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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카이로스의 시간

인간의 생(生)을 관장하는 거대한 두 축이 있다. 하나는 밤과 낮의 교차처럼 쉼 없이 흐르는 양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요, 다른 하나는 찰나의 순간에 영원이 깃드는 질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다. 우리는 흔히 시계바늘의 일정한 궤적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고 믿지만 영혼이 각인하는 진짜 삶의 무늬는 언제나 카이로스의 틈새에서 피어난다. 시간은 결코 누구에게나, 혹은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는 물리적 선(線)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밀도에 따라 점성이 달라지는 기묘한 착각이다. 얼마 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온종일 어느 세미나장에 묶여 있던 날이 있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서 시간은 잔인할 만큼 무겁고 고체화되어 있었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시간의 무게는 고스란히 육체의 통증으로 치환되었다. 꼿꼿하게 버텨내야 하는 허리는 끊어질 듯 둔탁한 비명을 질렀고 미동 없는 자세를 강제당한 다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밀려드는 활자와 음성 속에서 머리는 형체 없이 어지러웠으며, 초점을 잃은 눈은 시려 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는 오직 파편화된 숫자를 세는 것뿐이었다. ‘이제 다섯 시간 남았구나. 아니, 겨우 두 시간이 지나 이제 세 시간 남았네.’ 그 순간의 나는 크로노스의 거대한 맷돌 사이에 끼어 으스러지는 존재였다. 기계적으로 분절되는 1분 1초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영혼을 짓눌렀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는 전진이 아니라 주체성을 박탈당한 자의 목을 죄는 형벌의 메트로놈이었다. 물리적 시간의 절대성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내 의지가 거세된 공간에서의 한 시간은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시간만큼이나 지루하고 아득한 형벌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이 잔인한 절대적 시간의 독재는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 함께 보낸 1박 2일의 여정 속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들을 만나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보낸 그 시간은 마치 찰나의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려고 마음먹었던 수많은 일들은 반의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무심한 해는 저물고 이별의 시간은 너무도 성급하게 당도했다. 아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볼 필요가 없었다. 그 시간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깊은 곳으로 촘촘히 스며들어 쌓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째깍거리는 시계 바늘의 속도는 세미나장의 그것과 분명 같았을 터이나, 아들의 수다 사이로 흐르던 시간은 빛의 속도로 명멸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카이로스’, 즉 의미와 가치로 가득 찬 주관적 순간이다. 문학적으로 볼 때, 카이로스는 존재의 밀도가 극대화되는 ‘계시(啓示)의 순간’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에서 유년의 시간을 통째로 길어 올렸듯, 카이로스는 연대기적 순서를 단숨에 뛰어넘어 삶의 본질을 대면하게 한다. 세미나장에서의 시간은 알맹이 없는 황량한 크로노스였기에 육신이 고통스러웠던 것이고, 아들과의 시간은 밀도 높은 서사로 채워진 카이로스였기에 너무도 매끄럽고 빠르게 흘러간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를 ‘지금 시간(Jetztzeit)’이라 불렀다.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균질하고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구원이 불꽃처럼 스파크를 일으키는 꽉 찬 시간. 아들과 함께 걷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물리적 시간에 쫓기는 필멸자가 아니라 영원의 한 자락을 붙잡은 예술가였다. 비록 계획했던 일들을 다 이루지 못했으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는 행위의 양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이란 거대한 크로노스의 바다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카이로스의 섬들을 찾아 항해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타의에 의해 고통받던 육체의 지난함도,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느꼈던 안타까운 달콤함도 모두 시간의 상대성이 내 영혼에 새긴 깊은 사유의 흔적이다. 우리는 시계를 차고 살아가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은 시계 바늘이 가리킨 숫자가 아니라 그 순간 우리가 느꼈던 감각의 밀도다. 크로노스의 독재 속에서도 우리는 늘 카이로스를 꿈꾼다. 찰나가 영원이 되는 그 신비로운 틈새 속에서, 비로소 나의 삶은 온전한 제 이름을 찾고 숨을 쉬기 시작한다. /김경아 작가

2026-06-09

사랑의 내력(內歷)

지난 연휴, 타지에서 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의 집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를 견디며 일구어낸 독립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제 몫의 삶을 당당히 살아내고 있는 어엿한 사회인이건만 부모의 눈이란 참으로 기이하고도 무력한 돋보기 같았다. 장성한 아들의 어깨 뒤로 여전히 품 안에서 뉘어 키우던 아이의 실루엣이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손에서 걸레가 떠날 줄을 몰랐다. 방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이불을 걷어 올려 세탁기를 돌렸다. 다가올 여름을 대비해 에어컨 필터를 뜯어내고 선풍기를 분해해 찌든 때를 닦았다. 또 아들이 안내한 카페도 가고 소문난 식당 앞에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의 가장 깊은 서랍에 남은 것은 맛있는 음식보다도 아들의 공간을 쓸고 닦던 그 수고로운 행위 자체였다. 문득 지나온 시간의 궤적이 겹쳐지며 묘한 기시감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 젊은 날 친정엄마 역시 내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그러했다. 엄마는 딸이 차려주는 대접의 자리에 공주처럼 고상하게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싱크대 앞에 붙어 서서 밀린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뒤져 밑반찬을 뚝딱 만들고, 집안의 구석진 먼지를 찾아내 청소하기 바빴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못내 싫었다. 자식의 집에 와서만큼은 그저 편하게 쉬다 가기를, 대접받는 손님으로서의 여유를 누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왜 엄마는 자식 앞만 서면 무조건적인 노동의 주체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까. 왜 당신의 존재를 낮추어 자식의 일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려 하실까. 그것이 젊은 날의 내가 품었던 철없는 의문이자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세월을 건너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 아이가 자라 다시 나만의 우주를 독립해 나간 지금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되고 있는 엄마의 습성을 바라보며 비로소 그 지극한 마음의 내력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계보의 이어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세계를 조건 없이 품어 안는 방식을 배우는 영성(靈性)의 과정에 가깝다. 부모의 눈에 자식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가거나 완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이 그를 두고 대리님, 과장님 혹은 한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라 부르며 무게를 지울 때, 오직 부모만이 그 무거운 갑옷 속에 감춰진 부드럽고 유약한 살결을 알아챈다. 아무리 높이 자란 나무라 할지라도 뿌리는 여전히 대지의 깊은 품을 필요로 하듯, 자식이 이룬 삶의 거처는 부모에게 언제나 보살핌과 안쓰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수필가 피천득은 인연을 말했으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고 오직 아래로만 흐르는 내리사랑의 물리 법칙을 따른다. 자식의 집을 청소하는 행위는 단순한 가사 노동의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거친 전장에서 상처받고 돌아왔을 자식의 고단함을 닦아내 주는 치유의 의식(儀式)이자, 네가 없는 시간에도 너의 안녕을 바라겠다는 무언의 기원이다. 칠이 벗겨진 선풍기 날개를 닦아내고 필터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속에는 자식의 일상에 조금의 막힘도 없기를, 그가 들이마시는 공기 하나조차 맑고 청정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생의 전반부에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누렸다. 그러나 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스스로 부모의 자리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가 누렸던 그 모든 안락함 뒤에는 누군가의 굽은 등과 튼 손마디,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기꺼이 지워내며 자식의 길을 밝혀준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우리는 청소포를 들고 자식의 방을 닦아내던 부모의 뒷모습을 닮아 가며, 비로소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깊고 사유 깊은 사랑의 온도를 배워가는 것이다. 아들의 방은 깨끗해졌고, 내 마음의 해묵은 먼지 또한 말끔히 씻겨 내려간 참으로 푸르고 개운한 봄날이었다. /김경아 작가

2026-06-02

바다를 닮아가는 일

바다는 언제나 인간의 사소한 소란쯤은 기꺼이 삼켜줄 것처럼 넓고 아득하다. 지난 주말, 뜻밖의 여유 자금이 생긴 모임에서 “바닷가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는 소박하고도 설레는 제안이 나왔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푸른 파도 앞으로 모여들었다. 하늘은 지나치게 눈부시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해사했고, 살랑이며 뺨을 스치는 바람은 숯불의 열기를 식혀주기에 더없이 알맞았다. 각자의 소중한 가족들을 동반한 자리였기에 온기는 배가 되었다. 특히 여섯 남매를 둔 어느 부부의 아이들이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바다가 길러내는 생동하는 물결 같았다. 불판 위에서는 삼겹살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갔고, 뒤이어 바다의 향을 가득 머금은 오징어와 통통한 새우가 차례로 구워졌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음식과 웃음을 나누는 일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을 넘어,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연대를 확인하는 하나의 의식(儀式)과도 같았다. 마지막에 새우 머리를 듬뿍 넣어 끓여낸 라면의 칼칼하고 깊은 국물 맛은, 그날 우리가 나눈 정(情)의 밀도만큼이나 진했다. 완벽해 보이는 풍경 속에도 언제나 예기치 못한 파편은 존재하는 법일까. 어디든 눈에 가시는 있는 법이라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 시선 끝에 자꾸만 걸리는 한 무리가 있었다. 모임의 회원 중 한 명이,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낯선 이들을 몇 명 데리고 왔다. 공적인 모임에 사적인 손님을 예고도 없이 초대했다면, 적어도 그 분위기에 녹아들려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비롯한 그의 일행은 거대한 성벽처럼 완강하게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마치 대접받아야 마땅한 ‘선민(選民)’이라도 된 듯, 가만히 앉아 남들이 땀 흘려 구워 나르는 서빙을 당연하게 받아먹기만 했다. 숯불의 매운 연기를 마시며 고기를 굽고, 아이들을 챙기며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의 노고는 그들의 안중에 없는 듯했다. 화기애애함 속에 감춰져 있던 이기심의 민낯은 사소한 간식 시간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준비한 수박이 다소 부족한 상황이었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며 양보하려던 그 순간, 그녀의 무리는 수박의 가장 달고 맛있는 중심 부분만을 쏙 골라 자신들의 접시로 가져가 버렸다. 붉고 달콤한 과육을 베어 무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거세된 이들의 서늘한 탐욕을 보았다. 결정적인 장면은 일정이 끝나고 찾아온 노동의 시간이었다. 모두가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줍고, 무거운 짐을 나르며 다 함께 뒷정리를 하던 시간에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파도가 치는 바닷가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자신들만의 화보를 찍듯 다채로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끝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유유상종(類類相聚)이라더니, 참으로 닮은 이들끼리 모였구나.’ 그들이 남기고 간 얌체 같은 행동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불쾌함 뒤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본인들은 자신들이 주변에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 타인의 눈에 얼마나 가시로 박혀 있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악의를 가지고 타인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인의 시선이나 감정을 읽어내는 ‘공감의 안테나’가 고장 난 이들. 내가 편하면 세상도 편한 줄 아는 그 무지함이야말로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질병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스스로는 우아하고 무해하다고 믿는 그 당당함이, 오히려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허물을 낱낱이 헤아리던 서슬 퍼런 시선은 내 안을 향해 굽어들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그녀들의 무리를 격렬하게 비난하던 내 안의 잣대가 문득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을 찔러온 것이다. ‘나는 과연 타인의 삶에 언제나 무해한 존재였는가.’ 나 역시 어느 자리에서는 무심코 몸에 밴 이기적인 행동으로 누군가의 눈에 아픈 가시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달콤한 수박의 중심을 차지하느라 누군가에게는 껍질 쪽의 밍밍한 맛만을 남겨두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가시를 보며 분노하기보다, 내 몸에 돋아나 있을지도 모를 가시를 정성껏 깎아내는 일. 그것이 바다를 닮아가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6-05-26

