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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이야기

등록일 2017-04-14 02:01 게재일 2017-04-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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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조망에 달린 리본은 바람에 나부꼈다. 노란 나비처럼 날아오를 듯 했다. 철조망 너머로 모로 누운 배가 세월호다. 세월호에는 세월이 슬었지만, 아직 배에는 아홉 명이 남아 있다. 이들을 미수습자라 부르고, 그들의 가족을 미수습자 가족이라 부른다. 저들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를, 그렇게 아픈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철조망에 달린 리본은 바람에 나부꼈다. 노란 나비처럼 날아오를 듯 했다. 철조망 너머로 모로 누운 배가 세월호다. 세월호에는 세월이 슬었지만, 아직 배에는 아홉 명이 남아 있다. 이들을 미수습자라 부르고, 그들의 가족을 미수습자 가족이라 부른다. 저들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를, 그렇게 아픈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응어리(되풀이 되는 이야기의 덩어리)

누구나 가슴에 응어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아버지에게는 삼십 여 년 전의 화재 사건이 그러하다. 대구 서문시장에 집과 가게를 장만해서 이제 살만해졌을 때였다고 한다. 화재보험을 들까, 굿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굿을 했다고 한다. 굿을 하고 불과 일주일도 안 되어 불이 났단다. 다 타고 남은 것은 밀가루 한 포대와 거기에 들어 있던 돈 7천원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지금도 미신이라고 하면 학을 뗀다.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왜 하필 그 시점에 불이 났는지, 왜 그 불이 아버지의 집으로 번졌는지, 왜 화재보험을 안 들고 굿을 했던 것인지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이해할 수 없나 보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혹시라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복기해 보는 것 같다.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 이야기는 그런 것들을 수긍해가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응어리란 되풀이되는 이야기 덩어리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십 년도 훨씬 지나서다. 너무 아픈 이야기,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저린 이야기는 하기 어려우며, 분분한 마음이 가라앉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아닌 말로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화재로 채 백일이 되지 않았던 내가 잘못 되기라도 했다면 아버진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일이 없어 아버지도 나도 다행이다.

다행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몇 년 전 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경험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 일은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졌다. 배가 침몰했고, 선장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승무원은 구했지만, 승객을 다 구하지는 못했다. 295명이 희생되었고, 9명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4월 11일, 참사 1091일, 세월호는 육지로 올라왔다.

△공감과 배려

지난 8일 목포신항에 갔다. 거기엔 뭍으로 온전히 올리지 못한 세월호가 모로 누워 있었다. 그 전날 한 국회의원은 1천억원이 넘게 든다며 세월호 인양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그는 “6·25 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 12만5천명의 유해를 아직 못 찾고 있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9명의 시신을 1천억원을 넘게 들여서 찾느냐”고 반문했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꽤 많다. “내 아이가 만약 미수습자라면 국가를 위해 수색을 깨끗이 포기하겠노라”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인양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 그 1천억원이 넘는 돈이 우리의 세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단지 9명의 시신을 찾기 위해 그 많은 혈세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세월호 인양은 소수보다 다수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공리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익을 위해 개인이 불이익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인양되긴 했지만, 인양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두고두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세월호가 인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2000년 이후 침몰한 선박 중 7천t급을 기준으로 보면, 15건 중 14건은 인양이 이뤄졌다”며 당연성을 강조하거나 침몰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여 다음에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관련지어 생각해보자는 의견이다. 아무리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많은 국민이 원하는 일이라면 국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의 60% 이상이 세월호 인양을 원했다. 정부가 국민을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조정하고 조율해 나가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 토대일 것이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물론 1천20억원은 너무 많다. 구체적인 액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뒤흔든다. 그런데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 그 일의 중요성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여전히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미수습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내가 목포신항에서 만난 분은 은화 어머니와 다윤이 아버지였다. 그분들은 1천일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식의 시신이라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 앞에서 목 놓아 운다. 은화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망자를 보내는 것처럼 은화를 그렇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실종자, 미수습자 가족이라 불리는 것이 가장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기에 실종자가 있는 분이 있다면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은화 어머니의 배려는 세심하고 깊었다.

은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인양의 여부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이므로, 세월호에 남은 그들 역시 사람이므로, 그 미수습자를 기다리는 가족 역시 사람이므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그 돈을 쓸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인간을 위해 쓰여 질 때, 그것이 돈의 가장 의미 있는 사용이 아닐까, 정말 돈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아홉 명과 남겨진 가족에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월호가 인양이 되었으니, 아직 발견되지 못한 아홉 명을 빨리 찾을 수 있길 바란다. 그들의 가족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가슴 속 풀리지 않을 응어리가 더 단단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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