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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의 연회가 다시 시작되는 경주의 밤

등록일 2017-09-01 20:42 게재일 2017-09-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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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에서 첨성대까지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동궁과 월지: 끝나지 않은 천년의 밤

만약 당신이 경주에서 오늘 밤을 보내야한다면 경주의 밤을 최고로 즐길 수 있는 멋진 장소를 소개시켜주려 한다. 자, 준비가 되었다면 고고고~

동궁과 월지는 이전에 임해전지 또는 안압지로 불렸다. 이곳은 신라 왕궁터 월성 동북편 구황들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후기에 폐허가 된 이래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로 불리게 되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당시의 모습을 거의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신라 30대 문무왕이 삼국통일의 완성을 앞두고 당과의 전쟁을 치르며 674년에 궁궐 안에 만든 연못이다. 당시의 이름은 월지(月池)로 통일 후 안정을 누리며 679년에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東宮)을 짓고 뒤로 나라의 경사나 귀한 손님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다. 많은 건물 중 가장 웅장한 임해전은 931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군신들의 연회나 귀빈들의 접대장소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월지의 전체 면적은 4천700여 평으로 못 가운데에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섬이 있다. 누각이 있는 서쪽과 남쪽 호안은 직선, 동쪽과 북쪽 호안은 숨바꼭질하는 듯한 곡선으로 조경 되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공중에서가 아니면 어느 곳에서 보아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없게 설계되었다.

고구려의 발달한 토목기술에, 신선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연못을 만드는 백제의 조경사상이 투영되어 환상미를 더했는데 여러 문화를 흡수하여 그들의 것으로 재창조한 신라인들의 뛰어난 미의식이 월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드라마 `궁`의 촬영지기도 했던 이곳은 달빛과 별빛 조명이 조화를 이루어 고즈넉한 야경을 즐기기에 좋다.

이곳은 밤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주차비는 무료지만 주차장은 혼잡하여 차를 가지고 온다면 주차하는데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러니 되도록 차를 두고 오는 것이 좋겠다. 밤 9시 30분에는 입장을 마감하니 지금 숙소에 누웠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천원이다. 이 돈으로 천 년 전의 연회를 감상할 수 있다니 환상적이지 않은가!

▲ 첨성대는 천문대일수도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제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는 끊어져 있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것이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첨성대의 용도를 모르니 이 첨성대에 대해 어떤 상상도 가능하다. 그러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 첨성대는 천문대일수도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제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는 끊어져 있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것이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첨성대의 용도를 모르니 이 첨성대에 대해 어떤 상상도 가능하다. 그러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첨성대: 천 년의 아름다움과 천 년의 의문

동궁과 월지를 빠져 나와 얼마간 걸어가면 꽃밭 사이에 첨성대가 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졌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쌓은 돌이 모두 362개로, 음력 1년의 날 수와 같고, 12개의 기단은 1년의 개월 수와 같다.

천 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곳이 무엇을 위해 사용된 장소인지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첨성대가 세워진 후, 삼국사기에는 일식, 월식, 혜성의 출현, 기상이변 등을 관측한 기록들이 예전 보다 많고 매우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천문대라고 하기엔 그 높이가 낮으며 별을 관측하기 부적절하다는 반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첨성대를 두고 많은 주장들이 엇갈린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사방 어디에서 보나 똑같은 모습이므로 해시계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 나아가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건축물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천 년의 의문을 지닌 첨성대는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경주시내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이곳에 불이 들어오면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차비도 무료, 입장료도 무료다. 24시간 개방되어 있으니 당신은 밤이 새도록 첨성대에 대해 고민할 수도 있다. 고민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니 그게 싫다면 다시 나를 따라오시길. 이제 우린 경주 시내를 볼 것이다.

▲ 경주에서 일찍 잠들겠다는 결심은 애초에 잘못된 생각인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다녀 피곤할지 모르지만 동궁과 월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본다면 당신은 달려가고야 말 것이다. 밤이 그윽이 내리면 동궁과 월지에서는 천 년 전 연회가 다시 시작된다.
▲ 경주에서 일찍 잠들겠다는 결심은 애초에 잘못된 생각인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다녀 피곤할지 모르지만 동궁과 월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본다면 당신은 달려가고야 말 것이다. 밤이 그윽이 내리면 동궁과 월지에서는 천 년 전 연회가 다시 시작된다.

△경주 시내: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곳

천 년의 어둠 속을 걸었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올 차례다. 경주 시내에는 현재의 삶이 놓여 있다. 경주의 번화가에 차를 몰고 온다면 주차를 하기 위해 꽤나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차는 잠시 세워두고 밤의 산책을 즐기며 걸어오자. 100m 정도의 길지 않은 거리지만, 서울의 명동에 비겨도 손색이 없다. 카페베네, 파스구찌,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경주에만 있는 카페 SOMA가 있다. ABC마트, 지오지아, 아디다스, 리복, 이센버그와 같은 옷가게에서 쇼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먹을 것도 풍성하다. 피자, 파스타, 치킨, 카레, 숯불갈비 등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있지만, 경주가 아니라면 먹지 못하는 음식들도 여기 전부 모여 있다. 경주빵, 황남빵, 찰보리빵은 경주의 명물이다. 담백한 팥소를 그득하게 넣고 얇은 밀가루나 보리로 옷을 입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경주의 빵이다. 빵을 만드는 전 과정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수제빵이다.

그리고 밀면도 있다. 밀면은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간 이북사람들이 냉면이 먹고 싶어도 메밀이 없어 먹질 못하자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내와 가까운 곳에 밀면식당과 밀면전문이라는 밀면집이 이웃하고 있다. 밀가루가 아니라 진짜 메밀가루로 만든 평양냉면집도 있다. 60여 년의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이곳은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의 촬영장소였으며, 맛집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이제 잠을 자야겠다고? 그런데 아직 자야할 곳을 못 정했다고? 안심하시라. 관광 도시답게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취향에 따라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호텔이나 콘도는 주로 보문관광단지 근방에 모여 있다. 펜션을 찾는다면 동해안 쪽에서 경치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잠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접근이 용이한 경주 시내에는 한옥호텔을 비롯하여 게스트 하우스, 펜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아주 간단하게 머물 곳이 필요하다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모텔도 괜찮을 것이다. 모텔은 경주역과 터미널 부근, 그리고 시청 주변에 밀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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