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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험이라는 자유 혹은 한계

△왜 경험을 통해선 진리에 닿을 수 없는가`부분과 전체`는 하이젠베르크라는 물리학자의 삶과 그의 삶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진 토론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토론은 친구들과로부터 출발해서 당대 물리학의 선구자였던 보어나 아인슈타인 등 과학, 정치, 문화, 예술 등 하나의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의 논의는 국지적인 부분에서 시작하지만 항상 전체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하여 부분과 전체는 경계가 있으면서 동시에 없기도 했다.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토론은 고등학교 친구인 쿠르트와 로베르트가 벌였던 토론인데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쿠르베에게 원자에 호크와 고리를 그려 분자의 결합을 설명하는 물리학 교과서의 그림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자를 이해하려다보니 엄연한 자연법칙의 결과를 무시하고 임의적으로 호크와 고리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쿠르트는 설사 원자에 호크와 고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얻은 결과를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또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대화에 시와 철학에 관심이 많은 로베르트가 끼어들어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결정짓는다고 비판한다. 그들의 토론은 처음에 원자에 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인식론 전체에 관한 문제로 확대되어 간다.로베르트는 경험을 통해서는 진리에 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경험을 통해서는 진리에 닿을 수 없는 것일까? 우선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정된 경험을 통해서 내린 것은 가설일 뿐 진리가 될 수 없다. 이것이 귀납추론에 관한 흄의 비판이었다.칸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인간은 이미 경험을 통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은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은 경험이라는 거울에 비친 환영이다. 경험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깨끗한 거울이 아니라 얼룩이 묻은 더러운 거울이다. 그래서 여기에 아름다운 꽃을 비추더라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추한 꽃이다.경험으로 진리에 다가설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리에 닿을 수 있는 것일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인식은 경험에 의해 더럽혀져 있다. 하지만 원자는 우리의 경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험과는 무관한 세계에 존재하는 원자를 인식하거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경험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어찌 되었든 그 경험 속에서 대상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대상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런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하였다 하더라도 그 인식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된 어떤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경험은 한계이자 동시에 자유다.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며 경험을 사용할 때 대상은 왜곡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의 삶 전반에 걸쳐 지속된 고민이었으며 끊임없는 토론의 핵심 주제였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의 산책을 통해 그 극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보어는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으로써 차츰 더 예리한 빛에 조사되기를 기대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경험의 축적 속에서 원자 안의 이와 같은 비직관적 현상들도 어떻게든지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보어와의 대화에 대해 “내 학문적 발전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한 바 있다.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경험을 토대로 원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경험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하여 “새로운 경험의 예리한 빛”으로 원자를 사유하는 일. 다시 말하자면 고전물리학의 선입관에서 벗어나는 일을 의미하며, 원자를 인간의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의 수준에서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속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이 우리의 경험과는 다른 세계 즉 인과율의 수준을 떠나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1927년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했다.△작은 문제들과 크고 거대한 문제이 책을 읽으며 이 천재적인 하이젠베르크에 시샘을 느겼지만, 그나마 만만해보였던 부분은 여기다. 하이젠베르크가 수리물리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조머펠트 교수를 방문하는 장면 말이다. 여기서 그는 “사소한 문제들보다는 그 뒤에 가로놓여 있는 철학적 문제에 훨씬 더 흥미를 느낀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머펠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그러나 학생이 이론물리를 한다 하더라도, 학생에게 별로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작은 문제들도 또한 세심하게 다뤄야 합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플랑크의 양자론과 같은, 철학에까지 미치는 큰 문제를 다루는 데서도 초보를 넘어선 사람들이 해결해야만 하는 작은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더 작은 일을 세심하게 해 나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을 들은 하이젠베르크는 몹시 실망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늘 들었던 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영역에서 아직 활동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 그 실망은 더욱 컸을 것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하이젠베르크가 실망하는 모습은 우리를 적잖이 안심시킨다. 우리 역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지난하고 지루한 과정을 건너뛰어 곧바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노래로 치자면 쉬운 곡보다는 남들이 부르기 어려운 곡을 멋 떨어지게 부르고 싶고, 스케이팅으로 치자면 트리플 악셀만을 연습하여 갈채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다. 무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무술을 배우는 과정이다. 바로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긷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체력을 쌓아 간다. 기본을 충실히 쌓을 때 비로소 무술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천재도 그런 지난한 단계를 밟아나갔던 것이다.그러니 지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남들도 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실망할 일은 없다. 더 작은 일을 세심하게 처리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과 멋있거나 위대한 업적은 결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사소한 일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도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업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참 다행이어라.

2017-12-08

이윤과 이익에 관한 에피소드

△장면 하나, 맹자와 양혜왕`맹자집주`라는 이 엄청난 고전의 제일 첫 장은 양혜왕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맹자를 본 양혜왕은 반갑다는 말 대신 “노인께서 천 리를 멀게 여기지 않고 찾아 오셨으니 역시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을 주시려는 것입니까?”라고 말한다.`이익`이라는 말 대신 `도움`이라고 했으면 괜찮았을까. 먼 길을 오느라 피곤했던 것일까. 맹자는 다짜고짜 말꼬투리를 잡는다.“왕께서는 하필이면 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왕이 어떻게 하면 왕실이 이로울까를 생각하면 호족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이 이로울까를 생각하고 호족이 이런 생각을 할 때, 호족의 가신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가문이 이로울까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가신은 호족을 죽여 그 재산을 넘보려하고 호족은 왕족을 죽여 그 재산을 넘보게 된다고 맹자는 말한다.맹자는 양혜왕에게 `이익`이 아니라 `인(仁)`과 `의(義)`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면, `의`는 그러한 관계를 평가하는 집단의 가치관에 해당한다.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어른과 아이의 관계 등등. 이러한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계 지음 속에서 형성되는 가장 기본적인 옳고 그름이라는 생각이다.하지만 이 관계의 중심에 `이익`을 가져올 때 서로가 서로를 탐하게 된다. 이것이 홉스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불렀던 모습일 것이고, 이런 모습은 현재의 자본주의와 거의 일치한다.△장면 둘, `타짜`고니는 곽철용에게 복수하고야 만다. 곽철용의 장례식에 등장한 아귀는 검은 양복에 흰 셔츠의 단추를 두 개나 풀어헤치고 등장한다. 장례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 터무니없는 애도자는 (곽용철의 오른팔인) 용해에게 다짜고짜 묻는다.“너 병원 뒤지고 다닌다며?”“복수해야죠.”“뭐, 복수? 죽은 곽철룡이가 너네 아버지냐? 복수 같은 그런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으로다가 접근하면 안 되지 도끼로 마빡을 찍든 식칼로 배때지를 쑤시든 고기값을 번다, 이런 자본주의적인 개념으로 나가야지 에라이~”아직 철저한 `사업`의 논리를 배우지 못한 한국의 조직을 아귀는 계몽해야 한다. 그는 자본주의를 알고 있다. 그는 복수 따위의 인간적인 감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복수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고기값이라도 번다는 경제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변한다.그러나 아귀는 자본주의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실천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는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는 계명을 놓치고 말았다. 그랬기에 그의 `손모가지`는 `날아가 불고` 만다. 자본주의적 `승부`는 너의 오감, 나아가 너에 대한 너의 신념까지도 버리고, 완벽히 이성적인 생각으로 접근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이익과 손해의 더하기 빼기 놀이에 철저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니 여기에 인간적인 감정이 낄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장면 셋, `대부`조카의 세례식날, 대부 마이클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마피아의 4대 보스인 타탈리아, 바지니, 쿠네오, 스트라치를 모두 처치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바지니와 공모한, 패밀리의 초창기 멤버였던 테시오를 죽이기 위해 변호사이자 조직의 고문인 톰 하겐을 보낸다. 톰 하겐이 부하들을 데리고 테시오를 둘러싸자 자신의 계획이 일그러졌음을 알게 된다.“단지 사업이었다고 전해줘, 항상 마이클을 좋아했지.”“알고 있을 거요.”“옛정을 생각해서 목숨은 살려주면 안 되겠나?”“미안하오, 샐리.”마이클을 죽이려 했던 것은 단지 사업(이해관계)이었을 뿐이라는 테시오의 당당함. 내 죄가 죽을 죄이언정,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테시오의 비굴함. 마이클을 좋아하지만 사업 때문에 그를 죽이려했다는 저 당당함 속에는 `사업`은 있으되 인간은 없다.사업 속에 `인간적 감정`이 끼면 안 된다는 것은 말하는 자도, 듣는 자도 알고 있다.그런데 왜 마이클은 테시오를 죽여야 하는 것일까. 복수는 법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일 것이다. 살인한 자 역시 살해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물론 가장 단순하며 가장 원초적인 합리주의이기도 하다.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미 죽은 사람은 죽었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인데, (더욱이 테시오가 마이클을 죽인 것도 아니고 시도만 했을 뿐인데) 죽였으니까 (혹은 죽이려 했으니까) 그를 죽인다면 조직으로 보았을 때는 `1-1`이 아니라 `-1+(-1)`이지 않은가.오해하지 말 것. 마이클이 테시오를 죽인 것은 분노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패밀리의 기강을 바로잡고, 초짜 보스의 미숙함을 감추고, 공포를 통해 권위와 위엄을 구축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사업적 살해다.테시오의 사업에 `인간`이 없었듯 그를 기다리는 죽음 앞에서 역시 `인간`은 빠져 있다. 마이클은 철저히 사업적인 이유로 테시오 당신을 죽인 것이니 당신 역시 이해해줄 것.△장면 넷, 마르크스벽난로를 피울 형편도 되지 못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저택이 있다.이미 가난, 굶주림, 추위 이런 것들로부터 네 아이를 빼앗긴 사십 줄의 가난한 남자 마르크스, 그는 남은 두 딸, 예니와 로라를 지킬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이 추워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면, 그는 아이들 방에서 그들이 잠들 때까지 놀아주는 늙고 무력한 아비다.그러한 어느 밤, 아이들은 당시 유행했던 `고백게임`을 한다. 게임방식은 딸들이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덕목은?”이라고 물으면 마르크스는 여기에 답하면 된다.이 질문에 대해 그는 “단순성”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때의 물음과 대답들 몇 개를 뽑아보면 “아버지가 생각하는 행복은? 싸우는 것,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로라, 예니,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 등등이 있다.이런 것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는?”“Nihil humani a me alienum puto(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자식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가난 속에서, 그런 가난으로 몰아가는 삶 속에서도 못난 남자는 여전히 믿고 있다.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나와 관계되어 있다. 모든 것들이 나와의 관계망 속에 놓여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익으로 환원할 수 있겠는가, 거기 어디에 이익을 놓을 자리가 있겠는가, 어떻게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끼어들 자리가 있겠는가. 어찌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쿨 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이 팔불출의 아저씨는 평생 가난 속에서 죽었으되, 죽지 않는 인간이 되어, 정신의 벽난로가 되어, 아늑하고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2017-12-01

만남, 사랑, 이별에 관한 짧은 주석

“세상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그 자체가 이미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중략… 그러므로 있고 없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노자, `도덕경` 2장 부분)대상의 특성은 대상의 내부에 존재할 수도 대상의 바깥에 존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성질의 드러남의 계기다. 그 계기가 곧 만남이다. 선, 악, 미, 추, 장, 단, 음, 성, 전, 후와 같은 특성들이 대상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바깥에 존재한다. 대상과 대상의 비교 속에서 그러한 성질들이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이미 대상 속에 선, 악, 미, 추, 장, 단, 음, 성, 전, 후와 같은 성질들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특정한 것과 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것은 더 크게 어떤 것은 더 작게 발현된다.대상의 내부에 그 특성이 있는가, 바깥에 그것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만남과 연대다. 이것을 통해서 내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내가 있음을 앎으로 네가 있다는 것 역시 의식하게 된다.△사랑: `봄날은 간다`(이영애와 유지태)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서울에서 술을 마시던 유지태가 이영애와 통화를 하더니 기어이 강릉으로 가고야 만다. 기다리던 이영애가 살짝 지겨워지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택시 불빛이 들어오고 유지태가 내린다. 이영애가 그리움의 크기라도 보여주겠다는 듯이, 마치 그러려고 그랬다는 듯이 멀찍이서 달려온다. 유지태가 마주 달려가 그녀를 격렬히 안아 올릴 법도 한데 그는 뛰어오는 그녀를 바라만 본다. 살짝 비틀거리기까지 하면서. 이영애는 뛰어오던 속도 그대로 유지태에게 뛰어들 법도 한데 걸음을 늦춘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온 밤을 달려온 남자와 그 남자를 밤이 파랗게 패이도록 기다린 여자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바라만 본다. 무려 5초나 말이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을 향해 걷는다. 포옹도 없이 걷는다. 아니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들은 앞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걸었다. 세 발자국도 걷기 전에 이영애가 뒤돌아본다. 유지태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영애의 몸뚱이만한 팔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당긴다. 이영애의 허리가 부러질 듯 꺾인다.저들의 격렬한 포옹이 있기까지 왜 저들은 그토록 오랜 시간을 흘려보낸 것일까. 마치 말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들은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은 그 20초 동안 아마 단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았을 것이다. 숨 막힐 듯한 시간 속에서 그들의 숨 막힐 듯한 사랑이 요동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막힌 숨이 터져 나올 때까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스스로 터져 나올 때까지 기다려진 시간. 기다린 시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려지게 된 시간과 그녀의 꺾여진 허리의 각도만큼, 더 꺾이고 싶어도 꺾일 수 없는 그 각도만큼, 그리하여 그들의 몸과 몸이 닿아도 닿지 않은 그 틈만큼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한다.△이별: `바람이 분다`(이소라)바람이 분다서러운 마음에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하늘이 젖는다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내게서 먼 것 같아이미 그친 것 같아…중략…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세상은 어제와 같고시간은 흐르고 있고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눈물이 흐른다―`바람이 분다` 가사 부분이별은 그 순간에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헤어스타일을 바꾼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바람이 불어오고 눈물이 터져 나와서야 그것이 이별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별이라는 사건은 `나`의 인식범위를 초과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감이지 인식은 아니다. (적어도) `나`의 이별은 그러하다.“찬 빗방울”은 무수한 말의 입구이자 출구다. 최초의 빗방울이 `나`를 때린 이후에 `나`는 우리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너`로 기인한 `나`의 세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가 오는 하늘”은 `나`와 `너`가 함께 숨쉬었던 그런 세계가 아니다. 지금 `나`는 폐허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인식 불가능한 하늘, 하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을 대면하고 있다. 저 비는 내가 알던 세계에서 내리던 비가 아니다. 그러니 비에 감정을 이입할 수도 없고, 저 비로 `나`의 슬픔을 위로할 수도 없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무엇보다 너는 `나`가 선명히 느끼고 있는 이 이물감을 `너`는 알지 못한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너`로 인해 행복했었다. `나`는 그것을 우리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너`와 `나`의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들로 구축한 그런 아름답고 찬란한 행복말이다. 이러한 행복의 한 축을 지탱하던 `너`라는 기둥이 떠나자 `나`의 행복은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폐허 속에서 `나`는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이 말을 간단히 풀어쓰면 `너`에게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다. 오늘은 헤어진 날이고 어제는 헤어지기 전인데 어제와 오늘이 같다는 것은 `너`는 `나`와 항상 헤어져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히스테리를 부릴 만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니가 나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웃고 사랑을 말하고 또 그렇게 날 싫어해 날”(`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이 말은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해서 증오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네가 없는 이곳에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나`는 선택해야 한다. 변화된 헤어스타일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별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무너진 세계를 다시 구축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세계가 무너져 내릴 때 햄릿은 전자를 택했고, 오필리어는 후자를 택했다. 둘은 죽었으므로 결과는 동일하다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절대 같지 않다.

