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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들과 개가 함께하는 풍경

김규인 수필가 모델이자 배우인 배정남의 전신마비 반려견인 벨이 1년 7개월간의 재활 끝에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온다. 인터넷에 벨을 끌어안은 배정남의 기사가 뜬다. 사진이지만 재활의 기쁨을 나누는 배정남의 좋아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유튜브를 통해 벨의 재활 과정을 올리는 모습까지 더해진다.신천을 걷다 보면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걷는 사람을 아이를 태우고 걷는 사람보다 더 자주 본다. 개와 보조를 맞추며 걷는 사람, 벤치에 개와 나란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 반려견의 개똥을 치우는 사람은 이제 생활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상이다.인터넷에서 반려견을 검색하니 반려견 장례식장, 반려견 동반 자연휴양림, 반려견 무료 분양, 반려견 종류, 반려견 등록 방법, 반려견 산책, 반려견 동반 펜션, 반려견 보험, 반려견 사망신고, 반려견 안락사 등 사람이 필요해서 한 시설들이 이제는 개를 위한 시설로 바뀌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개에 관한 이야기다.선거철을 맞아서인지 국회의원의 공약 사항으로 ‘반려견 놀이터 건립’, ‘1만2천명 영등포 반려동물 가족 함께’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개를 키우는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하는 내용이지만 개에 사람들이 밀려난다는 생각마저 든다.개를 키우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늦은 시간에 퇴근하면 발소리만 듣고도 집안에서 현관으로 달려 나오는 애완견의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들은 자기 일을 하느라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과 비교되어서 개를 한 번 더 껴안게 되고 먹을 걸 챙겨주게 된단다.지자체에선 반려견 산책 지역 안전관리 사업을 추진하고 반려견 관절 영양제를 광고하고 사람들은 자신도 먹지 못하는 고가의 식품을 사서 먹인다. 반려견 수술을 위한 혈액 부족 문제를 이야기하고 화재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한 이야기가 떠돈다. 개에 밀려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아이들이 타야 할 유모차를 빼앗고 노인들을 산보시킬 자손들의 옆자리를 개들이 차지한 지 오래다. 소아과병원이 개를 돌보는 병원으로 바뀌고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개를 위한 시설로 바뀌는 요즈음이다. 다리 밑의 벤치에서 산보하는 개를 바라보는 노인들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바라만 본다.사람과 개를 키우는데, 나에 대한 충성심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자식을 키우는 일이 때로는 개를 키우는 일보다 힘이 들지라도 보람된 일이 아닐까. 성장한 자식이 옆에 설 때 듬직함은 자식을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매번 개의 짧은 생명으로 안타까움을 더하기보다는 자식이 있는 풍경이 멋있지 않을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손잡아 주는 건 사람이고 모든 걸 사랑한 당신의 고귀한 유전자를 남기는 것은 자식이다.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향해 조건 없는 충성심을 보이는 동물 앞에 먹이를 내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야 숨길 수 없겠지만 그 옆에 사람이 설 수는 없을까. 사람들과 개가 함께하는 풍경이 더 좋아 보여서다.

2024-03-18

믿음이 무너지면 모든 걸 잃는다

김규인 수필가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유효 슈팅 하나를 기록하지 못한 졸전 끝에 대한민국은 요르단에 졌다. 선수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클린스만 감독의 무전술과 뒤이어 터져 나온 선수들의 다툼이 벌어진 것을 알고는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강인이 주장인 손흥민 선수와 다툼으로 손흥민은 손가락을 다쳤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위계질서가 강한 운동선수의 하극상은 좀처럼 드물다. 결과적으로 무참한 경기 성적에 앞으로의 경기를 염려하는 지경에 이른다.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다. 경기력은 기본이고 태도도 중요하다. 특히 축구는 열한 명이 뛰는 단체경기가 아닌가. 서로 간의 호흡과 생각마저도 읽어주어야 하는 경기다.경기 결과는 무참했고 능력 미달의 감독은 경질되었고 문제를 일으킨 이강인 선수는 팬들의 비난에 휩싸인다. 그를 내세워 광고하는 회사마저 광고를 취소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팬들의 비난으로 마음이 황폐해지면 경기력도 떨어진다. 이런 사정으로 이강인은 소속팀에서 출전 시간도 점차 줄어든다. 프로구단은 경기력과 상품 가치가 떨어진 선수는 언제든지 내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개인주의 사회인 유럽에서 성장한 이강인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도가 지나친 행동은 언제든 자신에게 결과가 돌아온다.그나마 선배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사과한 건 천만다행이다. 영국에 있는 주장 손흥민을 찾아 사과하고 다른 선배들에 직접 사과하여 문제를 수습하는 노력을 보인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운동하는데 생각이 많아지면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기력은 떨어지고 몸을 다칠 가능성은 늘어난다.인생은 짧고 운동선수의 경기 출전 시간은 더 짧다. 그 기간에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려면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젊을 때는 이 기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금방 지나간다.국가대표를 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팬들에게서 멀어지면 자신의 축구 인생도 끝나는 것을 젊은 선수들은 알아야 한다. 축구장에서 안 보이면 국민과 팬들의 마음에서 멀어진다. 팬들에게서 멀어진 선수의 상품 가치는 땅에 떨어진 것이고 그런 선수에게 프로구단은 돈을 투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축구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경기다. 팀을 믿고 팀에서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팀을 앞세워야 한다. 나 하나만 잘한다고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팀이 하나가 될 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마다 원팀을 강조하고, 원팀을 이루기 위해 반복 훈련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반복 훈련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지게 된다.축구경기에서 팀이 선수 개인보다 항상 앞에 있음을 감독도 선수도 깨달아야 한다. 나 자신을 앞세울 때 믿음도 팀도 무너진다. 불신의 참혹한 결과를 우리는 요르단전에서 보았다. 믿음이 사라지면 팬도 구단도 광고도 사라지고 비난만 남는다. 믿음이 무너지면 모든 걸 잃는다.

