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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숨바꼭질

윤명희 수필가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갓길에 댔다. 서울 가는 남편을 역에 내려주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새벽길은 한산하고 음악듣기 참 좋은 시간이다. 옆자리를 더듬거린다. 손에 엉뚱한 것이 잡힌다. 탁자위에 둔, 차 열쇠와 같이 들고 나온 게 분명한데 보이지 않는다. 평소 핸드폰을 꽂아두는 자리에 대신 빈 물병이 자리하고 있다.조수석에 앉은 남편이 발치에 차이는 빈 물병을 들고는 “여기 꽂아둬야지 내릴 때 갖다 버리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혹시 물병 꽂으면서 자기 것인 줄 알고 가져갔나? 조금 전에 내려줬던 역 앞 버스정류소에 내 핸드폰을 들고 서 있을 것 같아 가던 길을 돌려 다시 갔다.보이지 않는다. 대합실까지 가보고 싶은데 새벽 배웅을 위해 서 있는 차들로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뒤따라오던 차의 불빛들이 비켜달라고 껌뻑껌뻑 위협을 한다. 떠밀리다시피 앞으로 나아갔다. 유료주차장에 들어가려해도 잠옷에 외투만 걸치고 나온 나는 주차비조차 없다. 기름이 떨어졌다는 불빛마저 반짝거린다.도로를 달리며 차선책을 생각했다. 핸드폰이 없으면 종일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데, 오늘은 쉬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노트북에 깔린 앱으로 남편에게 카톡부터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가속기 페달을 밟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혹시 차 바닥에 떨어져있나 확인부터 했다. 없는 게 확실하다.방에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로그인 되는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 혹시 집에 두고 간 걸 착각 했나 해서 침대 이불을 털어보았다. 모니터 화면이 뜨자 남편에게 내 핸드폰 가져갔냐고 문자를 날렸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남편은 보지 않았다. 10분을 넘어서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집으로 오고 있는 거 아냐? 종일 핸드폰으로 일하는 내 사정을 잘 알기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생각은 회오리가 되어 나를 옥죄었다.다친 다리가 아파 서울 병원에 예약해 둔 남편이다. ‘딸애까지 휴가를 내서 서울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열차는 탔어요?’ 다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핸드폰이야 가져갔던 말든 열차는 탔으면 하는 마음이다. 묵묵부답이다. 30분이 지나자 목발을 짚은 그가 금방이라도 집에 들어올 것만 같다. 가족 단체 톡방을 두드렸다. 누구든 아빠한테 전화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읽는 이가 없다. 아직은 젊은이들이 일어날 시간은 아닌가보다. 시계를 쳐다보고 모니터를 흘낏거리며 온 집안을 다시 뒤졌다.동네 친구들 단체 톡방을 두드렸다. 그들은 아무리 늦게 일어나더라도 지금쯤이면 화장실은 다녀올 시간이다. ‘누구 일어나신 분 없소?’ ‘왜? 나 아까 일어났어.’ 역시 금방 연락이 온다. 남편에게 전화 한 통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듯이 더 이상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다.모니터에 남편이 떴다. 자기는 안 가져갔다는 짤막한 대답이다. 그는 벌써 목적지의 반을 통과하고 있었다. 차를 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마음의 회오리바람이 잦아든다. 그가 새벽 열차를 타기 위해 깬 잠을 다시 이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만든 생각 속에서 허둥거렸다는 사실이 멋쩍다. ‘그럼, 핸드폰은?’ 또 다른 바람이 몰려왔다. 집안은 다 뒤졌고, 분명 차 안에는 없는 걸 확인했는데 남편이 차에서 내리다 차 밖으로 딸려나갔나? 그럼 이건 또 어떻게 찾지? 매번 찾아다니는 내게 짜증이 달라붙는다.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의 말이 까똑 까똑 난리가 났다. 모두 돌아가며 내게 전화를 하겠다고 한다. 누군가 소리를 듣고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집안에서는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 문을 열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 않는다. 조수석 의자를 한껏 뒤로 밀어 봐도 없다. 나 찾아보라는 소리는 약 올리듯이 울렸다. 운전석 의자를 사정없이 밀어댔다. 엉덩이는 치켜들고 얼굴만 감춘 개구쟁이처럼 한 귀퉁이 바닥에 엎드려있다. 그것이 내 가까이 숨어 있었다. 숨바꼭질이 끝나자, 아침이 고요하다. 또 언제 숨어버릴지 모를 일이다.

2023-12-27

새벽을 열다

배문경 수필가 항구의 불빛이 환하다. 육지의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물결 위에 일렁인다. 어둠 속으로 출항한 배들은 다시 감청색 어둠을 뚫고 새벽 항구에 배를 정박시킨다. 그물에 걸려든 고기들이 항으로 쏟아져 내린다. 막 잡아 올린 생선의 비늘은 아직 바다의 푸른빛이 감돈다.경매인의 손에서 쩌렁쩌렁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낙찰을 보려고 몰려든 경매인들이 줄을 지어 쏟아진 고기 주위로 둥글게 말아 선다. 경매인이 입안에서 웅얼대는 소리를 그들은 잘도 알아듣는다. 겉옷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수신호를 보낸다. 추임새를 넣는 경매인들은 눈빛과 온몸으로 작업을 건다. 온갖 동작이 우습고 진지하다. 그들의 집중적인 의사표시는 원시 부족의 춤사위 같다. 언어 이전의 세계처럼 그들은 손가락과 표정으로 뜻을 전달한다.그들의 수신호가 아침을 연다. 가장 높은 값에 널브러진 고기들이 하나둘씩 다시 미끄럼을 타고 팔려 나간다.수런수런 넓은 어시장이 삽시간에 사고파는 사람들로 지도가 그려진다. 판매되는 물건에 따라 종류별로 지엽적인 모습을 갖추고 전체를 보면 큰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물에서 건져 올린 것에는 없는 것이 없다.제사상에 올릴 고기들은 끼리끼리 몰려있다. 조기며 열기며 돔들이 서로 이웃처럼 좌판에 드러누웠다. 뼈가 센 생선들이다. 바다를 종횡무진 얼마나 돌아다니면 저토록 센 뼈를 가질까. 그래서 제사상에 뽑혔나 보다.선조들은 온통 바다를 다닌 생선을 통해 바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굵직한 비늘을 치고 아가미를 통해 내장이 온전히 사라진 멀쩡해 보이는 생선을 담는 사람들. 누군가의 기일인 모양이다. 죽은 고기가 죽은 이들을 위해 상위에서 고요히 제값을 하게 되리라.바다의 포식자인 상어는 이미 냉동실에서 얼어 밖으로 나와도 뽀얀 표면을 지녔다. 검은 표피 속에 핑크빛 고운 살들이 무게를 재고 누웠다. 굵게 저며진 살은 꼬챙이에 끼워져 적당한 간을 맞추고 노릇하게 구워질 것이다. 산적의 대표인 돔배기는 포항과 인근 동해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소고기산적이니 삼색전이니 크고 작은 꼬챙이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바다를 가르며 다녔을 단단한 지느러미가 떠오른다.저들이 헤엄치던 바다는 지금껏 물이 마른 적이 없었다. 모든 물고기의 집이며 숙소이다. 물고기 특유의 비릿한 내음은 왠지 물고기들이 서식하던 곳의 냄새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바다에 살 때 그들은 살아 움직이느라 바빠서 냄새를 간직하기 힘들었으리라. 뭍에 오르며 숨이 끊어질 때 바다로 돌아가려고 애쓰느라 비릿한 냄새로 소리를 치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回歸) 본능이리라.어물전에서 제사에 쓸 고기를 샀다. 수산 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갖가지 어물이 좁은 통로를 빼고 즐비하다. 바다에서 재수 없이 잡혀 온 고기는 얼마나 황망할까.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와 횟감이 된 생선들이 바다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을 친다. 몸부림 속에서 비늘이 벗겨 지기도 하고 상처를 입은 것들이 참혹하기도 하다. 싼값에 팔아야하니 주인의 표정은 밝지 않다.팔려나가는 고기들과 사람들이 썰물처럼 사라지자 어판장이 고요해진다. 언제 그렇게 시끌벅적했냐며 바닥에는 씨눈 달린 고기 한 마리 남아있지 않다. 동해 쪽에서 바다를 향해 햇살이 쏟아져 출렁거린다. 온전한 바다가 한 폭의 풍경이다.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을 놓고 하나가 된다. 바다와 육지도 철벅이는 아이들의 물장난에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포항 어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물에서 온 것과 육지에서 온 것으로 제사에 쓸 것을 쓸어 담는다. 시장은 삶에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들이 물고기가 되어 유영하는 곳이다. 물 작업복에 장화를 신은 노역자들의 힘찬 걸음이 장바닥을 휘젓는다. 사람 냄새가 더욱 진해지는 어물전에서 내가 어물쩍거린다.