2017-11-24

가을, 익어가는 것들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대추제사상 위에 올라가는 많은 음식들 중에 내 입맛에 맞는 건 거의 없었다. 아무 맛도 없는 나물이 잔뜩 올라왔고, 바싹 마른 북어 같은 것도 있었다. 그래도 과일만은 좋았는데 유독 싫은 것이 대추였다. 연초록빛의 대추 열매는 가을이 되면 갈색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고, 탱탱한 과육도 볕에 쪼그라들었다. 과즙이 풍성한 배, 사과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대추가 달다는 말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궁벽한 산골, 초등학교 졸업식 날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나무 한 그루씩을 선물해주셨다. 6학년 전체 학생이 채 스무 명도 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 년 동안 연거푸 우리의 담임을 맡으며 깃든 각별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나무가 자라듯 우리가 자라길 바라며 살구, 자두, 사과 등 온갖 유실수를 사오셨다. 산에서 자란 산골 아이들에게 나무는 반가울 게 없었지만 선물이라는 형식은 낯익은 것도 낯선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선생님은 내게 대추나무를 안겨 주셨는데 왜 하필이면 다른 나무도 아니고 내가 싫어하는 대추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대추나무는 목질이 단단해서 모진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내가 모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선생님도 알고 있을텐데 아리송하다. 어쩌면 그즈음 `전원일기`(1980)를 의식해서 만든 `대추나무 사랑걸렸네`(1990)라는 드라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아이들이 날린 연이 나무에 걸리면,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든 장대를 이용하든 연을 되찾으려 한다. 하지만 대추나무에는 가시가 있어 나무에 오를 수도 없고, 가시에 연이 사방으로 찢겨져버려 연을 찾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키 큰 대추나무에는 연이 많이도 매달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저기 빚이 많을 때를 비유해서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빚 대신 사랑을 넣어 사랑이 풍성한 동네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선생님이 나에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라고 이 나무를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분명 넘치는 사랑을 가진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추나무처럼 가시도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더 이상 가시는 안 품고 살고 싶은데 내 입에서 쏟아지는 이 뾰족한 말을 다루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생님에게 받은 나무를 집에 가져와 마당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지금 되돌아 산에라도 심을 걸 하고 후회한다. 우리 집 마당은 여러 차례 변해 지금은 밭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대추나무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밤어렸을 때는 그냥저냥 지낼 만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아버지는 형과 내게 일을 시켰다. 가을에는 특히 일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것이 밤을 줍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산비탈 가득 밤을 심어놓고 책임은 형과 내게 전가했다. 학교를 일찍 마치고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밤을 주워야 했다. 밤을 줍기 위해서는 꽤나 중무장을 해야 했는데 밤송이에 찔리지 않도록 장화를 신고, 빨간 고무가 발린 장갑을 끼고 옷도 되도록 비옷 같은 것을 입어야 한다. 머리 위로, 구부린 등위로 밤송이는 허락도 연락도 없이 갑자기 툭툭 떨어지곤 했으니까.형은 밤 줍기가 싫어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결국 나만 밤을 주우러 갔던 날. 둘이 했으면 더 빨리 끝났을 텐데, 혼자 줄행랑을 놓아버린 형을 원망을 하며 떨어지는 밤송이를 욕하며 그렇게 분주하게 밤이 오도록 밤을 주었다. 집에 왔더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모두 한가득 모여 웅성거렸고 더러는 천만다행이라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형이 브레이크가 터진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남의 논에 떨어졌단다. 족히 10m는 날아갔던 모양인데 자전거는 윗논에, 형은 아랫논에 처박혔고 날아가며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주변에 일하던 마을 사람들이 난리가 쳐들왔는 줄 알고 모여들었단다. 형은 재수 좋게 논으로 뛰어들어 어디도 다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밤을 같이 줍지 않은 형에게 꿀밤을 주었다. △감우리 동네에는 군수할매가 살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쩌다 이 궁벽한 산골까지 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할매가 군수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는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군수라며 자랑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할매는 말을 제대로 못했고, 말을 하더라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그 말투는 늘 싸우는 것처럼 격앙되어 있었다. 친척도 남편도 자식도 없는 할매는 사람들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다.감은 봄에는 흰 꽃을 피운다. 꽃은 나중엔 갈색으로 말라붙고 그러는 동안 꽃의 뒤쪽에서 감이 맺힌다. 사과, 배, 이런 과일들처럼 감에도 배꼽이 있다. 이것은 다른 과실들이 그러하듯 꽃의 흔적이다. 하지만 모든 감꽃 뒤에 감이 맺히는 것은 아니다. 감꽃은 묵직해서 쉽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떨어지면 툭하는 소리를 낸다. 그렇게 감꽃이 떨어지면 군수할매는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감나무 밑을 누볐다. 나는 어릴 때 이런 할매를 놀린 적이 있는데 이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할매의 소쿠리엔 감꽃이 가득했다. 감꽃은 떫으면서도 새콤한 맛이 났다.감은 익어가기 전까지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다 익어서는 더 자주 그랬지만, 완전히 땡땡한 땡감일 때에도 감은 떨어졌다. 깜깜한 밤, 감은 툭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양철지붕 위로 떨어졌고, 또 요란하게 지붕의 경사면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 내렸다. 양철지붕 아래에서 잠든 나는 곧잘 놀라 잠에서 깨곤 했다. 이럴 때에도 군수할매는 그 감을 주어 구들목 아래에서 삭혔다. 봄에는 감꽃, 여름에는 땡감, 가을에는 홍시, 겨울에는 곶감, 감은 사계절 내내 좋은 간식거리였다.△이런 날가을볕은 자글거렸고 논과 밭은 물론 산과 들 사람이 심거나 가꾸지 않은 것들도 익어 추수를 종용했다. 사람들은 바쁘고 분주했다. 이 바쁨 속에는 어떤 흥겨움이 있었다. 밥도 먹고 새참도 먹고, 그럴 때마다 술을 마셨지만 누구하나 취하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텅 빈 논을 뛰어다니며 마르라고 세워놓은 볏단을 훌쩍훌쩍 뛰어 넘었지만 누구하나 사고를 쳐 어른들을 방해하는 법은 없었다. 동네 어른들은 취할 때와 취하지 않을 때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분별 있게 행동했다.그런데 이런 날도 있었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 구름이 얕게 깔려 모든 것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드는 날.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아 사람들의 기분까지도 누르고 있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 논 저 논 들쑤시기 좋아하는 참새 떼도 보이지 않았고, 잘 익은 감만 골라 잘도 떨어뜨리던 바람도 어딘가에 처박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도 낮에도 우는 저 정신 나간 수탉도 요란히 울어볼 만한데 날개 죽지에 대가리를 처박을 뿐이었다. 이런 날은 술래잡기도 숨바꼭질도 신이 나지 않아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마루 끝에 앉아 제풀에 떨어지는 낙엽을 쳐다보는 할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잡힐 듯이 크게 들려왔다. TV는 시작하려면 멀었는데 나는 화면조정을 쳐다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2017-11-17

쪽박을 깨지 않는 일

요즘 두 명의 대통령과 그들이 몸담았던 한 정당이 자멸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몰락 - 히틀러와 제3제국의 종말`. 이 영화는 1945년 4월 16일 연합군이 베를린을 포위 공격하였을 때부터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자살하기까지의 2주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미쳐가고 있었는지, 그 파국과 광란을 냉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독일인들 스스로가 말이다.그런가하면 김훈의 `남한산성`은 청(淸)에 포위당했던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2월 2일까지 거의 두 달 간을 소설로 형상화하였다. (이 소설은 최근 영화로도 개봉하였다.) 이 기간은 나치의 마지막 두 주보다 시간적으로도 길고, 공간적으로도 가혹하다. 그런데 나치와 달리 남한산성에 갇힌 왕과 신하들은 어떻게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일까? 비록 국가의 권위가 결국 허위와 위선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리하여 모든 권력이 무력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국가를 이루는 규준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런 삶은 진실로 가능한 것일까? 김훈은 이런 물음에 답하고 있는 듯하다.…부딪쳐서 싸우거나 피해서 버티거나 맞아들여서 숙이거나 간에 외줄기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터이고, 그 길들이 모두 뒤섞이면서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김류는 그 말을 참아내고 있었다.일은 늘 되는대로 되기 마련임을 알았음에도, 그 삶이 되는대로 되도록 내버려두는 것밖에 도리는 없었음에도, 신하들은 여전히 논쟁을 하였다. 이러한 논쟁이 `되는대로 되어`가는 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논쟁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논쟁이 아무리 허위와 허무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이 행위를 포기하지 않는 일, 결국 이것이 삶을 놓지 않는 방법임을 김훈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삶 전체가 거대한 헛것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삶을 되는대로 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신념까지가 이 소설 속에 투영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그렇게 보자면 2002년 전후에 쓰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는 이 소설의 전사로 보아도 무방하다. 김훈 스스로 세설(世說)이라 부른 이 평문은, 평발이라는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무력한 아버지의 내면을 적고 있다. 가장 신성하고 가장 도덕적이라고 일컬어진 병역의 의무가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나 국회의원, 장관, 그리고 온갖 돈 많고 권세 높은 댁 도련님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허물어졌을 때에도 김훈은 아들에게 군대를 가야한다고 강변하고 있다.나라를 지키는 일은, 아버지 세대가 늙으면 아들 세대가 물려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인(私人)인 아버지가 사인인 아들에게 넘겨주는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공적(公的) 아버지와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너희들의 그 울분에 찬 새벽 술자리에 공사 간에 어느 아비가 끼어들 수 있겠느냐. 아들아, 나는 겨우 이렇게 말하려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이 못난 나라의 못남 속에서 결국 살아내야 한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라의 쪽박을 깨지 않는 일이라고. 너의 의무는 몇몇 비굴한 이탈자들에 의하여 신성이 모독되었지만,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은 아니라고.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 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네가 긍정해야 할 나라의 운명은 너와 동년배인 동족 청년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그 어떤 아비의 말도 이보다 비굴하지는 못할 것이며, 그 어떤 아비의 말도 이보다 더 진실 되지는 못할 것이다. 김훈은 신성하고 도덕적인 병역의 의무라는 말, 그리고 그 말들의 위선 앞에서, 그것이 비록 허위일지라도 그 허위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삶이 한낱 `쪽박`일지라도 그것을 부여잡는 일이 삶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김훈의 `칼의 노래`, `흑산` 등을 비롯한 거개의 소설들은 삶의 끝자락으로 몰린 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왕명 속에 깃든 것들이 `헛것`임을 알면서도 그 헛것을 놓지 않는다. 삶은 수많은 헛것으로 이뤄졌더라도 그 헛것을 놓지 않는 일이라고, 그 헛것이 끝끝내 헛것으로 스러져 버리더라도 그 헛것을 끝끝내 지켜내는 그 부질없음이 삶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김훈은 그 지독한 허무를, 그토록 담담하게 그려냈던 것이다.`남한산성`의 신하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때로 비겁하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이 저 전화의 와중에도 `쪽박`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실 그들의 고리타분한 탁상공론은 어쩌면 비루한 `쪽박`을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히틀러와 그 지도부가 파국 앞에서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 과거도 미래도 모두 그들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히틀러들은 그들의 모든 구호가 헛것임을 스스로 인정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김훈은 남한산성에 갇힌 위정자들의 논쟁의 무력함과 그 공허함이 끝끝내 완전한 공허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집요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신(大臣)들의 논쟁이 그토록 지난했던 것은 이들이 직면한 지금의 시간만을 유일한 문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과거라는 긴 시간을 지금의 삶에 연결했고, 이들이 죽어도 남을 긴 미래까지를 지금의 삶 속으로 끌어와 고민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강상, 사직, 종묘 그런 것들 혹은 국가니 의무니 권리니 이 모든 것들이 `쪽박`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것을 `쪽박`이라고 말하지 않는 일은 그것을 `쪽박`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지난하다. `쪽박`이라고 말하고 나면 세계는 `쪽박` 이상일 수 없다. 그러나 삶의 모든 가치와 윤리와 도덕이 `쪽박`에 지나지 않더라도 `쪽박`을 깨지 않는 일, 그리하여 그것을 껴안고 살아가는 일, 삶의 진실이 그 정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내는 자의 삶은 무수한 결단과 무수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헛것을 껴안고 헛것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껴안은 헛것이 변함없이 헛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을 지켜내는 자의 삶은 얼마나 가혹한가. 허나 그 가혹함까지도 헛것이라고 생각하는 삶, 그러한 완고한 허무가 이 소설을 지탱하고 있다. 모든 것이 헛것이라면 그 모든 헛것 중의 하나를 부여잡고 사는 일, 그 부여잡음조차도 헛것임을 알고서도 살아낼 수 있는 삶은, 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을 신념으로 간직하며 사는 삶 보다 더 삶에 밀착된 자세일 것이다. 혁명에 대한 신념이 무력해질 때 혁명가 역시 무력해질 것은 자명하다. 모든 것이 헛것임을 알고 살아가는 자에게 좌절이 발 디딜 틈은 없다. 그러니 그의 허무는 살아가기 위한 허무일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보수도 좌익도 무의미할 것이다.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은 보수니 좌익이니 따위의 말들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삶은 그 모든 것을 초과하되, 삶은 삶이라는 범주를 초과하지 않는다. 삶은 단 한 번의 확장이나 팽창을 보여주지 않지만,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저항이며, 복수며, 혁명이다. 삶은 한낱 삶일지언정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한다.

