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풍경이 있다.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에 적힌 결심, 체중계 앞에서의 고요한 다짐, 그리고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이라고 외치며 먹는 피자 한 조각, 나의 다이어트는 매년 새해의 단골 레퍼토리다. 이 다짐은 마치 악보 위의 도돌이표처럼 늘 같은 지점으로 돌아간다.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이 리듬 속에서 나는 올해도 다시 한 번 다이어트를 새해 목표로 삼아 본다. 스스로에게 체면을 건다. 다이어트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행위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새롭게 정돈하는 과정이고 불필요한 일정 부분을 줄여 건강을 되찾는 일이니까 성공할 수 있다라고 자신에게 체면을 건다. 그러나 매번 도돌이표를 찍는 음악처럼 같은 지점으로 돌아간다. 처음엔 열정적으로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도 빠지지 않고 하지만 어느새 “오늘 하루쯤은 괜찮겠지”라는 나른한 핑계가 나를 휘감는다. 결국 또다시 목표에서 멀어진 나를 발견하며 자책하곤 한다. 음악에서의 도돌이표는 단순히 끝없는 반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돌아가 더 풍성한 연주를 이어가는 기회를 준다. 새해 다짐한 다이어트도 좀 더 성숙한 방식으로 이전보다 조금 더 꾸준한 노력으로 나를 다듬어 가고 나의 건강과 더불어 일상이 더 풍부해지길 바란다. 새해 목표를 세우며 나의 작은 변화를 떠올린다. 화려한 계획 대신 나만의 소소한 도돌이표를 그려 나가는 것이다. 매일 조금 더 걷고, 꾸준히 물도 마시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공복 시간을 더 늘려가며 소소한 습관이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는 나만의 악보들을 그려가는 것이다. 어쩌면 도돌이표 같은 다이어트 결심은 실패가 아니라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나침반일지도 모른다. 올해도 나는 체중계 위에서 숫자에 연연하기보다는 매일의 작은 성취를 기록하며 내 몸과 마음을 이해해 가는 여행을 떠나려 한다. 도돌이표를 찍는 음악이 결국 아름다운 멜로디를 완성하듯, 나의 반복되는 다짐도 올해는 나만의 리듬을 완성해 가리라. 완벽한 그림을 그리며 시작해 보지만 늘 익숙한 현실의 무게에 눌려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시작은 화려하지만 결국 한 해의 끝자락에선 같은 자리로 돌아와‘다시 시작해야지’라는 다짐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실패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보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리듬이 또 처음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도돌이표가 반복을 의미하듯 저마다의 다짐은 우리 삶의 연습곡 같은 것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며 또다시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성장하다 보면 우리 삶은 한 편의 소나타가 완성되어 가지 않을까. 김경아 작가 비단 다이어트뿐일까. 우리의 삶도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악보같다. 한 번 지나온 구간을 다시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같은 멜로디가 끊임없이 이어질 때도 있는 것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돌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돌아갈지라도 그 안에서 다시 호흡하고 숨을 불어 넣고 새로운 마디를 찾아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멜로디가 익숙하다고 누가 시시하다고 말할 것인가. 되풀이된다고 누가 그 가치를 폄하할 것인가. 도돌이표는 끝이 아니라 연주의 일부분이다.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가 결심한다. 멈추지 않고 나의 다이어트를 이어갈 것이다. 내 삶의 연주를 이어갈 것이다. 결국 그 열심이 모여 나만의 인생곡이 완성해 가기 때문이리라.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다. 느슨해지거나 다시 풀려도 괜찮다. 돌아가더라도 또 다시 매듭을 묶고 한 걸음 더 내딛으면 된다. 도돌이표가 있는 삶,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무한 반복 속에서 또 다음 마디를 연주할 준비를 한다. 내 삶의 선율은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김경아 작가
2025-01-13