2023-12-20

무대

정미영 수필가 푸른 하늘 아래 단풍비가 내리는 느긋한 오후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붉은빛의 나뭇잎이 내 가슴에 날아와 침전된 감정선 위에 앉는다. 기분 전환 겸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덧 형산강변이다.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근처 중고등학교에서는 12월에 축제가 열리는데, 반별로 대부분 학생들이 참여한다고 들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땀 흘리며 열중하는 모습이 어여쁘다. 무대 위에서 즐길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보는 동안, 추억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사노라면, 크든 작든 가슴속에 지녀 온 이야기를 문득 풀어놓고 싶은 날이 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이가 없어도 독백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자기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바로 오늘일까?내가 대학을 다닐 때,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밴드가 있었다. 스콜피온스(Scorpions)의 록 발라드 곡인 ‘Holiday’나 ‘Still Loving You’ 그리고 ‘Wind Of Change’를 보컬이 부를 때면 음색이나 창법이 원곡자와 비슷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스틸하트(Steelheart)의 ‘She’s Gone’을 열창하면 그의 성량과 고음에 거듭 열광했다. 리드 싱어의 노래는 축제 때 더 빛이 났다.관객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는 이들의 움직임에 끌림과 설렘을 갖지 못한다면, 공연하는 이들은 얼마나 공허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관객들은 보컬의 섬세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들으며 감동과 전율을 느꼈으므로 밴드는 뿌듯했으리라.밴드의 열정과 관객의 환호가 최고조 접점에 다다르면 축제도 공연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1990년대를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20대 청춘, 마냥 즐거운 시절은 아니었다. 학업이나 취업, 사랑 등 저마다 가슴 한 켠에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하루의 고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막막하고 우울한 일이 겹쳤던 친구일수록 목청껏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응어리진 감정을 발산했다.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s)’에서 비극을 정의할 때 처음으로 카타르시스 즉 정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학 밴드의 음악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절규했던 내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보컬과 교감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게 했고, 개별적으로 치유를 받는 귀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길고도 열렬한 여운을 남기며 밴드의 공연은 끝났다. 취향에 따라 누군가는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운동장에 즐비했던 포장마차 중 주점에 들렀고, 나와 친구들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학과 선후배가 운영하는 ‘일일찻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에서 교양 과목 교수님을 뵈었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며 “무대의 화려한 환상에 속으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이유인즉, 밴드 여성 보컬이 같은 과 친구였다. 축제가 열리기 얼마 전에 밴드 동아리실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노래 연습하는 것을 보고 왔는데 리드 싱어가 나에게 호감을 느꼈단다.친구는 나에게 자기 체면을 봐서 다가오는 축제 때 그에게 꽃다발을 주면 좋겠다고 성화였다. 친구의 간절함에 못 이겨 장미꽃 한 송이를 공연 때 건넸다. 그 장면을 교수님께서 보신 것이었다.그 시절 무대에 서는 일은 용기 있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몇몇 여학생들의 장래 꿈이 직업인이 아니라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였던 시절이었으니, 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쭈뼛거리며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요즘 학생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일이 빈번하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공연을 펼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금 형산강을 배경으로 춤추고 있는 저들이 앞으로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말고, 주인공으로 멋지게 살아가기를 응원해 본다.

2023-12-13

김장김치

윤명희 수필가 달력만 쳐다보고 있다. 배추농사만 짓지 않았다면, 올해는 남이 해 놓은 것을 사서 먹고 싶다. 절임배추를 사서 한다면 밤에라도 어찌 해 보겠는데, 절이는 일까지 하자니 마음이 부대낀다. 아파트에서 절이는 일도 쉽지 않지만, 내겐 시간이 없다.남편이 텃밭에 배추를 100포기나 심었다. 한 포기가 얼마나 큰지 아름이다. 그 배추를 친구가 50포기나 사갔다. ‘김장을 50포기씩이나 한다고? 두 식구에? 아들, 딸도 안 가져간다며?’ 나는 친구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친구는 친정엄마의 숙제를 한다고 했다. ‘돌아가신 엄마 숙제? 그걸 왜?’ 되묻는 내게 그녀는 처음엔 하지 않으려고 해봤다고 한다. 숙제란 것이 하지 않으면 마음에 항상 불편함이 따라다닌다.솜씨 좋은 그녀의 엄마는 해마다 김장을 해서 자식들에게 보냈다. 받아먹은 입들이 엄마김치가 최고라고 하는 말에 행복해 했다. 엄마의 행복이 친구에게는 숙제였다. 엄마와 가까이 사는 그녀는 김장철이 돌아오면 다른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날씨가 따뜻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추워도 안 된다. 김장하기 적당한 엄마만의 날씨에 따라 진행되기에 혹여 약속이 겹칠까 해마다 김장철만 되면 불안했다.연로해진 엄마는 큰 집이 불편해서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좁은 공간에서 김장하기가 힘이 들어 맏딸인 친구 집에서 김장을 해야 했다. 친구는 자기 김장 하는 김에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매번 동생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났다. ‘난 이제 맏딸 그만 하고 싶어.’라고 한 번도 말로 내 뱉지 못하고 표정으로만 보인 날이 몇 번인가 있었다.엄마가 아팠다. 아파도 김장철은 어김없이 왔다. 항암치료를 하고, 방에 누워만 있던 엄마가 김장을 하겠다고 일어났다. ‘당신 몸도 못 추스르면서 뭘 하겠다고?’ 친구는 말문이 막혔다. 친구가 승강기가 없는 4층으로 이사를 했기에 많은 양의 김장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엄마를 거역할 수 없었다. 배추장수 아저씨는 1층 입구에 한 무더기 내려놓고 가버렸다. 4층을 오르내리며 날라야 하는 것은 친구의 몫이었다. 김장을 하기도 전에 이미 파김치가 되었다. 배추를 절여놓고, 시장에 갔다. 양념 재료들을 양 손에 들고, 계단에서 몇 번을 쉬어가며 집에 올라갔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 벙거지 모자를 쓴 엄마를 보는 순간,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엄마가 못 하면 그만이지, 왜 나한테 하라고 그래! 내가 맏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나는 왜 매번 양보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줘야 하느냐고!”말문이 열린 그녀는 엄마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맏이의 서러움을 토해냈다. 미안하다는 말만 하던 엄마는 당신이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김장김치뿐이라 했다. 한바탕의 눈물바람 뒤에 김장이 마무리되고, 동생들에게 택배 부치는 것까지 끝이 났다. 엄마는 남은 양념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도 전에 엄마는 돌아가셨다. 한동안 친구는 김장을 하지 않았다. 해방된 느낌이었다.여동생과 통화할 때였다. 동생은 엄마의 김치 이야기를 했다. 삐뚤빼뚤하게 쓴 엄마의 글씨가 택배박스에 붙어 있었다고 했다. 친구는 의아했다. 엄마의 글씨? 택배는 김장을 다 해 놓으면 남편이 보냈는데 엄마의 글씨라고? 동생은 그 김치가 마지막이었다고 했다.남은 양념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했던 그날, 둘째 딸에게 조금 덜 넣은 것 같았나보다. 아픈 몸으로 배추를 사서 절여 버물려 박스를 만들고 택배를 부치고. 엄마는 마음이 편안해졌을까. 자매는 전화기를 붙들고 눈물을 훔쳤다.이제 친구는 김장할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 한다. 겨우내 나눠먹으며 추억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엄마와 김장을 했던 기억이 아스라해 마음이 저리다. 10포기만 할까 했던 마음에 몇 포기 더 얹어본다.

2023-12-06

숲으로 들다

배문경 수필가 친구들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짐을 풀고는 숙소를 나서자 오후의 햇살이 맞은편 산으로 기운다. 노을의 황금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산 입구의 문을 열고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다르다.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폐의 가장 아래쪽까지 숲의 향을 끌어들였다. 편백의 신선함이 몸 끝까지 가닿기를 바라며 들숨으로 횡격막을 최대한 늘였다. 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느끼지 못했다.바닥에는 잣나무 열매가 떨어져 곰팡이가 피었고 측백나무와 잣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였다. 낙엽을 밟으며 올라가자 편백나무들이 훤칠하게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시냇물을 건너 오르막을 향해가자 숲은 가슴팍을 열고 우리를 받아들였다.지난해 코로나에 걸리고 일주일간 애를 먹었다. 그리고 확연히 그 증거를 남겼으니 냄새 맡기와 맛 느끼기라는 감각기관을 잃었다. 몇 주 혹은 서너 달이면 좋아지리란 기대는 물 건너간 것 같았다. 1년이 지나도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다시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조금 아주 조금 나무의 청량한 향이 폐부로 밀려 들어왔다. 아…. 다시 후각을 얻은 것일까. 깊게 짧게 깊게 길게 숨을 내쉬고 들이쉰다.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싸한 기운이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편백나무 아래에는 넝쿨식물이나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없다. 피톤치드 때문이었다. 식물로부터 방산(放散)되어 주위의 미생물 등을 죽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의 총칭이 파이톤사이드(Phytoncide)이다. 그래서 히노키로 만든 다양한 제품이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팔린다.그 피톤치드를 찾아 이곳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했다. 나 또한 청량감으로 폐부에 시원한 공기를 선사하는 편백나무 숲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편백나무는 두 종류이다. 몸피가 매끈한 것은 화백나무이고 목재로 사용되었다. 표피가 거친 것은 측백나무라고 하며 오일이나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가려움에 좋다는 진액 오일과 두피에 좋은 샴푸를 샀다. 피부보다 모공이 다섯 배나 커서 평소 사용하는 샴푸로 인해 상한 두피를 달래보려 한다. 진액을 손에 살짝 묻혀 흡입하자 저 깊은 폐부에까지 깊이 파고드는 시원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숲의 입구에 지어둔 오육십 년 된 옛집을 개조해서 만든 펜션과 편백나무를 이용해 지은 펜션 사이에서 다섯 여자가 선택한 것은 개조한 집이었다.숲과 집이 온통 편백이었다. 이제 삐꺽거리기 시작하는 나이이니 건강에 좋다는 것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렵게 예약하고 건강을 찾는 이 계획을 선택한 것이었다. 편백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란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여름에는 키가 크고 겨울에는 부피가 커진다는 나무들, 육십을 바라보는 여자들의 삶도 키는 줄고 부피만 느는 시간이다. 힘겨운 추위를 이겨낼 때마다 내면에 좁은 나이테가 만들어지고 삶의 얼룩을 견뎌내고 따뜻해지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아픔도 슬픔도 질환으로 힘들어 하는 우리 모두가 저 나무들처럼 비바람이 불어도 나뭇잎이 떨어지고 추위가 와도 견뎌내는 힘이 이해와 사랑과 보살핌이란 것을 안다. 서로를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 사이로 진액 같은 웃음이 흐른다.나무숲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나무는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그 사이로 신선한 바람이 흐른다.다섯 여자가 숲을 바라보았다. 1888년 2월 아를에 도착한 직후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나는 편백나무와 함께 별이 총총한 밤이 필요하다. 그런 밤은 아마도 잘 익은 밀밭 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정말 아름다운 밤이 있다”라고 썼다. 우리 또한 보름달 옆으로 그 언제보다 밝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외쳤다.“별이 빛나는 숲속에서 아름다운 하늘에 빠졌다”라고.