2017-11-10

사랑, 그 통제 불가능성

△감각들소설 두 편을 소개하려 한다. 하나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앤드루 포)의 표제작이고 또 하나는 `올리버 키터리지`(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소설집에 제일 처음에 실린 `약국`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여성인 헤더가, `약국`은 남성인 헨리가 서술자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이 과거의 연인을 추억한다는 점에서 서사는 거의 동일하다.이 두 편의 소설은, 나이 많은 남자와 그보다 많게는 서른 살 가량 어린 여자가 등장하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내밀하면서도 아주 미묘한 감정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할 수도 없고, 그렇지 안다고도 말할 수도 없는 감정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소설에는 중산층이거나 그 이상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려 깊고, 자애롭고, 섬세한 감각을 가진 남성들. 아름답고, 풋풋하고, 역시 섬세한 감각을 지닌 여성들이다. 헤더와 헨리는 자신의 배우자(혹은 배우자가 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평생을 함께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고 있다.그런데 이들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헤더는 결혼하게 될 남자 친구 콜린이 있지만 물리학과 노교수인 로버트에게 끌린다. 헨리는 아름답고 열정적인 아내 올리버가 있지만 자신의 약국에서 일하는 이십 대의 데니즈에게 끌린다. 그들은 그들의 외도를 격정으로 몰아갈 수도 있지만 견뎌낸다.여자 친구로서의 혹은 남편으로서의 의무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이들의 행동은 조심스럽다. 그런 것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조심스러움 속에서 암세포 같이 자라나는 감정과 그 통제될 수 없는 범위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랑은 결국 지나가 버리지만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남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두 편의 소설은 그런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잔잔하게 그리고 애잔하게 그런 잔물결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너울지는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소설 혹은 문학이라는 것들은 글자로 이루어져 있긴 하지만, 그 속에는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감각들이 존재한다. 어떤 소설은 격심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주 미약한 떨림만을 가진 것들도 있다. 이 소설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이러한 감각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아니 느끼기 위해서는 온몸을 긴장시켜 몸의 솜털까지 세워야 한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은 아주 연약하고 미약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들은 쉽게 바스라지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들이 지닌 내밀한 감각들은 휙 지나쳐버리고 말 것이다.△진실들만약 소설이 진실을 보여주거나 혹은 교훈 같은 것을 전해주는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소설(가)의 사상 속에 있지도 그렇다고 소설의 주제나 중심 사건 속에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진실은 이런 것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 있을 것이다.나는 결혼도 안 했고 그러니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지만 “모자는 순식간에 격렬히 싸우다가도, 그 분노는 이내 무언의 친밀감처럼 둘을 감싸버려 영문을 알 길 없는 헨리만 멍하니 따돌림을 받는 기분이었다.”(`약국`, 13면)와 같은 서술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다. 격렬한 싸움이 무언의 친밀감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을 마치 나는 경험해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로버트와의 관계를 콜린에게 들킨 후의 헤더의 내면. “대신 나는 키스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주기를 바라면서 그저 그에게 키스를 하려 했고 그는 나의 키스를 피해버렸다.”(`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118면) 헤더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로버트와 친하게 지내는 것일 뿐, 사랑의 말을 속삭이거나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 다만 마음속으로만 로버트를 생각하고 있었노라고, 하지만 정말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은 로버트가 아닌 콜린 당신이라는 사실을, 비록 로버트를 사랑하지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콜린 당신이라는 사실을, 이 복잡한 심경을 헤더가 콜린에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헤더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진심을 담은 키스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이 장면은 데니즈가 자신의 남편(그의 이름도 헨리다)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려오는 장면이다.“어느 토요일, 집에서 점심으로 치즈를 넣고 구운 게맛살 샌드위치를 먹을 때였다. 크리스토퍼가 샌드위치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전화벨이 울려 올리브가 전화를 받으러 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크리스토퍼는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기다렸다. 헨리는 마음속으로 그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거실에서 올리브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아들이 직감적으로 예를 갖췄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불쌍한 것,” 전혀 그녀답지 않게 낙담했던 올리브의 그 목소리를 헨리는 그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약국`, 36면)흔히 정신분석학자들은 기억은 전유와 환유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버릇없는 크리스토퍼가 직감적으로 죽음의 공기를 느끼고 예를 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억은 데니지에 대한 헨리의 안타까움과 고통이 투영되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애도의 분위기에 맞게 기억이 재구성되어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정신분석학자들이야말로 정말 정신병자라고 생각한다. 경이로움들, 환상들, 불가해한 것들, 이런 것들을 믿지 않으며, 어떻게든 인간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려는 그들이야말로 편집증 환자이거나 저열한 수준의 의사(학자)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퍼와 같은 예민함이 어떤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로버트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콜린에게 들킨 헤더가 더 이상 로버트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 로버트의 아파트에 찾아온다. 헤더는 그런 말을 꺼내면서도 한편으로 로버트가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로버트는 그런 헤더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헤더는 화가 난다. 이 화의 감정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 소설가는 “나는 그때 그가 너무나 쉽게 나를 이해해버리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122면)이라고 적고 있다. 적어도 모든 화가 그렇지 않겠지만, 너무 빨리 수긍하거나 너무 빨리 이해할 때, 화가 들끓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다. 작가 역시 이런 경우에 화가 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가도록 만든다. 이들은 실제로 피와 뼈와 살을 지닌 사람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소설 속에 살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에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소설이 삶이 아니라 소설이라면 어떻게 이런 진실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는가.

2017-11-03

우리는 어쩌다 경제에 목을 매게 되었나?

△우리는 어쩌다한 남자가 있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소비가 늘고,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외국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남자가 늘린 것이 이 남자의 재산일 뿐이라는 것을, 프로크루스테스처럼 국민을 늘려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남자는 경제를 꼭 살리겠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를 잘 살게 하겠다고 말했다. 선거법 위반, 주가조작 등 이 남자에 관한 나쁜 소문들이 돌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지지했고 모두 과거일이라고, 큰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바람대로 이 남자가 대통령이 되었다. 얼마 후 이 남자는 국가를 자신의 수익모델쯤으로 여겼다. 비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비리들은 쏟아졌지만 법에 의한 합당한 처벌을 받은 것은 없었다. 법이 통하지 않았고,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유시민은 한 팟캐스트에 이렇게 말했다. “당시 민심은 걸레인 줄 알아, 더러운 줄 알아, 그렇지만 저걸로 상 닦을 거야, 그 분위기였어요.” 우리는 이 남자가 생명체도 아닌 경제를, 그렇다고 죽지도 않은 경제를, 이 의인법과 활유법의 대가의 소생술을 보고 싶어 했다. 이 쇼를 위해 우리는 5년을 저당잡혔다. 우리는 단지 잘 살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한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다만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 그랬던 우리는 또 어쨌던가!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 신화를 이룩하겠다”는, “중산층을 70%로 만들겠다”는, 말 아닌 말을, 말이 아닌지도 모르고 내뱉는 자로 갈아탔다. 환승 할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야 말았다.이 남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여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경제를 살릴 수 있으리라는 환상 때문이다. 그러니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쩌다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왔던 고매한 가치들을 경제 따위에게 가져다 바쳤던 것일까, 우리는 어쩌다 좋아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어쩌다 노동의 대가를 돈과 교환할 수 있다고 굳게 믿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어쩌다 돈이 삶의 가장 꼭대기에서 군림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이런 것들을 말이다.△시장경제 혹은 자본주의적 인식의 계보학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바로 우리가 어쩌다 경제를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었는가를 추적한다. 그가 말하는 `거대한 전환`이란 이익 또는 시장경제가 펼쳐 놓은 유토피아적 비전을 맹신하게 된 그러한 전환점들이다.폴라니는 먼저 `저질 인간으로 타락` 시키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그러한 자본주의의 잘못된 관념을 갖게 된 이유를 추적해 간다. 그리하여 타운센드의 `논고`에 이르게 된다.`논고`는 전쟁을 일으키고, 전염병을 치료할 약을 만들지 말아야 하며, 굶어죽은 사람을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이상한 이론을 펼친 멜서스, 임금의 상승이 이뤄지면 자본의 이윤이 줄어들고 다시 투자량이 감소하며 추가적인 생산이 멈추고 말 것이라며 임금기금설을 주장한 리카도, 그리고 구빈법의 폐지를 주장한 에드먼드 버크와 벤담, 최소한의 정부를 고집하며 자유방임주의를 말한 애덤 스미스 등이 공통으로 전제하고 있는 책이라고 폴라니는 말한다.타운센드는 이 책에서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칠레 연안 태평양의 로빈슨 크루소라는 무인도에 후안 페르난데스가 나중에 식량으로 쓰기 위해 몇 마리의 염소를 풀어놓았다. 그랬더니 염소의 수가 `바다의 모래알`만큼이나 늘어났다. 그러자 스페인 상선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해적단이 이 섬을 식량 창고로 삼았다. 당황한 스페인 정부는 여기에 암수 한 쌍의 개를 이 섬에 풀어 놓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양쪽 생물 종 모두에게 가장 약한 것들이 제일 먼저 희생당했고, 가장 활동적이고 센 것들은 목숨을 보존했다.” 이 이야기에 살을 붙여 정식화한 자들이 소위 말하는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염소들은 개들이 쫓아오면 암벽으로 도망칠 수 있었고, 도망치다가 약한 염소는 개에게 잡혀 먹는다. 개와 염소 사이에는 미묘한 균형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균형은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치안을 유지하는 규모로 작동해도 된다(애덤 스미스). 또한 약한 염소들에 대응되는 빈민들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그들은 약하지 않은 인간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맬서스).타운센드는 짐승의 활동에서 인간의 삶의 조건을 유추해내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정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라는 정치학의 근원적 물음들을 타운센드는 “인간 공동체를 아예 동물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그 질문을 따돌려”버렸다. 폴라니는 바로 이 지점, 인간과 짐승을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러한 관점들에 대해 분개한다.그는 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자본주의가 인간을 정의하는 방식을 뒤집고 있다. “(인간이)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물물교환·교역·교환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또는 “인간은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한다는 애덤 스미스식의 인간 정의를 폐기한다. 어떤 부족 사회도 개인만의 경제적 이해가 그 개인의 행동에서 으뜸가는 중요성을 가지는 일은 도무지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족 공동체는 구성원 중 특정인을 굶기지 않는다. 공동체 전제가 굶주리거나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특정 개인에 한해서 위험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생산과 분배는 상호성과 재분배의 원리에 의해 지켜진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너무 늦었음우리는 저마다 경제적 성공을 추구한다. 그 와중에 사람은 늘 배제된다. `아름다운 공주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보라.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행복하게 살았다`에만 집중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행복해졌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정해져 있다. `부자`가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해질 수 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와 같은 물음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행복과 부의 양은 비례한다. 그러한 형식의 세상으로 재편되고 있다.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이 성공의 프레임을 폐기하는 일이다. 곧 자본주의적 소망을 철회하는 일이다. 칼 폴라니는, 시장경제는 사람의 영혼을 앗아가고 사람을 동물의 차원으로 강등시킨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빠져 있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사람이 빠졌다니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는다. 충격체험이 삶의 유일한 조건이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폴라니의 말처럼 사람들과 함께,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 그러니 오히려 조급해할 필요 없지 않을까. 기왕 늦었으니 그렇다고 포기하자는 건 아니고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시작하면 이 나빠진 세계에서 더 좋아질 일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늦었음은 기회다.

