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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밝히는 음향신호등의 푸른 신호음 -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에 관하여

등록일 2016-01-05 02:01 게재일 2016-01-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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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성경북점자도서관장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출근길 교차로에서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 신호등의 신호음이 메아리치듯 고막을 울리던 순간, 온몸에 전해졌던 전율과 흥분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감동적이다. 불안하고 위태롭게 교차로에 홀로 섰던, 20대 시각장애인 청년의 불확실한 미래는 새로 설치된 음향신호기의 `푸른 신호음`을 따라 조금씩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복지와 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고, 사회,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변화와 발전을 이뤄냈다. 그 중에서 변화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장애인의 참정권 확대를 위한 노력이었다.

중앙선관위는 1992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거소투표제 실시`, `시각장애인투표보조용구` 사용을 시작으로 1~4급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점자형 선거공보의 제공 등 지금까지 장애인의 참정권 확대를 위한 여러 제도를 개발하고 시행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8월에는 오는 4월 있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 선거공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을 개정했다. 이 법 개정에서는 임의규정인 시각장애인 선거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 조항을 의무조항으로 강화하고 점자 미해독 시각장애인에 대한 대책으로 음성형 선거공보를 추가해 후보자가 점자형 또는 음성형 선거공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후보자는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 제출해야 하되, 책자형 선거공보에 그 내용이 음성으로 출력되는 전자적 표시(음성형 선거공보)를 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점자형 선거공보의 대체 방안으로 음성형 선거공보를 추가했지만 본래 의도와는 달리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 국민 중 문맹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듯, 시각장애인도 점자 해독자와 미해독자를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장애인등록제의 기재사항은 장애의 유형, 등급, 원인, 시기에 관한 것이고 장애인 실태조사는 표본조사이다. 이 조항 그대로 선거가 실시된다면 점자형 선거공보와 음성형 선거공보가 시각장애인 유권자의 장애 정도 등 점자해독자이건, 미해독자이건 당사자의 실정과 상관없이 후보자 임의대로 제각각 배포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앙선관위가 음성형 선거공보로 채택한 `음성으로 출력되는 전자적 표시`에 대한 시각장애인 이용 실태도 문제다. 음성으로 출력되는 전자적 표시란 음성변환 2차원 바코드 인쇄를 의미한다. 바코드는 거리와 각도 등 카메라의 초점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그러므로 중증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그 작동이 터치 방식인 관계로 중증 시각장애인인 경우 사용에 상당한 곤란을 겪는다. 따라서 음성형 선거공보는 실효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법 제65조 점자형 선거공보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공정성을 위배하는 차별의 문제가 있다. “후보자는 시각장애선거인을 위한 선거공보 1종을 제2항에 따른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이내에서 작성할 수 있다.” 점자는 일반 활자와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 일반 활자로 제작된 책자와 같은 내용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은 면수를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점자형 선거공보에는 책자형 선거공보에 게재된 정보의 일부만 발췌해 수록할 수밖에 없다.

이 법 제65조 4항은 시각장애인 유권자에 대한 선거권과 평등권 모두를 침해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점자 미해독자에 대한 대책방안으로 1~2급 중증시각장애인 유권자에 대해서는 이 법 153조의 투표안내문과 같이 점자형 선거공보와 음성CD, 음성전환 2차원 바코드 등 음성형 선거공보 모두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일반 활자 선거공보와 동일한 내용의 점자형 선거공보를 차별없이 제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시각적 선거 홍보물의 절대취약계층인 시각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정선거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도 음향신호등의 `푸른 신호음`은 시각장애인의 동등한 사회참여를 바라며, 이전보다 훨씬 넓어진 교차로에서 우리사회의 미래를 꿋꿋이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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