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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설 같지 않은 설날

윤영대수필가설 연휴도 지났다.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설을 설 같지 않게 보내고 나니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말에 주소지가 다를 경우라고 해서 아들 내외도 딸도 오지 않았다. 그들의 직장에서 에둘러 고향 가지 말라고 하는 듯해서 오지 말라고 했었다.아들이 오면 같이 목욕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얘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평소에도 목욕탕 감염 우려에 가지 말라고 자식들이 말렸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와서 우리 부부 둘이서만 설 차례상을 준비했다. 뭔가 허전했다.섣달 그믐날 까치설날엔 어린이들은 설빔으로 갈아입고 어른들은 묵은세배 한다며 이웃들을 찾아다녔으나 올해는 갈 곳도 없다. 또 ‘그믐날 밤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에 졸면서 밤샘하려 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늦게까지 휴대폰으로 보내오는 연하 인사에 나 또한 비대면 감사말을 보낼 뿐이었다.‘설’은 ‘낯설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여태 살아오면서 올해와 같은 이런 분위기의 설날은 처음이다. 참으로 낯설은 날이다. 또 ‘선날’ 즉 ‘새로 시작하는 날’의 뜻도 있다 하며 음력 정월 초하루를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초(歲初)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맞는 새해의 첫 아침에 마음 정결히 하여 현관 바닥을 쓸고 닦고 문 바깥도 말끔하게 청소하여 새롭게 마음을 세우고 한 해의 다짐을 해보았다. 신정-구정의 오랜 실랑이도 있었지만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내려오는 세시풍속은 버릴 수 없어 30여 년 전 ‘설날’로 정착하여 3일간 휴일을 즐기고 있다.‘설’은 또 ‘삼가다’의 옛말 ‘섧다’에서 어원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신일(愼日)이라고 하는데 코로나 역병의 창궐로 온 나라가 걱정 속에 모이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신일의 이름 그대로 몸을 삼가고 사리며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새 옷으로 갈아입고, 자식들이 오리라 생각하고 며칠 전부터 장만했던 음식들을 많이 줄여 정갈하게 차례상을 차렸다. 혼자서 향 피우고 술 따르고 떡국 한 그릇 올려 조상께 절을 하니 가가례(家家禮)의 절차다. 예년 같으면 차례 끝내고 음복하고 세배를 받으며 덕담하고 세뱃돈을 주었으나 올해는 오지 못한 자식들과의 스마트폰 영상통화로 세배를 받았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세뱃돈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언택트 설명절 보내기, 참 희한한 풍속도다.민속놀이도 점점 그 맥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데, 세상의 변화로 많은 세시풍속이 퇴색되거나 단절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어릴 때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 꽹과리 두드리며 마을을 도는 지신밟기며 들판에서 손수 만든 연날리기도 했었다. 연을 날리며 즐기다가 대보름 전날에 연줄을 끊어 날려버리곤 했는데, 코로나는 태양 표면의 불꽃 이름이니 흰 꼬리연에 크게 그려 태양을 향해 ‘액막이 연’이나 날려볼까. 널도 같이 높이 뛰어도 보고, 여럿 모여 윷놀이도 즐기고, 복조리도 걸어두어 한해의 행운을 담아보고도 싶은데….설날의 적적함에 가족의 정을 맛보려고 남아있는 떡국을 아내와 둘이서 나눠 먹으며 ‘설도 설 같지 않은 설’을 보내는 참 낯선 명절을 보내었다.

2021-02-14

입춘첩(立春帖)을 붙이며

윤영대수필가지난 3일은 입춘이었다. 봄의 시작이고 한 해의 시작으로의 의미도 있다. 24절기 중 첫째, 주로 음력 정월에 드는 절기지만 올해는 아직도 경자년 섣달이다. 이렇게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든다고 쌍봉춘(雙逢春), 또 ‘봄을 다시 만난다’고 재봉춘(再逢春)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 해에 결혼하면 좋다는 속설도 있다.입춘에는 대문이나 문설주, 기둥 등에 입춘첩을 써 붙이는데 올해도 졸필이지만 써봤다. 요즈음 나라의 상황을 보아서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라’는 국태민안(國泰民安) 등 큰 의미의 바람도 있지만 많은 글 중에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골랐다. 그런데 올해 입춘 절기가 드는 시간을 알아보니 자정이 가까운 밤 11시 59분이라 그냥 붙이려다가 시간에 맞추어 붙어야 효험도 있다고 해서 재미 삼아 기다렸다. 자정이 다 되어 현관문을 열고 나가 여덟 팔자로 정성껏 붙이고 ‘봄이 되면 크게 길하고, 따뜻한 기운을 받아 좋은 일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고 마음으로 빌었다. 조용히 들어와서 따뜻한 녹차 한 잔을 마시니 가슴에 봄이 드는 듯 훈훈해진다.예전엔 각 지방마다 재미있고 뜻있는 의례와 행사들이 많았다지만 요즘 세태에는 절식 하나 정성껏 마련해 먹는 집도 드물 것 같다. 옛 궁중에서는 파, 냉이, 부추 등 맵고 신 맛의 채소들로 만든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올렸고, 민간에서는 눈밭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친 입춘채(立春菜)를 먹었다고 한다. 마침 집에는 아내가 구해온 싱싱한 산미나리가 한 묶음 있어서 새싹은 아니지만 감식초에 무쳐 막걸리 한 잔 마시며 ‘봄이 드는 계절’을 맛보았다.옛날 의례에는 흙으로 만든 소나 나무로 만든 소로 잡귀를 쫓고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고 하는데 올해가 마침 하얀 소띠해라 큰 마을 잔치라도 벌였으면 좋겠지만 집합금지의 어려운 시기이니 마음으로나마 우직한 소들의 뚝심을 품고 역병을 쫓아버려 주기를 다짐해보자.입춘에 맑고 바람 없으면 풍년이 든다 했는데 중부지방에는 눈발이 날렸고 기온은 영하권으로 내려갔지만 여기는 바람 없는 조용한 날씨여서 다행이었다. 보리 뿌리를 뽑아 보아 뿌리가 많으면 풍년이고 적으면 흉년이라는데 부근엔 보리밭이 없으니 멀리 호미곶 청보리밭에 가서나 알아볼까.기계면 시골집에도 입춘첩을 붙이려고 갔더니 화단에는 노란 납매가 피어있다. 섣달에 피는 꽃이라 납매(臘梅)라고 했겠지마는 나에게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꽃이다. 능수매화는 아직도 겨울잠인데 남쪽 지방에는 매화도 핀 모양이다. 오는 길에 봄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려고 창포동 마장지 못을 둘러 보았더니 버들강아지가 하얀 솜털을 부풀리고 있는 물가에 청둥오리 한 쌍이 정답게 물을 가르고 있었다. 집 베란다의 사랑초는 겨울에도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지만 동양란 몇 포기는 잘 가꾸어 주지 않은 탓인지 아직도 꽃대를 올리지 않고 있다.이제 정녕 봄은 오리라. 엄청난 질병의 엄습에 움츠렸던 몸을 털고 기지개를 쭉 켜고 화창한 봄날을 맞자. 그리고 이번 설날에는 두루 세배는 못 다니겠지만 가까운 자식들의 큰 절을 받았으면 싶다.

