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재발견<br/>경주의 신성한 보고(寶庫) 선도산<br/><1> 신라인들 사이에서 선도산이 가졌던 위상은
개개의 가문도 수백 년을 이어왔다면 크건 작건 갖가지 설화와 이야깃거리가 그 안에서 생겨난다. 고래로부터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옮기기 좋아하는 동물이었다. 누가 있어 그걸 부정할 수 있을까.
신라는 1000년에서 8년 빠지는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다. 중간중간 부침(浮沈)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지구 위 어디에도 이처럼 장구한 세월을 이어간 제국은 드물다. 이는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
그러니, ‘천년 왕국 신라’에 설화와 오랜 시간 인구에 회자될 이야기의 소재가 없을 까닭이 없다.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 가능한 일이다.
본지는 2024년 하반기 주요 기획연재 중 하나로 까마득한 옛날 신라 사람들 사이에서 신성시된 것은 물론, 현대에 이른 오늘까지 그 지역이 가진 사적(史的) 중요성에 많은 역사가들이 주목하는 선도산(仙桃山)을 취재·탐구할 계획을 세웠다. ‘경주의 신성한 보고(寶庫) 선도산’이란 타이틀 아래에서다.
곳곳 전설·유적 ‘신라사의 보물창고’
경주평야 입구, 신라 서악으로 중시
법흥·진흥왕·상층 귀족들 고분 집중
산 정상 근처엔 마애아미타삼존불
신라 시조 낳은선도산 성모 전설도
◆2024년 현실에서의 선도산은 어떤 모습일까
6월과 7월 두 차례 걸쳐 선도산 일대를 사진기자와 동행해 돌아봤다. 적지 않은 수의 왕릉과 경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인 울울창창한 소나무숲, 거기에 신령함이 깃들었다고 믿어온 거대한 석불(石佛)까지.
답사 후 처음 든 느낌은 ‘과연 수십, 수백 가지의 전설과 민담, 수수께끼가 숨어있을 만한 비밀스럽고 신성한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신라 역사의 보물창고(寶庫)”라 칭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신라 사람들이 비밀스럽고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한 선도산과 그 일대를 오늘날 여행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두산백과’가 이 의문에 담백하고 모던하게 답해준다.
“선도산의 높이는 390m다. 경주시 형산강 서쪽 효현동에 위치하며 신라시대부터 지목도가 높았던 산이다. 신라 사람들은 이곳을 서방정토(西方淨土)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경주의 서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서악’이라고도 불렀다. 그 때문에 선도산 주변엔 유적지가 많다. 경주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과 태종무열왕릉, 법흥왕릉, 서악리 고분군 등이 선도산 자락에 있다. 정상 가까이에는 서악동 마애여래삼존불상(보물 제62호)이 서있다. 그 외에도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구멍 유적이 있다. 북쪽 자락에는 서라벌대학교, 신라고등학교, 경주정보고등학교, 월성중학교가 있고,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다.”
실제로 그랬다. 선도산 초입에 자리한 태종무열왕릉 뒤편으론 진흥왕과 진지왕의 유택(幽宅)이 자리해 있었다.
지금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근대까지도 권력자들은 세칭 ‘명당(明堂)’에 터를 잡고 거기에 묻히기를 원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묫자리가 후손들의 발복(發福)과도 연관된다는 믿음 때문. 그게 비과학적이라 할지라도.
앞서 말했듯 신라는 이미 1000년 전에 존재했던 왕국. 과학과 합리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지식의 상향평균화가 이뤄지기 훨씬 이전 시대였던 것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제하고 관할하는 신령한 존재를 믿는 이들이 많았고, 무덤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행이 갈린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신라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다고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왕이, 그것도 삼국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태종무열왕이 묻힌 곳이니 선도산이 당대 신라에서 지녔던 위상이 어느 정도였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하다.
◆왕들이 잠든 공간인 동시에 ‘성스러운 어머니’ 설화까지
고대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선도산은 오랜 기간 주요한 탐구 대상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학계의 논문을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에 ‘선도산’이란 키워드를 넣어보면 적지 않은 자료가 검색된다.