2024-03-04

출산을 위한 절박한 몸짓이 필요한 때

김규인 수필가 반가운 소식이다. 부영그룹에서 출산한 회사 임직원들에게 자녀 1명에 대하여 1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주었다. 2021년 이후 출산한 임직원 70여 명에게 70억 원을 지급했다. 회사는 1억 원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출산장려금에 대해 정부에 세제 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정부도 출산장려금에 대하여 세제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소멸 위기에 내몰린 지방자치단체들도 경쟁적으로 현금 지원책을 쏟아낸다. 충북 영동군은 관내에 정착하는 45세 이하 부부에게 1천만 원의 정착지원금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 부부에게 최대 1억2천400만 원을 지원한다. 괴산군은 5천만 원의 출산장려금을 주고, 강진군은 한 명만 낳아도 5천40만 원을 주는 등 수천만 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자치단체가 늘어난다.아이를 낳아야만 산다는 절박함에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에 더하여 ‘1만 원 월세 주택’을 제공하고 젊은 사람들이 몰리는 서울시마저도 출산지원금을 지급한다. 출산율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안간힘을 쓴다.이러한 노력에도 지원금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출산율이 가장 낮다. 2023년 3분기 기준 출산율은 0.7명으로 입학생이 0명인 초등학교와 폐교한 대학교가 늘어나 학생들에게 의지한 지역 상권은 여지없이 무너져 지역 경제는 크게 줄어든다. 인구의 감소로 산업은 쪼그라들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모자라는 것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런데도 젊은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결혼하겠다는 비율은 17.6%에 그친다. 유치원이 요양원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차 사라진다. 그 사라지는 웃음소리가 우리나라의 미래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부영그룹의 출산지원금 지급은 온 국민이 출산율을 걱정하는데 나온 희소식이다. 부영그룹은 보육과 복지의 사회 공헌을 위해 부영아파트 내 ‘부영 사랑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어린이집은 임대료 없이 그 비용이 어린이집 영·유아들의 보육과 복지를 위해 쓰이게 함으로써 보육의 질을 높이며 어린이집 원장도 공개 모집을 통하여 선발한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원칙으로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안심 어린이집’을 추구한다. 전국에 신규 어린이집 53개에 기존 어린이집 13개를 더하여 총 66개의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부영 사랑으로 어린이집’의 혜택은 임대료가 없고, 개원 지원금을 주고, 보육지원팀의 찾아가는 교사 교육과 보육 행사를 지원하고 무상보육 컨설팅을 하며 우수 유기농 식자재 및 교재교구 업체의 할인도 주어진다. 이러한 운영은 기업의 출산 지원을 위한 모범 사례로 손색이 없다.2024년은 인구가 늘어나는 원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부영그룹의 사례가 기폭제가 되어 국가와 산업체와 모든 국민이 인구감소의 위기를 이겨내야 한다. 인구가 곧 국력이 되는 시대이다. 대한민국의 소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몸짓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2024-02-19

중대재해처벌법을 어떻게 하나

김규인 수필가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중대재해로 규정한다. 중대재해특별법은 사고가 발생할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시행하며 영세 사업장의 부담을 우려해 50인 미만 사업장과 50억 원 미만의 건설 현장에 주어진 2년간의 유예기간이 이제 끝났다. 정부의 대비에도 불구하고 영세 사업장의 준비는 아직 미흡하다. 그런데도 1월 27일부터 전면 시행이 이루어진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시행을 앞두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대비 긴급 전국 기관장 회의’를 열고 대책을 서두른다.법이 시행된 이후 기대만큼의 중대재해 감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산업현장에서 노사 간의 갈등은 더 늘어났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서로 네 탓 공방만 해댄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그저 착잡하다.법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실행되어야 한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지킬 수 있고 지킴으로서 얻는 이득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어느 일방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과정이 선거를 앞두고 어느 집단의 표를 의식해서 만들어진다면 법의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쉽고 편하게 만든 법은 국민을 불편하게만 한다. 산업현장은 언제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현장의 사고가 일어나는 과정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여 근본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는 입법이어야 한다. 두루뭉술한 법을 만들어 국민에게 지키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국회의원에 여러 명의 보좌관이 도움을 주는 게 아닌가. 사고는 불완전한 시설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근로자의 불완전한 행동 때문에도 일어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업장의 문을 닫아야 한다면 사업자에게는 평생 쌓은 모든 걸 접어야 하고 소속된 근로자는 소중한 일자리를 잃는다. 자식을 위해 식당을 여는 사람도 작은 부품을 만드는 사람도 소중한 국민임을 알아야 한다.오늘도 우리의 정치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지난 정부 5년 동안 지속된 적폐 청산은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철저히 갈라놓았고 현재의 정부는 국민을 화합으로 이끄는데 머뭇거린다. 못난 정치 때문에 국민은 상대방에 칼을 들이대고 돌멩이를 마구 휘두른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줄이자는 제안이 너무나 반갑게 들린다. 국회의원이 살아남으려면 그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산업체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가만히 두어도 인력난에 낮은 수익에 사업주는 힘이 든다. 정치는 그들을 옆에서 돕는 일을 해야 한다. 홀로서기도 힘든 기업을 짓누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3고의 시기에 국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찾아야 한다. 중소기업은 우리 국민 대다수의 삶이 깃든 직장이기 때문이다.

2024-02-05

판사와 노숙인

김규인 수필가 노숙인 A 씨는 다른 노숙인 B 씨와 술을 마시며 말다툼하다가 흉기로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흉기는 스스로 발로 밟아 부러뜨렸으나 이를 지켜본 시민의 신고로 구속됐다.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아서 구속 후에 재판까지 받게 됐다.A 씨는 부모의 사망으로 30대부터 길거리를 떠돌고 빈 박스와 빈 캔 등의 재활용품을 모아 생활비를 벌어서 홀로 살았다. 변변찮은 벌이에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러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나마 책 읽기는 혼자 보내는 고단함과 서러움을 달랬다.판사는 A 씨가 현장에서 흉기를 부러뜨렸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하여 실형을 구형하지 않았다. 재판 후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와 함께 중국 작가 위화의 대표작인 ‘인생’과 10만 원을 주었다. “어머니 산소를 꼭 찾아가 보시라”는 말에 A 씨는 눈물을 글썽거렸다.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기댈 곳 없어 보이는 노숙인에게 다가간 말은 가슴 깊이 파고든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그 말에 대한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말 없는 대답이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얼어붙은 몸과 마음도 삭막한 세상도 녹일 것이다. 요즈음 세상을 살면서 가슴에 닿는 마음을 느끼는 게 얼마 만인지. 뉴스를 접한 내 마음도 따스해진다.삭막하기만 할 것 같은 세상에서도 자세히 둘러보면 이렇게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웃돕기 성금을 맡기고, 이웃을 위해 먹거리를 나누고, 노숙인을 위해 생필품을 제공하는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마음 때문에 이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 된다.세상을 바꾸는 건 너그럽고 따스한 마음이다. 판사와 노숙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에서도 판사의 따뜻한 마음은 차디찬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작은 선물 속에 담긴 따스한 마음을 마주한다면 누구나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인터넷에서 상대를 향한 가시 돋친 말이 난무하더라도 말이다.태영건설의 워크아웃 논의가 한창이고, 국민과 동떨어진 정치인들의 대결 의식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돈의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서민들의 생각은 깊어진다. 확전 일로에 놓인 전쟁이 가슴을 조여오지만 그래도 우리는 웃으며 살아야 한다. 한 손은 자신을 위해 쓰고 남은 한 손은 이웃을 위해 내밀어야 한다. 그 손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해야 한다.새해를 맞아 밤이 점점 짧아진다. 이렇게 날이 밝아지면 밝게 웃는 날도 많아지리라.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나누고 더 행복한 날들이 늘어날 것이니. 그렇게 모두가 웃는 날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삶이 팍팍하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이긴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더 대단한 것을 우리는 안다.시간, 공간, 인간.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행복은 관계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시간과 공간의 축은 사이를 강조한다. 따스함을 전하는 판사와 노숙인의 관계처럼 말이다. 오늘 서로 기대어 선 사람 인(人) 자의 의미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자.

