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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을 해고하라?!

등록일 2016-02-19 02:01 게재일 2016-02-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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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만 55세 정년하면 끝나는 인생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다. 정년을 늘리는 추세(趨勢)라지만 청년백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판국에 `오륙도`소리 듣기도 저어된다. “오십 육세까지 회사 봉급 타먹으면 도둑놈”이란 뜻이다. 거기서부터 중년 남성들의 고뇌가 발원한다. 30년 가까이 봉직(奉職)한 회사를 나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려 봐야 오라는 데는 없고, 결국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객 대열에 합류한다.

나의 선친도 예외가 아니었다. 퇴직하고 집에만 계시다보니 허구한 날 잔소리만 늘어서 모친과 말다툼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 두 분을 구원한 것은 등산도 자식도 친구도 아니었다. 아파트 경비 일이었다. 선친은 이틀에 한 번 꼴로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고달픈 경비원이 되셨다고 했다. 쉬시는 날에는 밀린 잠을 주무셔야 했기에 두 분 사이의 말다툼은 아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약간의 용돈도 가능했으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一擧兩得)!

그 무렵 나는 베를린의 야경꾼이었다. 도이칠란트 정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유능하지도 못했고, 부모님 신세를 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輾轉)하다가 찾아낸 것이 야경 일이었다. 금요일 저녁 8시부터 토요일 아침 7시까지, 토요일 저녁 7시부터 일요일 아침 7시까지! 그렇게 23시간 야경을 하면 세 식구 생활비가 마련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안양에서 동방의 밤을, 자식은 베를린에서 서방의 밤을 지킨 셈이다.

야경꾼 노릇하면서 나는 베를린 장벽 붕괴(崩壞)와 실존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동서 도이칠란트의 재통일 같은 유럽의 격변(激變)을 목도했다. 주말마다 폴란드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도이칠란트의 질 좋은 생필품을 싹쓸이하고, 동도이칠란트에서 무작정 월경(越境)한 간호사의 지친 얼굴이 아직도 선연하다.

어제 아침 포털에 `아파트 경비원 해고를 둘러싼 법정다툼`이란 기사가 올라왔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을 해고하고 자동시스템을 설치하려다가 주민들이 반발했다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 경비원 해고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법정으로까지 비화(飛火)됐다는 기사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해진다. 가구마다 월 7만원이 절감된단다. 그걸 위해서 60-70대 경비원들을 몰아내려는 것이다.

무인경비시스템 설비사업에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이 자꾸만 쫓겨나간다.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돈도 힘도 없는 민초들이 거리로 내밀리는 것이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 7만원. 경비원들의 업무는 경비 이외에도 택배보관과 전달, 아파트 주변청소와 화단정리, 폐지정리와 공병수거 등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자 어른들이다. 형편이 넉넉한 분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나의 선친처럼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다.

기계화도 좋고 자동화(自動化)도 오케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잘려나가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을 돌이켜봤으면 좋겠다. 하기야 공동체는 고사하고 이웃도 어른도 없는 황량(荒凉)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 아닌가?! 조만간 우리도 노인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고, 자식은커녕 친구도 돌아보지 않는 세태와 직면(直面)할 것이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판단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충실한 앞잡이로 길들여졌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희망한다. 최소한도의 인간다움과 여유로움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 남편 내 새끼가 귀한 것처럼 이웃집의 남편과 자식들도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이다. 백세시대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태에 살면서 그것에 담긴 함의(含意)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미소(微小)한 존재임을 기억하는 일이다. 길지 않은 세월, 더러는 베풀면서 살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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