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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같지 않은 설날

등록일 2021-02-14 19:45 게재일 2021-02-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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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수필가
윤영대수필가

설 연휴도 지났다.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설을 설 같지 않게 보내고 나니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말에 주소지가 다를 경우라고 해서 아들 내외도 딸도 오지 않았다. 그들의 직장에서 에둘러 고향 가지 말라고 하는 듯해서 오지 말라고 했었다.

아들이 오면 같이 목욕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얘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평소에도 목욕탕 감염 우려에 가지 말라고 자식들이 말렸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와서 우리 부부 둘이서만 설 차례상을 준비했다. 뭔가 허전했다.

섣달 그믐날 까치설날엔 어린이들은 설빔으로 갈아입고 어른들은 묵은세배 한다며 이웃들을 찾아다녔으나 올해는 갈 곳도 없다. 또 ‘그믐날 밤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에 졸면서 밤샘하려 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늦게까지 휴대폰으로 보내오는 연하 인사에 나 또한 비대면 감사말을 보낼 뿐이었다.

‘설’은 ‘낯설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여태 살아오면서 올해와 같은 이런 분위기의 설날은 처음이다. 참으로 낯설은 날이다. 또 ‘선날’ 즉 ‘새로 시작하는 날’의 뜻도 있다 하며 음력 정월 초하루를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초(歲初)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맞는 새해의 첫 아침에 마음 정결히 하여 현관 바닥을 쓸고 닦고 문 바깥도 말끔하게 청소하여 새롭게 마음을 세우고 한 해의 다짐을 해보았다. 신정-구정의 오랜 실랑이도 있었지만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내려오는 세시풍속은 버릴 수 없어 30여 년 전 ‘설날’로 정착하여 3일간 휴일을 즐기고 있다.

‘설’은 또 ‘삼가다’의 옛말 ‘섧다’에서 어원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신일(愼日)이라고 하는데 코로나 역병의 창궐로 온 나라가 걱정 속에 모이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신일의 이름 그대로 몸을 삼가고 사리며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자식들이 오리라 생각하고 며칠 전부터 장만했던 음식들을 많이 줄여 정갈하게 차례상을 차렸다. 혼자서 향 피우고 술 따르고 떡국 한 그릇 올려 조상께 절을 하니 가가례(家家禮)의 절차다. 예년 같으면 차례 끝내고 음복하고 세배를 받으며 덕담하고 세뱃돈을 주었으나 올해는 오지 못한 자식들과의 스마트폰 영상통화로 세배를 받았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세뱃돈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언택트 설명절 보내기, 참 희한한 풍속도다.

민속놀이도 점점 그 맥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데, 세상의 변화로 많은 세시풍속이 퇴색되거나 단절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어릴 때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 꽹과리 두드리며 마을을 도는 지신밟기며 들판에서 손수 만든 연날리기도 했었다. 연을 날리며 즐기다가 대보름 전날에 연줄을 끊어 날려버리곤 했는데, 코로나는 태양 표면의 불꽃 이름이니 흰 꼬리연에 크게 그려 태양을 향해 ‘액막이 연’이나 날려볼까. 널도 같이 높이 뛰어도 보고, 여럿 모여 윷놀이도 즐기고, 복조리도 걸어두어 한해의 행운을 담아보고도 싶은데….

설날의 적적함에 가족의 정을 맛보려고 남아있는 떡국을 아내와 둘이서 나눠 먹으며 ‘설도 설 같지 않은 설’을 보내는 참 낯선 명절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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