2021-02-07

코로나 줄서기

윤영대수필가코로나19가 국내에 번지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지난해 최대 고비를 넘기며 모범적인 K-방역으로 주춤하더니 또 재확산이 우려된다. 확진자 수는 매일 400명대를 오르내리고 누적 7만7천 명을 넘었다. 방역 2.5단계로 비대면과 5명 이상 모임 금지가 이제는 일상이다,빠른 백신 접종으로 국민의 걱정도 덜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 시행이 늦어지고 있는 이때 포항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1가구당 1명 이상’ 의무진단 행정명령을 내리고 1월 26일부터 약 18만 명을 대상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면 지역을 제외한 20개소에 선별검사소를 설치하였었다.첫날은 몰랐다. 포항사랑 상품권을 구하려고 동네 농협을 찾아가서 줄을 섰다가 길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매진된다기에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 두호동 옛 미군부대 주차장에 사람들이 웅성대기에 알아보니 코로나 선별검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인근의 신협 등 여러 곳을 기웃거려도 상품권을 구하지 못해 포기하고, 검사나 할까 하고 그곳으로 가보았더니 이미 길게 줄서기를 하고 있어 단념했다.다음날 정오쯤에 갔더니 더 길었다. 뒷줄에 물어보니 2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하고 일찍 한 사람은 오전 8시 이전에도 왔었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북구보건소로 가보니 골목엔 이미 주차할 곳이 없고 줄서기는 역시 길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내친김에 장량동 행정복지센터에도 가봤으나 입구부터 요원들이 길 정리를 하고 있었고, 한 바퀴 둘러 양덕동 한마음체육관으로 갔는데 이곳은 드라이브스루 하는 곳이라 차들이 1km 정도 길게 줄지어 있고 네거리에는 경찰이 수고하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다.사흘째 오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멀리 주차하고 걸어 가보았더니 100명도 안 되어 이상했다. 어제까지의 불만을 들었음인지 2월 4일까지 연기하고 다섯 개 대형병원도 검사에 참여했단다. 잘됐다 싶어 30여 분 줄 서서 검사를 받았다. 그곳은 주차장이라 바닥에 주차선이 있어 거리 두기가 정확하게 실시되고 있어 다행이었다.끝내고 나오니 때마침 세찬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드라이브스루는 이날도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깥에 줄 서서 추위에 떠는 것보다 따뜻한 차 안이 좋겠지만 장시간 엔진을 켜고 있으면 연료도 많이 소모되겠다. 죽천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코로 들어 마시니 마음이 후련하다.다음날 강풍 및 한파 주의보와 포항시청 안내문자가 떴다. “별도 통보를 받으신 분 외에는 전부 음성입니다.” 다행이다. 그러나 무증상자 25명을 찾아냈다니 포항시의 특단조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검사소도 25곳으로 늘었고 팀도 73개로 증원했다니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수고하시는 공무원과 봉사자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비와 찬바람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찬찬히 검사를 받는 공공질서 의식으로 우리 모두 선진사회의 시민임을 알리고 있음은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느낀 뿌듯함이다. 마스크 사려고 줄 서고 상품권 구하려고 줄 서고, 또 선별검사로 줄 서보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줄을 서는 일이 참 어렵다고 생각된다.

2021-01-31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

윤영대수필가좋은 의도로 내놓은 의견이나 정책이 예상 밖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때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고 비난을 받는다. 즉 바로 눈앞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에 예상되는 결과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검토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그 정책의 수혜자라고 생각되는 국민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것, 즉 이익을 둘러싼 숨겨진 계산법을 잘 모른 탓이다. 또 자연에 관한 일이라면 그 환경을 끌고 가는 자연의 법칙을 간과한 결과이다. 이러한 근시안적 정책은 결국은 본말이 전도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이러한 예로는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인도의 델리에서 숲의 코브라가 많아 주민들의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코브라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처음에는 줄어들다가 이상하게도 자꾸 보상금을 받아가는 일이 있어 조사해 보니 사육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즉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키운 것이다. 이에 보상금 제도를 폐지했더니 주민들이 야산에 버려서 다시 코브라가 증식했다는 사실이다.또 베트남 하노이의 ‘들쥐꼬리 현상금’도 같다. 하수구 들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꼬리를 가져오면 현상금을 주었는데 하수구의 들쥐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꼬리만 자르고 그냥 방사했다는 것인데 다시 새끼를 낳아 번식해야만 또 꼬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이러한 측면으로 ‘풍선효과’도 들 수 있겠다. 바람 넣은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풍선을 잘 못 눌러 창피를 당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다.중국 마오쩌뚱의 참새 박멸 지시다. 스촨성 방문 때, 참새가 먹는 곡식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듣고 없애라고 지시하자 국민들이 열심히 잡아 죽였는데 참새가 줄어들자 오히려 그 먹이였던 메뚜기가 창궐하여 들판을 황폐시켜 국민 절반이 굶어 죽었다는 사건이 있다. 또 프랑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후 국민들이 우유를 많이 먹을 수 있도록 우유값을 반값으로 내렸더니 낙농업자들이 생산을 포기하고 소를 도살하여 고기로 팔았다. 사료값도 안된다는 말을 듣고 사료값을 또 내리니 이번에는 풀들을 모두 태워버려 소를 못 키우고 오히려 우유값이 폭등했다는 역사가 있다.이러한 즉흥적인 정책은 자연과 인간과의 고리와 시장경제를 인식하지 못한 강제적 졸속 행정이다. 숲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숲이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 삶과 자연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은 좋은 발상이었으나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들의 윤리와 가치관이 해이해지고 사회갈등이 심화된 경우를 많이 보고 듣는다.우리도 풍선을 잘못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그럴싸한 말을 바탕으로 택한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는 오히려 소상공인들의 몰락으로 저임금, 알바 등의 일자리가 줄었고 서민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 풍선도 스무 번도 더 눌렀지만 오히려 집값을 폭등시켰다.단순한 인위적인 정책으로 사회의 근본적인 힘을 제재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무를 가꾸려면 나무는 물론 그 숲을 유지하고 있는 흙과 물과 바람도 깊이 살펴야 한다.

2021-01-24

좌우명을 써 본다

윤영대수필가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올 한해의 목표를 정하고 꼭 이루어 보자고 다짐한다. 또 그러한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마음의 언약을 글로도 써본다. 자신의 가치관, 생활관 등을 마음에 새겨 반성의 재료로 삼는 금언, 격언, 경구 등을 좌우명(座右銘)이라 하는데, 나는 처음에 왼쪽이나 오른쪽에 적어둔다는 좌우명(左右銘)인 줄 알았었다.좌우명이란 뜻의 유래는 공자의 일화가 있다. 공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묘당에 갔을 때 삐딱하게 놓여있는 빈 술독을 보고 그 의미를 물었는데 “비어있을 때 쓰러져있다가 반쯤 차면 바로 일어서고 다 채우면 다시 쓰러진다”는 관리인의 설명을 듣고 ‘교만하게 굴지 말라’는 겸손의 가르침으로 새기며 자신도 그러한 항아리를 만들어 옆에 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후한의 학자 최원(崔瑗)이 스스로 지켜야 할 글귀를 써서 자신의 오른쪽에 두고 평생을 스스로 가다듬었다는 글 - ‘남의 단점 말하지 말고 자기 장점도 자랑하지 말라’는 좌우명은 문선(文選)이라는 책에 실려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우리도 이러한 좌우명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자기가 마음속에 담아왔던 생각을 새기면 좋지만, 평소 들어온 수많은 선인들의 말씀 중에서 하나 골라 액자나 족자를 만들어 벽에 걸거나 그냥 백지에 써서 붙여두고 매일 보며 다짐하는 것도 좋겠다. 자신의 의지와 염원을 담아 스스로 격려하고 반성하며 올바른 길을 찾을 때 삶의 의욕도 커지고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리라.‘모든 것은 제자리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머리와 가슴에 넣어두고 되새기며 생활의 방향을 정하고 있다. 여기서 ‘제자리’라는 말은 그냥 ‘움직이지 말고 나아가지 말라’는 ‘부동’의 뜻이 아니다. 자신의 신분에 맞고 자기의 격에 맞는 ‘자기 자리’ 즉, ‘자기가 있는 곳,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곳’이란 뜻으로 때와 장소에 맞게 말과 행동을 삼가며 최선을 다해서 처신해야겠다는 마음 다짐을 말한다.물건도 또한 마찬가지다. 있어야 할 곳에 두고 써야 할 곳에 쓰자는 것이다.나이가 들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쓰고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다음에 찾기가 힘들다. 우리의 뇌는 습관에 따라 몸을 움직이곤 한다. 그래서 쓰고 나면 원래의 있던 제자리에 두어서 찾기 쉽고 유용하게 쓰려고 한다.요즘 입사지원서를 낼 때 자기소개서에도 좌우명을 적으라는 곳이 많아서 젊은이들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나는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좌우명을 하나씩 갖도록 가르치며 ‘항상 최선을 다하라’라고 했지만 나 자신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회와 직장에선 교수로, 집에서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온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나름대로 노력을 했으나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러한 좌우명으로 살아왔기에 큰 후회는 하지 않는다.새해를 맞아 글귀 하나를 지어 나의 책상 오른쪽 벽에 써 붙이고 가족들에게도 보낸다. ‘맑은 마음, 밝은 얼굴, 고운 말씨’.

