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계산을 반복하는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다. 0(零)을 비롯한 수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계산에만 몰두한다. 당연히 암산은(속셈은) 빠르지만 수의 본령(本領)에는 이르지 못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본보기를 들어보자.이 세상에서 가장 큰 수를 생각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는지?!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붓다다! 그이는 `무량대수(無量大數)`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무량대수는 문자 그대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필자는 무량대수보다 더 큰 수를 알고 있다. 정말이다. 그것은 무량대수에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어느 학생이 무량대수에 2를 더하겠다고 해서 필자에게 군밤을 맞은 일이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다.붓다는 수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큰 수에 1을 더하면 더 큰 수가 되고 이것은 무한반복 가능하다는 수의 기본적인 속성(屬性)!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의 본향(本鄕)은 아라비아가 아니라 인도(印度)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발명된 숫자가 기원후 458년 무렵 `명수법(命數法)`과 동반(同伴)하여 아라비아와 중동, 북아프리카의 무어를 거쳐 에스파냐에 도달하는데 무려 800년이 소요(所要)됐다고 한다.요즘엔 아라비아 숫자 대신 인도-아라비아 숫자라는 용어가 선호(選好)된다. 수의 나라답게 인도 출신 수학자도 많고,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도 적잖게 배출하는 나라가 인도다. 숫자는 피타고라스학파의 경우에는 수비학과 결부되어 밀교 (密敎) 수준까지 진척되었다. 그것은 숫자에 담긴 의미가 철학과 사상을 넘어 종교의 영역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첫머리의 `피보나치수열`을 상기하시라.조금만 신경 쓰면 재미나고도 유쾌하게 숫자와 수학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 터인데, 입시만 보고 달리는 한국교육은 여전히 죽만 쑨다. 숫자와 관련한 허다(許多)한 서적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간되고, 영화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건만 표피적(表皮的)인 드라마와 노래와 춤에 빠져든 이 나라에서는 고급한 취향의 지적 (知的) 오락 개발에는 무능하고 무심하다. 언젠가 숫자와 수학과 생활을 결합하는 한국형 문학과 예술과 철학이 나오기 바란다.

2016-04-29

새로운 시대정신을 위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4·13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많은 언론사가 절대적으로 틀린 예측결과를 사과하는데 적잖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틀려도 유만부동(類萬不同) 아니었는가? 그렇게 틀린 여론조사로 민심을 예단(豫斷)했으니, 망신살이 뻗쳐도 단단히 뻗친 셈이다. 언론사의 체면치레는 조만간 끝날 것이다. 언제 그랬느냐 하고 그들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길 떠날 것이다. 근면한 살육자(殺戮者) 하이에나처럼! 문제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에게 21세기를 살아갈 내재적인 동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관건(關鍵)이다. 본래 선거는 미래권력을 선출하는 행위다. 물론 선거에는 회고적(回顧的)인 의미도 담겨 있지만, 선거의 핵심은 미래를 지향한다.2016년 4월 한국의 정치지형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20세기 중후반을 누비던 인사들이 주축이다. 60~70대가 주역을 맡고, 그 아래 세대가 조연과 단역으로 나오는 재미없는 드라마가 한국정치다. 통렬한 풍자(諷刺)와 신랄한 비판, 그리고 상큼한 대안제시가 사라진 정치판은 개그 콘서트보다 못하다.이쯤에서 우리는 미래로 가는 길을 물어야 한다. 21세기가 어느새 15년이나 지났건만 한국정치는 1970~80년대에 매몰(埋沒)되어 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人工知能)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 갇혀 산다. 첨단 과학기술의 세례(洗禮)를 날마다 경험하지만 우리의 사유와 인식, 그리고 경험은 흑백 가정용 전화기 시대에 묶여 있다. 새 술은 반드시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내용이 바뀌면 형식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는 어떤 내용으로 21세기를 채워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준비하지도 않는다. 그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지식과 정보를 답습(踏襲)하고 소화하는데 열중한다. 소련을 필두로 한 실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崩壞)한 지 25년 세월이 흘러갔다.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되고, 유럽연합이 자연국경을 포기하고 출범했다. `흑묘백묘론`으로 시작한 중국은 `도광양회`를 거쳐 `대국굴기`를 지나 `돌돌핍인`의 지경으로 우뚝 일어서고 있다.그런데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우리는 반도(半島) 아닌 섬에서 살고 있다. 대륙을 향한 상상력은커녕 분단극복을 위한 그 어떤 진실한 노력도 없다.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로 `헬조선` 담론(談論)이 일상화되었지만, 그것의 대안(代案)은 여전히 부재중이다. 여기서 필요한 학문이 인문학이며 그 가운데서도 역사학(歷史學)이다.“역사가는 돌아앉은 예언가”라는 말이 있다. 그런 형안(炯眼)을 가진 역사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하지만 우리에게는 역사교수나 역사교사는 많아도 역사가는 없다. “역사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만 배운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소논문만 판치는 세상 아닌가? 시대를 통찰하고 미래를 통관하는 장쾌(壯快)한 시각을 가진 신진기예가 배출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막막하다.지역과 세대와 수저를 넘어서는 탁월한 담론이 나오고, 그것을 둘러싼 치열(熾烈)한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 5천년 문화민족을 자랑하는 우린데, 어찌하여 세계적인 사상가나 철학자, 역사가 하나 없단 말인가! 안으로는 우리 민족과 국가의 명운(命運)과 어린것들을 사유하고, 밖으로는 전 지구적인 삶의 양상과 미래를 기획(企劃)하는 현인(賢人)의 등장을 고대한다. 그나 그녀가 아니라, 그들이라면 훨씬 더 유쾌할 것이다.20세기 담론과 정치철학, 그리고 행동방식으로 21세기를 살아감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번 총선 결과가 보여주는 핵심이 그것이다. 세계의 변방(邊方)이나 주변부에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오르려는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치열하게 시공간을 사유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깨어있는 인문학자, 역사가와 철학자의 등장을 고대(苦待)하는 시각이다.

