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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당선’ 주민 선택 아닌 ‘하향식 정치’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10-27 15:36 게재일 2025-10-2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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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정당공천제 폐지 번번이 무산
후보들 중앙당 눈치보기 급급
무소속 설자리 급격히 좁아져
지방정치 다양성 확보하려면
정당 내부 민주주의부터 회복
지역별 예비선거 제도화해야

<글 싣는 순서>

1. 대구·경북 어디까지 왔나⋯지방자치 30년의 궤적
2. 공천의 굴레⋯중앙이 공천하고 지방에서 투표한다
3. 감시자는 어디에 있나⋯의회 기능 제대로 되는가
4. 지방 자치는 시민의 삶을 바꿨는가
5. 지방자치 다음 30년의 조건⋯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인터뷰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그러나 정당공천제는 여전히 중앙당의 영향력 아래 있다. 대구·경북의 경우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러한 구조가 고착되면서, 지방정치는 주민의 선택이 아닌 중앙당의 의중에 좌우되는 ‘하향식 정치’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당공천제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을 제외하고 시행됐다. 2006년 지방선거부터 기초의원까지 포함되면서, 지방자치의 근간인 ‘주민의 직접 선택권’이 사실상 정당의 공천권 아래로 편입됐다.

2006년 이후 여야 모두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표면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내린 ‘정당표방 금지 위헌’ 판결이 이유로 거론된다. 헌재는 지방선거에서 후보의 정당 표방을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정당공천제의 확대 이후 ‘무소속 후보’의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졌다. 1995년 첫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당선자는 광역단체장 13.3%, 기초단체장 17.3%, 광역의원 23%에 달했지만, 2022년 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0%, 기초단체장 7.5%, 광역의원 0.6%, 기초의원 5.5%로 급감했다. 지방정치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정당이 후보 선정부터 정책 결정, 선거 전략까지 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셈이다.

대구·경북은 지난 30년간 압도적인 보수 일색의 정치 구도를 이어왔다. 시·도의회는 국민의힘 계열 의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광역·기초단체장 역시 예외 없이 보수 진영이 독점해왔다. 정치적 안정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정당 내부 경쟁이 유일한 정치 다원성의 형태로 굳어진 결과, 정책 경쟁과 견제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특히 2022년 6·1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경북 지역 공천 논란은 중앙당의 공천권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지난 2022년 4월 국민의힘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도내 14곳 기초단체장 경선 후보를 발표하자, 단수 추천에서 탈락하거나 경선 후보로 포함되지 못한 예비후보들이 집단 반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경산, 포항, 구미, 영주, 상주, 문경, 군위, 청도 등지에서 항의 기자회견과 시위를 잇따라 열었다.

경북 공관위는 현직인 이강덕 포항시장, 장욱현 영주시장, 김영만 군위군수를 공천에서 배제했으나, 중앙당 공관위가 컷오프된 일부 현직 단체장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며 경북도당의 결정을 되돌렸다. 

공천 심사 결과가 공식 발표되지 않은 경산과 청도에서는 단수 추천설이 돌면서 예비후보와 당원협의회가 강하게 반발했다. 문경에서는 채홍호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 구미에서는 이양호·김석호 예비후보의 컷오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상주시장 선거에서는 한 예비후보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선택한 후보”라는 식으로 발언하며 ‘윤심’을 내세워 논란이 일었다. 유권자들에게 지역 발전 비전이 아닌 중앙 권력과의 친분을 호소하는 모습에 “지방정치가 주민이 아닌 중앙의 권력 의사에 종속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기초의원은 “주민보다 중앙당 지도부 눈치를 보게 된다”며 “정책보다 공천이, 공천보다 충성이 우선되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지방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선 ‘정당 민주화’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공천권을 중앙에서 지방당으로 이양하고,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개방형 경선제나 지역별 예비선거 제도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지방정치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부터 회복해야 한다”며 “중앙당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한, 지방은 중앙의 하청기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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