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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삼복더위에 삼복(三福) 짓고

윤영대수필가 34년 만의 ‘지각 장마’가 잠시 멎으니 뜨거운 삼복더위가 몰려온다. 삼복은 가을 기운이 오다가 무더위에 세 번 엎드린다는 뜻으로 24절기는 아니다. 초복은 하지 이후 세 번째 경일(庚日)로 올해는 7월11일, 중복은 네 번째, 그리고 말복은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인데 그달을 넘기면 월복(越伏), 안 넘기면 매복(每伏)이라고 한다.이제부터 한낮 기온은 30℃를 오르내리며 우리 몸도 더위에 지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삼복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즉 열로 열을 다스린다고 여러 가지 ‘복달임’을 해왔다. 지금은 사라지고 있지만 보신탕이라고 개장국을 찾아 먹었고 요즈음은 삼계탕이 대세다. 어린 닭의 뱃속에 찹쌀과 함께 인삼, 대추, 마늘을 넣고 푹 삶아 먹는 맛이 한여름의 보양식으로는 으뜸이다. 장어도 구워 먹고 전복죽도 끓여 먹으며 몸을 다스리기도 한다. 또 시원한 콩국수도 좋고 벽사의 효험을 바라며 팥죽을 먹기도 하며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더위를 식힌다.삼복더위는 하지 때 시작하여 유두(流頭)를 지나 백중(百中)날 무렵에 한풀 꺾인다. 이 무더위에 잠자리도 호박잎에 앉아서 쉰다고 하니 무리하지 말고 휴식도 취하자. 코로나 재확산으로 가족과 벗들과 마음껏 나들이도 못 하겠지만 휴가철을 맞아 바캉스도 즐겨야 할 것이니 북적대지 않고 조용한 곳, 시원한 물가를 찾아 천렵이나 탁족을 하거나 폭포수로 물맞이하며 무더위를 피해 보는 것도 ‘복놀이’다.잠잠해지던 코로나19가 델타 변이까지 번지면서 우리 생활에 또다시 혼란을 가져오고, 하루 확진자가 1천300명 이상으로 급증하며 수도권엔 거리두기 4단계로 격상되었다. 비록 체온 가깝게 더워지는 날씨에 불편하겠지만 방역대책을 잘 지켜서 안전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데 마음을 합쳐야 한다. 짜증 나는 뉴스들이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피곤하게 하더라도 맑고 푸른 자연을 떠올리며 서로의 마음을 정화시켜 나가는 방법도 찾아야겠다.속담에 ‘삼복더위에 소뿔도 꼬부라든다’라고 했으니 옛날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 원두막에 앉아 더위에 풀이 죽어있는 소들을 보며 애처로웠을 테고, ‘삼복지간에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할 정도로 힘이 빠졌으리라. 코로나 바이러스는 밀폐된 공간에서 확산이 잘된다고 하니 에어컨 바람도 조심해야 하며 덥더라도 자주 환풍을 시켜야 할 것이다.이 삼복의 계절엔 뜨거운 폭염이 땅을 달구고 폭우가 자주 내리붓고 또 폭풍을 몰고 오는 태풍도 올해는 1~3회 예보되고 있다. 국지성 호우에 산사태나 침수와 같은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폭염·폭우·폭풍의 삼폭(三暴)이 몰려오는 삼복더위에 짓눌리지 말고 나만의 생각으로 세 가지 복, 삼복(三福)을 지어보자. 첫째 복은 코로나 감염을 피하는 건강복일 테고 두 번째는 사람 복, 거리두기로 뜸해진 만남도 비대면으로나마 자주 얘기를 주고받으며 인복을 쌓고 세 번째 마음의 복, 그 맑은 심복을 지어보자.시골집 대문 옆 능소화가 곱게 피었다. 뒷밭의 대나무로 죽부인을 만들어 껴안고 참숯 베개를 베고 누워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싶다. 삼복더위와 코로나 사태,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1-07-11

뜨거웠을 용암의 꿈, 주상절리

윤영대수필가 경북 동해안은 지질 명소가 많다. 지질공원의 개념은 2004년부터 유네스코가 지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2010년 제주도가 제일 먼저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정받았고, 환경부가 정하는 국가지질공원 13곳 중 경북은 3곳, 그중 하나가 경북 동해안이다. 원생대의 울진부터 신생대의 경주까지 낙동정맥의 동쪽 해안은 융기로 인한 해안단구와 퇴적암, 화성암 또 바다가 갈라지고 용암이 분출하여 냉각된 흔적인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지구 생성의 꿈을 보여주며 바닷가에도 육지에도 있다.경주로 갈 때마다 신비롭게 보아온 달전리 주상절리가 근래 들어 흔적이 희미해지는 듯하여 계곡을 더듬으며 가까이 가봤다. 이 주상절리는 포스코 단지 매립용으로 석재를 채굴하다가 발견된 곳으로, 천연기념물 제415호이다. 약 200만 년 전 신생대 3기 말에 생성된 현무암의 6각 기둥 주름이 높이 20m 폭 100m 규모로 80도 경사에서 거의 수직에 가깝게 휘어져 병풍 모양으로 둘려진 곳인데 그 틈새에 작은 나무들이 자란 탓이다. 엉겅퀴 꽃이 아름다운 잔디밭에 앉아 옛날 용암이 흘러내렸을 뜨거웠던 이곳을 상상해보며 고개를 들어 고요한 달전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아본다.경주 양남 해안도 주상절리의 야외박물관이다. 드라이브를 즐기며 읍천항으로 가서 조용한 포구 한켠에 주차하고 둘러보니 벽화 그려진 방파제와 빨강 하양 초록의 등대가 곱다. 하서항까지 1.7km의 ‘파도소리길’을 걸으며 신비로운 주상절리를 보기로 한다.입구의 나무 계단을 올라가 조금 걸으니 긴 출렁다리가 걸려있다. 언덕에는 예쁜 펜션들이 바다를 보고 있고 발밑의 파도 소리 들으며 걷노라면 확 트인 절벽 위에 우람한 전망대가 보인다. 1층 전시실을 둘러보며 2017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536호의 이야기를 머리에 담고 4층으로 올라가면 주상절리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로 아래 활짝 편 부채꼴 주상절리가 파도에 씻기며 흥겨운 노랫가락을 들려주는 듯하다. 좌우로 펼쳐진 까만 바위들도 정겹다. 내려와 오솔길을 걷다가 몽돌해변에서 작은 돌탑도 쌓아 봤다. 길섶에 핀 야생화들을 만져보며 1km 남짓한 바닷길을 걸으면 위로 솟아오르고 기울어지고 누워있기도 한 여러 모양의 주상절리가 떡가래처럼 포개어져 있다. 그 위에 기대어 억겁의 시간을 가늠해 보기도 하며 하서항까지 왔더니 긴 방파제 끝에 빨간 ‘사랑의 자물쇠’ 조형물이 있다. 그 안에서 아내와 팔 벌려 하트 모양을 찍고 되돌아오는 길, 솟아있는 주상절리 위에 앉은 흰갈매기 떼는 바닷가에 꽂아둔 하얀 꽃다발 같다.오는 길에 문무대왕암을 보러 백사장에 내려가니 무슨 소원을 비는지 굿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감은사지도 들러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쌍탑을 돌아보고 대종천 어귀의 이견대에 오르니 만파식적이 들리는 듯하고….해거름 무렵 해안도로를 달려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로 갔다. 1억3천만 년 전 화산폭발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한 현무암의 모습이 규모도 크고 좋은데 잘 가꾸었으면 한다. 이 호랑이 꼬리의 뜨거웠을 열기가 우리 한반도에 고루 퍼져 새로운 동북아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빌어본다.

