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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사라지고 추인만… 제 역할은 실종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10-28 16:09 게재일 2025-10-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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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대구 작년 예산안 수정률 1%↓
도의회도 행정부 자료에 의존
재계약 반복·부정 의혹도 통과
전문인력 부족, 예산·심의 한계
예산안 수천장 원안통과 불가피
정책 보좌 강화·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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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구시의회가 1991년 시의회 개원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구시의회 제공

<글 싣는 순서>

1. 대구·경북 어디까지 왔나⋯지방자치 30년의 궤적
2. 공천의 굴레⋯중앙이 공천하고 지방에서 투표한다
3. 감시자는 어디에 있나⋯의회 기능 제대로 되는가
4. 지방 자치는 시민의 삶을 바꿨는가
5. 지방자치 다음 30년의 조건⋯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인터뷰

지방자치 30년으로 제도는 정착됐지만 ‘권력의 감시자’인 지방의회는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예산을 심의하고 행정을 견제해야 할 의회가 오히려 단체장의 정책을 추인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8일 대구시의회에 따르면 대구시의회는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되고, 1952년 4월 25일 첫 지방선거를 실시했다. 1961년까지 3대에 걸쳐 지방의회가 구성·운영됐지만, 5·16 군사정변 이후 혁명위원회 포고로 전면 해산됐다. 이후 1990년 12월 31일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30년 만에 부활해 1991년 제1기 지방의회가 출범했다.

부활 이후 대구시의회는 제도를 정비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대구시의회는 28일 현재 기준으로 본회의를 389회 열었고, 회의일수 4248일, 조례 제·개정 3906건, 예산·결산 심사 397건, 행정사무감사 조치  1만 3105건, 시정질문 2717건을 처리했다.

대구·경북의 지방의회는 조례 제정과 예산 심의, 행정사무감사 등 권한을 갖추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행정부 종속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구시의회의 지난해 예산안 수정률은 1% 미만이었고, 경북도의회 역시 대부분의 안건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시정질문이나 행정사무감사도 형식적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의원이 비위 의혹을 제기해도 실질적 조치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한 지방의원은 “예산서가 수천 페이지지만 의원 개인이 이를 분석하기 어렵다”며 “전문 인력 없이 행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승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감시 부재는 행정의 비효율로 직결된다. 대구시가 작년 추진한 일부 민간위탁사업은 성과평가 없이 재계약이 반복됐고, 경북도의 한 문화재단은 예산 부정 집행 의혹에도 도의회의 제재 없이 통과됐다.

지난 2023년에는 대구시의회 해외연수에 피감기관 직원들이 동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시의회는 2023년 3~4월 교육위원회, 문화복지위원회, 기획행정위원회, 건설교통위원회, 경제환경위원회 순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그런데 일부 상임위원회가 대구시교육청과 소방본부 등 피감기관 관계자를 동행시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행정을 감시해야 할 의회가 감시 대상과 함께 외유성 연수를 떠났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구 북구의회도 지난 2023년 4월 8박 10일 일정으로 동유럽 해외연수를 떠났다. 같은 시기 대구시가 산격청사(옛 경북도청 후적지)에 추진하던 ‘문화예술허브’ 사업 부지를 달성군 대구교도소 후적지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사업 부지 변경에 반발한 주민들은 삭발 시위에 나섰지만, 정작 의회는 현장을 비운 상태였다.

지방의회의 전문성 부족은 구조적인 문제다. 의원들은 보좌관을 둘 수 없고, 정책연구 인력이나 예산 분석팀도 형식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의원 1인이 연간 수십 건의 조례안을 검토하지만 이를 지원할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없다. 2022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의원 2인당 1명의 정책지원관을 둘 수 있게 됐으나, 실제 운용은 초기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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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대구시의회가 1995년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관련 조사 특별위원회를 열고 관련 조사를 하고 있다. /대구시의회 제공

의정 투명성 또한 낮다. 회의록과 예산 심의 자료 비공개 사례가 많고, 이해충돌 방지 제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1월 대구 동구의회에서는 일부 의원이 가족이 운영하는 수입차 전문 경정비 업체에 구청 쓰레기차 정비를 몰아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민단체들이 ‘의정활동 공개 의무화 조례’ 제정을 수년째 요구하고 있으나, 의회는 “행정 효율성 저하”를 이유로 미루고 있다.

제도적 한계도 여전하다. 지방의회의 조례 제정권은 헌법 제117조에 따라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개헌이 없는 한 조례제정권 확대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조례 제정 범위를 ‘법령의 범위’에서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로 완화하는 헌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 심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의회 개혁의 핵심으로 △의원 전문성 강화 △보좌관 제도 도입 △시민참여 확대 △정당 영향력 축소를 꼽았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지방의회는 주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축이지만 현재는 권력 구조의 일부로 흡수돼 있다”며 “정책보좌 인력을 확충하고, 예산 편성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제도를 병행해야 진정한 의미의 ‘책임자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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