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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칸이 밤이 깊은` 삶 -서정춘의 삶과 시

등록일 2017-03-10 02:01 게재일 2017-03-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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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이 강렬하게 쏟아진다. 대나무는 마디마다 어둠을 품고 있다. 어둠이 가득하겠지만, 그 어둠은 절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둠은 대나무처럼 푸른 어둠일 것이므로.
▲ 햇빛이 강렬하게 쏟아진다. 대나무는 마디마다 어둠을 품고 있다. 어둠이 가득하겠지만, 그 어둠은 절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둠은 대나무처럼 푸른 어둠일 것이므로.

봄이 되면 `죽편`이란 시가 떠오른다. 봄과 특별히 관련도 없는데도 말이다. 대나무의 푸름이 봄의 싱그러움을 연상시키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시를 봄에 읽었기 때문일까? 분명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분명히 장담할 수 있는 건, 여러분도 분명 이 시를 좋아하게 될 거란 거다. 어쩌면 여러분도 나처럼 봄이 되면 이 시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은 저를 믿고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죽편`이란 시를 쓴 서정춘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가난 덕분에 매산중고 야간부를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한때 빨치산이었던 `외팔이 장씨`의 서가에서 정지용, 백석, 이용악, 오장환 등의 시를 읽었다. 구상 시인의 친구이자 동경 제대 출신 조율사인 `삐아노 최씨`에게서 정식 시인으로 인정받아 술을 한 상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고 시인은 말한다.

서정춘은 1959년 겨울, 순천을 떠났다. 그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30년 전―1959년 겨울`전문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라고 한 사람은 시인의 어머니이기보다는 아무래도 할머니겠다. `애비`는 시인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매정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행여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까봐 걱정을 했나보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 고향에서 가난은 대물림 될 것이 뻔했을 테니까. 그래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살라는 말을 했을 것이고, 어린 손자의 손을 붙잡은 할머니 역시 그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 밖에 할 수 없는 시인의 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지난했던 것일까, 어린 아이를 떠나보내며 이들은 소리도 없이 얼마나 크게 울어야 했을까, 그리고 30년 후 늙어버린 아이가 떠올린 이 말은 또 얼마나 그를 울렸던 것일까?

시인이 상경하여 어디서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은 했지만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취직을 하지 못한 채 전전하다 소설가 김승옥의 소개로 동화출판공사에 취직하게 된다. 시인은 그 직장을 1996년까지 다녔다. 그리고 퇴직하면 쓸쓸해질 것 같아 그동안 써온 시를 묶었다. 등단 후 29년 동안 써온 시는 고작 70여 편, 그런데 거기서 다시 반을 버리고 35편만으로 시집을 묶었다. 1년에 한 편을 쓴 셈인데, 게을러서가 아니라 시에 대한 그의 결벽증 때문이다.

그 시집이 `죽편`이다. 이 시집이 나왔을 때, 시단에서는 “`죽편`읽어봤는가?”라는 인사말이 돌았을 정도라고 한다. 과장처럼 들린다고? 신경림 시인의 말이니 믿어도 좋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자, 이제 `죽편1`을 읽어보시라.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죽편1―여행`전문

자, 준비 되었다면 이제 여행을 떠나야겠다! 목적지는 대나무 꽃이 피는 마을이고, 교통수단은 `기차`다. 그런데 그냥 기차가 아니라 `푸른 기차`며 게다가 이 기차는 “칸칸마다 밤이 깊”다. 불꺼진 기차라니, 어찌된 영문일까? 이 시의 제목이 `죽편(竹篇)`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기차`가 대나무의 은유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는 마디져 있으므로 그 마디마디가 기차의 한 `칸`이다. (재밌게도 시인은 이 마디를 표현하기 위해 말줄임표 그러니까, “……”대신 “------”을 사용했다.) 그리고 대나무의 마디와 마디는 막혔으니 밤처럼 어두울 밖에.

이제 기차가 출발한다! 그런데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냐, 고? 기차가 출발했으니 이제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미리 말을 했다면 당신은 아마 이 기차를 타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자그마치 100년이다. 대나무가 백년을 살면 꽃을 피운다는 속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여행,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 돌아오는 그런 여행하고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대나무가 자라 대나무 꽃을 피울 때까지, 대나무의 일생 전체를 여행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의미를 밀고 나갈 수도 있겠다. 여행이 대나무의 일생이라면, `대나무`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대나무의 일생이란 곧 시인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온 시인의 삶, 그 고단하고 지난했을 삶을 시인은 “칸칸마다 밤이 깊”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비록 `밤이 깊`긴 하지만, 그 어둠이 무섭거나 절망적이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푸른 기차`의 밤이니 깊은 밤의 어둠도 푸른 어둠일 테니 말이다. 푸른 기차의 여행은 곧 푸른 대나무의 삶이며, 이것은 다시 시인의 푸른 삶이다. 시인의 푸른 삶, 청운(靑雲)! 그에게 청운의 꿈이란 시가 아니었을까.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꼿꼿한 대나무처럼 한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4년간 80번을 고쳐 쓰는 그의 삶 말이다. 그러니 `대꽃을 피우는 마을`이란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겠지만, 시인의 시가 만개할 어떤 시기로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이 말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 청출어람! 이미지는 언어에서 나왔지만, 언어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인식과 우리의 빈약한 지식과 앎을 초과하여 작동한다. 이미지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언어가 만드는 이미지는 언어에서 나왔음에도 언어를 뛰어넘어 언어가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을 점유한다. 철학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날아오른다. 이러한 이미지로 하여 시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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