2024-01-15

새해엔 우리를 찾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새해가 밝았는데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전쟁으로 경제는 심하게 흔들린다. 고금리, 고물가에 서민의 살림은 빠듯한데 전세 사기는 서민들의 삶을 옥죈다. 그 여파로 아파트 시장은 싸늘하게 식고 미분양된 아파트는 늘어나고 국가의 부담도 늘어난다.아파트 미분양은 금융권의 PF 대출로 인한 악재를 만들고, 애플 페이의 국내 상륙은 그들을 잔뜩 긴장시킨다. 국경이 장애가 되지 않는 수익 사업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한걸음에 달려간다. 이런 가운데 정보통신업계의 사업다각화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늘어날 것 같다.불안한 마음 탓인지 묻지마 범죄와 흉기 난동은 마음 놓고 길거리를 다니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는지 한 사람과 가정을 파탄으로 이끄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부족한 안전 의식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일으켰고, 학부모들의 도를 넘은 간섭은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자식을 가르치는 스승에 대한 존경은 고사하더라도 인간적인 배려마저 그들은 잊었다.마약은 미성년자까지 퍼지고 ‘오징어 게임’에서도 살아남은 배우를 죽음으로 내몬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린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권해 마약 하는 사회가 됐다. 마약에 대항하는 강력한 법은 언제나 만들어지는지 국회의원은 입법에 관심이 없고 정략적인 이용에만 바쁘다.빈대와 흰개미의 출현은 지금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마저 든다.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에게 철학을 가르쳤던 빈대는 붉은 반점과 가려움만을 준다. 지구가 아파서 빈대와 흰개미도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과거로 돌아가는 이 상황이 어색하다.지구는 높은 열에 자주 두통을 앓고 정신을 잃을 때는 물난리, 불난리에 자신을 태운다. 지구의 아픔은 언제쯤 고쳐질 수 있는지. 아무 생각 없이 일산화탄소만 발생시키고 쓰레기만 쏟아내는 사람들은 어제의 일을 다시 반복한다. 언제까지 지구가 견딜 수 있는 것인지. 달을 수백 바퀴나 돌고 있는 누리호는 지구가 가장 살기 좋은 별이라고 말한다. 우주에서 지구의 대체물을 찾기보다는 지구를 고쳐주는 것이 사람들의 도리가 아닐까.의사 증원 문제와 연금 개혁 법안은 2024년에도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 이 모든 문제를 압도하는 인구 감소 문제 해결 실마리를 찾기에 정부는 바쁘다. 그런데도 결혼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만 늘어난다. 아이를 낳고 살기에 우리나라가 그렇게 힘든 나라인지, 많은 것을 갖추고서야 결혼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외적의 침입에 몸으로 맞서고, 힘든 농사일을 함께 풀어나가고, 경제 위기에 금을 모으고, 월드컵 경기에 붉은 옷을 입고 한 마음이 되었던 우리를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우리를 찾아야 한다. 잠시 개인적인 이익에 흔들려 잃어버린 우리를 다시 찾자. 강강술래를 부르며 손을 잡고 나아간다면 우리를 둘러싼 문제도 저절로 풀릴 것이니. 새해는 그렇게 맞고 싶다.

2024-01-01

다시 희망을 말한다

김규인 수필가 벌써 12월이 반을 지났다. 새해가 되면 잔뜩 기대를 품고 시작했건만 연말이 지나도 달라진 건 찾기 힘들다.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연일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바닥을 기고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다툼은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세계 경제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내년도 전망을 보아도 속 시원하게 나아진다는 보도는 찾기 어렵다. 이렇게 경제가 휘청이는데 퇴로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경제가 움츠려 많은 공장이 멈추어도 지구는 덥다고 몸살을 앓는다. 몇 달간 산불이 지속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물난리로 집과 농작물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목숨을 잃는다. 지구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사람들은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고개를 안으로 돌리면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 경제는 힘들다고 아우성을 친다. 수출은 어렵고 생산이 줄고 양질의 일거리도 줄어든다. 내년에는 회복되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동안에도 물가는 계속 오르고 가격을 올리는 기업도 사 먹는 소비자도 신경이 곤두선다.내수 진작으로 경제를 떠받혀야 할 인구는 자꾸 줄어든다. 줄어드는 인구를 정부는 안간힘을 다하여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줄면 몇 년 뒤 지방 대학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기만 하는데 뾰족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가야만 하는지.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받는 국회의원은 많기만 하고 자신들의 권한은 해마다 늘려나간다. 심지어 아무 곳에나 현수막을 다는 권한까지 법으로 챙긴다. 남의 말을 듣는 그들의 귀는 점점 작아지고 자기의 말만 하는 입은 커져만 간다. 자신을 위해 움켜쥐는 손은 크고 국민을 위한 생각은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말끝마다 하는 말은 ‘국민을 위해서’다.시간이 지나도 고금리, 고물가, 저성장의 짙은 먹구름은 좀처럼 걷힐 기미가 안 보인다. 이제는 물가도 이율도 고공 행진을 하느라 사람이 딛고 사는 땅을 잊은 것 같다. 한국은행은 내년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조심스레 제시한다. 이제 살얼음판을 걷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기술이 된다.나라의 살림살이가 이러한데, 거기에 얽매인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그렇게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그래도 돌아보면 힘내어 살아야 할 이유는 많고 문제가 어려울수록 풀고 난 다음 손맛의 남다름을 우리는 안다.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차근히 풀다 보면 문제는 의외로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문제는 해결하라고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이겨낸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이듯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밝은 얼굴로 살면 삶도 나아질 것이니 웃으며 기다릴밖에. 그렇게 다시 희망을 말한다. 2024년은 다시 일어서는 한 해가 되기를 두 손 모은다.

