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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파랑새를 찾아다녀도 괜찮아

정미영 수필가 바람이 불어온다. 형산강 둔치를 걷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강바람에 몸이 흔들리니 마음까지 출렁댄다.강변에 서 있으니 풀들이 초록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토끼풀이다. 여기저기에 모도록모도록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나는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눈으로, 손으로, 훑으면서 찾는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 시절에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고 한다.그 뒤로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총알을 피해 살아남아, 훗날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행운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나에게도 그 믿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년 시절부터 토끼풀이 모여 있는 풀밭이 보이면 눈을 반짝이며 찾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습관적으로 네잎클로버를 얻기 위해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그럼 행복이라도 챙겨야지. 행복을 상징하는 앙증맞은 세잎클로버는 강변에 오보록하게 자라고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손바닥에 작은 잎을 나비 모양으로 펴놓고 들여다본다. 문득,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떠오른다. 마테를링크만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자, 그가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나는 시공주니어 출판사에서 발간한 원작 형태 그대로인 희곡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동화인줄 알았는데 ‘파랑새’는 원래 희곡이라는 점이다. 국내 출간된 작품 대부분이 중역본이거나, 원작을 짧게 요약하거나 동화로 고쳐 쓴 각색본이다. 또 하나는 주인공 이름이 틸틸과 미틸이다. 내가 기억했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일본어로 중역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틸틸과 미틸은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한참을 찾아다녔던 파랑새를 마침내 집에서 찾게 되는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줄거리다.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제일 마지막이다.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내 품에 안긴 행복을 남에게 나눠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틸틸과 미틸은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 파랑새를 기꺼이 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의 품에서 파랑새는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주인공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얼마 전에 네잎클로버를 선물 받았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상북도교육청 영일도서관에서 특강할 때였다.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는 첫날이었다.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다가와서는 “선생님, 이것 드리고 싶어요”라면서 네잎클로버를 건네는 것이었다.나는 학생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네잎클로버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받기가 조심스러웠다.“어머나, 이런 귀한 것을 나에게 줘도 괜찮겠니?”자신이 찾은 행운을 처음 본 나에게 선뜻 주겠다니! 순수한 학생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내 마음이 행복했다.조던 피터슨은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개념은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인류, 사회, 가족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된다. 그런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면서.그렇다면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것이 가끔 삶의 목표가 되어도 괜찮을 성싶다. 틸틸과 미틸, 네잎클로버를 선물한 학생처럼, 타인에게 행운이나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래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진다면, 조던 피터슨이 말한 삶의 목표에 근접하는 것은 아닐는지.

2023-09-20

돌확

윤명희 수필가 주말이면 농막에 간다. 산이 둘러쳐진 그곳에는 이제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잎만 무성한 수국은 아직 꽃대를 밀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에는 대신 쥐똥나무 꽃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나는 옮겨 심은 꽃들을 살피며 물을 준다. 그 꽃들은 그녀와 함께 남편의 친구인 K씨의 고향집에서 왔다.고향집 골목에 들어서자 빈집 냄새가 났다. 첫 집을 시작으로 옆집도 앞집도 비어있었다. 귀퉁이가 내려앉은 흙 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담쟁이가 눈치도 없이 새순을 틔웠다. 낡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문 옆에 먼지 앉은 유모차가 오지 못하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붉게 핀 목단 옆에는 작약이 꽃망울을 달고 둥굴레와 금낭화가 작은 등을 켜고 있다. 물기를 흠뻑 채운 장미가 지붕위로 발돋움 하고, 큰 화분에는 수국이 난초와 세력다툼을 하고 있다. 봄이면 다시 채워질 거라 기대했던 빈 화분들이 풀쑥 쓰러진다.마지막까지 고향집을 지키던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자 빈집들이 흉물처럼 남았다. 곧 허물 거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꽃나무를 가지러 먼 길을 갔다.우리는 하나도 남기지 않을 요량으로 괭이와 삽질을 해댔다. 지렛대를 이용해 수국이 든 큰 화분을 대문 밖까지 가져가는 일에 온 힘을 실었다. 아래채 뜰에 남보랏빛 꽃이 한 송이 피어있었다. 실금이 간 시멘 바닥 사이에 가냘프게 앉아있는 그것이 허물어지는 빈집을 홀로 지키게 할 수는 없었다. 괭이로 바닥을 깨 조심스레 뿌리를 거두었다.쉬었다 하자는 소리에 나는 돌확이 가까이 있는 뜰에 앉아 장갑을 벗었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눈이 갔지만 관심 없는 척 했던 것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돌확에서 장례식장 영정 사진으로 뵈었던 K씨 어머니가 어른거렸다.이른 아침, 어머니는 장독대를 반질하게 닦고, 돌확에 들깨를 갈아 국을 끓였을 것이다. 학교에 늦겠다는 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채 문을 두드린다. 서너 번의 재촉에 잠이 깬 아들이 눈을 부비며 방문을 연다. 머릿수건을 한 어머니는 텃밭에 나가고, 차려놓은 밥상이 기다린다. 마당 가운데 있는 살평상에 누워 못다 깬 잠을 떨친 아들은 엄마의 밥상 앞에 앉는다. 따뜻한 쑥국 향을 배에 채운 그는 책가방을 들고 대문을 나선다. 어스름 해가 지면 된장국 냄새가 풍기는 대문을 들어선다.시집 와 평생을 살았던 어머니의 집을 허물 수밖에 없는 아들의 마음을 보지 않으려고 나는 가져갈 것만 욕심내고 있다. 나는 친정엄마가 남긴 물건을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일찍 돌아가신 탓이라 해보지만, 결국은 손때 묻은 물건의 의미를 챙기지 못한 까닭이다. 이제 남의 집 처마 끝에 매달아둔 치자에도 눈이 가고 벽에 걸어둔 둥근 채까지 손이 간다. 이것도 아깝고 저것도 아깝지만 눈이 자꾸만 말없이 앉아 있는 돌확에 머문다. 차마 달라고 하기가 뭣해 에둘러 던졌다.“저건 어디 갖다 두려고?”가져가라는 말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나는 벌써 놓을 자리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내 속을 들여다 본 듯 했다. 그의 마음이 변할세라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어둑해서야 농막에 도착했다. 내려놓고 보니 배불뚝이 큰 항아리가 일곱 개나 된다. 옆집에서 버려둔 것까지 욕심낸 게 다 모였다. 나는 농장에 갈 때마다 돌확이 먼저 보이라고 입구에 있는 쥐똥나무 아래에 내려놓았다. 외롭지 않게 부레옥잠을 안겨주고, 함께 집을 떠나온 꽃들을 둘레둘레 심어주었다. 따라온 이웃집 항아리도 서로 마주보게 놓고 그 위에 화분을 올려두었다.보름달이 은은한 밤, 농막에 누워 전깃불을 끈다. 주중의 피곤함이 노곤히 내려앉는다.달빛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주앉은 항아리들이 맞장구를 치고 먼저 이사 온 쥐똥나무가 넌지시 돌확의 어깨너머로 끼어든다. 나도 모로 누워 바깥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얘기가 자장가가 된다.

2023-09-13

길을 내다

배문경 수필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옆으로는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올 맥문동이 그득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얼마 전부터 만들어진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황토의 붉은 기운이 힘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며 다람쥐며 청솔모는 덤의 볼거리다. 처음에는 몇몇이 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기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운동을 이끌어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맨발인 사람,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걷고 일부분은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나또한 한 두 번은 키 큰 철봉에 매달리기를 하며 앞뒤로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어준다. 어깨에 좋다는 설이 있어 간혹 즐긴다.계절마다 선물해주는 봄여름 가을의 향연이 눈부시다. 봄이면 연초록의 숲은 긴 겨울의 적막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다. 잎들은 더욱 푸르른 빛으로 꽃들은 상큼하게 숲의 하루를 열어준다. 봄을 지난 숲은 더 깊어진 녹음과 매미소리로 풍성해진다. 망초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숲 위의 하늘은 푸르고 더러 소나기로 더위를 식혀준다. 태풍이 지나고 난 뒤에 갔더니 황토는 말랑말랑 송편을 빚으려고 만든 반죽 같았다. 한두 명이 밟은 발자국 위로 다시 길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다져진다.구월의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의 아침걷기가 참으로 분주해질 때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나로 소통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곳곳에서 막혀있던 혈관이며 신경이 살아나 아침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의 그 순수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시력과 청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아있음이 세포 곳곳에서 활성화된다는 생각에 빠르게도 걷고 느슨하게도 걸어본다.인류의 신발은 무엇이었을까. 맨발로 생활하다 이족보행이 발바닥에 엄청난 압력을 주어 족저근막염 등의 고통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인디언의 모카신은 최초의 신발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뒤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어 묶어 신었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문명의 산물인 신발을 벗어 칸만 있는 신발장에 두고 맨발로 땅을 밟는다. 초핀과 전족과 하이힐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벗고 자연인이 된 듯이 가볍다. 가벼워진 몸이 하늘을 날 것 같다.지표의 약 10%를 덮고 있는 황토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점력(粘力)을 지니고 있다. 실리카, 알루미나, 철분, 마그네슘, 나트륨, 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성분비와 다양한 효소들로 조성된 황토는 동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므로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른다.황토에 발을 딛고 걷기 시작하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황토에는 해독작용과 혈액순환 개선, 통증 완화와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항균작용은 덤이다. 습도조절과 전자파차단이며 항암효과와 중금속 배출이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황토는 또 하나의 자연이득이 분명하다. 황토 팩이나 황토 장판, 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는 황토가 깔린 길을 구경하며 걷는다.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한줄기가 시원스레 이마와 목젖을 스친다.옛 친정동네에는 오래된 초가집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 유독 먼 친척 할아버지 집은 황토벽에 황토 구들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때론 대나무가 황토벽 사이로 보였다. 얼기설기 짜 놓았던 그 벽과 구들장들이 아마 원적외선 노출이 되었던가. 얼마 전 귀농하신 지인의 집에서도 비슷한 황토 일색의 인테리어를 보았다. 아마 건강에 좋다는 이유일 것이다. 흙과 불로 이루어진 갖가지 제품들이 건강을 챙기려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아떨어진다.아침산책길에서 운동화는 차에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숲으로 들어선다.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자 숲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빛으로 답례를 한다. 황톳길에 발이 닿자마자 나도 숲의 일부분이 된다.

