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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하는 할머니

등록일 2016-05-27 02:01 게재일 2016-05-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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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겨우내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석 달 열흘이 넘도록 부재(不在)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봄날 홀연히 돌아온 할머니였다. 허리 통증 때문에 수술을 받았다 하신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4남매를 홀로 키워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할머니였다. 언젠가 그녀에게 신이 내렸고, 그날부터 강신무(降神巫)가 되었다는 할머니. 그렇게 수십 년 세월을 느티나무처럼 버티며 견뎌온 세월이었다고 했다.

5월이라 봄이라지만 섭씨 30도의 대기(大氣)는 태양으로 달궈져 있다. 어깨에 띠를 두르고 뒷집 할머니가 신명나게 소리를 뽑는다. 장구와 징, 꽹과리 같은 무구(巫具)가 할머니의 신명을 돕는다. 팔순 넘긴 할머니를 땡볕 아래로 불러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겨울 이후 거동(擧動)이 더뎌진 할머니를 저토록 활기차고 강인하게 인도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할머니의 굿은 아침나절에 시작하여 점심을 거쳐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

무당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안향(1243~1306)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슨 대단한 학문이나 되는 듯 성리학을 고려에 이식(移植)한 안향. 중국에서 수입한 학문으로 신흥국가 조선이 성립되어 장장 500년 세월을 이어갔다. 그 첫머리에 안향이 있었다. 그가 어느 고을 원님으로 부임하여 첫 번째 행한 거룩한 사업이 무당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무속(巫俗)은 모두 사악하고 거짓되니 징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조선의 금과옥조(金科玉條)였던 억불숭유의 토대를 놓았던 인물 안향. 그러나 장구한 세월 성리학만을 떠받들고 추종했던 왕조는 쓸쓸하게 몰락한다. 그 왕조의 우울한 끄트머리를 장식했던 갑오농민전쟁과 을미사변의 주인공 민비 민자영. 명성황후라 불리는 민자영이 특히 굿을 좋아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인가?! 무너져 내리는 이씨의 종묘사직을 지키려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가 의지한 최후의 보루 무당과 굿은 무엇인가!

지난 세기 60~70년대 한국에는 다시 미신타파(迷信打破)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다. 그와 반비례하여 외래종교인 기독교의 교세(敎勢)는 날로 번창해간다. 무당과 박수의 자식들이라 하여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날들로 기억된다. 군부독재가 종식(終熄)되고, 우리의 전래적(傳來的)이고 토속적(土俗的)인 것들에 대한 성찰이 일상화되기 시작한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무속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박기복 감독의 기록영화 `영매(靈媒)`는 강신무와 세습무(世襲巫)를 다룬 역작(力作)이다. 인간과 신을 매개한다 하여 무당을 `영매`로 승화(昇華)시킨 박기복. 그리하여 영화관은 눈물과 한숨의 바다였던 기억이 오늘도 새롭다. 탐진치(貪瞋痴)에서 발원하는 수비뇌고(愁悲惱苦)와 생로병사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중생을 위해 헌신하는 영매들 아닌가!

알파고와 사물 인터넷 그리고 3차원 복사기가 등장한 인공지능 시대에도 영매의 구실은 여전하다. 인간의 육체적인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기계를 만들어내다가 이제는 정신적인 노고(苦)마저 덜겠다는 것이 인공지능 아닌가. 시대의 추이(推移)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大勢)로 자리매김할 것이 자명(自明)하다. 그런 시대에도 영매들의 엄존(儼存)은 나를 숙연하게 한다.

할머니가 귀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맏아들과 낮술을 먹게 되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그녀의 질부(姪婦)가 술상을 봐주었다. 질부라 해도 네 살이나 더 많은 파파 할머니였다. 그분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나는 무녀의 기상(氣象)을 볼 수 없었다. 그저 나이 들고 병약한 노구의 내 어머니뻘 되는 노파가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의 조속한 쾌유(快癒)를 빌면서 소략한 주연을 마친 봄날이 어느덧 종언(終焉)을 고하는 시간! 아아,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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