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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혁수 희움 관장 “기억을 지키는 건 해방을 완성하는 길”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08-13 15:33 게재일 2025-08-1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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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혁수 일본군 ‘위안부’ 희움 역사관장이 13일 희움에서 피해자 이 모 할머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혁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장이자 사단법인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13일 “기록과 공간을 지켜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서 관장이 위안부 피해자 증언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한 신문 기사에서 접한 문옥주 할머니의 사연 때문이었다.

그는 “대구 출신 18세였던 문옥주 할머니는 1942년 7월 9일 ‘양말만 빨 줄 알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가난한 살림에 숟가락을 덜기 위해 해외로 향했다”며 “아버지 제삿날, 어머니에게 알리지 못한 채 대구역에서 중개인을 만나 부산으로 간 뒤 배를 타고 미얀마 위안소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이어 “문 할머니는 해방 이후 대구 봉덕동에서 살며 당시 상황을 증언했는데, 증언 과정에서 그는 50년 전 위안소에서 불렀던 일본어 노래 12곡을 기억해 불렀다”며 “이 노래들은 술자리 분위기를 돋우는 곡이었는데 대만에 있었던 이용수 할머니가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시민모임은 중앙정부와 대구시에 역사관 건립을 제안했다. 현재 서울을 제외하면 국내 위안부 역사관은 극히 드물며, 대구의 희움 역사관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 공간은 피해자의 헌신으로 지탱됐다.

서 관장은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 김순악 할머니는 평생 모은 1억 원 중 절반은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나머지 절반은 역사관 운영에 써 달라고 했다”며 “못 배운 설움을 다른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정쟁의 소재’로만 소비되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 관장은 “3·1절이나 광복절 전후로 반일 여론이 들끓다가 며칠 뒤면 사라진다”며 “그때마다 피해자들은 누군가의 정치적 입장을 확인하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하고 개인적 발언을 강요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국의 외교 갈등이 아닌 아시아 전체의 인권 과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필리핀 등 다른 피해국들도 한국 소송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면 그들의 기대도 저버리는 셈”이라고 했다.

또 피해자들이 오래 외쳐온 ‘7가지 해결 원칙’(법적 사과, 책임자 처벌, 범죄사실 인정, 역사 교육, 재발 방지, 역사 교과서 반영)을 짚으며, “일본이 수차례 사과했다고 하지만 피해자가 요구하는 법적·제도적 해결은 여전히 미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 국제법 위반 여부를 명확히 하고, 결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피해자 뿐 아니라 모든 아시아 피해국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서 과장은 광복절의 의미를 “국가의 해방을 넘어 인간 존엄의 회복”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80년 전 광복은 나라를 되찾은 날이었지만, 피해자 개개인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그들의 목소리가 기록되고, 기억이 보존될 때 비로소 광복은 완성된다”고 말했다.

글·사진/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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