2023-09-06

콘크리트 굴

윤명희 수필가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며칠 전에 주차 해둔 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차를 찾아 돌다보니 방향 감각마저 잃었다. 지하1층이 아니었나? 2층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차를 세워둔 게 어디 갔다 왔을 때였지? 가끔 차를 몰고 나가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양손에 나눠 든 종이가방과 비닐봉지를 벽에 붙여 세웠다. 짐의 무게가 손바닥을 파고든다. 세워둔 비닐봉지가 맥없이 쓰러진다. 비닐봉지를 단단히 묶었다. 무게중심을 잡아 종이가방에 기대 놓고 주위를 살폈다. 줄이 난 손바닥을 부비며 휴대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찾아본다. 매번 대는 곳보다 먼 곳에 주차할 때면 벽에 새겨진 번호를 찍어두는데 오늘은 그마저 없다.짐은 놔두고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차 키의 버튼을 눌러본다. 삑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잠잠하다. 내 차가 근처에 없는 게 분명하다. 다시 소리를 찾아 빠른 걸음을 걷는다. 지하가 이렇게도 넓었던가. 이젠 나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멈춰진 시간 앞에 섰다. 나는 길 잃은 개미가 되었다. 콘크리트 더미가 옥죄어 온다.다시 한 층을 올라오다보니 차가 오르내리는 출입구가 보인다. 한 낮의 햇살이 입구를 막고 있다. 나는 지하 전등 불빛 아래 서서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경사도를 따라 금방이라도 햇살너머에서 물이 흘러들어올 것만 같다. 주전자로 개미굴에 물을 붓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덮쳤다. 어지럽다.어릴 적, 동네 가운데 배꼽마당이 있었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치마를 폴싹이며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야 할 사내아이들이 웬일인지 조용했다. 그들은 담벼락 아래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고무줄을 끊는 훼방꾼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놀이가 시들해졌다. 막대기로 숭숭 솟아난 구멍을 헤집고 있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디밀었다.개미들이 튀밥 터져 나오듯이 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하얀 알을 안고 나왔다. 신이 난 아이들은 막대기로 개미굴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고 우리의 눈도 따라 들어갔다. 땅 속에 있는 사거리가 부서지고 내리막길이 무너졌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개미들이 허겁지겁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한 아이가 물주전자를 들고 왔다. 도망가는 개미들의 머리 위로 폭포수를 퍼부었다. 허우적거리는 개미의 모습에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굴속으로 빠르게 물길이 쏠렸다. 물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 어느 순간 고이기 시작했다. 물은 우리의 발아래를 향해 질펀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도망가는 개미를 주시했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도망가면 될 텐데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가는가 싶더니 또 저쪽으로 헤매고 있었다. 나라면 물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멀리 달아날 텐데, 주변에서 뱅뱅 돌고 있는 개미의 아둔함에 친구들과 함께 웃었다.나는 나무막대를 금방이라도 물에 휩쓸려 갈 것 같은 그 개미 가까이에 댔다. 개미가 황급히 나무막대를 타고 올라갔다. 뒤따라 또 한 마리가 올라갔다. 나무막대를 조심스레 풀숲으로 옮겨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목숨을 손아귀에 쥔 위대한 조물주와 같았다. 우리가 신의 존재를 보지 못하듯이 개미 또한 우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아이들이 주전자로 물을 부어 홍수가 났던 개미굴처럼 지난해 장마에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난리가 난 일이 있다. 개미가 허우적거렸던 것처럼 나는 시멘트벽으로 된 지하에 갇힌 이들을 기억한다. 물이 출렁거리는 지하주차장의 뉴스를 우리는 자연재난에 이어 인재라며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은 철부지 아이들처럼 장난을 칠 리가 없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그 일이 자연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을까. 콘크리트 굴을 벗어나 햇살 아래로 나온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낸다.

2023-08-30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정미영 수필가 연일도서관은 앞마당이 공원과 잇닿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나는 연일도서관에 갈 때면 잔디밭 길섶에 심겨진 대추나무 앞을 매번 서성거린다. 초록 웃음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는다.그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얼마 전, ‘여름방학 독서교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대추나무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전해졌다. 배움도 소중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연일도서관이 하루 동안 휴관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생들과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다음날은 정상적으로 연일도서관에서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대추나무가 걱정되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살펴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대추나무가 건너왔던 수많은 계절과 품고 있던 내력의 흔적들이 상실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마침 이번 강의 주제가 ‘불을 끄고 별을 켜자! 우리는 환경지킴이!’였다. 학생들과 지구온난화와 세계 이상 기후에 관해 수업하는 대목에서 태풍 피해를 입은 대추나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선생님, 식물도 감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글쎄, 선생님도 궁금하네. 답이 뭘까?”내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학생이 신이 나서 말을 했다. 동물처럼 눈과 코 등의 감각 기관이 없지만,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고 학교에서 배웠단다. 진지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식물은 촉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다.파리지옥은 특정한 냄새를 뿌려 파리를 잎에 앉게 만든다. 파리가 잎 표면을 자극하면 촉각이 있기 때문에 잎을 닫아 버린다. 또한 잎을 닫았더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면 다시 잎을 열어 안에 갇힌 것을 버리는 데, 이것은 미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식물이 눈, 코, 귀 등이 없다고 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식물을 대할 때는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하는 학생의 눈길이 따스했다.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내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교육 강의를 할 때 예로 들고 있는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중 ‘버섯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독버섯’이 나쁘다는 것은 사람들 ‘식탁의 논리’일 뿐 버섯세계의 논리가 아니다. 버섯은 버섯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버섯세계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서 소중하게 대하고 그들의 언어로 평가하며 존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 학생은 알게 되었을까? 나는 학생이 기특했다.나는 프리랜서 강사이기에 전형적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다.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말로 인류를 표현했다.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쁘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는 것은 더더욱 행복하다. 그래서인가.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 퀴즈, 심지어 무서운 괴담을 이야기해 주려는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나는 오늘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중이다.

2023-08-23

윤명희 수필가 전화기를 쥔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 숨을 고르더니, 딸이 사는 옆집에서 청년이 죽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혼자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걱정인 친구는 가끔 집 주인에게도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는 편이다. 주인아저씨는 옆집 청년의 일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막을 술술 불었다.딸은 그 청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자고, 샤워하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밤이면 또 그 집 앞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벽에 등을 대고 유튜브를 보며 지친 몸을 뉘었을 거라 생각이 들자 친구는 등이 가려운 듯 몸을 비틀었다. 차라리 안 들은 만 못했다. 주인에게 이 사실을 딸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여린 딸이 알면 무섬증에 그 집에 다시는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했다.친구는 죽은 이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활했을 딸 걱정이 앞섰다. 딸에게 전화하니 신호가 두어 번 가기도 전에 끊기고, 도서관이라는 짤막한 문자가 온다. 잘 지내느냐고 답문을 보냈다. 더 이상 대꾸가 없다. 별일 없지? 라는 문자를 또 보내보지만 딸은 그 문자를 읽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시 황망했을 청년의 부모 걱정을 했다. 멀리 있는 자식에게 온 신경이 가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세상 일이 내 자식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정작 내 자식은 세상을 쫓아가느라 바쁘다.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는 친구의 말이 빙빙 돌아다녔다. 별일 없느냐는 말이 입안에서 몇 바퀴나 돌았지만 결국 하지 못하고 국은 있느냐고 물었다. 공부하다가 나왔다는 딸의 짜증 섞인 말이 폰 밖으로 튀어나온다. 며칠 전에 보내 준 것도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며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차마 그 얘기는 못하고 대신 보고싶어서라고 한다.“왜? 옆집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그 집에 어젯밤에 다른 사람이 새로 들어오는 것 같던데?”지난번 집에 와서 엄마의 밥이 맛있다고 했던 그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일요일 오후, 모처럼만에 종일 늘어지게 잤던 딸은 배가 고파 일어났다. 냉동실에서 엄마가 보내준 국 뭉치를 꺼내 해동부터 시켰다. 치약을 짜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사 후 처음 울린 초인종 소리에 놀랐다. 치약을 묻힌 칫솔을 세면대에 올려놓고는 문 앞에 서서 누구냐고 물었다. 경찰이라는 말에, 치아교정용 보철을 한 그녀는 마스크부터 찾았다. 현관문 걸쇠를 한 채 문을 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다보았다. 두 남자의 신분증을 확인했지만 걸쇠를 풀지는 않았다.그들은 그녀에게 옆집에 사는 사람을 아는지 아니면 본 적은 있는지 물었다. 한 건물에 열 몇 가구나 살고 있지만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벽에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라던가 싸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고 또 물었다. 보철을 거쳐 마스크를 비집고 나오는 ‘아니오’라는 말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두 남자가 재차 물었다. 평소 몇 시에 집을 나가서 몇 시에 돌아오느냐는 둥 일거수일투족이었다.그녀는 옆집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사정 보다는 해동이 끝났다고 울리는 전자레인지 소리와 칫솔에 얹힌 치약이 욕실 바닥에 떨어질까 봐 신경이 쓰였다. 캐묻는 말과 짧은 대답이 몇 번 오간 후 경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외국인이냐고 물었다.그들은 그에 대한 대답은 듣지 않고 돌아섰다. 왜 자기에게 외국인이냐고 묻는지를 알 길이 없는 그녀는 커다란 눈만 끔뻑였다. 걸쇠를 걷어 젖히고 고개를 내밀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쳐다보았다.친구는 지금껏 그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딸에게 섭섭함이 몰려왔다. 원룸 주인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사를 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 친구에게 딸은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자기 시간을 뺏는다는 투로 말한다. 주변의 일에는 관심 가질 시간적, 마음적인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딸의 모습에 친구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디 딸의 문제이기만 하겠는가. 쓸쓸히 생을 마친 청년의 일이기도 한 것을. 커다란 벽을 마주한 듯 가슴이 답답하다.