2023-12-18

인공지능을 어떻게 하나

김규인 수필가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 열풍이 분다. 어린아이에서 전문가까지 직간접적으로 매일 인공지능을 만난다. 기업에서는 상품의 개발과 매일 쏟아지는 자료 분석과 판단에 이용하고 인공지능 관련 주가는 날마다 오르고 인터넷에서는 기사가 빠지는 날이 없다. 심지어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가짜 뉴스까지 사람들의 이목을 모은다.인공지능은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큰 흐름임을 기업체는 안다. 그러기에 수많은 인력을 투입하여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에 적용하느라 바쁘다. 기업의 명운이 달려있기에 기술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다. 개발하는 회사는 주로 자연어처리, 딥러닝, 음성인식, 영상인식 등의 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활용하는 기업은 빅데이터, 게임, 우주개발, 콘텐츠, 로봇, 보안, 클라우드, 건강 관리 등에 활용한다.인공지능 개발회사 지코어는 세계의 인공지능 개발 및 연구자들을 위한 기회를 만들고 최첨단 인프라를 용이하게 제공하여 인공지능 개발 혁신을 촉진하려고 ‘생성형 AI 클러스터’를 개발한다. 지코어의 인프라로 인해 대기업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와 개인 기업가에게도 도움을 준다.인공지능의 개발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 한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이 앞으로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라고 분석했다. 반면에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업으로 종교 관련 종사자, 운송 서비스 종사자, 대학교수 및 강사, 학교 교사, 음식 관련 단순 종사자, 식음료 서비스 종사자 등이다.오픈AI가 샘 올트먼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해임한 것은 인공지능의 개발 속도를 조절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챗GPT의 아버지’라 불리며 개발에 앞장선 샘 올트먼은 빨리 개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에 다시 복귀했다. 돈이 되는 인공지능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AI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스스로 구글을 퇴사했다. 퇴사하며 수십 년간 수행한 인공지능 연구를 후회하고, 그 위험성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고 걱정한다. 그 위험성을 자유롭게 알리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그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미 기본 데이터까지 조작하며 가짜 뉴스를 생산하여 진짜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사람들은 인공지능과의 소통을 더 원활히 하기 위해 감정을 이식하는 문제를 말한다. 인공지능을 더 잘 부려 먹기 위해 감정을 심어주자는 말이 이제는 그렇게 반갑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어쩌면 눈물을 흘리며 가짜를 말하는 인공지능에 모든 지구인이 속을까 봐 겁이 나는 것은 아닐까.이것은 모두 사람들의 문제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편해지려 하고 더, 더, 더를 외치며 욕심을 채우려는 것 때문은 아닌지. 욕심으로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을 키우는 일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은 인공지능 로봇이 언제든지 사람을 향해 달려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일에만 활용한다는 대전제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나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이다.

2023-12-04

혼란스러운 마음을 리셋한다

김규인 수필가 인공지능은 일상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일기예보를 듣고 경제전망을 보고 물가를 예측한다. 초기의 인공지능과 대결해 1승을 거둔 이세돌의 승전보는 벌써 옛이야기이다. 인공지능을 모티프로 한 영화 ‘나의 마더’는 이미 2019년에 상영됐다.인공지능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한다. 미국 팔란티어의 인공지능 고담은 위성과 열감지기, 정찰용 드론, 각종 첩보와 적군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감청 정보, 각종 인터넷 정보를 종합하여 작전 정보를 제공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한다.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항복 방송, 불에 타는 미국국방부 건물인 펜타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체포 영상은 모두 인공지능을 이용해 조작했다. 인공지능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국민의 삶이 달린 경제 문제, 일기예보, 기후변화를 논하는 자리에 조작된 정보가 입력된다면 일 초에 백경 번을 연산한다는 인공지능을 둔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조작된 자료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손해는 그 자료를 믿고 따른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에서 사람들에 의한 불평등한 점을 해소하고자 채택한 인공지능 면접도 사람이 뽑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먼저 신입사원을 뽑은 면접관들이 공정하게 평가한 것이 아니라, 그 면접관들이 뽑은 자료를 토대로 인공지능에 입력하여 선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편견도 없는 공정한 자료를 입력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매일 쏟아지는 자신들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노조의 데모와 정권만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주장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쩌면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일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말을 한다. 조금만 더 사회를 둘러보고 남을 배려하는 말을 할 수는 없는지. 그 틈바구니에 끼인 국민을 생각할 여유는 없는 것인지.무섭게 오르는 물가와 집을 매개로 사기를 펼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전화 사기마저 극성을 부린다. 이런 와중에도 국가는 국가대로 바쁘다. 인공지능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게임 체인저라며 이러한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을 서두른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국민이나 국가나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추운 날씨 탓인지 며칠 전에는 금방 태어난 아기 마음 같은 하얀 눈이 내렸다. 눈처럼 하얀 정보만을 입력할 수는 없는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순수해져야 할까. 무너진 아파트 지하 기둥에 콘크리트가 들어갈 자리에 박힌 벽돌처럼 정직하지 못한 일은 지위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다.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것은 죽지 않은 양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매에 걸린 노인에게 따스한 손길을 건넨 김선 씨의 선행을 보며 이제까지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리셋한다. 우리 사회에 아직 정확한 자료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런 날은 인공지능이 그리는 밝은 내일을 상상하기도 한다.

2023-11-20

순천처럼 하세요

김규인 수필가 1천만 관광객이 찾는 행복한 여행지, 순천만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대한민국 제1호 국가 정원과 람사르 습지에 지정된 것을 계기로 순천시는 생태 브랜드화 이미지를 굳히는 데 힘을 모은다. 눈길을 끄는 것은 흑두루미 수백 마리가 순천만 습지에 왔다는 사실이다. 조심스러운 동물이라 사람이 가까이 가면 늘 경계하고 환경이 나쁘면 찾지 않는다. 흑두루미 수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지구의 환경이 오염만 되어가는 세상에서 그래도 동물이 살기 위해 찾아드는 곳이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신문만 펼쳐 들면 지구가 망가지는 기사가 나온다. 나무가 우거진 지역은 몇 달째 불에 타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끌 수가 없고,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먹이를 찾는 코끼리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쓰레기를 태우면서 나오는 연기는 앞을 보기도 힘들고 우리의 미래도 연기 속에 싸여 실루엣처럼 희미하기만 하다.바닷물에 떠밀려 해변으로 밀려난 고래의 배를 가르면 플라스틱과 비닐봉지가 쏟아진다. 더는 고래가 살 수 없는 바다에 사람들은 온갖 쓰레기를 쏟아붓는다. 멈추지 않는 인간의 행위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생명을 줄인다. 그런데도 지구를 괴롭히는 인간의 행동은 멈추지를 않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데도 나는 아직 살만하다고 여기며 그러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순천은 다르다. 순천시는 흑두루미를 부르기 위해 높이 솟은 전봇대를 지하로 숨기고, 지역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농약을 치지 않고 논의 피를 뽑게 한다. 열심히 지은 농작물을 겨울철 흑두루미의 먹이로 준다. 순천 사람들이 곡식을 주어 흑두루미가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핀다.람사르 습지 지정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습지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관청과 주민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얻고 생활의 불편함을 덜어주며 시의 정책에 함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결과다. 자연 친화적인 생태관광 도시로 만들려는 순천시의 노력 덕분이다.순천만의 수백 마리의 흑두루미는 노력한 인간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몇 마리에 불과한 흑두루미를 수백 마리로 불려준다. 듬성하던 갈대 군락이 바닷가까지 늘어난다. 갯벌에서 게는 뛰어다니고, 땅이 제대로 숨을 쉬고 땅에 기대어 사는 생물의 수가 늘어난다. 물속에서도 삶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사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살아있는 것들의 어울림이 주위를 가득 메운다.“환경을 살리는 생태관광, 지역 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지역 기반 관광으로 여행의 콘셉트와 가치가 다른 최고의 순천을 만들어 가겠다”고 한 순천시장의 말보다 앞선 행동이 오늘의 순천만을 만들었다. “순천처럼 하세요”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순천을 돌아보고 느끼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가을은 순천만의 갈대를 보고 싶다. 흥겨움에 겨워 춤을 추는 갈대 사이에서 오염된 자연을 벗어나 자연의 조화를 느끼고 싶다. 순천만의 아름다운 낙조를 보며 절박한 마음으로 지구를 위해 따뜻한 손을 내밀기를 기대한다.