2023-11-29

윤명희 수필가 책을 읽다가 예전에 본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박카스 할머니 얘기로만 치부했던 내용이 책 때문인지 다른 시각으로 다가온다. 노년에까지 성을 팔아야 살아가는 여자. 그녀는 자기만큼이나 늙은 집에 방 한 칸 세 들어 산다. 일수를 갚아야 할 만큼 빈곤한 살림살인데도 길고양이를 거두고, 말도 통하지 않는 코피노 아이까지 보살핀다.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는 그녀 뒤에 홀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남자들의 삶이 보인다. 그들 속에 아버지가 있다.아버지는 예순 중반에 혼자가 되었다. 사형선고 같은 병명을 들은 엄마는 당신이 먼 길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 보다 혼자 남을 아버지를 걱정했다.그는 안방 텔레비전 앞에서, 저녁밥을 준비하느라 바쁜 엄마에게 리모컨을 찾아달라고 하는 남자다. 양말이라는 말이 떨어지면 손수건까지 앞에 있어야 했고, 발 씻고 나오면 밥상이 차려져야했다. 인부들에게 줄 돈을 찾는 일도 엄마가 했다.그런 아버지가 혼자된다는 것은 남은 가족들에게 부담이었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말라는 엄마의 유언 때문인지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일정에 맞춰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안심했다.어느 날, 아버지는 지나는 말로 죽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 했다.무슨 말씀이냐고 묻자, 그런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노라 했다. 엄마의 빈자리에 푸른곰팡이가 발을 뻗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고층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서 술이 불콰해진 아버지는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고 했다. 난간만 넘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은 벌써 뛰어내렸는데, 난간을 훔켜잡은 손이 당최 놓지를 않았다. 눈을 떴을 때는 술자리에 앉아있더라고 했다.영화에서, 혼자 남은 노년의 생활은 길 잃은 삶처럼 보였다.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것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부자는 돈으로 해결 할 수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겠지만, 김치찌개 속의 고깃덩이를 건네며 잔소리하는 마누라가 있는 남자가 더 좋아 보였다.화면에,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꼼짝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는 나무토막에 이불을 덮어 놓은 것 같다. 그는 문병 온 박카스 할머니에게 어렵사리 도움을 청한다. 먹으면 죽는 약을 입에 넣어달라고. 한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남자의 손을 꼭 쥐어주는 그녀의 손이 대답했다.두 번째 남자, 치매기가 있는 그는 아직은 본 정신일 때가 더 많다. 그는 입고 있는 색 바랜 러닝셔츠보다 더 비참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죽여 달라는 그 말은 도와 달라는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뭘까? 분명 친구와 셋이서 산을 올라왔는데 정상에서 친구는 먼저 산을 내려간다? 바위산에 그 남자와 여자만 남겨둔 채 말이다. 돈으로 성을 해결하듯이 바위산에서 밀어주는 것까지 바란다고? 평생을 돈 버는 일밖에 몰랐던 그들은 돈으로 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인가?혼자 죽지 못하는 남자가 또 있다. 먼저 산을 내려갔던 그 남자다. 아내의 제사를 지낸 다음날, 박카스 할머니를 찾은 남자. 성장을 한 그는 그녀와 성찬 앞에 마주 앉았다. 와인을 마시고 한껏 분위기에 젖은 그는 여자를 호텔방으로 들인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있어 달라고 한다. 혼자 죽기가 너무 무섭고 외롭다는 것이다. 더는 외로움을 이길 자신이 없는 남자는 한 움큼의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었고, 여자의 입에도 한 알 넣어준다. 남자는 먼 길을 떠나고,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 이후의 일들을 떠안아야했다. 그녀는 마지막 가는 남자들의 손을 잡아준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함께 할 누군가의 손이 간절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에는 혼자가 된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던 그녀의 뒷모습에 자꾸만 눈이 간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녀의 하늘이 오늘따라 더 깨끗하게 보인다.

2023-11-22

혼자 걷는 시간

정미영 수필가 영일대 호수공원에 가을이 깊다. 붉게 물든 나뭇잎을 보며 물가를 걷고 있으니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아침노을 빛이 스며든 호수의 색채가 내 마음으로 옮겨와 은은하게 번진다.얼마 전, 지인이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저서를 읽었다고 했다. 올레길은 제주도 방언으로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데, 서명숙 이사장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구상한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올레길 코스를 모두 걷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 생각을 접었단다.그러던 어느 날, 해파랑길부터 걸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다.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을 의미한다. 지인은 본인이 거주하는 포항의 구룡포 앞바다를 떠올리는 순간 곧장 실행에 옮겼다.포항과 울산에 위치한 해파랑길을 벌써 몇 코스나 걸었단다. 혼자 걸으니 어촌의 고즈넉한 풍광과 사람들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어 좋고,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며, 창공에 반짝이는 햇살처럼 새뜻하게 웃었다.지인을 보며 최초의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떠올랐다.“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수행자가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으려면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묵묵하게 자기만의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지인 또한 혼자 걷는 시간에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자신이 소중한 사람임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어느덧 나는 인생시계의 가을에 머물고 있다. 봄, 여름의 계절에 혼자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외롭다가 연상되었다. 그 감정에 휘말리기 싫어 대부분 친구나 가족 등 누군가와 함께했던 기억이 있다. 오죽하면 학창시절에 즐겨 불렀던 광고 음악이 ‘오리온 초코칩 쿠키’였다. “초코가 외로워 쿠키를 찾네. 쿠키가 외로워 초코를 만났네.”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 용돈을 모아 과자를 자주 사먹었던 추억이 있다.이제는 혼자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독립이 연상된다. 독립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낱말인지 체득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녀 교육 강의를 하러갈 때, 대부분 부모들은 자녀 교육의 목표를 내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자녀 교육의 목표는 독립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부모가 존재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사랑하는 내 자녀가 스스로의 인생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홀로서기를 준비시켜야 결국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연한다.나는 독립의 첫 걸음으로 자녀에게 혼자 걷는 시간을 줘보라고 권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심부름을 시켜본다든지, 집 앞을 산책하고 오라든지, 자녀가 자신을 믿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나무 그늘 아래에 서 있으니 바람이 불어온다. 제법 쌀쌀했다. 나는 잔소름이 오스스 돋은 팔뚝을 손으로 쓸며, 그윽하게 둘레길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호숫가에 좀 더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모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을 걸을 것인지, 잠시 고민한다.산 위에서 호수로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산길에는 낙엽이 제법 두텁게 쌓여 있겠지? 문득 낙엽을 밟고 바스락 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연달아 니체가 인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괴테의 명언도 떠오른다. ‘타협하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아라.’ 나는 문구를 활용해 스스로에게 들려준다. ‘고민하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걸어라.’ 자꾸만 혼자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만든다.둘레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나뭇가지가 무성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나무들도 저마다 혼자서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혼자 걷는 시간은 나무에게도 필요한가 보다.