2016-04-22

쓸모없음의 쓸모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빛과 소금이 되어라! 어릴 적부터 자주 들은 말이다. 필자는 어떤 특정종교 신자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의미를 되새길 따름이다. 어둠에 광명을 안겨주는 빛과 인체에 필수적인 소금이 된다는 것에 담긴 함의! 빛과 소금이 사라진 세계를 떠올리면 간명하다. 항상 어둠만 지배하는 세상과 싱거움으로 가득한 식탁은 어떤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와 소금이 부재하는 음식을 연상함은 괴로운 일이다.빛과 소금은 그야말로 최상의 쓸모를 대변한다. 공기와 물도 절대적으로 유용하지만, 우리는 빛과 소금의 쓸모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 혹은 어떤 사람에게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하는 부모나 교사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일 터이고. 그런데 과연 그러해야 하는가?!`장자`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대목으로 명성이 높은 장석이 제자를 데리고 쓸모 있는 나무를 찾으러 길을 나선다. 제(齊)나라로 향하던 장석은 곡원 지방에 이르러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로 큰 사당나무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아무 미련 없이 길을 재촉한다. 보다 못한 제자가 길을 막는다. 이렇게 좋은 재목(材木)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장석은 단호하게 제자를 나무란다. 이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라고!“이 나무로 배를 만들면 금방 가라앉고, 널로 쓰면 곧 썩을 걸세. 그릇을 만들면 쉽게 부서지고, 문으로 쓰면 진액이 흐르고, 기둥으로 쓰려 해도 좀이 생기네. 결국 이 나무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어서 이렇게 장수를 누린 것이야!” (`장자`, `내편` 가운데 `인간세`)만일 장석이 본 사당나무가 쓸모가 있었다면 그것은 훨씬 오래 전에 베어져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당나무는 쓸모없음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천수를 다하고 있었던 셈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그런데 `장자` `외편`의 `산목(山木)`에서 우리는 정반대 상황과 대면한다. 장석이 제자를 데리고 옛 친구를 찾아간다. 장석을 반갑게 맞이한 친구는 하인을 불러 거위를 잡도록 한다. 하인은 잘 우는 거위와 못 우는 거위 가운데 어느 것을 잡을지 묻는다. 거위는 본디 집을 지키는 구실도 해야 했으므로 주인은 못 우는 거위를 잡으라고 명을 내린다. 여기서 장석의 제자는 혼란에 휩싸여 장석에게 묻는다.“사당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천수를 누렸는데, 이제는 울지 못하는 거위가 죽음을 당했으니 저는 장차 어찌 해야 합니까?!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누리기도 하고, 또 죽임을 당하기도 하니 대체 무엇이 올바른 방법입니까?”장자의 대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경계에 자리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경지`라고나 할까, 그런 경계를 장자는 말한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사회의 어느 부모가 장자의 이런 경지를 자식들에게 설파하고 있는가?!일컬어 `실용주의`라고 할 것인가?!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경지인지도 모른다. 도저한 깨달음의 경지이거나 시끌벅적한 저잣거리를 초월하는 범상한 기인의 경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언제나 쓸모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능하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일찍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만큼 일찍 세상과 작별하는 법이다.“일찍 핀 꽃은 일찍 시들기 마련이다!” 천재와 미인이 박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너무 일찍 만개하면 범용한 세상의 미움과 질시가 하늘을 찌르는 법이다. 양생(養生)의 토대는 어중간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군영(群英)들의 화사함이 앞을 다투는 시절의 오래된 상념이 문득 머리를 쳐드는 시간이다. 천재는 경배하여 먼저 길을 내주면 그만이다! 사태의 진상이 그럴진대 왜 우리는 천재를 박대(薄待)하는가?! 비루(鄙陋)한 인간들의 허랑 방탕이여!

201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