2021-07-04

잊혀져 가는 기억, 6·25전쟁

윤영대수필가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삼천리 무궁화 강산이 포화에 얼룩져버린 지 벌써 71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칠순 후반을 넘은 노인들이다. 국가를 위기에서 건지고 민족중흥을 이룬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풍요로워진 삶의 꿈에 젖은 젊은이들에게는 기억의 뒤편에 묻힌 역사가 될까 염려된다.6·25전쟁의 날, 맑은 햇살 아래 7번 국도를 따라 해파랑길을 기웃거리며 장사해수욕장의 전승기념관을 찾았다. 솔밭 사이 바닷가 모래밭에 배 모양의 조형물이 있기에 바다 카페인 줄 알았는데, 작년 6월 개관한 국내 유일의 바다 위 호국전시관 ‘문산호’라는 것을 알고는 한번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어 온 터다. 1997년 장사 갯벌에서 LST문산호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 잊혀진 기억 속에서 건져내어 세운 실물 크기 전시관이다. 모래밭 위에 세워진 긴 데크를 걸어 상륙함을 타듯 열린 입구로 들어갔다. 첫 전시실에 들어가니 유리모래판에 쓰는 ‘샌드 디지털 방명록’이 있어 서툰 솜씨로 ‘잊지 말자 6·25’를 썼더니 큰 화면에 나의 샌드아트가 나타났다.1층으로 내려가 화살표를 따라 처음부터 2층까지 살펴본다. 전쟁의 배경과 학도병의 결성, 출동 그리고 작전과 참여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사진과 영상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장사상륙작전은 낙동강까지 밀려난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한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상륙선은 태풍으로 좌초됐으나 나이 어린 대원들의 강인한 정신으로 상륙에 성공하여 6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적 제2군단의 보급로 차단과 후방 교란의 임무를 완수한 후 구조함을 타고 철수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투였다.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않고 전투경험도 없는 학도병들로 제1유격대대를 결성하고 작명174호를 수행하며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했지만 적군 270명을 사살하는 전과도 올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로 만들어져 2년 전 개봉되었다.‘영웅’ 전시실은 전체가 유리 바닥이고 그 아래 모래판에는 이 작전에 참전한 772명의 이름표가 하나하나 놓였고, 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는 학도병들의 모습을 하얀 조각물로 꾸민 곳도 있다. 이때 구조선을 타지 못했던 39명의 영령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을까. AR 증강현실 체험과 소총 사격 게임도 오락 삼아 해보고 넓은 갑판으로 나가니 탁 트인 바닷가에는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가까운 갯바위 위의 낚시꾼들과 소나무숲 아래 캠핑족들의 평화로운 모습들…모두 문산호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는지? 무심한 듯 오늘을 즐기고 있다.전승기념공원으로 나와 해변에 있는 영웅들 군상 조각의 손도 잡아보고 ‘전몰용사위령탑’ 앞에서 손 모아 참배했다. 마침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오늘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멍한 모습이다. 6·25날인 줄 몰랐단다. 이날 밤 KBS ‘다큐on-70년의 기억’을 보니 6·25전쟁 발발연도를 모르는 젊은이가 53%나 된다. 잊혀져 가는 전쟁의 기억이 안타깝기만하다. 숲에 앉아 옥수수빵을 한 입 먹으니 어릴 적 맛있던 강냉이떡의 기억이 가물댄다.

2021-06-27

대형 건물 철거기술의 미래

윤영대수필가 또 하나의 악몽을 꾸었다. 지난 6월 9일 광주시 학동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때마침 그곳에 섰던 시내버스를 덮쳐 승객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는 어이없는 큰 사고가 났다. 비용과 일정을 줄이려고 철거절차 및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현장 감독도 없는 안전불감증 인재(人災)였다.고층 건물의 철거는 위에서 아래로 조금씩 무너뜨리는 탑다운(topdown) 공법과 다이너마이트 등 화약으로 일시에 폭파하여 내려 앉히는 발파공법 등이 주로 사용되는데 이 모두가 철저한 세부계획과 감독으로 인명은 물론이고 주변 건물과 환경에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대표적 주거시설이 되었고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도 2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가 밀림처럼 서 있다. 이 건물들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져서 수명이 대략 50년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정확한 설계와 시공이면 물리적 수명은 100년 이상도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사정으로 보면 아파트와 공동주택이 수명 만기로 해체되는 가구 수가 2015년 273만 가구에서 2025년에는 약 600만 가구로 그 비용이 11조에 달한다는 견해가 있다. 앞으로 20~30년 후에는 건설보다 철거가 사회적 문제가 될 것 같다.갑자기 기억 속에 몇 개의 건물붕괴 영상이 떠오른다. 94년 11월 서울의 남산 외인아파트가 전망을 해친다고 발파 해체시킬 때 16, 17층 두 동이 순식간에 먼지 속에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TV중계로 보며 짓기는 어려워도 부수기는 참 쉽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철거였다.그러나 부실공사 사고인 경우가 많다. 1970년 4월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7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서울시가 무허가 건물 13만 동을 없애고 서민아파트를 짓는다고 서둘렀는데 준공 후 4개월 만에 한 동이 비탈로 무너진 것이다. 사업비 부족으로 철근과 시멘트를 적게 쓰고 부정과 비리가 낀 총체적 부실공사였다. 또 1995년 6월19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이다. 지상 5층 지하 4층의 대형 건물이 20초 만에 무너져 내려 사망 501명을 비롯해 1천여 명의 부상자를 낸 것도 부실공사의 결과다. 이 사건으로 119중앙구조대가 설치되었고 건물안전평가를 실시하게 되었지만 사고는 계속 꼬리를 물고 있다.2001년 9월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항공기 자살테러 공격을 당해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에 싸여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3천여 명이 사망하여 세계인을 경악하게 한 911사태는 바로 전쟁의 공포이다.이러한 건물붕괴의 모습이 계획된 철거 현장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생각에 이제 토목건설공학뿐만 아니라 파괴철거공학 전문가도 배출하여 안전한 파괴기술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에서의 철거작업은 미래의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2021-06-20

그린웨이 ‘맨발路’ 걷다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운동을 권한다. 평소에도 동네 뒷산이랑 철길 숲 산책을 다니는데 더 걷기를 일상화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 많이 걸으며 발바닥을 자극하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한방에서는 말한다.내가 즐겨 걷는 곳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울창한 숲이고 또 한 곳은 확 트인 모래밭이다. 숲은 기계 서숲, 시골집 가는 날이면 그 둘레길을 걷는다. 읍내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작년까지만 해도 넝쿨과 잡목들이 뒤엉켜 정글처럼 답답해서 숲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했는데, 다행히 올봄부터 말끔히 정리하여 숲속 길이 만들어졌다.기계 서숲은 경주 이씨 입향조 도원(桃源)선생이 낙향한 후 홍수와 찬 바람을 막기 위해 관민을 설득하여 제방을 쌓고 조림을 하여 일구어 놓은 3만여 평의 인공림인데 지역주민을 위해 시민의 숲으로 내놓았고, 포항시에서 ‘기계 서숲 맨발路’를 꾸민 것이다.포장도로 좌우 두 개 숲속에 깨끗하게 잘 정비된 1.2km 정도의 산책길을 맨발로 걸으면 깔려있는 마사토 알갱이들이 발바닥을 따갑게 자극하지만 기분이 좋다. 잠시 소나무 둥치를 껴안고 심호흡을 하기도 한다, 입구 표지판엔 맨발 걷기의 효능이 적혀 있다. 혈액순환, 면역기능, 뇌 건강은 높아지고 혈액 점도, 불면증은 내려간다고….하루는 비 온 후 숲의 맑은 공기 마시며 허리를 쭉 펴고 걷고 있는데 천천히 걸어오던 노부부가 “참 씩씩하게 걸으시네요”하며 부러운 듯 말을 건넨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예쁜 숲속 둘레길엔 긴 의자와 흙먼지 털이기도 있고 출구엔 발 씻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정자에는 마을 노인들이 한담을 즐기고 있고, 인근의 학생들이 야외 수업 나온 모습도 보이곤 한다. 이 숲에서는 가끔 ‘숲속 음악회’도 열린다.또 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이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푸른 물결이 모래밭을 씻고 있는 바닷가에 이른다. 바다 시청에서 시작하여 긴 방파제 위를 걸어 빨간 등대까지 갔다 오면서 방파제 위 지압용 자갈돌을 깔아 놓은 곳부터는 신발 벗어들고 맨발로 걸어와 여객터미널 앞 모래밭으로 내려선다. 크게 숨 한 번 들이쉬고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동해의 기운이 온몸에 올라오는 듯 어깨가 펴지고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서 영일대 누각에 오른다. 저녁나절 하루의 피로를 풀며 맨발로 걷고 있는 시민들이 즐거워 보인다.포항시는 위 두 곳을 포함하여 송도 솔밭, 해도 도시숲, 흥해 북천수 등 ‘걷기 좋은 길 8선’ 부채를 만들어 알리고, 최근 연일에 ‘조박지 둘레길’을 만드는 등 ‘맨발路 20선’ 리플렛도 나누며 녹색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21년도 GreenWay 프로젝트는 ‘도시에 녹색 쉼표를 찍다.’를 추진 목표로 삼아, 도시의 생기를 되찾고 시민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며 멈췄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추진 중인 멋진 계획이다.맨발로 그린웨이를 걸어보자.