얕은 침잠(沈潛)의 변명

식탁의 중심에서 휴대용 가스버너가 나직한 숨을 내뿜는다. 그 위로 얹힌 들큼한 육수가 투명한 수증기를 피워 올리며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 나는 집게를 들어 얇게 저민 선홍빛 소고기 한 점을 집어 뜨거운 물결 속에 고기를 밀어 넣는다. 그 머무름은 찰나에 불과하다. 고기가 뜨거운 수마(水魔)에 닿아 제 빛깔을 채 잃기도 전에, 서둘러 핏기만 가신 채 건져 올린다. 샤브샤브의 미덕은 바로 ‘얕음’과 ‘신속함’에 있다. 깊이 잠기지 않을 것, 그리하여 본연의 연한 질감을 잃지 않을 것. 문득 그 찰나를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의 어떤 단면들을 냄비 속의 고기처럼 대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인생의 중턱을 넘어 갱년기라는 정체 모를 불청객을 맞이한 이후, 나의 일상은 육체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지리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낯설게 차오른 살들은 세월의 흔적이자 대사가 느려진 장기들이 보내는 무언의 경고였다. 의사는 담담하게 운동을 권했고 나는 비장한 각오로 운동화 끈을 묶었다. 그러나 그 비장함의 유통기한은 언제나 샤브샤브 고기가 끓는 육수에 머무는 시간만큼이나 짧고 덧없었다.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나는 결코 인내심이 결여된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타인들이 보기에는 미련할 정도로 하나의 우물을 파는 고지식한 고집이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며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원고지 위에서 단어들과 사투를 벌일 때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두꺼운 문학 텍스트를 수십 번씩 고쳐 읽으며 행간의 의미를 채굴할 때도, 나는 언제나 끈질긴 추적자였다. 무언가를 사유하고 창작하는 영역에서 나의 정신은 늘 사골을 고는 가마솥의 불꽃처럼 은근하고도 집요하게 타올랐다. 몇 시간이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텍스트의 뼈대를 고아내고, 사유의 진액을 우려내는 일에는 추호의 주저함도 없었던 내가 어찌하여 이 사소한 육체의 움직임 앞에서는 이토록 유약하게 무너지는 것일까. 흔히 우직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상징할 때 우리는 ‘사골을 우린다’는 표현을 쓴다. 내가 삶을 대했던 태도는 사골과 가까웠다. 문장을 다듬고, 삶의 비극을 응시하며, 내면의 고통을 짓이겨 하나의 수필로 길어 올리는 과정은 온전히 내 안의 진액을 짜내는 고단한 은거(隱居)였다. 그러나 운동이라는 물리적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서사는 여지없이 샤브샤브의 가벼운 궤적으로 선회해 버렸다.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 올라서거나 발레 슈즈를 신고 선을 그릴 때, 내 육체는 그 시공간에 깊숙이 착지하지 못하고 겉돈다. 마치 뜨거운 육수가 무서워 슬쩍 발만 담갔다가 빼내는 얇은 고기 조각처럼,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기도 전에 시계를 확인하고, 근육이 팽팽한 긴장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서둘러 동작을 마무리한다. 진득하게 육체를 단련하는 사골의 시간 대신 서둘러 건져 올리는 샤브의 순간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현격한 괴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갱년기에 접어든 육체는, 호르몬의 썰물과 함께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 같지 않은 기초대사량,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관절의 비명은 나로 하여금 내 몸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선사했다. 어쩌면 나는 진득하게 운동을 지속했다가도 결국 가시적인 성과를 보지 못할까 두려워, 처음부터 깊이 잠기지 않는 샤브샤브식 ‘얕은 운동’ 속으로 도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성실한 실패자가 되기보다는, 성의 없는 방관자가 되는 편이 내 자존심을 지키기에 유용했을 터이다. 운동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겉도는 내 모습이 비록 다이어트라는 세속적 목표에는 불성실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내 무의식이 선택한 생존의 방식일 수 있다. 이제는 육체든 정신이든, 지나치게 깊이 침잠하여 스스로를 혹사시키지 말라는 내면의 브레이크. 매일 거창한 성과를 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대신, 그저 삶이라는 뜨거운 육수에 가볍게 몸을 적셨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얕은 접촉만으로도 생은 지속될 수 있다고 위로하는 몸의 언어 말이다. 글을 쓰는 일과 아이들을 마주하는 일에는 여전히 사골 같은 집념을 발휘하겠지만, 내 지친 육체를 달래는 일만큼은 이 샤브샤브의 유연함을 허락하기로 한다. 살을 빼고 건강을 되찾는 일 또한 맹렬한 투쟁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부드럽게 순응하며 핏기만 살짝 가시듯 가볍게 외연을 다듬어가는 과정이어야 마땅하기에 말이다. /김경아 작가

2026-05-19

아버지의 안경

낡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끼시던 돋보기를 발견했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유품을 정리하며 수많은 물건을 비워냈지만 손때 묻은 이 안경만큼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안경알 너머로 아버지가 평생을 걸쳐 찾아내고 응시했던 수많은 글자와 세상들이 여전히 그 안에 고여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안경을 챙겨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노년은 적막했다. 귀가 어두워지면서 세상의 활기찬 소음들은 아버지의 문밖에서 길을 잃었다. 소리로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린 아버지에게 이 돋보기는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하고도 절박한 창구였다. 지인들이 보내온 안부 문자, 서툰 맞춤법으로 사랑을 전하던 손주들의 메시지를 아버지는 이 렌즈를 통해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셨다. 아버지에게 돋보기는 사물을 크게 보여주는 도구만이 아니라, 고립된 침묵 속에서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아버지의 마지막 의지였다. 돋보기 렌즈가 사물을 확대할 때, 그 이면에는 소외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아버지에게 그 작은 유리알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붙들었던 마지막 끈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한 파도 소리처럼 흩어질 때, 아버지는 침묵의 방 안에서 홀로 돋보기를 닦으셨을 것이다. 깨끗하게 닦인 렌즈 위로 자식들의 짧은 안부를 올리고, 당신의 시력을 다해 그 글자들을 마음속에 새기던 시간들. 멀어져 가는 세상을 다시 끌어당겨 품에 안으려는 눈물겨운 포옹이었음을 나는 체감한다. 책상 앞에 앉아 아버지의 안경을 가만히 써 본다. 시야가 일렁이며 초점이 흐릿해지지만 그 굴곡진 렌즈 너머로 아버지가 걸어온 생의 궤적이 만져지는 듯했다. 아버지는 평생 타협할 줄 모르는 원칙주의자였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무뚝뚝해 보였지만, 당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앞에서는 한없이 올곧은 분이었다. 그 안경은 아버지가 세상을 왜곡해서 보기 위함이 아니라 흐려지는 세상 속에서도 본질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정직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누군가는 욕망의 색채가 덧칠해진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화려하게만 보려 하고, 누군가는 편견이라는 도수가 맞지 않는 렌즈로 타인의 삶을 왜곡하여 재단하기도 한다. 내가 낀 안경의 색깔에 따라 세상은 때로 차갑게 얼어붙기도, 때로 지나치게 과열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 주관적인 굴곡 안에서 우리는 종종 사물의 본질을 놓치고, 보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망막에 담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돋보기는 달랐다. 그것은 화려한 색을 입히지도,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흐릿해진 경계를 선명하게 끌어올리고 작아서 보이지 않던 진실을 정직하게 확대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자신만의 안경을 닦으며,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변칙적일지라도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는 상(像)을 맺기 위해 평생을 분투하셨던 것이다. 비록 아버지는 곁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이 안경을 통해 아버지의 시선을 배우려 한다. 아버지가 돋보기로 작은 문자 속에 담긴 진심을 찾아내셨듯, 나 또한 삶의 소소한 풍경들 속에서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싶다. 원칙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던 그 투명한 시선을 물려받고 싶다. 이제 아버지의 유품은 나의 책상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아버지가 돋보기를 통해 세상을 읽었다면, 나는 그 시선을 빌려 세상을 ‘기록’하려 한다. 타협하지 않는 원칙과 올곧은 성품이 때로는 고독한 길이었을지라도, 아버지는 한 번도 그 안경을 벗어 던지지 않았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때로는 눈앞의 이익이나 편안함에 시야가 흐려질 때마다 아버지의 안경을 떠올릴 것이다. 돋보기가 작은 것을 크게 보이게 하듯,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미소한 존재들의 가치를 크게 들여다보고 아버지가 지켜냈던 그 투명한 진심을 문장 사이에 촘촘히 박아 넣고 싶다. 아버지의 안경은 이제 나의 시력이 되어 내가 써 내려갈 수많은 원고지 위를 묵묵히 동행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돋보기를 곁에 두고 펜을 든다. 이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고, 조금 더 정직하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굽힘 없이 그리고 따뜻하게 지켜내며 살아내고 싶다. /김경아 작가