2023-08-16

당근 프로젝트

배문경수필가 시작은 오천 원이었다. 시립도서관 앞에 서서 폰을 하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맞으시죠”, “네” 얘기는 짧고 물건을 본 그녀는 좋다며 돈을 나의 계좌로 입금시켰다. 물건은 내손을 벗어났다.집안 청소를 하다보면 먼지만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필요했지만 지나고 보면 처치 곤란한 물건들로 방이 빼곡히 차곤 한다. 언제 시간을 내서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마음먹은 날 이것저것을 들춘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필요할 것 같은 물건부터 어쩌다 보니 잊어버리고 겹쳐 산 물건들이다. 말도 되지 않은 가격으로 내놓고 기다려보는 것도 잠시 흥미로운 일이다.물건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사람이 주는 기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관리가 필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도 나무와 나무사이처럼 적절한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팔면서 또 많은 전화번호를 지웠다. 사람 숲에 가려 하늘을 못 보거나 잊혀 진 그도 나도 그녀도 나도 모르는 관계인 경우도 있다.누구시죠? 이런 관계로 당황스럽지 않기 위해 정리하자. 당근마켓에 내놓을 것은 아니지만 정리해서 전화번호부도 가볍고 통풍이 되어야할 듯했다.원피스를 좋아하는 내게 안 입는 원피스가 서 너 벌이 있었다. 살 때는 비싸게 줬지만 시간이 지나니 짧아서 약간 유행이 지나서 라는 핑계로 물건을 당근마켓에 내놓았다. 가격은 각각 오천원이었다. 올리자 말자 입질이 시작되었다. 어떤 분은 택배를 부탁하며 택배비까지 덜렁 보냈다. 같은 편의점끼리는 택배비가 저렴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점심시간에 직장근처 같은 편의점에 갔지만 택배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몇 군데를 갔지만 허사였다. 어찌어찌하여 찾아간 편의점이 얼마나 고맙든지 택배를 보내고 나니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등엔 땀이 고여 있었다. 오천원짜리 원피스가 결국 나의 점심시간 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신뢰를 지킬 수 있었으니.점심시간에 직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 후 연락을 취했더니 죄송하다며 갑자기 ‘자녀가 아파서 급히 병원에 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팔아도 된다며 미안한 마음을 비추었다.‘일 잘 처리 잘하고 오실 때까지 옷은 기다리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는 위로의 문자를 날렸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소식은 없다.타지에서 온다는 고객은 퇴근 후 40분 뒤에 도서관 앞에서 보기로 약속한 경우다. 낯설지만 잘 입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만원이란 돈이 생겼다. 그리고 가벼움이란 기쁨도 같이 얻었다. 많은 것이 좋고 행복할 수 있지만 적정선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행복을 만든다.빽빽하게 장롱에 들어차 있던 옷걸이의 옷들이 조금씩 빠져나가자 장롱도 통풍이 되는지 환해졌다.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이 차고 넘친다. 작은 인연조차 소중히 여긴 탓에 저장해 둔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이름만 보고서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옷장정리를 끝내고 전화번호 목록도 하나씩 지웠다. 카톡방에 쌓인 사진과 동영상도 지웠다. 폰의 데이터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어떤 공간이든지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 수천 개의 전화번호가 차 있던 휴대폰도 여름의 바닷바람이 일듯이 시원해졌다. 비우는 것이 채우는 일에 첫걸음이다.오늘 아침 내려놓았던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몇 년 연락이 안 되던 사람이 직장으로 전화를 해서 나를 찾는다. 잊혔던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다가온다. 이건 새로운 행운이란 생각으로 입 꼬리가 올라간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모양이다.그토록 극악스럽던 올 여름 더위가 아침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었다.8월 8일이 입추(立秋)고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복이 8월 10일이다.눈부신 오늘이 기다리고 있다. 가볍게 출발해 보자.

2023-08-09

검은 갈매기의 삶을 반추하다

정미영 수필가 바다를 마주 대하면 마음은 쪽빛으로 물든다. 치열한 일상에서 만나는 내 감정은 뾰족한 선이 많아 마음이 무채색일 때가 잦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면 첨예한 선들이 마모되어 그 틈으로 유채색이 입혀지는 것을 체감한다.한흑구 수필집 복간 기념 릴레이 낭독회의 진행을 맡았던 탓일까. 행사를 마친 뒤, 한흑구 선생님께서 거의 매일 걸으셨던 송도 해변이 보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 이 순간, 윤슬이 리드미컬하게 출렁이는 해수면을 바라보며, 시간을 초월해 선생님의 발자취에 내 발자국을 얹어 본다는 심정으로 모래밭을 거닐고 있다.한흑구 수필집 ‘동해산문’의 ‘수필의 정신’이 떠오른다. “수필은 시의 정신으로 창작되어야 하며 내용은 철학적이어야 된다.” 이 문장처럼 선생님의 작품은 시적이고 자연주의적 철학을 짙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출판사 대표와 편집자가 선생님의 책을 복간하지 않았다면, 결코 우리 앞에 ‘생생한 활자’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50여 년 만에 오늘날의 우리가 읽기 편하게 바꾸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아무리 충실하게 문장을 표현한다고 해도 원작자가 고인이라는 점에서, 작품 편집이 작가가 의도한 대로가 맞는지, 아닌지, 여쭤볼 수 없는 ‘불완전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리라.저 멀리 포항의 시조(市鳥)인 갈매기를 형상화한 송도 폴리를 발견한다. 선생님의 필명인 ‘흑구(黑鷗)’가 연상되며, 자연스레 필명의 유래가 생각난다. 한흑구 선생님께서는 105인 사건의 여파로 미국으로 망명하셨던 아버님 한승곤 목사님이 계신 곳으로 스무 살 때 건너가셨다.일본 요코하마항에서 대양환(大洋丸)을 타고 하와이로 가실 때였다. 검은 갈매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벗어나, 일주일이나 쉬지 않고 쫓아왔다고 했다.조국을 잃어버리고 끝없이 방랑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투영되었던 탓에 검은 갈매기를 뜻하는 흑구를 필명으로 사용하셨단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예전의 파도소리가 아니듯, 흘러가는 구름도 예전의 구름이 아니련만, 내가 마치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전해 듣는 듯 감상에 빠진다.바다에 한참을 머무르며, 선생님의 교우 관계를 떠올려본다. 유치환, 서정주, 조지훈 등과 교유하셨고 죽마고우 안익태와의 우정도 남다르셨다. 선생님께서 미국 음악의 도시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학교 신문학과에서 공부하실 때였다. 영어에 서툴렀던 안익태를 템플대학교 기악과에 입학할 수 있도록 힘쓰시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셨다고 한다.나는 선생님께서 진실하게 사람들과 어울리셨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문득 다자이 오사무를 연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한다고 하는 ‘인간 실격’을 쓴 일본의 유명한 작가다. 그는 선생님과 같은 해인 1909년에 태어났다.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라 불리는 그는 1948년 39살의 나이로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생을 마감했다.선생님께서는 1948년 39살의 나이에 포항에 와 문학 발전에 이바지하셨다. 이렇듯 두 작가의 삶을 비교해 봤을 때 나는 안타깝다. 주변에 문우들이 넘쳐났던 선생님처럼, 한 명이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면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어떠했을까.내가 일제 강점기를 겪었다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것인가. 아마 부정적인 시각을 간직한 채, 앞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품지 못한 채, 생활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순수한 영혼을 지니셨던 것 같다. 아마도 삶의 밑바탕에 문학이 존재했기 때문이리라.“나는 늘 모래밭에, 또는 바다 물결 위에 시를 써보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어느덧 내 가슴에 공명된다.모래밭에 시심(詩心)과 수필을 써 놓고 무심히 고개를 든다. 단 한 줄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으셨던, 한흑구 선생님의 화신일까. 어느 결에 나타났는지 갈매기 한 마리가 바다 위로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2023-08-02