2021-06-13

‘호국문화의 길’을 걷다

윤영대 수필가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이맘때가 되면 6·25 전쟁의 상흔이 생각나고 그 일선에서 산화해간 선열들의 호국정신을 받들고 싶어진다.올해 6월 6일은 66회 현충일이다. 추모의 마음을 다짐하기 위해 현충탑을 찾아보니, 6·25 전쟁의 최후 보루가 되어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대반격의 기점이 되었던 포항지역에는 28곳의 현충 시설이 있다.먼저 수도산 덕수공원에 있는 충혼탑으로 갔다. 나루 끝 철길 숲이 시작되는 오른쪽 산길 옆의 하얀 충혼탑 표석을 따라 깨끗한 꽃길을 올라 넓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육·해·공·해병 그리고 경찰과 학도의용군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힘차게 외치는 좌우 청동 군상 두 개가 중앙에 조용히 선 횃불 모양 탑을 지키듯 한다. 알고 보니 호국영령들의 눈물을 표현한 물방울 조형물이 무궁화 꽃 기단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전투 장면이 길게 새겨진 뒷벽 부조의 뒤로 가면 위패봉안실에는 6·25때 전사한 군인 등 호국영령 2천295위의 위패가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셔져 있다. 탑 앞에 놓아둔 하얀 국화 앞에서 손 모아 묵념을 했다. ‘잊지 않겠습니다.’‘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내려와 그린웨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포항여고 앞 ‘학도의용군 6·25전적비’로 갔다. 6·25 당시 포항여중 전투에서 펜 대신 총을 잡고 교복을 입은 채 싸운 71명의 학도의용군을 기리기 위해 5년 전 새롭게 단장한 곳이다. 8월 그날 새벽, 북한군과의 전투 상황을 묘사한 아트타일 벽화로 둘러쳐진 잔디밭에는 한 손으로 비둘기를 날리는 학도병 동상과 이우근 학도병의 애끓는 편지가 새겨진 동판이 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라고 절규한 학도병은 끝내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학도병의 편지에 끌리듯 발길을 돌려 탑산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으로 갔다. 짙은 6월의 녹음에 싸인 둥근 기념관은 군번도 없이 산화한 어린 꽃봉우리 47명 등의 영령들이 봉안되어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조용히 들어가서 정면의 학도의용군들 사진에 목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박격포, 소총, 따발총 등의 무기와 함께 학도명단과 학생증 등 유품들을 살펴보고 현충 시설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자료와 책자를 건네준다.오른쪽 숲길 입구, 학도병 자식을 애잔한 손짓으로 잡으려는 어머니 동상 옆으로 계단을 조금 올라간 산마루에는 ‘포항지구전적비’가 힘차고 좀 더 오르면 청동 부조의 ‘전몰학도충혼탑’이 우뚝 서 있다. 뒤돌아 내려다보니 동해의 푸른 바다가 평화롭다. 마지막으로 송도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미 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와 ‘포항지구전투전적비’로 가서 흐릿한 비문을 손으로 어루만져 읽고 바닷가에 서서 포항지구 전투를 상상해 본다. 요즈음 SNS에는 숙연히 추념해야 할 현충일이 대체공휴일 논란으로 법석댄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2021-06-06

포항시립미술관 산책

윤영대수필가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포항시립미술관을 찾았다. 화창한 늦봄에 환호공원 둘레길 산책도 겸해서였다. 주차장에 내리니 미술관의 ‘poma’ 표지가 연오랑세오녀 일월 신화를 품은 영일만 일출의 태양처럼 안내를 한다. 입구에 올라서면 은빛 철사로 엮은 사슴 조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맞는다. 이팝나무 심고 있는 작업이 한창인 공원의 미술관 앞 인공연못에는 하얀 대리석 어머니상이 한쪽 젖가슴을 들어낸 채 고뇌에 찬 모습으로 삶의 어려움을 얘기하듯 처절한 모습이지만 뒷 유리창에 비친 환호공원의 아름답고 포근한 정경은 미술관을 더욱 곱게 감싸고 있다.포항시립미술관은 2009년 12월 22일 개관하여 철(steel)을 테마로 한 세계 유일의 스틸아트 미술관으로 포항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인 철을 통해 예술적 가치의 확산을 위한 환경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신철기 시대(Neo-iron Age)’와 미술관이 있어 행복한 도시, 포항을 소망하고 있다.미술관 전면에는 새로 막을 연 전시회의 현수막 3개가 커다랗게 걸려있다. 세르비아 작가 스체파노비치의 ‘한 화가의 증언’과 2020년 장두건 미술상 수상 작가 김은솔의 ‘기억의 파동’ 그리고 최근의 소장품전 ‘20이일(異日)’을 알리고 있다. 토요일이라 가족 관람객이 눈에 띄고 아이들과 같이 온 젊은 부부들의 웃음이 환하다.미술관에 들어서면 제주산 검은 화산암으로 된 높다란 로비 벽면이 예술적이다. 1전시실에는 주한외국공관 협력 전시 프로그램의 첫 번째로 세르비아 작가의 그림인데 검은색, 붉은색 등으로 그려진 포스터 같은 작품들이다. 가상현실과 패권세력의 선동, 자본주의 광고 등 지금 세계의 광기를 보여 준다. 안쪽 4전시실에는 최근 수집한 조각 소장품 6점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스틸아트다. 상반신만을 왼팔로 버티고 있는 작품을 보니 괜히 팔에 힘이 들어간다.2층으로 올라가 초헌 장두건 화백의 드로잉 작품들을 둘러보고 2전시실로 들어가니 파동 치는 영상과 찢어질 듯한 잡음을 통해 포항 지진과 코로나19의 재난 상황을 작가의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이 어려워 매주 토요일 있다는 도슨트 투어를 찾았지만 6월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아쉬웠다.미술 자료를 모아둔 도서실도 있어 기웃거려보고 입구 쪽의 카페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환호공원에 놀러 나온 소풍객들의 정겨운 모습들 속에 장난꾸러기 아기들의 손을 잡고 거니는 할머니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매월 마지막 목요일 오전에는 로비에서 ‘미술관 음악회’가 열려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온몸으로 예술의 전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1년 넘게 연주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커피 한잔 마시고 나와 20여 개의 스틸아트 작품이 있는 공원 잔디밭 길을 걸어 본다. 숲속 정자엔 젊은 남녀의 모습이 앙상블이고 공원 분수대 마당과 하얀 돛 닮은 천막 밑의 가족 모임은 코러스이다. 야외공연장도 있고 인공폭포도 시원한 물줄기를 내린다. 숲속 산책길을 천천히 올라 둘레길의 산마루 전망대에 서면 영일만의 푸른 물결은 자연의 심포니이다.

