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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일가게 아저씨

윤명희 수필가 효자동에 원두막이 있다. 원두막이라는 상호가 과수원을 연상케 한다. 가게 앞에는 이제 막 물건을 내렸는지 화물칸이 정리되지 않은 그의 차가 있었다. 미소가 젊은 그는 나를 보자 의자부터 당겼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과일 상자에서 싱싱한 달콤함이 팝콘 터지듯 했다. 손님이 들어서자, 그가 일어섰다. 서너 살쯤 보이는 남자 아이가 익숙한 듯이 진열대로 바로 간다. 아이의 엄마가 어제 아침에 사간 걸 벌써 다 먹었다며, 과일 값이 감당이 안 된다는 말을 툭 던졌다. 그녀의 말에 나는 그들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가 참외를 코에 대고 잘 익었는지 확인했다. 그는 참외 몇 개를 봉지에 담아 건네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새댁, 둘째 낳으라니까”아니,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 말을? 결혼과 아이 낳으라는 말은 부모한테도 듣기 싫어하는 요즘 세대 아닌가. 내가 아들한테 결혼의 결자만 꺼내도 눈동자가 반은 돌아가는데 손님에게? 처음 듣는 게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아직 생각 중이라며 웃었다. 그는 방울토마토 몇 개를 씻어 아이의 양손에 쥐어주었다. 아이가 배꼽인사를 하고는 엄마보다 앞서 가게를 나선다. 그는 가게 밖까지 나가 손을 흔들었다.젊은 사람한테 무슨 소리 들으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단골손님들에게는 둘째 낳으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보는 이 마다 둘째 백일잔치 상을 최고 싱싱한 과일로 채워주겠다고 정치인이 유세 하듯이 해서, 이젠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벌써 몇 집이나 과일 상을 차려주었다고 했다.“남의 자식에게 말 할 입장이 아닌 건 알지만….”그가 말끝을 흐렸다. 몇 해 전 봄에 결혼 한 그의 딸이 생각났다. 좋은 소식 없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는 딸이 공부 중이라 손자 이야기는 당최 입에 담지도 못 한다고 했다. 그나마 그 딸은 결혼이라도 했지, 항상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첫째는 아예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비혼주의라는 말로 자기에게까지 건너 올 눈총을 애초에 잘라버리는 막내까지 둔 마당에 무슨 말을 하겠냐며 손을 내저었다.애를 낳고 사는 내 딸의 일상을 얘기하려는데, TV에서 애 낳으면 1억 준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하려던 말을 삼킨 나는 1억 준다는 저 말을 젊은 애들에게 하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며 일어섰다.가게를 나서자, 전화벨이 울렸다. 딸은 유치원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아이들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큰애가 걸음을 멈추고 폰 화면에 얼굴을 들이민다. 흔드는 작은 손이 보이더니, 화면이 작은애에게 간다. 개미를 발견했는지 녀석이 땅바닥에 코를 박을 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방금 들은 1억 준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만지면 안 된다는 딸의 다급한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긴다.딸은 첫애를 가지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 뒤치다꺼리에 잠 한 번 실컷 자 보는 게 소원이라던 딸에게 덜컥 연년생으로 둘째가 안겨졌다. 작은아이가 장염이 걸리면 큰아이도 따라 자리에 눕고, 한 녀석이 콧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또 한 녀석이 깔축없이 뒤따라 재채기를 해댔다. 먹고사는 일에 바쁜 나는 힘들어 하는 딸에게 자주 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큰손자가 폐렴으로 입원하고 며칠 후, 나는 모든 일을 제치고 서울 행 기차를 타야만했다. 딸은 나를 보자 대성통곡을 했다. 껌 딱지처럼 등에 업힌 작은 녀석도 따라 눈물바람이다. 나는 그저 안고 토닥여주는 게 전부였다. 병실바닥에는 기저귀와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고,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는 먹다 만 배달음식이 있었다. 링거 줄에 붙잡힌 큰애가 폴대에 올라앉았다. 바깥에 나가자는 신호다. 나는 몇날 며칠 동안 병원복도에서 링거 폴대를 밀고 다녀야했다. 퇴근 후 병실을 찾은 사위는 병원에서 밤을 보내고 퀭한 눈으로 아침 일찍 출근했다.과일로 백일상 차려 준다는 약속 위에 나라에서 돈까지 준다는 말이 얹어지면, 조금 전 과일가게에서 본 새댁은 맛있는 말에 귀가 열리고 마음까지 열릴까. 경력단절에 속상한 딸에게 애는 내가 봐주겠다는 빈말도 못하면서도 과일가게 아저씨처럼 나는 아들의 결혼을 꿈꾼다.

2024-07-10

ㅏ와 ㅓ 사이에

정미영 수필가 초록 바람소리가 쏟아지는 여름의 해질녘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다시 읽었다. 돌아가시기 한 해 전에 출간되었기에.‘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또한 노후에 흙을 주무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도 큰 복이다.’라고 책머리에 말씀하셨다.마당을 돌보는 일은 선생님께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산문집을 발간하는 데에 있어 글감으로도 한몫 거들었다. 나도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글을 쓰고 싶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그러려면 건강을 챙겨야지. 아무렴, 먼 훗날 내 몸이 노쇠하더라도 총기를 유지해야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출판할 수 있겠지.땅거미가 뉘엿뉘엿 내려앉은 탓인지 눈이 침침했다. 그래도 눈을 비벼가며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요즘 들어 책을 얼굴 가까이에 대면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고 멀리 거리를 두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인다. 내 눈의 노화현상을 체감하는 진행형인지라, 독서가 눈의 피로를 높이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알곡만을 골라 밥을 지으려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내려 가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좋은 글은 책을 읽는 나의 안목에 따라 매번 감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예전에 밑줄을 쳤던 문장이라도 연필로 선의 굵기를 달리하며 덧입혀 긋기를 반복했다. 또한 새롭게 감흥을 주는 글귀가 나오면 별표나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정독했다.‘친절한 나르시시스트들’에는 선생님의 일본 여행담이 일부 나왔다. 그 중 삿포로 역전 서점 기노쿠니야에서 ‘맛있는 카디건 뜨기’라는 뜨개질책을 읽으시는 대목이 나왔다. 출판사의 뜻인지, 저자의 뜻인지, 책 제목이 독특하고 참신한 것 같았다. ‘멋있는’이라는 상투적인 제목이 아니라 ‘맛있는’이라고 짓다니. 글을 쓰고 난 뒤에 제목을 짓는 일로 심사숙고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제목 짓기의 어려움을.누군지도 모르는 일본 작가와 출판사의 작명 실력에 감탄하며 박완서 선생님께서 몇 장에 걸쳐 쓰신 뜨개질에 대한 추억을 읽었다. 선생님은 이삼십 대에 자녀를 위해 뜨개질을 많이 하셨단다. 그때 어렵게 구한 일본 뜨개질책은 꿈의 교본이었는데, 책에 나와 있는 대로 게이지를 내고 치수를 맞춰 코 수를 계산해서 뜨면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았다는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환하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나지막이 웃었다. 한국에 돌아와 때때로 꺼내보기 위해 책을 구매해 오셨다는 문장을 읽고, 책 제목을 내 마음에 담기 위해 앞 장을 넘겼다.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제목이 ‘멋있는 카디건 뜨기’였다. 내 눈에 ‘맛있는’으로 읽혔던 글자가 원래 ‘멋있는’이었던 것이다. ㅏ와 ㅓ 사이에, 내 눈의 노화 현상인 원시(遠視)가 숨어 있었다. 인생시계에서 마음은 생동감 넘치는 봄의 푸른 계절에 마냥 머무르고 싶은데, 어느덧 신체는 가을로 기울어졌으니 시력 저하로 원근의 조절이 약해지는 것 또한 노화 현상의 자연스러운 섭리가 아니겠는가.그래도 원시(遠視)로 인한 착각이 일상생활에서 낯익은 풍경이 될까봐 야속했다. 나는 인생의 늦겨울에서조차 내가 쓴 작품집의 퇴고는, 내 눈으로 직접 완벽에 가깝게 하고 싶은 바람을 항상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혈을 쏟아부은 노력의 결정체로 탄생한 내 수필에서만큼은 ㅏ와 ㅓ 사이에, ‘정상 시력’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일까.그나저나 박완서 선생님처럼 필력을 오래 유지하려면 내 눈 건강부터 신경 써야겠다. 건강을 위해 마당 있는 집을 구하기는 당장 어려운 일이니, 나는 궁여지책으로 며칠째 눈에 좋다는 결명자차를 주전자 한 가득 끓이는 중이다. 유감스러운 원시(遠視)가 더디게 오기를 소심하게 염원하며.

