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시죠? 내일까지 해야 할 과제가 세 가지가 있다면, 그런데 쉬지 않고 꼬박 밤을 새어도 그 일을 다 해낼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될 때, 레드불이나 핫식스 같은 카페인 음료를 들이키며 피로를 털어낸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일을 다 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 일은 손도 못 댄 채 마감시간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알 때,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죠?
물론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일이 겹치는 상황을 만들지도 않겠지만, 그런 현명한 사람은 교과서에만 나오니까, 일단 제쳐 두고, 그보다 조금 덜 현명한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시간이 닿는 데까지 그 일을 해내겠지. 또 어떤 사람은 셋 다 대충대충 해낼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이럴 때, `아 해야 하는데`라며 한숨을 쉬면서, 손은 자꾸 마우스 스크롤을 돌린다. 인터넷 뉴스나 쇼핑을 하면서, 혹은 유튜브의 시시껄렁한 영상을 보면서, 낄낄거리면서 그러면서도 `아, 벌써 새벽 2시구나`라고 말하면서, 그러면서 이것만 보고 해야지 하면서, 최대한 몸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 뒤에, `아 어쩔 수 없네. 내일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뒤 잠든다.
왜 이러는 걸까?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 그 일을 못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지 뻔히 알면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그 중압감을 압박감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지금 `나`가 바쁘다는 사실, 해야 할 일이 겁나 많다는 사실, 그런 무게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가 이 세상에서 몹시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겨우 이런 행동을 통해 `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건 아닐까?
이런 예라면 얼마든지 많다.
약속 시간이 아침 9시인데, 마침 30분 전에 일어났네. 지금 후다닥 준비를 하면 조금은 늦겠지만 그래도 늦지 않고 갈 수는 있다. 이럴 때, 안절부절 못하면서 그러면서 또 씻지는 않고,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고민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고선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야 늦을 것 같다고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는지.
카드 한도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한도를 넘기면 월급까지 열흘도 넘게 남았고 그동안 쓸 돈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더욱이 이번 달 월급으로는 카드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도가 달랑거릴 때, 그 한도의 끝을 보고 말겠다는 듯 돈을 쓰며, 그 때 찾아오는 압박감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이런 변태적인 상황을 즐길 수 있냐구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은 아닐까, 그런 것들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그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내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나를 자꾸 궁지로 몰아가려는 것은 아닐까.
2.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 최민식, 조진웅, 김성균, 그들이 모두 한 번씩은 치는 대사.
“살아있네!”
`나쁜 놈 전성시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말은 어쩌면 더 나쁘고 더 못된 짓을 할 때, 그리고 그 일의 귀결과 대가를 알게 될 때, 그 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아닐까. 살아있다니? 이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한 일인가.
저들이 사악한 사람들이기 때문도 아니고 나쁜 짓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오히려 나쁜 짓을 일삼는다, 살아있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나`가 이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각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든 `나`의 존재를 느끼고 싶은, 그 간절하고 혹은 순수하기까지 한 (이런 것까지 노력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런 행동을 낳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살아 있음, 오직 중요한 것이 이것이기에, 기형적이고 변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3.
내가 좋아하는 그림, 틴토레토의 `미네르바와 아라크네`.
베 짜기의 명수 아라크네는 베 좀 잘 짜는 것에 우쭐해져서는, 베틀의 신이자 질투의 신인 미네르바(아테나)에게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해버린다. “여신 아테나와 승부를 겨뤄도 지지 않는다.” 이 말에 화가 난 아테나는 아라크네와 `맞장`을 뜬다.
자, 어디 너의 능력을 보여주시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라크네는 아테나를 이겼다. 그러자 아테나는 더 분기탱천하여 그 오만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라크네를 평생 실이나 뽑으라며 거미로 바꿔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아라크네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 경기에서 지면 졌다고, 이기면 이겼다고 엄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아라크네는 베를 짠다.
틴토레토는 이런 아라크네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라크네의 저 도취된 듯한 눈빛, 꿈꾸는 듯한 눈빛을 통해서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다락의 음험한 어둠. 이런 것들을 통해서 틴토레토는, 아라크네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흥분, 그리고 곧 닥쳐올 끔찍한 형벌에 대한 두려움, 그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감각들로 들끓고 있는 아라크네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라크네가 저 높은 다락에 올라 베를 짜는 이유, 그녀가 가슴을 풀어헤치고 베를 짜는 이유 역시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살아 있는 자신을 보라고,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 속에서 치명적으로 솟구치는 자신의 매력을, 더 긴장되고 두려울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베 짜기 솜씨를 베풀고 있다.
이것을 보라! 틴토레토는 사람들이 아라크네를 우러러 보아야만 볼 수 있는 다락으로 경기 장소를 설정했을 테지.
이것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이것을,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파멸에 이르게 되는 이것을 자아감 혹은 자아감각이라 부르려 한다. 여러분은 이런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어떤 모순적인 행동을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