2021-05-30

안전속도 5030 지키기

윤영대수필가전국적으로 ‘안전속도5030’정책이 시행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교통사고 예방과 보행자 교통안전 향상을 위해 도심지 간선도로에서는 50㎞, 주택과 상가 등이 인접한 이면도로에서는 30㎞로 하향 조정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2019년 4월17일 개정되어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실시된 것이다. SNS 등에는 굼벵이가 되어버렸다는 둥 불만 섞인 말들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미 서울, 부산의 일부 지역에서 시행해본 결과 보행자 사망자가 30% 이상 감소되었다고 하니 모두 잘 적응해나가야 하겠다.이 정책은 세계보건기구와 OECD의 권고도 있었다고 하는데 속도를 10㎞낮추면 10명 중 사망자수가 9명에서 5명으로 감소해 이미 37개국 중에서 31개국이 시행하고 있어 교통사고율 3위인 우리나라로서는 늦은 편이다.그동안 60㎞로 달렸던 운전감각이 갑자기 50㎞로 달리면 좀 느린 듯하고 특히 학교 앞에서는 30㎞로 달려야 하니 그야말로 걸어가는 듯하겠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바람직한 조치이고, 60에서 50으로 속도를 낮추면 제동거리도 짧아져 사망가능성도 30%정도 감소한다고 하니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더욱더 잘 지켜야 한다.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의 자료를 들여다보니 전국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22만 건 이상이고 사망 3천 명, 부상 34만여 명이라니 깜짝 놀랐다. 일일 평균 사망자는 8.4명, 부상자는 9백 명 정도가 된다. 자동차 1만대 당 사고자료(2020년)에는 포항시가 101건(전체 2천537명)에 사망 1.78명 부상 157명이며,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의 사고도 많다고 하니 끔찍하다.이러한 상황인데도 ‘세금 더 거두려고 한다’ ‘생각이 비현실적이다’ ‘도로사정을 고려해 차등 허용하라’는 반대 의견도 있고, 저속운행에 따른 매연에 의한 환경문제와 연비 하락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니 잘 이해시켜 나가야 하겠다. 신호 주기도 조절하고 교통표지 및 노면 표시와 같은 교통 시설물들을 정비해 스마트 교통체제를 갖추어 제한속도 감축에 따른 통과시간 등에 대한 우려도 없애고 중앙분리대, 갓길, 도로폭의 여유 등 도로사정에 따라 녹색 흐름을 잘 주도해 안전한 교통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칠 전 환호동 언덕길을 돌아내려 오는데 앞차가 갑자기 정지하듯 빨간 미등이 켜지기에 ‘아차!’ 하고 보니 제한 속도 30이고 CCTV도 있다. 이 넓은 길에 노인복지회관이 있어서 30일까? 내 차의 계기판은 50을 가리키고 있었다. 속도위반에 대한 과태료와 범칙금도 개정되었다. 20~40㎞ 초과시에는 승용차 범칙금이 6만원이니 벌금을 물뻔 했다. 이번 5030규칙은 유예기간 3개월 후에 일제단속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제 바뀌어진 교통법규에 대응하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경우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좋겠다.한국도로교통공단의 사물인지능력 실험에서 주행속도 50㎞로 할 경우 평균 인지능력이 52% 증가하고 30㎞인 경우 56% 증가한다고 하니 천천히 운전하면서 보행자와 교통약자에 대한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

2021-05-23

‘스승의 날’ 생각

윤영대수필가스승의 날 40회째 기념행사를 충남 강경고에서 한다기에 ‘50년은 넘을 텐데?’ 하고 보니, 1963년 충남 강경여중고등에서 ‘은사의 날’로 시작한 후에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정해졌고 그동안 스승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며 감사해왔는데 73년 국민교육헌장선포로 묶였다가 82년에 ‘옛 스승 찾아뵙기’ 행사로 부활했다고 한다.교권존중과 스승 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제정되어 사제 간의 존경과 사랑 속에 참된 학풍을 이어온 스승의 날이 요즈음 여러 가지 사회적 풍토 변화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깝다.스승의 날 행사는 빨간 카네이션 꽃 한 송이를 작은 선물과 함께 드리면서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드리는 소박한 것이었는데 난데없이 김영란법이라는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물은 5만 원 이하이고 카네이션도 학생대표만 전달할 수 있으며 종이로 만든 꽃은 되지만 생화는 피하는 추세란다. 촌지 때문에 이날 휴교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교단에서의 사랑도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참된 인간관계를 엮어가야 하는 교실에서 사회부정의 꼬투리를 잡고 사제 간의 윤리를 어둡게 하며 교권이 추락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참된 학풍을 이어가겠는가.‘스승’은 인간의 도리와 이치를 가르쳐서 좋은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또 옛날에는 참으로 인격과 학식이 높고 덕업이 있는 사람을 ‘선생’이라 일컬었으며 임금까지도 어렵게 대했던 인격체들이었다. 그러나 선생이라는 호칭이 일제 강점기에 남용되어 현재로 이어지면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교사’로서 또 ‘~선생’이라는 세속화된 인칭으로 사용됨으로써 우리는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지식을 가르쳐주는 직업인으로 보게 된 것이리라.스승의 날에 대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자긍심이 떨어진다’ 32.4%, ‘부담스럽다’ 26.2%로 부정적이고, ‘자부심을 느낀다’가 겨우 5.8%로써 이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고 싶다는 반응이 81.6%라고 하니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주소가 암울하다. 또 제자에게 연락을 꺼리는 선생님들도 있다고 하니 교직에 있는 모두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그렇다고 해서 그 사명감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전인(全人)을 만들겠다는 교육관과 교육애를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교육 의식을 몸소 실천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가르치는 일을 노동으로 생각하는 듯한 ‘교원노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든다. 교육의 한자를 분석해보면 ‘효자가 되라고 등을 두드려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 제자들이 참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그 행위가 과연 노동으로 여겨지는 걸까.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참스승을 만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꽃 한 송이, 음료수 한 병을 교탁 위에 올려놓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라고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던 제자들이 다시 보고파진다. 기억나는 선생님에게 짧은 손편지라도 전해드리자. 스승이나 제자 모두 사랑과 존경으로 제자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2021-05-16

칠포리 암각화의 꿈

윤영대수필가춘천시 중도의 선사유적지 훼손에 대한 뉴스를 듣고 포항의 선사유적이 생각나 칠포리 암각화를 둘러보고 싶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무려 6개 구역 16개 바위에 96점 암각화가 있단다. 이 칠포리 암각화는 1989년 처음 발견된 이후 추가로 찾아내어 우리나라 최대 암각화군을 이루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등록되어 있다. 분포도를 보니 모두 십 리 안팎의 거리에 모여 있어 하루 만에 다 답사할 수 있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맨 먼저 간 곳은 도로변 사다리꼴 암각화. 조용히 둘러보고 근처 A구역으로 갔다. 커다란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 주차하고 숲으로 올라가니 암각화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깨끗한 돌길과 아치형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눈에 들어오는 큰 바위 하나, 멀리서도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검파형 암각 6개가 선사시대로 나를 이끈다. 원시 부족 때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새겼을 암각이 연약한 사암질의 바위 표면에서 비바람에도 잘 버티어주었구나 하며 꼼꼼히 둘러보았다. 바로 아래 좁은 계곡에 비스듬히 박혀있는 바위에는 큰 검파형 암각이 있어 가지고 간 줄자로 위아래 면의 크기와 높이도 재보았다. 갑자기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다.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존재하는 우리 한반도, 그곳에 암각화가 가장 많은 포항 칠포에서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암각화를 직접 보며 그 가치를 되새기는 즐거움은 크다. 부근의 넓은 바위에도 암각화가 있는데 나에게는 잘 보이지를 않았다. 도판 하나를 그려두었으면 좋을 텐데…. 입구에는 인물상도 있다는데 표지도 없고 주민에게 물어도 모르겠다고 한다.다음은 바다 쪽 B구역, 길 한켠에 주차하고 입구 표지를 찾았으나 없다. 답답한 마음에 곤륜산 정상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오르려고 가보니 입구에는 주차장이 있고 시멘트 포장길이 잘 닦여져 있다. 정상에서 보니 칠포 앞바다와 흥해 벌판이 시원스럽게 가슴에 들어온다. 내려와서 물회 한 그릇 먹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바로 길을 건너 올라가면 된다고 가르쳐 준다.길 건너에는 펜션과 카페의 간판은 요란한데 암각화 표지판은 없다. 눈치껏 숲을 헤쳐가니 긴 바위가 누워있고 설명판 2개가 서 있다. 일반적 설명뿐이라 바위 위를 오르내리며 겨우 윷판 모양과 인물화를 찾았다. 그리고 아래 삼거리의 작은 팻말을 따라 제단바위를 찾아가서 많은 성혈을 헤아려 보고 아랫마을의 원형점 군락을 찾았더니 주민도 잘 모른 체 쓰레기에 덮여있다.우리나라 제일의 암각화군을 둘러보기가 참으로 힘든다. 나머지를 포기하고 신흥리 오줌바위를 찾아가도 입구 팻말이 없고 인적도 드물어 겨우 주민에게 길을 물어 오르니 넓은 바위 위 별자리 성혈이 피곤한 몸을 달래준다.암각화를 한나절에 다 찾아보겠는 생각은 꿈이었나보다. 입구안내판도 없고 주차할 곳도 마땅찮고 주민도 잘 모르는 칠포리 암각화군, 그 문화적 가치를 가볍게 보는 허술한 관리가 염려된다. 암각화 주위에 어지럽게 새겨진 낙서들로 보아 그 훼손이 두려워 표지판을 두지 않았나? 칠포리 암각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도 될 가치가 있을 듯한데 기억 속에 묻히는 암각화(暗刻畵)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2021-05-09

