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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뒷골목

등록일 2025-03-12 18:32 게재일 2025-03-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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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희 수필가
윤명희 수필가

오가는 관광객들 사이로 황남파출소가 눈에 띈다. 예전에 놀란 가슴으로 파출소 문을 열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친구와 황리단길을 걷던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파출소에서 보호자 찾는 전화가 왔었다. 아버지가 뙤약볕 아래 종일 헤맨 것 같다고 했다. 경찰에게 파출소 위치를 물은 나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곳으로 내달렸다. 백발노인의 지친 몸이 소파에 처져있었다. 대릉원 뒷골목에서 발견했다는 말에 의아했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몇 번이나 더 그 곳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러 갈 때마다 왜 연고도 없는 여기서 길을 헤매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 없었다.

오래된 그날, 속이 더부룩하다고 병원에 간 엄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엄마만 두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병원에 가져갈 생필품을 챙기는 내 뒤로 아버지는 안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작은 방으로 옮겼다. 울음을 삼키는 아버지 뒤로 효자손도 물병과 컵도 따라갔다. 말리는 내 손을 내치는 아버지를 바라만 보았다. 닫힌 안방은 가족사진이 대신 지키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누웠던 병원 침대마저 내 놓았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엄마의 흔적을 못 견뎌 했다. 아버지는 집을 버린 듯 했다. 아들의 학사모를 쓰고 웃는 엄마의 사진을 거실 벽에서 떼어 내렸다. 남은 사진들을 자식들에게 나눠주며, 엄마가 아끼느라 넣어 둔 것들을 다 가져가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집을 팔고, 당신이 누우면 세간이 다 보이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은 멀리서 자식들이 와도 자고 갈 공간이 없었다. 이젠 집이 아니라 아버지만의 거처였다. 줄어든 살림만큼 아버지의 뒷모습은 작아져갔다.

경주로 이사 오던 날, 아버지를 혼자 두고 올 수 없었다. 함께 이사하자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자, 아버지는 어디에 가서 살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아버지가 부르시면 한달음에 내가 찾아 올 수 있는 거리에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도 아버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생활하기에 불편한 일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가 찾아뵐 때마다, 겨우 얼굴만 봤을 뿐인데도 빨리 집에 가라고 등 떠미는 것 또한 변함이 없었다.

자꾸만 밖으로 도는 아버지는 집이 없는 듯 했다. 눈만 뜨면 하릴없는 사람처럼 여명의 산길을 따라 김유신 장군 묘에 올랐다. 다음날엔 첨성대를 한 바퀴 돌고, 그 다음 날에는 중앙시장을 찾아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종일 어딘가를 다니다 해거름해지면 지친 몸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집 대신 우리 집에 형제들이 모이는 날이 많았다. 즐거운 시간도 잠시, 하룻밤만 지나면 당신의 거처로 돌아가려했다. 아직 남아있는 형제들이 조금만 더 있다 가시라고 붙잡아도 막무가내였다. 자식들의 집이 당신의 집은 아니라는 것을 매번 보여주는데 은근히 화가 났다. 그 빈 마음은 우리가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얼른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버지의 팔순 생신날, 대릉원 근처에 숙소를 빌렸다. 기와지붕이 반듯한 한옥 독채에 형제들이 모였다. 건넌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안방에는 음식상이 푸짐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혼자서 집 둘레를 몇 바퀴나 돌아보았다. 나는 창 너머로 한참동안 나무 기둥을 쓰다듬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제 아버지도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몇 년 만에 황남 파출소 앞에 서 있는 나는 당신이 왜 매번 그 골목을 헤매고 다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룻밤을 보냈던 그 집이 아버지에게는 엄마와 함께 잃어버린 옛집으로 보였나보다. 나도 쉽게 다시 찾아가지 못하는 그 집을 흐린 눈으로 찾아 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기억들이 날아다니는, 아버지가 찾아 헤맸던 기억의 집. 대릉원 뒷골목은 아버지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파출소 창문 너머에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자꾸 눈앞이 침침해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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