2026-05-12

별미(別味)

주변에서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여자 셋이 여행을 가면 꼭 한 명은 소외되거나 싸우게 마련이다, 평소에 아무리 친해도 여행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등의 우려 섞인 조언들이 가방의 덤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걱정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잠시 벗어나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오로지 ‘나’로서 그리고 ‘우리’로서 마주한 첫 여정이었다. 그것은 익숙한 집밥을 떠나 낯선 이국의 별미를 마주할 때의 짜릿한 긴장감과도 같았다. 일본의 복잡한 노선도 앞에서 나는 길잡이를 자처했다. 유창하지 못한 실력이었지만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역무원에게 묻고 또 물었다. 혀끝에서 맴도는 서툰 단어들이었으나 뒤에서 나를 믿고 따라오는 두 친구의 존재가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환승 플랫폼을 찾아 헤매고 구글 지도를 돌려보며 낯선 골목을 누비는 과정조차 우리에게는 하나의 유희였다. 길을 잃으면 어떠하랴, 우리 세 사람의 발길이 닿는 그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을. 타자와의 동행은 언제나 자기 세계의 균열을 전제로 하지만, 이번 여정은 그 균열 사이로 오히려 눈부신 교감이 범람하는 경이로운 합주였다.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결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절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우정이라는 이름의 유대감을 더욱 견고하게 길어 올렸다. 낯선 이국의 풍광은 그저 부차적인 배경일 뿐, 정작 우리를 고양시킨 것은 서로의 결핍을 메워주는 배려와 그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찰나의 웃음들이었다. 익숙한 일상의 궤도를 이탈하여 조우한 낯선 연대(連帶)는 고착화된 중년의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여행지에서 음식을 고르는 일은 때로 고역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 친구는 갑작스러운 두드러기 증상 때문에 현지 음식보다는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미안해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우리는 기꺼이 한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녀는 미안함을 ‘기록’으로 승화하였다. 자신의 얼굴을 담기보다 렌즈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었던 친구는 “얘들아, 저기 서봐! 지금 빛이 너무 예뻐”라고 외치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배려는 우리의 식탁 위에, 그리고 핸드폰 갤러리 속에 영원히 박제된 온기로 남았다. 또 다른 친구는 마치 마법사의 가방을 지닌 만물상 같았다. 호텔 실내화의 불편함을 예견하여 챙겨온 여분의 슬리퍼, 짐이 늘어날 것을 대비한 보조 가방, 심지어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 챙겨온 여유 자금까지. “혹시 이거 있어?”라는 물음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의 가방에서는 정답 같은 물건들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치밀함 덕분에 우리는 타지에서의 불편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온전히 즐거움에만 침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여정을 지탱해 준 가장 견고한 안식처였다. 하루의 끝과 시작을 우리는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뿌연 수증기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십사 시간을 붙어 지내며 발견한 서로의 새로운 단면들이 있었다. “너는 이런 습관이 있었구나”, “너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구나.”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이는 일임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니 우리의 여행은 잘 짜인 삼중주였다. 부족한 언어와 여정의 조율로 앞장선 나, 배려의 시선으로 우리를 담아낸 친구, 빈틈없는 준비로 우리를 채워준 친구. 누구 하나 욕심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였기에 여행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길을 묻다가 터져 나온 폭소, 잘못 탈까봐 노심초사한 기차 안에서 나누던 농담, 편의점 간식 하나에 아이처럼 기뻐하던 순간들. 그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일본의 낯선 공기를 타고 경쾌한 파동으로 번져나갔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든든한 집밥이라면, 친구들과의 이번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이국의 별미였다. 익숙함 속에 숨겨진 새로운 맛을 보고 나니 인생이라는 긴 여정 자체가 조금 더 가볍고 경쾌해진 기분이다. 우리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서로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며 더 깊은 우정의 닻을 내렸다. 세 사람의 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이번 여행을 뒤로하며 벌써 다음 식탁을 고대한다. 삶이라는 허기진 길 위에서 또 어떤 낯설고 맛깔스러운 풍경을 함께 나누게 될지, 벌써부터 혀끝에서 기분 좋은 군침이 돈다. /김경아 작가

2026-05-05

고택의 빈 나무

울산의 봄볕은 담장이 낮은 고택의 마당 위로 유난히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조선의 외교관으로서 수많은 이들을 사지에서 구해냈던 충숙공 이예 선생님의 자취가 서린 학성 이씨 근재공 고택. 그곳에 들어서면 정갈하게 얹힌 기와 아래로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날 내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은 것은 정교한 가옥의 구조도, 고귀한 가문의 내력도 아니었다. 마당 한쪽, 낮은 돌담을 등지고 선 늙은 모과나무 한 그루였다. 처음 그 나무를 보았을 때 위태로워 보였다. 나무의 몸통은 마치 누군가 예리한 칼로 도려낸 듯, 혹은 세월이라는 거대한 벌레가 파먹은 듯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만이 얇은 막처럼 남아 간신히 나무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 반대편 풍경이 휑하니 보일 정도였다. 저토록 처절하게 제 몸을 비워낸 나무가 어떻게 여태껏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지, 자연의 신비보다는 차라리 어떤 지독한 의지 같은 것이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더욱 경이로운 것은 그 빈 몸체 위로 뻗어나간 가지들이었다. 생명의 기운이라곤 전혀 남지 않았을 것 같은 마른 껍데기 위로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고, 해마다 가지에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다고 했다. 속은 비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나무가 제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열매들을 자식처럼 보듬고 있는 그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나무 아래 서서 한참을 응시했다. 텅 빈 나무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비어 있는 공간은 단순히 사라진 목질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어준 ‘헌신’의 흔적처럼 보였다. 그것은 영락없이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름의 거목 아래서 그들이 피워낸 달콤한 과실을 먹고 자란다. 부모는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의 수분을 내어주고, 영양분을 나누며, 급기야는 자신의 뼈와 살인 속살까지도 아낌없이 갉아 내어준다. 자식이 세상 밖으로 나가 단단한 씨앗을 품은 어엿한 결실이 될 때까지 부모는 제 안이 비어가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가지 끝에 달린 열매의 무게만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등이 넓고 단단한 줄만 알았다. 늘 그 뒤에 숨으면 세상의 어떤 풍파도 비껴갈 것 같았고,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직접 열매를 맺어보니 그 단단해 보였던 등 뒤에는 자식을 키우느라 문드러지고 비어버린 고독한 세월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은 텅 비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으로 버티며 여전히 가지를 뻗어 올리는 모과나무의 처절한 생명력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일치한다. 나무는 제 몸 안에 가득 찼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다 주고 나서야 비로소 가장 향기로운 모과를 완성해낸다. 부모 또한 자신의 꿈과 청춘, 그리고 육체적인 강건함을 자식이라는 열매 속에 오롯이 담아 보내고는 본인은 거친 주름만 남은 껍질이 되어버렸다. 이예 선생님의 고택에서 만난 이 모과나무는 나에게 묻는 듯했다. “너라는 열매는 과연 어떤 향기를 품고 있느냐”고, “그 향기가 누구의 희생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인지 잊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고택의 돌담 아래 쌓인 햇살 속에서 모과나무는 여전히 당당했다. 비록 속은 비었을지언정 그가 매달고 있는 열매들은 누구보다 건강하고 풍요로웠다. 그것은 패배한 삶의 흔적이 아니라 완성된 사랑의 훈장이었다. 부모라는 이름의 나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제 몸을 다 내어주고 껍데기만 남았을지라도 자식의 삶 속에서 주렁주렁 맺히는 열매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다시금 살아갈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고택을 나서는 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텅 빈 속을 감추지 않고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길러내는 저 늙은 나무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물겹도록 고귀해 보였다. 나 또한 누군가의 열매로서 그들이 내어준 빈자리만큼이나 깊고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그 숭고한 껍데기의 의지 위에서 말이다. /김경아 작가