이팝나무 하얀 꽃잔치

윤영대수필가이제 계절의 여왕, 오월이 왔다.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거리두기’라는 사슬에 묶여있는데 계절은 자연의 왕성한 힘을 부추기면서 찬란하게 피었던 벚꽃이랑 봄꽃들을 떨구어내고 봄비에 씻겨 아름답게 단장한 새 얼굴들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있다.길을 지나다 보면 하얀 꽃나무가 아름다운 가로수가 되어 줄지어 있는 곳이 눈에 많이 띈다. 이팝나무다. 언제부터인가 가로수로 심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로변이나 마을 길에도 5월이면 하얀 꽃들의 잔치를 즐길 수가 있다. 푸른 연록색 잎 가지에 하얀 꽃송이가 소복소복 쌓여있어서 늦봄에 흰눈이 내린 듯 신기하다. 배고팠던 옛 시절 밥사발에 소복이 담긴 흰쌀밥처럼 보여서 ‘이밥’ 나무라 했고 또 입하(立夏)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입하목, 입하나무로 불렀다가 다시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영어로도 하얀 눈꽃(snow flower)이다.입하는 ‘여름에 든다’는 절기이며 보리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의미로 맥량(麥6DBC), 초여름이라는 맹하(孟夏)라고도 하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계절이며, 고추 오이 가지 등 열매채소를 심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생각나는 흰 쌀밥 꽃, 그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경관을 보고 싶어 흥해향교 숲을 찾는다. 하마비가 서 있는 언덕바지에 주차하고 오르면 태화루의 시원스러운 팔벌림 옆에는 백 년은 넘었을 이팝나무 거목들이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다. 아니, 오월의 여왕이 하얀 비단옷을 입고 환하게 맞이하는 듯하다. 닫혀있는 문을 살포시 밀고 들어서면 명륜당도 고요하고 돌계단을 올라 대성전 뜰에 서니 막 송홧가루 날리기 시작하는 소나무가 묵상하듯 단정하다. 검은 기와지붕 위로 드리운 하얀 이팝나무꽃의 흑과 백, 파란 하늘 아래 울창한 푸른 숲의 청과 녹-이 자연의 어울림은 봄의 여왕이 주는 선물이다.옆에 있는 임허사 절의 독경 소리에 이끌려 좁은 길을 지나 올라서니 상수리나무와 어울려 많은 이팝나무의 흰 꽃들이 한껏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 옥성리 이팝나무군락지는 큰나무 26그루가 있어 작년 12월 천연기념물 제56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제일의 군락지다. 그런데 표지판은 경상북도기념물 제21호, 아직 바뀌지 않았네…. 운동시설과 쉼터 등 깨끗하게 꾸며진 언덕을 이리저리 천천히 걷다가 큰 이팝나무 둥치를 가슴에 안고 귀를 데어보니 조용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어젯밤 사이에 내린 빗방울로 하얀 꽃들은 더욱 얼굴이 곱고, 그래도 다 채우지 못한 이팝나무 모습의 미련에 시내 ‘철길숲’공원으로 달려갔다. 철도의 흔적을 따라 길게 조성된 Forail 산책길은 코로나에 지친 시민의 힐링 공간이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쌀밥 꽃들의 하늘거림 아래로 마스크를 쓴 채 가족 나들이하는 모습은 희망이다.5월은 또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몸매 고운 오월의 여왕이 하얀 모시옷 입고 너울너울 살풀이춤을 추는 이팝나무 숲길을 걸으며 바이러스의 횡포를 날려버리고 서로의 사랑을 듬뿍 느껴보자.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이다. 오월을 밝은 마음으로 맞이하자.

2021-05-02

기억의 정리

윤영대수필가1년 전, 애용하던 USB를 잘못 건드려 귀중한 데이터를 날려버렸다. 그동안 백업(backup)해두는 것을 잊고 써왔기에 중요한 최근의 자료들이 많아서 복원을 해보았지만 70% 정도이다. 그래도 필요한 자료 몇 개는 되찾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후 내가 가지고 있는 컴퓨터 기억장치들을 살펴 자료들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없앨 것은 없애고 간직해야 할 것은 따로 분류하여 모아두고 있다. 이러한 작업, 특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나 자료들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디지털화하여 모아두는 것을 아카이브(archive)라고 하며 백업과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이 아카이브 ‘기록 보관소’에 넣어두려는 것은 주로 나의 사진들과 글 쓴 자료들이다. 여태 남아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다 보니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찍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부터이고 휴대폰으로는 10년이 된 것을 알았다. 휴대폰으로 사진 찍고부터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대용량 메모리를 몇 개 구입하여 따로 보관해 두고 있고 최근에는 앨범에 있는 사진들도 가끔 스캔하여 디지털 사진으로 모아두고 있다.글을 쓸 때도 먼저 펜으로 초고(草稿)를 쓰고 나서 컴퓨터로 옮겨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 그 흔적이 컴퓨터에 남아있곤 한다. 며칠 전, 오랫동안 잊고 처박아 두었던 옛날 컴퓨터를 버리려고 전원을 켜고 하드디스크 내용을 살펴보다가 많은 자료 중에서 몇 개의 한글 파일을 발견했다. 저장 날짜가 1992년으로 되어있다. 30년 전의 글인데 읽어보니 쓴 기억이 전혀 없다. 글자체도 요즈음 쓰지 않는 것이고 한자가 많이 들어있지만 내용도 괜찮고 오랜 시간 누렇게 변한 수필집을 읽는 기분이라 더 반가웠고 소중해서 그대로 새 기억장치로 옮겨두었다.어떻게 30년 동안 그 작은 반도체 속에서 지워져 버리거나 변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물론 종이로 된 책이나 노트를 긴 시간 동안 구석에 두어 먼지가 쌓이고 변색이 되어도 내용은 읽을 수 있겠지만 전기라는 생명의 끈을 끊어버린 반도체의 기억이 나노메타(10-9) 급의 미세한 회로에서 유지되다니 디지털 기술이 신비롭다.우리 뇌는 1천억 개의 뉴런이 있어서 단기기억은 해마가 담당하고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에 저장한다고 하지만 보고 듣는 수많은 정보를 다 기억할 수는 없다. 적당히 잊어버리고 업데이트를 하는데, 한 달이면 80%는 잊어버리고 20%는 뇌의 한구석에 보관하는 자정(自淨) 능력이 있다고 한다. 서재에 있는 많은 서적과 문서, 여러 권의 앨범에 꽂혀 있는 사진들도 정리하여 버리고 평생 가져가야 할 것들만 남겨야겠다. 그리고 필요할 때, 보고 싶을 때 꺼내보면 좋으리라.복잡했던 일상을 단순화하고 내 주위에 모아둔 자료를 정리 정돈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지지만 쉽지만은 않다. 전공 서적은 퇴직 때 대부분 버렸고 백과사전 등은 한 중학교에 기증했으며 깨끗한 최신 문학 서적 수십 권은 작은 도서관에 보냈다. 그러나 많은 CD, 테이프, 필름 등은 어찌할까? 요즘 차고 넘치는 정보와 복잡한 일상을 정리하는 습관과 기술도 삶의 지혜이다. ‘비우며 살자’라는 말과 생각이 또 머리와 가슴에 저장된다.

