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공조어 원자상구(太公釣魚 願者上鉤)
중국인들은 `헐후어`를 사용한다. `헐후어(歇後語)`란 “뒷부분의 직접적인 표현을 말하지 않고 `쉼`으로써, 앞부분만으로 그 뜻을 짐작케 하는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말놀이”로 설명되곤 한다. 그보다 이것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고사를 전거로 삼아 만든 관용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태공조어 원자상구(太公釣魚 願者上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글자대로 풀이하면, “태공이 낚시를 하니 (죽기를) 원하는 자는 물어라”라는 뜻이나, 실제로는 “자진하여 올가미에 걸리다” 또는 “꾐에 넘어가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태공조어 원자상구`는 축자적 의미와 관용적 의미의 간격이 크다. 그래서 비약적으로 느껴지지만, 여기에서 지칭하는 `태공`이 누구인지를 알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태공`은 우리가 잘 아는 강태공이다. 그리고 강태공은 낚시로 유명한 사람이긴 하나 물고기 잡는데는 오히려 젬병인 사람이다. 사람들은 강태공이 미끼도 없이, 바늘도 없이 낚시를 하였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미끼는 없었지만 바늘은 있었고, 바늘이 있긴 했지만 그 바늘이 곧았다고들 한다.
강태공은 물고기를 낚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기다렸다. 결국 문왕을 만날 수 있었고, 문왕은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즉시 국사(國師)로 삼았다. 문왕이 죽은 후 무왕이 왕위를 승계하였고, 다시 강태공을 국사로 삼았다. 강태공은 무왕을 도와 상나라 주(紂)왕을 내쫓고 주(周)나라 건설의 공을 인정받아 제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정리하자면, `태공조어 원자상구`에서 태공은 강태공이며, 그가 한 낚시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곧은 바늘 낚시`와 같은 `바보 낚시`였다. 물고기를 잡을 마음도 없는 강태공의 낚시에 물고기가 걸린다면, 그 물고기는 틀림없이 스스로 낚시에 걸리는 `바보 물고기`일 것이다. 이런 물고기처럼 남에게 기꺼이 이용을 당하는 사람을 일컬어 `태공조어 원자상구`라고 한다.
△곧은 바늘 낚시의 출전(出典)
그런데 궁금하다. 정말 강태공은 `바보 낚시`를 한 것일까, 그가 이런 종류의 낚시를 했다면 그 출전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강태공의 낚시 이야기가 `여씨춘추`나 `사기`에 있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여불위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여씨춘추`에는 강태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태공망(太公望)은 동이(東夷)의 사(士)로서 온 세상을 안정시키고자 바랐지만 자신의 주군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문왕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서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관망하였다.”(`효행람제이(孝行覽第二)`) (`태공망`의 `태공`은 문왕의 아버지 `계력`을 말하며, 계력이 강태공을 만나고자 오래도록 기다렸다고 해서 이와 같이 불렸다고 한다.) `여씨춘추`에서 강태공의 출신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고 있을 뿐 낚시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사마천의 `사기`는 이렇게 전한다. “여상(呂尙, 강태공의 이름)은 일찍이 궁핍했고 나이도 아주 많았던 듯한데, 낚시질을 하면서 주나라 서백(문왕)을 만나고자 했다. …중략… 이에 주나라 서백이 사냥을 나갔는데 정말로 위수 북쪽에서 태공을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매우 기뻐 하였다.” `사기`에서 역시 강태공의 낚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후진(後晉) 때 기괴하고 음란한 이야기를 모은 `습유기(拾遺記)`(10세기)에도 강태공의 이야기가 있긴 하나, `사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강태공의 낚시 이야기를 얻어 들은 것일까? 이 이야기는 원나라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무왕벌주평화(武王伐紂平話)`(12세기)라는 소설에 실려 있다. 강상(姜尙) 즉 강태공은 위수에서 곧은 바늘에 미끼도 달지 않고 낚시를 했다. 심지어, 수면 위로 낚시대를 들어 올리고선 “목숨을 버릴 놈만 물 위로 올라와 물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姜因命, 守時, 直鉤釣渭水之魚, 不用香餌之食, 離水面三尺, 自言曰, “負命者,上釣來”). `무왕벌주평화`는 후에 삼국지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던 명나라 때의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14세기)에 영향을 주었고, 이를 통해 강태공의 곧은 바늘 낚시 이야기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나라를 낚는 낚시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한 글쓰기 방식 중에는 사물을 의인화한 `가전체 소설`이라는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 임춘이 지었으며 돈을 주인공으로 한 `공방전`, 또 술을 의인화한 이규보의 `국선생전`이 있다. 이 중에 여름에 끼고 자는 `죽부인`을 소재로 한 이곡의 `죽부인전`도 있다. 이 짧은 소설에는 강태공이 왜 `곧은 바늘 낚시`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적고 있다.
죽부인의 먼 윗대 할아버지뻘 되는 간(竿)이, 강태공과 함께 위수로 낚시를 가게 되었다. 강태공이 바늘을 휘어 갈고랑을 만드는 것을 보고 간이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큰 낚시질을 할 때에는 갈고랑이 없이 한다고 하였다. 작은 것을 낚느냐 큰 것을 낚느냐 하는 것은 꼬부라진 갈고리를 매다느냐 매달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갈고리 없는 낚시를 해야만 나라를 낚을 수 있지, 갈고리 있는 낚시를 하면 고작 물고기나 잡을 뿐이다.”라고 했다. 태공이 간의 조언을 따랐고, 그 결과 제후에 봉해질 수 있었다(竿曰, “吾聞大釣無鉤, 釣之大小在曲直, 直者可以釣國, 曲者不過得魚也.” 太公從之, 後果爲文王師, 封於齊).
`간`은 대나무로 만든 낚시대를 말한다. 낚시대는 살기 위해 필요한 도구지만 죽부인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불편한 정도의 물건이다. 낚시대가 생존도구라면, 죽부인은 편의도구다. 그런 점에서 죽부인이 더 후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간은 죽부인보다 훨씬 윗대 조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 낚시꾼의 대명사인 강태공을 불러와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시시껄렁한 우화 같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솜씨가 무척 교묘하다.
갈고리 없는 낚시, 즉 곧은 바늘 낚시를 할 때 나라를 낚을 수 있다는 말은,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 대한 조언일 것이다. 사사로운 몸가짐과 남을 속이려는 마음으로는 결코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한동안 조용하던 나라가 청문회로 시끌벅적하다. 청문회의 후보자들이 그동안 굽은 바늘을 사용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그 바늘을 버려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로 검증하는 사람들 역시 곧은 바늘을 사용하여 국가를 위해 온힘을 쏟길 진심으로 원하는 후보자를 낚아 올려야 할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