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지구촌을 뒤흔든 사건은 `브렉시트`다. 1993년 유럽 12개국으로 창설된 유럽연합은 2007년에 28개국으로 확대된다. 2002년부터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 국가들은 공용화폐 `유로`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작년에는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가 인구에 회자(膾炙)되기도 했다. 그리스는 국민투표를 거쳐 유럽연합 잔류를 결정했지만, 영국은 탈퇴를 선택함으로써 지구촌이 들썩거리고 있다.
월러스틴과 함께 대표적인 세계주의자로 꼽히는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2009)에서 21세기 세계의 향방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는 유럽연합과 더불어 북미의 `나프타`, 중남미의 `메르코르수르`, 아프리카의 `아프리카 통일기구`, 동남아시아의 `아세안` 등을 거명한다. 2030년 이후 세계는 지역연합에 기초해 재편성될 것이라고 리프킨은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의미심장하다.
국내 언론에서 다루는 브렉시트 문제는 거개가 경제문제에 한정돼 있다. 엔화와 달러화의 급등, 안전자산인 금값의 폭등 혹은 국내 주식시장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의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과 러시아의 서방정책 그리고 미국의 유럽과 아시아 정책향방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찾기 어렵다. 브렉시트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당면한 몇 가지 사안을 다각도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브렉시트로 불거진 세대갈등과 계층갈등을 숙고해야 한다. 20~40대 젊은 세대와 60대 이상의 나이든 세대의 충돌, 가진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의견대립이 현저했다. 젊고 고학력이면서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은 유럽연합 잔류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퇴를 선택한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에 동조하면서 미래기획을 하는 집단과 거기서 소외되어 과거의 영화(榮華)를 그리워하는 자들의 한판 승부가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였다. 영국의 계층갈등과 세대갈등을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있을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밀양이냐 가덕도냐, 하는 소란스런 논란이 떠오른다. 지난 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났다. 10조원에 이르는 예산이 소요되는 대형 국책사업에 `티케이`와 `피케이`가 사활을 걸고 맞장 뜬 사건. 표면적으로는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필요에 따라 부상 (浮上) 가능성이 큰 국책사업. 국민 세금으로 지어질 공항을 두고 전개된 정치권의 패거리 싸움은 매우 고약하다.
국가예산을 제 주머니의 푼돈정도로 여기는 정치인들과 정파(政派)의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는 끝장내야 한다. 세계적인 불황의 늪에서 국민들이 낸 세금을 특정지역과 집단을 위해 써도 좋다는 타락한 의식은 종식(終熄)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문학관` 건립사업 역시 같은 전철(前轍)을 답습하고 있다. 문학과 문학가가 아니라, 문학관과 거기 따른 부대이득에 혈안이 된 자들과 지자체의 물고물리는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끔찍하다.
브렉시트로 확인된 지구촌의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가까운 것이었다. 하기야 `코파아메리카 2016`과 `유로 2016`이 실시간 중계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지금과 여기서 발생하고 전개되는 모든 사건이 똑똑한 전화기로 매순간 생중계되는 21세기 아닌가! 그런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지역과 관계와 이해관계와 정파에 묶여 살아간다. 최소한도의 미래전망이나 반성적 사유도 없이.
브렉시트로 세계주의에는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자본의 앞잡이로 기능하고 있는 영미중심의 강요된 세계화와 천민자본주의가 끝장나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은 우리 내부를 돌아보게 하는 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날선 모순의 해결책을 찾는 비상(非常)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