2026-04-28

확증편향

부활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한 봄날이었다. 연합 예배 현장에서 나눠준 달걀 한 알은 그 자체로 풍성함을 주었다. 매끄러운 껍데기 속에 응축된 온기, 그리고 부활절이라는 절기가 주는 당연한 관습은 내 의식 속에 이미 하나의 견고한 확신을 심어놓았다. 이 작고 둥근 물체는 의당 단단하게 응고된 단백질의 결정체, 즉 삶은 달걀이어야만 했다. 점심을 먹고 한참이 지난 시간, 허기가 몰려왔다. 차량의 시동을 걸자마자 나와 남편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달걀을 집어 들었다. 단단한 매질을 찾아 고개를 돌린 곳은 차창의 모서리였다. 경쾌한 파열음을 기대하며 ‘탁’ 하고 달걀을 내리치던 그 찰나, 나의 확신은 비참하게 붕괴되었다. 파편이 튀는 소리는 결코 경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둔탁하고 축축했다. 껍데기의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나온 것은 견고한 흰자가 아니라 생경하고 점성 강한 액체였다. 날달걀의 투명한 점액질과 노란 눈동자가 순식간에 내 옷과 시트를 점령했다. 동승했던 남편 역시 같은 확신에 차 있었던 터라, 차 안은 순식간에 비린내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양쪽에서 터져 나온 생(生)의 파편들이 옷을 적시고 차 안을 뒤덮는 것을 보며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그것이 삶은 달걀이라고 그토록 굳게 믿었는가. 부활절이니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수많은 정황들은 나를 눈멀게 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성벽을 쌓아 올렸다. 이러한 인지적 맹목은 비단 차 안의 소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생의 도처에서 ‘삶은 달걀’이라는 허상을 쥐고 살아간다. 내가 쌓아온 경험치가 정답이라는 오만,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가 보편적 진리라는 착각은 우리를 성급한 심판자로 만든다. 타인의 침묵을 동의로 확신하거나 누군가의 실수를 고의로 단정 짓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확인하지 않은 달걀을 생의 창문에 내리치고 있는 셈이다. 내면의 필터를 거쳐 여과된 정보만을 진실로 수용하는 사이, 정작 삶의 본질인 ‘날것의 실체’는 외면당하고 만다. 확증의 덫에 걸린 마음은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할 틈을 잃어버린 채, 익숙한 오류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러한 편향은 현대 사회의 거대한 알고리즘 속에서 더욱 교묘하게 우리를 통제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의 확신은 날카로운 흉기가 되기도 한다. 껍데기 속의 액체성을 잊은 채 단단한 고체성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결국 타자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나만의 폐쇄적인 세계관 속에 안주하게 만든다. 손에 쥔 무게감을 다시 느껴보거나, 살짝 흔들어 내부의 유동성을 확인해 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선입견은 그 짧은 검증의 시간조차 사치로 치부하며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 비린내 나는 사고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생의 전반을 관통하는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날달걀’을 ‘삶은 달걀’이라 오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타인의 미소를 선의로 확증했다가 그 뒤에 숨은 날것의 욕망에 데이기도 하고, 나의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인 완성형이라 믿고 세상을 향해 거칠게 신념을 내리칠 때, 예상치 못한 진실의 파편들이 내 삶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확증편향의 대가는 늘 비린 법이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은 반드시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와 우리의 일상을 눅눅하게 적신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인지적 겸손에서 시작된다. 내 손바닥 위의 달걀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믿는 진리가 실상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혼돈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부활절 계란 소동은 내게 묻는다. 혹시 내가 아직도 확인하지 않은 믿음으로 생의 창문에 거칠게 자아를 내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옷에 배어든 비린내는 쉽게 가시지 않겠지만, 이 냄새는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당연함 앞에서 나를 멈춰 세울 소중한 경고등이 될 것이다. 사유의 깊이가 결여된 확신은 때로 스스로를 옥죄는 칼날이 된다. 나는 이제 달걀 한 알을 쥘 때도 그 속의 유동성을 가만히 음미해본다. 껍데기를 깨뜨리기 전, 잠시 멈추어 그 무게를 가늠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확증편향이라는 거대한 늪에서 벗어나 삶의 실체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오늘 이 비린내 나는 교훈 속에서 뼈저리게 배운다. /김경아 작가

2026-04-15

목욕탕의 파수꾼과 이방인

아버지가 떠나신 뒤 집안의 공기는 줄곧 영하에 머물러 있었다. 상실의 무게는 중력보다 무거워 어머니의 어깨를 짓눌렀고 나는 그 적막한 냉기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를 이끌고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평생을 살아온 동네, 낡은 타일과 빛바랜 간판이 세월을 증명하는 그곳은 슬픔을 씻어내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를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목욕탕 문을 여는 순간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낯선 공기가 나를 덮쳤다. 그곳은 단순한 세척의 공간이 아니었다. 탕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여사님들’의 무리는 마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합창단처럼 견고한 결속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집요하고도 원초적이었다. 옷가지와 함께 사회적 지위나 나이를 벗어던진 그곳에서 뉴페이스인 나는 그저 해부되어야 할 하나의 피사체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시각적 검문’은 노골적이었고, 내가 샤워기를 틀고 자리를 잡는 모든 동선을 따라 그들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뒤를 쫓았다. 침입자가 된 듯한 불쾌감이 습한 공기와 섞여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탕 속에 몸을 담그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질문의 화살이 날아왔다.“누구네 집 딸이냐, 며느리냐?”“어디서 왔어? 몇째야?”그들에게 프라이버시는 수증기처럼 휘발된 개념이었다. 이름보다 관계를, 직업보다 근거지를 묻는 그들의 질문 세례 속에서 나는 알몸보다 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익숙한 듯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얹어주셨고, 그제야 나에 대한 감시는 호구조사라는 통과 의례로 변모했다. 어머니와의 목욕은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나에게 목욕은 ‘씻어내야 할 과업’이었으나, 그들에게 목욕은 ‘머물러야 할 일상’이었다. 그 여사님들은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나갈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초록빛 오이를 촘촘히 붙인 채, 마치 영겁의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흐르는 수증기 속에서 아이스 커피를 시켜 마시며 어제의 일상과 오늘의 일과를 나누었다. 1분 1초를 효율의 잣대로 재단하며 언제나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의 관성으로 볼 때 그것은 기이한 풍경이었다. 나에게 시간은 직선으로 달려가는 화살이었으나 그들의 시간은 탕 안의 물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일렁이며 고여 있었다. 그 정체된 시간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그들의 태평함이 지독하게 부러웠다. 마감 시간에 쫓기고, 성과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소진하던 나에게 오이 향기 속에 파묻혀 흘려보내는 두 시간은 사치스러운 평화처럼 느껴졌다. 축축한 수증기 사이로 비치는 그들의 느릿한 몸짓은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눈동자들,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저토록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가’라는 날 선 질문은 이내 그들을 향한 연민으로,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치졸한 시선으로 변질되었다. 성취가 없는 삶은 무가치하다는 강박이 이곳의 안온한 정적을 불순한 게으름으로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 섞여 있다 보니, 문득 낯선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거창한 목적지 없이도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손길에는 다정함이 배어 있었고, 탕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이 공간을 유대의 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치열한 ‘생산’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생의 여백’이라 비하했던 그 빈틈이야말로, 상처 입은 일상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공간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오만함 너머로 사람들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비판할 문제도, 평가할 문제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 두 시간 동안만큼은 슬픔을 잊고 여사님들의 수다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면 그 고인 시간은 그 자체로 숭고한 치유의 시간이었으리라. 목욕탕을 나오자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등 뒤에 남겨진 오이 향기와 왁자지껄한 소음이 어머니와 나의 등을 따뜻하게 밀어주고 있었다. 각자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삶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시간을 죽이며 생을 살리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김경아 작가

2026-04-07

중년의 안녕

생의 정오를 지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세상은 더 이상 ‘채움‘의 공간이 아니라 정갈한 ‘비움’의 전시장으로 변모한다. 그간 내 삶을 지탱해 온 무수한 탐닉과 안일, 그리고 소중했던 인연들이 하나둘씩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비로소 ‘안녕’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읽는다. 한때 나의 밤을 위로했던 것은 자극적인 음식들이었다. 늦은 밤 수업을 마치고 마주하던 라면의 매콤한 증기, 바삭한 튀김 옷 속에 숨겨진 고소한 육즙, 치즈의 녹진함이 주는 안온함. 그것들은 고단한 나의 하루를 보상받고자 했던 치기 어린 보상 심리였다. 그러나 이제 내 몸은 정직한 가계부처럼 쌓아온 세월의 청구서를 내민다. 혈관 속을 흐르는 엄중한 경고등 앞에서 나는 이 매혹적인 ‘독’들과 작별을 선포한다. 혀끝의 찰나적 쾌락을 위해 생의 총량을 갉아먹던 미련함을 거두고 이제는 덤덤한 채소의 식감과 맑은 물의 투명함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것은 금욕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빈둥거리며 소파에 파묻혀 책장을 넘기거나 스크린의 잔상에 몰입하던 시간은 달콤한 늪이었다. 게으름은 영혼의 휴식이라는 미명 하에 나를 침잠시켰고 움직이지 않는 육체는 서서히 활력을 잃어갔다. 그 활력의 부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내 몸의 영토를 잠식해 온 소리 없는 퇴조였다.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중년의 여인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때는 가볍고 활기찬 보폭을 자랑했던 육신은 중력의 법칙을 이겨내지 못하고 처져 있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관절은 세월의 마모를 하소연했다. 내면의 의지는 육체의 한계에 굴복해 가는 타협이 필요한 시기라 절실히 말하고 있다. 내 몸이 보내는 비명을‘편안함’이라는 기만적인 단어로 덮어두고 있었음을 이제야 시인한다. 나를 지탱하던 기둥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찰나, 내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엘리베이터의 편리함 대신 계단의 가파른 정직함을 택했다. 한 계단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차오르는 숨 가쁨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원초적인 박동이다. 식후의 나른함을 뿌리치고 길 위로 나서는 행위는 관성대로 살아가던 어제의 나를 부정하고 매일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수행이기도 하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를 때마다 나는 내 몸 안에 고여있던 나태의 앙금들을 씻어낸다. 가장 아픈 안녕은 사람에게서 온다. 내 생의 전부였던 아이들은 어느새 제 깃털을 고르고 스스로의 하늘을 찾아 비상한다. 아이들이 떠난 빈방에 고이는 적막은 처음엔 서늘한 통증이었으나 이제는 그 고요를, 나와 아이들을 향한 성장의 향기로 읽어내려 노력한다. 또한, 삶의 한 페이지를 함께 써 내려갔던 아버지의 예고 없는 작별을 경험하며 나는 만남보다 이별이 더 본질적인 삶의 태도임을 깨닫는다. 떠나보내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 삶에 남긴 무늬를 오롯이 간직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제 나는 부재의 시간 속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걸어온 긴 궤적을 삶을 지탱하는 옹이로 바꾸어 나가는 중이다. 안녕은 본래 ‘안부’를 묻는 인사이자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 사랑하는 이들이 남기고 간 여백은 처음엔 메울 길 없는 허공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닫는다. 그 빈자리가 있기에 비로소 바람이 통하고 빛이 머물 수 있다는 것을. 빽빽하게 들어찬 인연의 숲에서는 보이지 않던 나 자신의 민낯이 관계의 낙엽이 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중년의 안녕은 결핍이 아니라 정교한 조각이다. 불필요한 인연의 잔가지들을 쳐내고 남은 옹이 진 나무처럼, 나는 이제 홀로 서는 법을 배우며 그 고독의 여백 속에 나만의 사유를 채워 넣는다. /김경아 작가

