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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콜라주와 고양이

등록일 2017-08-04 21:24 게재일 2017-08-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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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에 보이는 것이 장안산이다. 이 산은 해발 1천237m다. 이렇게 높으면 봉우리가 뾰족하기 일쑤인데 장안산은 어쩐지 둥글어 유순해 보인다. 장안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장수읍을 둘러싸고 있는 성수산, 팔공산, 영취산 그런 산들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가 아니라 하늘에 다가서는 높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산을 보고 자라면 그런 산을 닮는다.
▲ 정면에 보이는 것이 장안산이다. 이 산은 해발 1천237m다. 이렇게 높으면 봉우리가 뾰족하기 일쑤인데 장안산은 어쩐지 둥글어 유순해 보인다. 장안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장수읍을 둘러싸고 있는 성수산, 팔공산, 영취산 그런 산들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가 아니라 하늘에 다가서는 높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산을 보고 자라면 그런 산을 닮는다.

1. 언어콜라주

언젠가 연희창작촌에서 진은영, 김소연, 심보선 등의 시인들이 진행하는 `나를 돌아보는 여덟 개의 방`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시 창작 강의가 아니라 시를 가지고 놀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도 모르는 나의 상처를 보듬고 쓰다듬는 그런 수업이었다. 그러니까 시를 통한 치유 수업이었고, 또 동시에 내가 잊고 있었던 언어를 찾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시를 쓸 수 있도록 이끄는 특이한 형태의 수업이었다.

이 수업에서는 시의 특징, 의미, 표현방식 따위를 가르치지 않았다. 주로 놀이 형태로 이뤄졌는데 `사진으로 말하기`, `초성놀이`, `단어퀼트`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사진으로 말하기`는 유년시절의 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 사진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그것을 토대로 시를 쓰는 것이다. 초성놀이는 단어의 제일 앞에 오는 자음을 무작위로 배열하여 거기에 맞게 단어를 만들어가며 시를 완성해나가는 놀이다. 퀼트는 자수나 뜨개질 같은 것이므로 단어퀼트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단어를 이리저리 연결하여 시를 만든다.

놀이마다 재미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언어콜라주`다. `단어퀼트`는 주어진 10개 정도의 단어를 이용하여 시를 짓는 일이라면, 언어콜라주는 단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강사로 참여한 시인이 자신의 시집 한 권 전체를 복사해 오고, 그 복사된 종이에 있는 단어들을 오려붙여서 정말 콜라주처럼 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힘들여 쓴 시를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야릇한 쾌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의 언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고, 특히 그것을 오려서 붙이기 때문에 언어와 언어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고 또 연결과정에서 비약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언어는 모두에게 널려있지만 특히 나와 친숙한 단어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가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나는 `그리하여`와 같은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결론 부분에서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강조하고 싶을 땐 `그리`를 떼고 `하여`만 사용한다. 이렇게 단어를 줄이면 훨씬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또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문체(style)와 문채(figure)를 가지고 있다. 문체란 문장의 특색이나 문장의 구성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문체를 결정하는 것은 서술어다. 어떤 서술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오리다`와 같은 극존칭 서술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시는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문채`는 글을 강조하거나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수사법이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즐겨 쓰는 비유법이 있다.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에서 알파치노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바람둥이 역할을 맡았다. 클럽에서 만난 여성이 웃자 알파치노는 이렇게 말한다. “웃음도 아름답군요.” 보지도 못하면서 아름다운 것을 알아내는 능력이라니! 그런데 정말 놀라운 그의 능력은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바꿔내는 말하기 방식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말채`를 사용하는데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언어를 다양하고 무작위하게 사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익숙한 것들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므로 내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내가 있다. 언어콜라주는 내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언어로 시를 만듦으로써 나의 정신과 사유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 놀이는 `나`라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언어를 통해 체험케 해준다. 언어콜라주는 이전에 생각지 못한 시어나 시구를 만나게 해주며 그렇게 선택된 것들이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결합하여 자연스럽게 한 편의 시를 직조하도록 돕는다.

2. 고양이

언어콜라주는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는데 이 놀이를 전라북도 장수군의 장수고등학교에서 해본 적이 있다. 장수읍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얼마나 높은지, 그럼에도 그 굴곡이 얼마나 유순하고 유려한지를 말이다. 아이들 역시 산을 닮아 있었다.

학생들은 시를 자르고 붙이며 자유롭게 놀았고, 마지막엔 그렇게 만들어진 시를 발표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시가 형옥이가 만든 시다. 형옥이의 아빠는 큰 배를 모는 선장이라 집에 자주 오지 못하고, 어머니는 인천에 계시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다. 내가 본 형옥이는 이랬다. 학교 운동장 단상에 누가 먹다가 남겼는지도 모르는 귤껍질이 버려져 있었다. 녀석은 그걸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긁어모아 휴지통에 버리고는, 손 한 번 씻고 씨익 웃어버리고는 그만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보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백석은 `흰 바람 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애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고 썼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정말 하늘이 사랑할 만한 그런 아이였다. 형옥이가 언어콜라주를 통해 만든 시의 제목은 “고양이”고, 그 시의 전문은 이렇다.

아무 데로나 가고

아무 데서나 자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린 눈빛

입 씰룩거리네

좋다

사람 기척에 힐끗 뒤돌아보네

그러면 그때 나는 돌아와

낮잠이나 자고 싶어

너와

이 시에서 고양이라는 말은 제목에서밖에 나오지 않는데 고양이를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아무 데나 가고 아무 데서나 자는 고양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형옥이는 고양이보다 더 자주 밖엘 나가야 한다. 집과 학교가 먼 데다 교통이 불편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에야 겨우 집에 돌아온다. 고양이는 그런 형옥이를 기다린다. 그런 고양이와 함께 낮잠을 자고 싶단다. 허허, 이 얼마나 소박한 소망이란 말인가!

▲ 공강일
▲ 공강일

이 시에는 고양이와 형옥이의 내면이 혼재 되어있다. 고양이가 형옥이를 기다린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형옥이도 고양이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형옥이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형옥이가 또 기다리는 것은 아빠가 아닐까. 아빠가 돌아오면 아빠 옆에서 자고 싶다는 바람을 고양이에게 투영한 것 같다.

2연의 `좋다`와 4연의 `너와`라는 시어는 행간의 격차가 크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은 언어콜라주가 아니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외로움이 `고양이`라는 언어를 통해 그 정체를 드러낸 것 같아 아팠다. 언어콜라주는 다른 사람의 언어로 다른 세계로 나아가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그러니 “고양이”는 녀석의 내면이 투영된 녀석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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