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로 나라안팎이 어수선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그것에 대응하는 한국정부의 움직임이 전광석화(電光石火) 같다. 필연적으로 예정된 수순을 따라가는 바둑 기사처럼 흐트러짐 하나 없다. 여기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야심과 거기 편승하려는 아베의 일본이 동조(同調)한다. 한반도 북단과 중국 및 러시아가 가세하는 동조세력의 규합 역시 불 보듯 자명(自明)해진다. 그것이 국제정세이자 외교다.
며칠 전 언론은 북한이 제4차 핵실험 직전에 미국과 평화협정을 위한 비공식 접촉을 보도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촉발한 북미접촉은 한국 보수언론에게 민감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을 배제(排除)한 북한과 미국의 비밀접촉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접촉하기 전에 강력한 대북제재가 우선이라는 것이 그들의 사유근저에 자리한다. 문제는 남북대화 창구가 완전 차단된 시점에서 북미접촉 보도가 나왔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한 이후인 21일 북미접촉설이 불거져 나온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미국정부는 한반도 비핵화가 북미 평화협정에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국제정세라는 것이 언제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留念)해야 한다. 어느 나라건 자국의 최대이익을 위해 실행하는 것이 외교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사드배치를 위한 한미 약정체결 연기(延期)는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왕이 외교부장과 케리 국무장관 회담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약정체결 연기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는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배치라는 초강수를 둔 지금 미국과 중국의 동향(動向)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분단 당사자를 놔둔 채 강대국에 민족의 운명을 떠넘기지 않았는지, 생각할 일이다.
지난 세기(世紀) 1980년대 동구(東歐)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지어 몰락하고, 1991년 말에는 소련마저 무너져버린다. 세계정세의 급변 와중(渦中)에서 한국의 살길을 북방외교(北方外交)에서 찾은 이가 노태우 대통령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에게 손가락질 하지만 그가 이룩한 중국과 러시아 수교는 한국의 외교와 경제 및 국방에 활력을 불어넣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은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와 교류하면서 세계적인 변화를 수용한 반면 북한은 미국과 수교하지 못함으로써 정치 경제적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어언 4반세기가 흘렀다. 미국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쿠바와 이란과 화해와 교류의 마당을 열었다. 지구촌 최강국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한 듯하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고 현재의 무력갈등과 대결국면을 해소(解消)한다면 우리로서도 마냥 반대할 일만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통일한국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통일비용을 최소화(最小化)하는 것이 절실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을 통일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은 고통으로 점철되기 십상이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개혁과 개방에 나서도록 견인(牽引)하고, 화해와 협력으로 민족 동질성 회복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다. 북한과 미국의 접촉과 중국의 입장을 매양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수언론은 우리만 빼고 북한과 미국이 만나면 어쩌나, 그것만 걱정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고 민족통일이라는 견지(見地)에서 미래를 기획하는 장쾌(壯快)한 시각을 가져야 할 때다. 한반도가 일촉즉발 위기상황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외교와 국제정세는 여자들 머리채 싸움이나 촌사람 신문타령 하는 한가한 여흥이 아니다. 근시안 보수 언론들의 자세전환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