2023-11-13

지속 가능한 재활용 체계를 갖추어야

김규인수필가 비닐봉지를 뜯어 재활용품을 모으고 지게차를 이용하여 다시 이동용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곳으로 밀어 넣는다. 재활용품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흐른다. 벨트에 붙어선 사람들은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골라서 큰 포대에 담는다. 채워진 포대는 종류별로 단단하게 묶여서 재활용 공장으로 다시 보내진다. 선택받지 못해 쓸모없는 물건은 폐기물 처리센터로 보내어 태운다. 타면서 나오는 분진과 냄새와 유독가스는 우리를 괴롭힌다.쓰레기 재활용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매일 되풀이 되는 문제이다. 그런데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우리는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구는 버려진 폐기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는 남의 일인 양 나 몰라라 한다. 서로가 남 탓만 하며 지구를 살리는 시간을 허비한다.북태평양에선 미국의 텍사스주보다 큰 플라스틱 섬이 매년 그 크기를 더하는데 사람들은 누구도 먼저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쓰레기를 마구 쏟아낸다. 남극에선 빙하가 계속 녹아 빙하를 보기가 어렵다. 지구의 비명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홍수가 나고 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가뭄으로 물 구경을 한 지 오래된 나무들은 자연발생적인 산불로 몇 달째 자신을 태운다.우리나라에서도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분류되지 않은 쓰레기는 태워지거나 땅에 묻는다. 묻을 곳이 모자라서 새로운 매립지를 정할 때면 그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늘어난다.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시설을 건설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는 곳에 폐기물 처리 시설 건설을 막는다. 그나마 재활용품을 처리하는 업체가 있기에 이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다행이다.2021년 기준 재활용업체는 6천720개다. 2020년 대비 2.8% 늘어난 수치이다. 종업원 수가 5인 이하 업체의 비율이 53.8%이고 10인 이하는 4천955개로 73.7%이고 100인 이상인 업체는 98개로 1.5%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소각하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이다.대다수의 재활용업체가 영세하기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물건만을 모아서 처리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사용해 연 32만t의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복합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체를 울산에 건설한다. 재활용 소재 개발과 자원순환 생태계를 위해 삼성전자가 ‘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한 것은 다행이다. 폐기물 재활용에 있어 중요한 생산자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이제는 살기 위해서라도 재활용 비율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촘촘한 법을 만들고 생산자는 쓰레기가 적게 나오도록 제품 포장과 생산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소비자는 재생 원료로 만든 제품의 사용을 늘리고 쓰레기를 버릴 때는 철저하게 분리하여 배출해야 한다.폐기물 처리에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폐기물 재활용을 위한 지속 가능한 선순환 체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지구가 더 이상 오염되는 것을 줄이고 사람의 삶이 가능한 지구를 보존할 수 있다.

2023-10-23

577돌 한글날을 맞으며

김규인수필가 2023년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다. 문자를 기념하는 날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는 한글이 그냥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지시하에 만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문화의 바탕이 되는 날을 다시 맞는다.세상에는 자기 말을 가지면서도 이를 표현할 글자가 없는 나라가 더 많다. 그런 가운데 너무나도 멋진 한글을 가진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해외에서 한글로 적힌 간판을 보거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는 한글이 한국 사람답게 만드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려 만든 한글 창제의 훌륭한 뜻을 알면 마음마저 젖어 든다. 577년 전에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애쓴 통치자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가장 기본적 권리이다. 백성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런 한글이 우리나라에서 수난을 당한다. 젊은 사람들은 말을 줄여 쓰느라 국적도 없는 말을 한다. 처음 듣는 사람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궁금하여 물어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줄여서 쓰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구슬이 구르는 소리 같은 말이 듣기에도 불편한 말이 된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말을 비트는지 알 수가 없다.오랜 기간 중국과의 문화 교류에 따른 한자가 유입되고, 36년의 침략으로 남은 일본어의 흔적은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외래어의 영향도 점점 늘어난다. 물건을 팔면서도 경쟁적으로 남의 나라말을 빌려서 쓴다. 교통의 발달로 다른 나라로 이동이 편리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자연스러운 범위를 벗어나 인위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강하다.경제 위기 상황을 맞은 요즈음 외국 언론이나 금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무분별하게 들어온다. 방송이나 신문은 우리말로 순화하지 않은 채 경쟁이라도 하듯 기사를 선점하기에 바쁘다. 뱅크 런, 본드 런, 로크인 효과, 뱅크데믹 같은 단어는 뜻을 짐작만 할 뿐 금방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지금은 한류가 세계 문화의 주인공이다. 우리말로 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우리말로 만든 노래를 부르고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도 늘어난다. 한류를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 비행기에 오른다. 산과 문화재와 현대식 건물이 아우러진 서울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정작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다르게 생각한다. 높이 솟은 아파트에는 ○스테이트, ○○캐슬, ○○파크, ○ 플래티넘, ○샵 같은 외래어를 마주하고 중심가로 들어서면 상가의 간판들은 외국의 도시로 착각하게 한다.