2021-01-17

소한(小寒) 집에 대한(大寒) 들다

윤영대 수필가새해 벽두부터 북극발 차가운 기운이 남으로 밀고 내려와서 한반도 전역이 얼어붙었다. 서해안은 폭설까지 덮쳤다. 한파 특보가 전국 대부분 지방에 발효되고 포항도 영하 10도 이하로 곤두박질치고 전국이 영하권이다. 형산강이 얼고 울릉도엔 30cm 폭설이 내려 설국의 장관을 연출하고 제주는 57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렸다.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온 탓인가?‘소한 추위는 꾸어와서라도 한다’는 속담처럼 어디서 강추위를 한 보따리 꾸어왔는지 어제오늘의 추위가 매섭다. 우리나라의 겨울 추위는 대륙성 고기압인 저 북쪽 시베리아 기단의 활동에 기인하는데, 벌판에 하얗게 쌓인 눈에 햇빛이 반사되어 대기의 하층 공기가 냉각되고 뭉쳐져 있는 그 힘을 대한 몰래 빌려온 것이리라. 찬 바람이 내려오면 농촌의 비닐하우스와 어촌의 양식장 냉해 관리도 힘들게 되어 걱정이고, 얼어붙은 도로의 블랙아이스로 인해 교통사고가 많아지고 눈 위를 걸을 때는 미끌어지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하며, 수도관 동파나 옥외 전기시설의 안전사고 예방에 주의해야 한다. 겨울이 펼치는 한파로 어차피 소한 땜을 한번 겪어야 할 것 같으니 외출 시 두껍게 차려입고 마스크를 꼭하고 모두가 각별한 주의로 이 겨울을 잘 지내야 하리라.추워지면 따뜻하게 하려다 보니 전열기들의 부하가 급증하여 전력수요가 늘어나게 되어 전력란도 우려된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전력 소비는 약 9천만KW의 최고치를 기록하고, 예비전력은 약 880만KW로 예비율 10% 정도로 다행이지만 한전에서도 석탄발전 감축과 LNG 306만톤 확보 등 안정적 전력수급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이러한 추위에 사회적 배려계층의 에너지 바우처도 확대 지원한다고 한다. 이래저래 한겨울 추위가 몰려오면 일상이 움추려드는 마음에 주위의 온도를 높이려고 애쓰지만 ‘적정 실내온도(20℃) 지키기’를 하며 에너지 사용을 적절히 잘 하여야 한다.삼한사온은 온대기후인 우리나라 겨울의 특징이다. 사계절이 있다는 것도 축복이고 겨울엔 춥고 따스함이 사나흘씩 반복되는 날씨의 추임새도 좋다. 겨울은 한 번쯤 추워야 한다. 그래야 흙 속의 해충도 죽고 나무들도 껍질을 두텁게 한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장작 등 땔감을 마련하고 문풍지를 바르고 했던 옛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폭설에 교통이 막히고 나들이에는 불편하지만 겨울엔 눈도 와야 된다. 겨울 가뭄이 들면 봄을 준비하는 새싹들의 목이 마르다.어제 아파트 정원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보니 털복숭이 망울들이 올망졸망 달려있기에 몇 가지 꺾어서 가져왔다. 고깔 모양의 투명한 유리 화병에 꽂고 물을 주었더니 고맙다고 속삭이듯 생기가 도는 듯하다. 베란다에 잊혀진듯 놓여있는 화분에도 따뜻한 물 한 모금 주어 양지쪽에 두었다.‘대한이 소한 집에 와서 얼어 죽는다’는 말처럼 이 소한의 추위에 코로나 바이러스도 모두 얼어 죽어서 대한이 지날 때쯤부터는 좀 더 따뜻한 이웃들의 온기를 느꼈으면 좋겠다. 추위에 좋다는 생강차 한 잔 달이고 비타민C가 풍부하여 겨울철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황금색 귤을 까먹으며 이 겨울의 한파를 희망찬 마음으로 녹여보자.

2021-01-10

황토방에 불 때고

윤영대수필가새해가 밝았다. 신축년 소띠 해다. ‘신(辛)’은 흰색, 그러니까 올해는 ‘흰 소의 해’이다. 사실 띠로 말하는 음력 새해 즉, 설날은 아직도 한 달 열흘가량이 남았으나 양력을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소는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우직하기도 하다. 어떤 힘든 일도 순종하며 참을성 있게 묵묵히 해내는 소. 그러나 한번 성나면 주인이 와도 못 말린다. 지난 쥐띠 해는 쥐새끼들이 날뛰듯 코로나 세균이 설치고 세상이 시끄러워 평온한 일상이 뒤틀려 버렸지만 올해는 소의 성실함으로 나라 안팎이 평정을 되찾기를 빌어본다.매년 새해 첫날은 일출을 보러 간다. 먼동이 트는 새벽녘 영일대 해수욕장과 호미곶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올해는 이들 주요 해맞이 장소가 모두 폐쇄되었다. 12월 마지막 날 저녁에 영일대 바닷가에 가보았더니 빨간 출입금지 줄이 길게 둘러져 있었다. 신년행사는 취소되고 거리는 한산했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새해의 안녕을 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엇비껴 들어오는 첫 태양의 난반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 새해의 시작에 즐기는 일은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이 또한 온라인 행사로 텅 빈 종각 영상에 종소리만 울릴 뿐 새해의 복을 비는 군중의 함성은 없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가 처음 알려진 것이 벌써 1년째, 전 세계로 번진 역병은 걷잡을 수 없이 혼돈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코로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계의 팬데믹은 얼마나 갈는지…. 내 마음속의 맑은 종을 울리며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대해 본다.새해 첫날 시골집 황토방에 군불을 때고 뜨뜻한 방구들에 엎드려서 이 글을 쓴다. 밖에는 하얀 첫눈이 내리고 있다. 불을 지피니 잘 안 타고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밀려 나오기에 오랫동안 굴뚝 청소를 하지 않은 탓이려니 하고 연통을 뽑아보니 밑둥이 꽉 막혀있다. 뭉쳐 있는 그을음을 털어냈더니 시원하게 불길을 잘 빨아들여 방이 금방 뜨거워진다. 우리 일상도 무관심하게 오래 지나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 뭉쳐져 있는지를 잘 모른다. 한 번씩 살펴보면서 고쳐나가야 한다. 올해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연말부터 카톡과 문자로 지인들과 옛 제자들로부터 고마운 연하 인사를 전해온다. 격리된 느낌의 한 해를 견뎌온 외로움을 따뜻이 풀어주는 고마운 글들이다. 나도 간단히 그린 연하장에 덕담을 쓰고 휴대폰 사진으로 담아 감사의 답장을 보내고 있다. 올 신축년에는 역병이 사라지고 웃음이 넘치는 일상으로 되돌아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새 달력도 걸었다. 황토방의 열기를 배에 깔고 1년의 계획을 적어본다.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난 것은 없다. 문화원의 새로운 과목을 들어볼까도 하고, 국내 여행과 산행 코스도 몇 개 잡아두었다. 해외여행도 계획해 보지만 코로나 확산 속에 실현될지 의문이다. 가진 것들을 정리하며 건강생활과 자기성찰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뜻이 ‘마음먹고 한 일이 사흘도 못간다’는 말인지 ‘마음먹는 일에 사흘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나는 뒤의 뜻으로 받아들여 작심하고 올해의 계획을 세워보고자 한다.근하신년 첫날, 마당엔 흰눈이 쌓이고 있다.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

