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는 갯지렁이가 산다. 갯지렁이는 발도 많지만, 그 종류도 다양해서 이름도 많다. 참갯지렁이,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 바위털갯지렁이, 털보집갯지렁이, 괴물유령갯지렁이. 우와 정말 많다. 쭈꾸미와 낙지 같은 연체동물도 뻘 깊숙한 곳에 산다. 그런가 하면 새우, 해삼, 개불, 말미잘도 있고 굴, 홍합, 참고둥, 큰구슬우렁이, 보리새우, 대하, 밀새우, 꽃게, 민꽃게, 밤게, 칠게, 농게, 쏙, 쏙붙이, 따개비, 바위게, 아무르불가사리, 별불가사리도 있다. 쉽게 볼 수도 있고 잡을 수도 있는 것은 백합, 피조개, 꼬막, 바지락, 가무락, 맛조개, 동죽과 같은 조개 종류다. 흠,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나는 오늘 조개를 잡으러 갈 생각이다. 백합 같은 조개가 아니라면 서해안 인근에서 바지락, 동죽, 맛조개 같은 것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조개는 날씨가 따뜻할 때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은 썩 좋은 시기는 아니다. 그래도 조개가 잡고 싶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날이 좀 차가우니 낮 시간에 조개를 잡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무조건 낮에 간다고 조개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때표를 잘 보고 움직여야 한다.인터넷에 `물때표`를 검색하면 되는데 이것은 밀물과 썰물이 드는 시간을 알려준다. 표가 복잡해 보인다고? 그렇지도 않다. 이것저것 볼 것 없이 우선 물이 빠지는 시간을 먼저 체크하면 된다. 그 다음 괄호 안에 있는 숫자가 `0`에 가까운 때를 찾아야 한다. `0`에 가까울수록 물이 많이 빠져나가니까 바다 쪽으로 쑥 들어가서 조개를 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래도 조개를 잡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너무 믿지는 마시라.조개를 잡을 때는 세 발이나 네 발로 된 갈퀴를 사용하면 된다. 호미처럼 생긴 갈퀴면 될 것 같지만, 사용하다보면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아플 것이다. 서서 사용할 수 있는 쇠스랑 같은 것이 좋겠다. `레기`라고 불리는 농사용 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갈퀴에 망을 달아 놓은 것도 있다. 모래는 빠져 나가고 조개는 그 망에 걸린다. 정말 교묘한 도구다.그런데 참 신기한 조개잡이 도구도 있다. 꼭 쟁기를 닮았는데, 소 대신 사람이 끌고 다닐 수 있는 일종의 휴대용 쟁기다. 삽이 달려야 할 자리에 `ㄷ`자 모양의 날이 달려 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그레`, `끄레`, `글궤`라고 부른다. 물론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갯벌에 끌고 다니다보면 날이 조개와 덜커덕 부딪히게 된다.바로 그 자리에 조개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파는 곳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바닷가 근처 시장에서나 파는 도구인가 보다.아참, 양동이를 하나 챙기는 것이 좋겠다. 백합 또는 상합이라 불리는 조개는 해감을 안 해도 되지만 꼬막, 바지락, 동죽 같은 것들은 해감을 꼭 해야 한다. 양동이에 바닷물을 떠 조개를 담가두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소금을 풀어서 해감을 시키기는 힘들다. 소금의 농도를 맞추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조개가 죽으면 일일이 내장을 다 떼어내는 수고를 들여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양동이도 사고 갈퀴도 샀다면, 이렇게 된 거, 이참에 가슴장화도 하나 구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가슴장화는 장화와 바지가 일체형으로 되어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가슴까지 오는 장화다. 이 정도 입어줘야 아하, 조개 잡으러 온 사람들이구나, 할 거다. 그리고 옷을 버리지 않고, 무엇보다 힘들면 갯벌에 털썩 주저앉을 수도 있으니 정말 꼭 필요한 옷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팁인데 기왕 가슴장화를 사려면 망사 내피가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습기도 안 차고 몸에 달라붙지도 않는다.갯벌에서 조개를 잡으려면 이 정도 장비는 챙겨야 한다. 이건 조개를 잡는 사람의 올바른 예의되시겠다. 그럼 준비가 된 건가. 그럼 조개를 잡으러 가볼까? 아니지, 선크림을 바르고, 선크림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목이랑 얼굴을 목도리로 싸매고, 모자도 쓰고, 선글라스도 짠하게 끼고, 마지막으로 고무장갑까지 챙기면 준비 끝! 이제 정말 출발이다.그런데 이건 너무 과한가? 물론, 사서 먹는 것이 더 싸겠다거나, 괜한 수고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막상 조개를 잡으러 가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 조개잡이가 나름 운치가 있어서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바닷바람이 선선히 불어온다. 바람을 따라 더 멀리로 내몰린 바닷물이 찰박찰박 소리를 낸다. 갈매기는 한가롭게 선회를 하고, 때로 우리 곁에 와서는 끼룩끼룩 하고 운다. 갈퀴로 갯벌을 긁을 때 달그락 하고 조개가 걸리면 손맛도 꽤나 쏠쏠하다. 어떠신가, 이만하면 당신도 조개를 잡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신지?▲ 공강일 서울대 강사실컷 조개잡이 전문가처럼 말했지만, 내가 조개를 잡으러 갔을 때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심지어 간조시간도 제대로 보지 않고 가는 바람에 완전히 깜깜해지고 나서야 물이 빠졌다. 더 이상 조개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져서야 물이 빠졌으니 완전 허탕을 친 셈이다. 갯벌 안쪽으로 갈수록 조개가 많다는 것도 모르고 해안가 근처에서 삽질을 했다. 왜 하필 삽을 가지고 왔는지, 무슨 김장독이라도 묻을 요량이었나, 아무리 깊이 파도 조개는 나오지 않았다. 기껏 조개를 잡아 왔지만, 해감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먹지도 못했다. 이런 실패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조개를 잡으려면 다양한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조개를 잡지 못한 것이 억울해서 한 번 더 가야겠다. 그 땐 정말 잘 준비를 해가려고 한다. 그래서 쪄먹고 구워먹고 삶아 먹고 회로 먹고, 조개 잔치를 벌일 것이다. 사실 조개를 잡는 것보다 놀러 갈 생각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2017-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