2023-10-09

이제는 선행 기사가 줄을 잇기를

김규인수필가 한 사람은 수레를 끌고 다른 사람은 우산을 씌워주며 나란히 걸어간다. 자신의 한쪽은 비를 맞으며 우산을 씌워주는 여인의 따뜻한 마음이 뜨겁게 다가온다. 수레를 끄는 노인의 느린 속도에 맞추어 함께 한참을 걷는다. 남을 위해 함께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몸은 비에 젖어도 마음은 따뜻한 선생님의 선행에 우리는 감동으로 물든다.그동안 여당과 야당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로 피로감은 늘어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우리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한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다툼은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를 힘들게 한다. 그런 가운데에도 정치가 권력만을 바라볼 때 서민들의 삶은 기댈 곳을 잃는다.이제는 감정 노동자가 되어버린 교사는 점점 죄어오는 족쇄를 풀고자 거리로 나선다. 동방예의지국이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집요한 일부 학부모들의 요구는 교사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교사들의 현실에 우리는 너무 무기력하다. 학생들의 잘못한 행동마저도 지적할 수 없는 교사의 오늘이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방송과 신문은 연일 새로운 기사를 쏟아낸다. 신문 지면을 가득 메운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사건으로 채워진다. 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찬 서민들에게 ‘묻지마 살인’, ‘성폭력을 위한 폭행과 살인’은 마음마저 움츠러들게 한다. 수없이 달린 감시 카메라를 피해 사건은 줄을 지어서 일어난다.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이어 일어나는 교사들의 잇따른 자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어린 학생들의 학교 앞 횡단보도 위에 드러눕기. 공공장소에서의 살인 예고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가 됨으로써 각종 범죄의 학습장이 되는 느낌이다. 여기에 언론의 보도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독자들이 보고 읽도록 만드는 자극적인 표현이 범행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선행 기사를 찾아보니 길에 쓰러진 응급 환자를 구조한 버스 기사,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조한 해군과 축구 코치, 꾸준하게 봉사와 후원을 아끼지 않는 인기 연예인들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그들의 기사를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싣는다면 사람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선행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신문과 방송에 실린 기사는 우리의 시선을 선행으로 쏠리게 하고 우리가 남을 위해 도와주는 것을 친숙하게 만든다.찾아보면 선행도 사건과 사고에 뒤지지 않게 많다. 물론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기사는 쓰기 나름이 아닐까. 선행이 다 같을 수는 없고 돈 많은 사람이 하는 선행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행이 더 많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신문 지면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작은 일 하나에도 소망을 품고 서로를 보듬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서민들이 더 많이 웃기를 빈다. 함께 사는 세상이 더 밝아지면 서민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나리니. 이번 한가위에는 이웃과 풍성함을 나누는 그런 명절이기를 소망한다.

2023-09-18

따라 하기라니

김규인 수필가 살인 예고 건수가 480건을 넘었다. 한 사람에서 시작한 살인 예고가 빠른 속도로 번진다. 이를 중·고등학생들이 따라 하더니 초등학생마저 살인 예고한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깝다. 살인 예고는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불안하게 한다. 사회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바람과는 달리 어린 학생들마저 따라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져만 간다. 많은 사람이 불안스레 지켜보는 와중에도 왜 이런 일을 계속하는지 알 수가 없다.여기에 더하여 초등학생들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촉법 소년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초·중등 학생들의 도를 넘는 이러한 행동이 사회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떠오른다. 민식이법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위인지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돈벌이하려는 행위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늘어나는 따라 하기에 불안하기만 하다. 국가에서는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고 횡단보도에 드러누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유치원에만 다녀도 알 수 있는 사회 기본 질서를 지키는 일이 공권력을 동원해야만 하는지. 그렇지 않아도 사회의 힘들고 아픈 사람도 살펴야 하는데 말이다.그런데 막상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아도 마땅한 처벌법이 없어서 다시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살인 예고는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아울러 촉법 소년이 처벌받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소모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은 오롯이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관련 법이 없어 처벌하지 못하고 불안한 사회를 쳐다보기만 하는 건지. 권력을 잡는 일에만 열중인 국회의원들을 보면 할 말을 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어 권력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촉법 소년 교육은 일차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에서 안전하여지려면 먼저 사회의 규범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국가는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여야 한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받는다는 사실과 법을 지켜야 자신이 안전하다는 깊은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학부모는 남에게 해를 가하고도 자기 자식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살인 예고와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가 처벌받지 않아서인지 따라 하기가 늘어난다. 이제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남의 이목을 끄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자신이 지키지 않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자신이 위해를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사회는 우리 스스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생활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 인(人)자가 막대 두 개가 서로 기댄 것처럼 사회는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따라 하기를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2023-09-04

진정성이 마음을 움직인다

김규인 수필가 표를 위한 것이라면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말도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자식을 가르치는 교사의 밥줄을 끊는 것도 서슴없이 한다.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서는 국민도 나라의 장래도 안중에 없다. 같이 한다는 생각보다는 상대를 누르려고만 하고 잘못에 대한 사과는 미적거린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을까. 음식 프로그램에서는 오래된 장맛을 칭송하는데 일상에서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본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의 잘못에 대하여서는 조그만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잘 숙성된 김치를 먹는 문화민족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자기만의 생각으로 갖은 이유를 대어가며 잘못에 대한 사과를 미루다가 사회의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서 하는 사과가 계속된다. 사과하는 자리에서도 변명만 늘어놓는 일로 사과를 대신한다. 그렇게 하니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사과를 받는 사람도 석연치 않은 사과에 마음만 불편해진다.사과는 책임의 소재를 명백히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피해를 본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밝히고 피해 보상하여야 한다. 아울러 자기 행동에 대한 반성과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사과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미사여구로 포장된 화려한 문구가 아니라 거짓 없는 마음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삼성 이재용 회장의 사과는 사과의 정석으로 통한다.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한 삼성서울병원의 사과 주체와 잘못을 구체화하고 책임 소재도 명확히 했다. 아울러 개선 방향을 밝히고 치료에 전념한 의료진에 대하여서 배려한 점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로 오히려 삼성 그룹의 주가는 올라갔다. 삼성 이재용 회장의 사과에는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는다.세계인 잼버리 대회가 새만금에서 열렸다. 개최 전부터 준비 부족에 대한 지적과 이로 인한 피해가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하물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과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풍은 잼버리의 운영을 더욱 어렵게 했다. 하지만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세계로부터 비난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이제 잼버리는 끝났고 문제에 대한 책임과 사과가 이어질 것이다. 보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요구된다. 잼버리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건이 터지고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인터넷을 달군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여기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엮일 때 한마디 말없이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그렇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인데 말이다.불편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기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바쁘다. 얼굴을 마주하고 푸른 하늘을 볼 수는 없는지. 지나간 삶을 돌아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언제나 진실한 마음이었다. 내일은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23-08-21

