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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류병선 영도벨벳 회장 "벨벳 한 품목으로 세계를 열었다”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11-10 16:04 게재일 2025-11-1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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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최근 APEC 전시장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와 벨벳에 대해 소개하며 찍은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제39회 섬유의 날(11월 11일)을 앞두고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만난 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은 60여 년 전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던 산업 한 분야를 스스로 개척한 사람이다.

영도벨벳은 1960년 류 회장과 남편 고 이원화 회장이 함께 창업한 국내 최대 벨벳 기업이다.

류 회장은 “당시 한국에는 벨벳을 짜는 조직 자체가 없었다. 일제나 독일산 ‘비로도’가 밀수되던 시절, 벨벳 조직을 풀어내기 위해 8개월 동안 샘플을 해체하고 조합해 결국 1968년 국산화에 성공했다”며 “1975년부터 수출을 시작했고, 1988년 1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1990년에는 물로 세탁해도 모(毛)가 눕지 않는 마이크로벨벳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확보했다”고 회상했다.

사업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IMF 외환위기 직전, 창업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벨벳공장을 짓겠다며 고가의 기계를 들여왔고, 환율 폭등으로 사실상 부도 위기를 맞았다. 

류 회장은 “환율이 800원에서 2000원까지 치솟자 달러로 들여온 직기 리스 부채는 100억원대에서 순식간에 300억원대로 늘었다"며 "회사는 사실상 부도 문턱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하지만 남편에게 ‘부도 낸 사업가로 남지 말라’고 말했다. 집도 공장도 다 팔고 처음부터처럼 다시 가자고 설득했다”며 “정말 많은 사람이 도와줬고 결국 살아났다”고 말했다.

회사는 장기 불황을 버티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선택했다. 2000년대 초 연구비 100억원을 들여 산업용 벨벳 개발에 나섰고, 2006년 국산 LCD 러빙포 생산에 성공했다.

류 회장은 “러빙포는 LCD 패널의 액정 분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시키는 핵심 소재로, 일본이 장악하고 있던 분야”라며 “우리 제품은 2011년 LG디스플레이가 애플에 공급한 아이패드2 LCD 패널에 처음 적용됐고 이후 세계 시장에 수출되고 있다. 현재 회사 매출의 약 45%가 러빙포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 경험은 이후 회사 운영의 중심에 ‘사람’을 두는 계기가 됐다. 류 회장은 “IMF로 회사가 흔들릴 때도 직원들은 수출 선적 날짜에 맞춰 제품을 맞췄다“며 “그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살렸다”며 경영에서 강조하는 가치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들 통장에 200만 원만 넣어주는 건 진짜 장학이 아니다. 부모가 얼마나 훌륭한지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장학”이라며 “아이들을 불러 밥을 먹이고 선물을 주고 ‘너희 부모님이 달러를 벌어 이 나라를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 이후 아이들이 부모를 대하는 모습이 달라졌다”고 했다.

장학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그는 “70세에 설립한 장학재단 역시 그 마음의 연장선"이라며 "남은 생에서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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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벨벳으로 만든 각종 제품들을 선보이며 벨벳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 회장이 운영하는 전시장 ‘영도다움’은 대구 도심 골목 안에 있다.

류 회장은 "컨설팅 회사는 서울에 짓기를 권했으나 거절했다. 대구·경북이 섬유도시인데 왜 서울로 가나. 세계가 대구를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시는 벽지, 커튼, 의자 등 대부분을 벨벳으로 채웠다. 16년 전 설치한 블라인드는 지금도 색이 변하지 않았다”며 “벨벳은 유행을 타지 않는 고급 소재”라고 자랑했다.

현재 영도벨벳은 류 회장의 큰아들이 경영을 맡고 있다. 류 회장은 “150명의 가족에게 월급을 주며 회사를 지키는 아들이 고맙다”며 “내 꿈은 벨벳 공장이 100년, 200년, 1000년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선 “대표가 아니라 사람 만나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라고 웃음 지었다.

그러면서 “살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왜 없었겠나. 그래도 손에 일이 있다는 것, 누군가 필요로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라며 "나는 지금까지 받은 것이 많다. 남은 인생은 받은 감사를 되돌려 주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 경제인으로서 후배들에게 할 조언은 “나를 속이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어떤 일을 하든 내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엄마라는 역할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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