2021-04-25

시내버스를 타고 보니

윤영대수필가어제저녁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지인과 만난 유강마을 끝 주점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 몇 잔 하였기에 대리운전을 부르려 했더니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보자고 해서 길 한편에 주차해 두고 밤의 시가지를 편안하게 구경하며 왔었다. 서쪽 유강 언덕에서 동쪽 두호 바닷가까지 꽤 먼 거리였다.이른 아침 7시 반, 주차해 둔 차를 가지러 조금 걸어서 가까운 버스정류소에 갔더니 ‘216번 14분 후 도착’이라는 알림이 떠 있다. 시내버스 배차시간이 15분 정도라는데 방금 지나간 모양이라 아쉬워하며 긴 의자에 앉았다. 눈앞으로 쉴새 없이 차들이 지나간다. 초록색 좌석버스와 파란색 일반버스가 왔다 가고 통학버스인 관광버스도, 각 회사의 출근 버스도 줄줄이 지나간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활기찬 아침 풍경이다. 승강장 내의 TV 화면 같은 안내판을 보니 그곳을 지나는 5~6개 노선버스의 정보가 반짝인다. 버스노선번호, 현재 위치, 도착예정시간 등 지금 어디를 통과하고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시시각각 알려준다. 새삼스레 버스 정보시스템(BIS)이 훌륭해 보인다. 포항시는 지난해 7월 25일부터 버스 노선을 개편하고 119개 노선에 263대의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으로 전환하여 주요관광지를 연계하고 친환경 버스를 도입했다. 새로 증설된 63대는 모두 전기 버스인데 미세먼지를 줄이고 대기오염을 방지하자는 대책이다.커다란 시내버스 통합노선도에는 5개 방면 노선이 색깔별로 잘 그려져 있고, 노선별로 통과하는 정류소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전광판을 흘낏흘낏 쳐다보고 있는데 이윽고 파란색 216번이 도착했다. 가끔 타본 시내버스이지만 익숙한 듯 카드를 단말기에 대었다. ‘삑’ 소리와 함께 1천200원이 찍혔다. 현금이면 1천300원이고 좌석버스이면 1천600원이다.육거리를 지나 중앙로에서 승객들이 많이 내리고 뒷자리에 빈 좌석이 보이기에 가서 앉아 밖을 보니 아름다운 간판의 시가지 풍경이 낯선 듯하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안내방송을 해주고 LED 문자판으로도 알려준다. 가끔 외국어가 섞여 있는 듯해서 귀를 기울여 보니 죽도시장과 포항시청 앞에서는 영어, 중국어 그리고 일본어로도 안내한다. 외국여행객들을 위한 서비스인 모양이다.죽도시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싱싱한 채소랑 나물, 과일들을 펼쳐놓고 팔고 있는 노점들도 정겹다. 보따리를 들고 타신 할머니가 뒤쪽으로 와서 머뭇거리니 옆의 아가씨가 말없이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양학동을 지날 때 길옆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기에 출근버스를 기다리는구나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농협과 신협 앞이라, 포항사랑상품권이 나오는 날이란 것도 알았다.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무리 지어 등교하는 어린이들도 귀여웠다.효자동 지나서는 혼자였고, 유강 종점에 내려 시계를 보니 1시간이나 걸렸다. 길가에서 밤을 보낸 내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가능한 그 버스 길을 따라 와봤다. 아침나절에 시티투어를 한 셈이다. 다음에도 시내버스를 타고 포항시를 한 바퀴 둘러보면 좋겠다.

2021-04-18

자랑스러운 우리 항공기술

윤영대수필가코로나 4차 유행을 걱정하는 뉴스로 마음이 심드렁한 지난 9일 오후 TV 화면이 바뀌면서 ‘하늘을 열다. KF-21 한국형 전투기 출고식’ 영상이 뜬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천공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시제품 1호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행사였다. 최초의 국산 전투기 개발의 기틀을 마련하고 하늘을 향한 도전을 이룬 항공산업의 주역들을 보며, ‘아! 우리 대한민국도 전투기를 만드는 자랑스런 국가가 되었구나’하고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전투기의 눈’이라는 최신 레이더 AESA 등 최첨단전자장비를 갖춘 KF-X는 ‘21세기 한반도를 수호할 전투기’라는 의미로 KF-21로 명명하고 공모를 통해 ‘보라매’라고 부르기로 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첨단 국산 전투기 개발을 천명한 이래 지지부진하다가 2010년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여 현 KF-16보다 상위기종으로 날개를 편 것이다.최대속도 마하 1.8, 무장 탑재 7.7t이 가능한 이 스텔스 전투기 ‘보라매’는 개발비 8조8천억의 단군 이래 최대사업으로 기술과 개발 의지를 묶어 국산화율 65%를 달성하고 수십조 원의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신화를 만들 전망이다. 시제기는 지상 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내년 7월 첫 비행을 할 예정이며 2028년까지 우선 40대를 공군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4.5세대 초음속 전투기 개발의 세계 8번째 생산국이 되는 것이다.이미 1999년 우리의 기술로 기본훈련기 KT-1 ‘웅비’를 만든 이래 2003년 고등훈련기 KT-50 ‘골든 이글’로 초음속을 돌파하여 세계 12번째로 초음속비행기 개발국이 되었으며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였고, 2013년부터 FA-50 경전투기로 개량하여 자주국방의 힘으로 우리의 영공을 지켜오고 있다.해방 후 공군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육군항공대로 시작해서 1949년에 공군으로 독립하였고, 당시 ‘공군의 아버지’ 최용덕 장군이 ‘우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펼쳐 최초 경비행기 ‘부활호’를 띄운 지 70년 만에 전투기까지 만드는 쾌거를 이루었다.또 헬기 기술은 2012년 KUH-1 ‘수리온’을 최초 개발하여 세계 11번째 나라가 되었고, 이것을 경찰용 ‘참수리’ 소방용 ‘한라매’ 뿐만 아니라 산림감시용으로도 배치하여 활동하고 있다.우주로 나아가는 꿈도 펼치고 있다. 1992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하며 우주개발에 첫발을 내딛고 세계 25번째 인공위성 보유국이 된 후, 무궁화, 아리랑 등 15개나 쏘아 올렸다. 2013년 우리 손으로 만든 나로호 발사로 국민의 환호를 받았으며, 최근 10년간 천리안 위성 3개를 궤도에 올려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젊었을 때 공군 조종사를 빨간 마후라, 보라매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 보라매들이 초음속 전투기 보라매를 타고 우리의 한반도 영공을 지켜나가는 든든함을 보리라. 그리고 우리의 첨단 항공기술력으로 자주국방의 힘을 다지자.

2021-04-11

나무를 바르게 심자

윤영대수필가식목일은 1949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어 그동안 헐벗은 산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학창시절 호미와 삽을 들고 마을의 언덕과 낮은 산으로 나무를 심으러 다녔고 대학 재직 중에는 학생들과 캠퍼스 이곳저곳에 기념식수도 많이 했던 기억들이 선하다. 그러나 2006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인지 학교나 기관에서 공식적인 큰 식목행사는 없었고 포항시의 ‘나무 나누기’ 행사에 가서 몇 그루 분양받아와 시골집에 심은 꽃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요즈음 기후변화 탓인지 기온이 예년보다 높아져서 개화 시기도 빨라지고 나무 심기 가능한 기온 6.5℃도 4월이면 늦다고 해서 식목일을 앞당기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늦으면 잎과 뿌리의 생장이 잘 안 되어 고사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묘목 업체들도 새싹이 나오는 시기에 맞추어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UN이 지정한 ‘세계산림의 날’도 3월 21일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평균기온 1℃ 상승함에 따라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는 시기가 5~7일간 앞당겨진다고 하고, 몇몇 지자체나 기업 등에서는 3월 하순부터 식목행사를 하고 있다.내 어릴 적만 해도 국토는 거의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1962년부터 50년간 약 1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산림을 만들었고 야산에 올라도 짙푸른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세계적인 조림 성공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은 미래를 가꾸는 일이다’라는 구호처럼 치산녹화사업은 참 잘한 일이다.지구의 온난화, 대기오염 등으로 생태계 복원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만큼 산림녹화뿐만 아니라 주변 공터에도 감, 매실 등 유실수도 좋고 무궁화, 매화, 철쭉 등 꽃나무도 심어서 우리의 주위가 맑고 밝았으면 한다.식목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산림은 홍수와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를 방지하고 산소를 발생시켜 환경개선은 물론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목재와 연료를 공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태양광발전이랍시고 산림을 마구 파헤치는 현장을 보노라면 과연 어느 것이 자연 친화적일까를 마음속으로 되내어 보기도 한다.건강한 산림은 1ha당 이산화탄소를 연간 10여 t 이상 흡수하여 공기를 맑게 하는 지구의 허파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니 새잎이 트기 전에 뿌리가 먼저 내려 생장할 수 있는 절기에 맞추어 나무를 심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한다는 애림사상을 마음에 심는 것도 중요하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땅에 꽂아도 싹이 돋는다’는 속담도 있고하니, 청명(淸明) 한식(寒食)의 맑은 절기에 산불 조심하고 찬밥도 먹으며 나무를 심어보자.식목의 식(植)을 보면 나무(木)를 바르게(直) 심는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 정치 풍토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나무를 바르게 잘 심고 가꾸어야 푸르고 맑은 숲을 이룰 수 있듯이 사람도 뜻이 곧고 청렴하고 올바른 인재를 골라 심어야 나라가 튼튼해진다. 이번 식목일에는 집 안뜰에 나무 한 그루 바르게 심고, 나라의 뜰에는 옳은 사람을 심기 바란다. 이번 식목일의 염원이다.