이제는 죽음에 대해 답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죽음이 계속된다. 그 죽음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죽음을 본다. 그 죽음에 대하여 울분을 토하며 격분해도 그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죽음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죽음에 우리는 아직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학부모의 도를 넘은 항의와 전화에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어야 할 교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달리했다. 한쪽만을 바라본 법의 폐해가 발생하고 이미 여러 명의 교사가 목숨을 잃었어도 우리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저 교사의 죽음을 바라보기만 한다.신림동의 ‘묻지마 살인’에 대하여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비난만 할 뿐 그렇게 지나왔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였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슬픔의 자리에 꽃은 쌓여가는데, 문제 역시 그대로인 채로 쌓여만 간다. 혹시 내가 그 대상자가 아니라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어처구니없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망연자실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여러 번의 신고 전화가 관련 기관으로 걸려 왔는데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고,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제방을 넘어 지하차도로 들어찬 물은 차도를 달리던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서로가 상대가 잘못했다는 말만 하느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도 어렵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생각은 없는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사회를 살피는 감시 카메라는 더 늘어난다. 매스컴은 홍수를 이루고 심지어 개인 방송하는 크리에이터도 늘어나 많은 사람이 아는데도 왜 이런 불행한 일이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가. 죽음이 던지는 계속된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죽은 자들은 어서 답을 달라고 하는데 속 시원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인간이 쌓은 경제적인 부로 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하는데 삶은 더 힘들어진다. 안전을 위한 법은 늘어나고 난간을 지지하는 지지대는 굳건하게 세워지지만, 삶과 죽음은 편리한 삶의 도구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 가장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야 할 주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에 속수무책이다. 사람 사이에는 어떤 안전장치를 해야 할까.다양한 삶으로 정작 가까워야 할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혼자만의 시간과 생각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 주위에 푸른 하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자기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자기 자식보다 남의 자식이 누리는 행복을 보며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낸다.판단의 기준은 자신이 된다. 남의 행복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볼 줄도 모른다. 이 세상을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옆의 사람들이 있어야 내 삶이 더 단단해진다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나의 주위에 사람이 있음을 느껴보고 몸이 불편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이라도 주위를 향해 돌릴 때 세상은 더 살만하지 않을까. 이제는 죽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한다.

2023-07-31

고래도 살지 못하는 지구를

김규인 수필가 방송에서 연일 장마로 인한 대피와 피해 상황을 보고한다. 실종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그런데도 다음 주까지 물 폭탄은 계속된다고 한다. 물에 잠긴 논을 바라보는 농민의 시름은 깊어져 가고 하루아침에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를 잃은 수재민들은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하다.비 피해로 문화재로 등록된 칠곡 매원마을의 승산대 대문채와 국가민속문화재인 봉화 송석헌 고택 주변의 물도랑 3곳도 무너졌다. 어디 무너진 것이 문화재뿐이랴. 가뜩이나 치솟은 물가와 불황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국민들의 마음을 지탱하던 마음의 축대마저 부러뜨린다.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은 대응책을 내기보다는 정치적인 유불리에 따라 말과 행동을 달리하는 거대 정치집단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정작 문제의 본질은 홀로 나뒹군다. 오히려 자신의 성향에 맞는 정치에 편승해 거드는 국민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나라가 온통 후쿠시마 오염수로 도배가 된다.바다의 거대한 쓰레기 덩어리인 플라스틱 섬은 인간 탐욕의 크기만큼이나 점점 더 크기를 키워도 어떤 나라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는 효과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섬이 커져야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까. 코로나 이후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더 늘어만 가는 플라스틱은 이제는 사람마저도 삼키려 한다.부산항 등 대형 항구가 있는 항만에는 선박의 접안 시 충격을 위해 달아놓은 폐타이어가 큰 충격으로 선박에서 떨어져 가뜩이나 힘겨운 항구의 커다란 혹 덩어리가 되어 자란다. 해양수산부가 늦게나마 실태를 조사하고 일제 수거에 착수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나씩 인간의 욕심을 채우고 떨어진 쓰레기가 이제는 바다를 가득 메울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높은 산이나 극지방에서 수십억 년 동안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지구를 지키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후세 사람들은 빙하가 무엇인지 책에서나 보는 신기한 물체가 될 것 같다. 빙하수가 이루는 호수를 보는 일은 더는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일이 되고 호수는 바닥을 드러내고 갈라질 것이다.매일 자동차를 몰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열심히 지구를 데우는 지구인들은 급격하게 온도가 올라 몸부림치는 지구의 아픔을 애써 외면한다. 화가 나서 여러 달을 산을 태워도 산이 뭉개지도록 물을 뿌려도 풀리지 않는 지구의 화병을 고칠 수는 없는지. 이제 더는 손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지구의 아픔에 대해 외면하고 자신들의 떠내려간 살림살이만을 걱정하고 있다.지난 1월 카우아이섬 인근 암초에 길이 17m, 몸무게 60t의 거대한 향유고래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수많은 플라스틱과 해양 쓰레기로 가득해진 뱃속을 보여주며 향유고래는 말한다. 더 이상 지구는 고래가 살 곳이 못 된다고.지금도 우리는 열심히 지구를 데운다. 온갖 가스를 내뿜고 온갖 욕정을 내뿜으며 뱃속 가득 욕심만을 채운다. 고래뱃속 가득 플라스틱을 채우고도 모자라 플라스틱 공장은 24시간 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그 아름답던 녹색 별이 붉은 별이 되도록.