2024-07-03

김치를 담그다

피귀자 수필가 ‘쩍’ 배추의 단말마. 배추를 가르던 손이 멈칫한다. 칼날아래 꽉 찬 속살이 환하다. 뽀얀 줄기 끝에 오글오글 노란 잎들이 아기손가락처럼 꼬물거린다.자른 배추를 씻긴다. 갓난아기를 다루듯 연한 잎사귀가 부서지지 않도록 살살 달랜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문지르고 다리와 발가락까지 꼼꼼히 헹군다. 흐르는 수돗물에 샤워를 하듯 여러 번 헹구자 반짝반짝 빛이 난다. 속살이 달작지근한 통배추는 어디에서 자라다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을까. 어느 하늘 아래의 정겨운 바람과 따뜻한 대지의 숨결을 마셨을까.부모님 보호아래 곱게 자라다가 시집온 새댁처럼 뿌리가 뽑힐 때의 아픔 또한 다르지 않았으리. 옮겨 앉은 자리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살이 찢기는 해산의 고통을 맞이한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땅에서 한번 뽑힐 때 까무러치고 속이 갈라질 때 두 번째 기절한 것까지도.커다란 다라에 물을 받고 굵은 소금을 녹인다. 음식에 간을 맞추듯 조심조심 휘저어 간을 본다.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배추가 세 번째 기절할 순간이다. 갈라놓은 배추를 소금물에 풍덩 넣었다가 한 잎씩 들춰가며 굵은 소금을 뿌린다. 소금물에 빠져서 재채기에 콧물까지 정신이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얀 소금을 뒤집어쓰니 닿는 자리마다 속살이 따끔거린다. 시댁 식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금을 뒤집어 쓰 듯 불편했던 새댁처럼. 소금이 들어앉은 켜켜이 퍼덕거리던 교만이 고개를 떨군다.소금 세례를 마친 배추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지그시 누른다. 원망과 불평이 함께 소금물 속에 잠긴다. 절인 배추는 하룻밤을 자고나면 알맞게 숨이 죽을 것이다. 소금을 더 뒤집어쓰기 싫으면 욱하는 성질을 죽이고 외고집도 줄여야하리. 외롭지 않으려면 옆 지기와 살갑게 지내고 내편도 만들어야 할 게다.되직하게 쑨 찹쌀 풀에 멸치액젓과 고추 가루를 함께 섞는다. 걸쭉한 빨간 옷이 마련되었다. 무채를 썰고 갈아놓은 마늘과 생강도 함께 섞어 준다. 바싹 마른 청각은 따뜻한 물에 불려 종종 썰고 싱싱한 보리새우로 옷맵시를 가다듬는다. 매실 액기스로 분단장도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알맞게 숨죽은 배추를 말간 물에 헹구어 엎어 놓는다. 얌전히 엎드려 있어야 물기가 잘 빠진다. 네 번째 기절할 순간을 기다리며 약간의 체념도 배운다. 드디어 뽀얀 속살에 빨간 옷을 입힌다. 고명도 사이사이 배부르게 넣어준다. 빨간 양념이 고루 베지 않으면 김치가 제대로 맛을 낼 수 없으니 새 옷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리.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개성마저 잃어버리면 고유의 맛이 사라질지니 이성의 눈을 말갛게 뜨고 감성을 다스리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신 줄을 굳게 잡고. 짠 젓갈과 매운 고추 양념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터지는 기침에 콧물까지 범벅이 되더라도.양념이 골고루 베인 배추를 사각의 김치 통에 꼭꼭 눌러 담는다. 겉잎으로 치마를 두르듯 감싸 안은 자태가 얌전하다.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거짓 없이 진실 된 마음으로 침묵에 익숙해지면 서서히 성숙해지리라. 자칫 게으름을 피우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되리니 성실하게 기다리면 금상첨화일 터.아버지는 신 김치를 싫어하셨다. 가장의 영향인지 식구모두 신 김치를 꺼려 김치가 시어지면 어머니는 옆집으로 퍼 나르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먹지 않는 걸 남에게 준다고 역정을 내시고 좋아하는 집에 보내는 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며 엷은 다툼을 벌이시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배추 한 쪽으로서는 감칠맛을 낼 수가 없다. 여러 쪽이 함께 손잡고 환경의 변화에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김치 냉장고에서 얌전히 기다린다면 숙성된 인격으로 완성되리라. 모두가 입맛 다실 김치로. 제 맛을 내려면 배추는 다섯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로 태어나는 법. 여러 번 기절했던 새댁도 잘 익은 김치처럼 서서히 동화되어 배추김치처럼 푹 익어 가리라. 우리네 인생처럼 시큼하게!

2024-06-26

번데기, 추억을 소환하다

정미영 수필가 햇살이 씨줄날줄 엮여 고르게 쏟아지는 화창한 날이었다. 경주시 전통명주전시관에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명주 제조 과정을 직접 보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맞췄다. 시연은 매주 화, 목, 토, 일요일 오전 10시에 한다.솥에 고치를 넣고 삶아 실을 빼내었다. 누에가 성충이 되려면 고치를 뚫고 나와야 하는데, 우화시킨 뒤에 남은 고치로 실을 얻으면 중간에 계속 끊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우수한 품질의 견직물을 얻기 위해 번데기째 삶는단다.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갔다. 일행 중 한 분이 학창 시절 추억담을 풀어놓으셨다. 산에 가서 뽕잎을 따다가 누에를 기르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고, 명주실을 뽑아 베틀에서 베를 짜 옷을 만드는 것은 어머님의 몫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모두가 경험담에 몰입해 있던 순간, 밑반찬으로 번데기가 나왔다. 스스럼없이 먹는 내 모습을 보고, 번데기를 먹을 줄 아느냐며 몇몇 일행이 깜짝 놀라셨다. 평소 나의 식성을 아는 분들이라 의외였던 것이다. 번데기를 입에 넣으니 입 안 가득 짭짤한 맛이 나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그 냄새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던 낯익은 것이었다. 그리움이었다. 나에게 있어 추억이 그리움이 되려면 내면의 심상이 따뜻해야 한다. 번데기를 보는 순간, 내 그리움의 심연 깊이 드리워져 있던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윤슬처럼 반짝였다.나는 대여섯 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내 영화관에 다녔다. 영화 광고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영화관이 우뚝 서 있었다. 주위 건물에 비해 컸으므로 그것이 영화관이라는 것은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먼저 느꼈다. 골목길에 흠씬 배어 풍겨오는 번데기 삶는 냄새 때문에 영화관에 도착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내가 어렸을 적에는 영화관 앞 노점상에서 번데기를 팔았다. 찌그러진 양푼에 수북이 담긴 번데기는 모락모락 김을 내며 간식거리를 찾는 이들의 군침을 돌게 했다. 번데기는 그 어떤 그릇에 담아 먹는 것보다 돌돌 말린 소라 모양의 신문지에 먹는 맛이 최고였다. 종이 속 가득 담겨 있던 번데기는 신문지 냄새와 섞여 내 코를 자극했던 것 같다. 아니, 모처럼 함께 한 아버지와의 나들이 길에 꼬깃꼬깃 접혀진 비상금으로 사주신 군것질감이라 더 감칠맛 났던 것이리라.요즘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듯 그 시절에는 번데기를 먹었다. 불 꺼진 영화관에 앉아 모두가 화면을 응시할 때, 조심스럽게 번데기를 먹었던 그 맛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꿀꺽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까 봐 눈치를 보며 천천히 삼켰던 일은 나에게 영화의 긴장감 못지않았다.성룡의 ‘취권’과 숀 코넬리, 로저 무어의 ‘007 시리즈’를 보면서도 번데기를 먹었고, 시한부 인생을 그린 ‘스잔나’를 보면서 울고 웃는 가운데에서도 내 손은 번데기를 집어 입 안에 넣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영화를 더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조미료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프루스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특정한 냄새, 소리, 이미지 또는 다른 감각적 자극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번데기를 보고 어린 시절에 갔던 영화관과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으니, 나에게도 프루스트 효과가 적용된 셈이다.지금, 누에의 한살이를 생각해 본다. 누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주는 존재다. 고치 속에서 날고 싶다는 꿈을 꾸었을 텐데도 사람들에게 실을 주고 식용이 된다. 나는 왠지 누에가 아낌없이 나눠 준다는 점에서 부성애가 강한 내 주변의 아버지들과 닮은 것 같다. 자식을 위해 늘 헌신하는 아버지들. 내 아버지도, 아버지의 꿈이 있었을 텐데 나를 위해 매순간 가슴으로 삭혔을 것이다.아버지가 무던히도 그리운 날이다.

2024-06-19

새벽 외에 문장들

배문경 수필가 오징어의 한계선이 자꾸 서해안으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는 그만큼 점점 몸값이 비싸지기도 했다. 그래서 새벽시장이다.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이다.시장으로 들어서니 경매인의 손으로 건너온 문어가 큰 다라이에서 미끄럼을 탄다. 작은놈 큰 놈 할 것 없이 지구인과는 다른 종처럼 보인다. 그런 얼굴로 제사상에 늘 올라앉는 품목이다. 집안 큰일에 삶아서 올리면 다리 한 부분 둥글게 쩍쩍 달라붙는 문어야말로 비싸지만 제대로 몸값을 한다. 이제 시가에 팔린 문어는 커다란 솥으로 직행해서 삶겨 또 갈고리에 걸릴 것이다. 문어가 첫 문장을 쓴다.활어야말로 시장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물속에서 제대로 날고뛰던 놈들이 죽은 듯이 엎드리지 않는다. 지느러미와 꼬리로 한 번씩 물을 쳐올리며 퍼덕이던 삶의 막장을 쓴다.늘 동사, 의태어였던 그들은 머지않은 시간 시퍼런 바닷물에서 유영하던 것들이 좁은 수족관에 갇혀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뜰채에 의해 무게가 결정되면 아낌없이 아줌마들의 날렵한 칼날 앞에 앞뒷면이 해체된다. 바다의 향기는 순식간에 한 점의 젓가락에 잡혀 올라가고 시퍼런 꿈들은 이미 사라진 후다. 흥정으로 철썩철썩 바다 향기가 진하게 두 번째 줄을 칠한다.아무리 싸도 갈치는 갈치다. 은비늘 반짝이며 미끈한 몸매를 과시하는 생선 앞에서 아낙들은 쉬 지갑을 열지 못한다. 아이 손바닥만 하게 동강 내서 굽거나 찌지면 그 맛이 비린내로 등천해도 어떤 맛인지 안다. 바다낚시로 잡힌 갈치의 은비늘은 한 톨의 구김 없이 빛을 발한다. 한두 바퀴 돌다 제일 값이 맞는 곳이라야 흥정에 값 치르고 대가리를 떼고 유영하던 지느러미를 과감히 날리고 긴 꼬리까지 길이에 맞게 자른다. 노릇노릇 식탁에서 밥값 톡톡히 할 갈치가 장바구니에 담기며 중심 문장을 쓴다.전복 한 마리를 넣고 라면을 끓여 대박이 난 식당이 있다. 전복이 갖는 위력이다. 병약해진 가족을 위해 접착력 강한 삶의 이면으로 강하게 붙어있는 전복을 크기에 맞게 그날 시세로 팔려나간다. 죽을 끓여도 좋고 해물탕에 넣어도 좋다. 전복불고기는 말해 무엇하랴. 담백하고 졸깃졸깃한 맛 또한 일품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그 이름값을 한다. 큰 놈을 사겠다고 줄 서는 사람들은 원기 회복하고 열심히 살아갈 사람들이다. 전복에게는 바다와 해초 향이 그득 담겨 바다 속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바다의 은유다.어시장 한 켠에는 얇게 저며진 독특한 향의 고래고기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포경선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쳐둔 거물에 걸려 올라오는 밍크고래를 끌어올려 수육을 팔아 나갔다. 소금장에 찍어 먹으며 소주 한잔을 걸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다.옛 고향 마을에도 오일장이 서면 좌판에 펼쳐둔 고래고기는 특미였다. 사내들은 기름이 가득한 고기를 씹으며 소주에 취해 파장쯤에는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그러나 우리 집 밥상에는 고래는 오늘도 건너뛴다. 식구 많은 우리 집 밥상에 값나가는 고래는 사족이다.한 무더기씩 쌓인 고동이며 새우며 뼈 없는 종족들이 모여 있다. 싱싱한 고동을 삶아 이쑤시개로 마지막 내장까지 꺼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나다. 먼 바다를 향해 둥글게 말아 감은 고동의 소리가 한껏 고조된다. 옆에 잔 새우는 볶거나 국물 내기에 더없이 좋고 큰 새우는 튀김에서 단연 최고다. 껍질을 까고 이곳저곳 다양하게 새우를 넣으면 품격이 높아진다. 탄력 있는 새우가 오늘 좌판에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는 이를 향해 아련한 눈길을 보낸다. 접속사 같은 녀석들을 한 방구리씩 주워 담아 시장을 나선다.새벽을 걷어낸 햇살의 팔다리가 길게 발치에 뻗친다. 장바구니에 담긴 바다가 식기 전에 집으로 달려간다.후다닥 저미고 굽고 졸이고 튀겨낸 수필 한 상 차려 가족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세상으로 내보낸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가라 등을 떠민다. 현관에 가족들이 벗어둔 관용어를 쓸어 담아 수납장에 포갠다. 또 찾아올 새벽을 위해.