2021-01-03

우리는 할 수 있다

윤영대 수필가한 해가 저문다. 희망과 설레임으로 맞이했던 2020 경자년도 코로나19라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역병의 창궐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작년 12월 말 중국 우환에서 들어온 원인불명의 폐렴 전염병이 이제 매일 1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국민의 불안은 가중되어 간다.우리 생활의 변화는 엄청나다. 거리 두기 2m라는 제한 속에 비대면, 랜선, 언택트라는 신조어들을 머리에 새기고 확찐자, 집콕족, 금스크 같은 우스개 소리도 챙겨야 했다. 이제 마스크 쓰기와 언택트로 소통하는 방식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이자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서로의 만남이 두려운 우리는 ‘우리’라는 넓은 범위의 이웃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다 같이 노력하여 되찾고 모두가 긍정적 생각으로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개인의 삶도 우울하지만 사회도 우울하고, 마음의 평온과 삶의 믿음을 위해 교회나 절에서 모여 영혼을 위로받고 싶지만 어려운 실정이다.세계 각국은 자국의 방역을 위해 외국과의 왕래도 통제하고 세계 축제인 올림픽도 연기된 아픈 기록을 남겼다. 국내는 백신 구입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을 받는 와중에서 정치권의 줄다리기 싸움을 지켜보며 마음은 짜증나고 어둡기만 하다. 학생들의 생활도 빗나가버렸다. 한창 감성이 무르익을 학창시절을 등교의 불확실성에 비대면 수업이라는 사태까지 와버렸으니 앞으로 코로나 세대라는 신세대가 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기억을 할지….올해는 문화예술계와 체육계도 힘을 잃었다. 전시회가 취소되거나 인원 제한에 언택트 공연이 되었고, 국민 생활의 활력소를 얻던 각종 경기 등도 취소되어 함성과 박수가 요란했던 경기장은 조용하다. 연말이면 안방을 달구었던 각종 시상식들의 화려함도 볼 수 없다. 해외여행 불가로 나의 꿈, 버킷리스트 하나를 접어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그러는 가운데 망년회도 없이 연말을 맞은 마음은 쓸쓸하다. 이제 마음을 추스르며 나의 주위를 정리해 본다. 소소하게 즐겼던 취미 생활의 흔적을 차곡차곡 정리해 보고 단조로운 일기장을 뒤적이며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과 무언의 대화들을 하나둘 지우며 나의 기억 속에 묻어둔다.내년은 신축년 소띠의 해이다. 말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소와 같이 정부는 선지적인 상황판단과 결단력으로 현명하게 대처하고 국민 각자는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역대책을 준수하며 병상 부족 상황에서도 고된 업무를 이겨내려는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봉사 정신을 가슴에 품고 이 난관을 타개하고 밝은 내일을 만들어 가자.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다.내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맑은 마음, 밝은 웃음으로 깨끗한 몸을 가꾸고 이웃들과의 관계를 더욱 따뜻이 하여 이 환란을 이겨내자. 제야의 장엄한 종소리도 새해 첫날 타오르는 일출도 각자의 위치에서 마음으로 듣고 보며 새해를 맞이하자.“우리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2020-12-27

동지 팥죽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벌써 한해가 끝나가는 동지다. 태양이 돌아가는 황도 길을 24개로 나눈 절기 중에서 스물두 번째, 태양이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그림자가 가장 길다. 또 1년 중 밤이 가장 길어 ‘호랑이가 장가드는 날’이라고도 하는 절기이며 이제까지 커져 왔던 음기가 다하고 양기가 새롭게 부활하는 날이라 역(曆)의 시작으로 보고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로 삼았다고 한다.동지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궁중에서는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을 베풀었고 관상감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으며, 민간에서는 며느리들이 시집의 여자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는 헌말(獻襪)이라는 것도 있었고, 뱀 사(蛇)자를 쓴 부적을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다고 빌기도 했다. 그러나 민간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절식(節食)인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제일 보편적인 풍습이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있으니 안 먹고 한 살 덜 먹어볼 수도 있을까.어릴 때 기억이 아스라하지만, 따뜻한 방에 둘러앉아 할머니 옆에서 하얀 찹쌀로 만드는 구슬만한 새알심을 갖고 놀았고 어머니가 부엌에 내려가 펄펄 끓는 팥물에 넣어 질퍽한 팥죽을 끓여오면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그 팥죽을 몇 그릇 떠서 마루의 쌀 뒤주와 우물가 장독대 위에 놓고 정성스럽게 빌던 모습들도 이제는 잊혀져가는 기억들이다.근래 팥죽을 직접 끓여 먹는 가정은 많이 줄었겠지만, 요즈음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젊은 층의 레트로(retro) 취향으로 복고풍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지 골목마다 팥죽을 만들어 파는 가게도 늘고 팥 생산량도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팥은 붉은색 곡식이다. 붉은색은 음기를 쫓는다고 하여 남은 팥죽을 대문이나 구석진 벽에 던지면서 귀신을 쫓아 재앙을 면한다고 “고시내~ 고시내~” 하며 외치기도 하셨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서 들리는 듯하다.붉은 팥은 약효도 크다고 한다. 해열과 산후통증, 부종에도 좋고 이뇨와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하니 올해는 역병으로 고통 받고있는 외로운 취약계층 노인들에게도 팥죽을 갖다 드리며 온기를 느끼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그런데 올해 동지는 음력 11월 7일 초순에 들어있어 ‘애동지’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아이들 피부에 물집이 생겨 나쁘다는 속설이 있어 팥죽을 안 쑤고 팥 시루떡으로 먹곤 했지만 지금과 같은 역병이 창궐한 때에 팥죽 한 그릇씩 나누어 먹고 건전한 마음으로 이겨내 보자.정갈한 동짓상 위에 팥죽과 동치미를 차려 놓고 가족의 건강과 새해의 운수 대통을 빌었듯이 코로나19의 악귀가 국민의 마음과 생활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이번 동지에는 가족 모두 모여 앉아 정성스레 하얀 새알심을 만들고 붉은 팥을 갈아 만든 팥죽을 먹으며 병마를 내쫓고 송구영신을 기원하고 싶다.그리고 동짓날에 따뜻하면 이듬해 질병이 들고, 춥고 눈이 오면 다음 해 풍년이 온다고 했으니, 마침 영하권으로 내려가고 있는 요즈음 흰 눈발 기다리며 날씨가 춥다고 불평하지 말아야겠다.