거머리

윤명희 수필가 검은 하늘이 내려앉는다. 곧 비가 내리꽂을 태세다. 퇴근을 망설이는데 사무실 문이 열린다. 얼굴이 파리한 여자가 엉거주춤하니 들어선다. 상가를 내 놓겠다느니, 상담을 좀 해 달라느니 말의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차근하게 얘기해 보라고 하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그 남자가 내 명의로 가게를 하거든요?”“무슨? 어떤 남자가요?”얼마 전까지 애인이었던 남자가 그녀의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이름만 사장인 그녀는 직원이 다섯 명이나 되는 가게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카드까지 사용하는 남자와는 이제 헤어진 사이다. 헤어지고도 카드는 남자가 쥐고 있다. 남자는 카드대금을 내야 하는 날짜를 넘기고, 카드를 정지시킨 그녀는 남자에게 가게에 들어간 돈을 돌려주고 명의를 가져가라고 했단다.남자는 그녀의 말을 단칼에 난도질하고 콧방귀까지 뀌었다. 콧방귀에 이어 쌍욕을 바가지로 하더라며 어이없다는 듯이 실실 웃는다. 갚아야 할 카드 대금이 불어서 7천만 원이라는 말에 듣는 내가 억장이 무너진다. 왜 그 남자에게 가게를 내줬냐고 물었다. 묻는 나도 그녀처럼 갈팡질팡 한다.그녀는 남들이 자고 일어날 때마다 돈 벌었다는 말에 비트코인을 시작했다. 빚을 내 시작한 비트코인은 3천만 원의 빚으로 남았다. 그 빚을 남자가 장사해서 갚아주겠노라 했다. 빚을 갚아준다는 말에 또 카드빚을 내 가게를 차려주면서 4살 연하의 남자와 연인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뱃속에 욕심을 품고 맺은 인연이 맞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서로의 목소리만 들어도 욕이 나오는 원수가 되었다. 그녀는 남의 손으로 코를 풀려다 코가 꿰었다.팔에 큰 문신이 있고 성질이 난폭하기까지 하다는 그 남자가 금방이라도 그녀를 쫒아 들이닥칠 것 같다. 나는 흘낏 바깥을 내다 봤다. 어둠이 내린다. 가게 내 주고, 카드 주고 쌍욕까지 듣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카드빚이 오롯이 그녀의 몫이 되는 건 보나마나다.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를 그냥 보내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 얼마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내 사무실까지 찾아왔을까. 오지랖이 발동된다.그녀가 폰에 적어 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 같은데 요점이 없다. 뭘 말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폐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빚이 더 늘기 전에 그 남자에게 폐업하겠다는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자 그녀의 표정이 잠시 밝아진다. 그녀가 써 놓은 글자를 조합해서 말하고 싶은 문장으로 만들어주었다.듣다듣다 하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하려고 여기까지 왔느냐는 말이 막냇동생 나무라듯이 나왔다. 가게부터 정리하고 나서 파산신청을 하면 그만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말로만 듣던 파산신청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보증금을 받아서 그거나마 먼저 갚고 벌어서 차근차근 갚겠다는 말을 기대한 내 귀에, 이젠 나랏돈으로 자기의 잘못을 처리하겠다고? 순간, 힘든 가운데도 꼬박꼬박 세금내고 있는 내 등에 그녀가 빨대를 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묵은 얘기들을 꺼내며 감정에 받혀 눈물을 찍어내기를 반복했다. 벌써 파산을 말한 그녀를 위해 내가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뜨거운 커피를 그녀 앞에 두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 줄 뿐이었다. 상담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올 때는 커피라도 사 오겠다고 한다. 손사래를 치며 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 잘하라고 당부했다.그녀가 나가고,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비가 내린다. 우산을 펴고 보니 저만치 그녀가 빗속을 걸어가고 있다. 사무실에 있는 우산이라도 가져가라고 소리쳤다. 하얀 원피스가 손을 흔들며 뛰어간다. 거머리의 등에 더 큰 거머리가 달라붙어 덜렁거린다. 그녀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저렇게 큰 게 쉽게 떨어질까. 나는 신호등 불빛이 바뀔 때까지 바라보았다.

2023-07-26

눈(雪), 위에 길을 내다

배문경 수필가 “처지가 떳떳했으면 날이라도 좀 밝은 다음에 길을 나설 수 있었으련만, 그땐 어찌 그리 처지가 부끄럽고 저주스럽기만 했던지. 그래 할 수 없이 새벽눈길을 둘이서 나섰다. 시오리나 되는 장터차부까지 산길이 멀기는 또 얼마나 멀더라냐.”-이청준의 소설 ‘눈길’부분큰아들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마지막 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막내아들이 돌아오면 마지막으로 밥을 먹이고 살던 집에서 잠을 재우려고 어머니는 아들 오는 날까지 쓸고 닦았다. 모든 재산을 다 잃고도 아들의 가슴에 남겨둔 자신의 집 한 채를, 기억 속에 심어둔 어머님의 심정을 알기에 사는 일이 척박할 때는 ‘눈길’을 떠올리곤 했다.친정어머니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수완이 좋아 돈을 벌고 집을 사고 논을 샀다. 만물상회도 하고 곰탕집도 하고 방앗간도 했지만 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는 촌의 허름한 집으로 밀려와 온 식구가 같이 살았다. 그곳에서도 방을 만들어 세를 받았고 도랑에는 오리를 길러 중풍에 좋다는 오리 알을 팔았다. 자식들이 객지에서 미용실을 한다며, 양재학원을 한다며, 오토바이센터를 한다며 어머니의 돈을 계속 가져갔다. 돈이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만들어 보냈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가세가 더욱 기울어져 막내인 내 학자금을 대줄 여건이 아니었다.투자된 돈은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않았고 집은 점점 빈곤해져갔다.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요란했다. 어머니의 삶은 객지에서 성공하고 올 자식을 기다리는 망부석이셨다.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유년을 보내야 했다.나또한 낯선 식당업을 시작했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때 피붙이도 아닌 사람이 빈집을 내주었다. 그냥 집이 팔릴 때까지라는 단서만 붙은 상태였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던 아이들과 시어머니와 부부가 같이 한 집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았다. 결국 몇 년 후에 아파트가 팔리고 우린 급작스럽게 같은 아파트에 있는 다른 집에 세 들어 살았다.지상에 많고 많은 집 중에 ‘나의 집’이 갖는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한 채의 집을 갖는다는 것은 지구상에 나의 몸을 뉠 완전한 공간이 생기는 일이다. 자식이 자라는 만큼 집을 사고 그곳에서 성장을 바라보는 뿌듯함은 부족한 집을 좋은 집으로 바꾸리라는 염원은 커져갔다. 작은 아파트 두 개를 사서 살게 되었다. 고부간의 갈등도 다소 사라지고 여아와 남아를 따로 키울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가 있듯이 보금자리가 따뜻하고 안전해야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아이들이 자라며 독립하게 되자 원룸을 빌리게 되고 매달 집값으로 나가는 금액이 수월치 않았다. 생각한 것이 아이들을 위해 집을 사서 조금씩 갚아나가자, 아이들은 스스로의 돈으로 원룸보다 넓은 공간을 활용하게 될 일이다. 내가 사는 집보다 넓은 공간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뿌듯하다.이사에 대한 생각은 늘 해오던 것이지만 막상 저지르기까지 갈등은 깊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날뛰고 젊은이들이 이생에서 집 한 채 장만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즈음 집값이 폭락했던가. 마음을 내어 덤벼도 집값은 만만하지 않다. 아파트가격은 단단한 양파 속처럼 켜켜이 돈으로 뭉쳐져 여전히 부담되었다. 비어진 공간에 흰색 페인트로 곳곳을 칠했다. 벽지와 장판에 페인트자국이 묻어있어도 개의치 않아도 된다. 벽지와 장판이 새로 붙여지고 깔릴 테니까. 이전의 역사는 종이 뒤에 장판 뒤에 묻혀 질 테니 깨끗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살아온 날들의 힘듦과 절망과 눈물도 새 벽지나 새 장판처럼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즐거워진 삶으로 연결되면 좋겠다. 삶의 뒤안길에서 울먹임도 이젠 안녕하며 만사형통이 되면 좋겠다. 씻고 닦으면서 뭉클하니 기쁨이 묻어난다.어머니도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듯 좋은 곳에서 우리형제를 키우고 싶었으리라. 이젠 어머니 나이가 된 내가 아이들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지상의 작은 집 한 채, 눈길 속으로 뽀드득 발자국 소리를 내며 앞서 길을 내주는 일이다.