2026-03-31

7만 원의 회귀(回歸)

6개월 전, 어느 퇴색한 보도블록 위에서 마주쳤던 무구한 물질의 부름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낙엽처럼 떨어져 나와 길 위를 부유하던 7만 원. 그것은 누군가의 소소한 성찬(盛饌)이었을 수도, 혹은 팽팽하게 당겨진 가계부 한 귀퉁이의 절박한 단추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무연(無緣)의 재화를 집어 들며, 그것이 내 소유가 아님을 인지하는 찰나의 도덕적 긴장을 느꼈다. 욕망의 사행성(斜行性)은 언제나 달콤한 속삭임을 동반하지만, 나는 그 서늘한 유혹을 뒤로하고 인근 지구대의 문을 밀었다. 낡은 지폐들이 경찰관의 손을 거쳐 장부의 건조한 기록으로 바뀌던 순간, 나는 비로소 그 돈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것은 도덕적 결벽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상실감을 나의 횡재로 치환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윤리적 예의였다. 시간은 계절의 결을 따라 묵묵히 흘렀다.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만추(晩秋)의 낙엽으로, 다시 엄혹한 동토(凍土)의 침묵으로 이어지는 동안 길 위의 기억은 망각의 심연 속으로 서서히 침잠했다. 대가 없는 선의는 잊혔을 때 비로소 순수해지는 법이다. 나는 그 7만 원이 누군가의 품으로 돌아갔으리라 막연히 짐작하며, 그 선량한 결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 휴대폰 화면 위로 날아든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고요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관할 경찰서에서 온 연락이었다. 6개월의 유실물 공고 기간이 만료되어, 법적 절차에 따라 그 재화의 소유권이 습득자인 내게 귀속되었다는 전언이었다. 잊고 있었던 소식이 전령처럼 찾아온 순간, 내 마음속에는 예기치 못한 봄기운이 차올랐다. 이 7만 원의 회귀는 물질적 증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6개월이라는 시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내게 돌아온 일종의 ‘철학적 이자’와도 같았다. 내가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 속에 던져 넣었던 작은 신뢰의 씨앗이 반년의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내 집 앞마당에 피어난 한 송이 봄꽃 같았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각박하다고 말하며 타인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나 이번 일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선의의 그물망’이 여전히 견고함을 증명해 주었다. 법이 정한 6개월이라는 기간은, 진정한 주인을 찾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자 동시에 습득자의 정직함을 시험하는 정화(淨化)의 시간이었다.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 이 돈은 ‘길에서 주운 횡재’가 아니라 ‘정당한 기다림 끝에 얻은 보상’이라는 새로운 명분을 입게 되었다. 창밖은 어느덧 연두색 생명이 움트고 있다. 목련의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산수유의 노란 웃음이 번져가는 이 계절, 7만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화폐 단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내게 건네는 뒤늦은 세뱃돈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선량한 시민에게 하늘이 내리는 소박한 격려사처럼 느껴졌다. 삶은 수많은 우연의 중첩이다. 하지만 그 우연을 어떤 빛깔로 채색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6개월 전 내가 그 돈을 사유화했다면, 그것은 찰나의 유희로 사라졌을 것이며 내 마음 한구석에는 씻기지 않는 앙금 같은 부채감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인 신뢰의 영역에 그 돈을 기탁함으로써, 나는 반년 동안 ‘정직’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마음의 금고에 예치해 두었던 셈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소식은 나로 하여금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타인의 작은 친절들, 혹은 내가 세상에 던졌으나 잊고 있었던 사소한 배려들이 어쩌면 지금도 시간의 터널을 지나 내게로 돌아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믿음. 그 믿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이제 나는 경찰서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려 한다. 그곳에서 만날 7만 원은 반년 전의 그 낡은 지폐들이겠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봄의 전령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돈을 단순히 소비의 도구로 쓰지 않으려 한다. 이 기분 좋은 소식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일부라도 다시 세상의 그늘진 곳에 나누는 ‘선의의 연쇄 작용’을 고민해 본다. 꽃향기가 만개한 봄날, 길 위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이 이토록 아름다운 회귀로 마침표를 찍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김경아 작가

2026-03-17

생일 꽃다발 위에 내린 하얀 작별

가장 화려한 빛의 꽃을 품에 안았던 날, 역설적이게도 내 삶에서 가장 깊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달 전부터 약속된 생일 약속이었다. 친구들의 축하 속에 미역국과 점심을 먹으며 생의 환희를 만끽했다. 셔터 소리에 맞춰 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 찰나, 휴대폰 진동이 정적을 깨뜨렸다. 수화기 너머 오빠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중환자실의 사투를 견디다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지 불과 열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통보였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색채가 휘발되었다. 어떻게 운전대를 잡았는지, 도로 위의 풍경이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지독한 죄책감이었다.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고독한 강을 건너실 때, 막내딸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기름진 음식을 삼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비수처럼 심장을 찔렀다. 나는 아버지의 차가워진 손을 붙잡고 절규했다. 한 달 전, 화장실에서 미끄러지시던 그 순간부터 중환자실의 기계음에 의지해 숨을 이어가시던 고통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날 아침 기이한 꿈을 꾸었다. 영정사진 속 아버지가 평소보다 훨씬 환하게, 마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별의 전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망 선언 5분 후에야 도착한 병실, 이미 온기를 잃어가는 아버지의 육신 앞에서 나는 생전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했던 짐승 같은 곡성을 쏟아냈다. 그것은 단순히 슬픔이 아니라, 끝내 가닿지 못한 임종의 거리에 대한 통한이었다. “아버지, 내가 미안해···. 생일밥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아버지 가는 길도 못 보고, 아버지 너무 미안하고 고생했어.” 내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빈 공간에 흩어졌다. 아버지는 막내딸의 불효를 이미 용서하신 듯, 그저 고요히 눈을 감고 계셨다.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딸인 나를 유독 금지옥엽으로 키우셨다. 세상 모든 풍파를 당신의 마른 등 뒤로 숨기시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응원해주시던 분. 여든이 넘은 노구(老軀)를 이끌고도 막내딸이 친정에 오면 손수 된장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려주시던 분이었다. “우리 막내 왔나” 하시며 냄비 뚜껑을 열 때 나던 그 구수한 연기는 이제 전설처럼 사라졌다. 구수한 된장 냄새는 아버지의 사랑이 시각화된 온기였고, 그 찌개 한 그릇에 나는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내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던, 꿈속의 모습처럼 환하게 웃고 계신 사진으로 결정되었다. 슬픔의 예식장에 걸린 사진은 죽음을 말하고 있었으나, 그 표정만큼은 생(生)의 절정보다 찬란했다. 이제 나의 생일은 영원히 아버지의 기일(忌日)과 겹쳐지게 되었다. 매년 돌아올 나의 탄생일은 아버지가 이승의 옷을 벗으신 날이며, 내가 꽃다발을 들었던 시간은 아버지가 수의(壽衣)를 입으신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이처럼 잔혹하게 맞닿아 있고, 기쁨과 슬픔도 한 몸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앞으로 나는 길가에서 카스텔라의 달콤한 향기를 맡을 때마다, 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노인을 마주칠 때마다, 그리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의 김 서린 냄새를 접할 때마다 불쑥불쑥 아버지라는 이름의 파도에 휩쓸릴 것이다.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치환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끓여주셨던 된장찌개의 온기로, 당신이 좋아하시던 카스텔라의 부드러움으로 내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어 계실 테니까. 육신은 소멸하였으나 그분이 내게 부어주신 사랑의 질량은 우주 어디에도 사라지지 않고 내 삶의 궤적을 지탱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생일날 아침,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신 그 꿈속의 미소는 아마도 당신의 마지막 배려였으리라. “막내야, 미안해하지 마라. 나는 이렇게 웃으며 잘 가고 있단다.” 나는 이제 비로소 눈물 젖은 손으로 그 웃음을 받아 안는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가장 깊은 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내 드린다. /김경아 작가