2020-12-20

삼무(三無)의 자동차 왕국

윤영대수필가저녁 산책을 하며 우현 사거리와 창포 사거리를 걷노라면 퇴근 시간이라 참 놀라운 광경을 본다.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어둠이 깔리는 긴 도로에는 반짝이며 다가오는 전조등과 반대편으로 몰려가며 점점이 줄지은 빨간 미등(尾燈)이 흡사 크리스마스 장식등 같이 아름답게 끝없이 이어져 있다.자동차 홍수의 시대. 언제부터 우리는 자동차 왕국이 되었는가!2020년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는 약 2천400만 대를 넘어 인구 2.1명 당 1대꼴, 1가구 1대의 시대라고 한다. 포항시민을 50만 명이라고 한다면 포항지역에만 20만 대가 넘는다는 계산이다. 나는 88서울올림픽이 치러질 즈음 처음 자가용을 가졌다. 그때만 해도 ‘마이카시대’라는 말을 처음 듣고 그 비싸고 귀한 자가용을 어떻게 집집마다 가질 수 있는가? 그런 시대가 온다니 ‘꿈을 꾼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리에서 자동차의 물결을 보고 있는 것이다.1955년 ‘시발(始發)’이라는 조립 SUV가 처음 나오긴 했지만 1962년 첫 승용차 ‘새나라’를 연간 100대씩을 생산한 것을 시초로 국민의 인기를 차지한 ‘코로나’가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고, 45년 전인 1976년엔 우리 고유의 브랜드인 ‘포니’를 탄생시켰으며 2010년 이후에는 연간 약 400만 대의 생산능력을 가진 세계 5위권에 등극을 했다.차들이 쉴새 없이 지나가는 낙엽 진 거리의 간이 정류소에 앉아 생각에 잠겨본다. 저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자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동차는 철판으로 만들고 기름을 태워 고무바퀴로 굴러가는데…. 우리나라는 지하자원 종류가 많아서 ‘광물의 표본실’이라고 불리지만 원료인 철광석, 원유 그리고 천연고무의 자원은 거의 전무한 데도 자동차 선진국이라니 신기하다.철광석은 거의 북한에 분포하며 호주, 브라질 등지에서 연간 약 7천300만 t을 수입하고 포스코, 현대제철 등에서 고품질의 조강생산을 하여 세계 6위 철강생산국이다. 원유는 그야말로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산을 중심으로 연간 약 10억 배럴 전량을 수입한다. 그러니까 1일 300만 배럴, 즉 150만 배럴 대형유조선 2척이 매일 먼 바다를 항해해 와야 한다. 그것을 잘 정유하여 42% 정도를 자동차 연료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석유수출국이라는 명예도 안고 있다. 또 타이어를 만드는 원료인 천연고무나무밭은 한 곳도 없는 나라. 물론 100% 천연고무가 아닌 합성고무로 만들고 요즘 말썽이 되고있는 폐타이어를 수입하여 재생 타이어를 만들어 사용한다지만 자동차에 필요한 이들 3가지 원료가 우리나라에는 전혀 없는 삼무국(三無國)이다.이들을 전량 수입하여 우리의 뛰어난 산업 기술과 제조 능력으로 오늘날의 중공업 산업을 성공시켜 자동차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아침저녁 도심의 넓은 도로를 꽉 채우며 극심한 정체를 유발하는 자동차 홍수의 현실을 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는 듯하여 앞으로 새로운 연료 방식인 수소차와 전기차의 도래도 기대해 본다.

2020-12-13

잊혀져가는 국민교육헌장

윤영대수필가12월 5일, 다이어리를 넘기다가 ‘아, 오늘이 국민교육헌장 기념일이지.’하고 자세히 들여봤으나 그곳에는 무역의 날, 자원봉사자의 날이라는 표시뿐이다. 알아보니 달력에서 사라진 지 벌써 17년이나 되었다고 한다.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 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통한 국가발전 방안의 추진을 지시하여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위원회를 만들고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12월 5일 선포한 교육지표이다. 당시 자유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기선을 빼앗겼다.”며 부러워했다고 한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400여 자의 이 교육장전(敎育章典)은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의 근본 지표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우리 민족의 전통과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세계 공영의 길로 나아가자는 각오는 7,80년대 학창시절에 외우기도 한 익숙한 문구이다. 학문과 기술을 익혀 자신을 계발하자는 것도 당시 물량적 발전에 몰두하고 있는 국민의 정신을 질서와 신의 등을 기본으로 한 협동 정신으로 뭉쳐 국민의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리라. 또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반공과 민주주의를 실현하여 통일된 조국을 내다보며 새 역사를 창조하자는 취지이다.이제 돌아보니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된 지 50년,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를 발전시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세계 10위권의 경제선진국 대열에 들었고 수출도 연간 6천억 불을 달성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국민교육헌장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노력한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1973년 이후 20여 년간 정부주관 기념일로서 학생들에게는 암기대회도 열고 스승에 대한 공경의 행사도 하며 국민의 가슴에 공감을 일으켰으나 박정희 유신정권의 반공독재 교육의 산물이요 일제시대 교육의 잔재가 남았다는 비판도 받은 듯하다. 그리하여 민주화 이후 암기 강요와 이념교육강화라는 트집을 잡아 폐지론이 대두되어 헌장은 초중고 교과서에서 삭제되어 버렸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1월 기념일도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관련 자료를 뒤져보니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색다른 해석들도 많다. 태어날 때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지 않았는데 국가 건설에 무조건적인 충성과 노동을 강요하며 참여시킨다는 의견도 있고 강압적 주입식 교육의 지침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헌장을 외우면서 고통을 받았다는 회고담도 있으니 이 모두가 그야말로 어이없는 생각들이다.성실한 마음과 몸으로 배우고 익혀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국가 건설에 참여함으로써 세계에 내놓아 남부럽지 않은 융성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봉사한다는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없이 어찌 애국애족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는가. 자꾸만 움추려드는 교육환경 속에서 잊혀져 가는 국민교육헌장을 읽으며 다시 한번 외쳐 본다.‘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2020-12-06

시끄러운 대화방

윤영대수필가대화방은 말 그대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담스러운 공간이다. 예전엔 집에도 사랑방이 있었지만 아파트 문화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지금 가족이나 친구들이 오붓이 모여 얘기를 즐길 수 있는 친숙한 공간은 사라졌다.마을엔 다방이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며 또 음악을 즐기며 도란도란 애인이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곳인데 그나마 카페, 커피숍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이 씨끌벅적 웃음을 날리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유럽의 대화방 역사는 고대 그리스 ‘아고라’와 로마 시대의 목욕탕 겸 휴식공간이 있던 ‘큐비쿨룸’이라고 할 수 있지만 16세기 프랑스로 시집온 메디치 가문의 캐더린 왕비가 이탈리아 귀족저택의 응접실이었던 ‘살로네’를 소개했고, 그 후 랑부이에 후작부인이 귀족들을 초대하며 처음으로 열었던 살롱(salon)이 인기를 얻었다. 주로 정치인, 예술인들이 초대된 대화와 토론의 사교 공간이었고 주인은 여성으로 살로니에르라 했다. 친절과 예의 그리고 정직을 규범으로 했으며, 문학의 보금자리였고 혁명과 근대화 사상을 태동시켰다고 한다.이러한 풍물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다방, 바, 카페 등으로 번져나갔고 급기야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는 21세기 살롱이라 할 수 있는 카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 보이지 않는 SNS 대화방이 우리의 일상 속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모이지 않고도 여럿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서로의 표정을 살피지 않고도 아이콘으로 말뜻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손안에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면 거의 모두가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무언가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며 혼자 히죽 웃기도 한다. 소리 없는 대화다.비대면 대화인 ‘채팅’이라는 수단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더 가깝게 하고있는 것일까? 단체 대화방인 ‘단톡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와 단독으로 하는 것으로 잘못 듣기도 했었다. 이제 나의 휴대폰에도 많은 단톡방이 생겼다. 물론 내가 만든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초대돼 들어간 곳이다. 가족이나 형제들, 그리고 절친 몇 명과의 채팅은 참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 수십 명 심지어는 수백 명이 들어와 있는 거대한 대화방에서는 다 읽을 수도 없고 또 일일이 대답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귀찮아서 나가면 또 불러들이기 때문에 그냥 두어버린다. 새벽에 카톡거리는 소리에 깨곤 했지만 이제는 그 소리는 막아뒀다. 또 정신없이 카톡을 하다 보면 다른 방에 들어가 엉뚱한 실수도 하게 된다. 남의 험담이나 비밀스러운 내용들이 순식간에 알려지게 되는데 지워버려도 상대방의 화면에는 남아있을 테니 난감하리라.아침에 눈 뜨면 폰부터 찾는 게 버릇이다. 그리고 카톡이라는 노란 단추를 누르고 열어보면 수십 개의 방에서 빨간 숫자가 뜬다. 어떤 곳은 열 개가 넘는 대화가 왔다고 치근댄다. 열어보면 반가운 인사말과 짧은 얘기들, 예쁜 사진도 있지만 쓸모없는 정치 이야기랑 사회문제를 막무가내기로 퍼나르고 듣기 싫은 어휘로 두들겨 보낸 것들도 많아 소리 없는 아우성에 정신이 시끄럽다.복잡한 현대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슬기로운 모바일 라이프를 살아가야겠다.