2023-07-19

호두 맛 아이스크림

윤명희 수필가 장 뜨기 좋은 날이다. 이른 아침, 복실이네 대문 앞에 차를 세우자 햇살바라기를 하던 강아지가 먼저 뛰어나온다. 그녀는 벌써 내 항아리의 장까지 뜨고 있다. 나는 서둘러 고무장갑을 끼고 소금물에 푹 절은 메주를 주물렀다. 같이 하게 좀 기다리지 왜 혼자 하느냐며 눈을 흘기자 날씨가 좋아서라 한다. 두 개의 항아리를 된장으로 채웠다. 언저리에 붙은 것을 찍어 입에 넣었다. 누런 된장이 봄 햇살을 품었다.항아리를 닦고 장독대를 정리하는 일이라도 그녀의 손이 덜 가게 서둘렀다. 수돗가까지 말갛게 치우고는 고무장갑을 벗어 빨래집게로 걸었다. 그녀를 식탁에 앉히고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한 입 베어 문 그녀가 호두 맛이라 한다. 편의점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사온 나는 찢어진 봉지를 확인하며 어떻게 단 번에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얼마나 먹었는데 그 맛을 모르겠느냐고 한다.그녀는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복무지인 연천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이었다. 어린 복실이가 그의 등에 붙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가로지르면 여기저기서 인사를 하곤 했다. 그는 학교 행사 때면 마을 유지들과 함께 천막이 쳐진 단상에 앉아 있었다. 가끔 연단에도 오르는 각 잡힌 군복의 모습이 학교 다니는 내내 자랑스러웠다.초등학교 졸업식 날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녀는 중학교 교복 대신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의 급사가 되어있었다. 교장실에서 담소중인 아버지 앞에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놓았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그저 급사 아이였을 뿐이었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무쇠종이 그녀 대신 길게 우는 날이었다.엄마는 매일이다시피 남의 집 품팔이를 나갔다. 복실이는 일요일 새벽이면 엄마를 따라 모내기를 하러 가야했다. 일꾼이 모자라 어른들처럼 머릿수건을 하고 작업복을 입으면 한 사람 품삯을 받을 수 있었다. 못줄이 넘어가도록 딸이 다 심지 못한 빈자리를 엄마는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채워야 했다. 엄마와 그녀는 아버지의 화투장이 만들어 내는 구멍을 막기에 바빴지만 역부족이었다.일자리를 구해 부산으로 갔다. 그녀는 신발공장의 일이 힘에 버거워 밤마다 눈물바람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별빛 하나 없는 길을 걸어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손가락질이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었다.어느 날 저녁, 아버지 손에 아이스크림 한통이 들려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동생들은 돌아가며 제비새끼처럼 한 입씩 받아먹었다. 숟가락이 몇 번 드나들자 아이스크림은 바닥을 드러냈다. 통까지 혀로 핥은 동생들은 말갛도록 빤 숟가락을 입에 물고 놓지 못했다.다시 일자리를 찾아 기차를 탔다. 영등포구에 있는 방직공장이었다. 밤이면 야학에서 못다 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남동생이 중학생이 되기 위해 짐 보따리를 들고 왔다. 새벽이면 연탄불에 냄비 밥을 지어 동생을 학교에 보냈다. 종일 미싱을 밟고 밤이면 책상 앞에 앉아 졸았다. 부모님은 여동생까지 얹어주었다. 주머니는 늘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비었다.월급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아이스크림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얄팍한 월급봉투를 만지고 또 만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들고 온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샀다. 혼자 어둑해진 둑방에 올라갔다. 한 숟가락 푹 떠서 고봉이 된 달콤함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 가득 차는 호두 맛이 다른 세상을 꿈꾸게 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두 동생도 생각나지 않은 밤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월급날을 기다리며 또 한 달을 버텼다. 혼자 둑방에 올라 퍼 먹고 또 퍼먹으며 어른이 되어갔다.참 오랜만에 먹어본다는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말없이 잡았다. 그녀가 웃었다. 오늘 아침에 끓인 된장찌개가 맛있던데 좀 가져갈래? 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손이 닿은 건 다 맛있다고 했다. 언니처럼 챙겨 준 반찬꾸러미를 받아들고 마당에 내려섰다. 마당 가득한 꽃들이 주인을 닮았다.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그녀가 손을 흔든다. 된장이 익어가고, 담장에 장미넝쿨이 어깨동무하는 전원주택에 복실이가 산다.

2023-07-12

달빛이 환한 밤

정미영 수필가 달빛이 환한 밤이다. 철길숲을 산책하다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 무궁화호 객차를 찬찬히 바라본다. 내 시간의 퇴적층에 기적 소리가 아스라이 얹혀 지는 것 같다. 문득, 처음 기차를 탔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바람결에 풀썩거리며 뛰쳐나온다.그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동대구역에서 화본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나의 부모님은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친할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한동안 나를 외가에 보내야만 했다. 혼자 외가에 남겨진다는 속상함 때문에 기차를 탔다는 설렘은 잠시였다.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내 손에 가족사진 한 장을 들려주었다. 낡고 빛바랜 흑백 사진이었다. 내 손을 잡고 손가락을 꼽아 보이며, 딱 요만큼만 참고 있으면 데리러 오마, 약속했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한테 가자고 떼를 쓰며 울었다.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었다. 아버지의 등은 넓고 따뜻했다. 산길을 따라 아늑한 외가에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는 향나무 아래에 있는 샘물을 긷고 계셨다. 그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달려오면서 그만 넘어지셨다. 아버지가 급히 일으켜 드렸으나, 외할머니는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에 앞서 나를 끌어안으셨다. 물에 젖은 치맛자락으로 내 얼굴의 땀을 연신 훔치며, 나를 안아 주셨다.외할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앞에 앉았다. 외할머니는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솔가지를 아궁이 속에 넣어 불을 지피셨다.“영아, 맛난 밥상 차려주마. 정서방은 얼릉 밥상 받고 밤늦기 전에 내려가야제.”아버지는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외가를 나섰다. 나는 울면서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했고, 그런 나를 아버지는 애써 외면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따라가겠다는 나대신 이번에는 달빛이 아버지의 등에 업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외할머니 곁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차츰 내 울음은 그쳐졌다. 생각 밖으로 하루하루 내 생활은 분주했다. 외양간 송아지를 보러 일찍 일어났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쫓아다니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장독대 옆의 무궁화꽃 그림자가 마당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콩밭 매는 외할머니 옆에서 실컷 흙장난을 했다. 고추밭 고랑 사이사이를 호미로 헤집고 다니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흘러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다 잠이 들고는 했다.그렇게 잘 지내다가도 이따금씩 산 아래에서 사람이 올라오면 내 아버지가 왔나 싶어 냅다 뛰어나갔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아닌 것에 실망하여 눈물을 글썽였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을 때는 외할머니와 달에게 소원을 빌었다. 아버지가 지금 당장 나를 데리러오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아버지가 빨리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달에게 두손 모아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언젠가는 외할머니에게 달이 뜰 때까지 기차역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달빛이 내 몸을 환하게 물들일 때까지 플랫폼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기차가 도착해 플랫폼에 사람들이 내려도, 그토록 보고 싶은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면 외할머니는 “오냐. 불쌍한 내 강아지. 너그 아비 곧 올끼라.” 내 눈물을 닦아주며 등을 쓸어주었다.철길숲의 철로 주변 꽃들이 바람결에 한들거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겨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편린이 모기작모기작 꽃잎을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어린 자식의 눈물 젖은 얼굴을 바라봐야 했던 아버지의 가슴은 오죽 답답했을까? 세월이 흘러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며칠간 자식들을 보지 못하면 걱정이 되었다. 기약 없이 자식을 떼어놓아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 헤아려보니, 내 가슴이 먹먹하다.오늘은 달빛이 환한 밤이다. 유년 시절의 추억들이 달빛에 흐벅지게 물든다.

2023-07-05

뜨거운 여자가 좋다

배문경수필가 42도의 자스민 탕에 몸을 담근다.처음에는 앗! 뜨거워하다가도 어느 사이 뜨거운 물은 심신을 가둔 빗장을 벗겨 자유롭게 몸을 덥힌다. 사지를 쭉 뻗고 머리를 탕의 턱 위에 대고 눈을 감는다. 전신으로 열기가 번져나가며 온몸이 나른하고 편안해진다.코로나로 인해 자주 목욕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목욕은 어쩌다 가게 되는 드문 일이 되었다. 더러 쥐가 났고 목덜미가 뻐근할 때가 많았다. 무리한 날은 온몸이 아팠다. 지인이 사정을 알고 “목욕하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것은 빛처럼 환하게 답이 되었다.평소 냉한 편인 내겐 한겨울에 만나도 손이 따뜻한 친구가 있다. 태생이 열이 많다는 친구를 늘 부러워한다. 간혹 몸살이 났거나 감기기운이 있다고 해도 잠시였다. 늘 건강하게 생활한다. 몸이 따뜻해서 인지 마음도 훈훈하다.코로나시기에 학교 방과 후 수업을 하려고 등록을 한 상태에서 예상 밖의 일이 생긴 지인이 있다. 체온계에는 계속 37.2도가 뜨고 있었다. 하루 이틀 체크하다가 학교에서 도저히 수업진행을 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누구는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평소 체온이라고 얘기하라고 했지만 이미 속이 상한 지인은 그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뜨거운 여자가 속상하게 된 일이다.‘낮은 체온’은 만병의 근원이랄 수 있다.‘체온 1도가 떨어지면 면역력은 무려 30%가 저하되고 체온1도가 올라가면 면역력은 5배 높아진다’는 이시하라 유미의 책에 실린 내용이다. 고로 몸이 따뜻하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된다. 암과 당뇨, 고혈압, 알레르기, 비만과 우울증을 이기는 체온 면역 요법이 있다.소식(小食) 또한 체온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고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섭취하고 차가운 음식을 자제한다. 반신욕과 족욕, 온몸을 탕에 담근 채 그 열기를 가늠해 보며 지인을 만나 조곤조곤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다. 예전에는 상대의 등을 서로 밀어주는 것이 친밀감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제는 목욕탕에서 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지만.머리에 타올을 터번처럼 감은 여배우가 욕조에 앉아 와인을 들고 있는 모습은 온 세계여성들이 열광하던 장면이다. 신혼여행지에서 욕조에 양난의 꽃잎을 물위에 띄우고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연출한 사람들의 사진이 연예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인증 샷으로 SNS에 올리곤 한다. 때론 요염하고 때론 매력적이며 도발적이다.서양의 중세인들도 목욕을 했다.공중목욕탕이 있었고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에 고국으로 돌아온 전사들은 튀르키예식 목욕을 전파하여 발전시켰다. 공중목욕탕에는 한증탕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씻기 전에 먼저 몸에 증기를 쐬었고, 나무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갔다. 공중목욕탕은 혼탕이었는데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쥘 이슐레가 저술했다.우리나라 최초의 목욕은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담쟁이덩굴로 덮힌 우물가에서 태어나 동천(東川)에서 목욕 후 광채를 발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죄수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목욕벌’을 내렸다고도 한다. 목욕재계(沐浴齋戒)는 제사나 기원하는 일에 앞서서 부정을 타지 않도록 몸을 깨끗이 씻고 몸가짐을 다듬는 일이다. ‘고려도경’에 고려인은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의 큰 강에서는 남녀가 혼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이처럼 목욕의 역사와 나의 오늘은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다.월(月)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목욕탕에 가는 일은 즐겁다. 큰 탕은 김이 오르고 있고 아무도 밟지 않은 미지의 땅처럼 깨끗한 탕에 몸을 누인다. 여왕이 부럽지 않은 호사며 즐거움이다. 온몸이 나른하며 관절 하나하나가 부드러워지고 피부는 촉촉하다.1도가 높아진 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출발한다. 마음도 덩달아 날아오른다.

