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포항시립미술관을 찾았다. 화창한 늦봄에 환호공원 둘레길 산책도 겸해서였다. 주차장에 내리니 미술관의 ‘poma’ 표지가 연오랑세오녀 일월 신화를 품은 영일만 일출의 태양처럼 안내를 한다. 입구에 올라서면 은빛 철사로 엮은 사슴 조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맞는다. 이팝나무 심고 있는 작업이 한창인 공원의 미술관 앞 인공연못에는 하얀 대리석 어머니상이 한쪽 젖가슴을 들어낸 채 고뇌에 찬 모습으로 삶의 어려움을 얘기하듯 처절한 모습이지만 뒷 유리창에 비친 환호공원의 아름답고 포근한 정경은 미술관을 더욱 곱게 감싸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은 2009년 12월 22일 개관하여 철(steel)을 테마로 한 세계 유일의 스틸아트 미술관으로 포항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인 철을 통해 예술적 가치의 확산을 위한 환경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신철기 시대(Neo-iron Age)’와 미술관이 있어 행복한 도시, 포항을 소망하고 있다.
미술관 전면에는 새로 막을 연 전시회의 현수막 3개가 커다랗게 걸려있다. 세르비아 작가 스체파노비치의 ‘한 화가의 증언’과 2020년 장두건 미술상 수상 작가 김은솔의 ‘기억의 파동’ 그리고 최근의 소장품전 ‘20이일(異日)’을 알리고 있다. 토요일이라 가족 관람객이 눈에 띄고 아이들과 같이 온 젊은 부부들의 웃음이 환하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제주산 검은 화산암으로 된 높다란 로비 벽면이 예술적이다. 1전시실에는 주한외국공관 협력 전시 프로그램의 첫 번째로 세르비아 작가의 그림인데 검은색, 붉은색 등으로 그려진 포스터 같은 작품들이다. 가상현실과 패권세력의 선동, 자본주의 광고 등 지금 세계의 광기를 보여 준다. 안쪽 4전시실에는 최근 수집한 조각 소장품 6점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스틸아트다. 상반신만을 왼팔로 버티고 있는 작품을 보니 괜히 팔에 힘이 들어간다.
2층으로 올라가 초헌 장두건 화백의 드로잉 작품들을 둘러보고 2전시실로 들어가니 파동 치는 영상과 찢어질 듯한 잡음을 통해 포항 지진과 코로나19의 재난 상황을 작가의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이 어려워 매주 토요일 있다는 도슨트 투어를 찾았지만 6월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아쉬웠다.
미술 자료를 모아둔 도서실도 있어 기웃거려보고 입구 쪽의 카페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환호공원에 놀러 나온 소풍객들의 정겨운 모습들 속에 장난꾸러기 아기들의 손을 잡고 거니는 할머니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월 마지막 목요일 오전에는 로비에서 ‘미술관 음악회’가 열려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온몸으로 예술의 전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1년 넘게 연주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커피 한잔 마시고 나와 20여 개의 스틸아트 작품이 있는 공원 잔디밭 길을 걸어 본다. 숲속 정자엔 젊은 남녀의 모습이 앙상블이고 공원 분수대 마당과 하얀 돛 닮은 천막 밑의 가족 모임은 코러스이다. 야외공연장도 있고 인공폭포도 시원한 물줄기를 내린다. 숲속 산책길을 천천히 올라 둘레길의 산마루 전망대에 서면 영일만의 푸른 물결은 자연의 심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