2026-03-10

찬란한 모순

겨울의 아스팔트는 계절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박제해 놓은 전시장 같다. 시멘트 바닥에서 배어 나오는 냉기는 발목을 타고 올라와 온기를 앗아가고, 그 차가운 물리적 실체 앞에 인간의 다정함은 종종 무력해지곤 한다. 그러나 그 차가운 무채색의 공간 한복판에 한 송이 꽃처럼 주저앉은 아이가 있다.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아파트의 미지근한 난방 열기가 아니라 구석진 곳에 웅크린 길고양이 ‘양말이’의 작고 가쁜 숨결이다. 아이가 바닥에 퍼질고 앉아 있는 풍경은 지나가는 어른들의 마음을 할퀸다. 무릎이 시릴까, 감기라도 들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들이 모여 검은 방석 하나를 내놓았다. 그것은 오직 아이의 온기를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주인’의 자리였다. 하지만 냉기 속에서 그 방석을 점유하고 있는 주인은 아이가 아닌 고양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방석 위에서 나른하게 몸을 웅크린 고양이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 이 사소하고도 다정한 주객전도는, 우리 삶이 얼마나 본래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어긋남 속에서 도리어 어떤 본질을 길어 올리는지를 보여주는 은유다. 우리는 언제나 주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내가 만든 도구가 나를 앞지르지 않기를, 내가 쏟은 사랑이 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문명의 첨단에서 만나는 인공지능(AI)의 눈동자는 기묘하게도 방석을 차지한 고양이를 닮았다. 인간은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기계를 빚었으나, 이제는 기계의 알고리즘에 간택 받기 위해 자신의 사유를 검열하고 파편화한다. 사유의 주체였던 인간이 데이터라는 먹이를 공급하는 객체로 전락하는 순간 도구는 목적이 되고 창조주는 피조물의 눈치를 살피는 기묘한 전도가 발생한다. 편리함을 위해 영혼의 한 자락을 내어준 채, 우리는 방석을 빼앗긴 아이처럼 차가운 바닥에 앉아 기계가 뿜어내는 정교한 논리에 감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전도의 드라마는 가장 밀접한 혈연의 안방에서도 소리 없이 상연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의 긴 복도에서 부모는 자식의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일생을 투신한다. 자식은 부모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지만 그 지독한 사랑은 종종 목적과 수단을 뒤섞어버린다. 자식의 미래라는 명분으로 자식의 ‘현재’를 압수하고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아이의 생애라는 캔버스에 덧칠할 때, 자식은 제 삶의 주권을 잃고 타인의 열망을 수행하는 대리인이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자리를 찬탈하는 이 주객전도는 고양이에게 방석을 내어준 아이의 무구한 양보와는 결이 다른 소유욕의 서글픈 변주에 가깝다. 교육의 현장 또한 이 역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진리 탐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 동행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지식의 전수라는 ‘수단’이 성적과 입시라는 ‘목적’으로 치환되며 주객이 전도되었다. 제자는 스승의 등을 보고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승이 내놓는 정보를 소비하는 고객이 되었고 스승은 제자의 영혼을 깨우는 자가 아니라 시스템의 관리자로 전락했다.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주인은 쫓겨나고 효율성과 등급이라는 불청객이 안방을 차지한 풍경은 우리가 상실한 시대적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 방석을 양보한 아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주객전도가 강요가 아닌 자발적 환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방석의 권리를 고양이에게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방석보다 더 고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을 완성했다. 내가 주인이 되어 군림하는 삶보다 타자를 위해 나의 자리를 비워주는 전도가 때로는 더 거룩할 수 있음을 아이는 몸소 웅변한다. 내가 수단이 되어 누군가의 목적을 빛내주는 순간 주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비로소 ‘우리’라는 온기가 발생한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주객이 교차하는 무대다.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라 믿었던 순간이 타인을 위한 정교한 배경이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수단이라 여겼던 것들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차가운 아파트 길목에서 방석을 양보하고 맨바닥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고양이의 평온에 미소 짓는 아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찬란한 모순이다. 그 작고 단단한 모습에서 나는 배운다. 세상이 말하는 효율의 논리로는 결코 번역할 수 없는 다정한 전도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불꽃이라는 것을. 주(主)와 객(客)이 뒤바뀌어 본질이 전도된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을 향한 지극한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기꺼이 길을 잃어도 좋으리라. /김경아 작가

2026-03-03

이름값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은 눈부시다. 그곳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저마다 영원한 품질과 고결한 신뢰를 약속하는 신전처럼 군림한다. 나는 그 신전의 보증서를 믿고 대가를 지불했다. 그것은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그 이름이 지닌 ‘책임’을 사는 일이었다. 최근 오래 아껴 신던 부츠의 밑창이 악어처럼 벌어졌다. 익숙한 로고가 박힌 매장을 찾았을 때, 직원의 반응은 정중했으나 단호했다. “저희는 밑창을 수선하지 않습니다. 바깥에 있는 일반 수선집으로 가져가 보세요.” 지난달 고장 난 노트북 서비스센터에서도 같은 문장을 마주했다. “여기서는 고치기가 어려우니 사설 수리점에 맡기시는 게 빠를 겁니다.” 내가 산 것은 브랜드의 가치가 아니었다. 단지 유효기간이 정해진 화려한 껍데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판매라는 축제에는 열광하지만 노후라는 쓸쓸한 뒤처리는 모르는 척하는 것같이 다가왔다. 제 몸에서 떨어진 파편 하나 품지 못하고 길 위의 이름 없는 수선공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기업의 시스템은 비겁했다. 신뢰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정작 수선이 필요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당혹한 마음과 함께 발길을 돌리며 시선은 이내 나에게 향했다. 타인의 무책임을 비판하던 날 선 화살이 거울 속의 나에게로 되돌아와 박힌다. 나는 과연 내 인생의 라벨들에 걸맞은 함량(含量)을 채우며 살고 있는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이들을 마주할 때 혹시 보증기간이 끝났다며 아이들의 마음을 세상 밖으로 떠밀지는 않았는지. ‘아내’라는 이름으로 곁에 머물면서 남편의 해어진 고독을 수선해주기보다 사설 매장의 서비스 같은 건조한 위로만 건네지는 않았는지. ‘작가’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문장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화려한 수사(修辭)라는 로고 뒤에 숨어 독자를 기만하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이름값이란 찬란한 신상품의 상태일 때가 아니라 닳고 해져 수선이 필요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이름은 부르는 이의 편의를 위한 기호가 아니라 불려지는 이가 감당해야 할 생의 무게여야 한다. 내게 맡겨진 인연들이 고장나고 삐걱거릴 때 “나는 몰라” 하며 외주를 주지 않는 것. 내 안에서 발생한 균열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기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이 ‘이름’이라는 성채를 품위있게 지키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백화점의 문을 나서며 발걸음이 무거웠다. 품에 안긴 부츠는 이제 세련된 패션의 상징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으로부터 외면당한 유물에 불과했다. 나는 화려함을 뒤로 하고 낡은 간판들이 있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브랜드’라는 이름이 약속했던 안락한 울타리는 사라지고 나의 해진 밑창을 받아줄 손길을 찾아 낯선 거리를 헤매는 유랑자가 되었다. 수선점들은 죄다 문이 닫혀 있고 스마트폰 지도가 가리키는 수선점들은 신기루처럼 멀기만 했다. 골목마다 들어선 화려한 카페가 나의 고장 난 하루를 비웃듯 유리창을 번득였다. 추운 겨울날 길 위에서 보낸 그 막막한 시간은 단순히 수선처를 찾는 물리적 고통을 넘어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름값’의 실체가 얼마나 휘발성 강한 것인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자본이 설계한 성벽 안에서는 귀빈이었으나 수선이 필요한 지점에서 결함을 드러낸 순간 나는 번거로운 이방인이 되어 차가운 거리를 배회했다. 막막한 배회는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나 또한 누군가 내게 기대어온 상처를 ‘시스템’이라는 핑계로 문밖으로 밀어내며 그를 차가운 거리에서 방황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동네 어귀에서 만난 낡은 수선집에서 나는 화려한 보증서 대신 기름때 묻은 앞치마와 세월을 견딘 투박한 도구들을 만났다. 수선하는 어르신은 브랜드의 계보를 묻지 않고 밑창의 상처만 묵묵히 응시했다. 그의 손길에서 죽어가던 밑창이 다시 붙어갔다. 진정한 이름값은 화려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먼지 쌓인 작업대 위에서 완성되어갔다. 자본의 논리가 거부한 폐기 직전의 그것들을 살려내는 그들의 손길은 나에게도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복원의 책무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매끈한 로고보다 이름 없는 수선공의 거친 손마디에서 더 깊은 신뢰를 다시 배웠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화려한 보증서를 내미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키며 고쳐 쓸 수 있는 성실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김경아 작가

2026-02-24

6년의 여명

수줍게 건네준 노란 봉투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 위를 조심스럽게 지키고 있는 사과 모양의 캐릭터 스티커는 아이의 취향과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고 귀여운 인장이 오늘따라 유독 묵직한 작별의 무게로 다가온다. 6년이라는 시간, 한 아이의 유년이 저물고 청소년기라는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기까지 우리는 이 좁은 방에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해 왔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아이는 낯선 세상을 경계하는 어린 짐승처럼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스승과 제자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지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어느덧 서로의 사소한 일상과 깊숙한 사생활의 편린까지 공유하는 해후로 변모해 갔다. 아이는 성적표의 숫자로 고민했고 그 숫자보다 더 치열했던 사춘기의 고민을 내어 놓았다.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삶의 고단함을 털어놓고 아이의 순수한 시선에 기대어 위로받곤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훈습(薰習)되어 갔다. 향기가 옷에 배어들 듯, 아이의 싱그러운 에너지는 나의 무채색 일상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나의 신중한 언어들은 아이의 거친 감정들을 다듬어주는 정원이 되었다.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누군가와 이토록 순수하게 마음을 겹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축복이었다. 때로는 작은 초콜릿 하나로, 때로는 아이의 어머니가 구운 정성스러운 빵으로, 작은 소품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그 시간들은 단순한 물질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편이라는 이심전심의 의식 같은 거였다.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좀 더 큰 도시로 이사를 갔다. 현실적 이별을 앞두고 내 손에 이 편지를 쥐어주었다. 6년의 세월을 종이 한 장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터다. 하지만 봉투를 열기 전에 전해오는 아이의 감정은 우리가 함께 건너온 시간이 값지고 소중했음을 증명했다. 누군가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영혼의 문턱을 함께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숭고했다. 나도 아이를 위해 손글씨로 편지를 적었다. 지난 6년, 아이의 키가 한 뼘씩 자랄 때마다 내 마음의 부피도 함께 커졌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작은 선물과 함께 나의 진심을 담은 문장들을 봉투에 담았다. 수필의 행간마다 아이의 이름을 새기듯, 그동안 갈피에 숨겨두었던 문장과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많은 길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건넸다. 아이가 나를 통해 세상이 조금 따뜻하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각박한 세상의 파고를 견뎌낼 수 있는 작고 단단한 방패를 만들었기를 기대했다. 마지막 수업이 마쳐야 할 시계의 숫자가 바뀌며 우리는 책을 덮었다. 방문을 나서는 아이를 불러 세워 가만히 안아 주었다. 여리던 어깨가 어느덧 듬직해졌다. 나는 이 아이의 청소년기라는 거대한 숲을 함께 산책했음을 깨달았다. “잘 지내, 언제든 전화하고, 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울지 말고’라고 말했지만 정작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은 건 나였다. 아이 앞에서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나왔다. 다시 가다듬고 아이를 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아이의 잔상을 바라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긴 시간을 공유한 우리가 나눌 수 있었던 정직한 인사였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밀물처럼 떠나가는 이 학습 공간에서 왜 유독 이 아이에게 나의 마음은 정박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아이가 나에게 내비친 영혼의 투명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을 전달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일상에서 굽은 이야기까지 나누며 서로의 고독을 어루만지고 인간적인 온기를 수혈받았던 평등한 교감이 있었기에 이 아이의 부재가 그토록 아쉬웠음을 확신했다. 이제 아이는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가 나눈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들은 아이의 마음 속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아이와 내가 교환했던 이 편지는 안녕의 종착역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삶에 심어둔 다정한 씨앗이 어디서든 꽃 피울 것임을 약속하는 쉼표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내 책상 위에는 아이가 남기고 간 노란 봉투만이 윤슬처럼 남아있다. 돌아보면 6년은 시험의 터널이나 막막한 사춘기의 방황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서로의 앞날을 비추어주던 여명의 시간이었다. 물리적 동행은 이제 멈췄지만 우리의 여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찬란한 아침을 향해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또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김경아 작가