2020-11-29

호미반도 둘레길을 걷다

윤영대수필가지난 일요일 산행을 하려다 산불경계령으로 입산금지됐다는 귀띔에 발길을 돌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갔더니 마침 포항시 랜선 걷기축제가 진행되고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2코스를 같이했다.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2017년 개통된 25km 해안길로 네 코스로 나뉜다. 이 둘레길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도록 바다 위로 데크로드가 만들어져 있고 자연경관을 훼손치 않고 그곳 지형지물인 백사장과 몽돌밭, 갯바위 등을 이용해 다양하다. 임곡, 입암, 마산, 흥환, 발산, 대동배를 지나며 작은 포구의 삶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1코스의 임곡리에 들어서니 낮은 방파제와 담벽에 그려진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길게 이어져 이야기를 보여 준다. 작은 항구를 지나 청룡회관을 올려다보며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으로 올라갔다. 포항시 마스코트 ‘연오와 세오’가 반갑게 맞이하기에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축제 기분을 냈다.2코스 ‘선바우길’ 시작점인 일월대 앞에서 ‘360도 회전 영상촬영’도 체험하고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 입암항에 내려서니 멸치 말리는 냄새가 코끝에 살랑댄다. 마을 끝에 우뚝 선 선바우 앞에서 둘레길이 본격 시작된다. 네 코스 중 데크가 가장 길게 놓여있는 길이며, 조용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물 위를 걷듯 걸으면 연보라색 해국이 피어있는 형형색색 바위들이 신기한 해안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남근바위, 폭포바위, 여왕바위, 소원바위는 자연의 조각품이고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도 새겨 놓았다. 킹콩바위는 갯가에 앉았다. 하얀 바위벽 힌디기를 지나 하선대에 서면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파란 바다가 멀리 포항제철의 영일만 신화를 들려주듯 찰랑인다. 몇 번 걸어 봤지만 그때마다 감탄하는 둘레길이다. 몽돌 길을 걸어 먹바위를 지나 마산리 쉼터에서 막걸리도 한잔했다. 작은 항구엔 엄마아빠를 따라온 아이들도 낚시를 드리우고 건너 방파제엔 텐트도 즐비하다. 비문바위 지나 예쁜 아치형 데크 위에서 미인바위를 보고 전망대도 올라보고 흥환리 해수욕장에 들어서니 캠핑을 하는 부부와 연인들이 행복해 보인다.3코스는 ‘구룡소길’. 발산리와 대동배를 지나는 이 산책로에는 데크는 별로 없으나 바닷물에 발 적시듯 호젓이 걷는 맛이 좋다. 장기목장성비를 보고 바닷가를 한참 따라가다 보면 장군바위가 위엄있게 서 있다. 다시 발산리 항을 지나 자갈길을 가다가 계단을 올라가면 봄에는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를 볼 수 있는 숲길로 이어진다. 좁은 산길이 끝나는 전망대에서 비밀에 싸인듯한 구룡소를 내려다보고 대동배까지 걷는다. 이따금 국도로도 걸어야 된다.다음날 늦게 4코스 ‘호미길’을 돌았다. 까꾸리개 언덕 길에는 서상문 시비와 호미숲 해맞이터 기념비가 있고 독수리바위는 일본실습선 조난비를 염려하듯 날아오를 듯하다. 바다새들의 배설물이 하얗게 덮인 대보항 방파제 따라 갈매기 떼 울음소리 요란한 해변 길 돌며 호미곶등대 소나무숲 속 이육사 청포도 시비와 영일노래비를 읽노라면 어느덧 ‘상생의 손’이 반긴다.해안둘레길이 끝나는 호미곶해맞이광장에 서서 새천년기념관 뒤로 붉게 물든 해넘이를 향해 두 손 모아 나라의 안녕을 빌어 보았다.

2020-11-22

무착륙 관광비행

윤영대수필가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곳이 여행사와 항공사인 듯하다. 그래서 새로운 여행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무착륙 관광비행’이라는 것이다. 항공법상 한 지점을 이륙하여 정해진 노선을 돌고 착륙 없이 다시 이륙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비행을 말한다. 세계항공업계도 ‘목적지 없는 비행’이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이에 국토교통부는 해외에 착륙하지 않고 상공만 비행하고 오는 노선도 국제선으로 분류하고 면세품 쇼핑도 긍정적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니 코로나에 찌든 여행업계도 반색이다.10월 초, 에어부산은 항공 관련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승무원 체험학습 비행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시행하였고, 월말에는 일반 승객을 태우고 두 차례의 무착륙 비행을 선보였다. 대한항공과 다른 저가항공사들도 이를 추진 중이며 점차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아시아나항공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하여 강릉-포항-김해-제주 상공을 돌아오는 ‘한반도 일주 비행’상품을 내놓았다. 초대형 항공기 A380 기종으로 비즈니스석을 비롯하여 20~30만 원 선이었지만 완판되었고 지금까지 4회 운항하여 여행객들의 반응도 좋다.이에 앞서 제주항공이 국내 최초로 ‘비행기 속 하늘여행’으로 1시간 반 정도 우리 땅 위를 반시계방향으로 날며 관광비행을 했고, 진에어도 ‘홍콩여행’ 테마로 인천에서 이륙하여 광주-제주-부산 상공을 돌아오며 탑승객에게 기내식과 홍콩여행 기념품을 주는 상품을 내놨다. 모두 평균 85% 탑승률을 기록했다.이뿐만 아니다. 국내 경비행기 체험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4인 이하의 경비행기는 고도 500피트까지 하강할 수 있어 저공비행으로 관광명소를 관망할 수 있으니 한번 타보고 싶다. 오래전 헬기로 미국 그랜드캐년 협곡을 돌아보았고 열기구를 타고 터키 카파도키아 계곡 위를 떠다녔던 기억을 되살려 보니, 우리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 제주 한라산 백록담, 더 나아가 대마도까지 한눈에 담고 오는 관광비행도 좋으리라.더 나아가 해외 무착륙 관광여행을 하려면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면세품 취급에 대해서는 관세청이 그 범위를 정해야 하고 여행객들을 출국자로 할 것인지의 여부는 법무부가, 또 노선 신설은 국토교통부가 결정해야 한다. 이미 세계 항공사 중에 40여 개가 파산 및 운영중단을 했다고 하니 우리는 현명하게 대처하여 항공사와 여행사 그리고 면세품업계에 숨통을 틔워주자.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비행 루트도 개발하고 기내 이벤트와 서비스의 새로운 방향 모색도 필요하다.그냥 비행장에서 앉아 있는 비행기를 띄워서 코로나에 발 묶여 있는 해외여행 희망자들의 마음을 반이라도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 중 지상의 풍경이나 유적지를 가상현실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행지에 내려 관광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좋겠다. 일부 항공사는 기내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한때 기내식 먹는 것이 취미라고 허풍을 떨기도 했는데 코로나 덕분에 높은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한번 먹어보고 싶다.

2020-11-15

원자력 발전의 두 얼굴

윤영대수필가요즘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을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경제성 평가가 낮게 책정됐다는 말에 아마 진실 공방을 하는 모양이다.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은 1955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으면서 원전기술 연구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1978년 4월 고리원자력 1호기가 준공되어 원자력발전시대를 연 후, 부단한 연구와 노력 끝에 현재 총 24기 2천325만kW 설비용량을 갖추어 세계 6위 원자력 국가의 반열에 들었고 1993년 한국표준형 원전을 완성하여 기술 수준은 세계 3위에 올랐다.그동안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미래의 에너지를 책임질 발전방식으로 확장되어왔으나, 고리1호기는 사용 연한 40년이 지나 영구정지되었고 월성1호기는 작년 12월 폐쇄조치되었다. 그 외 8개 정도의 발전소가 건설 중단 및 백지화 추진 중이고 4기만 건설 중이다. 이렇듯 탈원전 정책이 나오는 것은 아마 우리의 뇌리에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악몽 몇 개가 맴도는 탓일까? 미국의 스리마일, 구 소련의 체르노빌에 이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핵발전 사고’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공포감을 주고 있다.원자력발전량은 연간 약 15만GWh로 국내 발전량의 25%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kWh당 발전단가는 통계마다 다 다르지만 약 50원 미만이고 석탄 70원, 풍력 120원, 태양광 300원 선이라고 한다. 연료소비량을 비교해 보더라도 우라늄 1kg의 발전량은 석탄 3천톤에 해당하는 300만 배이고 석유는 200만 리터에 해당한다. 이렇듯 원자력 발전은 효율이 높다. 그러나 방사는 폐기물의 위험이 부각되면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각광을 받고있는 것이다.설비면적을 비교해 보면 태양광 발전은 원자력보다 73배, 풍력은 200배 정도의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고 한다. 보통 가정용 태양광 시설 3kW짜리가 20제곱미터로 쉽게 말해 6평 정도, 즉 부대설비까지 합하면 1kW당 평균 2.5평 정도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1기당 140~150만kW이니 이 정도를 태양광 시설로 한다면 100만kW에 250만 평, 실제 원전 부지의 20배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1일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5시간이다. 이렇듯 태양광은 저효율이고 넓은 면적을 사용해야 하니 산과 호수 등 자연을 훼손할 우려도 많다.원자력 발전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가 어렵고 사고가 났을 경우 그 피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겠지만 현재와 같이 산업이 고도화되고 생활환경이 커지며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마당에 효율 좋은 원자력 발전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럴 때 원전 비리 사건 등 인재(人災)를 막고 우리의 뛰어난 기술력과 끈질긴 연구력을 모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사고에 대한 철저한 방비로 시설을 안정화시켜 나가며 연관된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의 선도력을 갖추면 좋을 것이다.원자력은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등에 대한 걱정도 줄일 수 있으니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로써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한다.