2017-10-27

국화 혹은 국화꽃

△겹꽃 혹은 겹말며칠 전 국화를 하나 들여놓았다. 꽃이 한창이어서인지 수국보다 더 많이 물을 먹는다. 하루만 나갔다 돌아와도 축 처진다.국화는 꽃의 크기에 따라 대륜, 중륜, 소륜으로 나뉜다. 내가 들인 꽃은 소륜이다. 대륜보다야 덜 하지만 소륜 역시 꽃잎이 두세 겹으로 층지어져 있다. 이런 꽃을 겹꽃이라 부르는데 장미, 벚꽃, 동백, 백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가을에는 꽃을 딴다. 그런데 `국화꽃을 딴다`라고는 하지만 `국화를 딴다`고는 하지 않는다. 국화(菊花)란 이미 국꽃(菊-)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국화꽃`이라고 쓰면 국꽃꽃이 되어 의미가 겹치게 된다. 이런 것을 겹말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생일날, 모래사장, 술주정, 처가집, 면도칼, 축구공, 손수건 같은 것들이 있다. `생일`에 이미 `날`이 포함되어 있고, 모래사장에는 `모래`와 `사`가 반복되므로 `모래장`이나 `사장`으로만 불러야 한다.국어학에서는 이러한 겹말을 의미의 잉여로 보고 있으며, 순화의 대상으로 본다. 즉 둘 중에 하나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건`과 `손수건`을 전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얼굴을 닦는 사람에게 손수건을 주지 않으며, 우는 사람에게 수건을 주지 않는다.우리는 국화꽃을 따지 국화를 따지 않는다. 국화꽃은 겹꽃이며, 겹말이다. 꽃잎이 겹쳐 있으면서 동시에 언어도 겹쳐 있다. 이 겹쳐진 것은 결코 버리거나 삭제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이 무수히 많은 동일한 것들을 반복하면서 국화꽃은 삶과 죽음을 잇는다. △국화와 죽음죽음이 슬프다는 것은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죽은 자가 다시 삶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으므로 슬프다. 하지만 그 슬픔은 죽은 이의 것이 아니라 산 자만의 슬픔이다. 죽은 자는 죽었으므로 산 자의 슬픔을 다시 느낄 수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죽은 자는 다시 죽을 수 없다. 죽음은 유일하며 그런 점에서 죽음은 고귀하다. 이런 유일하고 고귀한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인간은 노력해야한다. 죽음은 비록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지만, 그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삶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하지만 완성되지 않은 죽음은 어떠한가? 원하지 않은 죽음들, 완성되지 않은 죽음들, 사소한 사고, 또 홀로코스트와 같은 처참한 죽음, 그리고 세월호……. 이러한 죽음은 어떻게 위로되는가? 대륜의 꽃잎 하나하나는 이러한 죽음에게 보내는 조사(弔辭)와도 같다. 대륜의 꽃잎은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을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과 밖,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차안과 피안을 향해 멀리까지 뻗어 있다. 아니 죽은 이들의 넋을 위무하며 동시에 그 불완전한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꽃잎들은 뻗어가고 있다.이제 다시 삶을 알겠다. 죽은 이가 다시 죽을 수 없듯이 산 자는 삶을 멈출 수 없다. 오직 쉼 없는 것만이 삶이다. 그러므로 삶의 연장선에 죽음이 있을 리 없다. 삶은 삶이고 죽음은 죽음이므로 죽음과 삶은 연속적일 수 없으며 죽음과 삶은 결코 만날 수 없다. 국화는 죽음 속에서 죽음을 완성시키며 삶 속에서 삶을 연속시킨다. 이 꽃들은 삶과 죽음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유일함에 취해 있고, 죽음의 고유함에 취해 있다. 국화에 취하는 일은 이와 같고 그 취함 속에서 삶과 죽음은 화해한다. △국화: 피어, 나는국화는 어떤 은근하고 은은한 힘 속에서 너울댄다. 이러한 일렁임은 환희라든지 열정이나 열망과 같은 강렬한 힘과는 거리가 멀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들이 그러하듯이 피어나는 일은 스스로 서서히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피어남`은 주체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도 그렇다고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행위도 아니다.국화의 꽃잎 하나하나는 주체적이지도 그렇다고 비주체적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힘들에 쌓여 있다. 미약하고 소박하지만 멈추지 않는 끈기를 가진 어떤 힘들에 취한 듯 나비는 날아든다. 이러한 힘을 우리는 `자연(自然)`이라고 부른다. 그저 그렇게 될 뿐이나 그렇게 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도 아닌,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그러한 오묘하고 오롯한 힘. 이 힘들 속에서 국화는 피고 나비는 날고 가을은 짙어진다. `피고`, `나는`, 그리하여 `피어나는` 것들의 개별성과 고유성 속으로 시간은 흐른다.△유연(悠然)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속세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도而無馬喧(이무거마훤): 수레와 말 왔다갔다 하는 시끄러운 소리 하나 없구나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하면 그럴 수 있는가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세속에서 멀어지니 꼭 외딴 곳에 사는 것만 같노라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며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문뜩 남산을 바라본다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의 자태는 석양 빛 속에 아름답기 그지없고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아다니는 새들도 서로 함께 둥지로 돌아가네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이러한 모습 속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데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그것을 표현하려 해도 할 말을 잊어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도연명 `음주(飮酒) 제5수`밖에 나와 국화를 땄겠지. 술을 담든, 차를 끓이든, 여튼 그러할 요량으로 국화를 땄겠지.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겠지. 그랬더니 석양이 물드는데 새들은 비끼어 날아 숲으로 깃들어갔겠지. 이런 순간들 속에서 “진의(眞意, 진짜 의미)”를 느꼈다니? 도연명은 표현하려 해도 할 말을 잊었다고 했지만, 이건 능청에 지나지 않지. 이미 그는 말을 다해버렸으니까.그렇다면 도연명이 느낀 `삶의 진짜 의미`는 뭘까? `진의`가 어떤 시구를 받느냐에 따라 그것은 다르게 해석 될 수 있지. 바로 위의 두 구절, “山氣日夕佳 / 飛鳥相與還”(산의 자태는 석양 빛 속에 아름답기 그지없고, 날아다니는 새들도 서로 함께 둥지로 돌아가네)을 받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되면 새를 사람으로, 석양을 말년의 삶으로, 둥지를 죽음으로 치환할 수 있겠지. 삶의 진리란 결국 늙으면 죽는다는 것. 삶의 `진의`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단순하고 극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한편 `진의`는 그보다는 그런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저 `유연(悠然)`에 걸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이것을 `문득`이라고 옮기긴 했지만,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지. `유연`히 남산을 보았다는 건, 놔두는 대로 두어도 그러려고 그랬다는 듯이 산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뜻이지. 풍경이 `나`를 불러 세운 것도, 그렇다고 `나`가 그렇게 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 상태, 온전히 우연도 아니고 온전히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닌 상태, 풍경과 내가 맞닥뜨렸다고 해야 할까, 바로 그런 상태에서 남산을 본 게지. 그랬더니 석양이 지고, 새가 날더라는 것. 고개를 들지 않았으면 놓쳤을 바로 그 순간의 `남산`. 아쉬움이란 늘 사후적이어서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발생하는 감정이지. `나`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남산`에는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었지. 그러니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해서 후회고 자시고 할 건덕지 같은 건 없지. 그럼에도 고개를 들어 그 풍경을 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풍경이 `나`의 가슴에 와 박혔다는 것. 남산, 석양, 새와 나의 조우! 그리고 그러한 조우를 만들어내는 힘, 유연! 삶의 진정한 의미는 그러한 유연함 속에 깃들어 있겠지. 결국은 설명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고, 그저 감탄하게만 만드는 그러한 힘, 그 힘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은 텅 비어 있는 어떤 힘. 거기에 `진의`는 깃들어 있겠지. 그러니 `진의`는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순간,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그 순간 우리를 스쳐지나가겠지. 그러니 진리는 오직 휙 스쳐가는 상으로만 존재하고, 그 상을 부여잡는 사람은 오직 시인이지.

2017-10-20

한국의 누드화와 구본웅의 `여인`

△한국의 누드화 한국의 누드화는 1910년대를 전후로 그려졌다. 한국의 전통문학에서는 생소했던 누드는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누드화는 신문에 작품이 소개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조선경무국이 “이해 없는 일반의 부도덕한 흥분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신문에 누드화 사진을 실을 수 없게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김관호는 1916년 동경미술학교의 졸업 작품으로 전라의 두 여인이 해지는 강가를 향해 뒤돌아서 있는 모습을 그렸고 제목을 `석모(夕暮)`라 붙였다. 이 작품은 제10회 `문부성미술전람회`(`문전`)에서 특선을 받게 되었다. 조선에서도 아니고 일본, 그것도 정부가 주도하는 미술전람회에서 입성하였으니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사진으로 게재되지는 못했다.이러한 관행은 광복이후에도 이어졌다. 1949년 경복궁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입선된 김흥수(1919~)의`나부군상`은 여러 개의 나체 스케치를 조합한 그림이다. 하지만, 당국은 화가가 여러 명의 여인을 한 장소에서 벌거벗겨 놓고 그렸다는 이유로 풍기문란을 적용하여 작품을 전시할 수 없게 하였다. 이 그림은 화가가 근무하는 학교에 걸어두었는데 한국전쟁 때 유엔군 병사들이 조각 내놓았다는 풍문이 전해지기도 한다.어찌 되었던 누드화는 계속 그려졌다. 1928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나혜석의 `나부`, 1936년 `문전 감사전`에 입선 한 후 1937년 `선전`에 재출품하여 `창덕궁 상`을 수상한 김인승의 `나부`, 1936년 제16회 `협전`에 출품한 임군홍의 `나부와상`, 서진달의 `왼손에 입을 댄 나부`(1937) 등이 있다. 그 외에 누드화라 할 수 없으나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은 상반신을 드러낸 여인을 볼 수 있다.△구본웅과 이상이러한 누드화 중 주목을 끈 작품은 1935년 전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구본웅의 `여인`이다. 그 전에 구본웅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구본웅은 190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살 무렵 입은 척추 장애를 앓았다. 이런 구본웅의 모습 때문에 조선의 로트렉으로 불렸다. 구본웅은 경신고등학교에서 미술을 배웠고 김복진 밑에서 조소를 배웠으며, 1927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하였다. 이후 일본에서 수학하다 1933년 다이헤이요(太平洋)를 졸업하여 귀국하여 창작과 비평활동을 겸하였다. 또 `청색지`를 창간하여 이상, 이육사 등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하였다.이상과 구본웅이 친해진 것은 아마 그가 구자혁의 아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자혁은 기독교 출판사인 창문사를 인수하여 다양한 책들을 발간하였다. 이상은 이 출판사에서 편집이나 인쇄를 의뢰하면서 창문사를 알게 되었고, 또 창문사는 이상의 능력을 알아보고 표지나 삽화를 청탁하면서 관계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구본웅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구본웅을 먼저 알게 되면서 창문사와 관계를 맺었을 수도 있다. 정확한 것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분명한 것은 이상과 구본웅은 친했다는 것이다. 구본웅은 이상을 위해 1935년경에 `우인상`을 그려주었다. 권영민 교수는 이상은 구본웅을 위해 `차8씨의 일일`이라는 시를 써 주었다고 한다.△ 구본웅의 `여인`어찌되었든 구본웅과 이상은 친했고, 구본웅도 그림을 잘 그렸고 이상도 그림을 잘 그렸다. 구본웅의 `여인`은 당대에 그려진 다른 누드화와는 다른 점이 있다. 당대의 누드화와 달리 머리 뒤로 손을 넘겨 깍지를 낀 듯한 모습은 강렬하면서 도발적이다. 김현숙은 이 작품과 유사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토미 가쯔조(1895~1981)의 `女`와 비교하고 있다. “어깨와 목을 삼각형으로 연결시킨 표현”에서 두 작품은 유사하지만, 사토미의 윤곽선이 “형태의 윤곽을 한계 짓는 소극적 기능에 머무른다면 구본웅의 경우는 선의 강약과 속도감이 화면”을 지배한다고 본다. 강렬한 색채, 그리고 분방한 필치의 굵은 선은 작가의 체취를 유감없이 표현해 내고 있으며, 이러한 인체 표현은 이전의 전통과 다르다. 자, 그럼 이제 작품을 감상해볼까.그녀의 얼굴은 왼쪽 위를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의도적으로 보인다. 유난히 두드러진 왼쪽 광대뼈, 그 위로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그 빛이 너무도 강렬하여 얼핏 보면 얼굴의 왼쪽 면이 그림의 중심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도발적으로 치켜뜬 찢어진 왼쪽 눈초리, 그것은 굵고 강해보이는 머리칼 부근에서 초점을 잡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왼쪽 눈은 그런 식으로 물러나고, 오른쪽 얼굴이 강렬하게 부각된다. 왼쪽눈이 빛을 향해 도발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오른쪽눈은 그 빛을 피하는 듯, 한 발짝 비켜서 있다. 지그시 감은 눈과 그 위에 내려앉은 옅은 명암은 부끄러움을 피하고 있는 듯 수줍지만, 눈동자를 가리는 두터운 눈꺼풀이 만들어내는 곡선은 우울하면서도 관능적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 눈과 눈을 갈라놓는 코는 또 어떤가. 얼굴에 비해 큰 듯도 하지만, 정작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코가 만드는 그늘인데,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제 빛이 왼쪽에서만 들어온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녀의 정해지지 않은 눈빛과 표정, 그리고 코가 만드는 명암, 얼굴을 바치고 있는 가는 목, 그의 왼쪽에서 오른쪽 뒤로 돌아드는 승모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가슴, 얼굴의 좌측에서 우측으로 다시 목과 어깨를 지나 가슴으로 시선을 이동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는데 구본웅은 이를 통해 정지된 화면 속에 이 여성의 역동적 움직임을 보이려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여성은 화가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전후좌우로 흔들며 그녀의 강렬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이 그림의 강렬한 역동성, 이 일렁임을 부각시키는 중요한 요소는 그녀를 휘감는 검고 굵으면서도 거친 외곽선이다. 가슴의 선은 그녀의 강한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질 듯 팽창해 있으며, 잠깐 이완된 왼팔 상박을 지나는 선은 수축할 것을 대비하여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찰나가 아니라 찰나들을 차곡차곡 포개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이 그림의 역동성과 생명력의 비밀일 것이다.

2017-10-13

사랑에 관한 짧은 대화

△에로틱한 사랑나: 사랑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세요?당신: 라다크에서는 일처다부제래요. 다부제라고 하지만 무한정 남편을 둘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대개 두 명의 남자와 같이 산대요. 이곳 사람들은 사랑 따윈 하지 않는대요. 왜냐면 사랑은 독점적인 거니까! `에로스의 종말`(한병철)에서 사랑은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타자의 타자성을 알게 된다는 것 그것 자체가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다시 라다크로 돌아가자면 일처다부제인 이곳 사람들은 한 집에서 여자와 남자 둘이 함께 살아요. 때론 셋이서 함께 자기도 한다더군요. 모르겠어요, 저는 에로스하면 왠지 철학적인 것보다 에로틱한 것이 떠올라요. 정말 에로스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바로 이런 살과 살의 직접적 접촉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나: 그런데 육체적 사랑은 금방 식어버리지 않나요?당신: 물론 그렇긴 하죠. 그래서 사랑은 결국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닐까요? 여기 계신 분들도 다들 불같은 사랑을 해보셨거나 하고 계실 것 같은데…. 물론 저도 그런 사랑을 해봤어요. 정말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제 몸의 솜털 하나하나까지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저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늦거나 약속을 바꾸어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제 모든 감각이 그 사람을 향해 쏠려 있으니까요. 음, 무의식적 사려 깊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상태가 되는 거죠. 그 사람이 제게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나도 당신처럼 착해져야 할 것 같고, 나도 당신처럼 착해지고 싶다고, 이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당신을 위해서, 와 같은 오글거리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좋았어요.아시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런 시간은 지나가고 말아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처럼 그렇게 흘러내리고 말아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싸우게 되죠. 이 싸움을 견뎌낼 것인지 말 것인지, 이 싸움을 견뎌낼 가치가 있는지. 여기서부터는 낭만이나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 지배하는 시기가 오죠. 그것을 참아낸 후,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새롭게 다시 사랑하게 되었을 때 이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는 거죠.△인류애나: 이런 이성간의 사랑도 좋지만 조금 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당신: 최근에 `페스트`라는 책을 읽었어요. 잘 생각은 안 나는데 더듬어 보자면 이런 장면이 있어요. 리외가 페스트 속에서 페스트와 열심히 싸워요. 그렇지만 그가 하는 일이란 페스트 환자라는 것을 진단하고, 그 다음 격리시설로 옮기고, 그러면 남은 가족은 울며 리외에게 제발 집에서 치료받게 해달라고 말하죠. 당연히 리외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그러면 남은 가족들은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참 인정이 없군요. 그 말을 듣자 흥분한 서술자가 튀어나와 천만에 그는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야, 라고 큰 소리로 말해요.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그래서 리외의 `인정`을 반강제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어요. 반강제적이라고 말했지만, 완전히 동의하게 되었어요. 리외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푼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리외 같은 사람요, 페스트 환자를 발견하고 명명하고 그리고 그 죽음까지 지켜볼 수 있는 사람, 그 참혹한 일련의 과정을 모두 수행해 갈 수 있다는 것, 그건 인정이나 배려 같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의 정확한 이름이 `사랑`인 것 같아요.몇 년 전이더라, 한 5~6년 되었던가요? 그 공지영 소설가의 소설을 영화한 `도가니`가 개봉했을 때 억지로 보러 갔던 적이 있어요. 내용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걸 영화로 보아야 한다는 것, 그 사건에 저 역시 목격자로 참여하여 저열한 인간들과 그 저열함에 속수무책인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영화관이 CGV였는데 맥주를 팔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마시면서야 겨우 영화를 볼 수 있었어요. 너무 처참한 것에는 눈을 돌리기 쉬워요. 그런데 리외는 어떻게 그것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참을 수 없는 것까지 참아내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전 사랑에 관해서라면 `페스트`를 추천하고 싶어요.▲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혐오 문제나: 조금 다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주로 이성간의 사랑이니까, 여성과 남성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여혐이나 남혐과 같은 혐오문제가 파괴본능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당신: 질문의 취지에 빗겨가는 것 같지만, 사회자께서 여혐이나 남혐이 파괴본능으로 나아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의 취지를 충분히 공감해요. 하지만 어떤 발언이나 행위에 여혐이나 남혐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 쯤 많은 페친을 몰고 다니는 남성 시인이 여혐 논란에 휩싸였어요. 누군지 아실지 모르지만, 저는 그 시인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둘게요. 한 기사를 계기로 말이죠. (지금부터 `그 시인`을 R이라고 부를게요.) R은 자신은 여성혐오자가 아니며 이런 악의적 기사는 언론이 문인을 길들이는 방식이다, 라고 대응했어요. R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R의 말이나 글이 여혐이면 우리는 아무 말도 안하고 살아야 한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비슷한 일은 박근혜 탄핵 촛불문화제에서도 있었어요. DJ DOC이 박근혜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수취인불명`이라는 노래가 여혐논란에 빠졌어요.너무 돌아왔네요. R이나 DJ DOC이 여혐이다 아니다, 를 말하려는 건 아녜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여혐`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는 새로운 장치로 들어서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이 단어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서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여혐`이나 `남혐`은 꼭 파괴본능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한 번 더 생각한 뒤에 말하게 만든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그래요, 앞에서 저는 `여혐`이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는 새로운 장치`라는 말을 썼어요. `규율`이나 `장치`, 이런 말에 거부감을 보이실 수 있지만, 저는 이것이 문명 혹은 문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최근에 본 문화에 대한 정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발 하라리의 것이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해요. 문화란 “수백 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인공적 본능`이다”라는 거죠. 문화는 우리의 야만을 가리고 있어요. 문화는 야만을 은폐하고 억압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야만은 은폐되고 억압되어야 하지만, 또 어떤 야만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할까요? 그것이 사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7-09-29

