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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정치

등록일 2016-02-12 02:01 게재일 2016-02-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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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설이 지나고 한국인들의 소란스런 대이동도 끝났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유쾌한 소동이 언제 그칠까 궁금하다. 아마 한 세대 안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3대가 모여 살았던 대가족이 1970~80년대 이른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부모자식 4인 가족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1인 가족이 전체가구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런 추세(趨勢)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면서 한국사회 주류(主流)의 가족형태가 될 것이라 한다. 그것도 10여 년 안으로!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크고 작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런저런 사유(事由)로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모이면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필연이다. 사위와 장모, 며느리와 시어머니, 시누이와 올케의 긴장관계가 곳곳에서 폭발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익숙하고 편한 관계라는 이유로 가족 안에서 언어폭력은 물론 물리적인 폭력까지도 행사한다. 단순한 손찌검에서 잔인한 살해와 시신유기에 이르기까지 가정폭력은 다채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의 폭력장면은 가정폭력을 방조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지난 10여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고 한다.

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은 일종의 연쇄반응(連鎖反應) 결과다. 실직이나 파산 등으로 실의에 빠진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구타한다. 매 맞는 엄마는 아이들을 때리고, 그 아이가 폭력 아동으로 성장한다. 매를 맞던 사내아이 가운데 8할 이상이 폭력 가장으로 자라고, 6할 이상의 여자 아이들은 매 맞는 아내가 되고 마는 기막힌 현실. 여기서 우리가 눈감거나 모르는 대목은 가정폭력의 원천인 가장의 실직과 파산이라는 사회안전망 부재(不在)다.

왜 아버지는 실직과 파산을 경험해야 하는지, 그런 상황을 방지하거나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타의로 인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 빠진 한국인 남성가장의 첫 번째 선택은 아마 음주(飮酒)일 것이다. 술을 먹고 또 먹고 취해서 손에 닥치는 대로 주먹이든 야구방망이든 휘두르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출구(出口)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폭력과 비극적인 살인사건을 줄이는 분명한 방도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대표하는 권력의 재분배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에 충실하면 된다는 얘기다. 국민이 정치권력을 4년이든 5년이든 위임했다면, 그것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뭐니 뭐니 해도 분배(分配)에 있다. 제한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도를 마련해서 타의적인 실업자를 줄여야 한다.

실업자로 전락한 가장이 구직에 거듭 실패하고 알코올 남용에 의지해 폭력을 휘두르는 기막힌 상황은 이제 멈춰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암운(暗雲)을 드리우고 있는 실업문제는 기막힐 정도로 심각하다. 대학입시를 포기하면서 9급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고등학생을 일컫는 `공딩족`마저 생겨난 21세기 대한민국. 그런데도 정부와 청와대는 노동자와 노조의 반대 없이도 손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법률을 강행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임에도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폄훼(貶毁)하면서 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노조가 없었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는 오래 전에 달성했을 것”이라고 떠드는 자가 정부여당의 대표로 있으니 두말 하면 잔소리다.

정치가 부(富)와 일자리를 적절하게 분배하도록 한다면 가정폭력과 그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설 명절에 사람들이 선거(選擧)나 정치가를 두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 까닭은 거기 있을 것이다. 마침 미국에서 불어오는 버니 샌더스 열풍이 한파를 녹이는 정치의 계절이다. 고희(古稀)를 넘어선 노정객의 한결같은 의지와 신념이 아메리칸 드림은 물론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부활을 위한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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