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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주 유감

등록일 2016-08-25 02:01 게재일 2016-08-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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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누구에게나 고유한 습관이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 동네에 가면 그 동네 소주를 먹는다. 이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다. 경북대에 둥지를 튼 게 25년 전 일이니, 그 동안 나는 줄기차게 금복주를 마셔온 셈이다. 더러 타지(他地)에서 온 친지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소주를 찾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주로 금복주를 벗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봄부터 금복주와 작별했다. 다른 선택이 없으면 모를까, 일단 금복주를 떠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복주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우심(尤甚)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금복주는 여성이 입사해 결혼을 통지하면 그 순간 해고를 감내해야 한다. 지난 8월 24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금복주의 이런 황당한 관행은 1957년 창사이후 6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무노조경영을 신조(信條)로 수십 년 재벌의 선두를 달린 기업도 있다지만, 이런 어리석은 신조는 케케묵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닐 수 없다.)

금복주는 결혼하면 안정적인 회사업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여직원은 경리나 비서 같은 제한된 관리직만 맡겼다고 한다.

경조휴가도 친가만 인정하고 외가관련 휴가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관행이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의 결혼을 퇴직사유로 예정하는 노동계약 체결 시 5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금복주의 행악질로 지난 6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여직원들이 부당해고 당했거나 불이익을 당했을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그런 것도 모르고 대구경북의 술이니까 무작정 금복주를 마셔왔던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깊이 사유하고 판단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살아온 자신을 질책하면서 금복주와 작별한 것이다. 하기야 이런 관행이 비단 금복주에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참에 낱낱이 밝혀져 그릇된 관행이 뜯어 고쳐지기 바란다.

베를린에서 유학할 때 게오르크 렘케라는 중소기업에서 노동한 적이 있었다. 하루 8시간 남짓 6~8t의 물량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육체노동이었다.

당시 52킬로그램 몸무게의 나로서 하루 6천내지 8천kg의 물량을 소화하는 것은 고단한 노릇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속한 부서(部署)의 십장(什長)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외스터라이히 부인(Frau Oesterreich)이 그 주인공이다. 성을 국가 이름에서 따온 재미난 경우다.

그녀는 정년퇴직 2개월 앞두고 명예 퇴직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남녀불문하고 누구나 십장이 될 수 있는 나라, 정년이 코앞이라 해도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명예 퇴직시키는 나라 도이칠란트. 그런 일관성과 평등한 작업장이 부강한 공업국가 도이칠란트의 지금과 여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아주 특별한 육체노동이 아니라면,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자리는 거의 없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남성들의 편견장벽만 존재할 뿐이다.

21세기는 막연한 신화나 전설 혹은 전통이라 여겨지는 우스꽝스러운 인습의 잔재(殘滓)와 작별해야 하는 시기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전역의 사람들과 실시간 연결되는 광명의 시간대에 60년 전 고용관행을 관철하는 시대착오적인 기업이나, 무노조를 신화화하는 후진적 그룹경영 방침으로 삼고 있는 기업이 세계유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참으로 희화적(戱畵的)인 일이다. 이런 일로 더 이상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결혼하면 여자는 물론 남자도 불편해진다. 가사노동의 분담과 양육 역시 여성 일변도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이 변하면 변한 만큼은 따라가야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 선두에 서지는 못할망정 뒤처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금복주가 하루속히 제정신을 차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금복주 마실 날을 기다려본다.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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