알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훈장과 영리한 제자, 주인과 `다로` 이야기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라 썰렁할 수도 있겠지만 옛날이야기란 게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는 법이니까 또 들어도 나쁠 건 없을 것 같네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옛날에 영리한 제자가 하나 있었더랬죠. 훈장이 어느 날 외출을 하면서 이 제자가 마음에 걸려 벽장 항아리에 있는 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죠. 이야기 속에서 금기는 위반을 위해 존재하죠. 위반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끌어갈 수 없으니까요. 우리의 주인공은 다른 아이의 등을 밟고 올라가 항아리를 꺼냈다죠. 훈장은 항아리에 담긴 것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그게 독약이라고 말했겠지만, 이 영리한 녀석은 훈장이 그걸 몰래 먹는 걸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꿀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친구들과 조금 맛만 보자고 생각했는데 웬걸, 다 먹어버리고야 말았네!겁이 덜컥 난 학동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이 영리한 제자 녀석은 훈장이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리고 방안을 마구 어질러 놓았어요. 그리고는 꿀단지를 끼고 앉아서는 훈장이 들어오길 기다렸어요.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봤겠죠. 훈장이 돌아와 방을 보니 가관이거든요. 제자는 울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는 더 가관이었다죠. 자신이 친구들과 방안에서 놀다가 그만 도자기를 깨뜨렸는데 훈장님이 그것을 아낀다는 것을 알고 죽으려고 벽장 안에 있는 것을 꺼내어 먹었는데 아무리 먹어도 죽지를 않는다고요.그런데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요? 훈장처럼 욕심내면 안 된다? 아니면 훈장같이 권위 있는 사람을 골려 먹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걸까요?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진부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죠. 이 영리한 제자가 완전범죄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럴 리 없겠죠. 얄팍한 말장난은 언제든 들통나기 마련이니까요. 일본에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나 봐요. 거기에는 훈장과 제자가 아니라 주인과 `다로`라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전체 내용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결말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데 주인이 다로의 간계를 알아채고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며 뒤쫓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군요. 일종의 소극이라고 할 수 있죠.△앎과 모름의 양태지젝은 앎과 모름의 양태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어요.“알려진 알려진 것들(known knowns)이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알지 못함을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즉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잊지 말고 덧붙여야 하는 것은 결정적인 네 번째 항목이다. “알려지지 않은 알려진 것들(unknown knowns)”, 즉 알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들. 이는 바로 프로이트적인 무의식이다. 라캉은 이를 “그 자신을 알지 못하는 앎”이라고 말하곤 했다(슬라보예 지젝, `이라크`, 박대진 외 옮김, 도서출판b, 2004, 19면).조금 복잡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앎의 양태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가 있고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을 때가 있죠. 이럴 테면 우리는 모든 사물에 무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무게를 지니게 만드는 것이 힉스 입자일 거라고 추론할 뿐 아직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어요. 안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리고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 앎은 이런 식으로 존재합니다.모름의 양태 역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우선 정말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들. 여성을 비하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른 채 행동하는 사람도 있죠.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사악한 사람일 것이고, 모르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 되겠죠.그리고 마지막으로 알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바로 다로처럼 말이죠. 우츠다 타츠로는 다로의 이야기에서 `억압기제`를 읽어내고 있어요(`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38~43면). 다로는 알고 있음을 모르려고 해요. 뭘 모르려고 하냐고요? 생각해보세요. 주인이 다로가 영악하다는 것을 몰랐다면 꿀을 독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다로는 자신이 영악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주인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려고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냥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모르려고 한다는 것이죠.이러한 적극적인 모르려함,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다로는 마음속으로 주인을 깔보면서 자기보다 우둔한 주인이 결코 자신의 속임수를 눈치 채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는 거죠. 주인을 속여먹겠다는 이 욕망이 다로를 무지 속으로 끌어들이고, 다로는 이렇게 무지한 상태가 유지되기를 절실히 욕망하죠. 억압기제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면서 다로의 개성이나 인격을 형성하게 됩니다.△치부를 드러내는 일현실 속에서 `다로`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할 때 겨우 대북방송을 하던 정권에 공모하던 그 집권당이 대표적인 예인 것 같아요. `세월호` 사태를 교통사고에 비유하고 `메르스` 사태로 죽은 환자의 숫자보다 감기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고 말했던 그 사람들 말예요. `순실`이 내각을 구성하는데 일조했던 당시의 집권당 말예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잘 알면서도, 그들 스스로가 적폐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모르려고 하죠.그런가 하면 브레히트 같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죠.“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김광규 옮김) 전문이 시는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살아남은 `나`, 더 정확히는 나의 욕망은, 살아남은 진짜 이유를 알고 있으나 그것을 모르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꿈을 통해서 알게 되죠.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약한 자들의 죽음을 방관하였거나 그러한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공모했기 때문에 `나`는 살아남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런 점에서 치명적인 치부를 폭로하는 일은 우리를 죽이기보다는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은 주체를 죽음으로 내몰기보다는 죽음에 상응하는 전환을 삶 속으로 도입하죠. 살아남은 자, 즉 `강한 자`는 진실로 강해져야 해요. 약한 자의 죽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진실로 강해져야 해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강한 자`였습니다. 그곳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어코 증언했던 그는 진실로 강한 자였어요. 라캉과 지젝은 `모르려 함` 즉 “그 자신을 알지 못하는 앎”에 집중했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억압기제이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신분석은 억압을 해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억압이 무엇인지 아는 데 목적이 있어요. 억압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억압되어 있음을 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억압되지 않은 인간은 없다는 것을 아는 일이기도 하죠.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Nihil humani a me alienum puto).” 이것은 라틴어 경구예요. 병리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어요. 병리적인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며, 윤리이지 않을까요.

2017-09-22

청록파는 어쩌다 청록파가 되었나

경주에는 우리가 잘 아는 시인 박목월이 있다. 그리고 박목월은 청록파로 잘 알려져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박목월에 대해서도 하겠지만 오늘은 박목월보다는 청록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청록파`가 아니라 `청록집`에 관해 말해왔다. 사람들은 청록파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청록파`가 어쩌다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 문학사에서 엇비슷한 경향을 띠는 사람들을 `~파`라고 부른다. 김소월과 같은 시인은 `민요시파`고 정지용과 같은 시인은 `시문학파` 또는 `순수파`라고 불리며, 서정주는 `생명파`로 분류된다.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자신들을 스스로 그렇게 부를 때도 있지만 대개 사후적으로 규정되며 문학 연구자들이 그 이름을 명명한다.다시 말해 유파의 이름은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지어지며, 유파의 이름이 곧 그 유파의 성격을 대변한다.그렇다면 `청록파`의 유파적 성격은 무엇인가? `청록(靑鹿)`은 `청록집`에서 가져온 것이며, 이 `청록`은 다시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가져온 것이다.아시는 바와 같이 `청록집`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박목월이다. 이에 대해 그는 “푸른 사슴이라는 것이 보다 참신하고 날렵하다는 은근한 자부심과 새롭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연구자들은 `청노루`라는 생소한 이름 앞에서 “청(靑)은 현(玄)과 흑(黑)에 통하는 것으로 그것은 거무스름한 노루나 사슴”이라고 나름대로 설명하기도 했다.그러나 `청록`은 박목월이 직접 해명했던 것처럼 “정신적인 동물로서 서정화시킨” 개인상징이다. 그런 점에서 `청록파`의 `청록`을 통해 유파의 특징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박목월의 설명은 `청록집`의 이름을 붙인 이유에 관한 것이지 `청록파`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어쩌다 `청록파`가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는가?▲ 청록집 초판 표지. /동리목월문학관 제공△`삼가시인` 혹은 자연파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은 1946년 6월 을유문화사에서 공동 사화집 `청록집`을 상재하였다. 이들이 비록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정식 시인이었지만, 이 시집이 나오기 전까지 이들은 한낱 무명시인에 지나지 않았다. 박목월은 이 시집 발간에서부터 장정까지를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국판 일백 페이지, 초판 3천 부, 가격은 25원이었다. 표지에는 푸른 사슴, 속표지에는 촛불을 밝혀 들고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아트지에 2색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자 파트에는 초상화가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으며 자필로 사인한 것이 인쇄되어 있었다.자필 서명의 글씨체가 조지훈은 단아하고 박두진은 달필이면서 날카롭고 나 자신의 글씨는 소박한 대로 야무지지 못하였다. 그것이 각자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초상화는 김의환 화백이 아협 편집실에서 우리들을 모델로 직접 그려 주었다.이들의 초상화를 그려준 사람은 김용환 화백의 계씨로 `주간 소학생`의 삽화를 맡고 있었던 김의환 화백이었다. 당시 을유문화사의 주간을 맡고 있었던 조풍연은 “순수시를 지향하는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3인 시집”이라는 광고 문구를 붙였다.그러면 누가 이 시집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불렀을까? 김동리는 오장환, 서정주, 유치환을 잇는 젊은 시인으로 이들을 추켜세우긴 했지만 이 시인들을 `삼가시인(三家詩人)`이라고 불렀을 뿐 `청록파`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이 시집이 나오고 10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김춘수는 “`청록파`라는 한 에꼴로 묶어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것은 김춘수만이 아니라 당대에 기라성 같은 시인인 서정주도 그런 김춘수의 의견에 동의하여 `자연파` 정도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청록파`는 어쩌다 `청록파`가 되었는가? 그 실마리가 되는 단서를 정한모로부터 찾을 수 있다. 1968년 조지훈의 돌연한 죽음과 함께 `청록파`는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다. 이때 박두진과 박목월은 발 빠르게 `청록집 이후`와 `청록집 기타`라는 시집 두 권을 펴냈고, 여기에 정한모가 `청록파의 시사적 의의`를 실으면서 그는 `청록집`이 “간행됨을 계기로 `청록파`라는 명칭은 정립되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시단이나 학계의 누구도 `청록파`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 `청록집`간행과 함께 `청록파`는 `청록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세칭 `청록파``청록집`이 나오고 3년이 지나 박화목이란 시인은 한 신문에다가 세 시인을 싸잡아 평가절하는 글을 썼다(`청록파의 미래`, 경향신문, 1949.9.28).그는 현실도피적이고, 박목월 시는 소아적이고 조지훈 시는 허무주의적이라며 이들을 맹비난했다. 그런데 박화목은 “필자는 세칭 청록파라 하는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등 삼가시인의 시작 행동을 열성을 가지고 주목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라며 어두를 떼고 있다.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칭`이라는 단어다. 이것은 한낱 수사(修辭)에 지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단어는 “간행됨을 계기로 `청록파`라는 명칭은 정립되었다”라고 한 정한모의 언급과 통하는 점이 있다. 즉 `청록파`는 특정한 누군가가 칭한 이름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즉 불특정 다수가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청록파가 `세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박두진, 박목월 역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1963년 박두진은 `나의 시작 노트`에 “1946년엔가 낸 것이 `청록집`. 그래서 얻은 이름이 달갑지도 섭섭지도 않은 청록파라는 별칭”이라고 했다. `청록집 기타`의 `서문`에서 박목월은 “흔히 우리들을 청록파라 부른다”라고 쓰고 있는데, 이것은 `세칭`을 풀어쓴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문적이지도 않은 독자대중이 부르기 편한 대로 부른 이 이름이 어쩌다가 공식적인 유파의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박목월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집은 처음부터 초판으로 3천부를 찍었고, 이후 3판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이 시집의 대중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가 문단이나 학계를 압도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자리 잡았다고 조심스럽게 추론할 수 있다.이를 정리해보자면, `청록집`이 나올 당시 문단이나 학계에서 이 시집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이러한 시집을 눈 밝은 대중이 알아보았고 이들에게 `청록파`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던 것이다. 해방이후 모든 사안들이 이데올로기화 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중립적이고 무관심한 `자연`이라는 소재는 이데올로기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2017-09-15