2020-11-08

요즈음의 이웃사촌

윤영대수필가이웃사촌이란, 옛날 집성촌이 많을 때 이웃에는 사촌들이 많아 길흉사에 서로를 도우며 의존하며 정답게 살아가던 시절의 풍경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가족 수도 줄고 또 도시로 흩어지면서 이웃에는 남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친족들은 명절에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가깝게 사는 이웃이 오히려 혈육처럼 허물없고 매우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말인데, 이제는 이웃사촌이란 말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회적 현실이다.80년대를 지나면서 지방에도 아파트 붐이 일었고 인간미가 정겹던 골목길이 사라져갔다. 아파트가 20층이라면 한 통로만 하더라도 좁은 골목길에 40여 채 이상의 집이 모여있는 큰 마을인 셈이다. 동네 마을은 골목길 오가며 인사도 나누고 담장 너머로 집안 사정도 볼 수 있지만, 밀폐된 아파트 마을은 앞집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관문은 꼭꼭 잠기고 문패도 없어 성도 이름도 모른다. 아기들을 키우며 집을 지키고 이웃과 웃음을 나누던 집안의 여성들도 맞벌이 등으로 집을 비우면 옆집 이웃은 없는 것과 같다. 얼굴을 보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수십 초간, 서로 인사도 말도 없이 내려버린다.한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살았어도 이사가 빈번하여 주민들이 바뀌니 대부분 낯설다. 다행히 오래 살다 보니 터줏대감이 되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분들이 몇 집이 있어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제는 허물없이 대화하며 짐도 들어주고 가끔 바로 아래 선술집에서 한잔하기도 하는 참으로 좋은 이웃사촌이 되었다.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귀엽고 사랑스러워 말을 붙여보고 싶어도 옆의 아빠 엄마가 이상한 눈초리로 볼 것 같고, 아침저녁 밝은 얼굴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무언가 묻고 칭찬하고 싶어도 두렵다. 특히 여학생이 경우 성희롱이 아닌지 의심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교직에 있었다는 배짱으로 한 마디씩 물음을 던지다 보니 학생들도 이제는 먼저 인사를 하곤 한다.요즘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밀폐된 아파트 문화가 낳은 이웃에 대한 서로의 배려 부족이리라. 1970년대 아파트는 주로 5층짜리였지만 그때 친구 집에 갔다가 그의 아내에게 들은 얘기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타지에서 온 신혼부부라 이웃도 없어 남편 귀가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때, 윗층에서 아이들이 뛰고 웃는 소리에 이웃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마음 푸근히 고마웠단다.이웃이 사라진 도시의 아파트 문화, 그나마 있던 반상회도 없어져 이제는 같은 통로의 이웃 사정도 쉽게 듣지 못한다. 옛날은 수평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수직 이웃이라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다. 근래 어느 도시마을생활 인식조사에서 ‘인사 나누는 이웃-5명 이하’가 51.3%로 절반을 넘는다니….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은 일본과 중국인데 사이좋게 동아시아의 번영을 같이 이루어 가면 좋으련만 서로가 층간소음을 내며 신경을 날카롭게 하니 안타깝다.‘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속담을 되새겨본다.

2020-11-01

‘독도의 날’에

윤영대수필가10월 25일 어제는 ‘독도의 날’이다.1900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에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관련 단체 등과 공동으로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전국 단위로 선포했었다. 이것은 일본이 그동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온 것에 대한 경고이자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우리의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은 포항에서 뱃길 258km,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섬이고, 동도와 서도로 이루어져 있는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영토이며 자산이다.영해와 영공을 결정짓는 지리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난류와 한류가 합치는 황금어장에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여름철이면 오징어 떼가 넘쳐나고 겨울과 봄에는 명태가 몰려오며 꽁치, 대구들도 무리 지어 다니고 있다. 해저 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등이 숲을 이루어 해삼, 문어들이 풍성하고 이제는 멸종된 바다사자 강치의 기억을 더듬으며 바다제비, 괭이갈매기, 슴새 등 많은 철새들의 서식 낙원으로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 밑 울릉분지에는 천연가스 부존가능성이 있어 경제적 가치로도 동해의 보물이다.이러한 독도에 일본이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옛날부터 근해에서 자기들이 고기잡이를 해왔고 1905년 시네마현 고시로 다케시마(竹島)라고 불렀으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내용에서 빠졌다는 것을 핑계로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세종실록지리지 등 우리의 고문서와 고종 칙령을 보더라도 얼토당토않는 행위인 것이다. 자기네들의 태정관 지시(1877년)에도 ‘죽도(울릉도) 외 1도(독도를 말함)는 일본과는 무관’함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우리 측의 허술함도 있었겠지만 1994년 배타적 경제수역이 실시되면서 독도 주변이 공동 구역으로 정해졌었다. 사실 전 세계지도의 80% 이상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니 우리도 빨리 외교나 학술발표 등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역사를 보더라도 삼국사기에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었고 이조실록에도 수차례 사람을 보내 지키도록 했었으며 17세기 말 안용복은 일본에 건너가서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왔지 않은가. 이제 홍순칠 대장의 독도의용수비대를 이어받은 독도경비대가 주둔하고 독도 주민도 살고 있는데 아직도 일본은 영유권 고집을 피우고 있다.독도 문제는 일본과의 감정 대립을 넘어 그들의 전략과 속셈을 파악하고 명확한 역사적 자료와 폭넓은 외교력으로 일본의 영유권 야욕을 꺾는 힘을 길러 극일(克日)을 해 나가야 한다.입도신고제로 바뀐 후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들어온다고 하니 ‘독도의 날’을 맞아 해양환경도 지키며 우리의 영토 주권수호에 대한 의지도 길러야겠다.