2023-11-15

눈 뜬 장님

윤명희 수필가 딸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가 끼어들었다. 딸을 미뤄두고 남편의 전화부터 받았다. 그는 뚜렷한 용건도 없이 끊었다.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차에, 또 신호가 왔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딸에게 내 신분증을 보내라고 한다. 방금 전에 통화했다고 해도, 그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빨리 보내라는 말만 두어 번 하고는 끊었다.신분증을 보내던 중에 또 남편의 전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정신이 없냐고 묻자 대답은 없고 신분증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왜 필요하냐고 하니 느닷없이 버럭 화를 냈다. 급하게 신분증사본을 보내자마자, ‘딸이 원격으로’ 라는 그의 말이 어슴푸레 들렸다. 순간, 남편의 핸드폰이 내 명의라는 것이 떠올랐다.나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빤히 보이는 집은 멀기만 했다. 꼭대기 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서고, 나는 평소에는 오르지 않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비밀번호 숫자가 하얗게 보였다. 손가락의 기억으로 현관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놀란 신발이 따라 들어왔다.남편의 핸드폰이 식탁 위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식탁도 따라 울었다. 핸드폰을 손에 들자, 마치 쥐와 엉겨 붙은 도둑고양이의 발광 같은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도둑고양이가 내 집을 다 뒤지는 것이 소리로 보였다.그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전원만 끄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했다. 빨리 신고부터 하라는 말에 112를 눌러 더듬거렸다. 경찰은 비행기 모드로 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떨리는 화면은 전혀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누르고 눌러 겨우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핸드폰이 축 늘어졌다. 도둑고양이의 기운이 손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탁자 위에 던지듯이 놓았다. 매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괴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금방이라도 비시시 다시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통화 내용 중에 도둑고양이가 남편이 내게 꼭 전해야 할 말만 들리게 하는 수법으로 교란시켰다는 것을 안 것은 나중 일이다. 나는 그제야 넋 잃고 서 있는 남편을 보았다.두 명의 경찰이 오고, 곧이어 젊은 경찰이 들어왔다.젊은 그는 도둑고양이가 깔아놓은 악성프로그램을 지워나갔다. 암호 같은 파일의 이름들을 빠른 손으로 처리하는 그를 멍하니 보았다. 통장에 돈이 없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라했다. 대출까지 한다는 말에 나는 다시 얼어붙었다. 신용대출에 카드대출까지, 훔쳐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핸드폰 속을 모르는 나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에 몸이 휘청거렸다.벌써 줘버린 내 신분증으로 뭔 짓을 할지, 일 분 일 초가 불안한데 금요일 밤이다. 신분증 분실신고를 월요일 일찍 해야겠다는 내 말에, 딸은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라며 한숨지었다. 답답해하는 딸의 마음이 보였다.예전, 이모 앞에서 깔깔댔던 내가 떠올랐다.30여 년 전, 이모가 딸네에 갔을 때 일이다. 딸은 점심약속이 있어 외출을 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이모가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밥 생각이 났다. 반찬을 꺼내놓고 밥을 푸려고 하자, 밥솥이 당체 입을 열지 않았다. 한참 전에 밥이 다 되었다는 신호까지 들었다.이모는 비틀어도 보고 당겨도 굴려도 보았지만,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을 만지다시피한 밥솥뚜껑을 열지 못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밥솥 안의 밥을 번연히 보고도 굶어야 했다. 그녀는 딸이 새로 샀다고 자랑한 전기밥솥을 발로 사정없이 차버렸다고 했다.저녁때가 다 되어 허기진 배를 안고 우리 집에 온 이모 앞에서, 나는 ‘살짝만 돌리면 될 텐데 그 쉬운 걸 모른다고?’하면서 웃고 또 웃었다.핸드폰 앞에서 씩씩대는 지금, 갑자기 이모가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2023-11-08

등대를 읽다

배문경 수필가 “햇살이 사라질 때 그 불빛은 거친 파도를 좀 더 밝은 은색으로 물들였고, 푸른색이 바다에서 밀려나가고 순수한 레몬색 불빛이 밀려들어 곡선을 그리면서 부풀어 오르다가 해안에서 부서질 때 그녀의 눈은 황홀에 빠졌고,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서도 순수한 기쁨의 파도가 출렁거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중에서바다를 바라보다 등대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 있으니 작고 앙증스러워 보이는 빨간 등대다. 어쩌면 파도 그리고 바다와 저렇게 잘 어울릴까. 그 주위를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갈매기 떼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지금 나는 구룡포 대보 호미곶 등대박물관에 와 있다. 등대박물관이 큰 규모로 새로 지어졌다. 들어서자 맞은편 유리창으로 펼쳐지는 바다가 푸르게 다가온다. 천정에서 내려온 디지털 화면에는 일몰부터 일출까지의 풍경과 바다와 선박을 이어주는 역동하는 등대를 표현했다. 생명의 빛으로 만들어진 육각형 화면은 수시로 변화해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분수를 뒤집어 놓은 듯이 생긴 조명나무 밑에 서자 전구가 켜지고 뿌연 물방울이 떨어진다. 보물선 조타체험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페달을 밟자 시원하게 대포가 발사되어 문어괴물을 물리쳤다. 빛의 마을 캐릭터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다보니 어릴 적의 나와 조우하는 느낌이다. 그때는 이렇게 좋은 세상도 아니었다. 슬리퍼를 신고 바다의 모래사장을 헤매다보면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모래알들이 간지럽고 즐거웠다. 바다는 늘 푸른빛으로 나를 유혹했다.등대는 항로표지의 한 종류다. 빛으로 배를 안내하는 광파표지다. 바다에서 튀어나온 곳이나 섬과 같이 배가 목표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한다. 그래서 해안의 긴 선착장 끝에는 육지에서 차와 사람을 조절하는 신호등처럼 등대가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빛나듯이 어둠이 짙어진 바다를 향해 불빛을 쏘는 등대야말로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다.내 삶의 수호신은 무엇일까. 어릴 적, 연로하신 부모님과의 소통되지 않는 우울한 유년을 위로해주던 사람은 큰 오빠였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길에서 나는 오빠에게 작은 한 송이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막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닐 때는 교수님께서 나를 지지해주셨다. 인생의 선배인 그 분은 힘든 일도 가볍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셨고 삶의 애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소통을 함께 나누었다. 세상의 풍파에 흔들릴 때마다 등대 같은 그들이 있어 나는 난파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1세기에 만들어진 스페인 라코루냐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다. 세계 수많은 나라의 유명한 등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팔미도 등대다. 크고 작은 등대가 이제는 불빛을 쏘아대며 배를 순항하도록 하는 것 외에도 자연 암초로 인해 스노쿨링으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감포항 인근의 송대말등대처럼 친근한 것도 있다.등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배를 돕는다. 캄캄한 밤, 빛을 이용해 육지를 알려주는 광파표지와 먼 바다에서 위치확인이 어렵거나 배들이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을 때 도움을 주는 전파표지, 안개나 비, 눈 등으로 시야가 흐릴 때 음파표지, 보이지 않는 바다 속의 위험지역을 모양과 색을 이용해 알려주는 형상표지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등대이거나 누군가는 나의 등대일 수도 있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가슴속에 십자가처럼 빛나는 무엇 하나.우리 삶에 등대와 같이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아닐까. 잘 들여다보면 삶을 통해 남보다 조금 더 앞서가며 역사에 오래토록 남을 발자국의 주인인 그들의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등대가 아닐까. 불빛처럼 빨간색등대는 오른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왼쪽으로 다니라는 뜻이고 흰색등대는 왼쪽은 암초가 있으니 가면 안 된다는 위험신호를 보낸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삶이 흔들릴 때 그들이 남긴 삶의 발자국에 슬며시 발을 올려보자.

2023-11-01

칠푼 고리

윤명희 수필가 눈빛들이 진지하다.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런 웃음기는 사라지고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섰다. 통팥시루떡까지 수북이 쌓아올린 고사 상이 제법 구색을 갖췄다. 두어 시간 전에 급조한 축문을 회장인 金이 맛있게 읽는다. 막걸리를 잔에 붓고 절을 한다. 지갑을 열어 복전까지 내 놓는다. 뻗정다리가 된 남편까지 절을 하자 뭘 저렇게까지 할 게 있나 싶은데, 뒤이어 깁스를 한 鄭까지 목발을 옆에 세워두고 절을 한다. 퇴주잔에 막걸리를 붓고 다시 잔을 채우는 張까지 엄숙하다. 고사를 핑계로 모여 놀자는 취지는 온데간데없다.먼저 사건의 발단이 된 건 남편이다. 화물차에서 밧줄로 물건을 묶다 떨어졌다. 평소의 실력으로 봐서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다. 어이없어 하는 남편을 돌아가며 놀려댔다. 칠푼 고리가 그렇지 뭐. 어느 밤, 鄭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놀림이 날렵하기로는 모자람이 없는 그가 한자 남짓한 빈 페인트 통 위에서 넘어져 발뒤꿈치가 어그러졌다는 것이다. 남편의 목발을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작은 金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낮에 힘들게 일했노라 보여주기 식의 엄살은 사양한다는 우리의 타박에 그는 사다리에서 두 번 떨어지면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법이라 했다. 누구처럼 깁스를 하면 표시라도 날 텐데 겉은 멀쩡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어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회장 金이 칠푼 고리 이름이 아까운 인간들이라며 한심해 했다.큰소리치던 그가 갈비뼈가 두 대나 나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비가 억세게 온 다음날 농장에서 미끄러졌다나. 농사일이 가장 바쁜 철에 일은 고사하고 숨도 크게 못 쉬는 형편이 되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말이 없는 新까지 전립선 치료로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돌아보니 아직 張이 남았다. 나는 그의 아내에게 다친 이들을 위로하는 술자리를 만들자는 말을, 액막이 고사라도 지내야 하지 않겠냐는 말로 대신했다. 그녀는 흔쾌히 통팥시루떡을 두 대 해오겠다고 했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날이 잡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기를 삶고 수박을 들고 왔다. 내게 떨어진 건 축문이었다. 한 번도 고사를 지내 본 적이 없는 나는 인터넷을 뒤져 동냥을 했다. 늦게 만난 좋은 인연 100세 후 가는 그날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보살펴달라는 청탁을 천지신명께 고하는 축문을 만들었다.우리는 몇 년 전 귀촌으로 만난 인연들이다. 도시에서 살 때 얼마나 잘 나갔노라는 말은 필요치 않았다. 느지막한 나이에 시작한 농사일에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팔을 걷어붙였다. 내가 가진 농기구가 필요하다면 빌려주고, 내 힘까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섰다.그들이 칠푼 고리가 된 것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남편과 金, 鄭이 경운기 앞에 섰다. 나와 金의 아내는 나무 그늘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녹이 반쯤 얹힌 경운기의 시동이 당체 걸릴 생각이 없다. 밑바닥까지 훑어보는 그들의 표정이 심각했다. 방금 고쳐왔는데 뭐가 또 문제고? 이것저것 다 열어보고 돌려봐도 끄덕도 않는다. 고쳐준 사람을 원망하며 다시 고치러 가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지나던 동네할아버지가 무슨 일이냐며 거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한 번 까딱 하자 경운기가 힘차게 돌아갔다. 나는 세 남자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경운기 사건으로 그들은 스스로 칠푼 고리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셋이 모이던 비닐하우스에 농사실력이 팔 푼도 안 되는 칠푼오리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그들도 칠푼 고리라는 이름에 토를 달지 않았다.고사가 끝난 자리, 음복 상을 차리고 막걸리가 한 순배 돌았다. 몇 달 사이에 연이어 이런 사단이 난 것은 칠푼 고리 이름 때문이라며 개명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좋은 뜻을 담은 새 이름이 하나 둘 나오더니 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남은 생이 칠푼오리로만 끝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버린 것이다.