다시, 가거라 38선아

1946년 최대의 히트곡은 `가거라 38선`이었다. 이부풍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하였으며, 남인수가 부른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아 아아아아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건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릿길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헤맨다//아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아아 아아아아아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삼팔선 세 글자는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더냐손 모아 비나이다 손 모아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하략….(이부풍 작사 `가거라 38선`)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38선은 불가항력적인 것도, 자연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에 의해 그어진 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38선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가거라 38선`은 쉬운 가사를 사용하여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릿길”이라는 노랫말은 분단으로 인해 민족 간의 원한이 더욱 확대 재생산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저하게 반공을 외쳤던 이승만 정권은 이 곡을 전면 금지했고, 머지않아 전쟁이 한반도를 삼켰다.`가거라 38선`이 갑자기 떠오른 건 북한의 핵실험 때문이다. 지금 한반도는 긴장국면에 들어서 있고 다시 전쟁으로 치달을 것처럼 긴박한 상황이다. 이런 문제의 근원에 38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 선이 그어지자 남북은 대치하게 되었고, 그 대치가 낳은 적대감이 한국전쟁으로 폭발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38선은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위 38도에 그어져 38선이라고 불리는 이 선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1945년 8월로 돌아가야 한다.△1945년 혹은 `0년`, 그리고 한반도이안 부루마는 1945년을 `0년`이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해에 인간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파괴적이었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기 때문이다. 부루마는 “세계는 어떻게 잔해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수백만 명이 굶주린 그때, 피의 복수에 몰두해 있던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떻게 사회 혹은 `문명`을 재건할 수 있었을까?”를 물었다.제2차 세계대전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했다. 이 속에서 인간은 치욕적이고 모멸적인 일들을 견뎌내야 했다. 1945년은 `0년`이었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들이 초토화되었다. 그 막막한 폐허에서 인간은 다시 일어섰다. 그리하여 다시 1945년은 `0년`이었다.그렇다면 1945년은 우리에게도 `0년`이었을까? 우리 역시 폐허 위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을까? 8월 15일 아침, 여운형은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로부터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날 밤 건국준비위원회(건준)을 발족시켰다. 건준의 강령은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 민주정권의 수립, 국내 질서 유지 및 대중생활의 확보였다. 8월 16일 여운형은 휘문중학 운동장 연설에서 해방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부위원장인 안재홍은 방송 연설을 통해 건준 결성의 목적과 목표를 밝혔다. 이제 조선인의 힘으로 새로운 나라를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그러나 소련이 38도선 이북을 점령하고 그 이남을 미군이 점령할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조선총독부는 행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미군은 건준이 아니라 일제에게 우리나라를 무사히 이양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본은 남한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미군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용인했다. 미국과 일본은 일종의 동맹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이 공통으로 맞서고자 했던 세력이 소련과 공산주의였기 때문이다.미군과 일본의 밀월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 인천에서 일어났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은 인천에 상륙했고, 많은 인천시민들이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부둣가로 나왔다. 군중을 통제한 것은 여전히 일본경찰이었는데, 그들은 군중들이 저지선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포하였다. 조선인 2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했다. 미군은 일본을 두둔했고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9월 9일, 조선총독부에서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항복문서가 아닌 남조선의 `식민지 통치권`을 이양 받았다. 일본군은 무장해제 없이 `철수`했고, 맥아더는 포고령 제1호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이름의 `점령조항`을 발표했다. 이 포고령에서 맥아더는 남조선이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남조선에 관한 모든 권한을 자신이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조선인에게 요구했다. 특히 제2조는 공공기관과 중요사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종래의 기능 및 의무를 계속 수행하라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친일의 잔재는 고스란히 남한에 남게 되었다. 우리는 끝이어야 할, 그리하여 시작이어야 할 `0`을 끝내 가지지 못했다.△해방 후의 운명해방 후 한반도의 운명을 쥐고 있었던 것은 조선인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었다. 해방의 기쁨이 채 식기도 전에 38선이 그어졌다. 38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분할 지배하자고 제안한 것은 미국이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 소련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미군은 소련군의 남하를 막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소련은 얄타회담(1945.2.8.)에서 180일 이내에 일본과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전쟁을 미뤄오고 있었다. 8월 6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자 180일째인 8월 8일 소련은 드디어 일본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소련군은 8월 9일부터 작전을 개시하여 중국, 만주, 사할린, 쿠릴 열도를 공격했으며, 일부 병력을 한반도로 보내 청진, 원산, 웅기, 나진 등을 점령해나갔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 시기 미군은 한반도로부터 1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키나와에 있었고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소련의 남하와 공산주의화를 막을 최북방 한계선으로 일본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군이 한반도를 향해 진격해오자, 그때서야 비로소 미군은 한반도의 군사적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소련이 한반도를 모두 삼키게 될 것이라는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고 미국은 다급하게 한반도 분할점령을 고려하였다. 8월 14일, 미군은 소련의 진주를 막기 위해 38도선을 분할선으로 획정하고 그 안을 소련으로 보내게 된다. 소련은 다음 날인 8월 15일 미국의 수락을 승인했다. 이에 대해 강준만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38도선은 미국과 소련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미국은 소련이 이 분할안을 선선히 응낙한 데 대해서 놀랐고, 소련은 위도가 그토록 후하게 남쪽으로 내려간 데 대해 놀랐다는 것이다.”8월 24일 평양에 입성한 소련은 총 병력 12만 여명을 북한 전역에 배치했다. 그리고 8월 26일부터 38선을 공식적으로 봉쇄했고 남과 북을 잇는 기차, 도로, 전화, 사람과 물자 등을 금지하였다. 1946년 5월,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미래와 임시정부 수립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 준비모임 성격의 미소공동위원회를 열었으나 이것이 연기되자 전격적으로 휴전선을 봉쇄하게 된다. 이것은 남북분열에서 남북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진행되고 있는 남북문제의 근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17-09-08

천 년 전의 연회가 다시 시작되는 경주의 밤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동궁과 월지: 끝나지 않은 천년의 밤 만약 당신이 경주에서 오늘 밤을 보내야한다면 경주의 밤을 최고로 즐길 수 있는 멋진 장소를 소개시켜주려 한다. 자, 준비가 되었다면 고고고~동궁과 월지는 이전에 임해전지 또는 안압지로 불렸다. 이곳은 신라 왕궁터 월성 동북편 구황들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후기에 폐허가 된 이래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로 불리게 되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당시의 모습을 거의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신라 30대 문무왕이 삼국통일의 완성을 앞두고 당과의 전쟁을 치르며 674년에 궁궐 안에 만든 연못이다. 당시의 이름은 월지(月池)로 통일 후 안정을 누리며 679년에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東宮)을 짓고 뒤로 나라의 경사나 귀한 손님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다. 많은 건물 중 가장 웅장한 임해전은 931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군신들의 연회나 귀빈들의 접대장소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월지의 전체 면적은 4천700여 평으로 못 가운데에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섬이 있다. 누각이 있는 서쪽과 남쪽 호안은 직선, 동쪽과 북쪽 호안은 숨바꼭질하는 듯한 곡선으로 조경 되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공중에서가 아니면 어느 곳에서 보아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없게 설계되었다.고구려의 발달한 토목기술에, 신선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연못을 만드는 백제의 조경사상이 투영되어 환상미를 더했는데 여러 문화를 흡수하여 그들의 것으로 재창조한 신라인들의 뛰어난 미의식이 월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드라마 `궁`의 촬영지기도 했던 이곳은 달빛과 별빛 조명이 조화를 이루어 고즈넉한 야경을 즐기기에 좋다.이곳은 밤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주차비는 무료지만 주차장은 혼잡하여 차를 가지고 온다면 주차하는데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러니 되도록 차를 두고 오는 것이 좋겠다. 밤 9시 30분에는 입장을 마감하니 지금 숙소에 누웠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천원이다. 이 돈으로 천 년 전의 연회를 감상할 수 있다니 환상적이지 않은가! △첨성대: 천 년의 아름다움과 천 년의 의문동궁과 월지를 빠져 나와 얼마간 걸어가면 꽃밭 사이에 첨성대가 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졌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쌓은 돌이 모두 362개로, 음력 1년의 날 수와 같고, 12개의 기단은 1년의 개월 수와 같다.천 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곳이 무엇을 위해 사용된 장소인지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첨성대가 세워진 후, 삼국사기에는 일식, 월식, 혜성의 출현, 기상이변 등을 관측한 기록들이 예전 보다 많고 매우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천문대라고 하기엔 그 높이가 낮으며 별을 관측하기 부적절하다는 반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그래서 첨성대를 두고 많은 주장들이 엇갈린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사방 어디에서 보나 똑같은 모습이므로 해시계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 나아가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건축물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천 년의 의문을 지닌 첨성대는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경주시내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이곳에 불이 들어오면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주차비도 무료, 입장료도 무료다. 24시간 개방되어 있으니 당신은 밤이 새도록 첨성대에 대해 고민할 수도 있다. 고민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니 그게 싫다면 다시 나를 따라오시길. 이제 우린 경주 시내를 볼 것이다. △경주 시내: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곳천 년의 어둠 속을 걸었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올 차례다. 경주 시내에는 현재의 삶이 놓여 있다. 경주의 번화가에 차를 몰고 온다면 주차를 하기 위해 꽤나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차는 잠시 세워두고 밤의 산책을 즐기며 걸어오자. 100m 정도의 길지 않은 거리지만, 서울의 명동에 비겨도 손색이 없다. 카페베네, 파스구찌,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경주에만 있는 카페 SOMA가 있다. ABC마트, 지오지아, 아디다스, 리복, 이센버그와 같은 옷가게에서 쇼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먹을 것도 풍성하다. 피자, 파스타, 치킨, 카레, 숯불갈비 등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있지만, 경주가 아니라면 먹지 못하는 음식들도 여기 전부 모여 있다. 경주빵, 황남빵, 찰보리빵은 경주의 명물이다. 담백한 팥소를 그득하게 넣고 얇은 밀가루나 보리로 옷을 입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경주의 빵이다. 빵을 만드는 전 과정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수제빵이다.그리고 밀면도 있다. 밀면은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간 이북사람들이 냉면이 먹고 싶어도 메밀이 없어 먹질 못하자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내와 가까운 곳에 밀면식당과 밀면전문이라는 밀면집이 이웃하고 있다. 밀가루가 아니라 진짜 메밀가루로 만든 평양냉면집도 있다. 60여 년의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이곳은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의 촬영장소였으며, 맛집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이제 잠을 자야겠다고? 그런데 아직 자야할 곳을 못 정했다고? 안심하시라. 관광 도시답게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취향에 따라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호텔이나 콘도는 주로 보문관광단지 근방에 모여 있다. 펜션을 찾는다면 동해안 쪽에서 경치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잠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접근이 용이한 경주 시내에는 한옥호텔을 비롯하여 게스트 하우스, 펜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아주 간단하게 머물 곳이 필요하다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모텔도 괜찮을 것이다. 모텔은 경주역과 터미널 부근, 그리고 시청 주변에 밀접해 있다.

2017-09-01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린다는 것

서울 용산구는 원효대교, 한강대교, 동작대교, 반포대교, 한남대교를 끼고 있다. 이렇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차도 없고, 운전면허는 있지만 장롱면허인 탓에 한강철교를 통해 용산으로 간다. 용산엔 남산도 있고, 이태원도 있고, 중앙박물관도 있다. 갈 곳도 많고 볼 곳도 많다. 그리고 이곳에는 한때 남일당 건물이 있던 “한강로 2가 63-70번지”가 있다. 이제 이 주소는 말끔히 지워지고 용산4구역 혹은 국제빌딩주변 제4구역으로 명기되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이곳에서 경찰 1명과 철거민 5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 앞으로 용산참사 혹은 용산학살로도 불리게 될 이 사건에 대해 한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 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 목마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라는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문화방송 `뉴스데스크`, 2009년 1월20일,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망루를 불태운 유류의 유증기 성분이 세녹스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도 검찰은 “비슷한 물질이므로 시너라 부르겠다”고 했다. 세녹스는 망루의 전기와 난방에 필요한 발전기의 연료였고, 시너는 화염병의 재료였다. 뒤이어 검찰은 “화염병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화염병이라고 보이므로 화재 책임은 철거민들에게 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세녹스를 시너로 바꿔 부른 이유는 세녹스를 `연료`가 아닌 화염병의 `재료`로 만들기 위한 속셈이었을 것이다. 2009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은 망루 생존 철거민 전원에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 난다.세월이 흐르는 방향을 몰라 나는 더 위로 올라간다. 원효로와 청파동이 맞물리는 곳에는 용산경찰서가 있다. 이곳은 한 때 서울시립자제원이었던 곳이다. 1948년 12월 10일 나혜석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으며,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과에서 수업하였다. 3·1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고, 그의 변호를 맡아주었던 김우영과 1920년 결혼하였다. 1921년에는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것은 나혜석에게도 처음이었지만 서울에서 열린 최초의 개인전이기도 했다. 1927년 김우영과 함께 세계일주를 하였고, 프랑스에 체류하던 중 외교관 최린과의 염문으로 1930년 이혼한다. 그녀는 1934년 잡지`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기고하였다. “조선남성 심사는 이상 하외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남성중심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사회적 지탄과 조롱이었다. 나혜석은 그런 모멸을 몸으로 견뎠다.이렇게 한 많은 그녀의 삶을 뒤로하고 더 올라가면 숙명여대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청파동이 시작된다. 청파동은 용산구의 북쪽에 위치한 동으로 푸른 야산이 많았다고 한다. 이곳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청파역(靑坡驛)으로 불렸는데, 교통과 통신 기관인 역참이 있었기 때문이다. 1894년 한성부의 용산방 중에서 청파계(靑坡契)로 분류되었고, 1914년에는 청엽정(靑葉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46년에 청파동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지만, 1981년 이 지명은 오직 한 시인의 전유물이 되었다.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봄이 오고 너는 갔다.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청파동을 기억하는가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몇 세기 전의 겨울을,(최승자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전문)때로 평론가의 도움을 받을 때 더 잘 읽히는 시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시는 시를 설명하는 말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시도 있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는 그런 시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말한다는 것은 무모하지만, 말할 수밖에 없다.이 시는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짐, 그로 인한 아픔을 아리게 새겨놓고 있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다는 것은 헤어지기 전 `너`가 `나`에게 보여준 태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의 헤어짐을 승인할 수 없다. `너`의 태도가 헤어질 때보다 더 모멸적으로 바뀌었을지라도 `너`에게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다니? 죽은 자가 다시 죽을 수 없듯이 `최후`가 `다시 한 번` 반복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최후`를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 그것은 어떤 `최후`도 `최후`가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너`가 아무리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더라도 그 고통이 만남에 대한 갈망을 분쇄할 수 없을 것이며, `나`를 떠난 `너`를 아무리 만나도 만남에 대한 갈망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최후”일 밖에. “몇 세기 전의 겨울”부터 `나`는 그런 `최후`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 시는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겹쳐놓고 있다.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 내가 빈 벌판을 해맬 때”라는 시구 속에서 세상에게 버림받은 채 병든 몸을 이끌고 떠돌아야 했던 나혜석을 본다.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는 시구에서 망루에서 불타 죽은 저 영혼들이 법정에서 다시 한 번 더 죄인으로 지목받으며 오래도록 죽어가야 하는 저들의 (곧 우리의) 삶을 보게 된다. 죽지 않는 죽음이 2014년 4월 16일과 함께 끝나지 않은 채 다시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나`의 절규를 넘어 지나간 삶과 다가올 역사에 대한 애도다. 현재를 규정하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다. 과거에서 온 시간과 미래에서 온 시간이 만나는 지점, 그리하여 흘러가는 미래와 멀어지는 과거 사이에 놓인 현재는 끝없이 출렁일 수밖에 없다.