2020-10-25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윤영대수필가10월은 축제의 계절, 이번 주에는 차가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의 절기가 있어 추위가 시작되고 우리 고장의 산과 들, 거리도 태양에 물든 울긋불긋한 잎새들이 단풍축제를 펼칠 것이다. 보통 이맘때면 체육의 날이니 문화의 날이니 하며 체육대회와 예술공연 등 각종 축제가 신나게 벌어질 텐데 코로나 사태로 조용하니,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추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마음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포항의 가을 축제는 ‘스틸아트페스티벌’이 대표적인데 올해는 지난 10일 온라인 개막을 시작으로 8년간 모아온 177개의 작품을 가을 하늘 아래 펼치고 그 작품들을 담은 ‘포항스틸아트투어’ 앱을 제작하여 알렸다. 여느 때와는 달리 흥겨운 공연과 체험행사를 없애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축제’라는 이름의 신기원을 마련한 것이다.‘하이브리드’란 이종, 혼합이란 의미가 있는데 아마도 여기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뜻하겠지만, 주로 실내 전시공간에서 찬찬히 둘러보는 기존의 작품관람 형태에 열린 공간에서의 산책이나 짧은 여행을 겸한 넓은 의미로 이해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보통 예술작품전은 한정된 공간에서 조용히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포항 스틸아트처럼 철강제품으로 만든 대형 조각작품들은 넓은 실외에서 멀리서 가까이서 두루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고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2020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투어앱을 스마트폰에 깔아서 작품전을 가상으로 둘러 보았다.투어 코스를 보니 ‘운하 올림픽’ ‘철길숲 프사맛집’ ‘꽃길만 걷자’ ‘동화 속의 나’ 등 10개의 주제가 재미있고 걸어서 볼 수 있는 거리인데 10km가 넘는 코스도 있다. 또 20여 개 이상의 작품이 설치된 영일대해수욕장, 철길숲, 포항운하, 오천예술로 등 4곳에는 스틸정원을 꾸미고 시민들로 구성된 안내 도우미 ‘스틸나누미(美)’가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각 코스마다 작품의 사진과 함께 설명이 되어있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고 하니 스탬프 투어도 하며 도우미들의 설명을 들어보는 것도 노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맛이 있으리라. 그리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포항의 상징인 ‘철’이 형상화된 이미지를 한 번 더 가슴에 안아보면 코로나로 찌든 마음이 훨씬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이번 작품전의 주제인 ‘온고지신, 새로운 10년을 향해’처럼 스틸아트 작품에 대한 재인식을 시도하여 철강도시 포항의 이미지에 예술도시로의 꿈도 아우를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다.포항에는 큰 시립미술관도 있고 문예회관도 있어 계절마다 문화예술의 향기가 퍼져나가고 있지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전시공간이 되어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다. 그리고 스틸아트 작품들의 소재가 장기간 야외전시에 적합하니 관광 테마로서도 시민 정서순화에도 더할 나위 없겠다.코로나19가 덮어버린 축제의 계절을 그냥 기죽어 있지 말고 밝은 마음으로 길을 걸으며 ‘스틸아트 보딩패스’를 만들어 작품과 사진도 찍어 SNS이벤트에도 참여하며 처음 들어보는 ‘하이브리드 축제’의 뜻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2020-10-18

한글은 위대하다

윤영대수필가한글날은 국경일이다.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야 하는데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10%도 되지 않는다. 개천절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국경일로서 공휴일을 보내며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겨 본다.한글날은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하여 제1회 ‘가갸날’로 기념식을 가졌었고 2년 후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을 ‘한글’이라고 부르면서 ‘한글날’이 되었다. 그 후 1946년에 10월 9일로 정해졌고 1970년 대통령령으로 공휴일이 되었었는데 1990년 ‘노는 날이 많다’는 기업들의 볼멘소리에 국군의 날과 함께 제외됐다가 2006년부터 국경일로 격상되었으나 쉬지는 않았다. 그리고 2013년 법정 공휴일로 정해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그러니 그냥 공휴일로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는 고유한 문자인 한글을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으로 이날을 기념하듯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짧은 글이라도 한번 써 보내면 좋지 않을까.세계에는 3천여 개의 언어가 있고, 문자는 100여 개 정도라고 하지만 우리 한글과 같이 자음과 모음이 있는 알파벳 부류에는 18종류뿐이라 한다. 여기에 한글은 1446년 세종대왕이 반포했다는 역사를 알고 있는 유일한 문자이며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소리 내는 입 모양’을 따른 문자이다.각국의 언어학자들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고안된 문자체제’ ‘한글의 탄생은 세계문자사의 기적’ ‘위대한 지적 성취’ 등으로 극찬하고 있다. 펄벅 여사도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단순한 글자이다. 24개의 부호가 조합될 때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한글은 무엇보다 학습의 용이성과 사용능률이 뛰어나서, 특히 요즘과 같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송신하는 자판의 효율성을 보더라도 단연 최고다. 자음 14자, 모음 10자이지만 전화번호판과 같은 10개의 버튼으로도 처리할 수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전 세계의 문자 중에서 눈감고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글자는 한글이 유일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엄지손가락 사용법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어제 유튜브에서 신기한 글을 보았다. 카자흐스탄 동전에 한글이 새겨져 있다는 말에 설마(?) 하며 찾아보았더니 ‘단군전’이란 한글이 새겨진 기념주화였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사용하고 요즘 K-팝, 한국드라마 등으로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어 문화 강국으로의 나아감에 그냥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우리말과 함께 우리 문자 ‘한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큰 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근래 들어 각종 이름의 표기와 우리말에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음도 깨우쳐야 한다.한글은 문자와 소리가 일치하여 컴퓨터의 음성인식률이 높아 IT기술과 융합하는데 아주 유리하다. 쉽고 아름다운 우리 한글을 더욱 연구하여 보다 편리한 문자생활을 이끌어 나가고, 문화 수출의 순풍이 불어오는 세계의 하늘에 태극기를 높이 달자.한글은 위대하다.

2020-10-11

보고? 상황 좀 더 보고 하지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이번 추석은 을씨년스럽게 보냈다. 혈육 간 정 나누기 좋아하는 민족의 최대 명절인데 부모와 조상을 찾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효도였으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일을 많이 겪게 되는 요즘이다.한가위를 앞두고 우리 공무원 한 사람이 반도 한 쪽 땅에서 총살을 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아직도 같은 민족이라고 감상에 젖어야하는지?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당혹스럽다. 최근에 드물게도 같은 일을 두 번 경험하게 된다. 세월호의 시간, 당시 대통령 행적을 두고 아직도 논란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번에 우리 공무원 한 사람이 총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사건에 대통령의 시간을 두고 비슷한 논란이 쌓여가고 있다. 함정이 출동하고 국가안보실 참모들이 대응태세에 돌입한 상황임에도 정착 최고 사령탑인 대통령에겐 장시간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안전의 최후 보루이자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중차대한 시간에 보고를 받지 않았거나 지연되었다는 것은 어떤 사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일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두 가지로 추론해본다.먼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참모들의 안이한 판단 아닐까? ‘이 정도의 상황을 심야시간에 곤히 주무시는 대통령을 깨워서야 되겠느냐! 불충스럽게’ 다음은 보고 받는 사람의 평소 태도에 대한 참모들의 생각이다. ‘VIP께서는 심야에 잠을 깨우면 싫어하시니 어지간한 일은 아침에 하는 게 낫다’ 둘 다 문제다. 초임간부시절 상황근무를 하면서 상황보고에 대한 애로를 많이 겪었다. 경찰은 24시간 비상대기 조직이다. 여느 공무원들의 숙직근무와 달리 야간 상황실은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관내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단위 지휘관인 경찰서장에게 아무리 심야시간이라도 내선전화로 취침중인 경찰서장을 깨워서 보고하고 지침을 받는다. 긴급한 상황임에도 잠을 깨운 상황요원을 타박하여 보고를 위축시킨 지휘관들이 있었다. ‘머 이런 일로 잠을 깨우고 보고하느냐! 아침에 하지’라는 꾸중아닌 꾸중을 듣게 되면 다음부터는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보다는 보고하느냐 마느냐 여부로 고민에 빠진다. 안하면 보고누락과 지연으로 질타를 받고 하면 하찮은 상황으로 잠을 깨운다며 핀잔을 받게 되니 어지간히 힘든 결정이다. 어느 경찰서장이 부임 일성으로 야간 상황근무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아무리 심야시간이라도 나를 깨워라’ ‘지휘관의 잠을 깨우는 일에 위축되지 말라’고 했다. 이후 심야 보고여부에 대한 부담감 없이 일을 처리했던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 보고를 받는 사람의 보고받는 태도와 인식이 중요하다. 보고자에게 보고외적인 부담을 주지 않아야 보고는 편히 이루어진다.우리 대통령께서는 그러시지 않겠지만 깨우지 않아서 보고받지 못했다는 변명을 하면 “국민이 위태로울 때 목숨을 거는 왕이나 대통령을 겪어보지 못했다”고 나훈아에게 또 한소리 듣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 자주하는 정부인데 국민 위해 목숨 거는 대통령, 이것도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

2020-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