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소싸움축제를 다녀와서
△야외무대 청도국악공연
청도소싸움축제를 다녀왔다. 이 축제는 1999년부터 소싸움축제라 불렸고, 그 전까지는 영남민속투우대회로 불렸다. 전국규모대회로 발전하면서 2007년에 소싸움경기장이 준공되었다. 꽤나 오래된 축제다. 내가 간 날은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정오께 도착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소싸움이 벌어지는 경기장 밖 야외무대에서는 국악공연팀이 리허설 중이었다. 그동안 사회자가 관객을 웃겨 주었다. 사회자는 관객 전체와 집단 가위바위보 게임을 했다. 한 번 할 때마다 사회자에게 진 사람은 떨어져나가는 방식이다. 몇 판 안 했는데, 아주머니와 아저씨 두 분만 남았다.
이 두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어 등을 맞대게 한 후 가위바위보를 시켰다. 아저씨는 보, 아주머니는 바위를 냈다. 사회자가 아저씨에게 바꿀 의향이 있냐고 묻자 아저씨는 얼른 바위로 바꾼다. 이번엔 아주머니 차례다. 사회자가 바꾸시겠습니까, 라고 묻고는 아주머니에게 자꾸 보자기를 보여준다. 관람객들이 웃는다. 사회자는 능청스럽기 짝이 없다. “아주머니가 이길 수 있을까요? 자 바꿔주세요.” 아저씨는 뒤돌아 서 있으므로 사회자의 모략을 알 리 없다. 사회자는 가위바위보만으로도 관객을 들었다놓았다 한다.
그 사이 국악팀이 공연준비를 마쳤다. 곱게 한복을 입은 9명의 공연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양손에는 연꽃을 들었다. 차려 입은 옷만큼이나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경기장 입구 각설이 공연소리가 너무 크다. 각설이들은 트로트를 부르고 국악공연팀은 타령을 부른다. 아무래도 익숙한 쪽으로 귀가 기울어지게 마련이어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디, 돈을 걸어볼까
소싸움 경기장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베팅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니 나도 얼른 해보고 싶었다. 우권을 들고 어떻게 하는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경기참여 방식을 설명해주는 곳이 따로 있는데도 나는 어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안절부절이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내가 딱해보였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우선 원하는 경기번호에 체크를 해야 한다. 나는 6경기에 참여하고 싶으니까 6에 체크한다. 그리고 단승식, 복승식, 시단승식, 시복승식 중 어디에 걸 것인지 체크하면 된다. 단승식은 말 그대로 6경기에서 어떤 소가 이길지를 정하면 된다. 복승식은 6경기와 다음 7경기에서 어떤 소가 이길지를 맞추어야 한다.
시단승식은 6경기에서 몇 라운드에 이길지를 표시하면 된다. 라운드는 5분 단위다. 라운드가 있다고 해서 권투처럼 라운드가 끝나면 자기 코너로 돌아와 쉬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맞대고 싸우다가 5분이 지날 때마다 라운드가 올라간다. 6라운드, 그러니까 최대 30분간 싸운다. 6라운드가 지나면 무승부다. 시복승식은 6경기와 7경기의 이길 소와 몇 라운드에 끝날지까지 맞추어야 한다. 당연히 시복승식이 어려우니 배당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소를 구분하기 위해 소의 등에 각각 붉은 점과 푸른 점이 찍혀 있다. 소를 끌고 나오는 사람은 조교사다. 이들은 자기 소의 색깔에 맞게 붉은 옷과 푸른 옷을 입었다. 이들은 소들이 머리를 맞대는 동안 서로의 소를 격려하며 싸움을 북돋을 것이다.
소는 경기장의 좌측에서 출전을 대기하고 있다. 소를 보고 돈을 걸어야 하는데 나는 소가 어디에 대기하는 줄도 모르고 이름만 보고 돈을 걸기로 한다. `멋쟁이`는 홍소, `고수`는 청소다. 아무래도 멋쟁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 멋쟁이에게 이천 원, 고수에 천 원을 걸었다. 그런데 표시를 잘못했는지 그만 둘 다 청소에 걸고 말았다. 머리를 맞대는가 싶더니 채 2분도 못 버티고 `멋쟁이`가 줄행랑을 놓는다. 운 좋게 이기고 나니 경기가 만만하게 느껴졌다. 7경기는 운 좋게 이겼는데 8경기에서부터는 운이 다했는지 내리 졌다.
△전설과 수성의 승부
한 두 경기만 보고 가자는 것이 마지막 경기까지 남게 되었다. 잃은 돈을 꼭 만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홍소의 이름은 `수성`이고 청소의 이름은 `전설`이다. 이름은 전설이 더 마음에 드는데 어쩐 일인지 수성에게 정이 갔다. 거금 오천 원을 수성에게 걸었다.
소들은 큰 눈을 끔벅이며 이마를 맞대고 서로를 민다. 저렇게 순박한 눈으로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소들은 머리를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들은 밀기 위해 혹은 밀리지 않기 위해 용을 쓰고 있다. 홍소 이겨라, 청소 이겨라, 구경꾼들의 소리가 높아진다. 전설이 한껏 수성을 밀어붙인다. 밀리면 그걸로 끝이다. 수성은 금방 질 것처럼 여러 발자국 밀리다가도 자신의 이름처럼 묵직하게 버텨낸다.
800kg에 육박하는 소들이다. 저 정도 힘과 힘이 맞부딪힐 때는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6라운드로 접어들자 소도 싸움을 몰아치는 조련사도 지쳤다. 소의 이마에 피가 밴다. 그럴수록 경기장 안은 긴장감과 묘한 흥분 속에 들끓어 오른다. 승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질 것이다. 그러니 한 눈을 팔아선 안 된다.
갑자기 전설이 바싹 허리를 구부렸다가 튕기듯 힘을 쏟아낸다. 기다렸다는 듯 수성이 뒷발에 힘을 준다. 챙, 하는 소리가 난 것 같다.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죽인다. 아까처럼 수성은 버텨줄 것이다. 힘을 몰아 되받아쳐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라 수성은 금세 꽁무니를 빼고 줄행랑을 놓는다. 전설은 굳이 따라가지 않는다. 수성은 놀란 듯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법석이다. 오히려 승리의 세리모니를 하는 것 같다.
눈 큰 소들의 느릿한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난다. 나는 이제 겨우 긴 숨을 뱉어낸다. 단승식 6라운드에 돈을 건 사람은 엄청 땄을 것이다. 괜히 입맛을 다시게 된다. 다음에 올 때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이름만 보고 걸어야지, 뭐 다음에 또? 다음에 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또 돈을 걸 생각부터 하다니 문제다. 이래서 도박이 무서운가 보다.
돈을 따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자꾸 위험률이 높은 쪽에 많은 돈을 걸게 된다. 소싸움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베팅을 하면 경기를 보는 것이 더 즐거웠을 텐데, 매번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렇긴 해도 이렇게 흥분되고 긴장되는 축제는 처음이다.
축제가 끝나도 소싸움 겜블은 매주 주말마다 열린다. 만약 구경을 오신다면 순박한 소처럼 베팅도 순박하게 하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