2023-06-28

붉은 눈(目)

윤명희 수필가 모처럼만에 들린 당숙 댁이다.골목에 들어서자 지붕 밑에 빨간 불빛이 깜빡거린다. 마당에도 낯선 불빛이 여기저기서 노려보고 있다.두 노인네가 사는 시골 농가주택에 CCTV를? 요즘은 멀리 있는 자식들이 부모의 상황을 살피려 설치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 댁에 아직은 그런 게 필요할 리가 없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과상 앞에 앉았던 당숙과 집안 시동생들이 반색을 한다. 종조모의 제사를 핑계로 모였다.늦게 도착한 나는 싱크대 앞으로 먼저 갔다. 반백이신 당숙모가 제사 준비 다 됐으니 그냥 앉아서 떡이라도 먹으라며 등을 민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밖에 왠 CCTV냐고 물었다.아이고, 말도 마라. 우리 동네에 잡범이 있데이. 비닐하우스 안에 고추 말리는 것도 가져가고, 감 말린다고 걸어 둔 것도 한 줄 없어지고, 연장은 물론이고 뭐가 자꾸 없어지는 거라. 가져가면 한 자루를 가져가지 한 됫박씩, 몇 개씩 없어지는 거 보이 동네 사람 같어. 잃어버리고 남 의심하는 내가 죄인이지 누구를 탓하겠나 싶어서 갈무리를 잘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제 딴에는 표시 안 나게 하느라고 조금씩 훔쳐가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매일 보고 만지는 건데 그걸 모르겠나. 촌 살림살이가 아파트처럼 자물쇠를 채울 수가 있나 말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데 뭐라 하겠노. 한 번은 노인정에 가서 들으라는 듯이 우리 동네에 도둑년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지. 그랬더니만 여기저기서 잃어버린 얘기를 하더라고. 우리 집만 그런 게 아이라. 누구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까지 없어졌다고 하는데 기가 막히재.더 어이가 없는 건 된장 담아 놓은 장 단지까지 손을 대네. 매 해마다 농사지은 콩으로 내 손으로 메주 만들어서 장담아 놨는데 메주 몇 장인지 모르겠나. 장 뜨려고 단지 뚜껑 열어보이 쑥 들어간 기라.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꺼내보이 딱 2장이 비더라고. 가져간 메주야 어쩌겠나 만서도 손을 깨끗하게 씻고 물기 없이 잘 닦고 건져갔겠나 싶은 게 찝찝해서 장을 못 먹겠더라고.속이 상해서 친구한테 하소연을 했더만 CCTV 달아라하데. 가짜 달면 안 된다, 누굴 바보로 아나. 빨간 불 봤재? CCTV가 낮에는 가짠지 진짠지 모르는데 밤에 보마 다 안다 아이가. 하나는 장독대 비추고 하나는 비닐하우스, 현관, 마당, 창고 집 구석구석 다 보이라고 달아 놨디라. 밭일 끝내고 들어오면 먼저 누가 왔다 갔는지 확인하는기 일이라. 이상하재 우째 알고 그 다음부터는 한 번도 안 없어지더라고. 심증 가는 그 사람이 한 번은 올 줄 알았거든.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당숙모가 박장대소를 한다.아이고, 그게 말이다. 도둑을 잡는 게 아이라 나를 잡는다 잡아. 밭에 일하고 오다보마 소변이 급할 때가 있재. 요실금기도 있는데 언제 장화 벗고 수돗가에서 발 씻고 잠가 놓은 현관문 열고 화장실까지 가노 말이다. 마당에 호미 던져놓고 퍼뜩 저기 텃밭 옆에 궁디 까고 앉았재. 오줌 누다 돌아보이 저 눈이 내를 보고 있는 기라. 엄머야 싶어 엉거주춤 바지 끌어올리고 일어서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르겠더라. 아무리 돌아봐도 숨을 데라고는 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더라고. 뻘건 눈이 내를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아 얼른 문을 닫았지.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집 마당이 자유롭지가 않네.사촌동서가 CCTV 확인은 아재와 아지매가 하는데 뭔 상관이냐고 물었다.그게 두 아들 휴대폰에 연결되어 있으이 문제 아이라. 우리가 몇 시에 밭에 나가서 언제 집에 오는지 다 보고 있다는 걸 아는데.우리는 육촌시동생들의 옆구리를 찌르며 엄마 궁디 봤냐고 개구지게 물었다. 확인을 매일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당숙모의 작은 아들이 폰을 귀에 대고 바깥으로 나가고, 큰 아들은 TV 볼륨을 높인다.

2023-06-21

커피, 아침을 열다

정미영 수필가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 드릴게요.”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대사다. 내 나이 20대 초반에 주인공 마리아가 로버트 조던에게 이 말을 속삭이며,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한동안 눈에 선했다.커피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인스턴트커피, 프림, 설탕을 티스푼으로 덜어서 아껴 먹던 때였다. 그런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요즈음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 어렵지 않다.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원두커피가 본격적으로 퍼졌기에, 드립커피를 직접 내리는 집도 늘었다. 편의점이나 아침에 문을 여는 카페도 있어 부지런히 움직이면 모닝커피는 손쉽게 마실 수 있다.그러나 나는 이제 누군가가 건네는 모닝커피의 여유를 기대하지 않는다.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강퍅한 드라마일 때가 많다는 것을 자각해 버렸다. 그렇다고 커피 마시는 일을 생활에서 지울 수는 없기에, 스스로 커피를 챙겨 마시며 새맑은 하루를 기대한다.커피를 음미하는 것은 삶에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아로마가 풍부한 최상급의 커피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동안 시간의 눈금에 편승해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나였다. 방향을 잃은 채 속도에만 치중했던 일도 부려놓고, 마음에 쉼표를 찍으며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마음을 채우기보다 비워서 여백을 만드는 시간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다.그렇지만 비우고 싶다고 마음이 어디 내 뜻대로 비워진 적이 있던가. 오늘도 베토벤을 따라해 본다. 그는 아침마다 60알의 원두를 분쇄해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나는 글감이 막막할 때면 그의 예술적 영감이 시공간을 초월해 나에게 전해지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그를 흉내 내어 종종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적이 없어 애석할 따름이다.알맞은 굵기로 커피를 갈기 위해 그라인더 버튼을 조절한다. 그라인딩 정도와 추출 도구에 따라 같은 커피콩이라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추출 시간이 길수록 커피를 거칠게 갈아야 하고, 추출 시간이 짧을수록 곱게 갈아야 한다.분쇄된 가루를 추출한 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쓴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모든 커피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니므로, 커피 봉지에 적힌 블렌딩 비율을 훑어본다. 복숭아의 달콤새콤한 맛과 은은한 꽃향기가 어우러진 화려한 커피, 라는 문구와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번갈아 눈에 담는다. 커피원두는 품종마다 서로 다른 맛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가지만으로는 종합적인 맛을 즐길 수 없다. 원두가 지닌 특성을 균형 있게 배합하여 깊은 향미와 풍미를 지닐 수 있게 섞는 과정을 블렌딩이라고 하는데, 내가 마시는 커피는 배합 공정이 잘된 것 같다.문득, 우리네 사람살이와 닮은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려면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가끔은 부족한 부분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줄 수 있어야 한다. 블렌딩이 잘된 커피가 부담이 없듯이.커피에 취하면 마주앉은 상대도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실제로 미국에서 부부 1만 쌍을 대상으로 “처음 두 사람을 사랑에 빠뜨린 때는 언제인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커피 한잔 하실래요?”라고 말한 순간이었다고 한다.나는 내 주변이 정(情)으로 가득 넘치기를 바란다. 애정이든, 우정이든. 오늘 아침, 가까운 이와 새뜻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커피 한잔 하실래요?’