2024-06-12

봄볕

윤명희 수필가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얼굴이 환하다. 공인중개사인 내 사무실에 그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온다. 유모차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손녀를 바라보듯이 웃었다. 가끔 보면서도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숨는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아랫입술이 삐죽이 나온다.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나는 얼른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물기가 그렁한 눈도 잠시, 아이가 아빠의 품에서 내려선다. 우리 사이의 낯선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아이는 의자를 당기더니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올린다. 금방 시들해졌는지 의자에서 내려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걷는 걸음마다 노랑병아리 소리가 따라다닌다. 아이를 쫓아다니는 남자의 눈이 깊다. 그는 아이의 뺨에 제 얼굴을 갖다 대고는 붕어빵 같으냐고 묻는다. 그는 만날 때마다 그렇게 묻는다. 꼭 닮았다고 하자, 그가 웃었다.몇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덤프트럭 운전을 하는 그는 한쪽 다리를 약간씩 절었다. 늘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마흔 조금 넘었을 뿐인데 쉰도 더 되어 보였다. 혼자 오래 살아왔던 그가 일이 끝나고 불 켜진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아이를 갖는 게 소원이지만 나이가 열 몇 살이나 적은 필리핀 아내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더 욕심내다 이 순간마저 날아갈까 싶어 포기한다는 그가 안타까웠다.그의 집을 보러 갔을 때였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연 그녀는 재봉 일을 하고 있었다. 재봉질 해 놓은 천들이 작은 방 한 가득이었다. 바닥에는 일감과 먼지가 굴러다녔고, 2인용 식탁 위에는 빈 컵라면 그릇에 빵 봉지가 구겨진 채 있었다.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말라붙은 냄비와 그릇들이 포개져 있고, 그 아래에는 빨래 바구니에 미처 담기지 못한 양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손님인 나를 보지 않고 눈길이 자꾸만 재봉틀로 가는 그녀는 주인이 아니라 잠시 일 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는 자기 고향으로 가 버릴 것 같아 며칠을 고민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가진 재산이 얼마쯤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전혀 거리낌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 옆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통장 내역을 털었다. 두꺼비같이 헌 집 주고 새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하는 날, 그녀에게 새 집에서 예쁜 아기 낳아서 잘 살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뒤로 숨으며 더듬거리는 말로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같은 동네주민이 된 그들은 종종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 직접 커피를 타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닐봉지에서 사과를 꺼내 내 손에 건네주며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했다. 축하한다는 달뜬 내 말에 그는 ‘남들 다 낳는 데요’ 라며 쑥스러워했다.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쉬는 날 없이 일을 해도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매화꽃이 막 필락 말락 하려던 날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그가 휴대폰을 쑥 내밀었다. 폰에는 아기 사진으로 가득 찼다. 나는 길가로 물러서서, 입을 오물거리는 갓난아기의 동영상까지 보고 또 보았다.“다들 날 닮았다 그래요”내 옆에 붙어 서서 아기사진을 보는 그의 눈이 빠져들 듯 했다. 그는 가끔 내게 또 다른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또 가끔은 아기를 보여주러 유모차를 끌고 왔다. 볼 때마다 아이는 부쩍 자랐다.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를 지켜보며, 그는 며칠 전에 필리핀에서 장인장모님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딸이 사는 걸 보고 기뻐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이제 둘째 낳아야지?’ 라고 하자, 그가 또 웃었다. 집사람이 얼마나 씻고 닦고 하는지 피곤하다는 말이 행복의 비명처럼 터져 나온다. 세월이 거꾸로 가고 있다. 그는 이제껏 보아 온 중에 오늘이 가장 젊어 보인다.엄마가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에 아이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간다. 앞만 보고 걷던 아이가 뒤돌아서서, 내게 뽀얀 손을 흔든다. 햇살 같은 웃음을 보여주고는 종종 걸음을 이어간다. 빈 유모차가 바삐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갈 때까지 마주 흔들던 손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 서 있다. 딸을 앞세우고 가는 그의 등에 봄볕이 앉았다.

2024-05-29

밥 할 줄 아나

정미영 수필가 만개한 포항 흥해 이팝나무 군락지에 들어선다. 우리 조상들은 이팝나무 아래에서 정성껏 치성을 드리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하여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었다.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들고, 드문드문 피면 가뭄의 피해가 있으며, 꽃이 잘 피지 않으면 흉년이 온다고 믿었다. 밥은 우리네 삶의 축이다. 생명 유지를 위한 기반으로 식량은 중요했기에,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했던 것이리라.고봉처럼 피어난 이팝꽃에서 밥에 대한 추억을 읽는다. 눈보다 마음이 먼저 쉼 없이 훑어내려 간다. 먹먹하게 뭉쳐져 있던 기억이 머뭇거림 없이 시나브로 풀어헤쳐진다. 첫눈 내리던 날, 외할머니 장례식을 치렀다. 돌아가시기 두 주일 전쯤 할머니를 뵈러 갔다. 보름째 곡기를 끊고 마실 것만 겨우 드신다고 했다. 친정어머니가 내 이름을 말하며 할머니에게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노환으로 고생하던 중에 눈까지 침침한데도 나를 알아보고는 말씀을 드문드문 건네셨다.“니, 밥 할 줄 아나?”느닷없는 말에 한순간 긴장이 풀렸다.“할매는, 내 결혼한지가 언젠데…. 밥 굶고 살까봐 걱정하노.”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뼈만 앙상한 할머니의 두 손을 맞잡고 말끝을 흐렸다.사람은 일생을 정리하는 순간에 어떤 생각을 가질까. 아마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이나 마음 아팠던 일이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밥 먹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생의 소실점을 앞에 두고서도 밥 생각을 하셨나 보다.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거친 고단한 세대였다. 너도나도 배곯던 시절, 식구들과 하얀 쌀밥을 배부르게 먹어보는 것이 할머니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궁핍한 살림에 밥은커녕 굶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당신 자녀 사남매와 고만고만한 친척아이까지 키웠으니, 먹거리는 늘 부족했다. 할머니의 꿈은 손수 마련한 몇 뙈기의 논에 벼농사를 지어 김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고봉으로 퍼 담아 자식들에게 먹여 보는 것이었다.할머니는 끝내 논을 소유해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평생 밭에서 일하시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텃밭에 묻히셨다. 논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으니 손수 거둬들인 쌀로 밥을 짓는 것은 애당초 포기했을 수 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삶의 끄트머리에서조차 쌀밥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셨나 보다.나는 어릴 적 외가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할머니 집에 잠시 맡겨졌다. 처음 얼마 동안은 엄마를 찾으며 울었지만 생활에 차츰 적응하면서부터는 분주했다. 고양이를 쫓아다니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장독대 옆의 무궁화 꽃 그림자가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콩밭 매는 할머니 옆에서 실컷 흙장난을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흘러 밥때가 되었다.할머니는 가마솥에 밥을 지으셨다. 향나무 아래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다가 솥에 붓고, 청솔가지를 아궁이 속에 넣어 불을 지피셨다. 밥상이 차려지기를 기다리다 지쳐 허기진 배를 매캐한 연기로 가득 채우고 마당으로 나와 놀고 다시 부엌으로 가기를 두세 번 하면, “이제 밥 다 됐데이.”할머니의 밥 먹으라는 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웠다.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서 있던 할머니! 나를 키웠던 그 무렵 생각이 나셨던 것일까. 손녀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만, 가난했던 시절에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했다고 가슴 한편에 항상 애처로움으로 묻어두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다.삼오날 할머니 산소에 갔다. 옷가지를 태우고 외가 터를 둘러보다가 찌그러진 부엌문을 조심스럽게 밀쳤다. 검게 그을린 아궁이는 제 할 일을 잊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괜스레 사금파리 한 조각을 집어 그 속에 던져 넣었다. 아궁이는 놀란 듯 먼지를 풀풀 날렸다.바람이 불자, 이팝나무가 하얀 꽃비를 흩뿌린다. 그 모습이 꼭,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뽀얀 쌀밥을 내게 보내는 것 같아 두 손 가득 받아본다.