2023-10-25

마음을 여는 열쇠

정미영 수필가 쇳대박물관을 둘러본다. 입구부터 진열되어 있는 자물쇠와 열쇠가 인상적이다. 나무 빗장, 비밀 자물쇠, 열쇠패 등 장식 기법과 열고 닫는 방법이 다양하다. 선사시대에도 자물쇠는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동굴을 지키기 위해 입구를 막아놓은 무거운 돌이 자물쇠의 시초다. 덩치 큰 바위가 작은 쇳덩이로 바뀐 셈이다.현관자물쇠는 힘이 세다. 몸집이 작지만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집을 지켜낸다. 그런데 사물인지라 고장 날 때가 있다.얼마 전, 우리 집 현관자물쇠도 고장이 났다. 집 가까이에 있는 자물쇠가게를 찾아갔다. 문이 잠겨 있어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주인을 기다리면서 유리문 너머의 자물쇠를 구경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진열장까지 차지한 자물쇠들은 마치 공예품 같았다.잠시 후 주인이 왔다. 주인은 내가 전에 사용했던 자물쇠와 비슷한 것을 권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자물쇠라 열쇠를 잃어버릴 걱정이 없는 것이다. 자물쇠를 새로 단다고 애쓰는 동안 한나절이 후딱 지났다.저녁밥을 하려고 쌀을 퍼내는데 오동나무 쌀통에 매달린 붕어자물쇠가 눈에 들어왔다. 붕어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있어 재물을 지켜준다는 의미로 예부터 모양을 본떠 장롱이나 뒤주에 자물쇠로 쓰였다고 한다. 쌀을 퍼내며 나도 빌어보았다. 붕어가 지켜준 쌀로 지은 밥을 먹고 가족들이 늘 건강하기를….쇳대박물관에도 상징성과 장식성이 뛰어난 자물쇠가 많이 보인다. 거북은 벽사(8F9F邪)와 장수(長壽)의 상징이고, 물고기는 다산(多産)과 수호(守護)의 상징이다. 느릿한 거북과 힘이 약해 보이는 물고기가 자물쇠를 만드는데 상징성을 부여받는다고 하니, 우리 선조들의 해학적인 멋을 엿볼 수 있다.자물쇠가 물건에만 있으랴. 때때로 내 마음은 작은 일에도 대책 없이 닫혀 버린다. 상대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섭섭해 한다. 마치 열쇠를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열리지 않을 때가 있다.내가 결혼할 무렵이었다.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파타야보다는 푸켓 해변이 더 낫다는 둥, 코끼리 등에 올라탔더니 현기증이 났다는 둥, 친구들의 자랑은 끝이 없었다. 내 귀가 솔깃했다. 비용도 국내인 제주도 여행보다 저렴하다고 하니, 마음이 자꾸 가야될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그러나 나는 마음을 접고 제주도로 가야 했다. 그 때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여서 뉴스에서는 연일 경기가 나쁘다는 소식뿐이었다. 신랑은 국가 경제를 살려야 된다며 국내로 갔다 오자고 했다. 나는 두말없이 동의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그가 밉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형제 중에 막내인 남편은 집안을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 같은 형님 내외분이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차마 외국까지 갈 수 없었다고 했다.남편의 변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좋을 뻔했다. 신혼여행은 일생에 단 한 번 뿐이지 않은가. 신부보다 형님 내외가 더 소중했나 싶었다. 그 일로 내 마음은 닫혔다. 어떤 만능 열쇠꾸러미를 들고 온다 해도 열릴 것 같지 않았다.남편은 내 마음의 자물쇠 열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갑자기 친정어머니가 보고 싶다면 포항에서 대구까지 늦은 밤이라도 함께 달려갔다. 퇴근 후 피곤해도 집안일을 서슴지 않고 도와주었다. 따뜻한 말과 손길이라는 열쇠로 나를 달래고 다독거렸다. 남편은 점점 자물쇠와 열쇠를 잘 다루는 장인이 되어 갔다. 드디어 내 모난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의 자물쇠가 열렸다.잠긴 문은 열쇠로 열면 된다.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열 수가 있다.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는 따뜻한 마음이다. 마음이 상처를 입으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쓰다듬어 주면 풀릴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마음 열쇠를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테석테석한 삶의 응어리와 회한으로 뒤엉킨 세월의 궤적이 다소곳하게 풀어지리라.

2023-10-18

아이라는 세상

배문경수필가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주소서. 불러 있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겸허히 서게 해주소서.” -김시천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행복육아’란 주제로 공모전이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백 여 편이 넘는 에세이와 동영상이 그 정도의 숫자로 전달되었다. 나도 자식을 키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의 일부분은 교집합이었고 때론 개성이 있고 대부분의 내용은 유사했다. 단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 키운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엄마가 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렵게 임신을 해도 유산이 되거나 임신이 안 되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공수정을 선택한 모성(母性)이 눈물겨웠다. 엄마가 되고 싶은데 주어지지 않는 한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부부가 좌절할 것인가.오래전 난소가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임신이 안 되어 병원을 찾았고 여러 번의 실패에 병원을 다녀와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때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눈물 흘리던 친구가 생각난다. 서너 명의 여자들이 얼마나 기뻤는지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 아이가 이제는 대학을 다니고 있다. 이처럼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기도는 읽는 내내 나 자신을 낮은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기에 충분했다.한 생명을 잉태해서 열 달이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나 아닌 타자를 몸속에서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더더욱 쌍둥이 엄마가 겪을 힘듦이 글을 통해 잘 나타나 있었다. 하나도 힘들다는데 다둥이인 경우 배수(倍數)로 고난한 시간을 경험했으리라. 워킹맘들의 힘듦 또한 시간의 배분과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이제 낮 시간 국가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키워준다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 숫자가 적어진다.어느 순간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어지고 아이들의 재롱이 사라져감을 느낀다.지금 한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로 가장 빨리 국민이 사라질 나라 1위다. 임신과 육아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큰 책임 앞에서 삶의 사래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신과 육아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큰 책임 앞에서 회피한다. 많은 미혼과 기혼의 남녀가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전대미문의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득을 보겠노라고 얼른 임신을 선택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모성의 힘듦 뿐만아니라 아빠들의 절반의 노력들이 돋보였다. 아내와 아이를 케어하는 내용이 신선하기조차하다. 아내를 위해 본인이 아침을 만들고 아이를 위해 과일을 썰어 둔다는 아빠. 손녀손자를 위해 유치원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마칠 때 차를 기다리며 느끼는 감회는 따뜻했다. 자녀를 키울 때는 몰랐던 애틋함이 묻어났다.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충분히 바쁘다. 그래도 내 자녀를 위해서 손자손녀를 위해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을 배려하는 경우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아이를 키울 때는 바빴고 정신없이 보낸 세월이었다. 이제 다 커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자식을 보는 것은 흐뭇하다. 자식들이 힘들어 할 때 내리사랑으로 손자손녀를 돌봐주는 것도 큰 기쁨이 아닐까. 유명한 음악가이자 시인인 한 분은 외국에 있는 딸을 위해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를 돌봤다. 그 아이를 위해 시집을 냈을 정도이다. 그 사랑의 깊이를 보는 듯하다.에세이와 동영상에서 돌발적이고 신선한 많은 이야기들, 사랑의 문집이었다. 사랑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 일인가. 좀 더 아이들이 세상을 밝힐 아름다운 씨앗이 되도록 배려할 일이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 어린 소녀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공원에 나와서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다. 눈을 비비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맙구나. 고맙구나.우리에게 내일은 바로 아이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 우리들의 미래여!”