2023-06-14

눈이 부시게

배문경 수필가 얼마 전 응급실로 할머니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쓰러진 채 삼일을 꼼짝도 못한 채 견뎠다고 했다. 대퇴부 골절이었고 딸이 집에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집으로 찾아가서 발견되었다. 움직이지 못한 며칠은 지옥이었으리라. 물 한 모금, 휴대폰을 할 수도, 살려달라고 해도 들리지 않을 암흑의 밤낮을 보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사월 초파일 백률사를 딸아이와 찾았다. 날이 날인만큼 사람들로 북적였고 대웅전까지 등을 달 생각으로 이름표가 없는 등만을 쫓아 가파른 길을 올랐다. 그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고 70대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뒷걸음으로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황급히 나는 환자의 의식 상태를 체크했고 주위사람들에게 119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뇌출혈과 경추손상이 걱정되었지만 목을 조금 움직이는 상태였고 두통을 호소했다. 외출혈은 없었지만 뇌출혈은 충분히 의심스러웠다. 환자는 두부(頭部) 밑 통증을 계속 호소해서 옆 사람에게서 손수건을 얻어 밑에 깔아주고 상태를 체크하며 안정을 유도했다. 119 구급차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 이제 거의 다 되었다는 생각에 걱정 말라는 말로 계속 도닥였다. 구급대원이 구급차에서 내려 환자이송을 준비할 때 맥박과 호흡, 경추 손상 없음, 뇌출혈이 우려된다는 소견을 119대원에게 전했다. 신경외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줄 것을 요청했다. 환자는 들것에 의해 구급차에 옮겨져 사이렌소리를 내며 사라져 갔다.나는 다행이란 생각에 흙이 잔뜩 묻은 치마를 툭툭 털며 일어나 대웅전을 향해 걸었다.곁에 있던 딸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난 엄마처럼 못했을 것 같아. 119부르세요” 이 정도는 했겠지만 침착하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쳐다보는데 약간 기분이 좋았다. “할 수 있어. 너도, 이제 봤으니까.” 나는 웃었다. 사고를 지켜보며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비슷한 일이 생각난다. 작년 지인이 하는 세계적인 행사에 의무실을 담당했다. 이틀의 일정이었고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부르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달려갔더니 참가자 한 사람이 빗길에 미끄러져 옆으로 쓰러져있었다. 전체적인 상황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목이 옆으로 비틀려 있었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의식을 확인하고 움직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119를 불러달라고 주위에 요청했다.곁에 본인이 갖고 있던 옷가지가 있어 몸을 고정시키고 맥박과 의식을 체크했다. 귀에 피가 나는 것이 걱정이었다. 병원에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을 수도 있고 뇌에 문제가 심각한지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환자를 다독이며 구급차를 기다렸고 경추손상 우려가 있으니 조심히 이동시켜달라고 얘기하고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구급대원은 함께 병원에 가서 상태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근처에 있던 자가용으로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 직원들에게 상황과 상태설명을 다시 진행했다.뇌CT에서 뇌출혈 소인은 없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귀에서 피가 나는 것은 알 수가 없다며 연휴기간이라 닥터가 없으니 이비인후과가 있는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집이 울산인 환자와 친구가 울산에 있는 병원을 연결했고 나는 사설 구급차를 연결해서 급하게 환자를 다시 이송시켰다.며칠이 지나고 그 환자는 고맙다며 전화로 안부를 전해왔다.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며 다음에 찾아뵙고 식사 대접하겠다는 말을 덤으로 주었다.작년의 사고와 올해의 사고를 통해 정말 작고 사소한 행동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119구급대가 있어 너무 감사했다.나는 늘 죽음 가까이에 선 간호사다. 오늘처럼 삶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역량으로 최선을 다해 삶에 더 머무르도록 돕는다. 희미해져 가던 그들의 삶이 조금 더 눈부시게 빛나도록 거든다. 내 직업의 힘이다. 딸도 눈부신 직업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2023-06-07

봄비 내리던 날에

윤명희 수필가 새벽부터 내린 비가 종일 갈 것 같다. 주말에 겹벚꽃 보러 우리 동네에 온다고 했는데 비에 다 떨어져 버리면 어쩌나. 연거푸 터져 나오는 기침을 팔뚝으로 막는다. 까똑 소리에 폰을 확인하니 꽃 볼 생각에 벌써 마음이 들뜬다는 영숙씨가 톡에 음악을 올렸다. 클릭하자 바이올린에 실린 이문세의 목소리가 빗속에 스며든다. 기침이 음악을 덮친다.지난 주말에 딸네에 갔다. 기껏해야 일 년에 두어 번 가는 길이 기차의 연착으로 더 멀었다. 이제 괜찮아졌다고 하더니 온 집안이 아직도 감기 중이었다. 오전에 수액까지 맞았다는 딸은 목안이 부어 반가움조차 손짓으로 했다. 손자들의 기침 소리만이 온 집안을 콩콩 뛰어다니고, 먼저 기운을 차렸다는 사위가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손이 가지 않은 욕실에는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고 싱크대에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비스듬히 벽을 기대고 있다.나는 모과차를 끓여 널브러진 딸에게 건넸다. 뜨거움이 목을 적시자 기침이 잠시 멈추는 것 같더니 다시 쇠 긁는 소리를 냈다. 잠시나마 편히 쉬게 방문을 닫아주었다. 열기가 다 식은 건조기에서 마른빨래를 꺼내 갰다. 도시의 공기가 매캐하다. 방과 거실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분해해 씻고 청소기를 돌렸다. 손자는 내 꽁무니에 붙어 서서 아주 옛날에는 다섯 살이었는데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고 자랑한다. 내 입은 웃는데 눈은 자꾸만 딸의 방에 들어갔다.“서울 가니 딸이 감기 중이더라고. 나는 그걸 또 좋다고 가져왔네.”한동안 꼼짝없이 아파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에둘러 단체 톡에 툭 던졌다. 폐를 쥐어짜며 나오는 기침이 목을 할퀸다. 내가 아픈데 겹벚꽃이 뭔 대수라고.“그게 진정한 딸바보. 지금 우리 가족 전체도 일주일째 감기로 엄청 힘든데 나만 멀쩡, 코로나 때도 그랬고. 아빤 늘 말로만 딸바보지? 이땐 뭐라 해야 할까요? ”P선생님이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딸바보로 만든다. 나는 자식 바보와는 거리가 멀다. 밥벌이에 매여, 대학입학과 동시에 타지로 떨어져 나간 딸에게 반찬 한 번 보내지 못했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직장생활의 고단함도 결혼 준비도 딸이 알아서 해야 했다. 아들 연년생을 낳아 힘들어할 때 친정엄마라는 체면치레를 위해 겨우 시간을 냈을 뿐이다.음악을 올린 영숙씨의 답 톡이 올라온다.“아빤 늘 말로만 딸바보지? 저도 우리 아빠한테 이런 말 한 적이 있는데~ 깜놀~ 그때마다 우리 아빠는 방금 우리 딸내미 뭐 하는지 생각했는데 라고 하셨어요.”톡 방이 한참 조용하더니 다시 그녀의 얘기가 뜬다.“에고고~ 딸바보 이야기하시는 통에 아빠 생각이 나서 찔끔찔끔 울다가 통곡합니다. 아침에 할 일도 많은데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이런…. 그래서 적당한 게 좋은 듯요. 저도 우리 딸이 너무 예쁜데 나중에 저 없으면 마음 아플까 봐 혼자만 좋아하고 적당히 하고 무심한 듯 넘어가네요. 딸은 섭섭하겠지만.”그녀가 지금 비와 함께 울고 있다. 다른 이들의 눈물 이모티콘이 여기저기 올라오고, 저마다의 부모 얘기가 한마디씩 뜬다. 가슴을 푹 찌른다. 나는 다시 음악을 클릭한다. 조금 전에 듣던 것과는 음색이 다르다. 물 먹은 이문세의 목소리가 눈을 찌른다.“한없이 사랑하고 그래서 한없이 그리워하고, 또 펑펑 울고. 모든 게 다 아름답습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표현하며 삽시다. 나중은 또 그 때 가서 감당이 되겠지요.역시 어른이신 P선생님이 달랜다. 음악은 흐르고 우리는 말이 없다.딸에게 전화가 왔다. 잠긴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엄마가 내꺼 가지고 갔구나, 그래서 내가 괜찮아졌나보네”그래, 내가 그거라도 해 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 잠시, 나도 딸바보가 되는 순간이다. 기침이 딸에게 다시 갈까봐 얼른 폰을 끈다. 톡 방은 눈물 이모티콘 사이로 비가 내려 고요하다. 겹벚꽃이 떨어져도 괜찮겠다. 꽃은 벌써 우리들 마음에 앉았으니.