2024-05-22

색에 물들다

피귀자 수필가 오래 볼수록 더 반짝이는 것들, 새싹 새순들이 수천의 문을 열고 나와 온 세상을 물들이며 일렁인다. 엷은 연두가 물감 번지듯 땅 위를 점령하기 시작한 봄날 겨우내 거칠었던 손바닥에도 연두물이 얼비친다. 연둣빛 봄풀들과 손 맞춤을 하면 따뜻한 기운이 나긋하게 온몸으로 퍼진다. 여리디 여린 새순들이 점령한 세상, 이보다 더 큰 이벤트가 또 있으랴.연둣빛 물감을 흩뿌린 길이 다소곳이 다리를 뻗고 혈관 같이 뻗은 잔가지에도 서서히 연두 피가 돌기 시작한다. 바닐라향이 그윽한 슈크림 같이 부드러운 색 연두. 더 없이 연연한 색이다. 한때는 보라색에 물든 적도 있었다. 보라색 라일락꽃이 좋았고 파스텔 톤 보라색에 빠져 옷과 장신구도 하나둘 늘어갔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뾰족뾰족 돋아나 천지에 일렁이는 연두에 감전되듯 흠뻑 빠져 들고 말았다. 보고 있으면 귀까지 열리는 하늘의 축복 연두의 향연. 빛을 향해 뻗어가는 연두의 미소가 폭소로 변할 때까지 나이를 잊고 어느 새 봄 처녀가 된다.누구에겐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 연두가 정점을 찍는 나뭇가지로 시선을 옮긴다. 보일 듯 말 듯 여릿한 자락을 비집고 그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하면 천지는 놀라운 일들이 뒤따르리라. 사랑스러운 봄 들판의 향기가 살랑살랑 흘러나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고 오감이 민감하게 살아나는 봄날, 잠시 표류하던 마음도 이내 자연에 흠뻑 젖어든다.색깔에도 소리가 있다면 연두는 분명 나긋한 소녀의 속삭임이리라. 가랑비같이 가슴을 적시는 저 환한 소리들, 연두는 살랑 바람처럼 유순한 색이다. 꽃샘바람 속에서 감미롭게 살랑대다가 비비적거리는 풀잎들의 소리는 애처로워서 쓰다듬고 싶은 여인의 소리다. 귀 세우고 그 내밀한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연둣빛 빗장 안에 갇힌 봄이 더 사랑스럽다.봄의 무게는 연두가, 여름은 초록이 가늠한다. 날마다 조금씩 무게를 더하는 연둣빛 봄의 물결 속에서 기쁨이 넘치다가도 조바심이 인다. 노랑 빛을 머금은 연 연두가 체온이 높아져 뜨거워질수록 초록을 얼비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덧씌워지는 초록의 물결 속에 연두는 녹아들고 단풍이 찾아오리니. 또 그렇게 한 해가 여물고.한때 천연 염색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애기똥풀에서 우러난 맑고 진한 노란색에 눈이 활짝 떠졌고 밤의 속껍질에선 중후한 멋이, 질경이의 초록색과 귤껍질과 치자, 보라색 양파껍질에서 우러난 노란색과 붉은색 물이 손수건과 흰색 천을 물들일 때마다 경이롭기까지 했다. 어느 날 삶은 대나무 잎에서 우린 물이 흰 명주 스카프에 스며드는데 숨이 멎을 뻔 했다. 연둣빛이 어찌나 부드럽게 곱던지. 그 후로 댓잎에서 우러나오는 맑고 엷은 연두색이 더 좋아졌다.봄의 노크 소리, 속삭임 같은 무 싹과 여린 새싹채소들은 입 속에서도 환하게 피어오른다. 그 맛은 포근한 이불처럼 혀를 감돌고 부드러운 풀과 나무가 연둣빛을 잉태한 봄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행복은 소소한 일상 가운데 있다는 걸 연두색으로 다시 깨친다. 혀끝에 닿는 봄풀냄새가 고향에 온 듯 평화를 주기 때문이다. 수시로 변하는 그 모든 빛깔들이 아름답지만, 풀과 나무를 입고 더욱 영롱한 빛깔을 내는 연두는 튀는 색이 아닌, 말랑한 공같이 아기 피부처럼 보드라운 빛이다.무채색이던 얼마 전과 달리 연두 빛으로 물든 오늘, 어제와 오늘을 가만히 되새겨보면, 이 우주에는 온통 이야기로 가득 차있음을 느낀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갈등도 봄 앞에서는 칠흑 같은 동굴이 아니라 연두 빛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나가는 출구가 있는. 갈등을 이겨내고 그 출구를 나서면 예전보다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므로.만물이 소생하는 근원의 빛은 단연 연두색이리라. 연두가 데워놓은 세상 속으로 연둣빛 명주 스카프를 두르고 소풍을 나선다. 솔바람과 스카프가 맞물려 하늘하늘 날아오른다. 보리 싹과 연잎 사이로 부는 바람이 빛을 더한다. 오감을 활짝 열어 돋고, 피어오르는 연한 살결을 만끽한다.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나긋한 여인 연두의 독주, 우아한 이벤트에 이어 어느새 녹음 속에 서 있다.

2024-05-15

동요와 윤극영 + 박목월

배문경 수필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첫 창작 동요가 100살이 되었다.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의외로 제목을 맞히기 어렵다. 정답은 내용에 없는 ‘반달’이다.올해는 한국 첫 동요로 인정받는 ‘반달’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24년 경성(지금의 서울)에 아동 문학가이자 작곡가인 윤극영은 관동대지진에서 탈출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고통 받다 숨진 누이의 죽음으로 복받친 설움을 안은 그의 눈에 보인 한 장면은 바로 ‘반달’의 가사가 된다.그가 평생 지은 수많은 동요는 어린이거나 한때 어린이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노래였다. ‘까치까치 설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드름’ ‘따오기’ ‘기찻길 옆’ ‘어린이날 노래’ ‘나란히 나란히’ 등 그가 작곡한 주옥같은 동요다. ‘반달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600여 곡의 동요를 남겼다.동요가 된 목월의 ‘얼룩 송아지’ 노래비가 경주 황성공원에 있다. 1968년에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 노래비가 세워졌는데, 그중 하나가 목월의 ‘얼룩송아지’ 노래비다. 박목월이 짓고 서울대 음대 출신의 손대업이 작곡해서 널리 알려진 동요다. 이 노래는 1960년대 문교부 제정 음악 교과서에 실렸고, 어린이들은 물론 국민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소는 우직하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동물이다. 농부인 아버지의 곁에서 논과 밭을 갈고 짐을 운반하며 팔려서는 자식들의 학자금이 되었던 든든한 자산으로 우리와 뗄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가장 쉽고 많이 부르는 동요 ‘송아지’의 주인공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 토종 한우인 얼룩배기 ‘칡소’를 보고 동시를 썼다고 한다.동시가 동요가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동요축제 ‘KBS창작동요대회’가 33회를 거치는 동안 400여 편의 새 동요를 발표하였다. 1989년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시작으로 ‘수수꽃다리’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꼭 안아줄래요’ ‘내 손은 바람을 그려요’ 그리고 작년 대상곡 ‘뻥뻥 뻥튀기’까지 이 시대 어린이들의 감성을 표현하는 동요들이 발표되고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올해 제34회 KBS창작동요대회에서는 창원문협 도희주가 쓴 노랫말 동요가 대상을 수상했다.‘멍멍 기분이 좋아/ 헥헥 강아지가 / 내 품으로 달려온다/ 졸랑졸랑 우리는 좋은 친구/ 꿈속에서 우리는 좋은 친구’-‘강아지’부분경주문인협회 주관 2024년 제57회 목월 백일장 초등저학년 장원작품이다. 시제는 초등저학년은 강아지 또는 우산, 고학년은 엄마 손과 봄비 중에 선택한다. 중학생은 달력과 사춘기, 고등학생은 보름달과 돌다리, 대학 일반부는 계단과 회오리였다. 어린아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서 표현한 문학 장르의 하나인 동요가 인구감소와 더불어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이번 목월 백일장을 통해 가족의 연대를 보았다.원고지를 받아 든 참가자들이 숲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았다. 글을 쓰기 위해 텐트와 앉은뱅이 탁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돗자리를 깔고 두런두런 시제에 대해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소풍 나온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낮 12시까지 본부석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라 모두 마음이 바빠 보였다.아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듯이 동요가 사라지는 날을 생각할 수 없다.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부터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따라한다, 아이들의 순수한 시기를 어른들의 모습을 그냥 모방함으로써 동요를 잃어버리고 있다. 지금 목월의 시(詩)가 세상 사람들에게 향수(鄕愁)를 느끼게 하고, 그리움은 수채화처럼 번져 과거와 현재가 어울림으로써 세상이 살만한 가치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목월의 목소리 들리는 듯하다.

2024-05-08

이모

윤명희 수필가 점심시간의 국숫집이 분주하다. 나지막한 기와지붕의 식당은 벗어놓은 신발들이 제 짝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겨우 빈자리를 차지한 우리는 식당아주머니를 대신해 컵과 물병을 가져왔다. ‘이모!’ 걸쭉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다. 머리 희끗한 남자는 자기보다 나이가 적어보이는 아주머니를 이모라 부른다. 친구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녀는 젓가락으로 뜨거운 국수 가락을 휘휘 저으며 한마디 했다.“왜 이모를 식당에서 찾는대?”나는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봐 곁눈질로 돌아보았다. 다행히 입으로 들어가는 국수의 뜨거운 열기로 친구의 목소리는 멀리가지 않았다. 여전히 이모를 찾는 다른 사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식당종업원을 이모라는 호칭으로 불러 기분 나쁘다는 친구에게 나는 얼마 전에 아들이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모처럼 집에 온 아들이 대학동기 모임에 다녀왔다고 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가 아기를 안고 왔다. 여자 친구들이 목련꽃 봉우리 같은 아기의 볼을 부비며 서로 안으려 했다. 겨우 옹알이 하는 아기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모’라 불러보라고 야단이었다. 옆에 있었던 아들이 ‘고모’라 불러야 한다고 거들었다. 우리는 아기아빠의 친구니까 고모가 맞지 않으냐는 말에 그래도 이모가 좋다고 했다.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불멍을 하던 친구들이 낮에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는 편한데 고모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기도 그런 느낌이라면서 ‘왜 그렇지?’ 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친한 건 고모인데 편한 건 이모라는 말에 모두 동의를 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하자, 평소 별로 말이 없던 한 친구가 캔 맥주를 하나씩 던져주며 말했다.“왜긴 왜야, 내 엄마가 고모보다 이모가 편하니까 그렇지.”잠시, 자기 집안을 돌아보는지 조용했다. 자식들은 엄마의 지나온 길을 기억한다. 자기한테 잘 해 줘도 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아무도 반기를 내지 않더란다. 맥주를 단숨에 마신 그는 아빠와 엄마 사이가 좋지 않을 때도 아빠가 싫지 않더냐고 되물었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편해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살아온 세월의 깊은 내면에 쌓인 감정이다.나의 지난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이면 고모가 왔다. 제사음식 준비만으로도 바쁜 엄마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생선구이를 밥상에 올렸고, 새로운 나물반찬 하나라도 더 준비했다. 행여 우리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도 할까봐 주의를 준 터에 우리는 고모가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우리 형제들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었던 고모는 엄마가 모셔야 하는 형님이었다.이모가 오는 날도 먹을 게 많았다. 엄마는 당신이 동생이라는 위치를 한껏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모가 오는 날은 김칫거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다듬지 않은 푸성귀가 있었다. 우리는 제비새끼마냥 엄마 곁에 앉아, 이모 손에서 김치쪼가리를 받아먹곤 했다.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입을 호호 불어가며 퍼 먹었던 기억은 푸근함이었다. 엄마는 자식들이 나이만 먹었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둥 흉을 보고, 이모는 자기 집 딸년들도 마찬가지라며 받아주었다.엄마가 아픈 날이었다. 이모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비닐봉지 속의 장어가 작은 체구의 이모를 휘청거리게 했다. 가스 불에 들통을 얹고, 참기름을 두른 이모는 장어를 집어넣었다. 이모와 내가 누르고 있던 뚜껑을 젖히고 튀어나온 장어가 온 주방을 휘저었던 그날, 우리는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국숫집을 나오며 나는 친구에게 저 남자들도 고모보다 이모가 편한가보다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요즘은 이모, 고모 없는 애들이 많은데, 이모가 식당아줌마인 줄 알게 될까봐 겁난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돌아가신 이모가 보고 싶은 날이다.