2017-08-25

패배를 알면서 패배하기-`페스트`를 읽고

△나를 울린 책과 영혼을 울린 책나를 울렸던 최초의 책은 `플란다스의 개`였다. 책을 덮고 두꺼운 솜이불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넬로를 죽인 작가를 원망했다, 아니 저주했다. 나는 그런 슬픔을 몰랐으며, 그런 가혹한 슬픔이 삶의 실체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슬픔, 어떤 연민도 없이 잔혹한 것이 삶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는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눈물로써 그런 슬픔을 거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리라.그 때 느꼈던 슬픔의 감각이 최후의 감각이길 간절히 바라고 살았다. 하지만 슬픔에 최후란 없으며, 슬픔은 적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슬픔 앞에서 깨닫게 된다. `페스트`를 읽으며 나는 `플란다스의 개`를 읽었을 때처럼 울었다.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것. 슬픔보다 타루가 보여준 고귀한 행동 앞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는 것.며칠 전 만난 분이 자신의 인생의 책을 말해준 일이 있다. 그 분은 그 책의 가치에 대해 확고하고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는데, 그 분의 말을 들으며 나에게 인생의 책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돌아왔을 때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책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제 `페스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리외와 그의 친구들이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평범한 도시 오랑이 갑작스런 페스트로 인해 봉쇄된다. 이 소설은 도시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이 집중하고 있는 인물은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의사 리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그를 도와주는 타루와 그랑을 등장시키고 있다.이들을 통해 작가는 페스트 앞에서 최선을 다해 맞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할지라도 페스트에 맞서는 것이 최선이라는 적극적 허무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페스트는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찾아올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기에 결국 맞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 맞섬은 허무하게 패배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적극적 허무다.페스트로 인한 죽음이 일상화 되어버리는 이 도시에 리외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도망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어떻게든 달아나고 싶은 사람,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탈출하고 싶은 랑베르 같은 사람도 있다. 랑베르 입장에서 보자면 여간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기자인 랑베르는 오랑 사람도 아니고 취재차 이곳에 잠깐 들렀을 뿐인데, 하필이면 재수 없게 페스트에 발이 묶인다. 파리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도 말이다. 랑베르는 간신히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만 탈출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 페스트라는 병에서 달아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죽음으로부터는 도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 역시 리외와 함께 죽음의 공동체에 합류하게 된다.△코타르와 파눌루이와는 달리 페스트를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 중 한 명이 파눌루 신부며, 다른 한 명이 코타르다. 코타르는 정말 재밌는 인물이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사람을 죽이고 오랑으로 숨어들어와 한 동안은 잘 살았으나 형사들이 기어이 그의 목전까지 추격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페스트로 도시가 봉쇄되자 코타르는 기뻐한다. 도시의 행정이 마비되자 경찰들도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을 잠시 멈추었기 때문이다.코타르는 이러한 페스트가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 페스트와 함께 세상이 모두 망해버리길 바라고 있다. 나도 코타르처럼 생각한 적이 있다. 군대에 졸병 생활을 할 때 내무반 생활이 힘들어 늘 얼차려를 받았다. 얼차려를 피하고 싶어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던 적이 있다. 페스트의 상황에서 코타르와 같은 사람을 발견해내는 까뮈의 능력은 정말 놀랍다.파눌루 신부는 코타르와는 조금은 다르다. 파눌루 신부는 페스트를 꼭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고 한다. 페스트는 하느님의 심판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 죄 짓지 않은 자는 이 심판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더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전파하면 된다고 말한다.그러나 오통 씨 아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목격한 후에도 파눌루 신부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며 오히려 더 자신의 생각에 집착한다. 그러다 파눌루는 페스트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감기 같은 것에 걸린다. 파눌루는 이것을 페스트로 오인한다. 그의 오인은 하느님을 믿는 것만큼이나 강력하여 페스트가 아님에도 페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죽고 만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죽음의 공동체악은 상상하기 쉽다. 행해지는 것은 더 쉽다. 건물을 짓는 것보다 부수는 것은 쉽다. 파괴는 쉽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증오하는 것이, 도덕과 윤리를 세우고 지키는 것보다 그런 것들을 파괴하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훨씬 쉽다. 파괴는 형태를 변형시키는 일이다.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은 쉽다. 만들어진 형태를 일그러뜨리기는 쉽다. 하지만 형태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까뮈의 소설 쓰기는 건물을 짓는 일이며,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며, 도덕과 윤리를 세우는 일이며 사람을 살리는 일과 같다.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철저히 붕괴되는 현장에서 목을 길게 드리우고 죽음을 기다릴 수 있고,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쉽다. 살아내는 것보다 죽는 것이 쉽다. 그런데도 그 거대한 재앙,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수습되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속에서, 끝없는 실패 속에서 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가? 왜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병든 사람을 돌보고, 그런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더라도 왜 다시 노력해야 하는가. 왜 매일 매일 실패하는데, 그 끝없는 실패 앞에서도 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연대하여야 하는가, 아니 우리의 연대는 가능하긴 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우리는 연대할 수 있는가. 까뮈는 이런 거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까뮈는 페스트와 같은 무자비한 죽음 앞에서 연대를 통해 맞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까뮈가 말하는 연대의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보인다. 그랑과 리외, 타루와 리외, 타루와 코타르, 랑베르와 리외의 우정은 사소한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대화는 핑퐁게임처럼 주고 받게 된다.위대한 사상이나 사유는 거창하지 않고 단순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이 곧 연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예수는 그 실천의 방법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까뮈는 그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일방적인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라 대화, 오직 대화! 그것만이 길이라고, 그것만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때 우리의 추상성은 구체성으로 우리의 피상적 태도는 실천적 태도로 바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저마다 이런 페스트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죽음이다. 우리는 죽음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하거나 사랑하다 죽는 일이다. 실패의 정면에서 장렬히 실패하는 일이다.

2017-08-18

어른으로 산다는 것

△ `기술이 아재`중학교 때 나이 많은 선생님이 계셨는데 기술을 가르쳤다. 그 분은 우리처럼 고제면에서 태어나 선생님이 되었다. 여러 학교를 전전하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이곳으로 돌아와 기술을 가르쳤고, 짬을 내어 사과농사를 지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라고 했지만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5년도 더 뒤에 정년퇴임을 하셨다. 선생님은 오래도록 늙은 채로 더 늙진 않았다.기술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처럼 세련된 옷을 입지도 않았고, 승용차를 몰지도 않았다.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코란도를 몰았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선생님이 출근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다 알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좁아터진 88고속도로에, 선생님이 그 차를 몰고 대구라도 갈라치면 교통체증이 일어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소문도 나돌았다.그때만 해도 남학생은 기술을 듣고, 여학생은 가정을 들었다. 여학생들은 그래도 실습을 할 수 있는 가정실이 있어 거기로 가고 나면 교실은 반이 비어버렸다. 선생님은 우리를 앞쪽으로 불러 모아 놓고 손주에게 옛날이야기 하듯 수업을 하셨다. 기술이라는 게 실습을 해야지 책으로 배울 거라곤 거의 없어서 선생님은 젊었을 때 일본에 가서 본 신문물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것이 당시 얼마나 놀라운 기술이었는지에 대해 말하셨다. 아니 사실은 놀람 그 자체에 더 집중하곤 하셨다.선생님은 버릇처럼 “내가 아마 경상도에서는 냉장고를 제일 처음 샀을거야”라고 서두를 때었다. 그런 에피소드는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이었지만, 이제 어떤 이야기가 나올 차례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선생님을 무시했고, 우리끼리 `기술이 아재`라고 불렀다.선생님이 가르쳤던 기술발전의 역사, 플라스틱의 종류, 컴퓨터의 역사, 뭐 이런 것들 따위는 다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말이 있다. 사춘기를 갓 지나 이제 머리가 굵어져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일갈했다. “거기 멋있는 줄 알고 그카나?” 사실 그랬다. 그런 게 멋인 줄 알았다. 두발 제한이 있었지만 몰래 머리를 기르고, 무스를 발라 머리를 넘기고, 교복 바지 대신 껄렁한 기지바지를 입고, 모여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그런 식으로 어른 흉내를 내며, 우리는 스스로를 멋있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는 `잘 나가`는 줄 알았다.그 분은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우리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우리의 `기술이 아재`는 `거기 멋있는 줄 알고 그카나?`라는 말을 통해 어떤 것을 멋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생각,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인식, 그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멋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어리며, 그 수준은 얼마나 낮은지를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아마 경상도에서는 제일 처음 오토바이를 샀을거야`와 같은, 당신이 생각하는 자랑, 그 자랑의 수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어른놀이``19세`(이순원).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담에 대한 것이다.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되지만 어떤 소설이 청소년을 위한다거나 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 것이다. 또한 예상독자가 청소년이라고 해서 그 소설을 얕잡아 보는 것 역시 오만이긴 마찬가지 일 것이다.이 소설은 1970년대의 강원도를 배경으로 주인공 정수를 등장시키고 있다. 갓 중학교에 들어간 정수는 문교부장관이 누구냐는 국어 선생님의 질문에 `검정필`이라고 말했다가 망신을 톡톡히 당한다. 교과서마다 `문교부장관 검정필`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대신 `검정필`이라 불리게 된 주인공은, 두 살이나 많지만 같은 반인 박승태와 친해진다. 정수는 승태에게 성교육을 배우고, 승태는 정수에게 학교 공부를 배우면서 둘은 친해진다.천재 소리를 들으며 서울대에 들어간 형 정석처럼 공부로 성공하긴 글렀다고 느낀 정수는 상고를 지망한다. 상고를 졸업해서 은행에 들어가 남들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싶어했다. 돈을 빨리 번다는 것, 이것을 정수는 어른의 징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수는 주판에는 젬병이어서 자신의 생각처럼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정수는 꿈을 농사꾼으로 바꾼다. 대관령에 해도지(賭地) 땅을 얻어 고랭지 채소를 심어 큰돈을 벌겠다는 속셈이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기어이 학교를 그만둔 정수는 배추 농사짓기에 돌입한다. 그해 정수는 일꾼을 구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보다 배추를 늦게 옮기게 되는데,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정수의 배추밭은 풍년이 든다. 소원대로 큰돈을 만지게 된 정수는 그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고 승태와 술을 마시고 매춘을 한다. 그 과정에서 정수는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왠지 그 기간 동안 내가 했던 것은 어른 노릇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른 놀이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내 가슴을 무겁게 한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 다시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 스무 살이 된다고 해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된다 해도 그 일에 대해 어떤 후회나 미련 같은 것이 남는다면 그때에도 내가 하는 짓은 여전히 어른 노릇이 아니라 어른 놀이일 것 같은 생각이 들던 것이었다.”(213면)△ 어른은 어려워정수가 자신이 보인 일련의 행동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은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거라는 걸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한탕을 노리고 도박이나 투기에 뛰어들고 싶을 때라든가,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하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라든가, 그런 순간에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려운 경우는, 오히려 확고한 생각이나 신념에 갇혀 있을 때다. 이것을 자기중심적 사고라고 불러도 좋겠다. 내 조카는 너무 어려서 “너 잘못했지! 빨리 사과해”라고 말해도, 심지어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피아제는 이런 유아기의 심리상태를 자기중심적 사고라고 했지만, 이런 성향이 꼭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고 몰인정하게 행동하는 구두쇠이야기가 동양과 서양에서 발견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서양의 스크루지는 꿈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난 뒤에야, 우리나라의 옹고집은 도승의 도술로 갖은 고생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잘못된 신념에서 벗어나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예측하고, 자신을 돌이켜 행동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어쩌면 진짜 어른은 내 행동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게 만드는 나의 생각이나 신념을 포함하여 나의 관념과 사유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언제든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 사람을 어른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고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어려우며, 우리는 늘 어른과 아이의 중간 상태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2017-08-11

언어콜라주와 고양이

1. 언어콜라주언젠가 연희창작촌에서 진은영, 김소연, 심보선 등의 시인들이 진행하는 `나를 돌아보는 여덟 개의 방`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시 창작 강의가 아니라 시를 가지고 놀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도 모르는 나의 상처를 보듬고 쓰다듬는 그런 수업이었다. 그러니까 시를 통한 치유 수업이었고, 또 동시에 내가 잊고 있었던 언어를 찾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시를 쓸 수 있도록 이끄는 특이한 형태의 수업이었다.이 수업에서는 시의 특징, 의미, 표현방식 따위를 가르치지 않았다. 주로 놀이 형태로 이뤄졌는데 `사진으로 말하기`, `초성놀이`, `단어퀼트`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사진으로 말하기`는 유년시절의 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 사진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그것을 토대로 시를 쓰는 것이다. 초성놀이는 단어의 제일 앞에 오는 자음을 무작위로 배열하여 거기에 맞게 단어를 만들어가며 시를 완성해나가는 놀이다. 퀼트는 자수나 뜨개질 같은 것이므로 단어퀼트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단어를 이리저리 연결하여 시를 만든다.놀이마다 재미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언어콜라주`다. `단어퀼트`는 주어진 10개 정도의 단어를 이용하여 시를 짓는 일이라면, 언어콜라주는 단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강사로 참여한 시인이 자신의 시집 한 권 전체를 복사해 오고, 그 복사된 종이에 있는 단어들을 오려붙여서 정말 콜라주처럼 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다른 사람이 힘들여 쓴 시를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야릇한 쾌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의 언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고, 특히 그것을 오려서 붙이기 때문에 언어와 언어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고 또 연결과정에서 비약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언어는 모두에게 널려있지만 특히 나와 친숙한 단어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가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나는 `그리하여`와 같은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결론 부분에서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강조하고 싶을 땐 `그리`를 떼고 `하여`만 사용한다. 이렇게 단어를 줄이면 훨씬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는 느낌이 들어서다.또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문체(style)와 문채(figure)를 가지고 있다. 문체란 문장의 특색이나 문장의 구성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문체를 결정하는 것은 서술어다. 어떤 서술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오리다`와 같은 극존칭 서술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시는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문채`는 글을 강조하거나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수사법이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즐겨 쓰는 비유법이 있다.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에서 알파치노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바람둥이 역할을 맡았다. 클럽에서 만난 여성이 웃자 알파치노는 이렇게 말한다. “웃음도 아름답군요.” 보지도 못하면서 아름다운 것을 알아내는 능력이라니! 그런데 정말 놀라운 그의 능력은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바꿔내는 말하기 방식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말채`를 사용하는데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우리는 언어를 다양하고 무작위하게 사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익숙한 것들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므로 내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내가 있다. 언어콜라주는 내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언어로 시를 만듦으로써 나의 정신과 사유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 놀이는 `나`라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언어를 통해 체험케 해준다. 언어콜라주는 이전에 생각지 못한 시어나 시구를 만나게 해주며 그렇게 선택된 것들이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결합하여 자연스럽게 한 편의 시를 직조하도록 돕는다.2. 고양이언어콜라주는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는데 이 놀이를 전라북도 장수군의 장수고등학교에서 해본 적이 있다. 장수읍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얼마나 높은지, 그럼에도 그 굴곡이 얼마나 유순하고 유려한지를 말이다. 아이들 역시 산을 닮아 있었다.학생들은 시를 자르고 붙이며 자유롭게 놀았고, 마지막엔 그렇게 만들어진 시를 발표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시가 형옥이가 만든 시다. 형옥이의 아빠는 큰 배를 모는 선장이라 집에 자주 오지 못하고, 어머니는 인천에 계시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다. 내가 본 형옥이는 이랬다. 학교 운동장 단상에 누가 먹다가 남겼는지도 모르는 귤껍질이 버려져 있었다. 녀석은 그걸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긁어모아 휴지통에 버리고는, 손 한 번 씻고 씨익 웃어버리고는 그만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보지도 않는데도 말이다.백석은 `흰 바람 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애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고 썼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정말 하늘이 사랑할 만한 그런 아이였다. 형옥이가 언어콜라주를 통해 만든 시의 제목은 “고양이”고, 그 시의 전문은 이렇다.아무 데로나 가고아무 데서나 자고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린 눈빛입 씰룩거리네좋다사람 기척에 힐끗 뒤돌아보네그러면 그때 나는 돌아와낮잠이나 자고 싶어너와이 시에서 고양이라는 말은 제목에서밖에 나오지 않는데 고양이를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아무 데나 가고 아무 데서나 자는 고양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형옥이는 고양이보다 더 자주 밖엘 나가야 한다. 집과 학교가 먼 데다 교통이 불편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에야 겨우 집에 돌아온다. 고양이는 그런 형옥이를 기다린다. 그런 고양이와 함께 낮잠을 자고 싶단다. 허허, 이 얼마나 소박한 소망이란 말인가!▲ 공강일이 시에는 고양이와 형옥이의 내면이 혼재 되어있다. 고양이가 형옥이를 기다린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형옥이도 고양이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형옥이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형옥이가 또 기다리는 것은 아빠가 아닐까. 아빠가 돌아오면 아빠 옆에서 자고 싶다는 바람을 고양이에게 투영한 것 같다. 2연의 `좋다`와 4연의 `너와`라는 시어는 행간의 격차가 크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은 언어콜라주가 아니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외로움이 `고양이`라는 언어를 통해 그 정체를 드러낸 것 같아 아팠다. 언어콜라주는 다른 사람의 언어로 다른 세계로 나아가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그러니 “고양이”는 녀석의 내면이 투영된 녀석의 시다.

