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참사 22주기<br/>“편히 쉬세요” 1호선 중앙로역에 마련된 기억의 공간서 많은 시민들 희생자 기려<br/> 참사 후 다양한 기념사업 추진됐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속 공원 설립 제자리걸음<br/> 윤석기 희생자대책위원장 “대구시·법원, 넘치는 증거자료에도 이면합의 외면<br/> 온전한 추모공간 조성은 안전사회로 가는 첫발… 유족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대구지하철참사는 대구시민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을 지나던 전동차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참사 후 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기억공간 조성, 2·18안전문화재단 출범 등 다양한 추모 사업이 추진됐지만, 추모공원 조성만은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시민추모위원회는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시민 안전 주간’으로 정하고 대구 중앙로역에 ‘기억의 공간’을 운영 중이다.
시민, 유족들은 희생자에게 헌화할 수 있는 추모공간을 찾아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하지만 2·18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의 분위기는 우울만하다. 지난 6일 대구시를 상대로 희생자들을 팔공산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수목장으로 안치해달라는 소송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구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성경희)는 대구지하철참사 유족들이 대구시를 상대로 제기한 ‘수목장지 사용권한 확인 소송’에 대해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2005년 11월쯤 대구시와 수목장 안치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법률적 구속력을 가지는 이면 합의가 쟁점”이라며 “원고들이 내는 증거에서도 본질적으로 구속력 있는 대구시의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유족들은 “이면 합의 증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말을 감싸는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희생자를 추모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행사는 대구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참사 당일 사고 발생 시간인 18일 오전 9시 53분에 맞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2·18 추모공원에서 22주기 추모식이 열리며, 같은날 오후 3시에는 CGV대구한일 극장 앞에서 시민 추모 문화제가 개최된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장
17일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는 추모공원 조성 사업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윤 위원장은 “대구지하철 참사 수습 당시 유족은 제정적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대형 참사 예방을 위한 안전교육 중심으로 한 추모사업”이라며 “추모사업은 안전교육관 설립과 상징적 교본인 희생자 묘역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목장 설치에 대해선 “대구시와 유족이 합의한 수목장은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 행정기관의 합의는 법적 효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면 합의에 관한 증거 자료는 바닷가 모래알 만큼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를 외면한다”면서 “항소심에서는 합의 당시 책임자들을 증인으로 채택시켜 재판부가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대형참사 초기에는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으로 지지와 응원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라면서 “이런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참사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 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사 당사자와 유족들의 외침이 사회 넓게 퍼져 안전한 사회와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가 이뤄지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세월이 지나도 아픔은 가시지 않아”
17일 오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의 기억공간.
22년 전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민은 침묵 속에 희생자들의 기억을 되새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고운님들이여! 생명의 별 밭에서 편히 쉬소서’라고 적힌 2·18안전문화재단의 현수막 아래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고요히 다가가 흰 국화를 하나하나 손에 쥐고,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묵념을 했다.
메모지에 쓴 추모의 글들은 ‘명복을 빈다’, ‘편히 쉬시라’,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내용의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결단을 담고 있었다.
그 중 한 시민은 꽃을 놓으려고 고개를 숙이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흐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가족이라고 밝힌 이 사람은 “22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픔은 가시지 않고, 마음 한 구석에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그날 이후로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말했다.
기억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당시 화재의 현장을 보존한 유리 공간이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벽, 그 벽에 손으로 글을 쓴 흔적들. 그 모든 것이 끔찍한 사건의 아픈 기억을 보여주고 있었다.
희생자의 위패를 둔 곳 앞에는 시민들이 국화와 꽃다발을 놓으며 희생자들을 기렸다.
한 시민은 “대도시인 대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 중앙로역 기억공간 앞에서는 ‘2·18 대구지하철참사 22주기 궤도노동자 추모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구지하철노조가 소속된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궤도협의회)가 주최했고, 철도·지하철노동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윤석기 218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22년 전 참사는 ‘전동차는 불타지 않을 것’이라는 시민들의 믿음에 대한 배신”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기업 이윤보다 하찮게 여기는 잘못된 법과 제도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재욱·장은희·황인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