2024-05-01

바람, 불다

정미영 수필가 어제부터 강한 꽃샘바람이 분다. 겉옷이 날릴까봐 양팔로 감싸고 걷는데도 옷깃을 들추며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수시로 옷섶을 여미고 있다.나무는 나와는 달리 온몸으로 바람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오히려 바람의 손길에 운명을 맡긴 듯하다. 그런 연유로 벚꽃 잎이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더니 길섶마다 소복하게 쌓인다.꽃잎을 밟으며 걷는데, 문득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 생각난다. 얼마 전에 중고등학생들과 이 시로 수업할 때였다. 나는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수업을 할 때에 ‘역할 바꾸기’를 자주 요구한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시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이다.예전에는 관점을 달리해 보고 작품 속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웬만하면 중심인물이나 주변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옹호하고 변호를 이끌어 내는 경우가 많았다.그런데 요즘은 청소년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진달래꽃’ 시에서의 역할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도저히 공감할 수 없다는 학생들이 늘었다. 이별하는 자체도 나와 상대방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기분이 상하는데, 떠나는 임에게 꽃을 뿌리며 축복하고, 더군다나 사랑의 승화까지 기원하는 여인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감정 소모를 많이 시키고 자기들 마음에 상처를 주며 헤어졌는데,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느냐며 나에게 반문했다.민족적 한과 정서를 표현한 시인이라고 설명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별을 대하는 의식과 가치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리라.“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는 소리 내어 시를 읊어본다. 다시 한 번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밟으며 한참을 걸으니, 괜스레 시 속의 애절한 화자가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소소리바람 탓이려나! 학생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가식적이라며 야유를 퍼붓겠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오늘의 모임 장소에 다다른다.포항시립미술관 앞에서 일행을 기다린다. 차량이 밀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연락이 왔다. 환호공원을 산책하면서 기다려야지. 길을 따라 걷다가 가게에서 파는 풍선을 보았다. 풍선을 보면 꿈과 자유, 희망과 순수라는 낱말이 떠오르며 정겹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풍선의 모습은 놀이동산이나 유원지에서 솜사탕과 함께 한다. 노랑, 빨강, 파랑 등 색색의 풍선이 매달려 있는 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으로 꽉 잡고 다니면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린 마음에도 풍선처럼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싶었나 보다.미술관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호젓한 곳으로 고른다. 새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봄 햇살 머금은 나무들이 초록 잎을 반짝거린다.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걷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풍선이 보인다. 어쩌나! 주변에 장대라도 있으면 구해주려는 시도라도 해보련만. 봄꽃이 사계절 동안 화사하게 피어 있는 것이 아니듯이, 풍선도 늘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나는 것이 아니다.풍선은 바람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바람의 힘에 영향을 받아 방향을 바꾸거나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나뭇가지에 걸린 풍선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어 애처롭다.우리네 삶도 이와 같은 이치이리라. 내 가슴에 꿈을 담고 바람을 잘 이용해 더 높이, 더 멀리 날고 싶지만, 생활 속에 이따금 찾아오는 거센 태풍으로 인해 좌절하고 포기하고 두려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변곡점 위에 섰을 때 바람이 불어온다면 다부지게 옷깃을 여미든가, 나무처럼 온몸으로 순응하든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내 몸 안의 세포와 감각을 온전히 열어 세밀하게 세태의 기류를 잘 읽고, 주변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허방을 딛지 않을 것이다.내 인생에 무시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슬기롭게 이용해야겠다.

2024-04-24

명태 껍질

피귀자 수필가 ‘여인과 노인’이라는 거장 루벤스의 그림 앞에 섰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가슴을 빨고 있는 부자유스러운 애정 행각에, 먼저 불쾌한 감정을 노출하기 일쑤라고 한다.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반나체의 노인을 통렬히 꾸짖던 사람들에겐 노인과 이성을 잃은 젊은 여인이 가장 부도덕한 인간의 유형으로 비춰졌을 테니 말이다. 삼류 포르노 같은 그림은 알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보게 된다.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가끔 일어나고 그 끝은 대개 아름답지 못했던 까닭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커다란 가슴을 내놓고 있는 그림 속의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이 노인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고 로마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둔 후 ‘음식투입금지’ 명령을 내렸던 것이었다.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딸은 해산한지 며칠 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감옥에 찾아갔던 것이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엔 핏발이 섰으리라.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금 밖으로 사라지려는 아버지. 여인은 가슴을 풀고 불은 젖을 아버지께 물렸다는 것이다. 무엇이 부끄러웠겠는가.마지막 가시는 아버지에게 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의 장면이었던 것이다. 부녀간의 사랑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으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아끼는 그림이라고 한다.부도덕한 작품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도 설명을 듣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감상한다. 사람들은 종종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 옛날 어른들은 종종 본질을 호도할 때 ‘눈에 명태껍질이 씌었나.’라고 나무라기도 하였다.지인 중에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꿀 등을 파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알맞은 값을 받을 판로가 부족하다보니 부탁을 받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려면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고 가끔 물건을 전달해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사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물건을 시중보다 싸게 살 수 있고, 파는 사람들은 가계에 도움이 되니 서로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주 연결을 해주었다. 할 수 있는 한 적극 이어주던 어느 날 깜짝 놀랐다.그렇게 하면서 중간에서 물건을 얻는 등 이득을 취하리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의 겹이 두꺼울수록 그림자의 깊이는 깊어지는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 오해를 받고 보니 사람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음이 더 서글펐다. 수십 년 사귄 친구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되돌아 보였다. 사람들은 소개를 위해 입을 떼는 자체를 귀찮아하거나 자신에게 이로움이 생기지 않는 일에는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음도 알게 되었다.생각과 믿음에도 숨이 있다. 어떤 생각에는 숨통이 트이고, 어떤 생각에는 숨이 막힌다. 내가 한 행동처럼 좋은 일 한답시고 나서는 이는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닐까. 한번은 소개를 해주었을 뿐인데 우리 집에 보낸 걸로 착각하는 해프닝으로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말의 독한 상처에 베인 이후로 나서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또 딱한 사정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옛날엔 그냥 버렸던 마른 명태껍질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콜라겐이 많다고 알려지자 기호식품이 되었다. 튀기거나 볶은 반찬은 맛도 괜찮은 편이다. ‘눈에 명태껍질을 발랐나’라고 질책하던 말의 뜻은 아무리 얇을지라도 눈에 막을 치면 사람의 품성이나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이나 사물의 이치, 사람사이의 모든 관계에도 해당되리라. 눈에 불필요한 명태껍질을 떼고 교만과 아집과 편견을 버리면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내뿜는 세상의 향기들이 발을 헛디뎌 사라지지 않도록.

2024-04-17

벚꽃이 피던 날

배문경 수필가 ‘죽산 가는 길목, 머리 없는 석불 둘이 서서 비에 젖는다. 사그막골 두 노인네 점심 끼니로 찐 감자 두어 개 천일염에 찍어 먹고 종일 오시는 비나 내다본다.’ - 장석주 시인의 ‘석불(石佛)’중창문을 열었다. 열린 창으로 빛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환한 빛 속에서 기다리는 무수한 눈동자들 사이로 “밥 두가, 밥 두가” 노인의 목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깬다. 그 소리를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수런수런 들리는 소리로 인해 밤의 시간은 툭툭 털고 일어선다. 세 끼 식사는 어찌 그리 빨리 다가오는지. 세 끼 식사는 얼마나 마음을 짠하게 하는지. 산다는 것은 입으로 밥풀을 넘기는 일이다.아침과 점심시간 사이에는 종교적 위안을 주는 소리와 영상과 목회자가 있다. 따라 하는 음절 속에는 평화와 안식이 존재할 수 있다. 서성이던 사람들도 조금은 고요해지는 시간, 몰입되는 시간이 고맙다. 내일을 알 수 없다. 떠난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 시간과 이후 새로울 것이 없는 내일이라는 미래. 창밖은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눈부시거나.이곳도 계급이 있다면 있다.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에 간식이 주어지고 다섯 끼의 음식 사이, 식사할 때 조미 김 하나를 더 먹을 자유가 있고 자식이 사 준 과자나 과일을 혼자 먹거나 나누어 먹으며 으쓱할 자유도 있다. 대부분 자식들의 챙김이 어르신의 자존심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유형의 보호자들이 부모를 찾는다. 음식과 필요로 하는 것을 서너 박스로 챙기는가 하면 잘 지내냐고 인사만 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챙겨드리고 남은 음식을 자세히 적어두었다가 챙겨드리는 것은 직원들의 책임이다. 그래도 이미 자식들이 넣어준 과자며 과일은 다 먹은 뒤인데 치매로 떠오른 음식의 이미지로 사람을 몰아세운다. 남은 것은 없는데 누가 사다 준 그것을 달라는 어른이 인정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된다.저녁 식사 후 양치가 끝난 어르신들의 잠자리는 일상의 마침표이지만 덜 끝낸, 그래서 또 하나의 시간이 시작되는 밤이다. 소리란 고요할 때 더 크게 들리니까. 낮과 밤이 구분이 되지 않는 몸과 정신으로 서성이는 어른들, 쉴 새 없이 오라고 알리는 벨 소리, 어둠과 함께 여러 형태로 만들어지는 밤의 전경들로 한밤의 고요는 없다. 때론 토닥토닥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로 재워드리며 당직자의 밤이 하얗게 물든다. 대, 소변과 밤새 주무시지 않고 소리를 지르거나 시끄럽다고 룸메이트를 겨냥한 욕설과 집에 가겠다고 배회한 사람들에 대한 이모저모가 타닥타닥 자판 속에서 잠자다 일어나 하품을 한다.노년의 무게가 큰 바위 같다. 언제 건너온 강 건너의 시간일까. 찬란한 시간이 모이고 모였던가. 그래서 人生(인생)이란 집 한 채를 지우고 자식을 그리워하다 지치고 지쳐야 이곳에 정착한다.이곳에서 자식은 만나고 싶을 때마다 만날 수는 없다. 서로가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기에. 오직 자식을 건사하고 먹이고 보살폈던 몸은 겨울나무처럼 메말라 거칠고 작아졌다. 몸피가 작아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다. 삶의 무늬는 어떤 것일까. 날실과 씨실의 시간이 교차하며 만든 곱고 아름다운 시간의 흔적은 숙연해지는 빛깔을 만드는 조각과 조각 사이.초록의 싹이 돋아나더니 벚꽃이 영글기 시작했다. 바람이 쏴아 파도치듯 지나가면 겨울 비킨 자리로 꽃의 계절이 눈부시게 카펫처럼 펼쳐진다. 벚꽃이 눈부시게 펼쳐진 길로 나아간다. 걷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부축 받거나 어르신들이 다시 소녀로 소년으로 변신하는 시간으로 들어간다. 봄바람이 파도처럼 넘실거리자 얼굴 위로 주름진 얼굴은 사라지고 리즈의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 되고 웃음소리 낭자하다. 그래, 다시 피어나는 거야.벚꽃의 꽃말이 잠시 머무는 아름다움이라고 했던가. 꽃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눈부신 어르신들의 웃음이 환하게 번져나간다. 오늘 지금이 행복이고 즐거움인 것을.