2023-05-31

더 이상 문은 녹슬지 않는다

정미영 수필가 세상으로 향한 모든 인생길의 시작과 끝은 문이 아닐까. 어머니의 자궁문을 열고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한평생 온갖 종류의 문을 여닫기 반복하다가 마침내 삶의 종착지에는 장례식장에서 생의 문을 닫는다.인생 시계의 가을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지나왔던 무수한 문을 생각해 본다. 자동문처럼 쉽게 열린 적도 있었고, 굳게 닫힌 문을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 겨우 열던 때도 있었다. 돌이켜 보건데 내가 건너왔던 문들은 모두 나의 내력을 지녔다. 가끔은 추억의 빗장을 열고 그 문들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기도 하지만, 오늘은 차마 잊지 못하고 머뭇대며 찾아가기를 별렀던 문을 보러 길을 나선다.학창 시절에 살았던 집 앞에 선다. 문간을 넘나드는 이들의 들숨과 날숨이 대문에 스며든 것만 같아 여기저기 시선을 옮겨본다.내 눈길 끝에 예전의 문소리가 끼익 달려 나온다. 그 당시 우리 식구가 대문을 열고 닫을 때는 유달리 삐걱대는 소리가 잦았다.친정아버지의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던 마음이 대문에 옮겨져 그 아픔의 무게에 짓눌렸던 연유 때문인지 돌쩌귀가 빠져 슬픈 울음소리를 냈다.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을 도맡았다. 어느 해,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다.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잘못됐다.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이 사실을 들은 어머니가 수소문해서 신발 가게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단다.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고 그 즈음 힘들게 겨우 장만했던 집을 내놓을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자식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동안, 아버지의 직장 동료들은 우리 집 형편을 마음 아파했다. 그들의 배려 덕분에 관사로 거처를 옮겼다. 아버지가 빛바랜 문 앞에서 선뜻 집으로 들어오지 못한 적이 많았던 때문이었을까.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한다고 문고리를 붙잡고 미안해할수록 철문은 무시로 아버지의 울분을 받아들였나 보다. 문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주저앉을 것처럼 점차 위태롭게 보였다. 낡을 대로 낡은 문은 바람만 불어도 쩔걱거리며 사위스러운 소리를 냈다. 삭막한 아버지의 흐느낌과 문의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내 불안은 커져만 갔다. 내 가슴에도 붉은 녹과 쇳소리가 선명하게 새겨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그런데 걱정의 종말이 보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파란 페인트를 사가지고 왔다. 비지땀을 흘리며 문고리와 문설주의 돌쩌귀까지 세심하게 덧칠했다. 아버지가 문을 페인트로 단장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무성한 마른 풀로 버석거렸을 아버지의 가슴에 새롭게 푸른 물이 돌았을 것이다. 생기가 돋아나는가 싶더니, 활기가 넘치는 날도 점차 늘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사람에게서 받은 상심과 삶의 고단함을 페인트칠하면서 부려놓으려 애썼던 것 같다.사람과 마찬가지로 문도 상처를 방치하면 안 된다. 아버지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데 힘썼듯이 내세울 것 없던 허름한 문도 녹슨 곳을 사포로 정성껏 문질러 매끈하게 만들자, 공간의 소중한 일부로 재탄생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때의 경험을 발맘발맘 따라왔더니, 가끔 생활에 드리워진 어둠이 걷어지고 환한 희망의 등불 하나 소담스럽게 문에 내걸 수 있었다.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워줘야 했다. 아버지는 공무수행을 떠난 길 위에서 돌아가셨다. 가량없이 날선 세상에서 가족들을 지키려고 했던 아버지는 나에게 문(門)이었다.대문을 쓰다듬어 본다. 삶이 버거울 때 비바람 막아 주고 등을 기댈 수 있었던 문(門)과의 추억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제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 푸른 문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형상은 오롯이 기억될 것이다. 더 이상 문은 녹슬지 않는다.

2023-05-24

변기뚜껑

윤명희 수필가 이제 그의 흙 묻은 작업복이 어색하지 않다. 대충 쓸어 넘긴 흰 머리카락도 여유롭다. 이사 하는 소감을 말 하라고 재촉하자 소주 두어 잔을 연거푸 비운 그가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변기뚜껑?”뜬금없는 말에 우리는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도로 탁자에 놓았다.처음 그를 만난 건 5년 전 쯤이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우리는 시골 살이 해보겠다는 포부로, 늦은 나이에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과 나는 하는 일마다 서툴고, 연장 또한 호미 두어 자루가 전부였다.농업기술센터에서 사귄 새 친구에게 농기구를 빌리러 갔을 때였다. 친구 대신 그녀의 남편이 농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열쇠를 들고 서있는 그의 양복차림이 반듯하다. 나는 흙먼지가 묻은 남편의 낡은 운동화와 그의 까만 구두를 번갈아 보며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냐고 물었다. 집에서 오는 길이라는 그의 말에 우리는 의아한 눈빛을 감추기 위해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대기업 간부였다는 그가 경주에 온건 사업을 위해서라 했다. 갑자기 이사해야 했던 탓도 있었지만, 아파트 생활에 신물이 난 마누라의 소망이 더해 낡은 한옥 마을에 집을 구했다. 사업기간이 끝나면 다시 도시에 두고 온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건 두 말 할 나위가 없었다.그가 마지막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주먹만 한 하얀 강아지를 안은 여자가 마당에 들어섰다.그녀는 채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훑어보며 구시렁거렸다. 집 주인인 것을 눈치 채고는 초면의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강아지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이후, 뾰족 슬리퍼를 신은 그녀가 집을 둘러보는 일이 잦았다. 집의 여기 저기 둘러보며 던지는 소리에 그는 은근히 치솟는 부아를 꾹꾹 눌렀다. 침을 두어 번 넘긴 후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이 보쇼, 내 집이 없어서 이러고 있으면 서러워서 살겠나. 우리 집 변기뚜껑 하나만 팔아도 살 수 있는 이런 집을 가지고 무슨 유세를 그렇게 합니까, 하기를?”순간, 강아지 등을 만지던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몇 번이나 무슨 말을 할 듯이 입을 달싹거리더니 휑하니 돌아서 나갔다. 그 이후로 그녀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추진했던 그의 사업이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농촌 생활에 몸을 익히는 친구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양복쟁이 그의 구둣발은 도시를 향해 있었다. 친구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 혼자 가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그녀는 화물차에 과일상자를 싣고, 그녀의 남편인 그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게 까만 승용차를 닦았다.시골 살이 하러 온 연배가 비슷한 몇몇이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핑계거리만 생기면 그를 불러댔다. 낚시 하는 이가 물고기를 잡아오고 누군가 텃밭에서 상추를 뽑아오면 또 누구는 막걸리를 들고 왔다. 점차 서로 일을 거들어 주는 날이 많아졌고 해가 산 뒤로 내려앉으면 슬리퍼를 끌고 비닐하우스에 모이는 일이 잦았다.대문만 열면 예전에 살던 도시로 돌아갈 것만 같던 그가 우리 집 근처에 집을 계약했다. 집을 산다는 것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집주인에게 이제 이사할 거라고 기별을 했다.술 한 잔 하자며 손을 끄는 집주인 남자를 따라나섰다. 축하 인사에 이어 남자가 변기뚜껑 이야기를 꺼내며 미안하다고 했다. 순간, 그는 잊고 있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처음 이사 왔던 그날, 그는 구겨진 자존심을 변기 물과 함께 내려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모두들 그 집 똥통은 황금으로 만들었냐며 놀렸다. 왁자한 웃음소리에 비닐하우스가 들썩거린다. 우리는 자기만의 변기뚜껑은 과거 속에 묻고, 이제는 남은 시간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만남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은 바삐 달려가지만 우리는 숨고르기를 하며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2023-05-17

곰소에서

배문경 수필가 ‘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강렬한 소금밭의 묘사로 시작되는 박범신 소설가의 ‘소금’을 떠올린다. 나는 3일간의 일정을 잡아 휴가 중이다. 태안반도의 채석강과 적벽강, 내소사는 꿈에서조차 나를 유혹한 곳이었다.나는 지금 곰소다. 곰소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며, 전라북도에서 군산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어항(漁港)이었다.이미 소문난 슬지제빵소로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다. 후배에게 찐빵과 커피를 사달라고 부탁하고 도로에서 벗어나 염전을 살핀다. 소금부족으로 염전에서 죽은 염부인 그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주인공. 소설처럼 나도 검은 타일이 박혀있는 염전의 바닥과 소금을 나르는 레일을 훑어본다. 그리고 소금창고를 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염전의 휴일이다.한국의 중요 문화유산인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전통기술과 소금장인의 노하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바람과 햇볕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전통어업활동이다. 곰소의 소금은 국내 생산되는 소금 중에 으뜸이라고 했다. 소금이 서로 붙지 않고 맛이 최고라며 시어머님께서는 가는 김에 소금을 꼭 사오라고 당부하셨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맛을 낸다는 것을. 류시화 시인의 ‘소금’이란 시다.바닷물이 짜듯이 세상사 인생살이에 상처와 아픔과 눈물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래서 삶에 참맛이 있다는 뜻은 아닐는지. 혼자 비에 젖은 염전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양수는 바닷물과 같은 염도다. 사람의 혈액 속에는 0.9%의 나트륨이 있고 출혈이나 전해질의 발란스가 깨지면 생리식염수를 공급한다. 우리의 시조는 바다에서 왔으리라는 정황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다. 바다가 썩지 않고 버티는 것도 소금 때문이리라. 성경에서 조차 세상에 소금이 되라는 말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고 음식에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에서 유다 앞에 소금그릇이 넘어져있는 상황은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며 신뢰를 깨뜨릴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소금은 부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는 소금을 대접할 때 은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그릇을 내놓았다고 한다. 벤베누토 첼리니(미켈란젤로의 제자)가 금으로 만든 그릇작품(16c 소금통 살리에라)이 600억을 호가했다고 한다.친정어머니는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두면 간수가 빠지고 단맛도 난다며 내게 보여주셨다. 소금 독은 그 아래 네모진 나무를 두 개 놓아 보이지 않는 수분증발을 도왔다. 결국 김치며 찌개에 맛난 간이 되었다. 그 뿐이랴 된장위에 벌레가 혹여 들어가 상할까봐 소금을 가득 흩뿌려두고 촘촘한 흰 천으로 독의 목에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두었다.햇빛이 맑고 좋은 날 항아리들의 뚜껑이 걷히고 흰 천들이 걷어지면 위가 꾸들꾸들 말라있었다. 늘 장맛이 좋아 된장찌개는 숟가락 전쟁이었다. 윗집에서는 간혹 된장을 얻어가곤 했다. 메주가 된장이 되고 간장이 될 때 소금은 새로운 탄생을 돕는 착한 역할을 했다.시어머니는 현관 앞에 둔 달항아리에 소금을 한 가득 담아 두었다. 액운은 모두 사라지고 좋은 복만 들어오란 뜻이리라. 사람의 몸도 정신도 세월에 늙어가지만 정신만큼은 혈액에 담긴 소금의 영향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인류의 역사보다 장대한 채석강의 단층을 보며 세월의 단면에 감동한다. 바위사이로 파도가 치자 어린 소라와 고동, 조개가 생명을 지켜나간다. 산 것들은 늘 신비롭고 아름답다. 소금이 오늘도 신비한 뭇 생명을 키우고 있다.

202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