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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애썼다”는 선원들, 구명벌 손도 안댔다

무등일보 특별취재팀
등록일 2014-04-23 02:01 게재일 2014-04-2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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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에만 급급해 조타실 2m 앞 14개 작동 안시켜
▲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선원들이 조타실에서 구조되고 있다. 이들은 조타실 바로 옆에 구명벌이 14개나 있었는데 바다에 던지지 않고 자신들만 배에서 빠져나왔다. 해경이 구명벌 2개를 바다에 던지고 있다(오른쪽 원안), 사진 왼쪽에는 세월호 한 선원의 손에 워키토키 무전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로 선원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목포해경 제공

세월호 선원들이 조타실 바로 옆에 구명뗏목(구명벌)을 두고도 이를 작동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해양경찰청과 당시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선장 이준석(69)씨 등 선원 10명은 조타실에 있다가 탈출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9시 30분 사고지점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경비정 123정(100t급)에 옮겨 타며 탈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그러나 수백명의 승객을 배에 놔두고 탈출하면서 조타실 바로 옆 구명벌조차 작동시키지 않았다.

구명벌은 선박이 침몰하면 일정 수압에 의해 자동 팽창되는 튜브식 구조장비로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어 수동으로 펼칠 수도 있다.

구명벌은 비상식량과 낚시도구까지 구비돼 있는데다 천막을 올려 입구를 닫아 해수 유입도 막을 수 있다.

겨울철이 아니라면 최대 10일까지도 버티게 해 주는 구조 장비다.

운항관리계획서 상으로는 세월호에 25인승 구명벌이 총 46개 있었고 실제로 조타실에서 불과 2m 앞에 있는 왼쪽 선측에는 14개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현장상황을 담은 연속사진을 분석한 결과 선원들은 구명벌을 바다에 던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선원들은 123정이 세월호 좌현에 바짝 붙자 서둘러 배를 빠져 나갔다.

이 때가 오전 9시 50분으로 400명에 가까운 승객이 여전히 배에 갇혀 있을 때였다.

구명벌을 바다에 투척한 것은 123정 소속 해양경찰관이었다.

그는 선측 좌현 구명벌 14개 중 2개를 풀어 바다에 던졌다.

14개 모두를 던지지 않은 것은 선박 왼쪽 바다에 빠진 승객들이 서해해경청 헬기 B511이 하늘에서 던져 준 구명벌 덕분에 대부분 구조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당시 현장 사진에는 123정에 구조된 한 선원의 손에 워키토키 형태의 무전기가 쥐어진 장면도 포착됐다.

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를 이용, 자기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한편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고 먼저 도망쳐 국민적 공분을 사고있는 세월호 선원들이 “구조에 애썼다”며 여전히 변명에 급급한 태도를 보였다.

1등 항해사 강모(42)·신모(34)씨, 2등 항해사 김모(47)씨, 기관장 박모(54)씨는 22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청구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후 목포지원 앞에서 취재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구호에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2등 항해사 김씨는 “응급처치 의무를 못했다. 그러나 퇴선해서 해경 구조정에 탑승해 구조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구명정을 펼치려고 했지만 배가 너무 기울어 미끄러지면서 구명정 근처까지 갈 수 없었다”며 “배가 기울어지고 브리지(조타실)에 모여 복원을 시도했으나 여러 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며 `불가 항력'을 변명의 이유로 들었다.

이들은 “경비정이 도착했을 때 승객들에게 퇴선하라고 말을 했다”며 먼저 퇴선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무등일보 특별취재팀

(한국지역언론인클럽 회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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