2024-04-10

나무의 시간

정미영 수필가 봄바람이 고즈넉한 숲을 흔들어 깨운다. 돋을볕의 줄기들이 나무 사이로 퍼져나가면 밤사이 내려앉았던 어둠이 서둘러 제 갈 길을 떠난다. 나뭇가지들은 따뜻한 바람의 손길이 닿자마자 앙증맞은 꽃망울을 터뜨리느라 분주하다.나무들은 오래 전 각인된 유전자의 기억으로 봄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환경에 적응하면서 대대손손 수천 년을 지탱해 온 나무의 저력이 새삼 경이롭다. 무리지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도 저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 각자의 속도로 오랜 세월의 흐름을 건너왔겠지.나는 봄맞이를 하려고 나무 앞에 선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환한 얼굴로 나무를 마주하고 있다. 나무는 해마다 세찬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매서운 추위에도 씩씩하게 견뎌낸다. 나는 그러한 나무들을 보면서 지난겨울에도 봄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봄바람이 불어와 얼었던 계곡물을 녹이고 나목의 수피를 봄기운으로 물들일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나는 나무를 쓰다듬으며 자연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꽃 피는 봄의 따스함,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의 열정과 낙엽이 휘날리는 가을의 쓸쓸함, 무채색 겨울 숲속에서의 고요를 떠올린다. 잊지 않고 반복되는 시간의 순환은 나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어느 한 계절 동안 내 삶에 모진 풍파가 찾아와 내가 침잠하고 바닥을 헤매다가도, 언젠가 다가올 앞날에는 희망이 두 팔 벌리고 안아주겠지, 나를 기대하게 만들고 꿈을 꾸게 만드는 힘이 있다.소설을 쓰는 K작가가 이탈리아를 다녀오면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다. ‘판타레이(panta rhei)’가 적힌 냉장고 마그넷이었다. 냉장고에 붙여 놓고 오며가며 글자를 들여다보다가 요 며칠 생각했다. 나무처럼 판타레이(panta rhei)를 잘 증명하는 존재가 있을까.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말했다. 매일 찾아오는 24시간의 하루도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 내일의 하루가 다르듯이, 나무가 일생을 견뎌내는 시간을 지켜보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나무의 시간은 계절에 따라 변곡점의 연속이다. 뿌리가 땅 속 깊이 뻗어 있고,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생명력을 과시하는 동안에는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내적 성장을 도모한다. 나무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면 알 수 없다. 나무의 하루가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순간 생장점을 성장시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우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의 내적 성장도 때로는 나무를 닮아 천천히 이루어져야 되리라.북 트레일러 강좌에 등록했다. 몇 번의 수업을 들은 뒤, 복습하려고 휴대폰 앱에 들어갔다. 제작을 위해 알아야 되는 개념과 요소를 기억해 내며 고군분투했다. 19초 영상을 만드는데 5시간이 걸렸다.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1초 단위로 크롭, 키프레임, 페이드 등의 다양한 기법을 작동시켜야 했고 어떤 배경과 사진이 어울릴지, 글씨체와 음악은 무엇이 좋을지를 선택하는데 고민했다. 서툴고 어려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느 순간 배움의 즐거움과 스트레스의 무게가 비례해지며, 수시로 양가감정에 시달렸다.북 트레일러 제작법을 능숙하게 배우고 싶었다. 강사님께서 나의 책 ‘사계’로 영상을 제작해 오셔서, 그것을 표본으로 매시간 수강생들과 수업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잘해 내고 싶은 마음이 늘었다. 또한 다른 작가의 책도 멋진 영상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욕심이 생겼다. 배움의 속도가 느린 나를 배려와 인내심으로 지켜봐 주시는 강사님과 다른 수강생들께 미안함이 커질수록 마음이 앞섰다.나무의 시간을 닮고 싶은, 햇살 고운 봄날 오후다. 나무의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며 나의 시간을 투영해 본다. 나의 성장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배운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다.

2024-04-03

무관심과 호기심 사이

피귀자수필가 나긋하게 얹힌 봄이 꽃샘추위 속에서 시간의 길을 잃어버린 날, 무엇에 이끌렸을까. 지하철에 들어선 풍뎅이 한 마리가 수십 개의 눈 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리저리 부딪다가 뒤집어져 팽그르르, 축을 잃은 팽이의 동작에 놀란 몇몇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모양이 마치 찬바람 속에서 버둥거리는 새싹을 닮았다.진화를 꿈꾸던 곳은 어디였을까 여긴 분명 아닐 텐데. 낯선 환경을 뒤늦게 감지한 걸까. 날갯짓의 속도에 점점 불안함의 무게가 더해진다. 먼 섬을 찾아 들썩여도 좋았을 저 튼튼한 견골. 잘못 접어든 골목길에서 한참을 헤매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던 난감함이 저럴까. 미로를 빠져 나가려고 허우적거리다보면 당황하기 일쑤 아니던가. 조급한 마음에 애를 쓰면 쓸수록 침착함과는 멀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던가.호기심 가득한 구둣발과 운동화 사이로 앞발 뒷발 바싹 들고 하늘을 이고 살던 등으로 돌리는 풍뎅이의 연자방아. 낯선 말의 길에서 한동안 잃었던 나를 여기서 다시 보듯 풍뎅이의 비보이 공연이 아찔했다. 그때 새로 들어찬 사람들에 가려 대각선 입구 쪽에 있던 풍뎅이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안개처럼 일어났던 관심도 차츰 바람처럼 사라져갔다.또각또각 뾰족 하이힐이 걸어와 맞은편 빈자리에 앉자 의자까지 환하다. 매끈한 종아리 위의 짧은치마 끝을 향해 저절로 고개가 들려지고 아뿔싸 훔쳐보던 눈동자들, 들키고 말았다. 여자의 눈도 저절로 드러난 다리를 더듬는데 남자들이야 오죽할까. 옆자리 검은 운동화의 하얀 끈과 날씬한 종아리도 눈부시다. 파릇한 청춘의 다리는 곧다. 맞은 편 사람의 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창 모자 밑으로 보이는 세상은 색다르다. 모자를 쓰고 지하철에 앉아 고갤 살짝 숙이면 사람들의 무릎아래만 보인다. 마주보는 것이 어색했는데 창 모자 하나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까만 납작 망사구두가 부푼 발을 감싸느라 터질 듯 하고 연세 많은 할머니의 통통한 다리는 아직 세상을 딛고 설 기운이 넘침을 말해 준다. 끌어올린 두꺼운 양말 속 종아리가 나이를 과시하고 있지만. 발만 바라봐도 나이가 보이고 비슷하거나 아예 같은 신발의 남녀는 다정한 커플임을 과시한다. 아마 고개를 조금 더 들면 겉옷이나 윗도리 등도 커플룩이 보일지도 모른다.어느 역에서인가 맞은편 의자의 손님들이 교체되었다. 여섯 자리 모두. 평소엔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중요치 않던 자리 수를 세다보니 지하철은 종점을 향해 달린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는 시외로. 팔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는 운동화 한 쪽 앞이 비어있는 듯 앞쪽이 쭈글쭈글 하다. 발 뿐 아니라 한쪽 손까지 불편한지 손바닥이 위쪽을 향해 의자에 힘없이 놓여 있고, 또 다른 발이 되었을 지팡이 끝 고무판도 비뚤게 닳아 있었다.레이스가 있는 하얀 바짓단 아래 분홍 색깔의 구두는 더 선명하다. 그 옆자리 까무잡잡한 슬리퍼의 아주머니와 대조적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비슷할 것도 같으나 신발로만 본 나이는 차이가 확연하다. 다리 사이에 삼진 어묵 종이봉투를 끼우고 앉은 아주머니는 구겨진 봉투처럼 안절부절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 문이 열리자마자 검은색 바탕에 연두색 끈이 달린 볼 넓은 운동화에 온통 흙이 묻은 아저씨가 올라왔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텃밭이라도 가꾸느라 묻힌 흙일까?아뿔싸! 굼뜨게 지하철을 내리려던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와 그 흙발아저씨가 부딪히고 말았다. 기우뚱하던 할아버지는 기어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손과 발이 불편해 보이더니 풍뎅이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주저앉듯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그때까지 파르르 떨다가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던 풍뎅이처럼.목소리가 없어 말을 못하는 풍뎅이. 온몸으로 안간힘을 쓰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던 당신의 슬픈 등은, 마스크와 모자로 변장하고 자신의 일 외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암시를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최고의 배려라는, 이청득심(以廳得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2024-03-27