2021-04-04

보이지 않는 손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아침에 일어나면 휴대폰을 열고,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날도 노트패드에 깔아두고 재미 삼아 하는 그림 색칠하기 앱을 열었더니 ‘앱을 중지했습니다’라는 표시가 뜬다. ‘이상한데, 그럴 리가….’ 하며 빠져나왔다가 다른 앱에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다. 카톡 대화도 안 되고 네이버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지난 23일 아침의 일이다. 황당해하며 ‘앱 설정’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해보다가 ‘아! 혹시 해커의 장난이 아닐까?’ 하며 얼른 덮어버렸다.매일 들춰보던 앱을 열어보던 아내도 안된다며 포기하고 “당신이 너무 사용하니까 고장 났다.” 하며 핀잔을 준다. 그럴지도 모른다며 오후에 판매점에 가보려고 했다.한참 후에 관련 앱뷰를 삭제하거나 새로 깔면 된다고 하는 긴급공지가 떴고, 구글은 오후 3시가 지나서야 사과문을 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앱이 업그레이드되면서 기존의 앱과 충돌하며 일어난 사고라는 것이다. 다음 날 기사를 보니 이동통신 3사에 수만 건의 오류 문의가 접수됐고 서비스센터에도 수리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네이버는 디도스(DDOS) 공격으로 빚어진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신고했고 방송통신위원회도 사태의 원인을 분석한다고 한다. 하루만에 문제가 해결됐지만 나의 머리에 맴도는 것 하나, 디지털 사회가 안고 있는 위험성이다. 누군가가 악성 코드를 심거나 데이터를 조작하여 전체 통신망을 흔들거나 마비시켜 사회적 환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업데이트하라는데 데이터 손실은 없을까? 자료가 새어나가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초기 버전으로 바꾸거나 저장공간을 정리하는 등 임시방편으로 해결한 사람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최근 과기정통부의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 보듯이 고령자,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등의 정보 의존성이 점점 높아지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문득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빅 브러더’가 생각난다.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또는 사회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하기야 오웰이 미래라고 한 그 40여 년 전의 텔레그래프가 이제 CCTV로 발전하여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프로그램 하나의 잘못으로 수많은 폰 이용자들이 무기력하게 된 아침, 만일 그것이 인위적인 빅 브러더의 짓이었다면,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내용이었다면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얼마든지 네트워크의 통제 조작이 가능하리라. 그러니 빅 데이터를 이용하여 미디어도 통제하고 정보를 왜곡하고 민중을 유혹하는 독재 권력이 안 생긴다고 어찌 단언하겠는가. 디지털 정보로 사회와 문화를 장악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일상의 지식을 얻고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인간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미래의 자율주행 자동차와 배송 드론 같은 운행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먹통으로 되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너무 편한 디지털 시대만을 꿈꾸지 말자.

2021-03-28

물을 아껴 쓰자

윤영대수필가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의 권고로 UN이 제정 선포하였다. 세계적으로 점차 심각해지는 물 부족과 수질오염 문제를 인식시키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결의이다. 우리는 이보다 먼저 1990년 7월 1일을 ‘물의 날’로 정하여 각종 행사를 개최해 왔는데 UN의 동참요청으로 1995년부터 3월 22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국제인구행동연구소에서 연간 1인당 쓸 수 있는 수자원량을 ‘기근-부족-풍요’의 3단계로 분류하면서 우리나라는 1천450m3로 산정되어 ‘물부족 국가’라는 아픈 멍에를 쓴 것이다.2006년 세계물포럼에서 ‘물 빈곤 지수’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전 세계 147개국 중 43위로 위험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지만, 인구밀도가 높고 여름에 집중된 강수량으로 인해 물 스트레스 지수는 25~70%로 높아서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에는 ‘심각한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10이며 5년 후에는 물 기근 상태가 된다는 예측도 있어서 물 부족 국가라는 인식이 국민에게 심어진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 국민의 하루 물 사용량은 약 280L로 유럽 국가의 두 배이다.왜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가 되었는가?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아름답고 깨끗한 산과 강이 있고 2,30년 전까지만 해도 계곡의 물을 그대로 퍼마셨다. 삼면이 바다이고 큰 강도 가까이 많은데 물 부족이라니…. 그 원인으로 인구밀도와 기후변화 그리고 산업화와 자연파괴를 들고 있다. 좁은 국토에 여름철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는 산지가 많은 지형적 특수성 때문에 급히 쓸려가 버리고, 또 산업화로 숲을 무작정 개발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정작 물의 부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온갖 생수가 편의점 진열장을 채우고 해양심층수와 지하수, 계곡물 등도 집에서 마실 수 있는 축복받은 나라이다.수자원 관리 기술도 우수하다. 옛날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얘기를 하면서 ‘누가 물을 돈 주고 사 먹냐?’라고 웃곤 했지만 요즘은 전국 상수도 보급률 98.5%로 건강한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며 값싸게 요금을 내고 때로는 생수도 사 먹으니 그 얘기도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우리는 물을 물 쓰듯 한다. 수세식 변기는 1회 사용량이 대략 8L 정도라니 하루 5회를 사용하면 40L, 큰 생수병 20개 분량이다. 또 목욕탕에서 샤워기를 줄줄 틀어놓고 면도를 하거나 양치질하는 것을 보면 ‘물을 풍족하게 사용하시되 낭비는 하지 마세요’라는 어느 목욕탕의 글이 머리에 맴돌며 슬그머니 화가 난다. 물은 하늘에서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와 강을 따라 멀리 흘러서 저수지에 모였다가 깨끗이 소독되어 어둡고 긴 수도관을 거쳐 보일러에서 끓여진 후 샤워기로 나오는데 그냥 버려지다니 안타깝다. 설거지와 세탁 등 일상생활에서도 물 절약은 꼭 필요하다.올해도 봄 가뭄이 계속되고 하천은 메말랐어도 수도꼭지를 틀면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아껴 쓰면서 낭비하지는 말자. 세계 물의 날을 맞아 한 번 더 물의 소중함을 깨달아야겠다.

2021-03-21

나뭇가지 자르기

윤영대수필가봄비가 내리고 나니 뒤뜰의 대나무 숲은 겨울의 한기를 씻어 곧고 푸른 줄기가 더욱 생기를 찾고 마당 앞 담장 곁에 있는 몇 그루 나무들도 가지에 물기를 머금은 듯하다. 벌써 꽃망울 부푼 나무들도 있고 몇 년간 미처 손쓰지 않은 탓인지 삐죽한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란 녀석도 있다. ‘가지를 칠 때가 되었지’ 하고 나무들을 둘러 보았다. 산야에 자라는 나무들은 그곳의 환경에 맞게 제멋대로 자라겠지만 정원의 나무는 알뜰히 가꾸어 주어야만 좋은 모습을 갖는다.전정(剪定) 작업은 불필요하거나 오래된 가지를 자르고 다듬는 것을 말하는 데, 나무의 특성을 살려 외형을 다듬으며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속 가지를 솎아주고 또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 잔가지를 잘라주어 바람직한 성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좁은 정원을 10여 년째 돌보다 보니 몇 가지 기본적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전지(剪枝)하는 순서로는 키우고 싶은 수형에 맞게, 큰 가지나 굵은 가지부터 자르는데 위에서 아래로, 또 밖에서 안으로 가지들을 정리하면 된단다. 그래도 가지를 자르다 보면 멈칫멈칫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자를 때의 세부적인 규칙도 있다. 서로 엇갈리거나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자라는 가지, 아래로 축 처지는 가지와 자기 혼자 쭉 올라가는 가지를 균형 있게 자르고, 물론 부러졌거나 죽거나 약한 가지는 모두 자른다.보리수나무는 여름이면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많이 따먹었는데 작년 이맘때 앞 담장을 향하는 낮고 굵은 밑가지를 잘랐더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열매도 많이 달리지 않았고 도장지들만 쑥쑥 자라고 있다. 꽃말이 ‘부귀’라는 배롱나무도 매년 매끄러운 가지 끝에 화려한 분홍 꽃들을 피워 그냥 두었더니 이제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랐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다리를 놓고 전지가위도 큰 것 작은 것 그리고 톱도 꺼내 들었다. 우선 눈에 먼저 띄는 웃자란 도장지를 솎아 자르고 내가 원하는 나무의 모양을 그리며 가지들을 잘라 나갔다.해마다 노란 모과를 한 소쿠리씩 던져주던 모과나무도 그새 자라서 앞집 지붕 보다 커버렸다. 어렵게 나무 사이를 기어올라 중앙의 굵은 가지를 싹둑 잘라서 키를 낮추었더니 한결 보기가 좋다. 석류나무도 얽히고설켜 서로 가지를 부딪히던 것을 많이 잘랐다. 가죽나무는 벌써 망울이 보이기에 올봄 새순을 따먹은 후에 가지치기할 작정이다.우리 일상의 삶도 ‘가지자르기’가 필요하다. 마구 벌여 놓은 일들, 복잡한 인간관계 등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경제력에 맞게 잘 자르고 가다듬어서 모양 좋고 꽃들이 잘 어울려 피고 열매도 풍성하도록 해야한다. 물론 요즘의 세태를 보면 정치계도 깔끔한 전지작업이 필요하다. 제멋대로 놓아둔 나무들은 가지들이 서로 엉켜 수형은 물론 병충해가 들끓어 나무둥치가 썩고 죽은 잎은 가지에 쌓여 햇빛이 들지 않아 그 열매조차도 맛을 잃기 때문이다.곧 4월, 뜰의 소나무를 전지할 시기이다. 새순을 따고 가지를 다듬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를 가질 수 있도록 잘 가꾸고 싶다.