2017-08-04

질주본능과 언어

1.질주본능. 태어날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욕망, 질주!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고, 속도를 내서 위험하게 고개운전을 하는 것은 더욱 싫다. 그런 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그런데 산행을 하며 나에게도 그런 질주본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날씨는 습기를 물고 있었고, 대략 1억5천km 정도에서 날아온 빛의 알갱이는 수증기를 데워 날씨는 찜통 같았다. 그날 산행의 1/3쯤 와서 우리는 밥도 먹고 술도 먹었다.일행이 출발했는데 나는 하필 스스로를 `엉아`라 부르는, 내일 모레면 일흔인 어르신 앞에 섰다. 그 분이 갑자기 나를 소처럼 돼지처럼 내몰기 시작했다. “자, 가자!”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쉽게 달아올라서였던 걸까, 아니면 그 말에 무슨 주술적인 힘이 있었던 걸까. 나는 꼬리에 불이 붙은 짐승처럼 사납게 달렸다.앞에서 느긋하게 걷던 분들이 황소같이 거칠게 몰아쉬는 내 숨소리에 길을 텄고, 나는 거의 시속 5km의 속력으로 산을 오르고 내렸다. 순식간에 두 개의 봉우리를 지났지만, 우리 `엉아`는 지친 기색도 없이 “잘한다, 자 가자!” 나보다 서른 살은 더 많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떻게든 그 분을 떼어놓고 싶어 더 더 빨리 달렸다. 그러나 그 분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왔고 나는 결국 세 번째 봉우리에서 기진하고 말았다.우리 `엉아`께서는 “그럼 이제 내가 앞에 설 테니 따라와”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발과 두 개의 스틱을 마치 취권 같이 움직이며, 넘어질 듯 구를 듯 달음박질쳤다. 그야말로 후다닥. 나는 망연자실해서 그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거의 몸을 끌듯이 산을 내려왔고,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30번 국도에 이르러 이제 2km만 가면 마이산인데 도저히 갈 수 없어 퍼져버리고 말았다. 이건 비밀이지만 우리 `엉아`께서도 거기에 널부러져 있었다.2.흠, 질주본능이라…. 그런 본능이란 게 있을 리 없다. 모르긴 몰라도 질주와 본능을 한 단어처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한 CF에서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밤안개가 음산하게 피어오르는 빌딩. 그 사이로 검은 표범이 어슬렁거리며 등장하면 스산한 음악이 뒤따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사나운 표범의 눈빛이 정면을 향하더니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진다. 그에 맞춰 음악도 무겁지만 조금씩 빠르게 변해간다. 이제 표범은 속력을 높여 달린다. 달리던 표범은 어느 순간 승용차로 변하고, 음악은 빠르면서 힘 있게 바뀐다. 이제 성우가 등장할 차례다. 거의 1분 동안 이어지는 이 광고에서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성우의 멘트는 겨우 세 개 밖에 되지 않는다. 30초 즈음에 한 번, 마지막 3초를 남겨 두고 한 번, 그리고 마지막엔 외국인의 대사다. 그 대사는 이렇다.“힘에서 야성이 느껴진다. 질주본능! 라노스”그렇다. 질주본능이라는 말은 사실 라노스라는 승용차를 광고하기 위해 만든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 광고의 힘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라노스는 시판 첫날 계약실적이 6천709대나 되었다. 이를 필두로 대우는 1997년 업계의 단연 톱이었던 현대를 6천여 대 차이로 바짝 따라붙었으며, 대우의 전체 승용차 판매는 전년대비 거의 60%나 증가했다. 대우는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세 개의 신차 시리즈를 잇달아 내놓으며 내수시장을 공략했고 현대와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였다.이렇게 잘 나가던 대우는 1999년 부도가 나고 만다. 대우 자동차의 전매특허였던 `질주본능`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가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 말은 경마장에서도, 경륜장에서도, 스키장에서도 애용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있지도 않은 것을 본능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언어는 무섭다.3.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250만 년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를 단 세 개의 혁명으로 압축하고 있다. 신석기에 있었던 `농업혁명`이야 잘 아실 테고, `과학혁명`은 조금 생소할지 모르나 `산업혁명`을 떠올리면 금방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러면 하나 남은 혁명은 뭘까? 인류에게 일어난 최초의 혁명, 그것이 `인지혁명`이다. 하라리는 이 혁명이 대략 7만 년 전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며, 이 혁명의 핵심에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인간은 말을 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유일한 특징은 아니다. 사실 모든 동물은 나름의 언어를 구사한다. 벌이나 개미같이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 역시 복잡한 사고를 전달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유인원이나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는 인간처럼 목소리를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들이 사용하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언어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특징은 무엇일까? 거짓말을 하는 능력! 아쉽지만 틀렸다. 원숭이도 거짓말을 한다. 바나나를 발견한 원숭이 두 마리가 서로 가지려고 싸우고 있다. 이 때 한 마리가 “주의해, 사자야!”라고 외치면, 다른 한 마리가 몸을 숨기려고 도망간다. 그러고 나면 이 거짓말쟁이 원숭이는 바나나를 여유롭게 챙긴다.수다와 뒷담화! 그래, 이건 거의 답에 가깝다. 다른 동물들의 언어가 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인간은 중요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왜 그러냐고? 하라리는 인간이 수다를 떨고 남을 헐뜯으면서 서로의 친분을 확인하며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켜 왔다고 말한다. 하라리는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떠는 행위를 통해 언어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그런데 하라리는 인간의 언어에서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사피엔스`, 48면)이다. 즉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 단군신화를 비롯해 전 세계에 산재한 시조신화는 허구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낀다. 민족은 이렇게 탄생한다. 종족이 같아서 민족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민족인 것이다. 신이 있다는 허구, 사람들은 이 허구를 허구인지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사원을 만들고 무덤을 만들었다.`질주본능`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를 이제 마칠 때가 됐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질주본능이란 없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려는 욕구, 이것이야말로 진짜 본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주본능이 있다면 그건 말을 싸지르는 언어의 질주본능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을 잘하는 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막말을 하면 된다. 국민을 `레밍`에 비유하고, 그 말에 해명을 한답시고 자기 SNS에 11장도 넘는 분량의 글을 써대는 그런 행위, 이런 것이야 말로 언어의 질주본능이 아닐까?

2017-07-28

흐르는 채 멈추는 것들

① 사진작가 김홍희는 “실제로 촬영되는 어떤 광경이란 실제로는 사진가가 보지 못하는 순간이다.”라고 썼다(`몽골방랑`중). 사진작가는 정작 보아야할 순간을 볼 수 없다. 중은 제 머리를 깎을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볼 순 없다.”(김종태,`자가수혈`). 셔터를 누르면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작가는 정작 그 순간을 보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사진작가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월터가 사진작가 숀 오코넬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월터가 우여곡절 끝에 숀 오코넬을 만난 곳은 히말라야였다. 오코넬은 히말라야의 유령이라 불리는 눈표범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 씩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월터가 그를 찾아야만 했던 이유를 말하려는 순간 눈표범이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온다. 그러나 오코넬은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월터가 사진을 찍으라고 재촉하지만 오코넬은 이렇게 말한다.“가끔 안 찍을 때도 있어. 정말 멋진 순간에…. 나를 위해서…. 이 순간을 카메라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이 순간에 머물 뿐이야.”“머문다고요?”“응, 바로 거기, 바로 여기, 지금 사라졌어. 사라졌어.”(`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만나기 힘들다는 눈표범이 카메라에 들어오지만 사진작가는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면 눈표범은 사진으로 남겠지만, 눈표범이 나타난 그 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순간은 순간이어서 흘러가버리고 만다. 사진으로 남긴다면 그 순간을 붙잡아 둘 수 있겠지만, 셔터를 누르는 동안 그 무구한 순간은 더렵혀지고 말 것이다.사진을 찍음으로써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지만, 사진을 찍지 않음으로써 그 순간을 기억할 수도 있다. 이 순간들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며 무언가 강력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강렬하지 않은 것들도 기억되곤 한다.② 일본의 소설가이자, 동시에 영화감독이며 스포츠 해설가로도 유명한 무라카미 류는 수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책에서 `웨루크`라는 특이한 음식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이 음식을 먹는데 거의 이천만 원 정도를 써버렸다고 말한다. 어떤 맛이냐고?웨루크는 다른 어떤 맛과도 닮지 않았다. 상어 지느러미나 전복처럼 내부에 건조된 바다를 감춘 그런 맛도 아니고, 새나 사슴처럼 피 냄새도 나지 않고, 자라처럼 생명 그 자체에서 풍겨나는 비린내도 없고, 복어의 흰 살이나 캐비아처럼 생식 체계에서 벗어난 짙은 맛도 없다. 또한 웨루크는 몸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새로운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목구멍에 남아 있던 상어 지느러미나 전복이나 비둘기나 개구리나 제비집의 향기와 맛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웨루크는 웨루크 그 자체의 맛도 지워버린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 중).웨루크는 다른 음식의 맛은 물론 그 자체의 맛조차 지워버린다. 아무리 먹어도 “여전히 입에 넣자마자 맛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음식, 먹어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이런 음식에 그는 왜 모든 돈을 써버린 것일까. 음식 맛이 지워지려면 지워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애초에 지울 것이 없다면 지울 필요도 없다.웨루크는 자신의 맛을 각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맛을 지운다. 자신의 맛이 지워지므로 어떤 맛인지 결코 기억할 수 없을 것이나, 어떤 맛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여운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류는 그 여운, 결코 부여잡을 수 없는 그 흔적을 소유하기 위해 이 음식을 계속해서 부질없이 먹었던 셈이다.③ 김수영은 `와선`이라는 짧은 산문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선(禪)`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수행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선`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앉아 있는 수행이다.달마대사 이야기에는 수행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도력 높은 양반도 `선`을 한답시고 멍 때리고 앉아있자니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결국에는 눈꺼풀을 잘라냈다는 것, 그의 눈이 부리부리해진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와선(臥禪)`은 누워서 하는 선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도 몰려오는 수마(睡魔)를 감당할 수 없는데 누워서 하는 수행은 오죽하겠는가.그렇거나 말거나 김수영은 이런 어려움은 무시한 채 자기 식으로 해석하며 즐거워한다. “내 딴으로 생각한 와선이란, 부처를 천지팔방을 돌아다니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골방에 누워서 천장에서 떨어지는 부처나 자기의 몸에서 우러나오는 부처를 기다리는 가장 태만한 버르장머리 없는 선의 태도”라고 말이다. 김수영이 `와선`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했던 것은 헨델과 릴케, 그들의 음악과 시다.릴케는 자기의 시체마저 미리 잡아먹는다. 그런데 릴케의 시체는 적어도 머리카락 정도는 남아 있는 것 같은데 헨델의 시체에는 손톱도 발톱도 머리카락도 남아 있지 않다. 완전무결한 망각이다(`와선` 중).`완전무결한 망각`이라니? 마치 그 자체의 맛까지 씻어 내리는 웨루크와 같이 릴케와 헨델의 작품은 “인상에 남는 선율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다른 범상한 작품들처럼 어떤 선율이나 시구를 남긴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부여잡고 어떤 식으로든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릴케와 헨델의 시는 `아! 이 음악(또는 시) 참 좋다`라는 감탄만을 자아내게 한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게 만들기보다는 한 번 더 듣고 한 번 더 읽게 만든다. 아니 계속 듣고 망각하고 계속 읽고 망각하게 만든다.④ 그날 하루 만에 어떻게 그걸 다할 수 있었지? 소수서원과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고, 안동찜닭에 안동소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 도산서원을 보고, 무섬마을에 예약도 없이 들어가 어렵사리 숙소를 잡고.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했는지 같이 간 친구들은 낮잠을 잤고, 나는 마치지 못한 일을 했다.▲ 공강일 서울대 국문학 강사그런데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무섬마을을 한 바퀴 돌아 이 마을의 명물이자 350여 년간 무섬 마을과 강 건너를 연결시켜준 외나무다리에 이르렀다. 해거름 녘 이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 틈에 섞여 우리도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특별한 사건도, 어떤 강렬한 인상도 없었는데, 그 다리를 건넜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이 좁은 다리에서 떨어지면 겨우 물이었지만, 삶의 바깥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는 두 팔을 벌려 중심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 사소한 행위 속에는 평행대 위를 걷기 위해 애쓰던 어린 날의 내가 있었고,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재의 친구도 있었다. 어떤 순간은 흘러가지만 어떤 것들은 흐르는 채 멈추기도 한다.

2017-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