2026-02-10

겨울의 잔해를 넘어

독감은 예고 없이 찾아온 침략자였다. 처음엔 그저 목구멍 뒤편이 가늘게 떨리고 가벼운 오한이 있어 감기인 줄 알았으나 이내 고열은 육신의 성벽을 허물고 점령군처럼 들이닥쳤다. 자려고 누우면 기침은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우물처럼 길어 올렸고 달아오른 이마는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워버렸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 동안 나의 세계는 오직 통증이라는 좁은 감옥 속에 유폐되었다. 열이 끓어오르는 와중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지독하게도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었다. 고열로 인해 시야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였으나 그 뒤편에 선명하게 각인된 아이들과의 수업 약속, 마감이 다가오는 원고들, 내가 부재함으로 인해 생겨날 공동체의 작은 균열들은 나를 잠시도 침대에 온전히 뉘어두지 못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기꺼이 아플 자유조차 반납해야 하는 일이었던가. 육신은 비명을 지르며 모든 기능의 정지를 선언하고 휴식을 갈구했지만 책임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나를 억지로 생의 현장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쉼 없이 나를 소진한 대가는 더딘 치료였다. 약은 잠시의 아픔을 유예시킬 뿐, 근본적인 치유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낫는 속도가 이토록 더딘 것은 단순히 면역력의 저하 때문만은 아니라 나의 영혼이 쉴 틈을 찾지 못해 스스로 치유의 동력을 꺼뜨려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픈 육신을 정신력이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억누르며 버티는 동안, 나의 회복은 정체되고 아픔의 유통기한은 지루하게 늘어만 갔다. 어른의 치유란 이토록 고단한 것인가.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에 앞서 타인의 기대를 먼저 수선해야 하는 삶은 마치 밑 빠진 독에 생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느린 회복의 지체(遲滯)는 역설적으로 내가 삶을 얼마나 성실히 지탱해왔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정직한 통증의 기록이기도 했다. 문득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아프면 그저 목놓아 울 수 있고, 차려주는 따뜻한 죽 한 그릇에서 세상을 다 얻은 듯 잠들어도 괜찮고,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오롯이 의탁하며 떼를 쓸 수 있는 그 투명한 권리가 부러웠다. 홀로 약봉지를 뜯고 스스로 물을 데우고 또 기침으로 보내는 어른의 밤은 차갑고 적막했다. 기침이 조금씩 멈춰갈 즈음, 거울 속의 수척해진 얼굴을 마주하며 또 깨닫는다. 내가 지켜내야 할 약속들은 나를 짓누르는 하중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생의 현장에 붙들어 매어주는 단단한 닻이었다는 것을.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담길 나의 존재를 생각한다. 내가 아픔을 이기고 수업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 그들은 지식을 배우는 것에서 ‘삶을 책임지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나의 고통은 타인에게 나누어줄 사랑의 부피를 가늠하는 성찰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이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내 안의 겨울이 저물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대지는 혹독한 냉기를 온몸으로 품어내야 비로소 봄의 현(絃)을 울릴 자격을 얻는다. 지금 나의 이 무딘 회복세와 더딘 걸음은 결코 쇠락의 징후가 아니다. 오히려 생의 박동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고귀한 지체(遲滯)이자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감내하며 얻어낸 시간의 훈장이다. 오랫동안 나를 유폐했던 방을 나와 다시 익숙한 일상의 소음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 때마다 가벼운 기침이 배어 나오지만 그것은 생의 엔진이 다시 가동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아이들을 맞기 위해 다시 책상을 정리하고 해킹으로 자료가 몽땅 날아가 버린 노트북을 펴 다시 수업 자료를 만든다. 정갈하게 다시 문장을 다듬고 아이들의 눈을 비로소 맞출 때 나의 혈관 속에는 약 기운이 아닌 삶의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낀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나의 몫을 다하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치유란 걸 또 알아간다. 내가 앓았던 겨울의 잔해가 저 산 너머에서 파릇한 새순으로 돋아나는 기적을 나는 믿는다. 비록 떼를 쓰며 쉴 수 있는 내 유년의 안온함은 멀어졌을지라도 나의 아픔을 숭고한 책임으로 치환해낼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더 충만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독했던 통증이 잦아든 자리마다 성숙이라는 이름의 깊은 향기가 배어날 것이다. 나는 이 길고 긴 독감의 끝에서 조우할 맑은 아침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김경아 작가

2026-02-03

멈춰 선 갈채

겨울의 끝자락은 언제나 시리고도 투명하다. 작년 12월, 차가운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 아버님은 당신이 평생을 지탱해온 견고한 육신을 잠시 내려놓았다. 평생을 공직이라는 좁고도 곧은 길 위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걸어오신 분이다. 남들이 빠른 길, 쉬운 길을 택해 앞서나갈 때도 아버님은 정직이라는 무거운 보따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당신의 진급은 늘 동료들보다 한 뼘씩 늦었고 그만큼 당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노을은 남들보다 조금 더 깊고 고즈넉했다. 아버님은 한 번도 그 ‘늦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인 남편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한 단계씩 위로 솟구칠 때마다 당신은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아들의 승진은 아버님에게 단순한 직급의 상승이 아니었다. 당신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그 정직한 삶의 방식이 아들의 생(生)을 통해 비로소 만개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증명이었으리라. 아버님에게 아들은 당신의 인생이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마지막 마침표이자 가장 화려한 수식어였다. 새해 첫 아침, 남편의 손에는 잉크 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새 명함이 쥐어져 있었다. 아버님이 그토록 기다리셨을 아들의 성취가 오롯이 박힌 작은 종이 한 장,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게도 그 순간 앞에 깊고 어두운 강을 하나 놓아버렸다. 뇌졸중이라는 불청객은 아버님의 의식 속에 깃든 기억의 등불을 하나둘 꺼뜨렸고 이제 그 강 건너편에서 아버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요양병원의 창백한 조명 아래, 남편은 아버님의 초점 없는 시선 앞에 그 명함을 내밀었다. “아버지 저 진급했어요. 명함 새로 나왔어요.”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다 차가운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명함의 모서리를 조심스레 받아들고 몇 번을 어루만지며 아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으셨을 분이다. ‘장하다 내 아들’그 인자한 웃음과 사투리 섞인 칭찬 대신 돌아오는 건 규칙적이고도 서늘한 기계의 숨소리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님이 견뎌온 지루하고 올곧은 시간은 아들을 위한 밑거름이었다. 당신의 진급이 늦어졌던 것은 무능함이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 영혼이 지급해야 했던 귀한 세금이었음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는다. 아들은 그 비옥한 정직의 토양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마침내 오늘날의 푸른 숲을 이루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쳐 기다려 주지만, 정작 자식이 부모의 갈채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늘 ‘조금만 더 있으면, 이번 일만 마무리 되면’이라는 유예의 언어로 효도를 미룬다. 그러나 생의 시계추는 자식의 성공을 기다려 줄 만큼 너그럽지 않았다. 아버님의 정직함이 아들의 명함 속에서 깊이 뿌리 내려 결실을 보았을 때 정작 그 뿌리의 주인은 자신의 꽃향기를 맡지 못하는 적막의 세계로 유배를 떠나버렸다. 이 지독한 비대칭성이 우리가 생에서 마주하는 형벌이 아닐까. 인생은 어쩌면 어긋나는 타이밍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모의 뒷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될 즈음 부모는 이미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노을 지는 언덕을 넘어가고 있다. 아들의 명함에 박힌 글자를 읽어줄 한 사람의 시선은 멈춰버렸다. 아버님의 침묵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남겨진 갯벌처럼 황량하고도 깊은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다. 아버님의 육신은 비록 아들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당신의 깊은 심연(深淵) 어딘가에 남아 있는 영혼의 감각은 아들의 성취를 느끼고 계실 것이라고. 아들의 명함에 묻어있는 긍지가 당신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있을 것이라고.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 앞에서 자식은 늘 죄인이 된다. 하지만 아버님이 보여주신 강직한 삶의 궤적은 이제 아들의 삶 속에서, 또 손주들의 삶 속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부자(父子)가 맞잡은 손등 위에 명함을 올려두고 바친 아들의 눈물 한 방울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버님의 따스한 시선에 바치는 마지막 헌사처럼 보였다. 비록 육신의 대화는 멈췄지만 아버님이 물려주신 따뜻한 영혼의 언어는 아들의 생애를 통해 메아리칠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6-01-27