2023-10-11

엄마의 밥상

윤명희 수필가 친구가 떡 봉지를 펼쳤다. 친정엄마 제사라며 떡을 주문하고, 전 부칠 재료들을 챙겨 큰오빠네 갔던 그녀다. 다음 제사에는 식판을 사가야겠다고 한다. 제사에 식판이라고? 그녀는 또 뜬금없이 효도는 셀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오빠 넷에 세 명의 언니를 둔 그녀가 친정제사 음식을 도맡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멀리서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조카들이 제삿날에 옥수수 알맹이 빠지듯이 한 것은 벌써 몇 해 전부터의 일이다. 큰오빠가 부모 제사는 자식의 몫이니 앞으로 아랫대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포한 것이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였다.시부모님 따라 간 넷째 올케를 빼고도 며느리가 셋이 있지만 제사음식을 준비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간병 일을 하는 첫째 올케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집에 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잘 오던 둘째마저 직장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셋째까지 가게 일에 매여 꼼짝을 못한다고 하니 변명 한마디 못하고 작은 언니와 둘이 제사를 맡게 되었다. 그래, 올케들이 머리 허연 오빠들 건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그녀는 팔을 걷어붙였다.다행히 언니와 손발이 잘 맞아 전 부치고 나물 장만하고 고기까지 익히는데 한나절에 끝났다. 추석이 코앞이라 벌초 길에 나섰다. 부모님은 집터를 큰오빠에게 물려주고 당신은 뒷산에 터를 잡아,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일찍 제물 준비를 마친 그녀는 장화를 찾아 신고 오빠들을 따라나섰다.뒷짐 진 큰오빠를 선두로 엄마에게 간다. 연년생인 셋째와 넷째오빠는 아직도 토닥거리고, 그녀는 그런 오빠들에게 어릴 때 불렀던 별명을 크게 불러본다. 그녀는 뱀이라는 넷째의 장난소리에 장화가 벗겨지도록 엄마를 부르며 뛰었다. 마을이 한 눈에 든다. 올케들 눈치 안보고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이 순간이 큰오빠가 장가가기 전의 나이로 되돌아 간 것 같다. 타성(他姓)없이 오롯이 형제들만 모이는 것도 참 새롭다. 그녀는 올케랑 조카며느리한테 기대지 말고 우리 부모 우리가 모시자며 의기양양했다.늦은 밤 제사를 모시고, 거실 가운데 음복 상 앞에 모여들었다. 그녀는 상을 차리느라 오빠들의 비빔밥 그릇이 빌 때까지 앉지를 못했다. 과일까지 깎아내고는 막 자리에 앉는데 넷째가 빈 전접시를 내밀었다. 전을 다시 담아 내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밥숟가락이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탕국을 좋아하는 셋째가 빈 그릇을 들고 불렀다. 삐걱거리는 무릎을 곧추세우며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서는 일이 여간 곤욕이 아니다. 여기서도 ‘숙아’ 저기서도 ‘숙아’ 부르는 터에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셀프!, 셀프! 내 나이도 낼 모레 환갑이라고, 옛날 숙이 아니라고요.”막내가 환갑이라고? 모두가 머쓱한 얼굴이다.칠순이 넘은 둘째오빠가 시부저기 일어나 떡을 접시에 담았다. 떡 접시를 상 위에 놓으며 말했다.“그래, 평소 집에서 하는 행동들을 여기서 하면 안 되지. 우리 막내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요새는 그렇다는구먼. 효도도 셀프고 밥 먹는 것도 셀프시대라고. 내 밥은 내가 찾아 먹어야 한단 말이지”오빠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눈치를 살피던 뺀질이 오빠가 앞으로는 뷔페식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먹고 싶은 거 자기가 알아서 챙기면 환갑이 다 되어가는 막내도 힘들지 않을 거라는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다음 제삿장 볼 때 꼭 식판도 사야한다는 그녀의 말 뒤로, 예전 엄마가 차려주었던 밥상이 떠오른다.엄마는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게 가장 보기 좋다고 했는데. 늦었다고 빈 입으로 나가는 나를 대문까지 따라와 입에 넣어주었는데. 엄마는 그 많은 도시락을 챙기면서도 힘들다고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1년에 한 번, 엄마 제사상 차리는 것도 힘들다. 친구가 내민 떡이 가슴에 먼저 얹힌다.

2023-10-04

파랑새를 찾아다녀도 괜찮아

정미영 수필가 바람이 불어온다. 형산강 둔치를 걷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강바람에 몸이 흔들리니 마음까지 출렁댄다.강변에 서 있으니 풀들이 초록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토끼풀이다. 여기저기에 모도록모도록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나는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눈으로, 손으로, 훑으면서 찾는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 시절에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고 한다.그 뒤로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총알을 피해 살아남아, 훗날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행운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나에게도 그 믿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년 시절부터 토끼풀이 모여 있는 풀밭이 보이면 눈을 반짝이며 찾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습관적으로 네잎클로버를 얻기 위해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그럼 행복이라도 챙겨야지. 행복을 상징하는 앙증맞은 세잎클로버는 강변에 오보록하게 자라고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손바닥에 작은 잎을 나비 모양으로 펴놓고 들여다본다. 문득,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떠오른다. 마테를링크만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자, 그가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나는 시공주니어 출판사에서 발간한 원작 형태 그대로인 희곡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동화인줄 알았는데 ‘파랑새’는 원래 희곡이라는 점이다. 국내 출간된 작품 대부분이 중역본이거나, 원작을 짧게 요약하거나 동화로 고쳐 쓴 각색본이다. 또 하나는 주인공 이름이 틸틸과 미틸이다. 내가 기억했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일본어로 중역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틸틸과 미틸은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한참을 찾아다녔던 파랑새를 마침내 집에서 찾게 되는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줄거리다.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제일 마지막이다.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내 품에 안긴 행복을 남에게 나눠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틸틸과 미틸은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 파랑새를 기꺼이 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의 품에서 파랑새는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주인공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얼마 전에 네잎클로버를 선물 받았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상북도교육청 영일도서관에서 특강할 때였다.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는 첫날이었다.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다가와서는 “선생님, 이것 드리고 싶어요”라면서 네잎클로버를 건네는 것이었다.나는 학생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네잎클로버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받기가 조심스러웠다.“어머나, 이런 귀한 것을 나에게 줘도 괜찮겠니?”자신이 찾은 행운을 처음 본 나에게 선뜻 주겠다니! 순수한 학생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내 마음이 행복했다.조던 피터슨은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개념은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인류, 사회, 가족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된다. 그런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면서.그렇다면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것이 가끔 삶의 목표가 되어도 괜찮을 성싶다. 틸틸과 미틸, 네잎클로버를 선물한 학생처럼, 타인에게 행운이나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래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진다면, 조던 피터슨이 말한 삶의 목표에 근접하는 것은 아닐는지.

2023-09-20

돌확

윤명희 수필가 주말이면 농막에 간다. 산이 둘러쳐진 그곳에는 이제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잎만 무성한 수국은 아직 꽃대를 밀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에는 대신 쥐똥나무 꽃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나는 옮겨 심은 꽃들을 살피며 물을 준다. 그 꽃들은 그녀와 함께 남편의 친구인 K씨의 고향집에서 왔다.고향집 골목에 들어서자 빈집 냄새가 났다. 첫 집을 시작으로 옆집도 앞집도 비어있었다. 귀퉁이가 내려앉은 흙 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담쟁이가 눈치도 없이 새순을 틔웠다. 낡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문 옆에 먼지 앉은 유모차가 오지 못하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붉게 핀 목단 옆에는 작약이 꽃망울을 달고 둥굴레와 금낭화가 작은 등을 켜고 있다. 물기를 흠뻑 채운 장미가 지붕위로 발돋움 하고, 큰 화분에는 수국이 난초와 세력다툼을 하고 있다. 봄이면 다시 채워질 거라 기대했던 빈 화분들이 풀쑥 쓰러진다.마지막까지 고향집을 지키던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자 빈집들이 흉물처럼 남았다. 곧 허물 거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꽃나무를 가지러 먼 길을 갔다.우리는 하나도 남기지 않을 요량으로 괭이와 삽질을 해댔다. 지렛대를 이용해 수국이 든 큰 화분을 대문 밖까지 가져가는 일에 온 힘을 실었다. 아래채 뜰에 남보랏빛 꽃이 한 송이 피어있었다. 실금이 간 시멘 바닥 사이에 가냘프게 앉아있는 그것이 허물어지는 빈집을 홀로 지키게 할 수는 없었다. 괭이로 바닥을 깨 조심스레 뿌리를 거두었다.쉬었다 하자는 소리에 나는 돌확이 가까이 있는 뜰에 앉아 장갑을 벗었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눈이 갔지만 관심 없는 척 했던 것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돌확에서 장례식장 영정 사진으로 뵈었던 K씨 어머니가 어른거렸다.이른 아침, 어머니는 장독대를 반질하게 닦고, 돌확에 들깨를 갈아 국을 끓였을 것이다. 학교에 늦겠다는 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채 문을 두드린다. 서너 번의 재촉에 잠이 깬 아들이 눈을 부비며 방문을 연다. 머릿수건을 한 어머니는 텃밭에 나가고, 차려놓은 밥상이 기다린다. 마당 가운데 있는 살평상에 누워 못다 깬 잠을 떨친 아들은 엄마의 밥상 앞에 앉는다. 따뜻한 쑥국 향을 배에 채운 그는 책가방을 들고 대문을 나선다. 어스름 해가 지면 된장국 냄새가 풍기는 대문을 들어선다.시집 와 평생을 살았던 어머니의 집을 허물 수밖에 없는 아들의 마음을 보지 않으려고 나는 가져갈 것만 욕심내고 있다. 나는 친정엄마가 남긴 물건을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일찍 돌아가신 탓이라 해보지만, 결국은 손때 묻은 물건의 의미를 챙기지 못한 까닭이다. 이제 남의 집 처마 끝에 매달아둔 치자에도 눈이 가고 벽에 걸어둔 둥근 채까지 손이 간다. 이것도 아깝고 저것도 아깝지만 눈이 자꾸만 말없이 앉아 있는 돌확에 머문다. 차마 달라고 하기가 뭣해 에둘러 던졌다.“저건 어디 갖다 두려고?”가져가라는 말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나는 벌써 놓을 자리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내 속을 들여다 본 듯 했다. 그의 마음이 변할세라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어둑해서야 농막에 도착했다. 내려놓고 보니 배불뚝이 큰 항아리가 일곱 개나 된다. 옆집에서 버려둔 것까지 욕심낸 게 다 모였다. 나는 농장에 갈 때마다 돌확이 먼저 보이라고 입구에 있는 쥐똥나무 아래에 내려놓았다. 외롭지 않게 부레옥잠을 안겨주고, 함께 집을 떠나온 꽃들을 둘레둘레 심어주었다. 따라온 이웃집 항아리도 서로 마주보게 놓고 그 위에 화분을 올려두었다.보름달이 은은한 밤, 농막에 누워 전깃불을 끈다. 주중의 피곤함이 노곤히 내려앉는다.달빛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주앉은 항아리들이 맞장구를 치고 먼저 이사 온 쥐똥나무가 넌지시 돌확의 어깨너머로 끼어든다. 나도 모로 누워 바깥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얘기가 자장가가 된다.

