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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30년, 대구·경북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10-29 16:51 게재일 2025-10-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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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30년] 지방자치 30년, 대구·경북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지방자치 제도 자리 잡았지만
최종 결정은 여전히 중앙정부
전체 예산 중 주민결정권 1%↓
지역 주민 28% “삶 개선 됐다”
성과 긍정평가에는 36% 그쳐
참여 없인 불가능… 힘 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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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주도로 상정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이 대구시의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경북매일 DB

<글 싣는 순서>

1. 대구·경북 어디까지 왔나⋯지방자치 30년의 궤적
2. 공천의 굴레⋯중앙이 공천하고 지방에서 투표한다
3. 감시자는 어디에 있나⋯의회 기능 제대로 되는가
4. 지방 자치는 시민의 삶을 바꿨는가
5. 지방자치 다음 30년의 조건⋯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인터뷰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 동안 제도는 정착됐고 권한은 커졌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삶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주민이 정책 결정의 주체로 참여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가 29일 발표한 주민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62%가 “지방자치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지방자치의 ‘성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주민은 36%에 그쳤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지방자치 이후 내 삶이 개선됐다’고 답한 대구·경북 지역 주민은 28%에 불과했다. 반면 ‘변화가 없다’거나 ‘중앙정부 중심의 행정이 여전하다’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지방행정이 여전히 중앙의 예산과 지침에 의존하고, 주민참여가 형식적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김혜은씨(49)는 “지방정부가 바뀌어도 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결국 중요한 결정은 중앙정부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2013년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했고, 경북도는 2015년 이후 모든 시·군으로 확대했다. 주민들은 복지, 교통, 환경, 마을사업 등 일부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체 예산 중 주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시민사회 영향력도 제한적이다. 대구·경북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환경·복지·도시재생 등 다양한 시민단체가 등장했지만, 행정의 ‘자문 역할’에 그치고 있다. 공청회나 정책 용역 과정에 참여해도, 정책 결정 구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구시는 2023년 ‘시민협치형 도시계획’을 추진했지만, 시민 제안의 40% 이상이 “행정 여건상 수용 불가”로 분류됐다. 경북의 한 군에서는 주민총회를 통해 제안된 마을환경개선사업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전면 삭감됐다. 주민이 참여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여전히 행정이 내리는 구조다.

2000년대 들어 주민발의제,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가 차례로 도입되며 제도적 참여 기반은 확대됐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여전히 높다.

주민발의제 첫 사례로 대구에서는 2011년 시민단체 주도로 ‘무상급식 친환경 조례안’이 3만 2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상정됐고 2012년 9월 수정 의결돼 통과됐다. 올해 1월 대구 시민들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폐지안’을 청구 요건(1만 3690명)을 넘긴 1만 4000여 명의 서명으로 발의했지만 부결돼 무산됐다.

경북에서도 작년 6월 경산 시민 4000여 명이 ‘집단급식소 종사자 건강증진 조례안’을 주민발의로 상정했으나 시의회 상임위에서 부결됐다.

주민투표제는 지방의 주요 정책을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시행됐다. 2020년 1월 대구국제공항과 군 공항 이전 부지 선정을 위해 군위군·의성군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됐으나, 결과를 둘러싼 혼란이 이어졌다. 투표 결과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공동후보지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군위군이 결과에 불복해 탈락한 우보면 단독 유치를 신청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결국 오랜 갈등 끝에 군위군의 대구 편입으로 봉합됐다.

주민소환제도는 2007년부터 시행됐지만 실제 발동된 사례는 많지 않다. 2019년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서는 생활폐기물에너지화시설(SRF) 가동 문제로 시의원 2명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진행됐으나, 투표율이 33.3%에 못 미쳐 개표 없이 무산됐다.

김중석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은 “대구·경북은 한때 지방분권운동의 중심지였지만, 최근 몇 년간 중앙집권적 행정기조가 강화되며 자치의 역동성이 약화됐다”며 “지방자치는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방자치는 결국 주민의 힘으로 중앙의 권력을 ‘빼앗아 오는 과정’”이라며 “중앙정부가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을 리 없다. 주민이 학습과 참여를 통해 자치의 추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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