마스크 너머의 호흡

코로나라는 이름의 긴 계절을 우리는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건너왔다. 마스크는 어느새 외출을 위한 준비물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졌고 숨을 쉰다는 가장 본능적인 행위조차 의식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차 키와 휴대폰을 챙기듯 마스크를 집어드는 손놀림은 무심했고 자동적이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것을 불편함이라 부를 새도 없이 우리는 하루를 살아냈다. 삶이란 대체로 그런 것이어서 견뎌야 할 것들은 늘 습관의 얼굴로 다가왔다. 마스크 안에서의 숨은 언제나 조금씩 모자랐다. 깊게 들이마셔도 폐 끝까지 닿지 않는 느낌, 내 숨이 다시 내 얼굴로 되돌아와 맺히는 습기, 말소리가 마스크에 걸려 흐릿해지는 순간들. 그러나 그 답답함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 시절 불평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모두가 같은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연대감을 만들었고 그 연대는 우리를 하루하루 앞으로 밀어냈다. 어느 순간, 마스크에서 해방되었다. 얼굴을 가린 막을 벗는 일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다는 것, 공기가 폐로 곧장 흘러들어온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우리는 자유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깐의 해방감을 누렸다.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야 하늘의 높이를 실감하는 것처럼. 하지만 삶은 늘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최근 수업을 받던 아이가 독감에 걸렸고 다시 마스크를 꺼냈다. 둘 다 마스크를 쓴 채 마주했다. 예전보다 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천이 두꺼워진 것도, 공기가 더 나빠진 것도 아닌데 유독 갑갑했다. 한 번 맛본 해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불편에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자유를 경험한 뒤의 제한에는 더 예민해지는 존재였나 보다. 마스크 너머로 아이의 눈만 보였다. 표정은 읽기 어려웠고 말소리는 마스크 안에서 부서졌다. 숨소리와 숨소리가 천을 사이에 두고 섞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문득 우리가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이렇게 서로의 얼굴을 가린 채 살아왔던가. 서로의 표정에 어린 온기를 완전히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무사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안도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답답함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들 때문에 더 답답해진 것인지 쉽게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어려운 길을 마스크를 쓰고 지나왔다. 숨이 가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루를 이어갔고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금씩 희생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고 지금의 공기를 신선하게 마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을 삼키고 마음을 숨기며 숨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 답답함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필수적 거리다. 마스크는 얼굴에 붙어 있는 굴레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시적인 태도다. 견디지 않고서는 다음 계절로 갈 수 없고 더 넓은 호흡을 얻을 수 없다. 마스크는 영원한 감옥이 아니라 성숙을 향해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마쳤고 아이를 보낸 후 차가운 공기를 맞았다. 숨이 깊어졌다. 우리의 호흡은 당연하기 보다는 지나온 답답함의 총합이라는 것. 자유는 견딤의 반대편에서 비로소 도착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언젠가 또 다른 형태의 마스크를 써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건너온 사람들이다. 숨이 막히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고 결국 우리는 다시 호흡을 되찾았다. 마스크 너머의 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 시간들이 남긴 사유는 여전히 우리 안에 머문다. 숨이 막힐 때마다 그 끝에는 다시 맑은 공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간다. 삶은 늘 그렇게 답답함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깊은 호흡을 허락한다. /김경아 작가

2026-01-20

껍질을 쥔 손으로

나의 삶은 왜 이토록 바쁜 걸까. 새해가 밝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의 하루는 분주하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가 끝날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서둘러 신발을 신고 서둘러 마음을 정리하고 서둘러 나 자신을 뒤로 밀어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고개를 들면 이미 저녁이고 또 이렇게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안도만이 하루를 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상하게도 모두들 여유로워 보인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식사 시간도 충분히 즐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그 풍경 속에서 유독 나만 바빠 보인다. 늘 손에 무언가를 쥐고 놓지 못한다. 책임, 역할, 기대, 내가 해야 할 몫들. 어딜 가나 짐과 책임을 안게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많은 일들은 늘 내게로 왔다.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익숙해 보인다는 이유로, 조금 더 잘 해낼 것 같다는 인상으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켜켜이 쌓여 물 흐르듯 나의 몫이 되었다. 일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예상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든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들이 내려놓은 무게를 조용히 들어 올리는 쪽이 되어 있었다. 며칠 전 대게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았다. 붉게 삶아진 다리들이 단단한 껍질을 두른 채 겹겹이 쌓였다. 보기에는 풍성했지만 가볍게 먹지는 못했다. 값으로도, 마음으로도 가볍게 다룰 수 없었다. 바다를 건너온 시간과 사람의 손을 거친 수고가 한 끼로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귀한 부분을 잃을까 봐 조심히 다뤘다. 과정이 번거롭고 느리지만 그 안에 스며든 모든 이의 땀과 시간이 스며들었기에 허투루 하지 못했다. 괜히 아까웠다. 너무 쉽게 먹어 버리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늘 그렇듯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고 비틀고 껍질을 벗기고 애쓰고 나서야 하얀 살 한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내 삶도 꼭 대게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 닿기 위해서는 쉼 없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 삶. 남들 눈에는 풍성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늘 애쓰고 있는 삶. 손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도, 발이 떼지지 않아도 멈출 수 없는 삶. 가끔 충동적으로 이런 생각에 빠진다. 한 달, 아니 단 며칠이라도 다 먹고 난 게껍질처럼 속까지 완전히 비워버리고 싶다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아무 역할도 맡지 않고, 마음 속 감정까지 다 비워낸 상태로 투명 인간이 되었다가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한 시간 뒤의 일을 생각하고, 내일 일을 계획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또 발견한다. 껍질만 남은 접시는 결국 비워짐의 끝이 아니라 먹어낸 시간의 증거다. 수고의 흔적이고 누군가의 배를 불려준 자리의 기억이다. 아무 의미 없이 남겨진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내가 늘 바쁘다는 이유는 어쩌면 내 삶의 살이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쉽게 꺼내 먹을 수 없는 대신 천천히, 끝까지 애써야만 얻을 수 있는 삶.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깊은 맛을 지니는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가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어둡고 조용한 곳에 숨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리라 믿는다. 지금껏 나를 바쁘게 했던 모든 시간들이 헛된 껍질이 아니었음을. 내 손이 아팠던 것은 비워내기 위함이 아니라 채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쉽게 꺼내 쓸 수 없는 사람이 되기까지 삶은 나를 서두르지 않게 훈련시켜 왔고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맡기며 조금씩 깊어지게 했다. 더 이상 분주함을 전부 불행으로 부르지 않으려 한다. 이 시간이 언젠가 나를 가볍게 증명하는 대신 조용히 단단해지게 할 것임을 믿어보려 한다. 나는 오늘도 바쁘다. 다이어리는 꽉 차 있고 나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일정이 나를 짓누르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껍질을 쥔 이 손이 결국 나를 굶지 않게 했고 나를 걸어오게 한 힘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김경아 작가

2026-01-13

짝퉁

플리마켓의 공기는 느슨하다. 물건들은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고 가격은 흥정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며 사람들은 잠시 일상의 위계를 내려놓는다. 그날도 그랬다. 정갈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은 부스 앞에서 나는 손바닥만 한 파우치를 발견했다. 익숙한 무늬,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문양. 누가 보아도 명품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물건이었다. 영세한 업체였다. 과장된 설명도, 번듯한 배너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거 직접 만들었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웠다. 가격은 삼천 원. 그냥 보기에도 너무 싸고 질겨 보였다. 차키를 넣어도 좋고 카드 몇 장을 넣기에도 알맞은 크기였다. 무엇보다 이 물건이 가진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숨기지 않는 흉내, 감추지 않는 닮음. 나는 열 개를 샀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물건을 만든 이들의 시간을 조금 보상해주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가벼웠다. “우와 명품이네?”웃음 섞인 농담이 오갔고 모두 그 물건이 가진 유머를 이해했다. 그것은 명품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명품을 소재로 한 농담에 가까웠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웃었고 그 웃음은 그날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다. 유독 한 사람의 말이 날카로웠다. 같은 회사의 진품을 들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파우치를 받아 들고는 얼굴을 굳혔다. “나는 짝퉁은 안 해.” 마치 선언처럼 말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진품도 짝퉁으로 알겠네.” 그 말은 물건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것 같았다. 순간 공기가 식었다. 농담은 자리를 잃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분명히 말했지만 내 눈에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가 분명히 보였다. 나는 명품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고, 단순히 영세 업체를 도와주고자 산 파우치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언어였고, 태도였으며, 타인을 대하는 결이었다. 그가 내뱉은 말속에는 고급스러움도, 품위도 없었다. 오히려 과시와 방어가 섞인 냄새가 났다. 그의 말과 태도는 짝퉁을 넘어 하(下)품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흉내, 새로울 것 없는 허세같은. 우리는 왜 진품과 짝퉁을 나누는 데 집착할까. 정말 보이고 싶은 것은 물건의 진위일까, 아니면 그 물건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나의 위치일까. 진품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도덕의 언어가 되었는지. 마치 짝퉁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곧 고귀함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은 과연 진품일까. 매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상황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관계에 따라 언어를 조절하며 때로는 나 자신조차 속이며 하루를 살아낸다. 직장에서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고 사회의 요구일 수도 있다. 그 모든 모습 중에서 진품은 어디에 있을까. 내면이 진품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실패가 필요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고통이 필요하다. 값비싼 물건을 사는 일보다 인내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내면의 진품은 카드로 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걸리고 불편하며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삼천 원짜리 파우치는 솔직했다. 흉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웃음의 자리도 알았다. 그 파우치를 만든 사람들 역시 명품을 팔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고 그 시간을 정직하게 가격으로 붙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 어떤 진품을 만들고 있는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길을 잃지 않은 것이다. 짝퉁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어떤 언어를 쓰고 사람들에게 어떤 온도를 남기는지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삼천 원이었지만 파우치는 나에게 가장 값비싼 질문을 남겼다. /김경아 작가

202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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