2023-09-13

길을 내다

배문경 수필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옆으로는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올 맥문동이 그득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얼마 전부터 만들어진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황토의 붉은 기운이 힘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며 다람쥐며 청솔모는 덤의 볼거리다. 처음에는 몇몇이 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기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운동을 이끌어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맨발인 사람,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걷고 일부분은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나또한 한 두 번은 키 큰 철봉에 매달리기를 하며 앞뒤로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어준다. 어깨에 좋다는 설이 있어 간혹 즐긴다.계절마다 선물해주는 봄여름 가을의 향연이 눈부시다. 봄이면 연초록의 숲은 긴 겨울의 적막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다. 잎들은 더욱 푸르른 빛으로 꽃들은 상큼하게 숲의 하루를 열어준다. 봄을 지난 숲은 더 깊어진 녹음과 매미소리로 풍성해진다. 망초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숲 위의 하늘은 푸르고 더러 소나기로 더위를 식혀준다. 태풍이 지나고 난 뒤에 갔더니 황토는 말랑말랑 송편을 빚으려고 만든 반죽 같았다. 한두 명이 밟은 발자국 위로 다시 길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다져진다.구월의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의 아침걷기가 참으로 분주해질 때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나로 소통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곳곳에서 막혀있던 혈관이며 신경이 살아나 아침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의 그 순수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시력과 청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아있음이 세포 곳곳에서 활성화된다는 생각에 빠르게도 걷고 느슨하게도 걸어본다.인류의 신발은 무엇이었을까. 맨발로 생활하다 이족보행이 발바닥에 엄청난 압력을 주어 족저근막염 등의 고통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인디언의 모카신은 최초의 신발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뒤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어 묶어 신었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문명의 산물인 신발을 벗어 칸만 있는 신발장에 두고 맨발로 땅을 밟는다. 초핀과 전족과 하이힐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벗고 자연인이 된 듯이 가볍다. 가벼워진 몸이 하늘을 날 것 같다.지표의 약 10%를 덮고 있는 황토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점력(粘力)을 지니고 있다. 실리카, 알루미나, 철분, 마그네슘, 나트륨, 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성분비와 다양한 효소들로 조성된 황토는 동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므로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른다.황토에 발을 딛고 걷기 시작하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황토에는 해독작용과 혈액순환 개선, 통증 완화와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항균작용은 덤이다. 습도조절과 전자파차단이며 항암효과와 중금속 배출이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황토는 또 하나의 자연이득이 분명하다. 황토 팩이나 황토 장판, 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는 황토가 깔린 길을 구경하며 걷는다.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한줄기가 시원스레 이마와 목젖을 스친다.옛 친정동네에는 오래된 초가집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 유독 먼 친척 할아버지 집은 황토벽에 황토 구들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때론 대나무가 황토벽 사이로 보였다. 얼기설기 짜 놓았던 그 벽과 구들장들이 아마 원적외선 노출이 되었던가. 얼마 전 귀농하신 지인의 집에서도 비슷한 황토 일색의 인테리어를 보았다. 아마 건강에 좋다는 이유일 것이다. 흙과 불로 이루어진 갖가지 제품들이 건강을 챙기려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아떨어진다.아침산책길에서 운동화는 차에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숲으로 들어선다.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자 숲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빛으로 답례를 한다. 황톳길에 발이 닿자마자 나도 숲의 일부분이 된다.

2023-09-06

콘크리트 굴

윤명희 수필가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며칠 전에 주차 해둔 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차를 찾아 돌다보니 방향 감각마저 잃었다. 지하1층이 아니었나? 2층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차를 세워둔 게 어디 갔다 왔을 때였지? 가끔 차를 몰고 나가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양손에 나눠 든 종이가방과 비닐봉지를 벽에 붙여 세웠다. 짐의 무게가 손바닥을 파고든다. 세워둔 비닐봉지가 맥없이 쓰러진다. 비닐봉지를 단단히 묶었다. 무게중심을 잡아 종이가방에 기대 놓고 주위를 살폈다. 줄이 난 손바닥을 부비며 휴대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찾아본다. 매번 대는 곳보다 먼 곳에 주차할 때면 벽에 새겨진 번호를 찍어두는데 오늘은 그마저 없다.짐은 놔두고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차 키의 버튼을 눌러본다. 삑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잠잠하다. 내 차가 근처에 없는 게 분명하다. 다시 소리를 찾아 빠른 걸음을 걷는다. 지하가 이렇게도 넓었던가. 이젠 나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멈춰진 시간 앞에 섰다. 나는 길 잃은 개미가 되었다. 콘크리트 더미가 옥죄어 온다.다시 한 층을 올라오다보니 차가 오르내리는 출입구가 보인다. 한 낮의 햇살이 입구를 막고 있다. 나는 지하 전등 불빛 아래 서서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경사도를 따라 금방이라도 햇살너머에서 물이 흘러들어올 것만 같다. 주전자로 개미굴에 물을 붓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덮쳤다. 어지럽다.어릴 적, 동네 가운데 배꼽마당이 있었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치마를 폴싹이며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야 할 사내아이들이 웬일인지 조용했다. 그들은 담벼락 아래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고무줄을 끊는 훼방꾼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놀이가 시들해졌다. 막대기로 숭숭 솟아난 구멍을 헤집고 있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디밀었다.개미들이 튀밥 터져 나오듯이 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하얀 알을 안고 나왔다. 신이 난 아이들은 막대기로 개미굴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고 우리의 눈도 따라 들어갔다. 땅 속에 있는 사거리가 부서지고 내리막길이 무너졌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개미들이 허겁지겁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한 아이가 물주전자를 들고 왔다. 도망가는 개미들의 머리 위로 폭포수를 퍼부었다. 허우적거리는 개미의 모습에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굴속으로 빠르게 물길이 쏠렸다. 물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 어느 순간 고이기 시작했다. 물은 우리의 발아래를 향해 질펀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도망가는 개미를 주시했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도망가면 될 텐데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가는가 싶더니 또 저쪽으로 헤매고 있었다. 나라면 물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멀리 달아날 텐데, 주변에서 뱅뱅 돌고 있는 개미의 아둔함에 친구들과 함께 웃었다.나는 나무막대를 금방이라도 물에 휩쓸려 갈 것 같은 그 개미 가까이에 댔다. 개미가 황급히 나무막대를 타고 올라갔다. 뒤따라 또 한 마리가 올라갔다. 나무막대를 조심스레 풀숲으로 옮겨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목숨을 손아귀에 쥔 위대한 조물주와 같았다. 우리가 신의 존재를 보지 못하듯이 개미 또한 우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아이들이 주전자로 물을 부어 홍수가 났던 개미굴처럼 지난해 장마에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난리가 난 일이 있다. 개미가 허우적거렸던 것처럼 나는 시멘트벽으로 된 지하에 갇힌 이들을 기억한다. 물이 출렁거리는 지하주차장의 뉴스를 우리는 자연재난에 이어 인재라며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은 철부지 아이들처럼 장난을 칠 리가 없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그 일이 자연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을까. 콘크리트 굴을 벗어나 햇살 아래로 나온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낸다.