2023-07-17

몸이 쓴 말은 다르다

김규인 수필가 요즈음 대중 매체에서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자질을 시비하는 기사가 자주 뜬다. “2019년 심석희 선수 미투와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으로 체육계가 떠들썩했을 때도 장미란 차관은 침묵했다” 어느 국회의원의 말이다. 별로 꼬집을 게 없어서 별걸 다 트집을 잡는다는 생각이 든다.“내가 1등을 하고 싶으니까, 상대의 노력을 무시하고 실패하기를 바라는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던 장미란 교수의 말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무거운 역기를 들고 힘겨운 싸움을 했던 선수의 너무 솔직한 표현이다. 누구인들 왜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조국에 메달을 선물하고, 이후 세계역도선수권 대회를 3연패하고,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2012년 마지막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기까지 긴 시간을 세계 역도의 정상으로 자신을 관리했다. 오랜 시간 정상을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으며 몸을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늦잠을 자며 쉬고 싶은 날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어나 역기를 드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남들이 기록을 위해 금지 약물 복용의 유혹에 빠질 때도 역기를 드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역도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학업도 게을리하지 않고 성신여대 석사, 용인대 체육학 박사에 이어 미국 켄트주립대에서 스포츠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장미란재단을 설립하여 비인기 종목 선수와 스포츠 꿈나무를 후원하였다. 그의 따뜻한 마음은 사회 배려 계층을 위해서도 손을 내밀었다.오랜 시간 체육계에 몸을 담아 내부의 일을 누구보다 잘 알며 온갖 어려움에도 자기 일은 소리 없이 하는 사람, 마음은 낮은 데로 향하고 사회의 약자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알고 묵묵히 자신을 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 차관의 적임자가 아닐까.일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정치인들이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며 실제는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득만을 쫓는 무리가 요즈음 정치인들의 행태가 아닌가. 공직자라면 말보다는 몸이 먼저 국민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찾을 줄 알아야 하지 않는가.우리나라도 오른 물가에 살림을 걱정하고, 높은 보증금으로 전세를 사는 사람들은 떨어진 집값에 맡긴 전세금을 걱정한다. 집값을 잡아보겠다고 책상에서 쏟아낸 고집스러운 정책의 결과가 너무나 혹독하다. 너무나 쉽게 헐어버린 곳간을 채우느라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정작 돈이 필요할 때 돈을 쓰지 못한다. 입이 앞선 공직자의 폐해가 너무 쓰라리다.“자신이 주어진 곳에서 열심히 일상을 사는 것이 애국하는 일이다.” 러시아와 전쟁하는 우크라이나의 한 아주머니의 말이다. 힘든 전쟁의 시간을 겪으며 몸이 하는 말이다. 언제나 입보다 몸이 써낸 한마디는 무게가 다르다. 그들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몸으로 말하는 차관의 발탁을 환영한다. 우리에게는 정직하고 몸이 앞서는 공직자가 필요하다.

2023-07-03

묻고 또 묻자

김규인 수필가 챗GPT에 질문하는 기사가 한동안 신문을 채웠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챗GPT는 질문하기 바쁘게 답을 내놓았다. 챗GPT가 어떤지 궁금해서, 우리 사회가 묻는 이에게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니 기계에 물어보는 건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기계에 답을 구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우리 사회는 산적한 문제로 어떻게 순서를 정하여 일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다. 출산율의 저하는 엄두가 나지 않는지 지엽적인 문제만 건드린다. 국회의원 수를 조정하는 문제는 당리당략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일본의 원전 오염수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말을 한다. 전세 사기 문제는 너무 꼬여 실마리를 찾기가 힘이 든다. 여기에 퀴어 축제로 국민의 생각은 나누어진다. 욕심을 내려놓기 어려운지 들러리 문제만 만지작거리느라 중요한 문제만 그대로 남는다.코로나가 설치고 혼자 놀기에 익숙한 탓인지 우리는 자기들만의 시간에 빠진다. 수업받는 학생은 질문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는 현재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본다. 자기의 생각을 남들과 섞을 줄을 모르고 자기 말만 하느라 남을 위하여 틈을 내어주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질문 없는 교실에 학문적인 성취는 없고 질문 없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질문하는 것은 가슴에 억눌린 답답함을 해소하는 길이요 꽉 막힌 도로를 뚫는 것이며 힘들다는 서민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질문은 사건의 핵심을 뚫고 본질에 다가가는 길이다. 문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핵심 문제를 들추어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좋은 질문은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갈구하거나 그 상황이 주는 아픔에 마음 아파하며 절박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질문은 더 구체화하며 날카로운 물음으로 문제의 본질을 향한다. 질문은 말이 없지만, 묻는 이의 절박한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다.질문이 구체화할수록 답은 절반 이상이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질문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핵심을 빗나간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하고 문제는 홀로 나뒹굴게 된다. 핵심을 찌른 질문은 사람들을 질문에 집중하게 하고 해결 방법을 찾게 만든다. 현재의 판을 뒤집는 핵심적인 질문은 문제 해결을 넘어 삶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돌아보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로 쌓여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의지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만을 생각하며 의사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끊임없이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오늘 하루 나를 향해 질문을 던져보자. 누구보다 절박한 마음으로 나를 둘러싼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질문을 하자.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서로 간의 소통으로 이어진다. 어느 순간에 문제는 핵심을 찌르고 사람들은 모여 있을 테니 말이다. 눈길이 사람을 향할 때 서로 잡은 손은 더 따뜻해질테니 말이다.

2023-06-26

더 아름답기를

김규인수필가 멀리서 보면 매화를 닮았다는 매원(梅院)마을이 마을 단위 국가등록문화재로 처음으로 등록됐다. 집에 서당에 재실 뿐만 아니라 골목길에도 남은 사백여 년 삶의 자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더구나 여기는 조선시대 하회마을,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3대 양반촌이 아닌가.마을은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동·서로 길게 터를 잡았다. 중매를 중심으로 동쪽의 상매와 서쪽의 하매로 이루어진다. 문화재청은 “이는 구성원들이 갈라지면서 나아가는 시간적·공간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마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집도 길을 따라 늘어서고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가, 가족의 분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드나드는 길이 서로 다르다. 이는 신분과 시간에 따라 주거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문화재청은 “칠곡 매원마을은 근·현대기에 이뤄진 마을 영역의 확장, 생활방식 등이 다른 영남지방의 동족 마을과 구별되는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며, 가옥과 재실, 서당, 마을 옛길, 문중 소유의 논과 옛터 등 역사성과 시대성을 갖춘 다양한 민속적 요소들이 있어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등록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우리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옥의 구조나 골목길은 우리들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재실에서는 삶의 뿌리를 다시 확인하고 서당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미래의 꿈을 키운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 우리네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우리네 문화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 세계문화의 중심에 선 우리 문화의 자존심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한류가 수십 년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은 오천 년 동안 쌓아 뿌리 깊은 문화가 있어서다. 오천 년간 쌓은 한국적인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이번 문화재청의 매원마을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준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오천 년을 이어오며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삶의 자취를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일은 한류의 지속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문화의 지속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여 남의 나라에 복속되거나 긴 식민 지배로 자신들의 문화를 잃은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그러하기에 매원마을 문화의 꽃이 더 아름다운 이유다.‘아름답다’를 살펴보면 조상들의 문화에 대한 통섭을 알 수 있다. ‘아름’은 앎의 뜻으로 썼으며 나나 개인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하였다. 이 말은 나를 제대로 알 때 아름답다는 뜻으로 단어 하나에서도 사물의 깊은 이치를 담은 우리 선조들의 통섭을 읽는다. 그러하기에 모든 색을 품을 수 있는 흰색을 좋아하고 지형을 보고도 매화꽃을 피우고 오늘날 세계를 열광케 하는 한류의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었다.나를 제대로 알기에 문화의 꽃을 피우는 대한민국. 다시 삶의 향기 가득한 매원마을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한민족의 바닥에 깔린 깊은 문화의 샘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계속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을 올리는 일이 세계의 문화를 한 단계 올리는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202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