말 많을 절

말을 많이 한 날은 왠지 속이 텅 빈 것 같다. 내 속의 무언가를 다 끄집어내 보여준 것 같아 기분마저 가라앉는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때도 있다. 그런 날은 가슴이 꽉 차게 느껴지지만, 나 혼자 떠든 것 같은 날은 왠지 마음 한 쪽 구석에 찬바람이 휭 하니 지나간다. 주책없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왜 했을까?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 괜히 머리만 쥐어박는다. 나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한자를 찾아 옥편을 뒤적이다 획순이 가장 많은 글자는 무슨 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획순 따라 가장 뒷면을 펼치니 총획수가 64획이나 되는 ‘말 많을 절’이 있었다.용(龍)자가 네 개나 붙어 있는 글자다. 한 마리만 해도 획수가 많은데 위 아래로 포개듯이 네 마리나 있으니 그 수가 좀 많겠는가. 그런데 왜 용이 많으면 말이 많을까? 낙관(落款) 같은 글자의 모양에 관심이 일었다.용은 우두머리를 뜻하지 않을까? 우두머리 넷을 한 글자에 담았다는 자체에 생각이 머물렀다. 용이 넷이나 되니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자칭하게 될 것이고, 그러자면 자연 말이 많아 시끄러울 것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갔다. 같은 용이지만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차이가 나지 않을까? 위에 있는 것과 아래에 있는 용이 다를 것이고, 좌청룡 우백호를 따지는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위에 있더라도 직책은 다를 것이다. ‘말 많을 절’자 안에는 같은 용이지만 네 가지의 계급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이 꼬리를 물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글자 안의 용들이 꿈틀거린다. 누가 더 힘이 셀까? 네 마리의 용의 모양은 같지만, 품성은 다 다르게 보인다. 네 자리 중 서로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물고 뜯는다. 서로를 비방하고 모함하며 모두 제가 가장 잘났다고 내세우기에 바쁘다. 남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기에 나와 상대를 비교분석 해야 한다는 것은 애초에 없다. 단지 내가 아니면 안 될 이유만 말 할 뿐이다.그 글자 안에는 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욕심도 많다. 세상과 단체를 위한다는 대의명분 속에 감춰진 마음을 조금도 버릴 수가 없어 한 치의 양보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진정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누가 더 갖추고 있는지 차근차근 따져, 나보다 더 나은 한 마리의 용에게 선뜻 여의주를 넘겨주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남은 세 마리의 용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 추천된 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면 아마 그 글자는 처음부터 ‘말 많은 절’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윤명희 수필가 용(龍)은 하나일 때 빛이 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용이 될 수 없다. 그저 ‘말 많을 절’자에 불과하다. 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은 모습만 용일 뿐 이무기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자신을 용이라 하겠지만, 멀리서 보는 내 눈에는 그들이 말 많은 한 무리로 보일 뿐이다. 여의주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용들로 인해 그 글자는 지금도 복잡하다.좁은 내 생활의 테두리 안에도 작지만 용의 자리는 있다. 예전, 어느 단체에서 잠시 네 마리의 용 틈에 있었던 적이 있다. 지나고 보니 그 자리였지, 정작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한 사람이 계속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내게 해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가 다른 이에게 내 말을 하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체 이상해져 가는 단체 분위기에 갈팡질팡했다. 말 속에 있는 내가 싫어 그 단체를 나왔다. 시간이 흘러, 한 발짝 뒤에서 보니 그녀가 단체장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았다.뉴스에서 보는 정치가들의 모습이 내가 속한 단체에서 보였다. 서로 화합하면 재미있을 일이 누가 회장이냐에 따라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네모난 낙관(落款)처럼 생긴 ‘말 많을 절’자를 가슴에 찍는다. 다만, 내가 그 속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용 뒤에서 비록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2024-03-20

목리

배문경 수필가 장롱 한 짝을 들였다. 친정집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만 차지하던 장롱이다. 앞은 느티나무에 옆과 뒤는 오동나무로 된 전통 방식의 맞춤이다. 비록 유행이 지나고 낡았지만 합판에 무늬 필름을 덧씌운 가구보다 나을 것 같았다.장롱은 부모님과 오래도록 한 방에서 숨을 쉬었다. 연륜이 있는 물건은 내력을 품어서 그런지 곳곳에 부모님의 숨소리가 배어있는 듯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말이며 갸릉갸릉 가래소리와 쿨럭쿨럭 기침소리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주름까지 느껴진다. 물걸레로 닦고 광택제로 문지르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삶의 무늬가 깨어난다.물결일까, 바람의 무늬일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등고선일까. 이쪽에서는 산모롱이를 지나는 물처럼 유려하게 휘돌고 저쪽에서는 들판을 달리는 바람처럼 곧장 내달린다. 옹이에 부딪치면 소용돌이치다가 서로 엉킴도 없이 다시 흘러간다. 곡선과 직선의 흐름은 말 없는 나무가 온몸으로 그려낸 무늬다.땅속에 묻힌 씨앗 하나, 땅을 움켜쥐고 가만히 고개를 내민다. 축복이라도 하듯 따뜻한 햇살이 뺨을 어루만진다. 직립의 의지를 곧추세운 나무는 우듬지를 하늘로 밀어 올린다. 그토록 사납던 바람이 언제 부드러워졌는지 교태를 부리며 겨드랑이를 간질인다. 꽃이 만개하면 봄날은 절정이다. 벌 나비와의 밀애는 달콤하다. 그러나 봄날 뒤에는 또 다른 시련이 예고되어 있다.나무는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직립을 무너뜨릴 듯 바람이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온 힘을 다해 버틴다.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지면 끝이다. 땅을 꽉 움켜잡는다. 우지끈, 견디지 못한 팔이 파열음을 내며 부러진다. 발성기관이라도 있으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나무는 속으로 제 울음을 가둔다.나무는 소리조차 몸으로 듣는다. 소리에도 나름의 무늬가 있다. 졸졸졸, 쏴아, 휘이잉, 매암매암, 나무는 소리에서 무늬를 읽고 차곡차곡 몸으로 기억해둔다. 우르릉 쾅,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지만 몸을 움츠리지는 않는다. 나무는 두려움도 둥글게 안으로 감아 무늬로 승화한다.몸이 가벼워지면 나무는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고요한 참선에 들어 봄 여름 가을을 다시 돌아본다. 해충이 몸을 갉아댈 때의 아픔, 팔이 부러진 후의 환상통, 온몸을 받아들여야 했던 희로애락, 나무는 한 생애를 통해 겪은 일들을 레코드판에 깊게 새긴다.나무는 제 결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베도록 온전하게 몸을 내놓는다. 결 따라 쓰다듬으면 부드럽게 눕고, 거스르면 가시를 세운다. 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굴리면 둥글게 굴러가지만 대팻날이 지나갈 때는 날을 덥석 물기도 한다.산다는 것은 그 흔적을 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울고 웃고 즐기고 참는 과정에서 들추면 아픈 옹이 몇 개쯤 가슴속에 뭉쳐두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알고 보면 사람의 결도 나무를 닮았다. 버림받고 거절당할 때, 오해로 억울할 때, 외로움과 열등감을 혼자 추스를 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여한과 부러움을 삭일 때, 때로는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도 치지만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절이 순환하면서 사람도 그러한 시련들이 무늬로 새겨진다.삶은 나름의 결을 짜는 일이다. 그것은 누에가 실을 뽑고 직조하는 일만큼 과정이 지난하다.타고난 성질마다 다르고, 겪은 파란에 따라 아랍카펫처럼 다양한 문양이 될 수도 있다. 살아온 날을 돌이킬 수 없듯 한 번 그어지면 바꿀 수 없는 나이테, 기왕이면 추녀에 걸린 풍경소리처럼 은은히 번지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일까.나무는 동강나야 제 속의 무늬를 드러낸다. 나무의 종을 보려면 자르고, 횡을 보려면 켜야 한다. 종은 하늘을 향한 마음이요, 횡은 삶을 아우르는 역사다. 세상을 종횡으로 누비는 나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서정과 서사를 아울러 내면에 무늬로 켜켜이 새기고 있으리라.장롱을 곁에 두고 나는 오래도록 목리(木理)를 읽을 것이다.