2023-08-30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정미영 수필가 연일도서관은 앞마당이 공원과 잇닿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나는 연일도서관에 갈 때면 잔디밭 길섶에 심겨진 대추나무 앞을 매번 서성거린다. 초록 웃음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는다.그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얼마 전, ‘여름방학 독서교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대추나무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전해졌다. 배움도 소중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연일도서관이 하루 동안 휴관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생들과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다음날은 정상적으로 연일도서관에서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대추나무가 걱정되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살펴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대추나무가 건너왔던 수많은 계절과 품고 있던 내력의 흔적들이 상실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마침 이번 강의 주제가 ‘불을 끄고 별을 켜자! 우리는 환경지킴이!’였다. 학생들과 지구온난화와 세계 이상 기후에 관해 수업하는 대목에서 태풍 피해를 입은 대추나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선생님, 식물도 감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글쎄, 선생님도 궁금하네. 답이 뭘까?”내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학생이 신이 나서 말을 했다. 동물처럼 눈과 코 등의 감각 기관이 없지만,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고 학교에서 배웠단다. 진지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식물은 촉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다.파리지옥은 특정한 냄새를 뿌려 파리를 잎에 앉게 만든다. 파리가 잎 표면을 자극하면 촉각이 있기 때문에 잎을 닫아 버린다. 또한 잎을 닫았더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면 다시 잎을 열어 안에 갇힌 것을 버리는 데, 이것은 미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식물이 눈, 코, 귀 등이 없다고 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식물을 대할 때는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하는 학생의 눈길이 따스했다.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내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교육 강의를 할 때 예로 들고 있는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중 ‘버섯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독버섯’이 나쁘다는 것은 사람들 ‘식탁의 논리’일 뿐 버섯세계의 논리가 아니다. 버섯은 버섯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버섯세계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서 소중하게 대하고 그들의 언어로 평가하며 존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 학생은 알게 되었을까? 나는 학생이 기특했다.나는 프리랜서 강사이기에 전형적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다.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말로 인류를 표현했다.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쁘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는 것은 더더욱 행복하다. 그래서인가.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 퀴즈, 심지어 무서운 괴담을 이야기해 주려는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나는 오늘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중이다.

2023-08-23

윤명희 수필가 전화기를 쥔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 숨을 고르더니, 딸이 사는 옆집에서 청년이 죽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혼자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걱정인 친구는 가끔 집 주인에게도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는 편이다. 주인아저씨는 옆집 청년의 일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막을 술술 불었다.딸은 그 청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자고, 샤워하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밤이면 또 그 집 앞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벽에 등을 대고 유튜브를 보며 지친 몸을 뉘었을 거라 생각이 들자 친구는 등이 가려운 듯 몸을 비틀었다. 차라리 안 들은 만 못했다. 주인에게 이 사실을 딸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여린 딸이 알면 무섬증에 그 집에 다시는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했다.친구는 죽은 이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활했을 딸 걱정이 앞섰다. 딸에게 전화하니 신호가 두어 번 가기도 전에 끊기고, 도서관이라는 짤막한 문자가 온다. 잘 지내느냐고 답문을 보냈다. 더 이상 대꾸가 없다. 별일 없지? 라는 문자를 또 보내보지만 딸은 그 문자를 읽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시 황망했을 청년의 부모 걱정을 했다. 멀리 있는 자식에게 온 신경이 가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세상 일이 내 자식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정작 내 자식은 세상을 쫓아가느라 바쁘다.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는 친구의 말이 빙빙 돌아다녔다. 별일 없느냐는 말이 입안에서 몇 바퀴나 돌았지만 결국 하지 못하고 국은 있느냐고 물었다. 공부하다가 나왔다는 딸의 짜증 섞인 말이 폰 밖으로 튀어나온다. 며칠 전에 보내 준 것도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며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차마 그 얘기는 못하고 대신 보고싶어서라고 한다.“왜? 옆집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그 집에 어젯밤에 다른 사람이 새로 들어오는 것 같던데?”지난번 집에 와서 엄마의 밥이 맛있다고 했던 그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일요일 오후, 모처럼만에 종일 늘어지게 잤던 딸은 배가 고파 일어났다. 냉동실에서 엄마가 보내준 국 뭉치를 꺼내 해동부터 시켰다. 치약을 짜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사 후 처음 울린 초인종 소리에 놀랐다. 치약을 묻힌 칫솔을 세면대에 올려놓고는 문 앞에 서서 누구냐고 물었다. 경찰이라는 말에, 치아교정용 보철을 한 그녀는 마스크부터 찾았다. 현관문 걸쇠를 한 채 문을 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다보았다. 두 남자의 신분증을 확인했지만 걸쇠를 풀지는 않았다.그들은 그녀에게 옆집에 사는 사람을 아는지 아니면 본 적은 있는지 물었다. 한 건물에 열 몇 가구나 살고 있지만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벽에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라던가 싸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고 또 물었다. 보철을 거쳐 마스크를 비집고 나오는 ‘아니오’라는 말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두 남자가 재차 물었다. 평소 몇 시에 집을 나가서 몇 시에 돌아오느냐는 둥 일거수일투족이었다.그녀는 옆집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사정 보다는 해동이 끝났다고 울리는 전자레인지 소리와 칫솔에 얹힌 치약이 욕실 바닥에 떨어질까 봐 신경이 쓰였다. 캐묻는 말과 짧은 대답이 몇 번 오간 후 경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외국인이냐고 물었다.그들은 그에 대한 대답은 듣지 않고 돌아섰다. 왜 자기에게 외국인이냐고 묻는지를 알 길이 없는 그녀는 커다란 눈만 끔뻑였다. 걸쇠를 걷어 젖히고 고개를 내밀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쳐다보았다.친구는 지금껏 그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딸에게 섭섭함이 몰려왔다. 원룸 주인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사를 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 친구에게 딸은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자기 시간을 뺏는다는 투로 말한다. 주변의 일에는 관심 가질 시간적, 마음적인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딸의 모습에 친구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디 딸의 문제이기만 하겠는가. 쓸쓸히 생을 마친 청년의 일이기도 한 것을. 커다란 벽을 마주한 듯 가슴이 답답하다.

2023-08-16

당근 프로젝트

배문경수필가 시작은 오천 원이었다. 시립도서관 앞에 서서 폰을 하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맞으시죠”, “네” 얘기는 짧고 물건을 본 그녀는 좋다며 돈을 나의 계좌로 입금시켰다. 물건은 내손을 벗어났다.집안 청소를 하다보면 먼지만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필요했지만 지나고 보면 처치 곤란한 물건들로 방이 빼곡히 차곤 한다. 언제 시간을 내서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마음먹은 날 이것저것을 들춘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필요할 것 같은 물건부터 어쩌다 보니 잊어버리고 겹쳐 산 물건들이다. 말도 되지 않은 가격으로 내놓고 기다려보는 것도 잠시 흥미로운 일이다.물건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사람이 주는 기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관리가 필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도 나무와 나무사이처럼 적절한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팔면서 또 많은 전화번호를 지웠다. 사람 숲에 가려 하늘을 못 보거나 잊혀 진 그도 나도 그녀도 나도 모르는 관계인 경우도 있다.누구시죠? 이런 관계로 당황스럽지 않기 위해 정리하자. 당근마켓에 내놓을 것은 아니지만 정리해서 전화번호부도 가볍고 통풍이 되어야할 듯했다.원피스를 좋아하는 내게 안 입는 원피스가 서 너 벌이 있었다. 살 때는 비싸게 줬지만 시간이 지나니 짧아서 약간 유행이 지나서 라는 핑계로 물건을 당근마켓에 내놓았다. 가격은 각각 오천원이었다. 올리자 말자 입질이 시작되었다. 어떤 분은 택배를 부탁하며 택배비까지 덜렁 보냈다. 같은 편의점끼리는 택배비가 저렴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점심시간에 직장근처 같은 편의점에 갔지만 택배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몇 군데를 갔지만 허사였다. 어찌어찌하여 찾아간 편의점이 얼마나 고맙든지 택배를 보내고 나니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등엔 땀이 고여 있었다. 오천원짜리 원피스가 결국 나의 점심시간 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신뢰를 지킬 수 있었으니.점심시간에 직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 후 연락을 취했더니 죄송하다며 갑자기 ‘자녀가 아파서 급히 병원에 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팔아도 된다며 미안한 마음을 비추었다.‘일 잘 처리 잘하고 오실 때까지 옷은 기다리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는 위로의 문자를 날렸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소식은 없다.타지에서 온다는 고객은 퇴근 후 40분 뒤에 도서관 앞에서 보기로 약속한 경우다. 낯설지만 잘 입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만원이란 돈이 생겼다. 그리고 가벼움이란 기쁨도 같이 얻었다. 많은 것이 좋고 행복할 수 있지만 적정선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행복을 만든다.빽빽하게 장롱에 들어차 있던 옷걸이의 옷들이 조금씩 빠져나가자 장롱도 통풍이 되는지 환해졌다.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이 차고 넘친다. 작은 인연조차 소중히 여긴 탓에 저장해 둔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이름만 보고서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옷장정리를 끝내고 전화번호 목록도 하나씩 지웠다. 카톡방에 쌓인 사진과 동영상도 지웠다. 폰의 데이터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어떤 공간이든지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 수천 개의 전화번호가 차 있던 휴대폰도 여름의 바닷바람이 일듯이 시원해졌다. 비우는 것이 채우는 일에 첫걸음이다.오늘 아침 내려놓았던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몇 년 연락이 안 되던 사람이 직장으로 전화를 해서 나를 찾는다. 잊혔던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다가온다. 이건 새로운 행운이란 생각으로 입 꼬리가 올라간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모양이다.그토록 극악스럽던 올 여름 더위가 아침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었다.8월 8일이 입추(立秋)고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복이 8월 10일이다.눈부신 오늘이 기다리고 있다. 가볍게 출발해 보자.

2023-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