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용일 포항문화원장포항지역의 연오랑세오녀(延烏郞細烏女) 일월신화(日月神話)는 단군신화를 수록하여 유명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어 일찍부터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최남선이 단군신화는 한국문화 일체의 종자라고 했듯이 연오랑세오녀 신화는 포항문화 일체의 종자이며 원형질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연오랑세오녀 설화`라고 일컬어 온 것을 과거 논문에서 `연오랑세오녀 신화`로 명명했다.연오랑세오녀 신화는 157년(신라 8대 아달라왕 4년)에 탄생되었다. 신화의 중요 내용은, 「동해 바닷가의 연오랑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일본에 건너가 변읍의 왕과 왕비가 되었고, 그 이후 신라가 일월의 빛을 잃게 되어 일월의 정(精)인 연오라오가 세오녀를 환국토록 하였으나 연오가 “일본에 오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므로 돌아갈 수 없고, 대신에 아내 세오녀가 짠 비단을 가져가서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요.”라 하며 비단을 주자 이를 제물로 하여 제사를 지냈더니 일월이 전과 같이 되었으며, 그 비단을 국보로 삼아 귀비고에 간직하고, 제사지낸 곳을 영일(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한 것이다.새로운 사료 `신라 아달라왕 때 영(연)오랑세오녀가 세계동(世界洞)의 당평(塘坪) 위에 집을 지어 살았으나 지금은 빈터만 남았다.`는 중대한 기록을 통해, 1850년의 연륜을 간직해온 연오랑세오녀 일월신화의 신성한 베일을 한 겹 벗길 수 있게 되었다.필자는 이 두 사료와 다른 사료들을 바탕으로 포항문화의 정체성을 브랜드로 상징화하여 연오랑세오녀 일월신화와 일월사상의 창조적 가치를 재창출하려고 노력했다.그 결과 첫째, 영일만 남남동쪽의 배산임수 지역에 연(영)오(延烏, 迎烏) 세오(細烏), 근기(勤耆), 근오지(斤烏支), 영(연)일(迎日,延日), 도기야(都祈野), 일월지(日月池), 오천(烏川), 세계(世界), 부산(夫山,扶桑), 일광(日光), 광명(光明), 중명(中明) 등 태양과 달과 빛과 관련된 수많은 인명과 지명이 집중 분포된 것은 선사시대 한민족의 삼족오태양숭배 일족이 영일만의 양곡(暘谷)지역으로 정착하여 토착민과 함께 진한의 근기국을 세웠음을 밝혀주었다.일월신화(日月神話)의 탄생지에 수놓아진 여러 지명들과 이 지역의 가장 빠른 연중 일출시각 등은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포항지역만이 일월신화의 정체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둘째, 영일지역의 진한의 근기국은 기원전 2세기 말~기원전 1세기초 소국을 형성하였다가 신라 건국 이후 2세기 중반에 편입되었다. 2세기 초 안강·흥해·기계를 복속시켜 울산까지 동해안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한 신라는 고대국가 형성의 큰 정치사적 사건인 근기국 복속이 제8대 아달라왕(154~183)대에 이루어졌다. 아달라왕대에 영일만 일대를 실질적인 지배영역으로 복속하여 흥해에서 울산만에 이르는 동해안의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다.이와 함께 신라 2대 남해왕 3년에 시조묘를 세운 후 7대까지 한 차례씩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으나 8대 아달라왕대에 와서 두 번이나 시조묘 제사를 올리며, 또한 시조묘를 중수했다는 사실은 건국의 시조신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통합하여 신라 고대국가의 확립을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연오랑과 세오녀를 중심으로 한 근기국의 삼족오 일월숭배 집단(사제자,귀족, 직조·제철 기술자 등)은 전통적인 천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사로국 세력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되자 신라의 복속에 불응하고 도기야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양곡의 땅 신천지 개척을 위해 일본으로 도해한 것으로 보인다.셋째, 이러한 지명유래와 역사적 배경을 종합할 때 영일만의 양곡지역은 한민족(고조선)문명권의 삼족오태양숭배신화가 선사시대 유이민과 함께 이동 전승된 귀착지로서 한국의 대표적 일월신화의 성지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201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