2021-03-14

봄, 새롭게 깨어나라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춘삼월, 이제 완연한 봄이다. 경칩(驚蟄)도 지났다. 동면하던 동물들도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하는 음력 정월-인월(寅月)은 만물이 생동하는 깨어남의 절후이다. 흔히 경칩에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고 말을 한다. 어디 동면을 하는 동물이 개구리뿐일까. 뱀, 거북 등 양서류와 파충류도 땅속에서 잠자고 박쥐, 고슴도치는 가사상태로 겨울을 나고 곰들도 얕은수면 상태 속에서 겨울잠을 자며 새끼도 낳아기른다.겨울 가뭄에 바짝 마른 개울을 찾았더니 산개구리 몇 마리가 벌써 뛰어다니고 새싹 돋는 풀숲을 헤쳐보면 까만 개구리가 툭 튀어나온다.어저께 비가 내린 탓에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낙엽들을 말리려고 들추어 보니 그 속에 파릇하게 봄을 준비하는 꽃창포의 여린 잎들이 깨어나고 있었고, 여름이면 연보라 꽃을 피우는 비비추도 연두색 새순을 올리고 있었다. 따뜻하게 봄기운 받으라고 모두 긁어내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 어린싹들이 낙엽을 덮고 더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힘을 기르고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이불을 벗긴 것은 아닐까?’하고는 얼른 덮어두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생종인 여러해살이풀이니 그 추위쯤이야 훌훌 이겨내겠지. 깨어나라. 봄이 왔다. 축축한 해묵은 낙엽 속에서 꾸물거릴 때가 아니지않느냐. 개구리도 긴 잠을 깨고 눈 녹은 물이 고여 있는 갯가에서 짝짓기하고 투명한 알들을 낳는데….기계면 언저리에 있는 시골집을 나와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드라이브 스루 나들이를 나섰다. 기계천을 따라올라 한티 터널을 지나고 자호천을 끼고 달리며 창밖을 기웃거려보니 개천에는 겨울 가뭄에 물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아련히 봄기운이 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죽장에서 상옥으로 가는 길의 초입, 입암리의 선바위도 가사천 개울을 보며 봄을 기다리는 듯하고 상옥 마을을 굽이돌아 진달래 꽃망울 보며 고갯마루에 서면 경북수목원도 봄을 맞고 있다. 청하에 들어서면서 기청산식물원에 들리니 빨간 동백과 노란 산수유의 웃음 속에 동강할미꽃이 고개를 살짝 들고 있다. 봄의 기운이다.동물의 겨울잠은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기온의 변화로 주위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고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동물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이다. 그 활력 징후를 보면 각성상태라고 한다. 동면에 들면 몸의 내부상태 즉, 심박동수와 호흡량을 조절하는 호르몬 등이 있기 때문이다.요즘 우리나라 정세를 보면 계절 변화의 우려 속에도 국민은 아직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아니, 배고프고 추웠던 시절을 힘겹게 보낸 것을 모두 잊고 풍요와 자만에 빠져 멋모르고 마신 축배에 너무 빨리 취해버린 듯, 숙취의 잠이다. 그 활력 징후는 어떨까.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듯 우리도 사회적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기이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성경 구절이 와닿는다.경칩 전후, 고로쇠나무에서 얻는 수액은 술독을 푸는 데 좋다고 한다. 한 모금 시원히 마시고 숙취도 풀고 뼈도 굳건히 하여 더 따뜻한 이 봄의 훈기를 느껴보자. 우리 모두 새롭게 깨어나자.

2021-03-07

여린 새싹을 보면서

윤영대수필가‘눈이 녹아서 비가 되어 내린다’는 우수(雨水)를 지나고 봄의 기운이 느껴져 가까운 들판에 나가본다. 길가 논밭 두렁에는 연두색이 살아나고 있다. 온갖 풀들이 한 해의 생명을 시작하는 새싹들의 기지개다. 새싹, 식물들에게는 갓난아기- 생의 시작이다.근래 매스컴에는 이상하리만치 아동학대 사건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의 새싹인 어린이들이 자라기도 전에 심한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는 가슴 아픈 내용들이다.작년 생후 8개월에 입양된 아이가 양부모에게 학대당하다가 8개월 만에 병원에서 죽은 ‘정인이 사건’이 있다. 영상에서 밝게 웃고 있는 예쁜 아기가 걸음마도 다 배우지 못하고 하늘나라도 간 것이다. 또 용인의 10살짜리 여자애는 이모 부부의 물고문 학대로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가슴이 먹먹한 일이다.9살짜리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죽게 한 의붓모도 있고, 5살 여아를 때려 숨지게 하고 야산에 유기한 30대 친아버지, 3살 난 딸을 빈방에 방치한 채 재혼한 남자 집으로 이사 가버려 굶주림과 추위에 혼자 죽게 한 22살의 못된 어미도 있다. 이들이 부모일까?갑자기 불거져 나오는 패륜적인 사건들을 보며 이 사회가 여간 곪아 터진 것이 아님을 이제야 깨달은 듯해서 이 모두가 사회교육과 인간교육의 부재라 생각하고 교육자로서 살아온 나도 심한 자책감을 느낀다.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9년도 아동학대 의심 신고된 것만 4만 건을 넘어섰고 그 80% 정도가 ‘가정 내’이며 겨우 일부만 경찰에 신고되어 조사를 받는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2015년도 이후 5년간 가정학대로 160여 명의 아이가 사망했는데 1세 미만이 45%이며, 친부모 학대가 87% 정도라니 참 세상 요상스럽게 돌아간다. 그 사정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 미혼모, 양육지식 부족 등이다. 무직 26.4% 단순노동 11.3% 주부 11.3%…. 먹고살기 힘들어 자식을, 그것도 어린 새싹들을 모질게 잘라버리다니 인간들이 아니다. 또 ‘코로나19로 닫힌 공간에서의 부대끼는 시간이 많아서, 우울증을 느껴서’라고 하는 얘기도 있지만 요즘 점점 가족 사랑이 사라져가는 풍조는 어떻게든 고쳐야 한다.학교, 어린이집 등의 보육기관에서 자행되고 있는 언어폭력과 신체학대도 엄청나다. ‘학대’는 아동복지법 제3조에 ‘성인이 아동을 해치거나 발달을 저해할 모든 가혹 행위’ 또는 ‘내다 버리거나 돌보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처벌 만이 학대근절의 직접적인 대안이 아니다. 사회인식 변화의 절실함, 사회 감시망 확대의 필요성 등이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 미미하고, 아동학대를 하지 않도록 가정 구성원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녀의 체벌은 부모의 권리’라 하지만 체벌과 폭력적 학대는 잘 구별되어야 한다.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 두려움으로 사회생활이 불량해지기 쉽고 학대를 한 당사자들도 삶이 온전치 못하리라.들판에 싹을 틔우는 여린 풀들을 어루만져보며 보며 아이들도 가정과 사회 속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잘 보듬어지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2021-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