먼지를 뒤집어쓴 덮개를 걷는다. 헌책이 와르르 무너진다. 읽고는 쟁여놓은 책들이다. 해묵은 것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라면 상자에 책을 담았다. 네 상자 째 들고 나갔을 때, 마침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가 오고 있었다. 키가 자그마한 할아버지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하루는 밀짚모자를 쓰고 또 하루는 꽃이 달린 여자 모자를 썼다. 모자가 자주 바뀌어서 동네 사람들은 모자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책 더미를 보며 잇몸을 가득 드러냈다. 오늘은 횡재수가 들었다며 수레에 실린 짐들을 밀어내고 빈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거들려 하자 할아버지는 지저분해진다며 만류했다. 마지막 상자를 들고 나가자 할아버지가 상자 밑에 깔린 신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새댁, 참기름 짰어? 신문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네” 참기름? 그럴 리가 없었다. 고소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엄마는 비싼 참기름은 아들에게, 싼 들기름은 딸인 나에게 주었다. 마음이 바뀌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편애는 눈에 훤히 보였다. 어쩌다 내가 상을 받아 와도 ‘우리 아들이 받아야 하는데’하며 속을 드러냈다. 내 아이가 전교 1등을 해도 ‘친손주가 잘해야 하는데’ 하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쏟아냈다. 엄마의 지갑 속에는 오빠네 가족들의 사진만 환하게 웃고 있다. 오빠에겐 늘 새 밥에 금방 한 반찬을 차려주지만 내가 가면 ‘어제 먹던 돈가스 있는데 데워 먹을래’ 하며 식어빠진 말을 던진다. 부리나케 들어와 싱크대 문을 열었다. 가지런히 놓인 두 개의 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병뚜껑을 여니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웃음이 실실 났다. 엄마의 실수가 고소해서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았다. 실수일까, 진심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갑자기 참기름이 먹고 싶었다. 양푼에 밥통에 있는 밥을 모두 퍼 담았다. 열무를 꺼내어 넣고 김치도 잘게 썰고 계란 프라이도 부치고 김 가루를 뿌렸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었다. 꼬신내가 숲의 향기처럼 기분 좋게 내 몸에 먼저 닿았다. 그릇을 덮고 수저를 두 개 챙겨 재활용품 수집장으로 내려갔다. 김경아 작가 할아버지는 만선이 된 리어카를 끈으로 묶고 있었다. 할아버지 좀 쉬었다 일하라고 엄마가 준 참기름으로 밥을 비벼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이내 묶었던 끈을 풀고는 신문지를 꺼냈다. 겹겹이 포개어 자리를 두 개 만들고 손바닥으로 탁탁 치니 어느새 평평해졌다. 함께 밥을 먹긴 처음이었다. 나는 양 볼이 미어터지도록 밥을 밀어 넣으며 아들만 챙기는 엄마에게 켜켜이 쌓인 감정들을 꺼내 놓았다. 구석구석 묵은 감정들이 하나씩 실체를 드러냈다. 당신도 어머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할아버지는 여자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했다. 모(母)는 어미고 자(子)는 아들이므로 모자를 쓰면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참기름이면 어떻고 들기름이면 또 어떤가. 손수 짜서 보내주는 엄마가 있는 새댁이 부럽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숟가락질만 했다. 설움도 서운함도 함께 담아 비벼 먹는데 갑자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나는 몸을 돌렸다. 눈물이 났다. 엄마가 원하는 ‘착한 딸’로 살아온 지난 감정들이 빛바랜 스냅 사진 속에 들어 있는 끝없는 이야기처럼 불쑥 올라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반복될 감정의 멍에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 비워내고 지친 마음이 들어가 쉴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늘 참기름 실컷 먹었으니 이제 앙금은 리어카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려놓아요. 고물상에 가서 폐지도 팔고 새댁 묵은 감정까지 팔고 오지요.”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켰다. 내게 환한 웃음을 보이고는 다시 리어카를 끌었다. 내 마음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지만 내 묵은 감정까지 실은 할아버지의 리어카는 무거워보였다. 할아버지의 리어카가 보이지 않고서야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김경아 작가
202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