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불빛이 거리를 덮고 연말이라는 단어가 달력 위에 눌러앉을 즈음이면 사람들은 으레 설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계절의 변화가 무심해진다. 성탄이 와도 마음은 조용하고 연말이 되어도 가슴이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 축제는 여전히 반복되지만 감흥은 해마다 한 겹씩 옅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기쁨에 둔감해진 것이 아니라 기쁨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 해가 이렇게 빨랐던가. 새해라는 말이 입에 붙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또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시간은 분명 같은 속도로 흘렀을 텐데, 체감은 해마다 더 가팔라진다. 빠르다는 감각은 결국 충만함의 다른 이름일까. 아니면 붙잡지 못한 날들에 대한 아쉬움일까. 그 질문 앞에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또 연말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한 해는 언제나 ‘완성’아니라 ‘과정’으로 존재했다. 시작할 때부터 계획했던 그림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삶은 늘 예고 없이 방향을 틀고 우리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 앞에서 임시방편의 선택을 내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쌓인다. 그 하루들이 모여 한 해가 되지만 그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마지막에 허락된다.
종종 한 해를 퍼즐에 비유해 본다. 수많은 조각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하고 흩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퍼즐의 완성된 그림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조각이 중요한지, 어떤 조각이 빠져도 되는지 처음에는 가늠할 수 없다. 때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이 의외의 자리에서 맞물리고 애써 붙잡고 있던 조각은 끝내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남기도 한다.
그 퍼즐을 맞추는 동안 수없이 망설이고 실수하고 떼어낸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 저 결정이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그러나 퍼즐은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조각을 내밀 뿐이다. 우리는 그 조각을 받아들고 또다시 하루하루를 맞추며 이어가다 보면 퍼즐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그 조각들은 무작위로 흩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해의 끝에 다다라서야 조금씩 알아 간다. 기쁨이라 믿었던 순간도, 실패라 여겼던 장면도 모두는 한 그림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였다는 것을. ‘나’라는 자아를 만들기 위해 이 일이 필요했구나. 시간이 지나가야 했구나를 조금씩 깨닫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말이 되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삶이 더 복잡한 결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환희보다는 깊은 이해가 필요해진 나이. 번쩍이는 감정 대신 오래 남는 의미를 찾게 된 시간. 그래서 더 이상 크게 들뜨지 않고 잠잠히 돌아본다. 한 해 동안 내 손을 스쳐간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퍼즐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완성되기를 꿈꾼다. 모든 조각이 빛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전체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림이기를 바란다. 상처 난 조각은 그 나름의 결을 지니고 닳아버린 조각은 그 시간만큼의 깊이를 품은 채 제자리를 찾기를 소망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내년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퍼즐 상자를 받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무 그림도 알 수 없는 퍼즐을 다시 조각을 맞추며 헤매고, 의심하고, 때로는 웃고 울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의 끝에서도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지난 시간을 바라볼 수 있기를 꿈꾼다.
연말은 평가의 시간이 아니라 이해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 어떤 조각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헤아려 본다. 하나하나를 헤아려 보면 자신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아무도 대신 맞춰주지 않은 퍼즐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완성해온 자신에게.
성탄의 불빛이, 연말의 소음이 크게 와닿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이미 많은 조각을 품고 살아왔기에. 한 해의 끝에서 퍼즐을 내려다보며 더 환하게 웃는 얼굴의 퍼즐을 향해 다시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한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