한국사상사를 연구해온 동국대학교 사학과 최연식 교수의 논문 ‘선도산의 신성함을 바라보는 세 가지 입장’은 선도산이 왕릉이 집중된 공간만이 아닌 신라 역사의 여러 비밀을 함께 간직한 곳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런 대목이다.
“경주 서쪽의 선도산은 경주평야 입구의 중요한 지역으로 신라시대뿐 아니라 이후에도 경주의 서악(西岳)으로 크게 중시되었다. 이곳에는 법흥왕과 진흥왕, 진지왕, 무열왕(태종무열왕)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왕릉들을 비롯해 다수의 상층 귀족들의 고분이 만들어졌고, 산 정상 근처에는 대형 아미타 삼존불상이 왕릉을 바라보고 서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시조를 낳은 존재이자 유력한 산신이라고 하는 선도산 성모에 관한 전승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유물과 유적, 전승 등은 선도산이 신라시대 이래 경주의 주요한 신앙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동쪽 입구의 토함산과 함께 경주를 수호하는 양대 신성(神聖·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으로 중요하게 제사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후략)”
최 교수의 지적처럼 여러 기의 왕릉과 더불어 선도산에서 주목해야 할 건 ‘신라의 시조를 낳은 존재이자 유력한 산신이라고 하는 선도산 성모’와 ‘아미타 삼존불상’이다.
성모(聖母)가 뭔가? 속세의 것이 아닌 성스러움을 지녔기에 숭앙받은 존재를 말하는 것일 터. 그것도 1000년 역사의 왕국 첫 지도자를 낳았다면 ‘선도산 성모’의 위상 역시 드높았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포함된 동양(아시아)만이 아니다. 미국처럼 역사가 일천한 국가는 아니겠지만, 수천 년 세월을 사람들이 살아온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현명한 통치자를 낳은 신성한 어머니의 설화’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렇다면 신라의 시조로 알려진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숭배 받아온 ‘선도산 성모’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민속문학사전’은 비밀의 베일에 싸인 선도산 성모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선도산 성모는 신라의 시조모(母)로 알려졌으므로 신라 건국 시기에 출현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접한 성모 숭봉(崇奉)의 일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한 것이 최초의 자료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녀는 선도산의 여산신(女山神)으로 신라 삼사(三祀·3가지 중요한 제사)의 대상이었으며 신사(神祠·신령을 모신 사당)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사람들이 성모의 일을 익히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제왕운기(帝王韻紀)’ 기록도 있다.”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도 서라벌이 만들어낸 보물
보편적 신라인 대부분이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던 선도산 성모는 국가가 올리는 큰 제사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고, 사당을 세워 장수와 행복을 빌며 영험을 얻고자 했던 숭배의 주체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다. 아래 인용하는 건 이와 관련된 ‘한국민속문학사전’의 부연이다.
“선도산 성모는 여산신이자 시조모라는 특징을 지닌 점에서 가야산 정견모주, 지리산 성모와 유사하다. 동신성모 유화는 시조모이지만 산신으로 좌정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여산신 신앙이 국조신화와 연계되는 것은 대체로 남방계 신화의 특징이다. ‘부계(父系)’의 탐색과 계승을 강조하는 다른 국조신화들과도 대조적이다.”
흥미로운 설명이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선도산 성모가 알을 낳았다는 것인지? 그리고, 부계신화가 아닌 모계신화가 돌출한 건 신라가 모계중심 사회였다는 것인지? 강고한 유교적 가르침이 통치철학으로 작동했던 조선시대엔 ‘선도산 성모’가 어떻게 평가됐는지?
의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를 차근차근 짚어가며 관련 학설과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는 과정이 있어야 할 듯하다. 이는 ‘경주의 신성한 보고(寶庫) 선도산’ 연재를 이어가며 해결하고자 한다.
다수의 왕릉, 선도산 성모 설화와 함께 주목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이 바로 그것.
선도산 성모처럼 실체는 없고 떠도는 전설과 이야기만 남은 게 아닌, 눈앞에서 존재하는 실물이기에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이 가진 지위는 날것인양 싱싱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성산(聖山)이라 부르는 아라라트산, “백만 가지 설화를 간직했다”고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화산에 필적하는 신비한 이야기를 담은 선도산의 역사 유적 ‘마애여래삼존불’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