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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뼈 바르는 남자

등록일 2024-12-11 18:32 게재일 2024-12-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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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희 수필가
윤명희 수필가

늦은 가을이 따뜻하다. 단풍 구경하고 오는 길에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시골 식당은 평소에는 농사일을 하는 외국인으로 줄을 잇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휴일이어서인지 한산했다. 나는 주문한 산채비빔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벽에 걸린 TV를 올려다보았다. 그 아래 앉은뱅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와 젊은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젊은 남자는 스물 두어 살 쯤 되어 보였고, 자그마한 체구의 할아버지는 등이 굽어 코가 비빔밥 그릇에 빠질 듯 했다.

식당아저씨가 갈치찌개가 담긴 양은냄비를 그들 앞에 놓았다. 젊은 남자가 얼른 가장 굵은 갈치 토막을 골라 제 앞으로 가져갔다.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뼈를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갈치에는 관심 없이 비빔밥만 먹고 있는 할아버지와 뼈 바르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그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외국노동자와의 인연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가 가져간 굵은 갈치에 눈이 꽂혔다.

예전, 남편이 공장을 운영할 때였다. 용접한 구조물을 매끈하게 다듬는 일이 힘이 들어 직원들이 오래 견디지 못했다. 채용공고를 내자 베트남 청년이 왔다. 그는 어눌한 말로 숙소를 제공해 주어야 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오래 함께 하고픈 마음으로 흔쾌히 약속했다.

발음하기 힘든 그의 이름을 꾸웽이라 불렀다. 꾸웽을 사무실 위층에서 거주하게 했다. 그의 요구대로 컴퓨터를 주문해 인터넷을 연결해 주었다. 3층은 넓어 방이 4개 있지만, 하나만 사용하라고 했다. 나는 청소할 빗자루와 밀대를 새로 장만해 건네주었다. 생활비나마 아끼라고 선물로 들어온 물품들을 따로 챙겨주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출근 한 날이었다. 사무실 문을 여는 등 뒤로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떠들썩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애들이 몇 명 내려오다 우리를 보고는 멈칫했다. 멋쩍은 인사를 한 그들이 부리나케 공장 밖으로 나갔다. 남편과 나는 모른 척 눈을 감았다. 퇴근시간이 좀 늦은 날은 나이가 많은 남자들까지 대문 밖에서 쭈뼛거리는 게 보였다. 남편이 꾸웽을 불러 외부 사람을 공장으로 불러들이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일요일 저녁,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아침 일찍 방문하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서류를 챙기러 공장으로 갔다. 3층 거실의 불빛이 환하게 비쳤다. 창으로 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무실로 가는 입구 문을 열자 음악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우리는 3층을 바라보며 한참 서 있었다.

다음날, 남편은 꾸웽을 사무실로 불렀다. 더 이상 같이 일 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이야기하자, 그는 돈부터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가방을 챙겨 공장 문을 나서는 그를 창밖으로 내다보았다. 3층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옷가지와 술병이 널려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기름 흔적과 음식 쓰레기가 너저분하고, 방마다 이불이 널려있었다. 3층을 대청소하면서 다시는 외국인을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생선의 가장 큰 토막을 제 앞으로 챙기는 남자가 꾸웽을 떠올리게 해서 씁쓸했다. 그런데 뼈를 바른 젊은 남자가 갈치 살을 할아버지 밥 위에 올려놓았다. ‘너나 먹어’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들렸다. 그 남자는 비빔밥을 퍼 먹으면서도 눈은 할아버지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밥을 떠 입에 넣자, 그는 다시 살을 집어 할아버지 숟가락에 올렸다. 할아버지는 그 갈치 살을 젊은 남자의 밥 위에 올려주고는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다문화 가정의 손자인가 생각해봐도 젊은 남자의 피부는 완연한 동남아 태생으로 보였다. 도회지로 떠난 자식들 대신 할아버지를 돌보는 도우미인가?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농사를 놓지 못했던 건 아닐까. 농사로 이어진 인연이 갈치 뼈를 발라주고, 할아버지의 컵에 물을 따르는 사이가 되었을까.

할아버지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자, 젊은 남자가 호위하듯 바짝 붙는다. 식당 문을 열어주고, 신발까지 챙겨주는 그를 보고 또 보았다. 낡은 화물차에 오른 그들이 식당마당을 나서자, 신작로의 노란 은행잎이 그들 뒤를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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