2024-03-13

내 안의 이상한 앨리스

정미영 수필가 연일 내린 비가 잦아들자마자 오어지 둘레길을 걷는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는 둘레길을 이제껏 한 번도 무결하게 걸어본 적이 없다.고즈넉한 오어사 경내를 둘러보고 원효교를 지날 때까지는 호기롭게 걷지만, 둘레길의 반 정도에서 발걸음을 되돌려 나오기 일쑤였다.오늘은 겨울 끝자락의 비바람에 대비해 모자를 쓰고 장갑을 챙기면서 기필코 끝까지 걷겠다고 다짐한다.얼마 전, 포스코갤러리에 다녀왔다. 특별기획전 ‘숲에서 발견한 위로 : 이너피스’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전시실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거닐었다. 첫 번째 여정인 사유의 숲을 지나 두 번째 여정인 치유의 숲에 도달했다. 실제 연주자 없이 빛과 소리가 어우러져, 피아노에서는 드뷔시의 ‘달빛’이 연주되고 첼로에서는 생상의 ‘백조’가 흘러나와 공간을 채웠다. 건물 안에 따뜻한 공기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공기 입자가 관람객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내 마음에 젖어든 ‘숲’의 기운을 음미하며, 마지막 여정인 동화의 숲에 다다랐다. ‘나만의 앨리스’를 찾아보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치미술이 조성되어 있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의 모험을 통해 자기 발견을 하는 여정이 펼쳐진다. 다양한 인물과 일을 경험하면서 자아를 찾고 자신의 용기와 삶의 지혜를 키워나간다.문득 한 달 전에 남미 등반을 다녀온 옛 제자가 떠올랐다. 그는 대학 산악부 소속으로 남미 아콩카구아를 등반하기 위해 5명으로 YB원정팀을 꾸려 가족과 산악대원들의 응원을 가슴에 간직한 채 한국을 떠났다가 무사히 귀국했다. 나는 A4용지로 30쪽이나 되는 등반보고서를 운 좋게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첫날의 여정을 살펴보니 인천공항을 떠나 아디스아바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멘도사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50시간의 비행 후에 땅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시작부터 그들의 비행시간에 입이 떡 벌어졌다.등반보고서를 다 읽었을 때쯤에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혼쭐이 났다. 베이스캠프에서의 고된 생활과 고소증을 피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노력, 컨디션 난조로 몸과 마음이 지친 모습, 날씨를 살피며 등정 일정을 계획하느라 무작정 기다리던 일, 아콩카구아 정상을 밟은 자와 고소 증세로 정상을 밟지 못한 자들의 심리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광경을 상상해본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등반보고서 말미에 적힌 글이 인상 깊었다. “산악부에 참여한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선배님들의 뒤만 쫓아가기 바빴던 파키스탄 PK39 BC트레킹부터 대장을 맡은 북알프스 종주, YB 아콩카구아 원정대의 일원으로 등반까지. 그 외에 산악부에서 보낸 크고 작은 순간이 쌓여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산악부가 제 삶의 전반을 바꾸었습니다. 산악부에 몸담으며 세상을 이겨 낼 훌륭한 무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니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의 모험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켰다. 이상한 동물들과 마주했던 경험을 통해 자신을 향한 믿음과 용기를 되찾고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그도 산악부의 일원으로 등반에 참여하면서 예상치 못한 시련에 부딪혔을 때 슬기롭게 극복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성장시켰을 것이다.내 삶의 궤적을 돌이켜본다. 나는 인생의 숱한 고비마다 어떻게 건너왔었나? 삶에서 생겨나는 문제의 답은 대부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의 혼돈과 두려움이 싫어 회피하려던 순간이 떠오른다. 만약 앞으로 나에게 고난이 찾아온다면 앨리스처럼, 옛 제자처럼, 자아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용기를 내어 현명하게 대처해야겠다. 또한 나의 가능성과 역량을 시험해 보는 일에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하리라.나는 지금, 내 안의 이상한 앨리스를 찾기 위해 둘레길을 묵묵히 걷는다.

2024-03-06

잎꾼 개미

피귀자 수필가 이파리들이 찰랑거리며 간다. 잘린 나뭇잎을 지고 가는 개미떼의 모습이 팔랑거리는 날개 같다. 개미는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다양한 모양으로 잘린 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동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지고 갈 크기만큼 잎을 잘라 등에 지고 나른다고 잎꾼 개미, 또는 잎을 자를 때 아래턱뼈를 마치 가위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가위 개미라고도 불린다.열대종인 이 개미가 최초의 농사꾼이라니! 부지런하고 근면한 대명사가 개미지만 농사도 짓는다는 말에 저절로 귀가 쫑긋해졌다. 게다가 인간보다 5천만년 정도 먼저 농사를 시작한 종으로 평가 받는다고 하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개미들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동물 사회를 이룩하고 있다. 무리가 생성되고 몇 년 있으면 800만의 개체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개미학자들이 규모를 알기 위해 버려진, 어떤 개미집의 내부에 시멘트를 들이부은 결과 42평, 즉 어지간한 집 한 채 크기가 나왔다고 한다. 작은 개미들의 생활 과정이 놀랍다.우리는 종종 보이는 대로 그것에 갇혀버리는 실수를 한다.작고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하거나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고, 편견과 고정관념의 방해에 전체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한다. 하여 생각의 확장을 스스로 가로막고 진실을 보는 시야를 차단해버리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꽃나무처럼 순순해져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야 하리.이들이 잎을 채취하는 이유는, 잘게 찢어서 균사를 사육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균사가 이들의 주식인데, 그들이 기르는 균사와 서로 의존적인 공생을 하고 있다. 즉 균은 개미들이 있어야 살 수 있고, 개미의 애벌레들은 균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공생관계인 것이다. 개미들은 버섯 균이 새로운 식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감지해낼 수 있으며, 만약 어떤 식물이 균에 해롭다고 밝혀지면 더 이상 그 식물을 수집하지 않는다고 하니 많이 똑똑하다. 무르익은 개미들 삶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생의 온갖 경험들이 응축되어 쌓인 지혜와 비견되어 감탄하게 된다.이들 개미의 분업화 수준은 매우 높다. 성숙한 무리에서는 몸의 크기로 대략 4계급으로 나뉘는데, 계급마다 맡은 일이 다르다고 한다. 각 계급의 이름은 정원사개미, 소형일개미, 중형일개미, 대형일개미(병정개미)이다. 머리의 직경이 1㎜가 되지 않는 정원사개미는 어린 유충을 돌보거나 버섯 농장에서 일하며, 잎을 운반하는 개미들을 기생파리로부터 보호한다. 소형일개미는 정원사 개미보다는 약간 크며 경비병 역할을 한다. 잎을 가지러 가거나 오는 개미들을 보호하며 다른 생물이 공격할 경우 제일 먼저 방어를 한다. 중형일개미는 잎을 자르고 무리로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대형 일개미는 가장 큰 개미로 무리를 외부침입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주 임무이다.개미들이 잎을 수집하고 있을 때, 잎꾼 개미 위에 다른 개미들이 올라타서 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얌체라서가 아니다. 기생파리가 이동하는 개미의 목을 공격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기생파리는 일개미 머리의 관절에 산란관을 꽂아서 알을 낳으므로, 잎을 들고 가는 정원사 개미나 소형개미가 지키면서 기생파리의 공격을 방지해준다니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다.작디작은 개미들도 이렇게 서로 힘을 합쳐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서로 편을 갈라 공격하고 없는 일까지 만들어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리고 내가 올라가겠다며 모여서 시위를 하고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여러 어리석은 작태가 혐오스러울 지경이다.새해엔 잎꾼 개미처럼 맡은 일 잘하며 시기와 질투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모두에게 이로운 사람, 쓸모가 많은 사람, 살아서는 기둥이 되고 죽어서는 역사가 되는 사람, 그가 있음으로 우리 모두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늘어나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우리 모두가 이들 개미처럼 자유와 평화를 위한 달콤한 농사꾼이 되어보면 어떨까.

2024-02-28

낙타처럼

배문경수필가 사막을 걷는다. 모래에 한 땀 한 땀 발자국이 남았다. 제대로 걸어온 길일까. 중간쯤에서 돌아보니 곧은 길이 아니라 삐뚤다. 바람이 불어와 먼 곳 발자국부터 지운다. 모래언덕을 바라보는 나는 낙타다. 놀라 깨어보니 꿈이다.월요일 아침은 부산하다. 씻어둔 유니폼을 꺼내 보니 허벅지 쪽 실밥이 풀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바느질을 시작한다. 바늘귀에 실을 꿰려니 실이 귀를 통과하지 못한 채 그대로다. 돋보기를 끼니 이젠 영락없는 세월을 느낀다. 눈 하나는 타고났다고 스스로 자만했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 낙타처럼 천천히 따라 걷는다.얼마 전, 몽골의 낙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래서 스스로 낙타가 되어버린 꿈을 꾼 걸까. 낙타는 단봉낙타와 쌍봉낙타의 두 종류가 있다. 단봉낙타는 혹이 하나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남서부에 분포하며, 쌍봉낙타는 혹이 두 개로 단봉낙타보다 몸이 작으며 중앙아시아에 분포한다.발가락은 2개로 모래땅을 걸어 다니기에 알맞은 구조다. 또, 콧구멍을 막을 수 있으며, 귀 주위의 털도 길어서 모래 먼지를 방지할 수 있다. 등 위의 혹은 물주머니가 아니고 지방 덩어리이다. 따라서 며칠 동안 먹이를 섭취하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는데, 이때에는 혹이 점점 작아지고 종래는 소실된다. 3일간 물을 마시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는 것도 탈수로 혈액이 짙어져도 타원형의 적혈구가 농축된 헤모글로빈을 가지고 혈관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기에 가능하며, 적혈구가 수분을 잘 빨아들여서 수분 유지가 가능하다. 1회에 57ℓ의 물을 마실 수 있으며, 임신기간은 1년, 수명은 40∼50년이다.한 번에 500㎏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며, 장시간 물을 마시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일찍부터 가축화되었다.운반이나 승용(乘用) 이외에 고기는 식용으로, 젖은 음료로, 털은 직물에 이용되므로 사막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축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초에 거란인이 타고 온 낙타 54필을 만부교 아래에 매어 굶어 죽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바지를 뒤집어 솔기를 찾아보니 손가락 두 마디쯤이 터졌다. 매듭 묶은 실이 바늘에 딸려 솔기를 지날 때마다 삶의 편린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낙타가 사막의 계곡을 지나 언덕을 오르듯이 고단한 순간도 지나고 나니 웃음이 난다.이 바지를 입은 것이 십 년이 넘었다. 유니폼 두 벌로 매주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세탁해서 입었으니 십 년으로 계산해도 대략 520주다.그것을 반으로 나누면 260번을 세탁해서 말렸다. 양봉 사이에 인간을 싣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모습은 이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다. 누군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삶의 무게 바로 그것이었다.내가 나이를 먹는 사이 아이들은 자랐다. 간호사 유니폼은 낙타가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눈과 귀를 닫고 묵묵히 사막을 횡단하듯 내 직장생활을 버티는 갑옷이 돼주었다. 어느덧 나보다 키가 크고 목소리에 힘도 들어간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면 대견하고 어찌 보면 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속 쓰리고 슬프다.얼마 전 직장을 옮겼다. 새로운 자리에 적응하려니 힘에 겨워 몸살이 났다. 낙타의 봉에 가득하던 지방을 다 소진해 혹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며칠은 물을 마시지 않아도 견디던 젊은 낙타가 아닌 삶에 지친 나이가 된 것이다. 한 땀씩 내 삶에 그려 넣었던 많은 추억들을 낙타처럼 되새김질한다. 서서 바라보는 수평선이며 지평선 아래 얼룩덜룩 남루한 것과 햇빛에 반짝이는 고운 것들도 있으니 잘살았다, 잘살았다. 나의 등을 두드려준다.주섬주섬 바느질을 마치고 낙타처럼 훌쩍 일어선다. 사막에 해가 저문다. 언덕 위에서 모래폭풍이 지나간 사막 저 끝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리라. 황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낙타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